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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일과 나는 별개다.
필수적인 것인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부담스런 고역이 되고
일을 자신과 동일시하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회의하거나 과장하게 된다.

일은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기에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로부터
배우기도 하고 제한 당하고 있기도 하다.

일은 밥과 의미를 제공하는 행복의 원천이다.
경제적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일이 주는 기쁨이고,
세상으로의 공헌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일이 주는 행복이다.

일은 자신을 발견하고 꿈을 실현해 가는 유일한 길이다.
자기 발견은 평생 동안 이뤄지는 것이고, 꿈은 일을 통해 점점 강해질 때 실현된다.
현장에서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고 성찰하는 과정 없이는 자기 발견도 없다.

일은 좋은 것이지만, 다른 가치들과 조화를 이룰 때 더욱 아름다워진다.
자신의 일을 찾은 이들은 온갖 좋은 것을 얻는다.
그러나 일과 삶의 균형을 잃는다면, 일의 효용도 떨어진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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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신뢰』를 읽으면서, 저자와 나의 사상이 자연스레 비교되었습니다. 어떤 대목에서는 나란히 흘러갔고, 어떤 대목에서는 흐름이 갈라지는 것을 지켜 보는 것이 퍽 재밌었지요. 한번쯤 정리해 두는 것이 유익할 것 같아, 늘 써 오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자유롭게 나의 철학에 대하여 써 보았습니다. (이런 저런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그쳐 불친절한 글일지도 모르겠군요.) 다음 글에서는 『자기신뢰』를 읽고 난 소감과 견해를 곁들인 리뷰를 올리겠습니다. 에머슨과 『자기신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저 한 청년이 자기 생각을 정립해 가는 과정을 슬쩍 엿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혹, 용어가 생소하면 글의 아래 개념정리를 참고하세요.)

*

나는 관념론자다. 살아가다가 어떤 문제로 고민할 때면 정신과 가치, 삶에 대한 태도를 문제의 본질로 여긴다는 말이다. 누군가와 '고민 상담'이라는 것을 할 때도 그가 놓치고 있는 태도의 문제와 정신적인 가치를 잘 집어내는 반면, 그가 발딛고 있는 현실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과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어 이상과의 균형을 찾게 된 것은 구본형 선생의 영향이 컸다. 일상이 중요함을 깨달으면서 나는 지식의 현재적 가치, 도구적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다. 좋은 지식을 얻게 될 때마다 '그것을 어디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삶을 해석해 주는 지식보다는 변혁시킬 수 있는 지식을 추구했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실용주의를 추구했다. 관념론적 성향과 실용주의적 성향은 첫 책에서 어느 정도는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에서 주장한 것은 '책과 독서'가 아니라, 독서를 통한 '삶의 도약과 행복'이었다.

실용적인 지식만을 추구하다 보면 종교적 믿음과 도덕적 가치가 소외된다. 나는 여기서 윌리엄 제임스를 따른다. 그는 미국의 실용주의를 대중화시킨 걸출한 지성인인데, (실용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종교적 믿음과 도덕적 가치의 유용성을 인정했다. 내가 윌리엄 제임스의 견해에 동의하는 것은 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종교적 교리(지식)가 종교적 체험(실천)을 더욱 강화시킨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는 (도덕적인 차원에서) 최선이 아닌 차선을 주장할 때가 있다. 최선을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때이다. 이것은 현실을 감안한 지혜로운 모습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도덕적 타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이 때, 나는 다시 관념론자의 모습으로 달려들 것이다. '비현실적인 최선'을 실현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실용주의자의 접근 방법으로 관념론자의 삶을 살겠다는 말이다.

타고난 본성이 이상적이고 관념적이고 낙관적이고 물질보다는 정신 세계를 중시하는 나를 관념론자라 칭했다. 20대의 나는 분명 관념적인 사람이었다. 나에게 '관념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의미다. 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문제를 물어 보면, 그것과 관련된 '나의 삶'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생각과 견해'를 정리하여 들려 주었다. 20대 후반이 되면서, 스승의 도움으로 서서히 관념적인 삶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일반적인 생각과 견해'를 정리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나의 삶'을 들여다보고 현실을 돌아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교육과 훈련을 통해 관념적인 삶에서 벗어나 현실 세계에 눈을 떠 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실용주의를 추구하게 된 것은 삶의 실천을 중요시하는 기독교의 가르침 덕분이기도 하고, 구본형 선생으로부터 배운 일상의 중요성에 대한 자각 때문이기도 하다.

에머슨은 자신의 철학을 관념론으로 칭했으나 관념론자들의 주장이 현실과 거리가 먼 경우가 있음도 꿰뚫고 있었다. 에머슨이 강조한 것은 개인의 자기 신뢰다. 그는 물질적 세계를 초월하는 인간의 능력을 믿었고, 이런 능력을 의식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있음을 주장했다. 그에게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차이를 하찮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거대한 존재"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문화와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최악의 가치로 여기어, 『자기신뢰』에서 불순응주의자가 되기를 권한다. "사회는 개인의 자신감을 혐오한다. 사회는 실체와 창조를 반기지 않으며, 명분과 관습을 중시한다. 개체적 인간이 되려는 자는 불순응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사건과 환경의 포로가 되지 말고, 초연한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다. 내가 여전히 사회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좀 더 자신감을 가져야 함을 에머슨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았다.

자유를 추구하며 나의 생각대로 인생길을 걸어가는 독립성을 에머슨에게 충분히 배우고 실천해야 함을 절절히 느꼈다. 그로부터 독립성을 배운 후에는 어떤 길로 가야 할까? 아마도 에머슨에게서 한껏 머무른 후에는 그를 떠날 것이다. 에머슨은 정통 기독교 교리에 집착하지 않았고, 나는 기독교 복음주의의 교리를 더욱 깊이 공부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때의 내 관심은 종교적 믿음을 지니면서도 합리적인 철학인이 되는 것이리라. 철학을 종교의 시녀로 전락시킨 스콜라주의를 지양하며 신본주의적인 철학을 추구하는 것이 나의 길이 될 것이다. 종교적 믿음을 지녔으면서도 이성을 도구로 하여 철학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내 사유의 흐름이 될 것이다. 상대주의를 인정하지 기독교 유신론의 배타성을 생각할 때, 내가 한 말은 모순되지만, 역설과 모순 속에 숨겨진 진리와 지혜를 발견하고 싶다.

이성의 한계를 잘 지적한 복음주의자들의 견해를 공부하는 동시에 이성의 힘을 주장한 철학자들을 연구하여 그 건강한 균형점을 찾아보고 싶다. 그 곳은 에머슨이 보여 준 자기 신뢰, 복음주의자들이 보여 준 자기 부인을 모두 100% 받아들인 생각이 될 것이다. 두 가지의 상반된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가능성을 가졌다는 말은 두 가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없이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한없이 추해질 수 있는 가능성. 

이런 고민을 하는 동시에 윌리엄 제임스와 존 듀이의 실용주의 혹은 도구주의를 쫓아갈 것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내용들이 일상 생활에 유익한 지식인지를 물으며,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삶을 위한 지식을 추구할 것이다. 아마도 그 대목에서 니체의 철학을 한껏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는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하여, 특히 삶의 실재를 두고 철학을 하였기에. 이 모든 생각들이 과연 쓸 만한 것인지를 내 삶 속에서 실험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실험은 책상이 아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나는 결국 삶을 구경하는 관조자가 아니라, 길을 떠나는 여행자가 될 것이다. (실천적 지식인들은 나에게 작은 영웅들이다.)


<글을 위한 개념정리>
관념론
: 정신, 이성, 이념 따위를 본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것으로 물질적 현상을 밝히려는 이론.
실용주의 : 실제 결과가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철학 사상. 행동을 중시하며,
                사고나 관념의 진리성은 실험적인 검증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
관념적 : (실재와 현실을 간과한 채) 자신의 이상적인 견해나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일반론만을 늘어 놓는.
복음주의 : 복음을 받들어 실천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주의. 특히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강조.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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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나와 함께한 것은 꿈을 이룬 자만이 전할 수 있는 류의 잔잔함 감동과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한 교훈, 그리고 즐거운 유머였다. 저자는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대학교수다. 그는 위인이 아니었다. 젊은 날의 그는 고집이 세고 예절이라고 모르는 독불장군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생은 그에게 세월과 함께 연륜과 지혜를 가져다주었고 그 연륜과 지혜는 갑작스런 죽음 통보로 인해 더욱 깊어졌다. 저자는 세상과 헤어지기 전, 가족, 동료, 제자들과 작별할 수 있는 수개월의 시간을 아름답고 재.미.있.게. 보냈다. 나는 분명 '아름답고 재미있게' 라는 표현을 썼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저자의 삶을 공감하지 못했노라고 비판하지 말기를. 이 책에는 정말 유머와 아름다움이 있다. 시한부 인생이 아닌 내가 보기엔 참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조금 더 긴 '시한부 인생'을 불멸성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내게 의미 있는 독서 여행을 선사했다. 적어도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저자의 불완전함이다. 이것은 내게 자유를 주었다. 그는 진솔하게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한 점을 드러내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용기가 있다면 보다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부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착각일수도 있다. 전혀 모르고 있는 대목도 있을 테니 ^^) 누군가가 나를 진지하게 비판할 때, 그 비판은 어느 정도 정당하며 그것은 세상에서 나 혼자만 아주 나쁜 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훌륭한 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부분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절절히 인정할 때 나는 자유를 만끽한다. 저자에게서 자신의 전부를 받아들인 자의 자유를 보았다.

삶의 유쾌함이 그 두 번째다. 이것은 내게 유머를 주었다. 나는 의미도 없고 그다지 웃기지도 않는 유머를 자주 한다. 이런 유머는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웃음을 준다. 나는 나를 웃기려고 유머를 하는 셈이다. 누군가를 웃겨 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웃긴 얘기를 찾아본 적은 없었다. 다만 순간마다 떠오르는 유머를 던지며 즐거워한다. 문제는 나만 웃는다는 것이지만, 썰렁함을 즐기는 나를 보며 사람들도 따라 웃어 준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웃는... ^^
강의를 하다가도 자주 유머가 떠오르는데, 이 때는 참아야 한다.  대부분은 그것이 나만을 웃기는 유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내뱉는다. 나는 즐거워서 웃고, 사람들은 썰렁해서 비명을 지르며 웃는다. 저자는 이런 나보다 재밌는 사람이다. 책은 교훈을 전하며 웃음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나는 7년 전 직장 동료가 한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때로는 유쾌함이 진지함을 능가한다." 7년 동안 이 말을 품고 살아보니 조금 수정하게 되었다. "많은 경우, 유쾌함은 진지함을 능가한다."

세 번째는 이 책의 유익이다. 책은 삶과 죽음에 관하여 유익한 조언을 던져 준다. 옮긴이의 말처럼 저자는 죽음을 극복한 영웅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우리들 인생의 교사다. 책에는 지혜롭고 재미있게 사는 교훈들로 풍성하다. 곱씹고 싶은 문장들도 더러 있었다. 나에게 의미가 되어 준 몇 가지 문장을 꼽아본다.


-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다루기 어려운 테크놀로지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칠 수 있을까.(p.203)
- "아주 간단해. 언제라도 좋으니까 금요일 밤 열시에 내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봐. 그럼 비결을 말해주지."(p.213)
- 정직함은 도덕적으로만 옳은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기도 한 것이다.(p.223)
- 아버지는 육체노동은 어떤 사람에게도 비천한 일이 아니라고 믿었다.(p.232)
- 만약 당신이 두 문화 사이에서 당신만의 자리를 찾아낸다면, 두 세계의 좋은 점들 전부를 당신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p.234)


넷째는 개인적인 추억이다. 책이 내게 안겨다 준 또 하나의 의미는 사별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다. 나는 저자가 어떤 측면에서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도 자신이 행운의 주인공임을 인정했다. "행운이란 단어는 지금 나의 상황과는 좀 어울리지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버스에 치여 죽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행운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암은 나에게 만약 내 운명이 심장마비나 교통사고였다면 불가능했을, (아내) 재이와 중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p.273)
아! 어머니는 적어도 죽음의 순간에서는 저자보다 운이 없는 분이셨다. 지독하게도 운이 없으신 분이셨다. 돌아가시는 날 아침에는 아들의 등교 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하셨다. 전날 밤에는 아들의 웃는 모습이 아니라 찡그리고 불만으로 입이 튀어나온 모습을 보셔야 했다. 결정적으로 아들에게 한 마디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하신 채 이별하셔야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죽음에 관한 행운이라고는 조금도 누리지 못한 채, 대형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서로에게 안겨 있던 그 순간, 재이가 무언가 내 귀에 속삭였다.
"제발 죽지 말아요."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대사였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한 말이었다. 나는 그저 그녀를 더 세게 안을 뿐이었다. (p.278)


저자가 아내와 보낸 이 슬픈 장면이 나는 부러웠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한 번 껴안지 못한 것이 늘 후회로 남아 있기 때문일까. 오래 전부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이 더 이상 어머니를 잊어가기 전에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전해 듣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에 대한 보다 완성된 그림을 갖고 싶었다. 망자에 대한 추억은 각색되기 마련이다. 흔히 보다 아름다워진다. 나는 어머니를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의 어머니에 대해 알고 싶은 게다. 이렇게 하고 싶은 까닭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왠지 내가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었을 때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의 이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길 재촉해 주어 고마웠다.

책의 마지막 유익은 어릴 적 꿈을 진짜 이뤄낸 스토리를 보여 준 것이다. 구체적인 꿈을 가지기 시작했던 어릴 적의 이야기, 이것은 꿈의 탄생이었다. 어른이 되어 자신의 꿈이 이뤄진 이야기, 이것은 꿈의 실현이었다. 탄생부터 실현까지의 모습과 자신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보여 주었기에 꿈에 관한 완전한 스토리다. 저자는 말한다. "마침내 나는 꿈에 당도한 것이었다. 나는 이매지너였다."

저자는 2008년도에 사망했다. 그러나 그가 전해 준 교훈과 감동, 웃음과 눈물은 나의 가슴 속에 머물러 있다. 강연 후,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의 목록에 한 권이 추가된 것에 저자에게 감사 드린다.

                                                                                                                - 2008년 7월 25일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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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을 반가워하는 남자들이 있을까? 이런 궁금증이 드는 것은, 나는 전혀 반갑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인생의 시간을 훔쳐가는 나쁜 도둑놈이었다. 훈련에서 배우는 것들은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내가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에 졸립기도 하다. 게다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심리적 부담감까지 준다. 그저 어서 훈련이 마치기를 바라며 시계를 들여다 본다. 손목시계를 보며 예상보다 훌쩍 시간이 지났을 때에는 기뻐하고, 달팽이보다 느리게 시간이 더딜 때면 한숨이 나온다.

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다. 예비군 훈련 과정에서도 의미를 찾기도 하지만, 이렇게 괴로워하며 시간을 떼울 때도 있다. 10월의 향방작계훈련 때의 내 모습이 그랬다. 가까스로 견디어 내고, 훈련이 마치는 시각이면 놀라운 기쁨이 찾아든다. 원인 모를 뿌듯한 성취감까지 느껴진다. 해냈다는 느낌이 든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토끼뜀을 뛰는 여인의 퇴근 모습을 보았다. 1인 기업가의 삶을 살기 시작한지 3년이 지났으니 그간 퇴근의 즐거움을 잊었나 보다. 예비군 훈련이 그 즐거움을 되살려 주었다. 여인의 토끼뜀에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다. 하하하.

그런데, 문득 이것은 진짜 즐거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냈다는 느낌 속에는 해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저 견디어 그 일을 벗어난 것에 대한 해방감이 전부였다. 이것은 벗어난다는 해방감이지 컨트롤하고 해냈다는 성취감이 아닌 것이다. 다음 달에는 5일짜리 훈련을 떠나야 하는데, 그 때에는 부담감과 해방감을 5일 동안 반복해야 하리라. 5일이 끝난 뒤에는 가장 큰 해방감을 맛볼 테지만 그것은 인생의 진짜 즐거움이 아닌 것이다. 결국 일상에서 승리해야 한다. 일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해방감과 부담감의 반복되는 감정사이클을 벗어날 수도 없다. 일이 지겨워 잠시 탈출하러 떠난 여행 뒤에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무감과 부담감이 찾아든다. 결국 귀국이 즐거운 여행도 일상의 승리를 이뤄가는 이들만이 창조해낸다.

방금 전에 보았던 그 여인의 흥겨움이 '퇴근이라는 해방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하루라는 일상에서 승리한 데서 오는 즐거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예비군 훈련에 대하여 가진 생각들과 직장인들이 자기 일에 대하여 가지는 생각이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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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성은 좋은 것이다. 경제적 독립은 마트에서 쇼핑을 할 때 지갑에 돈이 있는지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기분 좋은 것이고, 정신의 독립은 나만의 사유의 흐름을 따라 삶을 선택하는 자유로운 삶을 안겨다 주었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네 발로 바닥을 기어다니던 내가 처음으로 나의 두 발로 세상 위에 우뚝 섰을 때 느꼈을 법한 뿌듯함과 행복감이 독립성이 주는 선물이다. 나는 스무 살 이후로, 줄곧 독립성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독립성을 지켜 내기 위해 세상과 선한 싸움을 벌여왔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독립성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에는 나의 의무와 소원이 무엇인지 나보다 더욱 잘 안다고 확신하는 어른들의 애정어린 (그러나 부작용이 심한) 조언으로 인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부터는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느라 독립성을 갖추는데 불필요한 시간들을 낭비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신뢰』를 1/3 정도 읽었을 때, 이 책은 내가 독립적인 개인이 되도록 한껏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세상에 나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까닭은 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스스로 자신감이 넘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집 안에서의 자신감'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세상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재능과 가능성을 가졌음을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감의 전부가 아니었다. 집 밖에서는 그 재능과 가능성을 한껏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을 확신있게 전하지 못했고, 스스로 생각하여 얻어 낸 사색의 결론들은 한껏 주장하지도 못했다. 나에게는 '세상에서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난 '집 안에서의 자신감'과 '세상에서의 자신감' 그 사이 어딘가에서 머물러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에 대한, 자신감에 대한 인식론적인 전환이었다.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좀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를 흔들었던 구절 중에 하나를 소개하며 책을 추천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모두 내게 관계된 것이지,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니다. 이 기준을 지키는 것은 일상 생활이나 지적인 생활에서 똑같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세상에는 당신의 의무가 무엇인지 당사자인 당신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므로 이 기준을 지키는 일이 어렵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의견을 좇아 생활하는 것은 쉽다. 혼자 있으면서 자신의 의견에 따라 살아가는 것도 쉽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은 시끄러운 군중 속에서도 온화한 태도로 혼자 있을 때와 같은 독립성을 유지한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자기신뢰』, 이팝나무
   Ralph Waldo Emerson,『Self-Reliance』



※ 한국어 제목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2009년에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세상의 중심에 너 홀로 서라』와 『자기신뢰』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번역 출간하였고, 이전에는 하늘아래 출판사에서 『자신감』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비교하여 읽지 않아 어떤 번역본이 좋은지는 모르겠네요.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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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책을 좋아하냐?

선생님 책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표현하는 자기계발 책들을 싫어합니다. 

우리의 대화는 오래 이어졌다.
처음 만난 그 날, 사이코 같은 그 녀석이 마음에 들었다.
나를 좋게 평가해서가 아니다. 그의 꿈은 원대했고 그의 삶은 치열했다.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가 이상과 현실을 모두 확고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자기 계발 서적 중 일부는 세상을 경쟁적인 세계관으로 바라본다.
자기 경영은 그 변질된 세계관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기 경영은 세상에 깃든 아름다운과 인생에 깃든 교훈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또한 자기 안에 있는 재능과 가능성들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점점 자기다워지는 과정이고 자연스러워지는 과정이다. 
자기 길을 걷는 것은 곧 다른 이에게 길을 내어주는 것이다. 
우리 모두 고유하기에 성공의 자리는 넉넉하다.
모두 다른 일을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자기 경영의 본질적이고 원래의 원리이다.

언제부터인가 적대적인 세상에서 살아남는지를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이 자기 경영이 되었다.
다른 이들의 발언과 평가에 따라 불안해지고 두려워지는 까닭은
세상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과 자신 안의 재능을 발견하는 일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자기 경영이 자연스러움보다는 억지스러움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자신이 타고난 본성과 흥미와 욕망을 모두 의지로 억눌렀기 때문이다.
성공의 자리가 부족하여 남들의 성공으로부터 불안해지는 것은
사람들의 고유성과 다양성에 대하여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 경영은 네모난 바퀴의 수레를 끄는 듯 힙겹다.
이것은 자기 경영은 본질을 놓쳐 피상적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인생살이의 성격이 갑자기 바뀌어 버린 것이다.
고통을 받아들이면서도 힘들어하지 않는 명랑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인생살이인데
고통을 받아들이지 않는 가벼움과 억지스러운 의지로 살아가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자기 경영의 본질은 사람들과 적대적인 관계 설정이 아니다. 
자기 경영의 본질은 욕망과 성향을 거스른 억지스러움이 아니다. 
자기 경영의 본질은 상호 의존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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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이른 아침, 지하철역을 향해 걷다가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도로 경계석에 고인 물이
살얼음으로 덮인 것을 보며 겨울을 느낀다.
겨울이 왔다. 몸은 움츠러들고 가슴이 시리다.

계절의 겨울은 매년 찾아드는 그 즈음에 오지만
인생의 겨울은 불청객처럼 예고없이 찾아든다.
상사의 꾸중처럼 작은 사건으로부터 시작하기도 하고
큰 시련으로 절망과 슬픔의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잘못한 것이면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잠 못 들고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라면 삶이 서럽고 마음이 아파서 힘겹다.
어떤 행동도 더 진행하지 못할 만큼 마음까지 움츠러들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삶이 정체되는 듯 하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인생에 대한 진실과 교훈들이다.
계절과 에너지는 항상 변한다. 어떤 상황도 영원할 수 없다.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상황은 없다.
다만 절망에 치여 무기력함을 느낄 뿐이다.

모든 시도가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용기를 내어 다시 한 번 도전해야 한다.
최악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용기를 내어 용서를 구하고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겨울이 오면 운동 선수들은 동계 훈련을 한다.
삶의 겨울을 맞은 이들에게도 훈련 과정이 찾아든 것이다.
훈련은 하기 싫고 힘든 과정이지만 우리를 보다 나은 존재로 만든다.
우리들을 목적에 걸맞은 사람으로 빚어간다.

훈련을 기꺼이 감당하는 이들만이 승리의 기쁨을 맛본다.
삶의 겨울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지난 날들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모아 둔 자료를 정리하고 편집하고
언젠가 읽으려 했던 책을 읽어 보고, 훌쩍 가고 싶었던 그곳에서 머무는 것.

머나 먼 강진에서의 18년 귀양살이의 고통을 학자적 소명으로 승화시켜
방대한 저술을 남긴 다산 선생의 삶을 기억한다.
억울한 이를 당한 이들이 본받을 만한 삶이다.

자신의 지난 과오를 깊이 회개하며 스스로를 깊이 성찰하여
삶의 방향을 돌이킨 어거스틴의 삶을 기억한다.
잘못을 범한 이들이 추구할 만한 삶이다.

나는 겨울의 청랭한 하늘이 좋다. 
차갑지만 맑고 푸르고 깨끗하다.
찬 기운이 정신을 깨어 있게 한다.
좋은 삶은 벅찬 기운을 주고,
벅찬 가슴으로 걸으며 맞는 겨울 바람은 참으로 상쾌하다.

삶의 겨울을 맞았더라도 움츠러들지 마라.
견디어 내며 고난 속에서 교훈을 찾고 자신을 돌아보라.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생명은 아름답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떨구어냈기에 가능한 일이다.
생을 견디는 본질만 남기었기에 강하다.

혹독한 겨울 추위를 온 몸으로 맞은 자는
머잖아 봄의 기쁨을 한껏 만끽하리라.
더욱 섬세한 감각으로 봄의 기운을 느끼고
더욱 지혜로운 시선으로 찬란한 햇살을 바라보리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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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갑자기 더 행복해지거나 부자가 되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더 평화롭게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난 내 삶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 즐겁다"고 누군가는 말했듯이, 삶의 배움을 얻는다는 것은 삶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삻을 받아들일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데이비드 케슬러, 『인생수업』, 이레
   Elisabeth Kubler-Ross, David Kessler, 『Life Lessons』


『인생수업』은 서른이 넘어 읽은 책인데, 단번에 사랑하는 책이 되었습니다. 삶의 여정에서 지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고, 인생을 이해하려는 이들에게는 귀한 교훈이 되는 책입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편안하게 권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고등학생에게 "깊은 내용이지만 진지한 그대이니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여 추천했던 적이 있지요. 며칠이 지나, 자신을 믿어 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책을 통해 참 많이 배웠다는 회신이 왔습니다. 십대들에게도 인생은 중요한 주제이고, 이 책의 교훈은 사려 깊은 10대들에게도 충분히 전해질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법, 상실과 이별의 수업, 가슴 뛰는 삶을 살기 위한 조언, 용서와 치유에 관한 지혜들을 다룬 10개의 인생 수업은 깊고 넓습니다. 책을 읽으며 얻는 것은 위로와 용기, 자기 이해와 치유, 자존감과 삶에 대한 포용입니다. 수년 동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거짓 미소를 짓지 않으면서도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노력해 왔던 제게 이 책의 메시지는 가뭄의 단비보다 달콤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편지만큼 반가웠습니다.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짧은 인생에서도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너무 늦게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강권합니다. 기회 비용의 개념을 독서에 따져본다면, 이 책을 읽는 순간의 기회 비용은 제로에 가까울 테니까요.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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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 최승호 <오징어 3>

내 연인을 숨 막히게 했던 전적이 있다.
사랑은 구속이 아닌 자유를 주어야 함을
그렇게 실패의 경험 후에서야 깨닫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슴에 새긴다.
사랑은 자유로운 친밀함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한 쌍의 매가 보여주는 자유로움.
오징어 부부가 상대의 뜨거운 심장을 껴안는 친밀함.

사랑은 배우자의 꿈을 꺾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꿈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도와야 한다.
배우자가 잠시 길을 잃어도 그것 또한 꿈을 향한 과정임을 이해하고
신뢰하며 기다려야 한다. 자유로운 실험과 모색을 격려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퍽 어려운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배우자'를 통해 다짐해야 한다.
"그래, 저 사람을 통해 사랑과 기다림을 배우자!"

일하는 방식, 살아가는 방식이 바로 그 사람이다. 스타일이 곧 그 사람이다.
스타일의 독재는 저마다가 지닌 고유성을 망친다.
와우팀장으로서 어려운 일은 그의 방식을 존중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가장 적절한 때에 피드백을 던지는 일이다.

통제하려는 마음에 조급하게 피드백하면 상처를 준다.
서로간에 신뢰가 형성되기 전에 발생하는 일이다.
때를 알지 못하여 지체하다 너무 늦은 피드백을 하면 무용지물이다.
그가 마음을 다칠까 두려워하다가, 혹은
나의 인기를 생각하다가 발생하는 일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것 그 이상이다.
꿈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고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결국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기도 하고
사랑을 하기 위해, 혹은 사랑을 배우기 위해 결혼하는 것이다.

결혼하는 마음, 이것이 와우팀장이 가져야 할 마음이다.
그래도 결혼은 어떤 '여인'과 해야 할 텐데.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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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나의 진짜 모습을 알면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겁이 날 수도 있다.
모르는 것도 많고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 리더들까지도 정직한 피드백을 두려워한다.

한 달 전부터 와우팀원들의 피드백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에서야 와우카페에 공지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정확한 원인을 말하자면 게으름, 두려움, 완벽주의 등이 섞여 있다.) 
나는 내가 잘 하고 있는지를 물었고
변화와 성장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물었다.

부정적인 피드백은 익명으로 해도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팀장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 두려워 부정적인 피드백을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긍정적인 피드백은 말할 것도 없고, 부정적인 피드백도 필요하다. 
그들의 정직하고 진솔한 피드백은 나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직면하기 힘든 피드백이 있더라도 더 나쁜 리더가 되기 전에 울리는 조기 경보로 생각하여
겸손하게 온 몸으로 받아들이리라.

나는 이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믿는다. 
자신을 감추려 하고, 피드백을 회피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감추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감추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착각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성품과 태도가 말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다.
"이미 테이블 위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추고 있다면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 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다 줄 것이라 생각되는 자신의 연약함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받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참 믿기 힘든 명제지만 진실이다.
(연약함을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명제다.)

그러므로 성장하고 싶은 열망을 지니고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있는 이들은
자신을 드러낼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두려움을 내려 놓아도 좋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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