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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에 중간 중간 눈물이 흐른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 봉은사 분향소에 갔다.
헌화를 하자마자 눈물이 주루룩 주루룩 흐른다.

*

마지막 인사

대통령님.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웃고 싶었는데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방명록에 쓰는) 이 글이 무슨 소용인지요.
당신께서는 이미 이 땅을 떠나셨는데...

(살아계실 때, 당신께서 원칙과 신념을 향해 힘차게 걸으실 때
사나이로서 핏대올린 한 마디의 말로도 대통령님을 돕지 못했는데....
그런 스스로가 원망스러워 잠시 글을 멈추게 됩니다. 
허나, 바로 그게 너무 한스러워 이렇게 속풀이라도 합니다. 애꿎은 방명록에.)

상록수처럼 늘 푸르른 영혼으로
언제까지나 희망의 상징으로 살아 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녹화된 자료가 아니라 실시간 모습의 대통령님 웃음을 지금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대중들도 역사의 긴 흐름으로 보면 옳은 길을 선택할 것임을 아시지 않으셨습니까!

나의 원망입니다. 당신의 고통과 무기력감,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 채 던지는 청년의 원망입니다.
허나, 당신께서 남기신 유서를 생각하지 않아도 그 원망은 이내 슬픔과 아픔으로 바뀌어집니다.
당선될 것이라 믿었던 4.13 총선에서 낙선한 후, 당신이 홈페이지에 쓰신 말을 뒤늦게야 보았습니다.
"아픔 잊는 데는 시간이 약이겠지요. 또 털고 일어나야지요.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겠지요."

시간의 치료를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큰 고통과 슬픔, 아픔과 괴로움이셨겠지요.
상식과 원칙으로 일궈낸 대통령님의 한 평생에 찾아든 좌절감과 절망이 얼마나 크셨는지요.
대통령님께 비할 바 못 되지만 저 역시 진솔하게 살려고, 멀리 보며 옳은 길을 걸으며 노력했습니다. 
제 노력이 방향을 잃어 헤맬 때마다 당신께서 먼저 걸으신 길과 하신 말씀은 좋은 푯대가 되었지요.

당신께서는 가셨지만 여전히 제게는 옳은 삶의 푯대로, 원칙은 승리한다는 희망으로 남아 계십니다. 
이제 이 땅에서 대통령님보다 더 아름다운 후배들이 원칙과 승리를 동시에 이루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의 마지막은 비극이 아닙니다.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만들어 갈 테니까요.
이것이 대통령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대통령님께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원칙과 신념을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결단이라 믿기도 하지만,
가족의 가장으로서, 일단의 리더로서 그들의 불행한 모습을 보는 게 힘겨웠던 점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대통령님께서 죽음을 선택하신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헤아리고 싶습니다.
대통령님의 모습을 영웅화하지도, 폄하하지도 않으려 노력할 것입니다.

지식인이라면 자신을 둘러싼 평가 중에 거품이 있다면 걷어내는 데에 뜻을 둘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시간이 지나 슬픔은 걷어지고 나면, 대통령님을 정확히 평가하는 시선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대통령님은 지식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감정적인 동요가 아닌 이성에 따른 확신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서는 참 훌륭하신 정치인이셨고, 참 따뜻한 대통령님이셨다는 점입니다.

저는 대통령님께서 어느 여학생들과 찍으신 사진을 좋아합니다. 
사진 속에 나오신 대통령님의 구부려진 다리에는 권위주의는 없었고, 그저 따뜻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TV에서는 당신께서 활약하신 장면들뿐만 아니라 생전 보여 주신 소탈한 모습들을 연일 보게 됩니다.
그렇게 당신께서는 많은 국민들의 마음 속에 '인간 노무현'으로도 남아 계신답니다.

이런 애도의 물결을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당신께서도 아시지요?
오늘(29일) 당신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봉은사로 오는 길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통령님처럼 나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에 대하여 묵묵히 걸어가자.'
그 때, 생각난 사람들이 극우 보수주의자 분들이었죠. 변희재, 조갑제, 지만원 분.
그 분들도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에 대하여 목숨 건 분들이구나, 라고 생각하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그 신념이 나와는 너무나 다르니 같은 길을 걸을 순 없겠지요. 반대편에 서게 되겠지요.
나의 신념도 얼마든지 그를 수 있으니 늘 다른 이들의 얘기를 열린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더 좋은 신념을 만나면 그 신념으로 갈아타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 1981년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삶의 행로를 바꾸신 것처럼 말입니다.

폭군이 죽으면 그의 통치는 끝나지만 대통령님의 죽음은 통치의 시작이라 믿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의 대통령님으로서 지역간 화합, 민주주의, 도덕성을 추구하셨습니다. 
우리가 추구할 것들을 삶으로 보여 주셨고, 그것은 여전히 추구해야할 가치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은 가시지만, 우리 모두가 오래 오래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대통령님의 생각과 삶을.

저 역시 오래 오래 이 날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통령님과 대통령님이 보여 주신 아름답고, 정직한 마음을 기억하겠습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사실이 삶에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지 고민하며 살겠습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때마다 나의 좁은 편견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겠습니다.

화합, 민주주의, 도덕, 원칙, 탈권위를 가슴에 새기며
대통령님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올려 드립니다.
어느 좋은 날에 봉하마을에서 다시 인사 올릴 때까지 평안히 쉬고 계소서.
제가 하느님 나라로 갈 때, 다시 뵐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2009. 5. 29
이희석 올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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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진로설계와 자기이해>라는 수업을 들으시는 전남대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열정적으로 경청해 주었기에, 저도 진솔하고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짧은 시간을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핬으면 하는 바람이 들만큼, 여러분들은 잘 들어 주셨습니다.

혹 이 곳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있을지 몰라 추천도서 몇 권을 소개합니다.
20대, 그대들이 가진 젊음을 더욱 열정적으로 누릴 수 있기를,
훗날 그대들의 열정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권을 권합니다.
(대학 1, 2학년 생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보다 자유롭고 폭넓은 독서를 권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실용분야 추천도서
랜디 포시 『마지막 강의』
지그 지글라 『정상에서 만납시다』
하이럼 스미스 『10가지 자연법칙』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인생수업』
레오 바스카글리아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인문 교양서 중에 추천하는 책들
안광복 『처음 읽는 서양철학사』
스캇 펙 『아직도 가야할 길』

사회과학 추천서들
하워드 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약속한 10권입니다.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나누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
아래에 메일 주소를 참고하여 소식 주고 받으며 지내요.


[PS] 인사를 나누었던 그대들을 기억합니다. 꿈을 이루어가길 응원합니다.
세 명의 미술학과 학생들과 제영, 재윤, 붉은 티셔츠 청년... 그리고 7명의 친구들. ^^
마음에는 더 많은 이들을 담았는데 머리로는 위 학생들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글 : 현운 이희석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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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몸도
마음도
무거운 날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무기력이 날 감싼다

살아오며
아픔을 주었던 이들
그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다행히도
신뢰해 준 소수의 사람들
그들에게 부끄러운 내 삶이다

숨는 것은 쉬운 일이다
부끄러운 낯짝을 들고
사는 것은 조금 더 힘든 일이다

가장 힘든 일은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삶이 되도록
훌륭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나를 몰고 가는 것이다

쉬는 일을 택하려는 연약함
옳은 길을 생각하는 안간힘
그래서 눈물 나는 날이다


글 : 현운 이희석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나는 슬픕니다. 눈물이 납니다.

온 몸을 바쳐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따라

살아 온 훌륭한 정치인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믿을 만한 분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이 늘 옳은 행동만을 하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그러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어떤 한 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에 따라 살 때면

"바로 이 길입니다. 여러분 이 길을 함께 갑시다"라고 말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스스로의 신념을 놓치었을 때에는

"제 불찰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잘못했으니 제가 다시 제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혹, 제가 영원히 길을 되찾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저를 잊어버리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믿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따라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92년에는 민주당을 적으로 두어 부산에 출마하는 것을 시작하여 

네 차례에 걸쳐 지역 감정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이 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따랐습니다.

본인도 힘겨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2000년 16대 총선 부산 지역 유세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번 어려운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에 자신의 정치 인생을 던진 이후, 줄곧 한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토론이나 논쟁을 하다 보면,

서로 다른 생각에 무조건 격앙된 감정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르다는 그 이유 덕분에 토론과 논쟁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얼마든지 즐겁게 논쟁할 수 있지만,

내적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면 전혀 즐거운 논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일관된 말과 행동이 없으면 함께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거나, 진솔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의 신념을 따라 일관된 삶을 살아가는 분을 찾았던 것입니다.

 

2000년 4월 13일, 총선 개표가 진행되고 있던 그 날 밤에

노무현 前 대통령은 링컨의 두번째 취임연설문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감동으로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소감문을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투표 하루 전 날만 해도 선거를 승부로 생각했고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개표하는 날 저녁,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링컨의 연설문을 읽는 동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한 취임사에서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남
부를 적으로 몰아 세우지도 않았고, 정의니 불의니 하는 말이나, 선이니 악이니 하는 말로 남과 북을 갈라 치지도 않았습니다.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성경으로 같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제각기 상대방을 응징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느 쪽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참으로 미국의 역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부산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
감히 말씀드리면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부산으로 갔습니다.
지난날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집단 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겨서 벌린 일 치고 그 집단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뒷날 역사가 오늘날 우리 나라의 상황을 그런 역사의 하나로 쓰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런 역사 속에서 겪어야 할 우리 민족의 불행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이 노 前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누구라도 감동적인 글을 읽은 후에는 일시적인 훌륭함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 前 대통령의 소감문은 링컨의 글에 취한 일시적인 감상과 다짐이 아니라

그의 오랜 신념이 더욱 뜨거워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는 그의 소신은 이미 10여 년에 가까운 길을 걸어왔고,

이후로도 원칙과 소신을 향한 일관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 前 대통령은 검찰 소환조사를 받게 된

3번째로 역대 대통령이 되던 날, 봉하마을을 떠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가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믿는 것 한 가지는

"면목 없습니다"라는 말은 죄를 지은 자가 스스로 뉘우칠 때 하는 말이거나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으로 자신만을 탓하는 말이라는 점입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검찰에 소환되며 "면목 없습니다"라고 거듭 말하였지요.

나는 이 말 속에 담긴 그 분의 뜻이 의롭다고 믿습니다.

 

노 前 대통령은 지난 달, 이런 말로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의 폐쇄를 원했습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 글을 노 前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에야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의 정치적 무관심에 혀를 차게 됩니다.

노 前 대통령이 이 글을 쓰신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 역시도 아름다운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나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일부의 가치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대목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나는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대목이 점점 많아져서, 혹은 그런 대목이 모두 드러나서

여러분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게 된다면, 저 역시도 노 前 대통령과 비슷한 말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언제나 이 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제가 아닌 다른 선생을 쫓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기쁜 삶을 살지 못할 때에는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신실한 믿음을 누리지 못할 때에는 '신앙'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성장하지 않고 있을 때에는 '자기 계발'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언제라도 제가 선생 답지 못한 삶을 산다면 저를 버리시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가르침에 대한 소극적인 마음이 아니라, 온전한 삶에 대한 저의 적극적인 소원입니다.

다만,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부분적 영역에서의 선생 노릇까지 져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를 버리시라는 노 前 대통령의 말을 '고해성사'로 보고

그를 죄인으로 몰고 가며 몰락의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은 반쪽짜리(혹은 그 이하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노 前 대통령은 자신이 믿었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 인생 전부를 던졌던 분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스스로를 성찰하기 마련입니다.

법에 어긋나지 않은 정도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고결한 가치를 지키지 못한 것이라면 스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높은 기준으로 스스로를 나무라기 때문입니다.

나는 노 前 대통령의 '나를 버리셔야 한다'라는 말을

'고해성사 + (혹독한) 자기 비판' 의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가 모든 키워드라고 주장하기에는 내가 아는 것이 너무나 짧습니다.

두 키워드의 적합한 비율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내가 믿는 신념에 따라 기술한 것에 불과합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믿을 만한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따라 살려고 애쓴 소신 있는 정치인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노력한 그의 일관된 삶이 믿음직합니다.

거기에다 자신의 과오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면목없다는 말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믿음을 스스로 내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퇴임 후 자연으로 돌아가 살겠다던 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이제 정말 자연 속으로 돌아가게 되어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신 있는 정치인, 고결한 도덕성을 추구하던 공직자를 한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의 깊은 슬픔에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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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이 서거했다.
11시가 되니, 유서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가족에게 남긴 짤막한 내용이 담겨 있단다.

마음이 아프다.
한 나라의 최고 리더십이었던 분이
본연의 생애를 다하지 못하신 것 같아 애통한 심정이다.
서거 기사에 달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플에는 화가 났다.
나는 이번 박연차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지만,
그저 세상에 대한 섭섭함과 운명하신 분께 대한 비통함이 감돈다.

투신 자살이라는 속보 앞에 먹먹해진다.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사의 슬픈 현실인지,
권력과 욕망 앞에 무너지는 인간사의 보편적인 모습인지,
개혁과 정의를 두려워하는 권력자들의 비열한 어리석음인지,
이것 역시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의 바람만큼은 분명하다.
더 이상은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소식이 많아지기를.

또 하나, 내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해졌다.
시민적 지식인으로서 나의 신념과 생각에 따라
노무현 前 대통령에 대한 생각과 서거에 대한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감상적인 슬픔 만으로는 떠나신 그 분께 예우를 못다한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깊은 슬픔에 잠긴 가족들과 봉하마을 주민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생의 마지막을 힘겹게 보내시다 떠나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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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성장형 인간은 성공이 아니라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계속 성장하려는 삶의 자세를 지녔고 자신의 고유함을 향하여 충실히 전진한다.
『그로잉』은 성장형 인간의 특징과 사람들이 왜 성장하지 못하는지 그 까닭을 풀어 낸 책이다.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성장 리더십'을 제시한다.
경쟁의 늪에서 헤매고 있거나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아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가 설명한 성장형 인간의 3가지 특징을 읽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성장형 인간'을 추구해 왔음을 느꼈다.
이렇듯 삶의 철학은 자신도 모르게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지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로잉』에서 옮긴 '성장형 인간'의 특징을 삶의 푯대로 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첫째, 성장형 인간은 삶의 중심이 자신에게 놓여 있다.
이들의 삶에서는 다른 이들의 평가나 승부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고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아 이를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중시하기에 타인의 삶 역시 중시하며,
자신의 생애 자체로 공동체에 기여한 사람이다.

둘째, 성장형 인간의 삶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고 그 폭이 넓어진다.
삶의 모든 경험에서 계속 배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배우고 성장한 것은 성취의 경험을 통해서만은 아니다.
이들은 실수나 실패에서도 배운다. 이들은 타인의 성공 앞에서도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경험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영감을 얻을 뿐이다.

셋째, 이들은 문제에 부딪히면 문제에 파묻히지 않고 해결에 중심을 둔다.
해결에 중심을 둔다는 말은 문제의 분석에만 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문제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황을 바꾸는 데만 급급한 자세도 아니다.
그것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수용할 줄 아는 복합적 태도를 말한다.
이들은 세상에 자신을 맞추느라 끝없이 자신을 깍아내리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맞는 세상을 만드느라 악착같이 고집을 피우거나
현실을 외면하지도 않는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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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이윤창 대리(가명)는 오늘 오전까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는 늘 마감시각을 얼마남기지 않은 시각에 일을 마무리한다. 미루는 습관 때문이기도 하고,
아직은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자료를 모으느라 보고서 작성을 애시당초 늦게 시작한 까닭도 있다.
그보다는 데드라인이 다가오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시작하지 않는 미루는 습관이 가장 큰 원인이다. 
때로는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직 마감까지 여유가 있는 다른 일에 시간을 할애하기도 한다.
이러한 산만함으로 인해 시간을 소비하다가 데드라인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이 되어서야 일에 착수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가까스로 마감시각에 맞춰 일을 끝내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다.
꼭 참석해야 하는 긴급한 회의가 소집되거나, 건네받아야 할 자료가 도착하지 않거나,
드물긴 하지만 PC가 말을 듣지 않은 경우도 있다.
오늘은 드문 경우가 발생했다. PC가 부팅이 되지 않은 것이다. 
1시간이면 완성할 보고서의 마무리 작업을 하지 못해 결국 마감시간을 넘겨 버렸다.



이윤창 대리의 사례는 효과적이지 못한 업무 방식(미루는 습관)과
문제인식의 부재(환경만 탓함)가 섞여 있어서 개선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다. 
도전이 큰 목표를 다루기 쉬운 보다 작은 요소로 나누면 실천하기 쉽듯이
개선하기 어려운 문제는 구체적인 원인들로 나누어보면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한다.


1) 우리가 격는 대부분의 실패는 특수한 이유보다는 습관적인 원인 때문이다.

얼핏 보면, 이 대리가 마감기한을 놓친 까닭은 PC 고장처럼 보이지만,
진짜 원인은 그의 미루는 습관과 산만한 업무 습관 때문이다. 
일을 미리 처리하는 사람들에게도 PC 고장, 긴급한 위기 상황 발생 등의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들이 잘 대처할 수 있는 이유는 데드라인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PC 고장이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양한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데드라인을 놓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진짜 원인에 직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약이 불가능하다. 자신의 비생산적인 습관이 원인은 경우가 많다.
이윤창 대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 미루는 습관과 산만한 업무태도는 성과와는 거리가 멀다.

산만하게 일하는 성향과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마감기한을 잘 지켜낸다.
마감효과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마감시간 직전에는 발등의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다.
혹, 일을 늦지 않게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업무 습관은 효과적이지 않다.

때로 이들은 중요하지 않은 마감기한을 놓쳤음에도 대수롭게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비록 진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지만 "이것저것 다른 일을 했으니 괜찮아"라고 자위하는 것이다. 
이런 직장인들은 프로페셔널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몰입과 끈기다.

일을 미루다 보면 가장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 때에도, 사람들은 일을 미룬 자신의 성향보다는 특수한 상황을 탓한다. 
자신의 업무 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평소에는 여유롭다가도 마감기한에 일이 몰려 분주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 진짜 도전은 '진단'이 아니라 '혁신'이다.

이런 진단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진짜 도전이 '진단'이 아닌'치료'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의 습관을 바꾸겠다는 생각과 노력이 없다면 상황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최근 지인 한 명이 건감검진을 받고서 근육량은 적고 지방은 많아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아직 그는 건강 개선을 위한 노력(운동 등)을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에게 '진단'은 쉬운 것이었지만, 진단에 따른 자기 혁신은 힘든 것이었다. 
그에게도, 이윤창 대리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진짜 도전은 통찰력의 부족이 아니라, '치료'다. 

자기 삶에 나타난 현상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보상이 아주 큰 도전이다. 결국, 일상을 바꾸지 못하면 진단도 무색해진다.
만약 스스로를 혁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경쟁 우위를 갖는 것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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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어른들은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갈 만큼 10대를 학업에 투자하지 못했다. 
20대가 되어서야 공부하기 시작한 나는, 결국 세상이 권하는 순서대로 사는 것을 포기했다.
뒤늦게 그 순서를 따르려 하니 무엇보다 과정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아무리 화려하다 해도 과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결코 그 여정을 걷고 싶지 않다.
나는 과정이 즐거운 길을 택했다. 나의 흥미를 끄는 일들만을 선택했다.
첫번째 직장이 그랬고, 와우팀의 출발도 그랬다. 누가 시킨 것은 없었다.
내 영혼이 꽤 오랫동안 머무는 곳이면, 도전을 했다. 지금은 나의 몸과 마음도 그곳에 있다.

"지속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행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 탈 벤 샤하르, 하버드대 강사



강사가 되는 것은 십 여년 전 나의 마음 속에 들어온 소원이었다.
21살, 나는 지인들을 불러 모아 첫번째 강연을 했다.
3일간에 7시간 30분 동안의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과감히 시도했다. 고맙고 다행스런 일이다.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나의 소원이 나의 재능에 연결된 것인지 결코 알지 못했으리라.
나는 다니던 대학교의 대강당에서의 강연을 도전 해보고 싶었지만 실패할까봐 두려워 포기했다.
시도가 이어지지 못한 것은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실패는 아무 것도 아닌데...

나는 강연을 하는 것도 매우 좋았지만,
소규모의 인원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며 함께 공부하는 것이 더욱 좋았다.
좀 더 행복해지고, 좀 더 성장하도록 서로가 서로를 돕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이런 소원을 시도한 것이 와우팀 1기가 탄생한 배경이었다.
매년 와우팀이 진행되면서,
나는 대규모의 강연보다 와우팀에서의 교제와 학습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을 느꼈다.

"인생은 짧다. 진로를 선택할 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라. 그 중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선택하라. 다시 그 중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들로 선택의 폭을 좀 더 줄여라. 마지막으로 그 중에서 정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서 그 일을 하라."
- 탈 벤 샤하르, 하버드대 강사


20대의 에너지와 내일을 향한 희망이 가득할 때, 종종 유혹이 찾아들었다.
NRC 등의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의 제안이 그런 유혹 중에 하나였다.
나는 좋은 재화나 서비스를 가진 네트워크 회사를 신뢰한다.
허나, 그들이 사업을 권하는 논리가 나의 철학과는 도무지 맞지 않았다.
그들은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달콤한 내일을 약속하며 건넨 말들이다.
"수년만 바짝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주위 사람들이 반대해도 성공하기만 하면 이해해 줄 겁니다."

나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행복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산다. 내일이나 어제를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만 참고 견뎌 내면 내일에는 행복이 주어질 것이라는 말에, 나는 의심한다. 
'오늘도 즐겁고, 내일도 즐거운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고.
나는 내가 꿈꾸는 일들을 하며 바로 오늘 행복하고 싶었다. 이런 소원 덕분에
과정에서의 행복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성취주의적인 유혹에 거절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궁극적인 가치는 돈, 지위, 권력과 같은 외부 수단이 아니라 바로 행복이다."
- 탈 벤 샤하르, 하버드대 강사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일부를 희생하며 얻은 결과는 늘 예상을 빗나갔다. 
나의 예상은 이것이었다. '내일의 나'가 '오늘의 나'에게 고마워하고 감탄하리라는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참느라고 애썼다고 어깨라도 두드려 주리라 생각했지만,
'내일의 나'는 희생하고 참아 온 '오늘의 나'에게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왜 이런 결정을 했냐?'고.

나는 고등학교 3학년, 길게는 12년 교육의 결과로 선택한 대학 학과에 만족하지 못했다.
교육처장실을 오가며, 전과를 하려던 나의 노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전과가 없었다. 국립대학교였던 모교는 서울대가 시행을 해야 따라한다는 말만 들었다.)
'오늘의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오늘의 일부를 꼬박꼬박 희생하지만,
'미래의 나'는 그것을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헌신은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이후부터 나는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들만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때로 행복한 일인지 헷갈리는 경우라면, 나의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것은 피하기로 했다.
직장을 선택한 것도, 와우팀을 계속 진행한 것도, 강의를 하는 것도, 책을 쓰는 것은
모두 내가 수년 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었고, 하는 것 자체가 내게 선물인 일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니 일을 하는 과정 자체가 보상이었다. 
야근을 해도 힘들지 않았고, 일이 조금 넘치게 몰려 와도 스트레스가 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일을 소명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일 자체가 목적이다. 보수도 중요하고 출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일을 하는 이유는 스스로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적인 동기에 따라 움직이고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
- 탈 벤 샤하르, 하버드대 강사


행복을 누리려면, 행복을 찾는 일보다 진정한 자신을 찾는 일이 중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따뜻한 봄햇살을 맞으며 걸을 때에도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가를 바라보면서도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봄햇살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거나, 아가가 행복을 쥐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행복은 누리고 있는 사람은 세상 만사로부터 행복을 발견한다.

행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결단코 외부 세계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행복은 우리 밖에서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내가 행복을 자주 누릴 수 있는 까닭은 내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내 어깨의 짐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비교적 잘 알기 때문이리라.

"행복 찾는 일을 그만 두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라"
- 오리슨 스웨트 마든


 

나는 행복이 무엇인지 잘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누리고 싶었다.
내게 행복은 관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 일상의 문제였다.
내게 '기분좋음'을 선사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 일로 하루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때로 행복보다는 '의미있는 일'을 선택하기는 했지만,(움직이기 귀찮은 날에 봉사 강연을 가는 것)
대부분 의미는 행복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렇게 행복을 누리고 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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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무기력한 날인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진행하지도 못했다.
5월 20일 이후의 바쁜 일정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

점심을 함께 했던 친구 녀석의 작은 힘겨움 때문도 아니고,
오늘은 광주민주화항쟁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도 아니고,
일주일의 첫 날이기 때문도 아니다.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꾸역구역 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하고 싶지 않은 강연이 주말에 떡하니 날 기다리고 있다는,
중요한 일들을 미루다 할 일이 쌓인 압박감 때문이라는,
이유들이 정답에 가까운 듯하다.

                                     - 18:54, 꾸정물처럼 흐린 기분으로.


소중한 하루를 흐린 기분으로 마무리하기 싫었다.
마침, 밥 먹자고 말하기 좋은 옆동네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함께 강남 롯데백화점 인근의 삼겹살 집으로 들어갔다.
맛나게 먹고 집으로 들어오며 읽던 철학책을 꺼냈다.

"이 금욕적 쾌락주의자(에피쿠로스를 말함)는 자신의 철학을
일상에서 실현하리라 결심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아테네 교외에 있는 정원들 사들여 그곳에 숨어 소박하게 살며
두터운 우정을 나누는 철학 공동체를 만든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쾌락주의로 부르지만,
실제 그의 철학은 불필요한 욕망은 고통을 부르기에
욕망과 소비를 억제하라는 금욕주의에 더욱 가깝다.
또한 명분보다는 우리가 실제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출발하여
바람직한 삶의 철학을 세우려 했다. 나는 에피쿠로스의 이런 점들이 좋았다.
무엇보다 소박한 철학 공동체를 통해 자신의 철학을 일상에서 실현하려는
그의 결심과 실천을 보며 자연스레 나의 비전을 떠올렸다.

                                            - 22:24, 기분 좋은 배부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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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응봉산을 오르며 코끝을 찌른 아카시아 향이 떠오른다.
지금의 내 방에도 꽃향기가 가득한데, 향기가 지난 추억을 부른 것이다.
사실적인 시인들보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많은 시인들이 화려한 늦봄을 노래했다. 


새 봄 5
            - 김지하

꽃 한번
바라보고 
또 돌아보고

구름 한번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봄엔 사람들 우주에 가깝다.  


아직 자연의 변화에는 눈이 먼 나로서는 초봄을 노래한 것인지
늦봄을 노래한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그저 작위적으로 해석하며 상상에 잠길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꽃은 자신에게 적합한 시기에 자기만의 빛깔로 피어나듯
모든 사람들도 자신만의 시기에 자기들의 빛깔로 피어날 것이다.
꽃이 피고 지듯, 우리도 나타났다가 사라질 것이다. 덧없지 않다.
우리들은 떠나지만, 우리들의 이야기는 남을 것이므로.
잘못 살면 뒷담화를 남길 것이고, 잘 살면 아름다움을 남길 것이다.

잘 살고 싶다. 꽃을 잡은 손에 향기가 묻어나듯
나를 알고 지낸 사람들에 내 삶의 향기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나 선물을 받았다. 하늘로부터, 사람들로부터 크고 작은 선물을 받았다.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은 재능과 소명이다. 이것은 곧 내 삶이다.
사람들에게서 받은 선물은 삶을 누리기 위한 모든 것이다.

선물을 받았을 때, 그 선물을 계속 살아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에 따르면,
신화 속의 영웅은 두 가지의 이타적인 행위로 자신의 여정을 끝낸다.
물리적 행위 :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 때로는 목숨까지도.
영적인 행위 : 자신의 비범한 경험을 나눔으로써 공동체에 깊은 유익을 끼치는 행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까지도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재능과 기질에 따라, 더욱 자연스러운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된다.


봄비가 내린다. 꽃잎들이 하나 둘 떨어졌을 것이다.
그 자리에는 잎이 돋을 것이고, 올해가 가기 전 모두들 열매를 맺을 것이다.

창밖으로 봄비가 똑똑 떨어진다. 세상이 촉촉하다.
오랜 훗날, 나의 삶도 피고 지고 난 후 어느 날,
내 삶에도 소박하지만 견실한 열매가 맺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촉촉한 봄 날에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기를...
그 날을 꿈꾸는 것은 生의 열정과 꿈을 소생시킨다.
열정과 꿈을 갖는 데에, 내게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자기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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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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