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에 해당되는 글 45건


2010. 네번째 주간성찰
1월 25일~1월 31일

#1. 아! 이 몹쓸 실행력

1월의 마지막 주간은 홀로 보내고 싶었다. 
2010년 12월의 두 주간을 홀로 지내고 싶었는데,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해 1월로 연기하며 마음 속에 품어 둔 생각이다.
여행을 가지 못하면

 


 
#2. 와우수업

우리는


#3. 그 녀석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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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개봉일 : 2008. 2. 28
감독 : 김정권
출연 : 차태현, 하지원

관람 : 2008년 3월 7일, 최창연

평점 : ★★★★

간단평 : 바보 승룡이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순수했다. 승룡이는 동생 지인이와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친구 지호, 이 두 사람을 좋아했다. 동생 지인이를 바.보.처.럼. 사랑했다. 동생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늘 지켜주었다. 그리고 지호를 순수하게 사랑했다. 승룡이는 행복했다.


줄거리 : 승룡이는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 혼자 토스트 가게를 하며 동생 지인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동생의 학교 앞 작은 토스트 가게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승룡이는 동생이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다. 늘 행복하고,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승룡이는 매일 저녁이 되면, 동네가 한 눈에 보이는 토성에 올라 ‘작은 별’ 노래를 부르며 10년 전 유학간 짝사랑 지호를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호가 10년 만에 귀국했다.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승룡이는 지호를 첫 눈에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처음엔 기억을 못하던 지호도 살며시 살아나는 추억과 함께 자신의 곁을 맴도는 승룡이의 따뜻함에 점점 다가가게 된다. 늘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동생 지인이와 10년을 기다린 첫사랑 지호를 매일 보게 된 승룡이는 생애 최고의 행복함을 느끼며 더욱더 즐겁게 지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바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상하게 대하다가도 자신의 자녀에게는 욕도 하고 때리기도 하는 부모님들. 친구들에게는 친절하다가도 자신의 애인에게는 툴툴거리고 매정하게 대하는 젊은 청춘들. 대부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사랑의 능력을 표현하고 전하는 것에 서툴다. 마치 사랑애 어떤 장애를 느끼는 것처럼.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번 사랑의 실체를 눈으로 보았다. 그 중 하나는 군에 입대하던 날에 외할머니가 보여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외할머니의 손자에서 막내아들이 되었다. 외할머니는 딸을 먼저 하늘에 보낸 깊은 슬픔과 손자를 향한 가련함을 수없이 느끼셨이리라. 나를 향한 외할머니의 사랑은 지극했다.

만 25의 나이에 입대하던 날, 나는 밤새 친구들과 보내다가 아침해와 함께 집에 들어갔다. 외할머니는 밤을 지새우며 나를 기다리셨다. 군대에 입대하는 전날 밤, 손자와 함께 이야기라도 하시려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할머니는 "야 이 무정한 놈아.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아냐"고 소리를 지르실 만도 했다.  화가 나실 만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왔냐고, 잘 왔냐고 맞아주셨다. 부드러운 걱정으로 화를 표현하셨고 할머니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밤새 나를 기다리셨을 것이고, 누구보다도 손자의 늦은 입대를 염려하셨을 것이다. 할머니의 사랑은 지극했지만 극성의 선을 넘지 않았다. 십대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의 도움과 사랑이 필요하다.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한 세심한 사랑이어야 한다. 부모님의 십대 자녀를 향한 사랑은 쉽지 않다. 안내라고 해 주면 거절당하고, 도와 주려고 하면 간섭이라고 오해받는다. 민감한 십대를 향한 사랑은 정서적으로 지원해 주고 말없이 사랑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외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이런 사랑을 보여주셨다. 외할머니는 "너를 믿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나는 외할머니께서 나를 신뢰한다는 것을 안다. 신뢰는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태도를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이다. (외삼촌과 외숙모도 나를 신뢰해 주셨다.) 영화 <바보>를 보며 말없이 신뢰해 주고, 정서적 지원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에서 항상 나를 지켜봐 주신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승룡이가 그렇게 자신의 동생을 사랑하였고,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승룡이와 할머니가 오버랩될 때마다 나는 울었다. 사랑은 말을 잘 하는 것이 아니고, 멋지게 차려 입고 함께 식사하는 것도 아니다. 말없이 지켜보는 것이고 신뢰해 주는 것이고, 늘 생각하는 것이 사랑이다. 신뢰와 애정어린 관심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지금쯤 할머니도 내 생각을 하고 계실까?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할머니의 행복이리라. 오늘이 소중해지고, 내 존재가 아름다워지는 순간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위대한 창조자다. 사랑 받는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안녕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그들은 모두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나 역시 바보가 되었다

옷을 사지 않은지 일 년이 넘었다.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양말 하나도 사지 않았다. 얼마 전, 운동화를 보니 군데 군데 떨어졌는데 구입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옷은 늘 그녀와 함께 구입했었다. 잠실 롯데마트에서 우리는 자주 쇼핑을 했다. 그런데, 늘 나와 함께 옷을 골라주던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나는 옷을 구입하는 법을 잊어버린 마냥 그냥 가진 옷을 입고 산다.

인천으로 강연을 갔더니, 언젠가 그녀와 근처의 교회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와 보았던 곳이었다. 그녀가 생각났다. 참여 정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잠깐 2006년 월드컵 얘기가 나왔다. 2006년 월드컵 경기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그녀의 회사 동료들과 함께 보았다. 그녀가 생각났다. 사당에서 4호선을 타고 안산 방면으로 갈 때마다 관문체육공원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산책했던 날이 떠올랐다. 역시 그녀가 생각났다.

어디 과천 뿐이랴, 코엑스몰가 그렇고, 잠실역이 그렇고, 성남이 그렇고, 교회가 그렇다.
어디 월드컵 뿐이랴. 무한도전이 그렇고, X맨이 그렇다. ... 아!

그녀와 함께 있을 때에는 사랑을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고,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그녀의 마음을 몰라주었으며, 화난 감정대로 그녀를 힘들게 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헤어지고 난 후부터 사랑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불필요하다면 참는 법을 배웠고, 그녀의 마음이 어떠한지 깨닫기 시작했으며,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그러나, 이 배움은 너무 늦은 것이리라.

헤어진 후, 참 많이 보고 싶었지만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열 번은 생각했지만 메일도 보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를 잊지 못하는 나를 보며 '집착'인가 싶기도 해서 책을 읽으며 스스로를 진단해 보기도 했다. 집착하는 이들은 기다릴 줄 모른다고 했다. 연락을 참을 줄 모른다고 했다. 옛 연인이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못 견뎌 한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을 참고 기다리는 나를 보며 '집착은 아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친구들은 내게 애정 공세를 퍼부으라고 조언했다. 나의 마음을 전하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내 마음을 전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멀리서 지켜보고 싶었고, 진심으로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소식도 알지 못하여 꼭 한 번만이라도 얼굴 한 번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그녀로부터 신뢰를 잃었다고 생각했고, 나의 애정공세는 그녀에게는 힘겨울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다가 눈이 오면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나는 그녀를 보러 갔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다. 첫눈이 오는 날, 그녀의 집 앞에서 밤 늦게까지 기다렸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 홀로 그 날의 지하철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은 퍽 쓸쓸했다. 올해 초에는 새해 선물을 준비하여 가까스로 전해 주기는 했지만, 역시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나는 사랑할 때 사랑을 몰랐던 바보였다. 승룡이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길 줄 모르는 순수한 바보였고, 나는 뒤늦게 깨달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어리석은 바보가 된 것이다. 영화를 보며 바보 같은 승룡이의 헌신적인 사랑을 보며 참 많이 울었다. 엉엉 울었다. 나의 어리석은 사랑 때문에 울기도 했나 보다. 언젠가 다시 사랑이 오면, 그 때에는 바보 같지 않기를...

- 2008. 3. 7


2년 전, 썼던 영화 리뷰를 공개글로 바꾸며 드는 생각은
내가 인생을 참... 둘러 가고 있구나, 하는 회한이다.
대중가요 가사처럼, 우리는 모두 조금씩은 인생길을 둘러가는 것 같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아 헤맨다.
연인을 떠나 보내고 나서야 사랑을 배우고
젊음이 속절없이 지나간 뒤에야 젊음의 소중함을 발견하다니.
80세의 지혜로 18살까지 서서히 젊어지는 인생이라면 좋으련만. 허허.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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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그 무엇도 변화시킬 수 없다."
-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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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메일 하나를 받았습니다. 
제게 들었던 강연 내용 몇 가지가 울림으로 남아 있어 고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연 후,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도 마음 속의 고마움을 꺼내어 활자로 보내주어 나 역시 고마웠습니다.
메일에는 뭉클한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요즘 당신께서는
하시는 일의 힘겨움으로 인해 에너지가 자꾸만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성스럽게 회신을 보냈습니다. 작은 응원이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 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면서 에너지가 약해지는 때를 맞이합니다. 
살아가면서가 아니라, 하루를 살다가도 기운이 내려가는 순간들이 있겠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기운이 내려가는 순간들을 어떻게 맞고, 어떻게 이겨내고 있으신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 몰입함으로 이겨 내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는 우리들은 어떡해야 하는지요?

다시 나를 돌아봅니다. 나에게 힘을 주는 때가 언제인지 들여다 봅니다.
내가 힘을 얻을 때는... 다음과 같은 경우지요.
아주 소박한 순간들이지만, 제게는 참으로 소중한 순간들입니다.

저는 방금 서점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오늘 아침, 멀리 호주로부터 날아 온 한 통의 메일 때문입니다.
메일의 발신자는 내게 '행복에 관한 동양의 관점을 담은 책'을 추천해 달라 했습니다.
하하하. 제가 어찌 그런 것을 알겠습니까? (제게 이런 어려운 메일을 보내지 마시라는 뜻입니다. 호호. ^^)
발신자는 와우팀원이고, 지난 해 우리는 함께 서점 나들이를 했었지요.
그 때 서점에서, 발신자는 '행복'을 테마로 책을 몇 권 골랐고,
저는 그가 골라낸 책들을 보며 '동양의 견해'를 담은 책도 포함되면 좋겠다 말했지요.
언젠가 필요할 때, 요청하면 제가 몇 권 추천해 드리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언젠가, 가 바로 오늘 아침이 된 것이지요. ^^

1) 저는 이럴 때 힘을 얻습니다.
친한 사람이 저에게 제가 잘 하는 것에 관한 도움을 요청할 때 힘을 얻습니다.
내가 태어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세상의 어느 한 구석에서는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어 도움을 요청한 그에게 고마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제가 잘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요청하면 정중히 거절하지요.
예전엔 그런 것까지 하려다 되려 힘을 잃기도 했지요.
친하지 않은 사람이 제가 잘 하는 것에 관한 도움을 요청하면
돕는 일은 즐겁고 의미 있는 일이기에 수행하긴 하지만 시일이 보다 많이 걸리더군요. ^^

*

서점에 다녀오며, 지하철 선릉역 5번 출구를 빠져 나왔습니다.
한창 유동 인구가 많은 점심 시간을 전후한 시각에는 '찌라시'를 나눠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 그 분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 눈에 들어 온 분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느 청년입니다.
날이 추우니 장갑을 끼고 종이 찌라시를 나눠 줍니다.
지하철 역을 들고 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드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찌라시를 받아듭니다.
그는 씩씩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하고 말합니다.

2) 저는 이럴 때 힘을 얻습니다.
어떤 사람자신의 일을 성실하고 정성스럽게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힘을 얻습니다.
특히, 힘든 환경이라 기피할 수 있는 일을 씩식함과 정성스러움으로 해내는 이들은 늘 감격스럽더군요.
이것이 왜 나에게 특별한 마음을 불러 일이키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어린 시절, 오토바이릍 타고 우유 배달을 하셨던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던 날을 후회한 이후부터
열심히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그저 추측일 뿐이지요.
이 글을 쓰고 나면, 그 청년에게 작은 선물 하나 주어야겠습니다. 제 책을 한 권 선물할까요? ^^

*

연인을 만나든, 선배를 만나든
저는 면전에서 하고 싶은 말을 잘 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상대방의 반응이 두렵거나, 관계가 틀어질까 봐 두려운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듣기 좋아하는 말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니까요. 
저는 지금 상대방이 싫은 소리를 못하여 홀로 끙끙 앓고 있음을 토로하는 것이 아닙니다.
싫은 소리든, 좋은 소리든 내 마음을 표현하기에 서투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적도 있었지요. 나는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나의 선생님께 선물을 준비하곤 합니다.
선생님의 책을 통하여, 삶을 통하여 참 많이 배우고 깨닫기 때문입니다.
브라질 여행 후에는 커피와 전통주를 준비했고, 유럽을 다녀왔을 때에는 괴테 기념품(펜)을 준비했지요.
스승의 날에 드릴 선물로는 상품권을 준비했지요. 이 모든 것은 드리지 못하고 준비만 했답니다.
그러다가 지난 해 선생님께서 밥을 함께 먹자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제서야 그간 준비했던 선물 세트를 모두 드릴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물으셨습니다. "너는 왜 이런 것들을 안 주고 보관하고 있냐?"
제대로 답변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저의 게으름 때문이고
선물 때문에 만나뵙자고 연락 드리기가 죄송스럽기도 하고 (바쁘신 선생님께 부탁드린다는 게)
선물을 드릴 때에 누군가 옆에 있어 부끄러워 전하지 못한 때도 있었으니까요.
이 것은 제가 좀 이기적이이서 그런 지도 모르지요.
받고 기뻐하실 선생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저의 부끄러움만 생각한 게지요.
올해 선생님 생신 때에도 선물을 드리려고 준비했는데,
생신 파티 자리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전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여러 마음들을 표현하지 않은 채로 마음 속으로 간직하며 삽니다.
누군가 생각이 나도 핸드폰의 통화 버튼을 쉬이 누르지 못하는 사람인 게지요. (참, 못났지요? )
소중한 만남 이후에도 하고 싶은 말을 그저 마음에 씁니다. 어떨 땐 메일로 쓰기도 하지요.
저는 메일이 참 편안합니다. 메일은 전화나 직접 대면으로 적절히 보완될 때에
더욱 효과적인 의사 소통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메일로만 주고 받고 싶습니다.
어제도 사랑스런 후배와의 만남 이후에 오늘 이런 저런 속마음을 메일로 보내었지요.
꼭 메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누가 읽지 않는 비공개 글이라도 쓰고 나면 힘이 납니다.

3) 저는 이럴 때 힘을 얻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을 글로 쓸 때 힘을 얻습니다.
글을 쓰며 자신감을 회복하기도 하고, 내가 집중해야 할 일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혹 수신인이 있는 글이나 메일을 쓸 때, 조금 더 편안하게 마음을 열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제가 직접 만났을 때에는 표현을 잘 못한다는 것도 아니지요.
그저 글이 참 편하고, 글을 쓸 때에 힘을 얻는다는 게지요.

내가 힘을 얻을 때라는 소재로 글을 썼는데,
마무리는 왠지 내가 힘이 빠질 때로 하고 싶네요.
내가 힘이 빠질 때는 내 글을 읽은 당신과 소통하지 못할 때겠지요.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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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에 온 신경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그 하루를 닮아갈 테니까요.

1시간 동안 황홀하게 몰입하시기 바랍니다.
멋진 하루는 그런 효과적인 한 시간들의 모임이니까요.

1분에 신경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1시간은 저절로 흘러갈 테니까요.

인생에 대한 신경을 끄는 것이
하루 살아갈 에너지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나의 눈은 목적을 향하되 온 관심과 에너지는 오늘 하루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큰 그림에 어울리는 한 조각(하루)을 창조하는 비결입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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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쓰는 소설이 아주 작은 살구씨를 품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고통만 있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겪는 산고가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 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양분을 흡수하고 가슴을 부풀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꾸물꾸물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어도,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넓히는 나무 한 그루를 내 속에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면, 그리하여 단 한 사람에게라도 새콤한 살구 맛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되지 않을까? 나는 단단한 껍데기가 열리고 싹을 틔우는, 내 몸에 자리잡은, 하나의 살구씨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깥으로 내보이기 위해 거쳐야 할 고통을 기쁘게 맞을 것이다."

소설가 천운영의 말이다. 희망과 위로가 적절히 뒤엉킨 이 소설가의 글을 읽자마자 떠오른 것은 찰스 핸디의 말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중요성을 따지면 너무나 보잘 것 없지만, 내가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는 무한히 중요하다."(『포트폴리오 인생』p.359) 
일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다소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진실을 전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없다면, 위로와 희망으로 진실을 덧입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 희망을 유포해서도 안 된다. 거짓 희망은 달콤하지만, 약효가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자기경영서의 일부가 거짓 희망을 유통하며 생존하곤 했다.) 

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만,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그 일을 하는 태도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다. 일이 사라지면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이 함께 사라진다는 말이다.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일에 얽히고 설켜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깨어 있는 많은 시간이 일에 '소모'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꿈은 낭만적인 아름다움이 있지만, 지나치게 순진해서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못하고, 현실을 변혁시키기에도 역부족이다. 도약을 꿈꾸는 자는 딛고 선 땅이 단단한지부터 살펴야 한다. 일에 대한 꿈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이고, 일에 대한 현실은 '그것이 힘들다는 것과 지금의 일이 나의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행복한 밥벌이 사이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우리들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 시간을 표현할 때, '소모'라는 말 대신 '투자'라는 말을 쓸 수 있도록 일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나는 진실로 모든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요즘엔 그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일은 밥벌이의 지겨움이 아닐 수 있다일은 즐거움과 의미만을 추구하는 취미와도 다르다. 일은 우리에게 밥과 의미를 모두 만족시켜주는 행복의 근원자신의 일이 밥벌이의 수단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더 실현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일 뿐이다. 우리는 생존과 안정의 욕구라는 일차적인 욕구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미와 자아실현에 관하여 생각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과 가족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삶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일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밥과 의미인데, 그 중에 하나를 얻어가고 있으니 좋은 징조다. "행복은 할 일이 있는 것, 바라볼 희망이 있는 것, 사랑할 사람이 있는 것, 이 세가지이다." 중국 속담이라는데, 너무 늦게 깨닫는 류의 조언이지만 행복과 일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러번 읊조려 보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다 정성을 기하고 몰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몰입해 보라. 놀랍게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몰입은 행복을 생산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임하는 태도와 마인드도 아주 중요하다. 태도와 마인드 역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전 7시 40분부터 10시 25분까지 열심히 일을 했다. 글을 쓰고, 와우팀원들의 글 몇 개를 읽었다. 이런 것들이 나의 일이다. 천운영 작가의 말처럼 오늘 쓴 글은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할 수도 있고, 팀원들의 글을 읽고서 댓글 하나 달지 못할 때도 있다. 그저 고통스럽기만 하고, 그렇게 보낸 시간이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경우다. 그래도 일은 의미 있다. 일에 대해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을 통해 단련되고 개선되기 때문이다. 오늘 글을 쓰며, 일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본 것은 (나에게만큼은) 즐거운 일이었다. '일'은 쓰고 싶은 글의 소재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을 하며, (내가 즐겁게 다룰 소재를 발견하듯) 우리는 자신을 발견해 간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싫어하는지. (그런 지식이 쌓여갈 즈음 용기를 내어 스스로에게 보다 적합한 포지션 혹은 다른 직장으로 자신을 들이밀 수 있어야 하리라.)

오늘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허접한 결과물(글)이 나와도
나는 일을 한 것이고, 일하는 동안 열심히 몰입했다면 나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중이리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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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7080>은 자주 보지 못하지만, 정겨움이 느껴지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정겹고 싶진 않다. ^^ 좀 더 젊은(?)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싶은 마음이기에.)
오늘 한 편을 보았다. 2009년 12월 방송분이었고, 신승훈, 이은하, 이은미가 나왔다.
신승훈은 I believe, 보이지 않는 사랑, 그 후로 오랫동안, 사랑치(신곡) 등을 불렀다.
관중석에는 30대, 40대 여성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자주 잡혔다. 
적어도 20대 후반 이상의 여인들이 가수 신승훈을 보며 감격해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가며 감상에 잠긴다.
이런 감상 속에는 항상 약간의 회한이 깃든다. 나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아, 그 때는 참 순수했는데...'
아쉬움 뒤에는 조금 더 잘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해 본다.
좋은 노래처럼,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다.
날마다 그에 걸맞은 행동과 생각을 선택해야지, 라고 결심한다.

신승훈은 마지막 곡으로 자신의 몇 안 되는 신나는 곡 중 하나인 '처음 그 느낌처럼'을 불렀다.
'나이 든' 관중들은 일어났고, 신승훈과 함께 힘차게 뜀을 뛰고 팔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카메라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된 팬들의 열광하는 모습을 비춰 주었다.
한 길 노래 인생을 걸어온 가수와 그 길을 지켜봐 주고 사랑해 준 그의 팬들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뭉클했다. 나도 TV 속 관중들과 어울려 노래를 부르고 춤(이라 부리기엔 머쓱한 뜀)을 추었다.
그네들도 나도, 십 수년 전의 시절로 돌아가 기분 좋은 시간을 누렸다.

다시 업무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흐뭇했기에 짧지만 기분 좋은 점심 시간이었다.
신승훈은 성공한 대중가수다. 부럽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내가 가야 할 나의 길에 대한 기대가 있다.
그 길에서 대중의 인기를 얻지 못해도 오랜 친구 같은 몇 명의 팬만큼은 꼭 있었으면 좋겠다. 
오랜 세월 지켜봐 주어 나를 잘 아는, 그래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때 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그런 팬...

그런 분들이 함께하기에 걸맞는, 은은하고 깊은 멋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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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세번째 주간성찰
1월 18일~1월 24일


#1. 예배, 그 은혜와 축복

사랑스런 후배가 우리 교회로 오게 되어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열린 새신자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오랜 만에 저녁 7시 예배를 드렸다. 약간의 조정이 생긴 것이지만 마음은 즐겁고 따뜻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은혜요, '함께' 드리는 것은 은혜+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의 설교는 2010년부터 <십계명 탐구생활>이라는 주제로 이어지고 있었고,
이번 주는 그 네 번째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이 선포되었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진 것은 '이것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하나 둘 건물의 기초 지대를 부실하게 시공했기에 발생한 비극이라신다.

십계명은 신앙 생활의 아주 중요한 기초이니 하나 둘 무시하거나 빼 먹으면
어느 새 신앙 생활이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져 버린다는 말씀을 거듭 전하셨다.
공감을 하며, 십계명에 나오는 열 가지의 주님의 명령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았다.
와... 정말 이것 10가지 주의 말씀만 잘 따르면 아름다운 영성을 누릴 수 있겠다, 생각했다.

아울러, 이 글을 쓰며 기초(basic)의 중요성에 대하여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기초는 사물의 기본이 되는 토대를 말함인데,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허나, 기초라는 말 속에는 수준낮음, 서툼, 초보자의 엉성함과 같은 뉘앙스가 풍긴다.
중요한 단어에 어울리지 않은 이미지다. 이미지 속에 숨겨진 진짜 가치와 중요성을 간파해야 한다.
진짜 가치를 모른채 이미지에 휘둘린다면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훌륭한 선택을 할 수 없다.

Back to the Basic!은 가슴에 새길 만한 귀한 말이다.


#2. 친구의 결혼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 맞고 몸이 맞던 친구가 23일에 결혼을 했다. 
마음만 맞는 친구와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놀 때에 무척 즐겁지만
몸까지 맞는 친구는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우리는 그런 친구였다.
몸이 맞다는 말은 활동 에너지가 비슷하고, 취미나 관심, 살아가는 방식에도 비슷한 면이 있음을 뜻한다.

우린 둘 다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이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농구, 축구 등 모든 운동을 함께 했다.
특히, 농구를 할 때에는 녀석과의 팀워크가 척척 맞아 수준 높은(^^) 농구를 구사하곤 했다.
우린 꽤 괜찮은 농구 콤비였다. 하하하. 2008년엔 둘이서 3박 4일 간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맛난 음식들을 먹고, 부지런히 제주도의 관광 명소를 다녔다. 

두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지만, 몸과 마음이 맞는 영역이 여럿 있으면 함께 놀기에는 무척이나 좋다.
이랬던 친구가 어제 '결혼해 버렸다'. (결혼했다, 라는 표현보다 나의 마음과 가까운 표현이다.)

친한 녀석들이 결혼을 하면, 나는 여러 가지 감정 속에 빠져 든다.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주례사 한 구절, 한 구절에 나의 마음을 싣기도 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 할 만한 '결혼'의 의미와 배우자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예전엔 친구가 결혼할 때 마음 속에 허전한 감정이 들곤 했었는데, 이젠 그 허전함은 좀 옅어진 것 같다.

결혼식이 끝나고 3~4시간이 지난 후, 인천공항으로 이동 중인 친구 녀석과 통화를 했다.
결혼식으로 만난 친구들은 몇몇이 모여 당구를 즐기고 있었고, 결혼한 친구는 자기 아내와 함께 있었다.
그는 우리의 친구인 동시에, 이제는 한 여인의 남편이 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 둘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다. 친구에게 남편이란 역할이 생긴 것처럼.

학생과 아들이라는 단순한 역할만 해내면 그만이었던 시절에 만난 우리가 
이제는 조직의 일원, 한 여인의 남편, 사랑스런 아이의 아빠 등 여러 가지 역할을 맡은 성인이 되었다.
친구여, 그 역할들마다 최고의 남편, 아빠, 직장인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나 역시 그렇게 행복하게 살테니 우리 웃으며 살다가 만날 때마다 반가운 소식을 나누자.

쉽지 않은 인생살이지만, 그래서 노력하며 사는 맛이 있고,
그 노력의 과정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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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세번째 주간성찰
1월 18일~1월 24일


#3. 황홀한 일상의 여유

우리는 곧장 분위기 좋은 곳 음식점으로 이동했다.
복층 구조의 높은 천장이 마음에 들었고, 친절한 직원들이 반겨주었다.
1층의 홀 가운데에는 사람 키 정도의 커다란 화로가 있어 카페의 겨울 운치를 더해주었다.
규모에 비해 좌석이 많지 않은데도 휑한 느낌이 없는 것은 화로와 다양한 실내 인테리어 때문이리라.

스위스 음식, 치즈 퐁듀라는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을 주문했다. 치즈에 걸맞은 와인도 함께.
아마도 호텔 연회장 등에서 본 적은 있겠지만, 테이블에 앉아 이것만을 먹기는 처음일 것이다.
퐁듀는 먹기 좋게 썰어져 나온 빵과 키위, 바나나, 샐러리 등을 긴 꼬치에 끼워
테이블 위에서 촛불로 따뜻하게 데워진 치즈에 찍어서 먹는 음식이었다.

나는 워낙 치즈와 크림소스 스파게티 등 느끼한 것을 좋아하기에 치즈 퐁듀는 입맛에 잘 맞았다.
그 날도 역시 테이블 한 쪽에 놓여진 피클은 손도 대지 않았다. 
피클을 나는 잘 먹지 않는다. 느끼함을 없애 버리는 고약한 녀석이기에.
피클을 먹는 경우는 느끼해서가 아니라, 음식 자체가 맛이 없는 경우다.

와인, 치즈 퐁듀와 함께 주문한 바베큐 정식도 아주 소량의 음식이었다.
첫 맛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먹다 보니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키위처럼 부드럽고 상큼한 맛이 나는 대화가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스위스의 겨울에 온 듯한 산장같은 카페 분위기가 기억에 남는다.

일주일에 한 번 즈음은 이런 여유로운 시간을 누려야겠다.


#4. 친한 형의 책 출간

삼성역에서 만난 형은 가슴에 큰 상자 하나를 안고 있었다. 뭐지?
내게 가까이 오면서 건네는 형의 말에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흘러 나왔다. "형, 책 나왔어."
와, 드디어 나왔네요. 축하해요. 형.
오랫동안 공들여 번역했고, 게다가 (번역이긴 하지만) 형의 첫 책이라 나의 감회도 새로웠다.

형의 사무실로 책이 배송된 그 날은 연구원 몇이서 모여 형네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다.
다음 주 출간 예정이었던 책이 조금 일찍, 바로 모이기로 한 그 날에 도착한 것이다.
지하철에서 형의 출간 소감을 물어보기도 하고 책을 들고 있는 형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나는 책의 표지 앞 뒤를 신기한듯 만져 보기도 하고 쳐다 보기도 하고 내용 한 두 장을 훑어 보기도 했다.

형, 이 책이 형에게 주는 의미는 뭐예요?
형은 대답했다.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만 적지는 않으련다.
그것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다르지만, 누구나 자신의 의미를 찾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리라.
형은 큰 성취 하나를 끝냈고, 이제 곧 다음 작품을 위해 전진하시리라.

집으로 이동하는 내내 형은 기쁨으로 조금은 상기된 표정이었고, 나도 기쁨에 들떠 있었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칠 만큼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마냥 즐거웠다.
집에서는 형수님이 삽겹살 파티를 준비해 주시어 숨쉴 틈이 없을 만큼 뱃속을 채워 넣었고,
식사 후에는 다음 주 책의 출간을 미리 축하하려고 준비한 조촐한 파티를 했다.

형은 말했다. "이렇게 (촛불을 켜고 축하)해 주니 책이 정말 나온 것 같다"고.
우리도 느꼈다. 함께 축하하고 나니 기쁨이 배가 되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나는 준비해 간 와인을 놓고 왔다. 그 땐 괜찮았는데, 글을 쓰는 지금은 와인 맛을 못 봐서 아쉽네. 호호.
사실 와인 맛이 아쉬운 게 아니라, 짠~ 하고 잔을 부딪치지 못한 게 아쉬운 게다.

오늘 아침, 인터넷 서점에 가서 『서양이 동양에게 삶을 묻다』라는 책을 검색해 보았다.
아, 아니네. '신종윤'이라는 이름으로 검색했었구나. 그랬더니 앞서 말한 중후한 제목의 책이 떴다.
제목만큼이나 책의 분량도 묵직하다. 560페이지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을 형이 번역했다니.
책은 웨인 다이어라는 인기 작가가 '노자'의 지혜를 빌어 쓴 자기경영서다. (인문서라고 해야 하나?)

나도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 광고하거나 은근슬쩍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오해 마시라.
보보는 그저 나의 행복했던 지난 주 일상을 곱씹고 있는 중이다. 하하.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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