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사랑에 관한 개똥철학

카잔 2009. 4. 26. 17:08

결혼

결혼은 제도 그 이상이다.
서로 다른 두 인격체가 만나는 것이다.
사회 공동체의 주체로서 독립된 두 개인의 만남이다.
지적, 정신적, 의지적 특성을 가진 두 개인의 연합이다.

결혼을 통해 사랑을 키워갈 수 있다면
결혼 자체가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지는 장이 된다.
반면, 결혼을 통해 사랑을 키워가지 못하면
서로를 구속하며 편협한 삶의 틀로 들어가게 된다.

배우자는 독립된 개인간의 만남이다.
대중가요에서 듣는 '나의 반쪽'이란 표현은
결혼이 0.5 + 0.5 = 1 이라는 수식인 듯하지만
행복한 결혼은 1 + 1 = 1 이라는 묘한 수식에 더 가깝다.

이것은 홀로 살아가기 힘들어서 결혼하는 것이 아님을 뜻한다.
서로가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개인들이지만,
더욱 잘 살아가기 위해서 상대방과 함께 살 것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독립적이지 못한 개인은 배우자의 성장을 도울 수 없다.

결혼은 최고의 밀착 관계를 경험하게 한다.
위협과 도전이 동시에 있다는 말이다.
위협은 서로를 구속하여 배우자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고,
도전은 서로의 필요를 알아 배우자가 최고의 자신이 되도록 한껏 도와주는 것이다.

지난 주에 들었던 이야기다. 미영(가명)이라는 친구가 지난 해에 결혼을 했단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과 수개월의 교제 후에 한 결혼이다.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 결혼식을 며칠 앞둔 날에 이렇게 물었단다.
"너 그 사람 사랑하니?" 미영에게서 듣게 된 핀잔. "너 아직도 (결혼에) 사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얘기를 나누던 사람이 미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 말을 미영에게서 직접 들었다면, 나는 버럭 큰소리를 냈을까?
아니다. 아마도 조근조근하게 나의 편견을 설득하려 했겠지...

나의 편견은 이렇다.
"사랑이 결혼에서 제일 중요하지.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결혼이야말로 현실이기에 사랑이 필요하지.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결혼 생활에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사랑 말고 또 뭐가 있니?"

편견을 설파하는 나의 이야기는 길어질 것이다.
미영이는 내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현장감 없는 이야기라 여길 것이기에...
나도 아직 사랑을 몰라 명확하게 핵심을 건드리지는 못할 것이기에...
나의 이야기는 미영을 결국 설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는 미영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며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그래도! 사.랑.이. 제.일. 중.요.해."

사랑!?
- 보보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다!


지나친 이상주의가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보는 이가 있을 게다.
(물론, 나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
사랑에서만큼은 나는 이상적인 순진빵이 아니라고 두 팔 저어 부정하고 싶다. 
행복한 결혼 생활이 쉽지 않기에 오직 사랑만이 두 사람의 행복을 보장한다고 말하고 싶은 게다.

결혼이든 사랑이든 고통을 동반한다.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결혼식에서 하는 사랑의 서약은 어떤 소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체를 주기로 결정한 서약이다.

몇 가지가 아니라, 아주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을 다 요구한다.
한 번도 다 주어 본 적이 없다가 사랑을 통해 처음 경험하는
이 과정에서 깨어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인생이 힘겨운 싸움이라는 스캇 펙의 통찰력 넘치는 말을 사실이다.
(기쁜 소식은 이것을 받아들이면 삶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 힘겨운 인생이라는 싸움에서 우리의 급소는 다름 아닌 '사랑'이다.
결혼 생활에서 이 급소는 가장 잘 드러나게 된다.

많은 이들이 급소를 찔러 비틀거리며 결혼 생활을 포기한다.
혹은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 안에서의 생활을 유지하며 '사랑'을 포기한다.
이들을 이해한다. 가장 약한 급소에 의한 아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픔은 사랑하기에 성공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는 이들과 실패한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급소를 찔려 견딜 수 없을 만큼 가혹한 아픔을 겪었다는 사실이다. 
차이점은 이것이다. 행복한 결혼 생활에 실패한 이들은 사랑을 포기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은 자아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나는 상처 없이, 아픔 없이 사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상처와 아픔을 겪더라도 끝까지 사랑에 매달리고 겪어내면서 놓치 않을 것이다.
사랑의 붕괴보다는 자아의 붕괴를 선택하리라.
둘 다 아픔을 동반한다. 사랑은 헌신이다. 그러나 기꺼이 선택하는 헌신이다.

젊은이들은 '붕괴'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단어가 과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다. 사랑의 붕괴 or 자아의 붕괴. 다른 선택은 없다.
상대방을 조정하고 개선하려는 순간 사랑이 붕괴된다. 이것은 아픔이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여인들이 변하지 않는 자기 연인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말 노력하는데, 도무지 남자 친구는 내 마음에 안 드는 점을 고치려고 않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결국 자아의 붕괴를 동반한다. 이것도 아픔이다.

그래도 제일은 사랑이다!

사랑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으면 어떤가?
만약,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다.
사랑이 성장하고, 빛나고, 참되고, 자기답게 되려면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이것이 주는 유익보다 달콤한 것도 없다.

불행한 결혼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라는 말도 사실이지만,
행복한 결혼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도 사실이라 믿는다.
결국 나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최선을 노력을 더해갈 것이고,
사랑의 붕괴보다는 자아의 붕괴를 선택할 것이다.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사랑 없이 행복한 결혼 생활이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한 개인에게 위대한 성장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인류가 남겨 준 고전 문헌이 사랑을 주제로 선택한 까닭이
재미가 있어서, 그냥, 다루기 쉬워서 등의 이유라고 생각할 순 없다. 

사랑이야말로 위대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라도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사람에게 잠재된 능력을 최고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질문에 톨스토이의 대답은 사랑이었다.
나는 그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 그 삶이 힘겨울지라도 사랑으로 살리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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