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빵과 커피 이야기

카잔 2009. 3. 18. 06:54



오늘 아침엔 빵과 커피를 먹었다. 예전 같으면 정말 부적합한 조화라 생각했을 테지만,
요즘 종종 빵과 함께 '우유'가 아니라 커피를 마신다. 놀라운 변화다.
이전에도 빵 우유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워 다시 쓴다.

'빵과 우유'는 오랫동안 내게 아주 최상의 조합으로 이뤄진 군것질 거리였다.
군대에서도 '빵 우유'는 병사들의 주요한 간식으로 마치 관용어처럼 쓰인다. 
군대에서 '빵 우유'는 그렇게 하나의 세트였고, 하나의 상품이었다.

(사실, 또 다른 막강한 간식 '냉동'이 있긴 하다. 허나, 난 '빵 우유'를 더 좋아했다.
빵 우유는 주머니 가난할 때, 냉동은 조금 두둑할 때 먹을 수 있다. 일종의 위화감 조성 식품인 셈이다.^^
'냉동'은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만두, 떡삼겹 등의 이름은 가진 냉동된 음식을 일컫는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빵을 좋아했고, 빵과 함께 마시는 우유를 좋아했다.
이른 아침, 카페에 가고 싶을 때에도 나는 파리바게뜨에서 소보루 빵을 사서 던킨도너츠로 향한다.
던킨에만 우유를 팔기 때문이다. 그렇게 빵과 우유를 마신다.

사실, 우우를 주문하면 폼이 좀 안 나긴 한다.
게다가 가방에 챙겨 온 소보루 빵이라니. ^^ 하하하. 지금 생각하니 웃기지만,
사실 내겐 빵과 우유가 너무 당연한 조합이라 이제서야 내가 웃긴 짓을 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이렇게 살아 왔던 내가,
커피숍에서 주문할 때에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우유를 주문하던 내가
빵에다가 '우유' 대신에 '커피'를 마시고 있다니~! 냉장고에 우유가 버젓이 있음에도 말이다.

이게 뭐가 그리 놀랍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으리라.
내게는 빵을 해장국에 찍어 먹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빵 우유 대신 빵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고정관념이 깨진 사건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

우리 할머니는 땅콩버터를 빵에 발라 드시는 게 아니라, 밥에 발라 드신다.
"할머니, 그걸 왜 밥에 발라 드세요?"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그렇게 여쭈었다. (왕십리에 살 때다.)
"하하하. 이거 보기엔 이상해도 억시 맛있다. 너도 먹어 봐라."

헉... 저걸 먹어 보라시다니.
호기심 반, 효도 반의 심정으로 땅콩버터를 한 숟갈 떠서 밥공기의 한 쪽 구석에 넣었다. 그리고 비볐다.
'오잉? 맛있네.' 나는 두 어 숟갈을 더 떠서 밥공기의 가운데에 떠 넣었다. 비벼서 맛나게 먹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 일행의 여행을 돕는 사람은 가이드와 운전사, 이렇게 두 명이었다.
'롸핏'이라는 이름의 운전사는 늘 얼굴 크기만한 납작하고 동그란 빵을 들고 다녔다.
그게 그의 간식이었고, 식사 때에는 그걸 함께 먹었다.

한번은 고려족 가정에게 초대를 받은 우리 일행이 밥을 먹었는데,
그날의 메뉴는 시뻘건 국물이 차믕로 시원하게 보였던 보신탕이었다.
롸핏은 식사를 하다가 자신의 빵을 보신탕 국물에 찍어 먹었다.

흰색 빵의 살결이 시뻘건 보신탕 국물이 적셔진 모습을 보고 우리 일행은 놀랐다.
나 역시 저렇게 먹을 수도 있구나, 하는 작은 충격이었고, 따라 먹어 보았다. 괜찮았다.
그 이후로, 종종 나는 음식 간의 이종 기절초풍 조합을 시도하곤 했다.

가장 최근, 아니 요즘 시도하고 있는 조합은 '빵과 커피'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이 조합을 늘 즐겨 왔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단 한 번도 빵과 커피의 조화로움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는 경악스럽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가?
나는 얼마나 많은 것에 대하여 고정관념을 갖고 살아가는가?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에 내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빵과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브라질에서 호텔 식당에서 와우팀원이 빵과 커피를 먹길래... (나의 고정관념으로) 이렇게 물었다.
"우유 있던데, 우유 가져다 드릴까요?"

"아뇨. 저는 빵은 커피랑 마셔요. 우유랑 먹으면 느끼하더라구요."
으악! 30년 넘게 최상의 조합이라 생각해 온 빵과 우유에 대하여 느끼하다니!
빵과 우유에 대한 모욕이었고, 나의 생각에 대한 한 바가지의 찬물이었다. ^^

다음 날 아침 깨달았다. 모욕이 아니라, 또 하나의 견해이고 아주 신선한 찬물이었음을.
빵과 커피를 먹어 보았는데, 아... 맛이 아주 좋았다. ^^ 특히 기름기가 있는 빵과 커피는 제격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이렇게 빵과 커피를 더 즐기게 되었다. 커피만 마시고 산다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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