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in Hambrug

8월 26일 오후 7시 35분 도착

8월 28일 오후 9시 21분 떠남


여행자를 돕는 사람들 


Dammtor 역에서 내렸다.

동물원으로 가려면 조금 더 가야하지만,

트램의 바깥쪽으로 보이는 함부르크 대학의 이정표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Dammtor 역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여행책자에 함부르크 대학에 대한 안내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 가야할 이유를 가졌다.

세상에 가볼 만한 여행 장소를 추천하는 정보는 넘쳐나지만,

꼭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갖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오늘 나의 여행은 즐겁다.

나는 드러커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함부르크에 왔다.

그가 다녔던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갈 것이다.

이 하나의 이유로 방문한 함부르크다.


역에서 나온 나는 캠퍼스가 있을 법한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 걷다가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길을 물었다.

"함부르크 대학을 찾고 있어요." "무슨 학과요?"

"그냥 가면 돼요. 캠퍼스를 보고 싶은 게지요."



남자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방향은 가르쳐 주었다.

참 나는 법학과에 가야 하는데, 라는 사실은 뒤늦게 생각났다.

남자는 정확한 위치도 모르면서 학과는 왜 물었던 게지?

아니면, 내가 정확히 못 알아들었던 걸까? 어쨌든 Okay.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신이 났다. 속이 좋지 않아 화장실을 찾느라

꽤 고생도 하고, 길을 지나치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그런데, 왠지 너무 많이 걸어온 것 같아 또 물었다.


빡빡이 머리에 좀 놀게 생긴(?) 남자였다.

방향을 묻기에 남자 분들이 여러 가지로 편하다.

이번에는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를 찾는다고 말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함부르크 대학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 살았다. 법학부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무튼 함부르크 대학 쪽으로 가는 길이니 같이 동행하잰다.

그는 우체국 가는 길이었고, 함부르크 대학 근처라고 말했다.

젊어 보였는데, 자신을 Old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약사였다.


기초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퍽 친절하고 유머스러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그가 아하, 하고 크게 웃는다.

내가 찾는 학부를 알겠다는 게다.


그는 Law 를 low 로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하하하. 이거 나의 발음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제스처까지 곁들여 자신의 오해를 설명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금새 그에게 친근감이 느껴져서 그의 주소를 물었다.

귀국하면 카드를 써서 보내주고 싶다.


자신의 주소를 적고 있는 지벤슈흐(맞나?)


그와는 법학부 바로 앞에서 헤어졌다.

즐거운 마음으로 법학부 건물에 들어섰다.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어서 가방을 맡겨두고

책 몇 권을 꺼내어 도서관에 들어갔다.


그냥 거기서 공부하고 싶었다.

알고 봤더니 법학부 도서관이라 한다.

드러커가 여기에서 공부했을까?

새로 생긴 건물인 듯하여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나는 드러커 책을 찾고 싶었다.

옆자리에 있는 청년에게 물었더니

비즈니스 관련 서적은 메인 도서관에 있단다.

여기는 법학 관련 도서만 있다고 했다.


그가 퍽 잘 생겨서 묻지도 않은 몇 마디를 했다.

드러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그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그랬더니 그도 내가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한다.

자기는 바덴바덴에서 왔단다. 꼭 가 보라고 권하기까지.

(바덴바덴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받는 두 번째 추천이다.)




청년은 1988년 생임을 그의 이메일 주소를 받고서 알았다.

그의 인상이 퍽이나 좋았고, 옆에서 지켜보는 여자친구의 미소가 좋았다.

그에게서 중앙도서관의 위치를 설명 듣고 헤어졌다.

실력 있고 양심적인 법학도로 성장하기를 빌어본다.


두세 번 뒤돌아 보며 인사를 나누는데

끝까지 손을 흔들어 웃어주는

여자 친구의 미소가 가슴 찡할 정도로 따뜻했다.

여행자를 돕는 고마운 사람들.


*


저는 남자치고는 길을 꽤 잘 묻는 편이고

남자들 중에서도 방향 감각은 참 좋은 편입니다.

방향 감각과 질문하는 습관을 모두 가졌으니

여행에는 무척 유리한 편입니다.

게다가 좋은 체력까지 지녔으니

혹 길을 잘못 들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허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에서는

길을 물어볼 일이 자주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도를 들여다보며 홀로 연구(?)했습니다.

어눌한 영어 실력이 들통나는 게 싫었거든요.


실력을 감추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30초면 해결될 방향 결정을

3분 동안이나 지도를 들여다보아야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친절을 경험할 기회

따뜻한 가슴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길을 묻는 나의 질문을 외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비엔나의 그린칭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노부인에게 물었더니 살짝 외면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영어를 전혀 몰랐고, 내가 독일어 주소를 내밀었더니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 주셨습니다.


길을 떠나 본 사람은 압니다.

길을 떠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나의 여행을 돕는 듯한 느낌을.

마치 여행자를 돕는 요정이라도 있어서

온갖 만물을 통해 자신을 도와주는 따뜻한 느낌 말입니다.

허나, 이 모든 것은 마음을 열고

도움을 요청하고, 질문을 하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만 느끼는 것입니다.


여행자를 돕는 사람들이 가득하듯

이 세상에는 나의 삶을 돕는 사람들 역시 가득합니다.

때때로 거절 당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너무 바쁘거나 너무 기분 나쁜 중일지도 모르고

표현 방식이 친절하지 않을 뿐인 게지요.

마음을 활짝 열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일상이라는 공간에서의 멋진 여행을 누리시기를.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in Hambrug

8월 26일 오후 7시 35분 도착

8월 28일 오후 9시 21분 떠남


숙소



샹첸슈테른 게스트하우스 Schanzenstern Gasthaus.

함부르크의 중앙역에서 S 트램을 타면 두 정거장 떨어진 곳에

Sternschanze 역이 있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샹첸슈테른이 있다.

나는 아직도 역과 게스트하우스의 이름이 헷갈린다.

허나, 호스텔에 대한 이미지만큼은 잊지 못한다.

다른 호스텔과 헷갈리지도 않는다.


베테랑 여행자들은 숙소 정하기에 대한 나름의 원칙이 있다.

조금 비싸더라도 도심 한가운데로 정하여 시간과 교통비를 절약하는 이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잠만 자는 곳이니 무조건 저렴한 곳으로 정하는 이들,

안전과 보안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도미토리보다는 3성급 이상의 호텔로 정하는 이들.

(유럽의 도미토리가 아주 안전하고 보안도 잘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나는 우아한 분위기와 접근성을 따지는 편이다. 마음은 그렇다.

이번 여행은 대체로 경제성을 따지고 있다. 실상이다.


고향에서든, 여행지에서든 집은 중요하다.

함부르크의 내 집은 퍽 마음에 들었다.

열쇠 하나를 건네받았는데 출입문과 객실을 열 수 있었고

이 열쇠가 있어야만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보안에 신경을 써 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5명이서 함께 쓰는 도미토리는 아늑한 분위기였다.

운이 좋게도, 내가 머무를 자리는 다른 베드와 떨어져 있어

더욱 고요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4개는 서로 붙어 있었고, 나의 베드는 반대편에 위치한다.)



무엇보다 일률적인 2층 침대가 아닌

내부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베이지의 색감은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다.

다섯 명이서 쓰는 도미토리 안에

깨끗한 욕실까지 있어서 금상첨화였다.

통상 '샹체'라 불리는 이 지역은

학생과 예술인들이 모이는 젊은 취향의 거리라 한다.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벌써부터 이틀 후의 이사가 아쉬울 것만 같다.



슐터블라트 (Schulterbaltt) 거리


나는 여장을 풀고 샹체의 거리를 걷기 위해 9시 즈음 호스텔을 나섰다.

함부르크 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탔을 때,

잠시 놀랐던 것은 자전거와 개들이 지하철을 탈 수 있다는 점이다.

이곳 샹체에는 역시 자전거가 많았다.

그리고 친구들, 가족과 함께 맥주를 마시는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술집과 카페는 거리에 마련된 자리에 사람들로 넘쳐났다.

슐터블라트 (Schulterbaltt) 거리를 지날 때에는 J 생각이 났다.

그가 있었더라면 이 거리를 그냥 지나치진 않았을 게다.

어떤 카페에서는 영화를 상영 중이었고,

그것을 창밖 벤치에서 열심히 관람하는 여인도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열혈 청년들의 자유분방한 낙서도 있었다.

오늘 밤은 열차 안에서 먹었던 햇반으로 떼우려 했는데 배가 고파

음료 하나를 사서 미니 케밥과 함께 먹었다.




한 시간 남짓 돌아보고 나니

근처의 불이 가장 환히 켜진 곳은 다 둘러본 듯했다.

함부르크의 첫 인상은 활기차고 젊은 도시라는 느낌이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일정을 계획했다.

Clare 라는 룸메이트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눴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 주어 고마웠다.

그러다가 다시 솰라 솰라 빨라지곤 해서 곤욕이었다.

영어 공부 하자는 결심은 또 하게 된다.


12시 즈음, 잠이 들었다.

퍽 마음에 드는 편안한 나의 집에서.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여행 친구들 이야기 (2)

일 년 동안의 배낭여행이라구요?



베토벤 동상 앞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한 여인이 여러 각도에서 동상 사진을 찍더니

내 옆의 벤치에 와서 앉았다.

곧바로 다른 명소로 이동하지 않고 말이다.


내가 베토벤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더니

활짝 웃는 표정으로 고맙다고 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베토벤 음악을 들어보길 권하며 MP3를 건넸다.


그 후, 우리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놀랍게도 많은 얘기를, 다소 깊이 있게(?) 나눴다.

영어권 나라의 사람이 아니어서 좋았다.

쏼라쏼라 좌악 쏟아내지 않고

나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을 천천히 말해 주었으니. ^^


그녀(이하 E)는 24살의 일본 청년이다.

지금은 배낭여행 중인데, 무려 일년 동안의 일정이라 한다.

"뭐라구요? 배낭여행을 일 년 동안 한다구요?"

나의 첫 반응은 놀라움이었다.

그녀의 도전하는 젊음이 아름다워 보였다.


일 년 동안의 배낭여행이라니.

E도 대단했고, 그녀의 부모님도 대단했다.

그녀가 세계 여행을 마치는 시기는 내년 6월이다.

그것도 Maybe 란다. 하하.


우리는 함께 스테판 대성당의 북쪽에 위치한 루프레히트 교회로 갔다.

교회 앞에서 햄버거를 나눠 먹으며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도나휴 강가에서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서로 함께할 수 있는 일정인지, 계획을 나누기도 했다.


E는 헝가리 - 이탈리아 - 모나코 등을 거친 후

남아메리카로 가는 여정이었다.

나는 브라질 여행담을 들려주기도 하고,

그녀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J와 4:30분에 만나기로 했기에 E와는 헤어져야했다.

E는 오늘 저녁차로 부다페스트로 떠난다.

그것이 아니라면, 셋이서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면 좋은데...

아쉬운 일이다.


J를 만나는 장소에 E와 함께 갔다.

셋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 갈 길을 갔다.

3시간 30분 동안의 만남이지만,

E와의 만남은 즐겁고 진했다.

열정, 도전, 꿈을 가진 청년과의 대화였기에 즐거웠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었기에 짧은 시간이지만 진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곳은 아마도 한국 혹은 일본이겠지.

어찌 자유로운 그녀의 발걸음을 예측할 수 있으랴.


헤어진 후 3일째 되던 날, E는 메일을 보내왔다.

나는 반가움을 담아 회신했다.

이렇게 소식을 계속 주고 받으면

그녀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겠지. ^^


E의 내일이 어떠할지 무척 궁금해진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이 책은 청년 시인 에커만이 대문호 괴테와 나눈 10년 간의 대화를 글로 기록한 작품이다. 에커만은 20대 중반에 괴테의 시를 처음 접하고 매료당해 이 원로시인과의 만남을 스스로 찾아 나섰다. 그 뒤로 자신의 소중한 30대를 고스란히 바쳐, 무려 1천 번 가량이나 괴테의 집 문턱을 들락거리며 발품을 판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그 대신 에커만 자신은 위대한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접고 말았지만, 우리에게 이 불후의 명작을 안겨주는 공적을 남기게 되었다."
-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옮긴이의 말 中
Johann Peter Eckermann, 『Gespräche mit Goethe』

독일 제2의 대도시 함부르크에 왔다. 독일 여행의 출발지를 베를린으로 삼고 싶었지만, 북부의 도시 함부르크까지 온 이유는 오직 피터 드러커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었다. 함부르크는 청년 드러커의 지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드러커는 함부르크에서의 1년 3개월만큼 공부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페이디아스 이야기와 베르디의 일화를 읽었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8월 27일 오전 9시, 함부르크 대학으로 가는 길목의 조용한 벤치에 앉았다. 아침 식사도 해결하고, 독일에서 첫 장을 펼치고 싶었던 『괴테와의 대화』도 읽기 위함이었다. 감동적인 머리말에 이어진 옮긴이의 말에는 책의 탄생 과정을 위와 같이 짧게 요약해 주었다. 10년 동안 1천 번에 가까운 만남이라는 에커만의 헌신적인 노력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괴테를 향한 에커만의 열정은 드러커를 향한 나의 열망을 떠올리게 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뭉클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물이 흘렀다. 이제는 드러커를 만날 수가 없기에 나의 실천 없는 열망이 미웠다. 에커만은 어떻게 용기를 내어 실천했을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늘 말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해외 인턴십을 지원했지만, 도중에 여행 에이전시의 부도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2005년에 드러커는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다시는 나의 소원을 놓치지 않겠다, 실천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 라는 다짐을 했다. 열망이 있었지만, 실천하지 않은 것이 오늘 느껴지는 안타까움의 원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덮었다가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 도서관에서 다시 펼쳤다. 한 시간 동안 책을 읽다가 방금 전에 정리해 두었던 생각이 얼마나 얕고 추상적인지 깨닫는다. 내가 무엇을 실천하지 않은 것인지 인식하지도 못한 것이다. 에커만도, 나도 열정은 있었지만, 열정과 관련한 일을 실천한 에커만이었고, 그렇지 못한 나였다. 이것이 그와 나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의 문장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며칠 전에 바이마르에 도착해서, 오늘에야 처음으로 괴테를 방문했다. 그의 환대는 그야말로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그의 인품이 내게 준 인상은, 이 날을 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로 손꼽고 싶을 정도였다."
-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p.53

괴테는 에커만을 환대했다. 대문호의 환대는 그의 훌륭한 인품 때문만은 아니다. 책의 첫 50페이지에서 에커만은 자신의 출신 성분과 성장 과정을 적어 두었다. 그 부분에서 괴테의 환대를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많다. 에커만은 그림 그리기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 중에서 괴테가 준 영감과 감동은 단연 최고였고 에커만은 그의 시를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으면서,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뒤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애초의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자신을 흥분시키는 언어학 공부에 몰두했다. 그는 <시학 논고>라는 논문을 완성했고, 이것을 편지와 함께 괴테에게 보냈다. 괴테는 호감을 가졌고, <예술과 고대>라는 잡지에 에커만의 시에 관한 글을 싣고자 했다.

환대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첫째, 괴테는 방문자에 대해 알고 있었다.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불청객을 환대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에커만은 이미 편지와 자신의 작품을 보냈다. 둘째, 방문자는 이미 괴테의 마음을 얻었을 정도로 노력과 성과를 지녔다. 그가 보낸 글은 많은 시간 동안 공부하고 노력한 결실이었다.
나에게 부족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열정과 독립성은 가졌지만, 내 일에 대한 성과와 내놓을 만한 이력이 없었다. '일단 찾아가면 되겠지'라는 도전 정신은 빛났지만 지혜롭지 못했다. 열정은 뜨거웠지만 성실하지 못하여 이력을 갖추지 못했다.

드러커를 만나고 싶다는 열정만으로는 부족했다. 그의 저작을 탐독했어야 했고, 진지한 공부가 선행되었어야 했다. 이러한 노력이 부족했기에 열정이 점점 시들해졌다. (드러커의 사상에 대한 지식이 얕았으니 혹 운이 좋아 만났다 하더라도 깊이 있는 대화는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니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국치일을 기억하는 것은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나의 이 부끄러움들을 기억해야겠다. 보다 지혜로워질 내일을 꿈꾸며.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 8월 16일 (주일) 오후

베토벤 동상을 바라보며
베토벤 교향곡을 들으며
벤치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작은 터에 세워진 동상 하나를 보러 오는 관광객은
많지는 않았지만 끊이지도 않았다.
두 명, 세 명 등의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일단의 그룹이 온 적은 없었으니
아마도 가이드는 이 곳이 변변찮음을 알고 있으리라.

동상 앞에서 몇 십 분을 앉아 있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이들의 평균 관람 시간은 3분이었다.
이들은 이 곳에 와서 잠시 동상을 바라보고 난 후 (혹은 이것도 생략하고)
동상 앞에 서서 사진을 두 어장 찍는다. 그리고는 사라진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머물다 가서 몇 팀의 시간을 재었더니 3분이었다.
5분을 넘기는 관광객은 아무도 없었다.

베토벤 동상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살짝 아래쪽을 내려다 보는 모습이었다.
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두 개의 벤치가 있다.
나는 그 벤치에 앉아 두 곡의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듣는다고 해서 내가 별 다른 감동을 받거나
남다른 감상록을 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들어보았다. 음악인 베토벤을 그저 느껴보고 싶었다. 

이것은 이번 여행 나의 자연스러운 노력이다.
빈의 링을 따라 돌며 바로크 양식, 르네상스 양식, 고딕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 건물을 한참을 들여다 보았듯이
음악가의 집에 가거나 동상 앞에 서면
나는 잠시 벤치에 앉아 그의 노래를 듣는다.

언젠가 고전 음악에 일가견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저 내가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다.
나는 사진만 찍고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좋은 풍광을 만나면 앉기 좋은 곳에 털썩 주저 앉아 한참을 보는 사람이고,
의미 있는 장소에 다다르면 준비한 관련 문헌을 읽으며 내 가슴에 의미를 담고 싶은 사람이다.

베토벤 동상 앞에서 음악을 들었지만,
별다른 소감을 기술할 수가 없다. 
그저 좋았을 뿐, 특별히 얘기할 꺼리가 없는 게다.  

베토벤 동상 앞에는 큰 도로가 있다.
건너편에는 별다른 건물이 없다.
자동차 수리점 같기도 한 단층 건물 몇 채가 있다.
다행인 것은 오른쪽 30m 즈음에 콘체르트 하우스가 있다.
베토벤이 바라보는 방향의 길 건너편이다.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베토벤은 자신의 동상을 찾아 준 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을까?
그들이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기를 바랄까?
동상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 가기를 바랄까?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사진 한 장 남긴다고 하여
고전 음악에 대해 일가견을 갖는 것도 아니고
의미 있는 여행 스케쥴이 되는 것도 아니란 점이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예술가의 동상 앞에 선 여행자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자신의 삶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앞으로 괴테하우스에 갈 것이고, 쉴러의 동상을 볼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여행 친구들 이야기 (1)

멋진 외모, 부드러운 매너남 J


8월 14일 금요일 오후 6시, 빈에 도착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기차역에 있을 I(information)에서 숙소 리스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호객꾼들 몇 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가방이 무겁다는 것만이 골칫거리였다.


허나, 나는 두 시간 넘게 숙소를 찾느라 고생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다. I에서 얻은 호스텔 리스트는

지도에 표기된 리스트가 아니라 그냥 사진과 주소만 나와 있어서 찾기 힘들었고,

기차역 주변을 어슬렁거려도 다가오는 호객꾼들이 없다.

결국 기차역 근처를 직접 돌아다니며 찾아보기로 했다.


역시 가방 3개가 꽤 무겁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근처에 있는 호스텔을 알지 못했다.

결국, I에서 얻은 호스텔 리스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찾아보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는 거리다.


72시간 프리 교통패스(비엔나 카드)를 구입하기 위해

다시 기차역에 갔는데 매진되었다 한다. 에고. 일이 꼬이네.

내일 비엔나 카드를 살 텐데,

오늘 교통 1회권을 구입하는 돈이 아까워 다시 역 밖으로 나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동양인 청년 한 명이 지나가자 무턱대고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우리는 처음 이렇게 만났다.


*

그(이하 J)는 근사하게 생긴 서른 살 청년이다.

세련된 옷맵시, 서글한 웃음이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2시간 후, 다시 기차역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후 헤어졌다.

J는 숙소를 잡은 뒤, 잠시 관광을 나온 터였으니

내가 숙소를 잡고 나서 다시 만나 맥주 한 잔을 하기로 한 게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나는 그 때 여전히 짐 가방 3개를 가지고 있었다.

숙소를 잡지 못하여 그의 호텔에 짐을 맡겨 둘 터였다.

가방이 없으면 다운타운에 가서 숙박을 찾는 게 훨씬 쉬울 테니.


함께 생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그는

며칠 동안 심심하게 지내던 여행인데, 한국인을 만나 반갑다고 했다.

우리는 예정 시간보다 훨씬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마음을 나누었다.

나를 부르는 호칭이 '희석씨'에서 '형님'이 섞이여갔다.

그도, J도 기분이 좋았던 순간이었으리라.


11시 30분이 되었다. 그가 그냥 오늘 밤 함께 자자고 한다.

예상보다 늦은 시각이라,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후, 우리는 빈에서 3박, 프라하에서 1박을 함께 지낸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


*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매우 편안하고 즐거웠다.

나도, 그도 서로를 잘 배려했던 까닭이다.

서로를 배려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도 아쉬운 점 하나 느끼지 않았다는 점에서 확연히 알 수 있다.

참 고맙고 괜히 기쁘기도 한 일이다.


그는 맥주를 아주 좋아했다.

나는 그렇지 못하지만

기꺼이 그와 맥주잔을 밤늦게까지 기울였다.

그가 떠나는 날에는 낮에 두 번이나 맥주집에 들르기도 했다. 하하. ^^

이것은 J를 향한 나의 작은 배려다.


나는 J 덕분에 4일밤을 호텔에서 묵었다.

침대가 하나일 때는 객실 바닥에서 자기도 했지만

숙박료를 절감한다는 차원에서 개의치 않았다.

J가 조금도 싫어하거나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더라면

나는 결코 4일밤 씩이나 그에게 신세를 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J가 보여 준 나를 향한 큰 배려다.


J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좋았던 것은

우리는 더불어 보내는 시간과 홀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시간의

조화를 기가 막히게 잘 맞췄다. ^^

하루 중 7~8시간을 우리는 각자 여행하다가 다시 만났다.

함께 식사를 하고 저녁 시간을 보냈던 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인 나는 늦게 자도 7시 30분 정도면 깼다.

7시 전후로 일어나면 내가 먼저 호텔을 나선다.

그는 푹 자는 편이다. 우리는 늦은 오후에 함께 만난다.

어떤 날은 함께 시내까지 가서 구경을 하기도 한다.

고독의 자유와 동행의 즐거움 사이에서

아주 기막힌 균형을 이뤄낸 것 같아 참 고맙다.


J는 프라하 - 빈(3박) - 부다페스트 - 프라하(1박)의 일정이었다.

빈에서 만나 그는 부다페스트로 가고 나는 좀 더 빈에 머물렀다.

헤어졌다가 다시 프라하에서 만날 때는 어찌나 반갑던지. ^^

그리고 이튿 날, 한국으로 떠나는 그를 배웅할 땐 어찌나 아쉽던지.

J를 태운 공항 버스가 출발할 때 마음이 짠했다.


그는 삼성동에 산다. 나는 이웃 동네 역삼동이다.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지금 생각해도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끝까지 그에게 존대를 한 내게

J는 "한국에서는 말 편하게 하세요"한다.


J에 대한 글을 쓰니 그가 보고 싶다.

한국에 돌아가면 며칠 내로 그를 만나 맥주잔을 부딪치고 싶다.


(그의 사진을 올리고 싶은데, 동의를 구하지 못하여 참는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 빈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

이정석의 노래 '사랑하기에'가 시작되었다.


여행 단상을 정리 하던 나는

노랫말이 나오자마자 얼어 버렸다.

어린 시절, 술래잡기 놀이를 하다

'얼음'이 되어 버린 것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 밭의 푸르른 싱그러움이

빗물로 인해 더욱 진해졌다.

이것은 창밖의 풍광이 보일 때다.


내 곁에 머물던 그녀를 생각한다.

어쩌면 나를 좋아했는지도 모를 그녀를.

나를 초대해 준 그녀의 마음이 고와서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예뻐서

때로는 손을 잡아 보고 싶었고

때로는 꼬옥 안아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싶었고

그녀를 아껴주고 싶었던 게다.

이것은 그녀를 향한 배려일까, 나의 소심함일까.

사랑을 향한 순수한 마음일까, 사랑을 모르는 무지함일까.

이것은 마음 속의 풍광이 보일 때다.


창밖의 풍광이 보이지 않다가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비는 오래지 않아 그쳤다.

작은 역을 지나치는데, 가만히 보니

역 안의 모습이 바뀌었고

이정표 색깔도 바뀌었다.

아마 오스트리아로 접어들었나 보다.

새로운 나라에서의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로 넘어설 때,

겨우 선 하나 넘어섰을 뿐인데

풍광이 참 다르다는 사실에 감탄했었다.

오늘은 무지 빠른 속도로, 여권 검사도 하지 않고

국경을 넘어섰다.

국경을 경계로 언어가 바뀌고 문화가 바뀐다.

사랑하는 방식도 국경처럼 바꿔 볼 수는 걸까?


나는 늘 비슷한 사랑을 했다.

대상이 바뀔 뿐, 나는 바뀌지 않았다.

5년을 사귈 때에도, 1년을 사귈 때에도 비슷했다.

힘들게 했던 나의 문제는 늘 그것이었고,

그녀를 기쁘게 하는 나의 장점도 늘 이것이었다.


나를 더욱 나답게 빚어주는 그녀를 만나야 하고,

그녀를 더욱 그녀답게 아름다워지도록 돕는 내가 되어야 한다.


그녀를 힘들게 할 여지가 있는 나의 상처를 치유하자.

나의 성격을 깊이 이해하는 일은 그녀를 현명하게 사랑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노력들은 나의 사랑이야기에 도약을 만들어낼 것이다.


국경이 바뀔 때마다

언어가 달라지고, 새로운 풍광이 펼쳐지는 것처럼

날이 더할 때마다

조금씩 성장하고 좀 더 아름다운 사랑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어느 새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쨍, 하고 햇살이 내리쬔다.

창밖의 풍광이 다시 예뻐졌다.

내 삶에 저런 예쁜 사랑이 펼쳐지기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 여행 둘째날. 8월 14일(금)

류블랴나에서 빈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정리는 버리는 것이고,

정돈은 남은 것들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오늘은 정리 정돈에 대한 생각이 정리 정돈되었다.


1.
일행과 헤어지면서

가방이 두 개 더 생겨났다.

몸을 힘들게 할 만큼 짐이 무거워졌다.

더해진 가방 안에 든 것들은 먹을거리 혹은 소모품이기에

며칠만 고생하자는 생각으로 들고 다니는 중이다.


짐을 하루 빨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류블랴나 역으로 향하는 길에서였다.

몸이 힘든 것은 견디면 그만이지만, (꽤 힘들긴 했다)

무게를 감당하느라 풍광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것이 뻐근한 어깨보다 더욱 속상했다.

류블랴나 역으로 10여 분 동안 걸으면서

본 것은 신호등과 멀리 보이는 기차역 뿐이었다.

머리 속은 어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 뿐이었다.

과정을 즐기지 못한 채 목적지에 다다르게 되면 절반을 잃은 것이다.


오른쪽 건물이 류블랴나 기차역



여행 중에는

있으면 편리하거나 좋지만

없어도 문제되지 않은 것은 버려야 한다.

물티슈, 다섯 벌을 초과하는 옷, 고향 식품 등.

그래야 몸을 가볍게 할 수 있고,

몸이 가벼워야 보아야 할 것들을 볼 수 있다.

(여행자마다 버려야 할 품목들이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다양성이고 개성이다.)


삶은 여행이기에

이 얘기는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버릴 것을 어서 빨리 버려야 한다.


어깨 위에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운 까닭은 간단하다.

너무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깨위에 짊어진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신을 탓하지 말 일이다.

세상과 신이 준 삶의 무게는 견디고 즐길 만큼의 적당한 무게다.

다만 스스로 정한 한계와 구속으로 지나치게 무거워진 게다.

혹은 지나친 욕심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갖게 된 짐이다.

그러니 문제를 일으킨 원인 제공자는 자신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점에서 절대로 예외는 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다.


물건을 단순화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깊게 하자.

외면하고 있던 문제가 있다면, 직면하여 해결해 버리자.

그리하여 어깨 위의 무게를 가볍게 하자.

정리는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중요하다.

중요한 것만은 남기는 과정이기에 그렇다.

버리지 않고 정돈하는 것은 어리석다.

정리가 먼저이고, 정돈은 그 다음이다.


2.
있으면 아름답거나 훌륭한 것이라면

그것을 정돈하고 가꾸어라.

정돈이 필요한 까닭은 필요한 때에 즉시 활용하기 위함이다.

가꾸어야 하는 까닭은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함이다.


슬로베니아의 집들은 무지 아름다웠다.

화려한 부잣집이 아닌 서민들의 집들이 모두 아름다웠다.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만나는 작은 집들의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오늘 기차를 타고 빈으로 향하면서

슬로베니아의 시골 집을 참 많이 보면서 거듭 느끼는 점이

집들이 참 아름답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이 집들을 아름답게 하는지 들여다 보았다.


그 까닭은 집집마다 아름다운 꽃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모든 집들의 창가 발코니에,

집을 둘러싼 울타리 아래에 꽃들이 피어 있었다.

지금껏 내가 찍은 사진들을 봐도 그랬다.

아름다운 꽃들이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게다.




아름다운 것이라면 버려서는 안 된다.

아름답고 훌륭한 것은 더욱 가꾸어야 한다.

편리하거나 좋은 것은 감탄을 창조하지 못한다.

아름답고 훌륭한 것만이 그것을 해 낸다.

세상에 감탄을 더하는 것이라면 의미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항상 유지되도록 가꾸고 보살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면,

오래 유지되도록 가꾸고 손질을 해야 한다.

그것의 활용에만 신경을 쓸 일이 아니라,

유지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야 한다.

또한 언제라도 활용할 수 있도록 잘 정돈해 두어야 한다.


3.
빈을 향하여 달리는 열차 안에서 졸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계를 보니, 30분 정도가 지났다.


잠에서 깬 것은 비몽사몽 중에 어떤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는 다시 맞이할 수 없는 날이 될 것이고,

이미 나는 후회스럽지만 돌아갈 수 없는 수많은 어제들을 가졌다는 생각.


가장 먼저 정리하고 정돈해야 할 것은 나의 삶이다.

삶이야말로 어떠한 자연 풍광보다 아름다울 수 있음에,

동시에 어떠한 쓰레기보다 악취가 날 수 있음에,


중요한 일은 미루면 안 된다.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대충 찍은 사진을 모두 지웠다.

이것은 사소한 일이지만, 중요한 일이다.

그저 카메라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돌보는 것이다.


모든 형이상학적인 생각의 실천은

형이하학적인 요소들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집을 정리 정돈하거나

창고를 깨끗이 청소하는 것은 중요한 활동이 된다.


작은 것들부터 시작해야 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떼어야 하고,

한 권의 책도 첫 문장을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대한 꿈의 시작도 작은 하나의 활동이기에

오늘 나의 하루는 꿈으로 가는 중요한 여정이다.

그 여정이 힘겹지 않도록 정리 정돈에 힘써야겠다.

너무 무거운 짐을 메지 않도록,

더욱 아름다운 여정이 되도록.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저술 활동과 강의 등 일 외에 나는 매년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여 3개월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2004년에는 명나라 시대의 중국 미술에 몰두했다. 일본에 관해서는 수묵화를 소장할 정도로 잘 알면서도 일본에 큰 영향을 끼친 중국을 잘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3년마다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의 전집을 천천히 주의깊게 다시 읽는 것' 같은 일이다. 이는 몇 년 전에 끝마친 일인데, 나는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발자크의 대표작인 <인간희극> 시리즈에 몰두했다.

- 피터 드러커 『나의 이력서』 p.13


강연을 하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된 것은 행운이고 축복입니다. 직업에 천함과 귀함은 없습니다. 강사와 작가는 십여 년 전부터 꿈꾸던 직업이었음을 말씀드리는 게지요.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찾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행운과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허나, 저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한 적은 없답니다. 아직은 작가라고 소개할 만큼의 글을 써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외여행을 다녀 온 후에 귀국할 때 작성하는 세관신고서에는 직업란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곳에다 '작가'라고 쓸 날이 오리라 믿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나 비법은 없습니다, 성실한 노력이 아름다운 성과를 안겨다 줍니다. 어쩌면 나는 아주 단순한 비결을 전하기 위해 공부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아직 그럴 듯한 성공을 이루지 못한 지금의 내가 "성공으로 가는 길은 단순합니다. 자신이 걸어야 할 방향을 알고 그 길을 성실히 걸으면 됩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잘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그건 네가 아직 세상을 잘 몰라서 그래. 성공으로 가는 길은 그리 단순하지 않아. 나는 그 비법을 찾아내고 말거야."


제가 지금까지 읽고 생각한 바에 의하면, 대가들이 전하는 비결은 단순하고 명쾌한 것이었습니다. 전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비범한 것들은 우리네 평범한 일상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 비범한 사람들은 비범한 시각과 생각의 힘을 지닌 것이지, 우리와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허나, 회의적인 사람들은 진짜 성공의 요인을 감추어 둔 채,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를 하는 까닭은 숨어 있는 진리를 찾아내고자 함이 아닙니다. 진리는 빛 가운데 있는 것이지,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이 아닙니다. 단순한 비결을 설득력 있게 전하는 데에 논리보다 화자의 명성이 중요한 경우가 많음은 아쉬운 일입니다.


산업교육 강사나 문필가로서 제가 명성을 얻게 된다 해도, 저는 지금의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말을 할 것입니다. 아마 그 때도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할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 삶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다, 몰입하지 않으면 자기 재능을 발견할 기회조자 얻지 못한다. 몰입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이야말로 자기를 발견하려는 이들의 핵심 활동이다 등. 지금보다 좀 더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제 말을 귀담아 듣겠지요.


드러커는 최고 지성의 단계에 오른 거장입니다. 그는 3년마다 공부의 목표를 세우고 집중적으로 독서를 합니다. 또한 매년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여 3개월간 집중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평생 자신의 지성을 연마한 방법입니다. 중요한 단어는 목표와 집중입니다. 목표를 세워라, 그리고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줄곧 들어왔던 말입니다. 늘 함께 하는 것들은 그것의 소중함을 종종 잊게 됩니다. 부모님, 친한 친구, 그리고 (식상한 표현이지만) 공기 등이 그렇습니다.


망각의 리스트에는 단순한, 그러나 훌륭한 교훈도 포함됩니다. 거짓말 하지 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 시간을 아끼라, 성실은 훌륭한 미덕이다 등. 그리고 드러커의 조언, 목표를 세워 집중적으로 공부하라까지. 평생 학습을 꿈꾸는 이들이 드러커의 평범한 조언을 금과옥조로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럴 것입니다. 동기 부여는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로는 삶의 변화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이론이라도 실천해야 합니다. 이 글을 쓰는 곳은 오스트리아 빈 외곽에 있는 드러커의 생가 앞입니다. 감회가 새로운 것은 당연하지요. 하지만 삶의 변화는 새로운 감회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드러커의 공부 방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것입니다. 저는 변하고 싶고, 성장하고 싶으니까요.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 여덟째날 (8월 13일 목요일)

홀로 남겨진 류블랴나에서.




일행들과 헤어진 나는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에 내렸다.

아마도 스탕코(운전기사)가 다운타운에 내려 주었으리라.

그러니 시내 중심 어딘가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도로에는 BUS 전용 차로를 알리는 글자가 쓰여 있다.

알 수 있는 문자라서 반갑다.

건물에 쓰인, 이정표에 쓰인 다른 모든 글자는 낯설다.

'Ljubljana(류블랴나)'라는 글자만이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텍스트다.


건물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을 바라본다. 매혹적이고 고독하다.

매혹과 고독은 내 여행을 설명하는 좋은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귀환한 그들에게, 혹은 일상의 여행자들에게는

나의 유럽 여행은 매혹적일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많은 부분 매혹적이다.

허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어쩌면, 여행자(나)는 지독히 고독할지도 모른다.




버스 정류장이 바로 옆에 있었다. 번호를 확인한다.

1번, 3번,

어떤 버스도 우리 집으로 가는 번호는 없다.

내가 아는 곳으로 가는 버스도 없다.

아는 곳이 없는 곳, 아는 사람도 없는 곳,

나는 이 곳 류블랴나에 서 있다. 나는 여행자인 것이다.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음을 사방이 알려준다.


이.제. 나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야 할까?"

이것은 삶을 살아가다 머리가 커졌을 때

던져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은 나의 소원을 묻는 것이었다.

"가고 싶은 곳이 어디니?"

대답할 수 없었다. 류블랴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길 가에 내려 둔 배낭을 바라본다. 4개의 가방들.

내가 들고 온 가방 2개, 일행이 남겨 준 음식이 든 가방 2개

저 2개의 가방에는 그들의 애정, 선생님의 배려가 들어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동양인 보따리 장수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보따리 장수로 보이든,

낯선 이방인으로 보이든,

확실한 것은 나의 배낭여행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오늘 가야 할 곳도, 머물 것도 정해지지 않은

살아 숨쉬는 Live 배낭여행 말이다.


배낭을 들쳐 짊어졌다. 무겁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여행자에게도 해야 할 일은 있다.

무작정 걷는 것. 걸으면서 새로운 세상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가방이 무거워 오래 걷지 못하고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큰 나무를 찾았다. 그는 오랫동안 그늘을 줄 것이다.

문득, 나도 누군가가 쉴 만한 그늘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고 싶다,

내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짓게 될 일은 하지 않고 싶다는 등의 생각이 들었다.

쉴 만한 그늘을 선사하려면 먼저 힘껏 자라나야 한다. 큰 나무가 되어야 하니.




내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는 관심 없다.

나무는 자기 종자만큼 클 것이고

나는 내 그릇만큼 클 것이다.

다만, 내가 갖고 태어난 그릇을

다 활용하지 못할까 염려될 뿐이다.

금그릇이면 좋겠지만 은그릇이어도 괜찮다.

아니 철그릇이어도 좋다.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다.

어떤 그릇이든지 나는 깨끗한 그릇이고 싶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물 한 모금 건넬 수 있을 테니.


누군가에게 바람 한 점 주기를

물 한 모금 주기를

그런 삶을 꿈꾸어 본다.

이 큰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내가 이 벤치를 택한 건

큰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왠지 나는 오래 앉아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해가 이동한대도 내가 따라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간이 필요했던 게다.


이런 생각들로

집도 없는 나의 형편도, 배고픔도 잠시 잊었다.

몰입은 이런 것이다. 형이학적인 문제들을 잊게 만든다.

자신은 창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소모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몰입은 균형을 곁들일 때 더욱 멋진 것이 된다. 어려운 일이다.


현실로 돌아온다.

가만히 주변을 둘러본다. 여긴 어딜까?

저 사람들은 어떤 언어를 사용할까?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배가 고파오니 일단, 밥을 먹고 생각하자.

햇반과 참치캔을 땄다. 여행이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하하.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123

보보

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