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브라질 여행 후 달라진 것들 (사고편)

카잔 2009. 3. 13. 08:42

한 달 동안의 여행을 건강히 마치고 지난 주에 한국에 돌아왔다.
한국인들은 여행이 일주일만 넘어가도 '와! 길게 다녀왔네'라고 하지만,
여행길에서 만난 외국 친구들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 해, 친구와 함께 7일 동안 베트남 하노이와 하롱베이로의 여행 중에 만난,
네덜란드 청년들은 왜 이렇게 짧게 여행을 왔냐고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그들은 2달 째 동남아 여행 중이고, 한 달 후에나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다시 그들을 만나면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게 됐다. ^^
이번에 다녀온  브라질-캐나다 여행이 한 달은 되기 때문이다. (정확히는28일)
2002년에 38일 동안의 중국 배낭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가장 긴 여행이었다.
헝그리 정신으로 떠났던 중국 배낭 여행과 달리 이번에는 잘 먹고 잘 쉬었던 여행이다.
좋은 분들을 만났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돌아와서도 여행을 생각하면 감사함이 내 곁을 감돈다.

한 달이라는 꽤 긴 시간이었지만, 기간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여행은 여행이다.
떠나서 돌아온다면 여행이다. 돌아오지 않으면 떠남, 이사, 이민이 되겠지만 돌아오면 여행이다.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여행이다. 떠나기 전보다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온다면, 좋은 여행이다.

그런데, 떠났다가 아주 오랜 후에 돌아오면 그것도 여행인가?
5년 동안 외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살다가 돌아오면 그것은 여행인가?
아니면 짧은 이민 + 귀국인가?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삶도 여행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별 여행자'다. 
우리는 모두 하늘의 어딘가에서 와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는 여행자다.
또한 자기 생의 의미와 신의 목적을 찾아 묵묵히 여행하는 순례자다.
귀국하는 순간, 나는 한국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나의 인생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동안을 한국에서 여행하는 것이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누릴 수 있다면 보다 많이 배우고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외국 여행 중에 배운 유머 감각, 낙천성, 배려하는 마음 등을 기억하여 오늘의 삶에 조각하고
여행 중에 지녔던 모험심, 호기심,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 등을 유지하면 된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더욱 활기차고 낭만적으로 살 것이라는 환상을 멈추면 된다.
현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기에.

이런 생각들은 줄곧 품고 왔던 것이지만 여행을 통해 더욱 분명해졌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는 알랭 드 보통의 말에 자연스레 한 표를 던진 셈이다.
여행을 다녀 오며 새롭게 든 생각, 정리가 된 생각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단순함을 추구하다

앞으로 나는 보다 자주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많이 버는가봐"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생각을 어떻게 아냐면, 이런 류의 말을 심심치 않게 듣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여행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르다.
여행자의 삶을 사는 데에 필요한 것은 많은 돈이 아니다.
여느 사람들과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이 필요할 뿐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물건들과 필요한 가전제품을 구매할 때,
나는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구매한다. 
나는 매달 물건 때문에 나가는 할부금이 없다. 통신비, 월세, 보험료가 전부다.
나의 재정 상태를 가끔씩 체크해 주시는 재무컨설턴트는
내가 일반 직장인들의 1/3, 1/4의 용돈으로 살고 있음에 놀랐다.
(사실, 나도 놀랐다. 나는 돈을 많이 쓴다는 약간의 부담을 안고 있었다.) 

돈을 못 버는 편이 아니지만, 저축은 거의 하지 못한다.
나도 어딘가에 돈을 쓰기 때문이다.
나는 물질이 아닌 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한다.
이것이 자유로운 삶의 방식을 구매한다는 말이다.

나는 책을 구입한다. 이유는 책을 읽을 때 내가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에 투자한다. 여행을 할 때마다 무언가를 배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물질을 위해 투자할 때, 나는 개인을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요컨대, 나는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곳에 돈을 쓰는 것이다.

(장기적인) 해외 여행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바꿈으로 얻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이다.
물론,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 부류에 속하지 않는다.

며칠 전, 셔츠와 외투, 청바지 등을 버렸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필요없게 된 책들을 몇 권 정리해 냈다.
몇 년 동안 들고 다니지 않았던 가방을 처분했다.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 때 들고 다녔던 가방까지 갖고 있었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라' 라는 단 하나의 생각이 못 버리게 된 이유다.
그 생각 때문에 나의 공간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하다.

지금의 내 방을 돌아본다. 여전히 너무 많이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관리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는 데에는 돈을 쓰고 싶지 않다.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고 기계적인 삶을 위한 지출을 줄여야 한다.

WBC가 끝나면 스카이라이프를 해지할 것이다.
어서 월세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번 한 달 동안 집을 비웠는데, 돌아와서 내야 했던 월세는 어찌도 아깝던지. ^^

나는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나에게 충만한 삶이란,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시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달렸다.
나에게 단순함이란,
아름다운 시간 활용을 돕지 않는 물건과 지출을 없애는 것이다.


일상의 여행

이번 여행을 통해 구체적으로 여행자의 삶을 꿈꾸게 되었다.
허구한 날 해외로, 다른 도시로 떠나겠다는 말이 아니다.
삶이 곧 여행이니 나의 일상을 여행자의 호기심 어린 시각으로 살겠다는 뜻이다.
여행을 하며 새로운 것을 관찰하는 시선을 나의 일상 속에서도 갖고 싶다는 뜻이고
마음을 열고 배우겠다는 태도를 지금 여기에서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의 결과가 카메라를 들고 다니게 되고, 삶의 방식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틀 전, <브라질 여행 후 달라진 것들 (일상편)> 을 썼다.
사고편을 쓰다 보니, 일상편과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생각과 삶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사고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삶의 방식은 나를 또 다른 생각의 지평으로 날아가게 한다.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사는 대로만 생각하다 보면 삶의 발전도 없다.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시작하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하든,
열린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삶과 일상을 여행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크고 작은 생활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런 변화는 또 다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재료가 되어 주었다.


생각하기의 중요성 & 생각을 돕는 도구들

이번 여행 후에, 생각하기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하여 절절히 느꼈다.
새로운 생각 하나가 내 삶에 만들어 낸 변화를 나의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브라질 여행 후 달라진 것들 (일상편)>은 여행 후 생활의 변화 몇 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생각하며 살기가 쉽지 않지만, 생각을 돕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독서, 영화, 대화다. 이것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야 누릴 수 있다.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것을 통해 생각하지 않아 더욱 시간이 없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목록에 하나를 덧붙인다. 여행.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드 보통의 말이다.
독서도 생각의 산파다. 대화도 생각의 산파다. 영화도 생각의 산파다.
독서, 대화, 영화. 이 세 가지는 내 삶으로 생생하게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여행에 대해서도 당당히 '여행은 생각의 산파'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 삶으로, 가슴으로 구구절질히 늘어놓을 이야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표현은 구구절절히 지저분해 질 것이니 드 보통의 표현을 빌린다.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 나간다."


'선한 싸움'의 스펙트럼 확장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이라는 말을 했다.
파울로 코엘료도 '선한 싸움'이라는 표현을 썼다. 
코엘료는 순례의 길에서 깨달은 '선한 싸움'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 선한 싸움은 자신이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다.
- 선한 싸움을 자신의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것이다.

선한 싸움의 대상은 내면적인 것과 외부의 것이 있다.
지금까지 나는 내면적인 것들을 물리치는 법에 대해 공부해 왔다.

그러다가 이번 여행을 통해서,
외부의 것들과 벌이는 '선한 싸움'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알게 됐다.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꽤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감사하고,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들을 얻어왔기에 행복하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