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쓰레기는 쓰레기다.

카잔 2007. 10. 6. 01:52
와우팀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독서토론대회 예선을 통과했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오늘은 본선 토론에 관한 설명회가 있는 날이다.
설명회 전에는 개인적인 약속이 있었고,
설명회 후에는 회사 동료들과의 저녁 회식이 있었다.
숙명여대까지 가야 하지만, 나는 당연히 간다는 생각으로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숙명여대로 갔다.
그들과 함께 설명을 들었고, 함께 식사를 하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얘기했다.
우리는 실제로 만났기에 마음과 우정을 나누었다.
만남은 전화 통화보다 강력하고 이메일보다 진하다.

서울 시내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을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가는데 한 시간, 만나는데 한 시간, 다시 오는 데 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만날 일이 있으면 만나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만나야 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의 영역까지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시간 관리는 업무를 위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시간 투자를 해야 한다.
시간이 곧 사랑이다. 사람에게 아낌없이 시간을 줘야 한다.
홀로 있을 때에는 철저할지라도, 함께 있을 때에는 느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쫓기지 않은 채 나와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나는 효율적인 시간관리 세미나를 진행하는 강사다.
내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요즘 일이 없으신가 봐요. 무척 느긋해 보이세요."라는 것이다.
나의 느긋함이 그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제일로 부끄러울 때에는 "바빠 보이세요."라는 말이다.
바빠 보이는 이들에게 쉽게 부탁하기는 쉽지 않다. 미안하기 때문이다.
나는 바쁘지 않다, 라고 말하며 폰과 마음을 열어 둘 때에는 일이 주지 못하는 행복감이 든다.

'자기 경영' 한답시고,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이야기들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을 나누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을 주는 인간들의 관리를 한다.
자기 경영 담론이 효율성과 경쟁력 등의 얘기들로만 이뤄질 때 세상은 점점 삭막해져 갈 것이다.
존경받는 자기경영자는 세상에 따뜻함과 희망을 심으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살려면 세상이 더욱 살기 좋아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산다고 하여 반드시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리라.
지금으로서는 알지 못할지라도 더욱 소중한 것이 있다. 더 큰 의미가 있고, 더 따뜻한 세상이 있다.
반드시 세상은 더욱 아름다울 여지가 남아 있다.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눈물이 난다.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어져 가는 것 같아서.
나는 잘 살고 있다. 일도 재밌고 조금씩 역량을 쌓아가고 있는 것도 뿌듯하다.
하지만,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도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선릉역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할머니가 계단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펼쳐놓은 수건 위에는 동전 몇 개가 널려 있었다.
이런 분들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잠들려고 누웠다. 야구 소식을 듣고자 TV를 켰다.
채널을 돌리다가 <해바라기>라는 영화를 잠깐 봤다.
이렇게 하여 영화를 보는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도 영화에 끌렸다.
나쁜 사람들이 나온다. 정의를 모르고 편법을 일삼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이 오태식의 누이와 어머니를 헤친다. 마음이 아팠다.
문득, 악이 도덕적 미성숙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무지에서 올 수도 있음을 느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이 세상을 떠받드는 체제는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세상에 맞서리라.

해바라기 엄마는 아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 했다.
정약용 선생님은 나의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헤아려 다른 이의 가족의 소중함까지 지켜내려 했다.
가족을 중요시하지 않는 자기 경영은 진리도, 지혜도 아니다.
부모님 어깨 주물러드릴 시간을 아까워하는 시간관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술이다.
<해바라기>에 등장하는 나쁜 사장님은 오태식 더러 "쓰레기는 쓰레기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어, 쓰레기도 재활용 기술을 거쳐 새로운 상품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스스로를 정화하고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을까?
쓰레기 같은 사상을 정화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상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까?
이제 자기 경영은 사회의 필요들과 비전들을 품어야 한다.
기업이 이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개인은 성공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공헌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누구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의 가족을 섬김으로써. 한 사람에게 사랑을 전함으로써.
한 번에 한 사람씩만 하면 된다. 이천 년전 예수님이 행하셨던 고전적인 방식을 신뢰하라.
그 분은 한 사람씩 만나셨다. 짧은 생애였지만 조급하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듣고 나누었다.
이 소박한 방식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회복해야 할 방식이다.

인터넷은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의 형태를 가능케 했다.
우리는 일대 삼십의 만남까지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만남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전과는 다른 프랜드십으로 관계 맺으려는 새로운 생각과 마음이 필요하다.
사랑이 지속되지 위해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 교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더 깊은 파트너십으로 이전보다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이들의 행복을 희생시켜서는 안 되리라.
조금만 더 생각을 하다 보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이것을 고민해야 나의 영혼도 성장할 것이고, 세상도 어제보다는 살 맛나는 곳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