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벤쿠버여행 3일차] 나는 지금 보보 스타일로 여행 중

카잔 2009. 3. 1. 03:15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웨이하이 여행

지난 해, 중국 웨이하이 여행은 아주 짜릿한 여행이었다.
다녀온 직후에는 참 괜찮네... 하는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멋진 여행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마음은 편했고 정신은 자유로웠으며 짧은 시간 내내 중국을 느끼고 왔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었고,
홀로가 아닌 3명이 함께 간 여행이었다.
두 명 이상이 되면 진정한 자유에서는 멀어지곤 하는데,
우리 모두는 참 자유롭게 다녀왔다. ^^

모양으로는 30대 초반(나)의 남성이
30대 후반, 40대 후반의 두 누님을 모시고 간 격이었지만
우리는 그저 친한 동료처럼 서로를 배려하며 마음을 맞추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웃음이 나올만큼 묘한 구성이기는 하다. ^^
허나, 정말 멋진 추억이 되었다. 다음과 같은 점들 덕분에.

1. 여행 기간 내내 우리는 중국의 (아주 작은) 일부를 체험했다.

패키지 여행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비행기 티켓만을 달랑 끊어서 떠난 웨이하이.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모든 것에 직접 부딪쳐야 했다.
택시를 타서 어느 호텔로 가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예약한 호텔도 없으니까. ^^

숙소는 날마다 바뀌었다. 음식도, 우리가 걷는 길도 모두 바뀌었다.
이동할 때에 실수가 있긴 했지만 목적지에는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는 아무도 중국어 회화책 하나, 여행 책자 하나도 갖지 못했다.
팀장인 내 손에 있는 웨이하이 관광정보가 담긴 A4 3장짜리 인쇄물이 전부였다.
아침은 길거리 음식으로 때웠고,
점심과 저녁 식사는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음식점에 들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시켰다.

기념품 상점에 들러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고,
사람들이 들끓는 관광 명소에 들어가느라 줄을 서서 기다린 일도 없었다.
관광지로 가는 전용버스가 아니라, 툴툴거리는 시내 버스를 탔다.
위생 상태 완전 제로인 버스, 시끄러운 중국어가 오가는 그 버스.
버스를 탔는데, 우리가 앉을 자리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각각 따로 앉아 50분 여를 달렸다.
시골 장터 같은 버스 안에서 이방인의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버스에서 내렸더니 누님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나 보다.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너무 좋았다고 했다.
이런 감상은 한국인들로만 들어찬 전세 버스에서는 못 누릴 것이다.

2. 마음이 통한 일행

우리 일행은 아주 우연히 구성된 멤버다.
나와 한 누님은 함께 여행 한 번 가자고 오래 전에 확정된 멤버였다.
둘이만 떠날 수는 없으니 차일피일 미루다가
어느 날, 우연히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근처의 스타벅스에서 이 두 사람이 만났다.
언제 갈 거냐? 누가 함께 갈 사람 없냐? 고 얘길 나누다가
가장 먼저 떠 오른 사람이 3번째 멤버가 되었다.
여행에 대한 생각은 금방 하나로 모아졌고,
내가 모든 준비를 하기로 의견까지 모아졌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서도 서로를 위한 배려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냈다.
사실, 의식적인 배려라기보다는 마음이 맞으니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했을 뿐이다.
가리는 음식도 없고, 특별히 잠자리를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예산에 맞추어 음식을 먹고 숙소를 정해도 불평은커녕, 이만하면 좋지, 라고 반응해 주었다.
팀장으로서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관광 명소에서는 함께 구경하기도 하고,
자연스레 각기 떨어졌다가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주 환상 짝궁들이었다. (누님들, 고마웠어요. ^^)

3. 다음 여행에 대한 희망을 품다

우리는 모두 내년(2009년)에 또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여행을 다녀 온 후, 이전보다 좀 더 친해졌으니 값진 보너스다.
2008년 5월에 다녀왔으니, 올해도 그 즈음이면 얘기가 나올지 모르겠다.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가고 싶은 마음은 나와 비슷하실 게다. ^^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는 그 사람과 가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렇게 다시 가고 싶다는 얘길 나누니, 이 얼마나 괜찮았던 여행인가!

보보의 여행 스타일

중국 웨이하이 여행이 멋졌다는 얘기를 한 까닭은
그 여행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이참에 보보의 성향과 여행 스타일을 언급하려고 일부러 끄집어 낸 것이다.

나는 웨이하이에 대한 어떤 사전 조사도 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누군가에게 부탁하여 얻은 A4 3장짜리 인쇄물이 전부였다.
그 것마저도 중국에서의 첫날밤에 숙소에서 읽었다. 
이 모든 것은 떠나기 전, 자유여행에 대한 생각이 세 명 모두 일치함을 확인했기에 가능했다.

우리는 모두 패키지 상품의 여행을 싫어했다. 
자유롭게 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면 어느 숙소에서 묵고,
다음 날 또 길을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음식도 여행지에서의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이 좋다고 했다. 
모두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운 흐름을 좋아했다. 
나의 이런 생각에 누님들은 모두 "그럼 됐지"라고 호응했다. 

허나, 막상 웨이하이에 도착하고 보니  살짝 두렵고 걱정되긴 했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여성 동행이 있으니 말이다.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에게는 구체적인 일정보다는 여행 정신이 필요하다"고.

둘째 날, 아침 식사를 한 곳에서 웨이하이의 명소를 여쭈었다. 
3군데를 추천해 주었고 다행히도 가지고 있는 인쇄물에 있는 곳이었다. 
인쇄물에는 4군데가 있었지만 여유롭게 3군데만 돌아보기로 합의했다. 
우리는 그렇게 4박 5일 동안 3군데만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
이것이 내가 즐기는 여행 스타일인지는 아직은 확신하지 못하지만,
나의 기억에 오래 남는 여행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벤쿠버에서 한량으로 지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벤쿠버 여행도 비슷하다.
벤쿠버 공항에 내렸을 때 결정된 것은
5박 중에 이틀을 묵을 호텔 뿐이었다.
나에게는 계획도 없었고,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저 낯선 나라 어느 도시에 한량 한 명이 도착한 것이다.

중국여행과 비슷한 점은 여행 책자 하나 없이
이번에도 역시 벤쿠버에 대한 몇 가지 정보가 적힌 인쇄물만 가졌다는 것이다.
지난 해 보다 나아지긴 했다. 인쇄물의 장수가 한 장 늘어 A4 네 장이니. ^^
한 두 번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여행 정신이다.
(자꾸 여행 정신, 여행 정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내일로 미룬다.
사실, 별 거 없어서 생각을 좀 해야 한다. ^^)

여행 3일차. 2009년 2월 27일 금요일.
새벽에 깼다. 3시 즈음이었으리라.
침대에서 금방 일어나지 않다가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라 노트북 앞에 앉았다.
90분 정도 글을 쓰고 다시 잠들었다.

6시 40분에 일어났다.
어제 저녁에 먹지 못한 뉴욕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근사한 레스토랑이 아닌 아침을 먹는 작은 식당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시장 안 떡볶이 집에서 파는 돈까스를 먹는 격이다.
어쨌든 나는 뉴욕 스테이크를 먹고 싶었다.
어젯밤에도 갔었지만, 7시에 문을 닫아 버려 다른 곳을 찾아 피자 한 조각으로 떼웠다.
그것이 아쉬워 나는 아침 식사로 뉴욕스테이크를 먹으러 간다.



이거 완전, 아침에 삼겹살 구워 먹는 분위기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호텔을 바꿔야 하기에 이 집에 다시 올 수가 없다.
이 집에서 먹은 스페셜 오믈렛이 맛있어서 뉴욕스테이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도 사실이다. ^^
가격도 저렴하다. 오믈렛이 7달러, 뉴욕스테이크는 10달러다.
식당에 들어가서 오전에도 뉴욕 스테이크가 되냐고 물었다. 된단다.
들뜬 마음으로 하나를 주문했다. ^^
상파울로의 어느 괜찮은 레스토랑에서 먹은 아주 맛있었던
시카고 스테이크의 맛이 떠올라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나이프로 고기를 써는데 이거 되게 질기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한 입 베어물었다. 그 순간, 나의 모든 기대는 박살났다.
스테이크를 다 먹기는 했지만 이가 얼얼했다. 거짓말 살짝 보태어 고무를 씹은 느낌이었다.
왠만한 고기 비린내와 질긴 맛에도 비위 상하기는커녕 잘 먹는 내게도 이 뉴욕 스테이크는 무리였다.
(박상아, 정말이다. ^^)

10달러를 생각하며 겨우 식사를 마무리하고
커피 한 잔을 하며 인터넷을 확인하기 위해 호텔 근처의 BLENZ 카페에 갔다.
학생으로 보이는 한국인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한국말로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노트북을 켰다. 
2시 30분 정도 이런 저런 일을 했다. 주로 메일 회신이었다. 

카페를 나오기 전, 저 한국 여인에게
반나절 정도 시간이 되면, 벤쿠버 구경을 시켜 달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으로 그쳤다. 괜찮은 아이디어였지만 용기가 없었다. ^^

호텔로 돌아와 체크 아웃을 했다. 
어제 예약을 해 둔 Georgia Court Hotel 로 이동했다.
택시를 빨리 잡지 못해 살짝, 잠깐 고생을 했다. 짐이 많았기에.

새로운 호텔은 이전보다 가격이 정확이 두 배였다. 
가격이 두 배면 시설도 두 배려나, 하는 생각은 꼭 맞아 떨어졌다.
뉴욕스테이크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객실의 한 쪽 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
복도와 프런트 모두 호텔 같았다. ^^
객실 내의 LG 대형 TV도 보기 좋았고, 무엇보다 예쁜 책상이 마음에 든다. 
으하하하. 옮기길 잘 했다. ^^



짐을 풀고, 스탠리 공원 재도전을 위해 나왔다. 
점심으로 샐러드를 먹고, 스탠리 공원 쪽으로 걸었다. 
장갑을 살 수 있는 가게를 찾기 위해서다. 
오늘 나의 유일한 계획은 장갑을 사서 
자전거를 타고 스탠리 공원을 둘러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의 유일한 계획도 무산되고 말았다.
장갑을 사러 가다가 대형 서점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서점에 빨려 들어갔고 그 곳에서 두 시간 남짓을 보냈다. 
사실, 방금 전에도 장갑을 사러 들어간 대형 마트에서
장갑은 없고 책을 할인가로 팔아서 그것을 골라 두 권을 샀다. 
이번에는 진짜 서점이다. 그것도 교보문고 잠실점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서점.

경영 & 리더십 책들

미니북 『목적이 이끄는 삶』



Bargain 이라고 써 있는 코너에는 수천 종의 다양한 책들이
아주 헐값에 판매되고 있었고 나는 눈에 불을 켜고 구입할 만한 책을 찾아 다녔다. 
결국 눈에 불이 켜지고, 한글이 아닌 영어라는 이중고로 인해
두 시간 남짓 만에 서점을 나와야 했다. 한국에서는 훨씬 더 오래 있곤 하는데 말이다. 
나의 손에는 세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오늘 총 5권을 구매한 것이다. 

오늘 구입한 5권의 책들

호텔에서 들고 나온 한 권의 책까지 모두 6권이 작은 백 속에 들어갈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한 손에 책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도 없었다. 
결국, 호텔로 돌아왔다. 이미 오늘 일정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고
책을 구입했다는 사실로 날아간 일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후,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한량처럼 벤쿠버에서의 하루를 보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무런 한 일 없이 그저 서점에 들러 책을 읽고 구입한 것이 전부였다. 
비용 대비 건진 것이 없어 살짝 아쉬운 즈음에 한 통의 메일이 날아들었다. 
와우팀원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나를 아주 기분 좋게 하는 메일이었다.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아무리 무의미하게 하루를 보내었어도
그 메일로 인해 그 날은 의미 있는 날이 될 것 같은 내용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한량처럼 보내었지만, 기분 좋게 말이다. 

아쉬운 점 하나

들어가고 싶은 가게가 있어도 참곤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지나치곤 했다.
나의 어휘력을 벗어나는 곳이라면 그냥 넘어갔던 게다. 
나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여행자라는 사실을, 이곳에서는 초보자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했는데...

언론인 존 플린이 말한 여행자의 덕목이 내게는 부족했다.
"여행자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 덕목의 하나는
기꺼이 바보짓을 해서 웃음거리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유머러스한 광대가 되겠다는 뜻은 아니다. 
실수할까 두려워 여행지에서의 모험을 피하는 것은 싫다는 뜻이다.   

내일은 (계획에는 전혀 없었지만) 가고 싶었던 도서관에 가 보아야겠다.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가게가 있으면 들어가서 이것 저것 물어보아야겠다.
시간이 되면, 벤쿠버의 차이나 타운이 제일 크다는데 거기에도 들러야겠다.
한 번 정도는 중국 음식으로 나만의 만찬을 즐기는 것도 좋네.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