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위대한 단어, 소명

카잔 2010. 2. 25. 16:19


성실한 창수 : 형,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제 소명이 아닌 것 같아요.
믿음의 형제 : 창수야, 네가 있는 지금 그 곳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을 섬기듯 일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전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 네가 잘 할 수 있어. 
                   그럼, 주님께서도 기뻐하시고 거기서 소명을 발견할지도 몰라. 

믿음의 형제에게 창수 대신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럼 당신이 하시죠. 그 일을."

(이런 과격함은 가끔 명료함을 준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정의이지 예의가 아니니까.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언어 폭력이고.)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상황을 넘어서는 믿음을 주셨다.
믿음으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성경에 의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믿음으로 우리는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우리의 반응을 바꾸어 낸다.
믿음의 형제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옳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함께 주신 것은 고유함이다.
각기 다른 재능과 기질을 주셨다. 각기 다른 삶을 살도록 계획하셨다.
재능으로 우리는 삶의 재미를 만끽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다.
성실한 창수는 자기 재능과 직업이 맞지 않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니 그도 옳다. 부분적으로.

저들이 저런 이야기를 한 까닭은 마음 속 품은 생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창수는 이직을 원하고, 형제는 머물기를 바랬다.
둘 다 옳다고 결론 내리면, 둘다 틀렸다는 결론과 마찬가지다.

자기경영의 지혜는 모순된 것들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에 통합시키는 법을 배울 때 얻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인생을 이해하는 데에도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저들은 각기 다른 개념으로 소명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부르심(소명)이다.
1차 소명이라 부를 수 있는 이것은 형제의 입장이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부름 받은 것인가보다는
하나님께 의해 부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직업적 소명이라 해도 좋을 2차 소명은
어디로, 혹은 무엇을 위해 부름받았냐는 질문을 다룬다.
자신의 재능과 기질에 맞는 직업으로의 부르심이다.
성실한 창수는 자기 일이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 사이의 구별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먼저는 두 소명을 함께 붙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둘이 올바른 순서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다.
소명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첫째 것이 첫째 자리를 지키도록,
즉 일차적인 소명이 항상 이차적인 소명 앞에 오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일차적인 소명이 이차적인 소명으로 연결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차적인 사명을 받지 못했다고 하여 아무 것도 행하지 않은 소극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소명이란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일차적인) 부르심에 반응함으로써 자신의 (이차적인) 부르심을 성취하는 것이다.”

일차적 소명에 몰입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차적 소명이 발견된다는 것은
오늘의 의미를 일깨우는 동시에, 미래를 꿈꾸게 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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