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지나치게 신중한 사람들에게

카잔 2010. 12. 2. 07:45


광열 : 고니야, 너 근데 왜 나랑 같이 다니냐?
고니 : 고향이 남원이라며?


고니 역 : 조승우
고광열 역 : 유해진


아귀에게 손등을 찍힌 고광열이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응급실로 들어가기 직전 고니의 손을 잡고 묻는다.
자신에게 끝까지 우정과 의리를 보여 준 고니에게 고마움과 함께 궁금함이 들었나 보다.

"고니야, 너 근데 왜 나랑 같이 다녔냐?"

같은 고향이라는 이유로 둘은 함께 다녔다. '같은 고향'이 이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우정은 어떤 하나의 동질성을 느끼는 것만으로 쌓이는 것은 아니니까. 
250만 대구 시민이 모두 나의 친구는 아닌 것처럼. 

나는 "무엇이 우정을 만드는가?" 라는 류의 질문에 회의한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답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당신께 생각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위의 질문을 하되, "내가 좀 더 좋은 친구가 되려면 어떡해야 하나?"라는 질문을 함께 고민할 때 
'사색의 영역'이 아닌, '실제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친한 친구들이 있다.
어느 날, 그 녀석들이 내게 묻는다면 나는 뭐라 답할까?
"희석아, 너 근데 왜 나랑 같이 다니냐?"

뭐라 할 말이 없다. 그저 멍해진다.
나에게도 친한 친구들이 있지만, 그 녀석이 왜 나의 친구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바쁘니까 있다가 전화하겠다는 녀석을 붙잡고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자."
"그래 말해봐라." 
"고등학교 때부터 우리 왜 같이 다녔냐?"
(헛소리 하고 있다는 0.1초의 침묵 후) "있다가 전화할께." 뚝. 전화는 끊어졌다.

통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10분 후에 전화가 올 테지만 그 전에 글을 맺으련다.
인생을 이해해가는 과정이 삶의 맛이지만, 때론 이해 없이 인생을 누리는 배짱도 필요하다.
우정이 생겨난 원인을 알지 못해도, 친구와의 우정이 변함없이 지속되듯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이해하지 못해도, 우리의 삶은 여전히 지속된다. 문제없이.

때로는 심각하게 매달렸던 문제가 별 것이 아님을 깨닫기도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리처드 칼슨 박사의 책 제목처럼 "우리는 사소한 것에 (종종 혹은 자주) 묵숨을 건다."
그러니 심각하지 말자. 순간마다 해석하려 들지 말고, 순간을 변혁시키기 위해 행.동.하.자.
생각에 행동이 더해질 때, 생각의 힘을 더욱 제대로 깨닫게 될 것이다.

우정이 시작된 원인이라 생각했던 것을 밝혀 낸다고 하여 우정이 깊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정의 시작이라고 믿었던 사실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우정이 깨어지는 것도 아니다.
깊어진다면, 원인 발견 덕분이 아니라, 원인에 대해 서로 유쾌하게 대화한 덕분일 터이고,
깨어진다면, 진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간 쌓은 우정이 두텁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광열 : 고니야, 너 근데 왜 나랑 같이 다니냐?
고니 : 고향이 남원이라며?
광열 : (응급실로 실려들어가며) 나 남원 아니야. 부산이야.

헉!

※ [주의] 이 글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신중하다는 말을 듣는 이들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일단 한 번 해 보지 뭐"라는 태도를 지닌 행동주의자 분들은 적용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

                                                                                                        - 2010. 2. 13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전문가/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