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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에 해당되는 글 18건


#1. 독서카페 정모

매달 1회 진행되는 독서모임. 어제는 3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모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3차례 정도 주어졌다.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동과 깨달음을 나누었다.
질문이 오고 갔고, 말하는 자는 자기 생각들을 나누었다.
듣는 자는 자기 생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생각이 나에게 오고, 나의 생각이 그에게 갔다. 이것은 소통이었다.
대화와 발표 후, 나는 짧은 강연을 하기도 하고,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모임이 끝나고 모두들 흥분된 표정, 상기된 기분이었다. 나도 즐거웠다. 

1월부터 시작된 독서 모임은 내게 늘 좋은 기분을 안겨다 주었다. 
가장 좋았던 모임은 어제 있었던 7월의 모임이었고, 둘째로 좋았던 모임은 6월의 모임이었다.
그저 좋은 표현을 골라낸 것이 아니라 정말 내 마음이 그랬다.
되돌아보니 흡족했던 1월 모임이 가장 덜 좋았던 모임이었다. 
다음 달에도 이번 달만큼 좋을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나도 드러커처럼 말할 수 있는 영역 하나를 갖게 되었다. 
"여러 번의 독서카페 정모 중에 가장 좋은 모임은 언제입니까?"
"다음 번의 모임이요." 


#2. 어느 와우빙고의 글

6기 와우팀(와우빙고)은 수요일부터 오늘까지 강촌의 어느 펜션에 방 두 개를 빌렸다.
2박 3일 동안 자유롭게 와서 쉬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던 게다.
어느 고마운 팀원의 배려로 인해 우리들은 자기 시간에 맞춰 그 곳을 방문했다.
나도 수요일에서 목요일에 걸쳐 그 곳에서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오고, 2박 3일은 지키는 그곳에 계속 머무르고, 또 다른 팀원은 그곳으로 갔다. 
어제 저녁 몇 시간을 그곳에서 보내다 온 와우팀원의 글을 읽고 전율을 느낄만큼 짜릿한 기쁨을 체험한다.
그는 떠나기 전부터 돌아오고 난 후의 자신의 감정을 담은 글을 썼다.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다. 
"그 순간 이 모든 상황이 다 너무너무 좋았다." (강촌으로 떠나는 기차역 플랫폼에서)
"특별히 무엇을 한 건 아니지만, 그저 좋았다." (강촌에서의 짧은 추억을 되돌아보며)
"그 짧은 순간순간의 시간들이 참 좋았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회상하며)


그는 과장되게 표현하는 이가 아니기에 더욱 나의 가슴을 쳤다. 
그의 기쁨이 내게 흘러들어 나의 기쁨이 되었다. 
나는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나 너의 글로 인해 참 들떠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서야겠다. 춤을 추어야겠다. ^^"

그리고,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 한 자락의 어설픈 춤을 추었다. 
흥분이 되어 계속 노트북 앞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3. 뉴욕에 있는 wow4ever의 소식

4기 와우팀(wow4ever)의 막내는 지금 뉴욕에 있다. 
그로부터 소식이 날아들었다. 근황을 담은 메일이 온 게다. 
기분이 좋았다. 건강하다는 소식도 반가웠고
이번 주말에 발표 준비를 앞두고 설렘과 떨림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도 고마웠다. 
그는 살아 있었고, 자신의 젊음을 한껏 펼쳐 가고 있었다. 
나는 회신을 보냈다.  안부를 전하고 고마움을 전하며 메일의 마지막에 이렇게 적어 보냈다.

세상에 나가 있으니

좁은 자기 속에 갇혀 있지 말거라.

세상을 배우고 돌아오거라.

 

뉴욕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얘기가 아님은 알지?

학습자에겐 자신이 있는 곳이 곧 세상이다.

그곳이 뉴욕이든, 인도든, 아프리카의 사막이든 말이다.

 

건강해야 한다.

늘 밥은 부자처럼 챙겨 먹기를.


그가 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다. 그리움까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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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아침 5시 12분.
매미 한 마리가 울다. 부지런하다.
일주일의 생이 아쉬워 우는 걸까?
자기 생이 즐거워 함성을 지르는 걸까?
무엇인지 나는 모르지만,
태어난 자기 사명을 힘차게 다하고 있다는
감상에 빠져 드니 그가 멋지다.

5시 30분. 다른 매미가 함께 울다.
울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친구 매미의 동참일까?
아침부터 시끄럽다는 다른 매미의 성난 고함일까?
무언인지 나는 모르지만,
이른 새벽부터 살아 움직이는
그들의 활력이 부럽다. 

오늘 오후가 되면,
여름 날의 땡볕보다 
더욱 뜨겁게 울어제칠 테지.
나도 하루가 시작되면
뜨겁게 살아야겠다. 태양처럼.
성실히 살아야겠다. 매미처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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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965년경에 시작된 지금의 전환기는 아마도 2020년 혹은 2030년경까지 계속될 것이다. 더구나 2030년 이후의 안정기라 해도 지식이 중심이 된 사회니까 변화는 늘 가까이 잇는 것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은 전환기밖에 모르는 희한한 세대 전환기에 태어나 전환기를 얻고, 그 후로도 지속되는 변화의 시대까지 활동해야 하는 전대미문의 세대가 되는 셈이다.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아니 당연히 재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엄청난 드라마를 매일 보고 있으니까. 그리고 덤으로 역할까지 주어져 있다. 더구나 인터넷 시대이므로 각자가 주역이다."

- 우에다 아츠오 『피터 드러커 다시 읽기』 p.55


인간 역사의 의미에 대한 견해들은 다양합니다. 기독교 유신론자들에게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켜 가는 의미있는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연주의자들에게 역사란, 인과율에 의해 연결된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목적성은 없습니다. 세계관이 다르면 이렇듯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서로 다릅니다. 역사에 대한 의미는 서로 다르지만, 역사의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합의된 지점이 있습니다. 역사는 2C의 과정을 반복하며 진행됩니다. 2C는 계속(Continue)과 변혁(Change)의 균형을 말합니다. 변혁은 기존 제도의 과격한 파괴가 아닙니다. 더 나은(혹은 또 다른) ‘계속’을 위한 창조적인 파괴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계속의 시대’는 1965년경에 끝났다는 것이 드러커의 관점입니다.

드러커는 역사의 크나큰 단절을 보았을 것입니다. ‘계속의 시대‘가 끝나고 ’변혁의 시대‘가 시작된 지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경계는 1965년이고, 이 단절의 시대를 구성하는 키워드는 세계화, 다원화, 지식, 기업가 정신이라 생각했습니다. 1969년에 출간된 『단절의 시대』는 변혁의 시대로 돌입하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이러한 시대의 본질을 밝히는 책입니다. 단절의 시대 이전은 200년간 계속된 경제지상주의 시대였습니다. 돈이 중심이었던 사회였고, 정부가 사회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던 시대였습니다. 드러커의 견해대로라면, 1965년부터 시작된 단절의 시대는 앞으로 10~20년 더 지속될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돈이 아닌 지식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말합니다. ’변혁‘의 기간을 거쳐 도래한 지식사회는 한동안 ’계속‘되겠지요.

이것은 “돈을 벌고 싶다”는 소원이 “지식을 얻고 싶다”는 소원으로 대체되는 사회가 된다는 의미일까요? 재테크만큼이나 지(知)테크가 인기있는 화두가 될까요?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미래 사회가 어떠할지는 모르지만, 드러커의 관심이 미래 예측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단절의 시대』 서문에서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은 미래를 예측하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오늘날의 현실들을 면밀히 검토한다. 이 책은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하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 대신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하고 질문한다.”

과거로부터의 단절은 새로운 기회이며,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에다 아츠오는 우리 모두가 주역이라고 말합니다. 주역이 되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도 함께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드러커의 저서를 읽으며 이 질문의 답변을 모색하려 합니다. 지식사회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이는 드러커이고 그 용어가 처음 등장한 책이 『단절의 시대』입니다. 드러커에 대한 여러 입문서 중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 우에다 아츠오의 『피터 드러커 다시 읽기』입니다. 두 권을 읽으며 고민할 것입니다. 고민의 진행 상황을 나누겠습니다. 누군가의 사색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며.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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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일정 : 7 27 () 오후 7~10

장소 : 강남 윙스터디 4층 D1실 (아래 장소 약도 확인)

주제 : 자신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법

          

지식기반사회는 곧 전문가의 시대입니다.

우리 모두는 전문가들을 돕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지난 번에는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전문성을 만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룰 것입니다.

 

지난 번처럼 샌드위치와 음료 등의 간식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저녁을 안 드시고 오더라도 요기 정도는 하실 수 있을 거예요.

강연장 주변에는 식사를 할 만한 부대찌개집, 새마을식당 등이 있으니

밥을 드셔야 하는 분들은 일찍 오셔서 식사를 해도 좋겠군요. ^^

일단 샌드위치는 인원수 별로 준비하겠습니다.

오늘은 13명 참석(지난 번 27)이어서 마음의 부담이 적네요. ^^

 

오시는 대로 제게 과제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장소 안내를 드립니다.

강남역 2번 출구에서 8~10분 거리입니다.

2번 출구 나와 쭈욱 직진하세요.

KTB 빌딩(포스코 건설)을 지나 좌회전 했다가

할리스커피점이 있는 골목에서 다시 우회전입니다.

1층에 새마을식당이 있는 건물(동원빌딩) 4층입니다. (약도 참조)


 
메일을 드렸는데, 한 분이 회신되어 블로그에도 올려 둡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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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비오는 월요일 아침.
음악이나 듣고 싶다.
침대에 누워 책이나 읽고 싶다.
오늘도 어제처럼 휴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몇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날이었으면 좋겠다.
 
책장을 들여다보아 읽고 싶은 책 한 권 꺼내어
몽촌토성으로 들고 가 책을 읽다 오고 싶다.
이문세, 김광석, 이승철, 변진섭의 노래를 들으며
의자에 기대어 잠들다 음악 듣다가를 반복하고 싶다. 

이것은 소박한 나의 소원들이다. (어쩌면 게으름이다. 비가 왔기에. ^^)
'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이들에게
'하고 싶은' 소원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의무라면 성실을 발휘하여 완수해 내야 한다.
시간이 많다고 미뤄 두면 자유가 필요할 결정적일 때
의무에 휩싸여 가슴이 답답하게 된다.
가슴을 벅차게 하는 것은 소원과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나의 소원들을 펼쳐 나가기 위해
오늘 주어진 '해야 하는' 일에 뛰어든다.
오늘은 강연이 있는 날이다. 열심히 준비해야지.
한 권의 책을 1/2 정도는 읽어야 하는 날이다. 열심히 읽어야지.

해야 하는 일을 미루지 않으면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든다.
성실하여도 그 시간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다음을 점검해야 한다.
- 나는 효과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가?)
- 나는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가?)
- 나는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불필요한 과정없이 신속히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세 가지 질문에 모두 Yes, 라고 대답해도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들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 많은 것이다. 
나도 종종 그럴 때가 온다. 방법은 하나다. 일을 줄이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위의 세 가지 질문을 통과하지 않은 채 일을 줄이면
직장에서 무책임하다거나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No 라는 답변을 했다면 그들의 지적은 일정 부분 정당하다.

감상에 빠져들길 좋아하는 나다.
동시에 의무에도 즐겁게 빠져드는 법도 알아가는 중이다.
노하우의 핵심은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다른 이들을 섬기는 기쁨을 깨닫는 것,
일을 효과적, 생산적, 효율적으로 처리할 때의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의무에 빠져드는 법과
소원에 빠져드는 법이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점이다.
보다 많은 실험 후에는 똑같다는 말을 하게 될 날이 올까?

[덧] 당신의 집중업무 시간이 몰입의 즐거움으로 넘쳐나기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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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바울이)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3절)

어디에나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앞에 서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할 때는 언제인가?
지혜롭게 물러나서 더 중요한 일을 찾아야 할 때는 언제인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없는가?

오늘 본문에서의 바울은 그들을 피해 마게도냐로 계획을 변경했다. 
아마도 주님의 뜻을 살피었을 것이다. 그 뜻에 복종했을 것이다. 
혹은 잠시 기도한 후에 자유롭게 자신의 마음을 따랐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께 둔 자는 자유하게 된다. 
본질에 깊이 뿌리박은 사람은 비본질적인 것을 뛰어넘는 자유를 지닌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본질은 그것을 더욱 그것답게 만드는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살아 있는 관계, 날마다 깊어지는 관계. 
내 삶의 차지도 더웁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 생활은 본질에 이상 신호가 생겼다는 뜻이리라.
미지근함은 현상이다. 현상에 드러나는 문제는 본질에 접근함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오늘 큐티를 시작하며 하나님께서 내 안의 한 가지를 터치하려 하심을 느꼈다. 
난 그것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드리려는 것으로 타협하려 했다. 아..!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 바울이 존경스럽게 느껴진 오늘 큐티다.
어쩌면 반대하는 사람을 어떻게 할까, 는 좋은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디를 가나 반대 세력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을 변화시켜 더 깊은 영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9절)


말씀 듣는 중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났다.
바울은 그를 안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바울은 침착했다. 바울이 말했다. "He's alive"
본문만으로는 유두고가 잠시 기절했다 깨어났는지. 정말 죽었다가 회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유두고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12절)

그들에게 위로가 주어졌다.
상상컨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확신케 되는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믿음이 더 큰 줄 아는 사람들도
위로와 흥분을 얻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곳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서' 이 사건을 간증했을 것이다. 불미스럽고 불행했던 사건이 변화되었다. 축복의 사건으로.

2006년 어느 예배를 드리던 중이었다.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의 설교에 위로가 깃들어져 있음이 느껴졌다.
예배를 드리던 신자들은 자기 상황에 맞게 위로를 받았고, 회복과 용기를 얻었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 때 이런 기도를 드렸다. 
나의 강연과 글에도 위로와 희망, 용기를 깃들게 해 달라고.
  
이 기도가 응답되었는지는 독자와 청중들이 더 민감히 알리라.
유두고 사건을 보면서 오늘의 적용거리를 찾았다.
나는 작은 예수요, 작은 바울이 되고 싶다. 
내 주변의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싶다. 
이틀 동안 외로워했던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전하라고 하시는 것 같다.  
답답해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혹은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친구, 후배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오늘의 말씀을 살아내야겠다.  


[적용]

1. 할머니께 오랜만에 손 편지 쓰기
 (불쑥 교회에 나가시기를 권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2. 군 복무중인 동생에게 편지쓰기
(그 녀석, 한 번씩 보고 싶다.)

3. 선교중인 L 위해 기도하고 회신하기
(영적 성장을 갈망하고 있는 L이 문득 생각났다.)

4. 친구 K 에게 손 편지 쓰기
(친구야... 마음으로 널 계속 응원하고 있다. 오늘 그 마음을 전할께.)

5. 와우팀원 그에게 연락하여 식사하기
(편안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 되기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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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덜컥.
한 달 반이라는 짧지 않은 일정의 유럽 항공권을 끊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대륙이라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싶었다.
얼마의 비용이 들지, 어떤 곳을 여행할지는 전혀 생각치 않았었다.
요즈음 그 여행에 대하여 비용을 헤아려보고 여행 루트를 결정하는 중이다. 
나의 성향에 따라(^^), 아주 엉성한 계획이고 대충 잡은 계산이다.
 
덜컥.
대충 어림잡은 계산만으로도 겁이 났다.
식비, 숙박비, 교통비 등 모든 비용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수준이었다.
사고를 친 느낌이었다. 여행 일정을 너무 길게 잡았다는 생각,
뭔가를 좀 알아보고 움직이지 못함에 대한 후회 등이 나를 방문했다.
나는 그 손님들을 정중히 모셨다. 나 자신과 상황에 대한 진실을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생각'과 '후회'라는 손님을 모셨지만 나는 그들과 함께 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나는 '행동'과 '꿈'과 함께 살 것이기에.
여행은 나의 꿈이고 내가 삶을 그리고 사람을 배워가는 방식이다.
나는 또 한 번 실험하기로 했다. 내가 정말 여행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인지를.
이 실험은 막대한 비용에 비춰보더라도 훌륭한 산출을 얻는 것이어야 한다. 
내게 물음을 던진다. 나의 생산성을 묻는 질문들이다.

나의 성장을 돕는 여행 방식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누구와 여행할 때 가장 행복한가?"

그간 많은 여행을 다녀왔다. 대부분은 누군가와 함께한 여행들이다. 
회사 동료들과 떠났던 팔라우 여행(2006년), 사이판 여행(2007년).
와우들과 떠났던 베이징 여행(2008년), 항저우/ 황산 여행(2009년).
연구원들과 떠났던 몽골여행(2007년), 뉴질랜드 여행(2008년).
누나들과 떠났던 태국여행(2009년), 내장산(2008년).
와우 MT (신륵사/ 치악산, 해미/ 몽산포해수욕장, 지리산/ 통영 등)
친구들과 떠났던 여행(비발디파크, 비진도, 남해 상주해수욕장 등).
이들 모두는 함께함의 즐거움이 가득한 여행이었다.
 
홀로 떠난 여행들도 있다. 혼자 떠난 해외여행은 두 번이다.  
캐나다 여행(7일), 중국여행(38일 일정 중 29일을 홀로 다님)
홀로 떠난 국내 여행도 더듬어 본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인천 월미도(2002년), 1박 2일의 다산초당(2008년).
그저 가까운 곳에 홀로 가는 경우는 많지만(몽촌토성 등)
서울을 벗어난 곳으로 홀로 떠난 경우는 많지 않았다.

7월 12일, 나는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만들었다.
34개의 목록 중 여행에 관한 항목이 8개나 되었다. 많은 비중이다.
내게 다음의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어떻게, 누구와 여행할 때 가장 행복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장 먼저 돌아보아야 할 일은
홀로 떠나는 여행과 함께 떠나는 여행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번 유럽 여행은 한 달 이상을 홀로 지내게 된다.
나는 가고 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여행할 것이다.  
먹고 싶은 것을 (예산 내에서) 자유롭게(?) 먹을 것이다.
내가 발견하고 싶은 나에 관한 지식을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여행할 수 있는가?
- 홀로 떠나는 여행은 내게 무엇을 주는가? 
- 혼자만의 여행에서 외로울 때는 언제인가?
- 함께 떠나는 여행에서 얻지 못한 무언가를 얻었는가?
- 나는 왜 종종 여행을 떠나는가? 
- 나는 왜 홀로 떠나는 여행을 꿈꾸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안고 돌아올 수 있다면 훌륭한 여행이 될 것이다.
보고 느끼고 만났던 사건들과 사람들을 통해 많이 배웠을 터이고
나에 대한 지식까지 얻은 여행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내일부터 좀 더 열심히 여행 준비를 해야겠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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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TAG 여행

Y는 파리 여행을 꿈꾼다. 오래 전부터 가졌던 그녀의 꿈이었다. 낭만과 자유를 좋아하는 그녀는 파리의 이미지와 퍽이나 어울렸다. 나는 그녀가 어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날아가기를 바랐다. 파리는 그녀의 로망이었다. 행복할 수 있고,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허나 수년이 지나도 그녀는 파리 여행을 구체적으로 준비한 적은 없다. 그저 마음속에 동경 하나를 품고 있을 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을 바라보듯 그렇게 자신의 꿈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파리지앵으로 살고픈 Y에게 몇 명의 파리지앵이 했던 이야기를 나눈다. 빅토르 위고는 19세기의 파리지앵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작시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전 그 어느 때보다 동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동양은 일반인이 깊이 몰두하는 주제가 되었으며, 이 책의 저자는 그 점에 경의를 표해왔다.”

파리는 Y에게 설렘과 흥분을 안겨다 주는 이국적인 나라다. 반면, 파리지앵에게는 동양이 이국적인 나라다. 적어도 19세기에는 그랬다.


“19세기 전반에 이국적이라는 말은 중동(中東)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p.98)


동양을 갈망했던 이는 빅토르 위고만이 아니다. 소설 『보봐리 부인』으로 유명한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자신의 첫 번째 소설에 이렇게 썼다. “타오르는 태양, 파란 하늘, 황금 첨탑…… 모래를 헤치고 가는 대상(隊商)의 동양이여! 동양이여!…… 아시아 여자들의 햇볕에 그을린 올리브빛 피부여!”
플로베르에게 “행복이라는 말은 동양이라는 말과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1849년 10월 말 파리를 떠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던 것은 그에게는 당연한 사건이었다.
파리지앵 플로베르는 파리를 떠났다. 그 곳은 Y가 꿈꾸는 곳이었다.

Y가 파리지앵으로 태어났다면, 그녀는 파리지앵으로 살았을까? 동양으로의 여행을 꿈꾸었을까? 답변은 그녀가 할 일이다. 혹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몇 명의 파리지앵의 이야기를 참고할 일이다. 동양을 갈망하는 서양과 서양을 갈망하는 동양, 그 사이에서 낯선 곳으로의 모험을 갈망하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는 이국적인 곳을 갈망한다. 두려워하면서도 그 곳으로의 모험(혹은 여행)을 꿈꾼다. 왜 그러한가? 알랭 드 보통의 두 문장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외국의 요소들이 새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 더 충실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귀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p.109


Y의 삶에 잠깐 간섭해 본다. 그녀가 파리에 가야 하는가?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그녀의 꿈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그 꿈이 자기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느라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기를 바란다. 삶으로 실험해 보아야 한다. 선택의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다. 인류사는 실수로 인해 창조된 위대한 사건이 수두룩하다. 또한, 자기 머리로 판단한 것이라면 그것이 실수라고 해도 배움과 깨달음이 있다.
그리고 “파리에 가야하는가?”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도 있다. “왜 파리에 가고 싶어 하느냐?”는 질문이다. 답변을 찾는 과정 속에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신의 갈망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묻기를 바란다. 이 갈망을 채우기 위한 시도를 이곳에서 해야 하는지, 저곳 파리에서 해야 하는지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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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3일.
카페 데 베르.
Cafe des Verts.


지금도 Jazz가 흐른다. 언제나 그렇듯이.
넓은 테이블은 책을 읽기에도, 작업을 하기에도 편하다.
Jazz와 테이블은 언제나 나를 반긴다.

이 곳에 일백 번도 넘게 방문했으리라.
종업원들의 얼굴은 안 봐도 그릴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인사 한 번 나누지 못한 것은
바쁜 직장인들의 삶(허나 조금은 메마른)을 아는
종업원들의 배려일까? 나의 수줍음 때문일까?

테헤란로에 위치한 이곳의 영업은
직장인들의 움직임과 연관되어 있다.
테헤란로의 휴일은 여유롭고 건물들은 외롭다.
이 곳이 가장 여유롭게 편안한 곳이 되는 날이다. 
평일의 오전은, 직장인들이 업무에 몰두하는 시간이고
이 곳에 아침의 상쾌함과 음악의 경쾌함이 깃드는 시간이다. 

점심 시간 이후(12시) 부터는 이곳에 손님이 들이닥친다.
경쾌함과 한적한 여유는 역동적인 사람들의 방문에 자리를 내준다.
나 역시 그 시간에는 자리를 내 주고 싶지만,
테헤란로에 있는 한, 다른 모든 카페가 그러하다.
사실, 내 할 일을 못할 정도로 시끄러운 곳은 없다.
자기 할 일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즐겁게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할 일을 받은 사람들보다 독립적이다.

나에게 Cafe des Verts 는 특별한 공간이다.
첫 책의 많은 부분을 이 곳에서 썼고
내 삶의 여러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낸다.
집도 아니고 사무실도 아니지만
머무르기에 편안한 공간이다.
제3의 공간으로, 내게는 적합한 곳.

오늘은 7시를 살짝 넘긴 시각에 집을 나섰다.
할 일들을 싸들고(그래봐야 노트북 하나와 책 두 권이지만)
파리바게트에 들러 간단한 아침 식사를 들고 이 곳에 왔다.
그 때도 손님은 한 사람, 지금도 손님은 한 사람이다.
넓은 공간에 단 두 사람이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게다.

7시 30분. 비교적 한산한 거리.
8시 30분~9시. 막바지 출근길에 분주한 사람들.
10시. 한 시간 전에 비해 여유로운 발걸음의 사람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열심과 여유를 반복하는 나.
일주일 동안의 메일 회신을 완료하고, (하나의 메일을 제외했다.)
알랭 드 보통의 책 한 챕터를 읽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포스팅한 글 하나를 훑어 보기도 했다.
이것들은 열심이 깃들었던 순간이었다.

지금은 약간의 여유로움으로 이 글을 쓴다.
멍하니 행인들의 발걸음을 쳐다보기도 하고
잠시 어깨를 돌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면서 쓴다. 
핸드폰을 잃은 것이 도움이 되는 순간이다.
(허나, 잠시 후 불편한 순간이 올 게다.)

메일 하나를 회신하지 않은 채 남겨 둔 것은
회신하기 어려운 메일이었기 때문이다. 
보낸 이의 고민과 삶이 스며 있었고
성장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었다.
이런 메일은 곧바로 대답하기 힘들다. 
메일의 핵심과 보낸 이의 마음을 간단히 요약함으로
내 마음 속에 새겨 두었다. 

보낸 이의 마음을 새겨 둔 후에 
나는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한 두 가지 그에게 힌트가 될 만한 이야기가 떠오르면
회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런 일은 조금은 번거롭지만 보람되는 일이다. 
요상하게도 보람되는 일은 종종 이렇게 
약간의 수고로움을 요구한다. 
게으름에 져 버리면 보람된 일을 놓치게 된다. 

게으름에 대하여 이렇게 한 줄을 쓰는 찰나,
이 카페가 속한 건물의 안내데스크 관리자 분이 창 밖을 지나쳐 간다. 
꽤 큰 편에 속하는 이 건물의 프론트에는 한 명의 여성과 
한 두 명의 남성 분이 입주해 있는 회사의 직원들을 맞는다. 
(때로 상인들의 출입을 막기도 하겠지.)

그 중에 한 분이 참 부지런하시다.
주기적으로 건물 주위를 둘러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사람들이 건물을 드나들 때마다 참 성실하게 인사를 주고 받으신다. 
항상 윗도리를 벗은 정장을 깔끔하게 입으신다. 
자신의 일을 좋아하신다. 오늘도 두 번이나 그분의 성실을 보게 된다. 
카페의 실외 테이블에 햇빛 가리개를 설치하고, (자발적인 것인지 궁금해졌다.)
쓰레기통 주변의 쓰레기를 치우셨다. 

나 역시 이 글을 맺고 여유를 갈음할 시간이다. 
그 분처럼 다시 내 일에 성실을 발휘할 때다. 
오후에는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에 
오전에 끝내기로 계획한 일들을 마무리해야지~
오후에도 할 일이 많으니. 
미루지 않아 여유롭게 일할 수 있음은 즐겁다. 
좋아하는 일이라 즐겁게 일할 수 있음은 행복하다.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역삼동에서의 일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 
Cafe des Verts...
이 곳에서 나는 오늘을 보낸다.
내 삶의 어느 하루를 보낸다. 
오늘 하루.
이곳에서의 하루.
이것이 나의 삶이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다.
다른 모든 공간에서의 삶, 시간에서의 삶이 모두 어루어져
나의 삶이 된다.

[오늘만세]

6박 7일간의 중국 여행에서 돌아온 것이 어제였다.
비실해 보이지만 나는 체력이 좋은 편이다.
오늘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났고 하루 종일 경쾌하게 일했다. 
저녁에는 목동야구장에 갔다가 와우팀원과 맥주 한 잔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각은 12시 30분이 넘은 시각.
건강함에 감사하게 되는 오늘이다.
오만하지 않고 꾸준히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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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를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다른 경우라면 멈칫거리기 일쑤인 내적인 사유도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얻으면 술술 진행되어나간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p.83)


[글을 읽기 위한 도움말]
보보는 중국의 항저우로 여행을 다녀왔답니다.
항저우 : 중국 상하이 근처의 유명 관광도시. 중국 최대의 인공호수 서호(西湖)로 유명.
소제춘효(蘇堤春曉) : 서호 10경 중 제1경. 서호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2.8km의 제방.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함께 자전거를 빌렸습니다. 모두들 저 넓은 호수, 서호(西湖)의 주변을 자전거로 달리고 싶었던 게지요. 서호는 둘레의 길이가 15km가 됩니다. 걸어서 돌기에는 너무 먼 거리, 너무 더운 날씨인데다가 볼 만한 명소도 너무 많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서호를 둘러보는 것은 나를 제외한 5명에게는 참 괜찮은 일이었나 봅니다. 대여점을 쉽게 찾지 못했지만, 모두들 포기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페달을 밟아 바람을 맞으며 달리니 괜찮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밤이 되어도 여전히 무더운 날씨를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얼굴을 쓸어 만지고 지나가는 따뜻한 바람만큼이나 마음이 훈훈해졌습니다. 같이 자전거를 탔던 이들은 참으로 편하고 친밀한 이들입니다. 오래 전부터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사람들입니다. 여행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 여행도 가고 서로를 격려하며 도움을 주고받으며 지내고픈 이들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참 기분이 좋아졌지요.


우리는 서호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소제춘효를 달렸습니다. 낮 동안에는 자전거 통행이 금지되는데 아마도 밤에는 가능한가 봅니다. 소제춘효는 걷기에도 더없이 아름다운 길이겠지만, 밤 공기를 가르며 자전거를 달리기에도 참 좋았습니다. 가로등과 가로수가 앞다투어 우리를 맞이해 주었지요. 배가 통과하도록 만든 터널은 오르막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어 자전거 타기의 묘미가 더해졌습니다. 우리는 풍광 좋은 곳에서 쉬었습니다. 가로등도 없는 어느 한적한 벤치 옆에 앉았습니다.


십여 분 동안 조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엔 한 두 마디 나누던 이들도 이내 고요한 호숫가의 평화와 고요함에 젖어 들었습니다. 나도, 내 옆의 그도, 아마도 모두가 자기 생각의 나래를 펼치었거나, 자신만의 느낌에 뛰어들었겠지요. 밤하늘의 별들이 우리를 보고 웃었고, 밤바람에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 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낯선 이국의 땅에서 짧지만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항저우를 떠나는 아침, 우리는 호텔을 나서기 전 잠시 동안 ‘항저우 최고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모두들 자전거 여행, 특히 소제춘효에서 머물렀던 사색의 시간을 꼽았습니다. 모두들 생각의 산파 역할을 했던 여행의 도움으로 사유를 만끽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가면 오르막길도 즐거워지고, 순위도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찰랑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고 합니다. 더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사유의 결실이었습니다.


저마다 새로운 깨달음으로 즐거워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자전거가, 또 다른 어떤 이에게는 여행 자체가, 또 어떤 이는 새롭게 만난 중국 친구들이 생각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선두로 달리던 저는 자전거의 속력을 늦춰 한 사람씩 앞으로 보내며 소감 한 마디씩을 말해 달라 했지요. 세 번째 이가 “벅차요”라고 대답하더군요. 제 가슴도 벅차올랐습니다. 저들은 즐거워했고, 저도 3시간의 자전거 여행에 아주 만족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었으니까요.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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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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