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행복이 깃든 일상적인 하루

카잔 2009. 3. 15. 10:40


귀가길이 꽤 피곤했다. 어젯밤 늦은 시각에 잠이 들었고, 오늘은 오전 9시부터 일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첫 일정은 일산의 모 출판사에서의 강연이었다. 비즈니스 차원이 아니라, 따뜻한 유대관계로 진행된 강연이라 긴 시간의 강연과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행복하고 따뜻한 순간들이었다.

다음 일정은 오후 6시, 충무로에서의 모임이다. 집에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애매했고, 동선은 비효율적이었다. 그냥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책임을 완수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날은 내가 '자문위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그 단체의 1주년 기념행사였다. 평소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기에 이번 행사만큼은 참석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피로감을 달래며 충무로로 향했다.

 

비전을 품은 젊은 청년들로 구성된 단체의 비전은 대학 신입생들이 아름다운 20대를 살도록 돕는 것이었다. 자문위원이란 직함은 내 능력에 비하면 민망하긴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요청을 어느 정도 들어줄 수 있는 적당한 타협선이었다. 거절하는 것과 많은 일을 하는 것 사이의 적절한 타협점인 셈이었다. 민망함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괜찮은 타협이었다.

 

2시간 정도 식사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계획이었는데, 모두들 밤을 새는 분위기란다.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서는 것이 힘든 내게는 만나자마자, 밤을 샌다는 것은 고문과 같은 일이다. 더 있다 가라는 말은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식사 시간 자체가 한 시간이나 늦어졌다. 밤새 진행되는 행사를 의식해서인지, 조금씩 늦게들 도착했고 행사도 조금씩 지체되었다.

 

'식사만 하고 가야지'라는 생각이었고, 그러기엔 2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시계는 8시가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 즈음 식사 준비가 완료되었다. 나는 8시에는 일어난다는 최초의 계획대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준비가 거의 끝난 식사는 퍽 먹음직스러웠지만, 더 늦어지면 내일 일정에 지장이 될 것 같았다. 내일 오전의 강연을 위해서 집에 가서 쉬어야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다. 피곤했지만, 습관적으로 책을 펼쳤다. 유진 피터슨의 책을 읽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했고 강연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했다. 노트북과 6권의 책이 든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로 선릉역에 서서 떠오른 생각을 메모했다. 내 삶에 적용하여 실천할 교훈 하나를 얻으니 불끈 힘이 솟았다. 

오늘은 매서운 꽃샘추위가 불어닥친 날이다. 한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는데도 테헤란로의 밤거리는 차가웠다. 르네상스호텔 사거리와 선릉역 사이의 테헤란로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밤거리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일렬로 늘어선 고층 빌딩, 밤하늘에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사무실 불빛, 가지런히 움직이는 자동차의 불빛들. 모두 아름답게 보였다.

 

밤하늘의 어둠이 세상의 불의와 삶의 힘겨움을 모두 삼겨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의 눈이 낭만적 시선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테헤란로의 풍광을 음미한 것은 찰나였지만, 느낌은 진했다. 다시 못올 여행지를 떠나며 그곳의 사람과 풍광에 보내는 시선처럼. 평온하고 충만한 느낌도 들었다. 하루의 피로를 날려버릴 만큼.

 

필름을 되감듯 나의 하루가 스쳐 지나간다. 아침부터, 4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강연을 진행했다. 기독 출판인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고, 나는 하나님이 내 영혼에 하신 일을 나눴다. 마음 좋아 보이는 전도사님의 차를 타고 서울로 오는 동안 편안함을 느꼈다.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글 하나를 썼고, 몇 명의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내게 전화하신 한 분은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부탁을 하셨다. 그런 부탁을 하는 걸 보니, 그 분과 친해진 것 같아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 모임에 한 번 와 달라고 세번째로 연락한 리더의 열정에 감동했고, 나를 필요로 하는 모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돌아오는 길에서 누리는 짧은 독서 시간은 내게 기쁨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친구의 방문을 위해 정리정돈을 하고 잤다. 잘 잤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삶이다. 신이 허락한 재능으로 살고 먹으며, 다른 이들에게 나누는 것. 누군가와 대화하고 격려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활동을 하며 내 영혼에게 기쁨을 주는 것. 이 모든 일을 통해 신을 기쁘게 하고 나 역시 기쁨 넘치는 삶을 사는 것. 일상적인 하루 속에도 행복이 깃들어져 있다. 그것을 느낀 하루였다.

 

사이판에서 리노 photo by justin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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