™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벌레를 향한 믿음, 소망, 사랑.

카잔 2008. 7. 26. 06:57


으악!

온 몸이 간지럽다. 벌레가 온 몸을 훑고 지나는 듯한 느낌에 몸 이곳저곳을 긁는다.
벌레가 아님을 확인하며 안심하고 나면 이내 다른 곳이 간지러워진다. 또 긁적긁적.
바닥에서 벌레가 기어올까 봐 나 지금 의자 위에 두 다리를 들어올려 글을 쓰고 있다.
에공. 미치겠다. 나의 1/500 밖에 안 되는 조그만 놈 때문에 쪼그려서 글을 쓰는 모습이라니.

이것은 돈벌레를 나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난 다음의 증상이다.
난 무지막지하게 벌레를 싫어한다.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하다.
깬다. 이 말은 7년 전, 여자 후배들이 나를 보며 했던 말이다.
장난으로 내게 벌레를 던졌는데, 내가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던 게다.

내가 봐도 깬다. 그런데 난 정말 머리가 깨질 만큼 벌레들이 싫다.
바퀴벌레, 송충이, 돈벌레... 으악! 그 중에 제일은 돈벌레다.
이 놈들은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인 사랑으로도 정말 극복이 안 되는 놈이다.
발견한 지 15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벌레발견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믿음...
'얘들은 날 헤치지 않아.
얘들의 장점도 있어. 달리기도 잘 하고, 겸손하여 자신을 빛 가운데로 잘 드러내지도 않지.'

이렇게 노력해 본다. 그러나 그놈에 대한 좋은 믿음을 가지려는 노력도 헛 되다.
결정적으로, 그 놈들을 믿기엔 생김새 자체가 너무 흉악범이다.

소망...
'곧 사라질 거야.
아마 얘가 이 집에 남은 마지막 놈일거야.
나는 그저 강철중처럼 이 한 녀석만 잡으면 돼.'
"난 깡패 잡을 때, 그 놈이 이 세상 마지막 깡패라고 생각하고 잡아."

이렇게도 노력해 본다. 그러나 그들의 수 많은 발로 재빨리 사라질 거란 희망 역시도 헛되다.
결정적으로, 이 소망에 대한 근거가 코딱지만큼도 없는 것이다.

사랑...
'모든 것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어.
두렵고 화가 나는 것은 그 녀석에 대한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일 수 있어.
아직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사랑하기를 선택해 보는 거야.'

나의 마지막 노력은 사랑이다. 그러나 이것은 미친 짓이다.
결정적으로 두려움은 사랑과는 상극이다. 나는 그 놈들을 무서워하고 있단 말이다!

결국 나는 도망, 회피, 주저함을 택하고 만다. 벌벌 떨림은 그 결과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몇 십 분 동안 긴장했더니 온 몸이 경직되어 있었던 게다.
심호흡을 하고, 시계를 본다. 너무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나는 기분 전환을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고, 잠깐동안 글쓰기를 즐기고 싶을 뿐이다.

며칠 전, 잠을 자다가 깼다. 불을 켰다. 천장에 손가락 크기 만한 돈벌레가 기어다녔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고, 나는 그 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살충제를 뿌려댔다.
침대 옆으로 떨어졌다. (침대 위로 떨어졌으면 난 기절했을 게다. 참으로 천만다행이다.)
침대 위로 기어올라오지 못하도록 침대와 벽 사이의 틈이란 틈은 모두 살충제로 도배했다.
다시 침대 아래에서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침대 안으로 마구 뿌려댔다.
한 통을 다 썼고 예비용으로 사 두었던 것도 절반 이상을 썼다.
그 놈은 침대 구석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죽어 있든, 살아 있든. 죽었기를 바란다.

무섭다. 정말 이사 가고 싶은 심정이다.
농담하지 말라고, 무슨 벌레 한 마리 때문에 이살 가냐고
핀잔을 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난 진심이다. 정말 이사가고 싶다.
그만큼 충격이 컸고 두려움은 오래 남았다. 으악! 이러고도 내가 남자라니.
부끄러워서 글을 지울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느낌 처음이야.'

돈벌레는...
나의 청소 스킬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그 무시무시한 생김새로 나를 압박해 시각적 공포를 준다.
그 수 많은 발로 신출귀몰하여 사망 후에도 상상적 후유증에 시달리게 한다.

오늘의 그 놈은 잡지를 던져서 죽였다.
그 놈을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잡지는 통째로 버렸고 남은 사체는 아직 처리 전이다.
큰 마음 먹고 걸레로 닦고 걸레 역시 버려야지.
이러니까 나 완전 소심쟁이에 낭비벽 심한 결벽증 환자 같다. 맞다.

그러나, 100% 맞는 것은 아니다.
벌레 앞에서 소심쟁이가 되고, 벌레 잡은 물건은 갖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버리려고 아끼던 걸레를 사용한다. 읽었거나 불필요한 잡지를 재활용한다.

아!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결국 글쓰기로도 진정이 되지 않는 나.

이제 남은 희망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있다.
첫째 희망은 나의 아내가 될 사람이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둘째 희망은 읽은 분들 중에 돈벌레 퇴치법을 아는 분이 있기를.
셋째 희망은 돈벌레 중 글 읽을 줄 아는 놈이 이 글을 읽으며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를.

이 좋은 새벽에 저 나쁜 녀석과 함께한 한 시간... 으... 괴롭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