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균형있는 삶 ②] 개미와 배짱이는 몰랐던 균형

카잔 2008. 10. 6. 06:50

 

개미와 배짱이의 이솝 우화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대책 없이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의 삶보다는 성실하게 일하는 개미의 삶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베짱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개미에 대하여는 줄곧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이솝 우화의 영향이었다.


인생 말년의 개미, 자신의 삶을 후회하다


하지만, 컬럼비아 대학교의 랜 키베츠 교수의 논문은 개미와 베짱이의 삶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컬럼비아대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조사 시점에 따라 ‘일’과 ‘파티’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일주일 전에 공부나 일 대신 파티를 택했던 학생들은 ‘그 선택이 후회스럽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5년 전 선택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5년 전의 일에 대해서는 당시 파티 대신 일을 선택했던 학생들이 ‘후회스럽다’고 답변했던 것이다. (동아일보 2006년 12월 23일자 40면 참조)


키베츠 교수는 졸업한 지 40년이 지난 컬럼비아대 동문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젊은 시절을 즐기면서 보냈던 동문들은 대체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대답한 반면 일만 하면서 지낸 동문들은 “젊었을 때 좀 더 인생을 즐겨야 했는데 후회가 된다”고 답변했다. 키베츠 교수는 이를 ‘원시(遠視·멀리보기)의 오류’라고 말했다. 미래만 염두에 두고 현재를 희생하면 장기적으로는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베짱이, 일하는 베짱이로 변신하다


이 기사를 실었던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은 “개미보다 베짱이로… 젊을 때 즐겨라”였다. 나는 이 주장은 평생을 열심히 일한 개미들에게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베짱이들에게 젊을 때 즐기라고 한다면, 일을 하지 않아 고생과 서러움을 겪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일을 하지 않으면 자유도, 미래도 없다”고 화를 낼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D. 퀸 밀주가 그의 연구원들과 함께 쓴 책 『균형』의 프롤로그는 일벌레가 된 베짱이의 과거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해 겨울은 10년에 한 번 온다는 강추위로 많은 곤충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베짱이는 다른 곤충이 살다가 떠난 빈 집에서 춥고 배고픈 겨울을 견디어냈다.

마침내 겨울이 지나고, 베짱이는 허기진 배를 붙잡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 때, 개미 가족이 녹은 눈을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작년 겨울에 개미는 먹을 것을 구걸하던 나를 차갑게 몰아냈었지.’

그 기억을 떠올리니 베짱이는 마음이 아팠다. 살아서 다시 세상을 보게 된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지난 기억은 베짱이에게 많은 것들을 깨우치게 해 주었다.

노래하는 한량 베짱이, 그는 더 이상 한량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노래하는 베짱이가 아니라, 일하는 베짱이가 된 것이다. 그의 생각의 결론은 이런 것이었다. ‘진정한 자유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 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일을 하면 먹을 것과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로부터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자유가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미와 베짱이, 어느 삶이 옳은가?


이 베짱이의 후회를 생각할 때, 나는 랜 키베츠의 논문을 개미보다 베짱이로 살아야 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베짱이가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시즌의 행복만으로 행복한 삶을 누렸다고 말하기에는 우리 인생은 길다. 랜 키베츠 교수는 일만 하면서 지낸 동문들이 인생의 말년에는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하버드대 D. 퀸 밀즈 교수는 베짱이가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여 일하는 베짱이로 탈바꿈한 스토리를 책으로 썼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미의 삶과 베짱이의 삶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


조안 B. 시울라는 그의 저서 『일의 발견』에서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올바른 해석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그에 의하면, 이 우화의 주제는 일하는 삶이 노래하는 삶보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만약 노래하기를 원한다면, 그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주제는 ‘공평함’과 ‘자급자족’이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만약 당신이 일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먹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먹을 것을 주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솝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선택’하도록 한다. 우리는 베짱이처럼 짧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도 있고, 개미처럼 길고 빈틈없는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삶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조안 B. 시울라의 말처럼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나, 어떤 선택이 현명한 것인지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이 선택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두 교수님을 끌어들여 설명한 것이다. 자, 이제 선택을 하기 위하여 조안 B. 시울라의 견해를 빌려 한 번 따져보자. 먼저 개미는 어떤가?


우리의 역할모델은 개미도, 베짱이도 아니다


개미는 미래를 위해 산다. 검소하고 부지런하다. 이러한 개미가 갖고 있는 인생 계획의 장점은 그를 궁핍으로부터 구하고, 늘 비상시를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조안 B. 시울라는 막상 미래가 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개미가 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개미의 삶의 방식이 갖는 (내가 보기에) 치명적인 결함은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D. 퀸 밀즈 교수도 베짱이가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듯, 개미 역시 후회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책의 수 페이지를 할애했다. 퀸 밀즈 교수가 묘사한 개미의 말년은 이렇다. 개미의 아내는 일만 열심히 하는 남편에 불만을 품고 세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혼자 남게 된 개미는 일을 하다가 몸을 다쳐 누워 있었다. 이 때 베짱이가 찾아왔다. 일하는 베짱이는 예전에 자신의 역할 모델이 되었던 개미에게 무언가 조언을 구하러 찾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개미에게 들은 얘기는 뜻밖의 말이었다.


"나는 일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했어.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가정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거든.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과 부를 얻는 만큼 가정도 행복해질 것 같았지. 하지만 삶은 단순하지 않아. 내가 더 많은 것들을 붙잡으려 할수록 더 많은 할 일들이 생겼지.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 했어. 그렇게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나를 이곳으로 몰고 왔지.”

개미는 지금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베짱이는 어떠한가? 그는 현재를 위해 살고 미래를 희생한다. 노래 부르는 베짱이의 삶에는 즐거움이 있지만, 놀이는 아무 데에도 이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베짱이는 놀이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경솔한 삶을 대표한다.


개미의 삶도, 베짱이의 삶도 우리의 역할 모델로는 부족하다. 둘 다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둘 다 삶의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성공뿐만 아니라, 의미와 행복을 추구할 때 더욱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일은 왕 노릇을 하면서 가정은 물론 다른 것까지 삼켜버릴 수 있음을 개미의 뒤늦은 후회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제3의 대안, 균형을 추구하라!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기가 힘들 때 흔히 우리는 절충 방안을 생각한다. 하지만, 절충은 어느 한 쪽이 일정 부분을 양보하고 포기해야 한다. 절충보다 강력한 것은 창조적인 제3의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다. 스티븐 코비는 제3의 대안을 찾아본다는 것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제3의 대안을 찾기란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존재한다. 제3의 대안은 시너지를 발휘한다. 시너지는 1+1의 결과가 2가 아니라, 3 이상이 되는 것이다. 시너지는 차이점을 인정하고 강점을 활용하는 동시에 각각의 선택이 가지는 약점을 서로 보완해 주는 데서 발생한다. 개미와 베짱이 사이에서 선택하기를 거부하며 제3의 대안을 생각하던 나에게 조안 B. 시울라는 반가운 문장을 선물해 주었다.


“꿀벌은 개미처럼 일하면서도 베짱이처럼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즐긴다. 꿀벌은 사람들이 고맙게 여기는, 훌륭하고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서 기쁨을 얻고 의미를 찾는다."

시와 문학작품 속에서도 개미보다 유쾌한 일꾼으로 묘사된다는 꿀벌의 삶을 통해 개미의 삶의 방식과 베짱이의 삶을 방식을 결합한 창조적인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균형이라는 키워드다. 개미도 베짱이도 놓쳤던 균형의 삶, 나는 지금 이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음을 설명하고자 이 글을 썼던 것이다. 균형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기 위해서는 균형 잃은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성찰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찰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준다. 어제까지의 삶의 방식이 개미와 닮았다면, 혹은 베짱이와 닮았다면, 이제 삶 속에서 균형을 찾아나서야 할 때이다. 균형으로 가는 길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가 모두 중요한 것이라면,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아가야 한다. 다행히도 이 추격은 고달프지 않다. 오히려 행복한 추격이다. 균형을 추격하라. 균형을 추격하는 길에 그간 얻지 못했던 의미와 행복을 가득 주워 담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 글은 균형을 얻기가 쉽지 않음을 다루었습니다.

다음에 이어질 글은 균형을 얻는 비결과 균형 있는 삶을 누리는 사람에 관한 내용입니다.]


(참고로, 랜 키베츠 교수의 논문 내용은 동아일보의 공종식 뉴욕 특파원의 기사를 인용하였습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