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네번째 주간성찰
1월 25일~1월 31일
#1. 아! 이 몹쓸 실행력
1월의 마지막 주간은 홀로 보내고 싶었다.
2010년 12월의 두 주간을 홀로 지내고 싶었는데,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해 1월로 연기하며 마음 속에 품어 둔 생각이다.
여행을 가지 못하면
#2. 와우수업
우리는
#3. 그 녀석
우리는
"어쩌면 내가 쓰는 소설이 아주 작은 살구씨를 품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고통만 있을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겪는 산고가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 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양분을 흡수하고 가슴을 부풀릴 것이다. 그러다 보면 꾸물꾸물 움직이는 동물이 아니어도,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넓히는 나무 한 그루를 내 속에 키울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면, 그리하여 단 한 사람에게라도 새콤한 살구 맛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되지 않을까? 나는 단단한 껍데기가 열리고 싹을 틔우는, 내 몸에 자리잡은, 하나의 살구씨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깥으로 내보이기 위해 거쳐야 할 고통을 기쁘게 맞을 것이다."
소설가 천운영의 말이다. 희망과 위로가 적절히 뒤엉킨 이 소설가의 글을 읽자마자 떠오른 것은 찰스 핸디의 말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중요성을 따지면 너무나 보잘 것 없지만, 내가 이 일을 하는 것 자체는 무한히 중요하다."(『포트폴리오 인생』p.359)
일에 대한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중 "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다소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진실을 전하는 것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없다면, 위로와 희망으로 진실을 덧입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 희망을 유포해서도 안 된다. 거짓 희망은 달콤하지만, 약효가 오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10년 동안, 자기경영서의 일부가 거짓 희망을 유통하며 생존하곤 했다.)
일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만,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과 그 일을 하는 태도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다. 일이 사라지면 자기 삶의 많은 부분이 함께 사라진다는 말이다.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일에 얽히고 설켜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깨어 있는 많은 시간이 일에 '소모'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꿈은 낭만적인 아름다움이 있지만, 지나치게 순진해서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못하고, 현실을 변혁시키기에도 역부족이다. 도약을 꿈꾸는 자는 딛고 선 땅이 단단한지부터 살펴야 한다. 일에 대한 꿈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 것'이고, 일에 대한 현실은 '그것이 힘들다는 것과 지금의 일이 나의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밥벌이의 지겨움과 행복한 밥벌이 사이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우리들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 시간을 표현할 때, '소모'라는 말 대신 '투자'라는 말을 쓸 수 있도록 일의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나는 진실로 모든 사람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요즘엔 그 의미를 발견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일은 밥벌이의 지겨움이 아닐 수 있다. 일은 즐거움과 의미만을 추구하는 취미와도 다르다. 일은 우리에게 밥과 의미를 모두 만족시켜주는 행복의 근원이다. 자신의 일이 밥벌이의 수단에 머무르고 있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무언가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더 실현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일 뿐이다. 우리는 생존과 안정의 욕구라는 일차적인 욕구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미와 자아실현에 관하여 생각하기 힘들다.
말하자면, 자신의 삶과 가족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삶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일을 통해 얻어야 할 것은 밥과 의미인데, 그 중에 하나를 얻어가고 있으니 좋은 징조다. "행복은 할 일이 있는 것, 바라볼 희망이 있는 것, 사랑할 사람이 있는 것, 이 세가지이다." 중국 속담이라는데, 너무 늦게 깨닫는 류의 조언이지만 행복과 일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여러번 읊조려 보기를 권하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다 정성을 기하고 몰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이라도 몰입해 보라. 놀랍게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몰입은 행복을 생산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임하는 태도와 마인드도 아주 중요하다. 태도와 마인드 역시 우리의 삶을 만들어가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오전 7시 40분부터 10시 25분까지 열심히 일을 했다. 글을 쓰고, 와우팀원들의 글 몇 개를 읽었다. 이런 것들이 나의 일이다. 천운영 작가의 말처럼 오늘 쓴 글은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할 수도 있고, 팀원들의 글을 읽고서 댓글 하나 달지 못할 때도 있다. 그저 고통스럽기만 하고, 그렇게 보낸 시간이 누구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경우다. 그래도 일은 의미 있다. 일에 대해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을 통해 단련되고 개선되기 때문이다. 오늘 글을 쓰며, 일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본 것은 (나에게만큼은) 즐거운 일이었다. '일'은 쓰고 싶은 글의 소재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렇게 일을 하며, (내가 즐겁게 다룰 소재를 발견하듯) 우리는 자신을 발견해 간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어떤 일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싫어하는지. (그런 지식이 쌓여갈 즈음 용기를 내어 스스로에게 보다 적합한 포지션 혹은 다른 직장으로 자신을 들이밀 수 있어야 하리라.)
오늘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허접한 결과물(글)이 나와도
나는 일을 한 것이고, 일하는 동안 열심히 몰입했다면 나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중이리라.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2010. 세번째 주간성찰
1월 18일~1월 24일
#1. 예배, 그 은혜와 축복
사랑스런 후배가 우리 교회로 오게 되어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열린 새신자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오랜 만에 저녁 7시 예배를 드렸다. 약간의 조정이 생긴 것이지만 마음은 즐겁고 따뜻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은혜요, '함께' 드리는 것은 은혜+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의 설교는 2010년부터 <십계명 탐구생활>이라는 주제로 이어지고 있었고,
이번 주는 그 네 번째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이 선포되었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진 것은 '이것 하나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하나 둘 건물의 기초 지대를 부실하게 시공했기에 발생한 비극이라신다.
십계명은 신앙 생활의 아주 중요한 기초이니 하나 둘 무시하거나 빼 먹으면
어느 새 신앙 생활이 삼풍백화점처럼 무너져 버린다는 말씀을 거듭 전하셨다.
공감을 하며, 십계명에 나오는 열 가지의 주님의 명령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았다.
와... 정말 이것 10가지 주의 말씀만 잘 따르면 아름다운 영성을 누릴 수 있겠다, 생각했다.
아울러, 이 글을 쓰며 기초(basic)의 중요성에 대하여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기초는 사물의 기본이 되는 토대를 말함인데,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허나, 기초라는 말 속에는 수준낮음, 서툼, 초보자의 엉성함과 같은 뉘앙스가 풍긴다.
중요한 단어에 어울리지 않은 이미지다. 이미지 속에 숨겨진 진짜 가치와 중요성을 간파해야 한다.
진짜 가치를 모른채 이미지에 휘둘린다면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에서 훌륭한 선택을 할 수 없다.
Back to the Basic!은 가슴에 새길 만한 귀한 말이다.
#2. 친구의 결혼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 맞고 몸이 맞던 친구가 23일에 결혼을 했다.
마음만 맞는 친구와는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놀 때에 무척 즐겁지만
몸까지 맞는 친구는 그 이상의 일을 할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우리는 그런 친구였다.
몸이 맞다는 말은 활동 에너지가 비슷하고, 취미나 관심, 살아가는 방식에도 비슷한 면이 있음을 뜻한다.
우린 둘 다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이어서 고등학교 때부터 농구, 축구 등 모든 운동을 함께 했다.
특히, 농구를 할 때에는 녀석과의 팀워크가 척척 맞아 수준 높은(^^) 농구를 구사하곤 했다.
우린 꽤 괜찮은 농구 콤비였다. 하하하. 2008년엔 둘이서 3박 4일 간의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우리는 함께 맛난 음식들을 먹고, 부지런히 제주도의 관광 명소를 다녔다.
두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지만, 몸과 마음이 맞는 영역이 여럿 있으면 함께 놀기에는 무척이나 좋다.
이랬던 친구가 어제 '결혼해 버렸다'. (결혼했다, 라는 표현보다 나의 마음과 가까운 표현이다.)
친한 녀석들이 결혼을 하면, 나는 여러 가지 감정 속에 빠져 든다.
두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주례사 한 구절, 한 구절에 나의 마음을 싣기도 하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이라 할 만한 '결혼'의 의미와 배우자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예전엔 친구가 결혼할 때 마음 속에 허전한 감정이 들곤 했었는데, 이젠 그 허전함은 좀 옅어진 것 같다.
결혼식이 끝나고 3~4시간이 지난 후, 인천공항으로 이동 중인 친구 녀석과 통화를 했다.
결혼식으로 만난 친구들은 몇몇이 모여 당구를 즐기고 있었고, 결혼한 친구는 자기 아내와 함께 있었다.
그는 우리의 친구인 동시에, 이제는 한 여인의 남편이 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 둘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된다. 친구에게 남편이란 역할이 생긴 것처럼.
학생과 아들이라는 단순한 역할만 해내면 그만이었던 시절에 만난 우리가
이제는 조직의 일원, 한 여인의 남편, 사랑스런 아이의 아빠 등 여러 가지 역할을 맡은 성인이 되었다.
친구여, 그 역할들마다 최고의 남편, 아빠, 직장인이 되어 주기를 기대한다.
나 역시 그렇게 행복하게 살테니 우리 웃으며 살다가 만날 때마다 반가운 소식을 나누자.
쉽지 않은 인생살이지만, 그래서 노력하며 사는 맛이 있고,
그 노력의 과정 속에 행복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