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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에 해당되는 글 39건


7기 와우팀 지원 도서입니다.
제시된 날짜까지 작성하시어 hslee@eklc.co.kr 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1주) 우리는 왜 불안해하는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
2주) 당신은 무얼 추구하는가?  버트란트 러셀의 『행복의 정복』
3주) 비전을 어떻게 이뤄낼까?  매기 잭슨의 『집중력의 탄생』
4주) 무엇 때문에 와우팀인가? 두번째 도서의 리뷰 제출 후 공지할 것임.

리뷰 작성에 대하여 샘플 리뷰를 3월 2일 오전에
참가자 분들에게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와우팀장 올림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20대 초반에 기독교 사상을 배우고 익힌 것은 내게 지속적인 유익이었다.
기독교 사상은 내게 성공으로 가는 기법을 추구하는 대신
내적 성품을 닦는 일과 영적 훈련으로 시선을 돌려 주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고 실천하려던 노력도 큰 도움이 됐다.

나는 여러 가지 가치 중에서도 '신뢰'라는 가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누군가를 믿지 못할 만한 상황이 될 때마다 나는 '이성'보다 '신뢰'를 택했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이성과 신뢰는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친다.

이성은 말한다. 저 사람은 돈을 빌려 주면 갚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이성을 멈추고 신뢰의 말을 들었다. 신뢰는 다르게 말한다.
"그를 믿어. 신뢰가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테니까."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대단한 유익이다. 

신뢰는 내적 성품이다. 최신 방법론으로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이기에 신뢰와 같은 내적 성품을 지닌 자가
결국에는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게 된다.

물론, 신뢰 없이도 많은 모임에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다양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고 친밀해질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의 영향력이 주로 단기적인 관계에서만 발휘된다는 점이다.
내적 성품 없이는 직장 동료, 부모님이나 배우자, 자녀와의 관계, 친구 관계 등
모든 종류의 장기적 대인관계에서 문제릉 일으키게 된다.
내면의 동기와 내적 성품을 영원히 감출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업 세계에서는 성공했지만 개인적인 삶과 대인관계에서는 불행하다면,
지금 당장 자신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문해 볼 일이다.
'나는 내적 성품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알면서도 간과해왔던 것은 아닌가?'

자신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 대상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일전에 유행했던 개그콘서트의 '독한놈들'라는 코너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기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일에서의 성공보다 많이 뒤쳐진다면, 백프로임다."

당신께서 포함된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마시라.
우리는 많은 이들이 포함될 수 밖에 없는 문화를 살고 있으니.
자신에 대한 현실 인식은 가슴 아프지만,
그것이야말로 변화의 가능성이요 희망이니까.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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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성실한 창수 : 형,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제 소명이 아닌 것 같아요.
믿음의 형제 : 창수야, 네가 있는 지금 그 곳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을 섬기듯 일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전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 네가 잘 할 수 있어. 
                   그럼, 주님께서도 기뻐하시고 거기서 소명을 발견할지도 몰라. 

믿음의 형제에게 창수 대신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럼 당신이 하시죠. 그 일을."

(이런 과격함은 가끔 명료함을 준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정의이지 예의가 아니니까.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언어 폭력이고.)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상황을 넘어서는 믿음을 주셨다.
믿음으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성경에 의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믿음으로 우리는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우리의 반응을 바꾸어 낸다.
믿음의 형제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옳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함께 주신 것은 고유함이다.
각기 다른 재능과 기질을 주셨다. 각기 다른 삶을 살도록 계획하셨다.
재능으로 우리는 삶의 재미를 만끽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다.
성실한 창수는 자기 재능과 직업이 맞지 않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니 그도 옳다. 부분적으로.

저들이 저런 이야기를 한 까닭은 마음 속 품은 생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창수는 이직을 원하고, 형제는 머물기를 바랬다.
둘 다 옳다고 결론 내리면, 둘다 틀렸다는 결론과 마찬가지다.

자기경영의 지혜는 모순된 것들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에 통합시키는 법을 배울 때 얻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인생을 이해하는 데에도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저들은 각기 다른 개념으로 소명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부르심(소명)이다.
1차 소명이라 부를 수 있는 이것은 형제의 입장이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부름 받은 것인가보다는
하나님께 의해 부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직업적 소명이라 해도 좋을 2차 소명은
어디로, 혹은 무엇을 위해 부름받았냐는 질문을 다룬다.
자신의 재능과 기질에 맞는 직업으로의 부르심이다.
성실한 창수는 자기 일이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 사이의 구별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먼저는 두 소명을 함께 붙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둘이 올바른 순서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다.
소명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첫째 것이 첫째 자리를 지키도록,
즉 일차적인 소명이 항상 이차적인 소명 앞에 오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일차적인 소명이 이차적인 소명으로 연결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차적인 사명을 받지 못했다고 하여 아무 것도 행하지 않은 소극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소명이란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일차적인) 부르심에 반응함으로써 자신의 (이차적인) 부르심을 성취하는 것이다.”

일차적 소명에 몰입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차적 소명이 발견된다는 것은
오늘의 의미를 일깨우는 동시에, 미래를 꿈꾸게 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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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아, 요즘 김연아라고. 그 녀석 하는 것 보니 기분 좋두만.
나도 기분 좋아. 경희대에서 연락이 왔어.

(더 큰 목소리로)아니, 김연아 올림픽 스케이트 선수 말야.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어?

(쩌렁쩌렁하게) 아니, 김연아가 어제 1등했잖우.
아, 그렇지. 나도 어제 봤어.


카페에서 여든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의 대화다.
저만치 떨어진 곳이었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도 다 드릴 만큼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기본적으로 컸다.

나도 봤다. 김연아 선수의 쇼트 경기.
김연아의 경기는 환상적이었다. 경기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김연아의 예술을 보기 위해 여행 출발을 미룬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TV 앞에 앉았다. 한국의 곽민정 선수 경기도 보았다. 
가녀린 모습의 소녀는 실수없이 잘 해 냈다. 올림픽 첫 무대인데,
해설자가 참 잘했다고 설명한다. 그런가 보다 한다.
53.16 점을 받았다. 곽민정은 2위에 올랐네. 대단한 것이구나, 한다.
본선 진출을 확정한 소녀는 인터뷰에서 말도 잘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떨렸어요.
큰 실수 없이 잘 했지만 아직도 떨리네요.
그렇게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섰는데,
이 한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아사다 마오가 나왔다. 김연아와 마오 모두,
국민들의 부담과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출전했을 것이다.
연아씨 마오씨. 부담은 반반 나눠 가지시게.
먼저 등장한 마오씨. 멋진 경기 펼쳐 주시게.
나는 당신이 넘어지지 않기를, 작은 실수조차 하지 않기를 바란다네.
약하다는 점프를 아주 성공적으로 해내길 기원한다네.

아사다 마오의 경기가 끝났다. 좋았다. 전율이 일었다.
끝나고 만족해 하는 모습과 링크 밖을 나와 코치와 끌어안는 모습,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다. 나도 저런 표정을 지으며 살아야 하는데...
점수가 발표됐다. 쇼트 프로그램 본인의 올해 최고 점수를 받았다. 73.78점이다.

이제 김연아다.
그래, 라이벌의 실수가 아닌 라이벌의 최고 실력을 넘어설 때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것이다. 연아 씨~! 잘 해.

제임스 본드 메들리에 맞춰 시작된 김연아.
나는 놀랐다. (사실,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제대로 관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연아는 시작부터가 달랐다. 운동 선수가 아니라 예술가 같았다.
스피드는 어찌나 빠른지. 3회전 연속으로 성공한 김연아의 표정과 포즈는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쇼트 프로그램, 직선 코스에서 보여 주었던 스텝과 포즈는
자신감이 넘쳤고, 음악과 온전한 조화를 이루었다.
2분 48초가 끝나고 당당한 표정으로 마무리한 김연아. 최고다. 자랑스럽다.

해설자는 다시 보여주는 김연아의 트리플 점프 슬로우 모션을 보며
"품격이 다르죠"라고 해설했다. 정말 그랬다.
점수 발표.... 78.50 점. 쇼트 세계 최고 기록 경신이란다.
와~!

김연아는 바다 건너 여든의 할아버지들에게도 기쁨을 주는 존재였다.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들, 자신의 신화를 창조해가는 사람들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전한다.
그들의 첫째 목적이 세상에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향해 열심히 훈련하는 사람들,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사람들,
성장을 갈망하며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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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이승훈은 '행운의 금'을 목에 걸었다.
'은'메달을 땄어도 축하할 일이고 장한 일이다.
세계 2위라 해도 얼마나 대단한 실력이란 말인가!
그러나 1위로 골인한 크라머의 실격 소식이 전해지고
이승훈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감격적이다.

동시에, '불운의 주인공'에게 관심이 간다.
아뿔싸! 그는 코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실격 되었다.
10,000m 경주에서는 인라인, 아웃란인을 번갈아 타야하는데
순간의 착각으로 코스를 놓쳐 버린 것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네 인생이었다.

*

스포츠에서 Rule 을 지키지 못한 메달은 박탈 당한다.
인생에서도 Rule 을 지키지 못한 영광은 빛이 바랜다.
스포츠만큼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지도 모른다.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은총 주기를 즐기는 신이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다.

살아가다가 받게 되는 크고 작은 충격은
'지금 당장, 당신의 삶을 들여다보세요.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변화하세요!"라는 표지다.
변화의 메시지를 무시하거나 '아! 괜찮구나'라는 표지로 잘못 인식한 사람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 찾아든다. 그가 깨달을 때까지.

그가 뒤늦게 깨닫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이런 엄청난 괴로움을 여러 번 막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신이 지속적으로 그런 기회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자신은 잘 사는 삶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쌓은 돈과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의 승리만큼 중요한 것은
인생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다.
나는 게임의 규칙을 제시하고 싶지 않다.
참다운 삶에 대해 고민하여 스스로의 인생 철학을 세워볼 일이다.

자기 인생이니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덕을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쫓아가라는 말이다.

정의와 덕(悳)을 지켜나가는 사람의 인생은 빛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금씩 자기 영혼의 빛이 희미해져간다. 
밤하늘의 별빛에서 죽은 물고기의 어둔 빛으로 바뀌어간다.
내가 사탄이라면, '조금씩 조금씩'의 전략을 쓰겠다.
사람들이 '이번 한 번만' 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즈음 하면, 크라머의 얘기보다 훨씬 많이 진전되었다.
한 가지만 정리하고 다시 크라머 얘기로 돌아가자.
최고, 최대를 추구하다 보면,
정의와 도덕이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정의를 벗어난 최고, 최대의 인생은 예상만큼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

지금까지 다소 일반적인 인생 이야기를 했다면,
크라머에게서 배울 점을 생각해 본다.
마치 크라머가 잘못한 것처럼 글을 써 오게 되었는데,
사실 이번 실격은 크라머 선수가 아닌 코치의 잘못이었다.
크라머와 2위 선수와의 시간차를 확인하다가 순간 착각한 것이다. 

다음은 연합뉴스 박성진 기자의 상황 보도다.
"경기장 25바퀴를 도는 10,000m 종목에서 선수들은
같은 거리를 뛰어야 하기 때문에 코스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탄다.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다가 잘못된 코스에 접어들지 않도록
코치들은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에게 코스를 지시한다.

그날 경기에서 크라머는 8바퀴를 남겨 둔 상황에서 아웃코스로 들어가려다
켐케스의 지시를 받고 황급히 인코스로 바꿨다.
켐케스가 인코스라고 지적하는 바람에 잘못된 진로를 택하게 된 것이다.
인코스를 두 번 탔다는 이유로 크라머는 금메달을 딴 이승훈(21.한국체대)보다
4.05초 앞선 가장 빠른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당하고 말았다.

켐케스는 8바퀴를 남겨 둔 시점에서 크라머에게 이승훈과의
시간차를 알리려고 글을 쓰느라 정신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 선택을 두고 망설이던 켐케스는 크라머와 함께 레이스를 펼치던
이반 스코브레프(러시아)가 어느 코스를 타는지도 쳐다봤다.
레인을 바꾸는 교차 구간 시작 부분에서 미리 코스를 바꿔 인코스로 치고 들어온
스코브레프를 본 켐케스는 잘못된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됐다."

때로는 엄청난 충격이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닥치기도 한다.
자기 실수나 잘못이 아니기에 더욱 억울하고 화가 난다.
크라머는 결승선 골인 직후 실격당한 사실을 알고 격분해 고글을 집어던졌다.
켐케스 코치도 한탄과 자책을 거듭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이런 말 자체가 크라머에게 위로가 될 순 없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잘못했다는 사과가 아니라, 금메달의 놓친 상황을 되돌리는 것일 테니.
인생을 되돌리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충.분.히. 분노를 표현하고, 그를 용서함으로
과거에 집중된 자신의 관심과 에너지를 오늘로 되돌리는 일이 최선이다.
Big Picture Mind 를 회복하여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는 것이 내 마음이었다.

언론이 전한 크라머의 사건 후 모습을 이렇다.
- 절망 속에 하루를 보냈다. 화를 냈고, 코치에게 말도 안 했다. 
- 다음 날, 훈련장에 나타난 크라머는 지난 일을 깨끗이 잊은 표정이었다.
- 이렇게 말했다. "켐케스 코치와 함께 해온 지난 몇년은 너무 좋았다.
                        그만한 일로 누군가와 떨어질 수는 없다."

그의 넓은 모습이 금메달 감이었다. 그는 말한다.
"켐케스 코치와 대화를 재개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 문제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화를 내는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아마추어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크라머가 품은 다짐이요, 마음 속의 결론이다. 멋진 모습 아닌가. 24살 청년인데.
허나 그가 여느 사람과 같다면, 현실 속에서는 당분간은 괴로움이 떠오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더 큰 선수가 되는 자양분으로 삼아 훌륭한 선수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이승훈 선수는 금의 맛을 알았으니, 크라머의 위대한 라이벌이 되어 주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랫동안 훌륭한 1인자와 위대한 2인자의 모습을 보여 주길.

크라머와 함께 지난 5년간 동고동락해왔던 켐케스 코치.
그는 크라머가 세 차례 세계선수권대회 타이틀과 4개의 유럽선수권대회 금메달,
그리고 이번 올림픽 남자 5,000m 금메달을 따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켐케스 코치야말로 그의 말처럼 '세상이 무너지는 날'을 맞았으리라.
할 말이 없다. 그저 힘내시라는 말 밖에.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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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겨우내내 옷걸이에 걸려 있던 파란색 자켓을 끄집어내어
몸에 걸쳤다. 포근한 날씨에 봄옷을 꺼내 든 것이다.
오후에 전화가 왔다. 점심 먹고 회사로 들어가는 와우팀원이다.
"팀장님, 오늘 날씨 정말 좋아요. 근데 회사로 들어가야 해요."

"나는 놀러가지롱~!" 이라고 말했던가? 기억 안 난다.
분명한 것은 그 말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는 사실이고
했다면 놀리려던 것일 테고, 안 했다면 어떤 이유로 참았던 것이겠지.
오늘부터 3일 동안 나는 휴가다. 여행을 떠난다. 마음 가는 대로.

오늘 날씨가 좋았지만, 실내에 있은 시간이 많았다.
화창한 햇살을 보며 동장군이 물러가고 있음이 실감난다.
허나, 동장군이 가만히 물러가진 않겠지. 방구를 뿡뿡 두 번 정도는 뀌어 대겠지.
3월이 다 가기 전에 두 번 정도는 꽃샘추위가 올 테니.

그가 자취를 감추면 하늘과 땅에는 봄기운이 만연하겠지.
도시의 가로수는 푸릇해지기 시작하고,
시골의 개구리는 노래를 시작하겠지.
그럼 나도 기운차게 일어나야지. 봄의 새싹들처럼.

나는 오늘의 포근함을 열심히 일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이제 곧 좋은 날씨가 찾아들 테니, 열심히 일해 두어 참 좋은 날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그런 날에 밀린 일들 때문에 발목잡히지 말라는 메시지.
지난 해, 좋은 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난다.

올 봄에는 약속도 많이 잡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미리미리 끝내 두어
한가한 날들을 많이 마련해 두어야겠다.
햇살이 화창한 어느 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2010년 봄은
내가 접수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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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관동 8경 중 3~4군데 다녀와야지.
2경은 북한에 있으니 불가능하고,
나머지는 마음에 품었으니 행해야지.

한 달 동안 유럽에 다녀와야지.
지난 해, 바이마르에서의 다짐을 기억해야지.
'결혼하기 전까지 매년 한 달 간의 유럽 여행을 떠나자.'

와우들과 함께 빙고 졸업여행을 떠나야지.
베트남이 되든, 인도가 되든 와우들과 함께 하니 
오랫동안 즐거워할 추억 하나 만들고 와야지.

연구원 여행도 빼놓을 수 없지.
선생님과 동료들과 함께하는 곳이니
어디든지 따라가야지.

작가 제의 여행도 실천해야지.
홀로 훌쩍 떠나 성큼성큼 낯선 곳을 밟으며
나의 내일을 희망차게 그려 보아야지.

춘천 한 번 다녀와야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호젓한 여행을 누려야지.
호반을 바라보며 그윽한 시간 가져야지.

wow4ever들과 안동에도 가야지.
10여 년 만의 방문에 옛 추억에 잠겨도 보고
소중한 이들과의 여행이니 유쾌하게 놀아야지.

그리고
엄마에게도 다녀와야지.
이곳에도 함께 가고 싶어하는 사람과 가면 좋겠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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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고통으로 절망에 빠진 당신에게
- 『마음의 행복을 찾아주는 책』을 읽고
작성일 : 2002-04-26     

저는 지금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깊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열흘도 넘게 슬픔과 고통의 구덩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게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상한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며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깊은 상처는 세심한 치유의 손길과 시간의 경과가 없으면 훗날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이상한 행동, 불행한 가정 등을 낳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괜찮은 것 같다가도 날마다 한 두 번씩 너무 힘들어합니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가슴이 답답해져버립니다. 곧이어 터질 것만 같은 내 가슴을 쥐어뜯으며 혼자 슬퍼하죠. 세상이 나만 괴롭힌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할 뿐, 나는 어쩌지도 못합니다. 그야말로 정신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3~4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책을 통한 치유를 결심하였습니다. 이런 갈급한 심정으로 찾아 낸 책 중의 하나가 『마음의 행복을 찾아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혹은 뭐든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한 책입니다. 삶을 계속 이어지게 하고(고통이 너무나 힘겨우면 삶의 끝을 결심하기도 하죠), 상처를 치유하고 더 성숙해지는 지름길을 제공하는 책입니다. 저는 이런 책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괴로운 고통을 경험했고, 그 고통을 이겨냈음을 믿습니다. 

저 역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고통과 시련은 사력을 다해 피해야 할 불청객이 아니라, 더 깊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면, 우리 마음은 육체와 똑같이 자연스러운 치유과정을 시작합니다. 혹시, 지금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이다면 이 책을 읽어보십시오. 이 책은 우리가 고통을 극복해 나가는데 필요한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조언들로 가득합니다. 쓰러져있는 우리에겐 "저 멀리 보이는 밝은 미래를 바라 봐"와 같은 막연한 긍정적 조언보다는 당장 일어서는 방법에 관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바로 우리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제 저자들의 가르침들을 정리해 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상실이 함께 합니다. 확실한 상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별, 사랑의 깨어짐 등이고, 불확실한 상실은 실직, 돈을 잃는 것, 이사, 도둑맞음, 목표의 상실 등입니다. 상실의 느낌은 무기력해지고 비관적이 되는 것입니다. 초조해지고 식욕을 잃어버리거나 잠도 오지 않습니다. 극도의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고 쉽게 피곤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고통들은 '피하는 것이 최고'라는 말은 거짓 유혹입니다. 완벽한 치유는 이런 고통을 통과하여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실감은 우리에게 쇼크를 주고, 비극적인 상황을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분노와 의기소침을 경험하지만, 결국에는 이해하고 수용하게 됩니다. 이것이 상실감의 회복 단계입니다. 이 단계들은 온전한 치유와 상실감의 극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상처의 크고 작음에 따라 이 단계를 거치는 시간과 감정의 깊이가 다를 뿐입니다. 상실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상실 후의 고통은 정상적이고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고통을 느끼고 아파하는 것들은 치유 과정에서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로 고통을 덮어두거나 도망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저자들은 "당분간 아파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치유의 과정에는 시간이 걸림을 이해해야 합니다. 상처가 아물려면 많은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치유의 과정은 진보와 퇴보, 극적인 올라감과 기분 나쁜 뒷걸음질로 가득차 있음을 알고 충분한 휴식과 힘찬 행동의 멋진 어우러짐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당신을 편하게 하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자살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 수도 있지만, 결코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흐느끼시고, 침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십시오. 화를 내되 안전하게 내는 것입니다. 치유과정에서 화를 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오히려 술로 달래거나 약물에 의지하는 것은 자연적인 치유과정을 방해하여 더한 상실감을 불러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처를 '별 문제 아니야'라는 식으로 얘기하여 성형수술 하듯 덮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을 거부하면 온전한 치유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고 나면, 당신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젠 문제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해야 할 단계입니다. 이용당했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있다면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새롭게 생기기 시작한 에너지를 창조적인 일에 투자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일을 두려워 마십시오. 각종 모임에 참가해 보십시오. 고통을 이겨낸 당신은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덜 자기중심적이 되고, 감정이 더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단계에 이르면 당신을 축하하십시오. 살아남았음을 말입니다. 살아남았다고 표현될 만큼 고통은 우리 마음속의 모든 것들(희망, 긍정적 마음 등)을 죽여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이 상실, 고통, 치유 그리고 성숙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우리는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통에 빠진 모든 자들이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을 피하려고 하거나 치유의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은 쉽고도 실제적인 조언을 해 줄 것입니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 그리고 시인 이렇게 3명의 저자가 쓴 책입니다. 한 쪽 페이지에는 간결하고 구체적인 조언이 있고, 옆 페이지에는 관련된 시가 실려 있습니다. 멋진 편집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상한 마음의 치유를 위한 또 다른 책으로는 『당신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을 어디서 얻는가』(세종서적), 『상한 감정의 치유』(두란노), 『세왕 이야기』(예수전도단), 『춤추시는 하나님』(두란노) 등이 있습니다. 두란노와 예수전도단은 기독교 출판사이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들이라도 치유 분야에서만큼은 하나님이 도움될 것입니다.

[인상깊은구절]
고통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더라도, 고통과 함께 하십시오. 고통을 느끼십시오. 고통에 기대십시오. 끝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고통과 함께 하고, 슬픔을 경험하고, 아파하는 것들은 치유의 과정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고통을 거부하거나 덮어 버리거나 거기에서 도망치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과 함께 하십시오. 당분간 아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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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만남은 이런 모양이다.
대화 주제는 아주 진지한 것들이고, (이를 테면 자기 꿈에 대한 이야기, 직장 내 어려움 등) 
나는 그런 만남들 후 집을 돌아오면서 깊은 만족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지.
그리고 나를 찾아 준 그들에게 깊은, 아주 깊은 고마움을 갖게 되고 말야.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글에서 이 같은 마음이 잘 표현된 바 있어 옮겨 적어볼게.

"밖에서 사람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강가로 난 방축 길을 걸어서 돌아옵니다.
혼자 걸어오면서
'이 못난 나를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또 '오늘 내가 허튼 소리를 많이 했구나.
오만도 아니고 이건 뭐 망언에 지나지 않는 얘기를 했구나.'
하고 반성도 합니다.

문득 발밑의 풀들을 보게 되지요.
사람들에게 밟혀서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건만
그 풀들은 대지에 뿌리내리고
밤낮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해와 달을 맞이한단 말이예요.
그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내 스승이요 벗이 되는 순간이죠.
나 자신은 건전하게 대지 위에 뿌리박고 있지 못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다는 생각에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암. 고맙지. 참 고마워.
와우팀을 만나고 돌아올 때가 특히 그렇지.
사실 기수마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
고마운 감정만큼은 비슷하게 다들 있지.
와우팀을 대하다가도 짜증 비슷한 감정이 날 때도 있어.
이런 감정은 바깥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거지.
대부분 나의 인격이 리더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때니까 말야. 

이런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해도
와우팀원들에 대한 나의 가장 큰 감정은 고마움이 될 것 같아. 
그들이 경제적인 비용을 나에게 던져 주어서 그런 것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각자 어딘가에서 살아가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 이후로 더욱 힘껏 살아주고, 성장해 주어 고맙더라. 
나는 한 사람이 열정으로 도전을 감행하고
장애물을 뛰어넘고, 사랑스럽지 않은 자기와 화해해 가며
결국엔 해내는 자기실현의 Full Story 를 보게 되니까 말야.
고마운 일이지. 용기를 내어 준 그에게도, 이런 기회를 준 하나님에게도.
 
지금까지 말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어 고맙다는 것이고,
와우팀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기에 고마움이 드는 점도 있어서 짧게 얘기해 볼게.
와우팀을 하면서 깨달은 건
사람은 분명,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하고
타인의과의 상호 인정 속에서 자아가 건강해진다는 거야.
나는 와우팀에 나를 던졌고, 그들도 할 수 있는 전부를 던짐으로
얻은 것이 친밀한 관계, 건강해지고 있는 자존감 등이겠지.

다시 사랑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이야기로 돌아갈게.
나의 직업 특성상 나는 과대평가될 수 있는 사람이지.
살아가다가 얻은 교훈, 책에서 배운 것들이 진짜인지 실험하여 얻은 깨달음을
글이나 혹은 강연으로 교훈과 깨달음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나누는 것.
이것이 나의 일이야.  이미 '얻으려는 그들'이기에 배움이 일어나는 것이지,
내가 훌륭하다거나 잘 해서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게야.
참가자들의 학습 열정이 없는 강연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그러나 강연 후의 "강연 참 좋았어요"라는 감사 인사는 나만 들어서도 안 되고 말야.
강연이 좋다는 말의 진짜 뜻을 알고 난 후라면 다음과 같이 말을 하면 어떨까? 
"강연도 좀(^^) 좋았는데, 나의 오픈 마인드와 학습 열정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사실, 나는 참가자들의 '고맙다'는 말을 저렇게 환원하여 듣는 것 같아.
내 블로그에 와서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심정이야. 고마움이지.
글을 읽어 주었다면 그냥 가도 고맙고, (찾아와 주었으니)
댓글을 달아 소통해 주면 더욱 고맙지. 
그들은 글에서 무언가를 얻어서 고맙다는 말을 간혹 하지만,
이 역시 그들이 홀로 고민하지 않고, 블로그를 찾아다닌 노력했기 때문이고
혹은 그냥 놀러 왔더라도, 긴 글을 한 번 읽은 그들의 활동 덕분이기도 할 테지.
나는 그들의 (생각만 하는 게 아닌) '활동'했다는 점,
마음을 열고 누군가의 글을 '읽었다'는 점이 고맙더라구.

어제는 독서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연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한 녀석을 만났어. 
몇 번 통화도 하고, 문자도 주고받았던 녀석이기에 무척 반갑더라구.
녀석도 뜻밖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에 놀라고 반가워하고. 
그 때, 나는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인사해야 했어.
내가 되게 점잖게 행동했나 봐. 독서 모임 멤버들이 모두 있어서 그랬나 봐.
녀석과 헤어지고 나니 와우팀원이 그러더라구.
"선생님, 되게 어른처럼 점잖게 인사하시던데요."
와우팀원은 다른 뜻으로 얘기했겠지만, 나는 듣자마자
방금 만나고 헤어진 그 녀석이 나의 반가움을 고스란히 전해 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음에는 좀 더 호들갑스러워야지, 하고 생각했다.
반가웠으니까. ^^ 물론 딱 내가 느낀 반가움만큼의 호들갑스러움. 더도 덜도 아닌.
이건 뭐, 내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누구나 장소에 따라, 함께하는 사람들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니까.

이렇게 매 순간 온전한 나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살이가 외롭지 않아. 고맙지. 암 고맙고 말고. 
이렇게 고마움만 느끼고선 잠자코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또 그들이 뭔가 내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줄로 착각하여
한 번씩 허튼 소리를 한다는 게 문제야. 암. 문제고 말고.

강연을 한다는 게 말야. 혹은 누군가에게 내 견해를 내어놓는다는 게 말야,
어떨 땐 꼭 술 마시는 것과 비슷한 것 같더라고.
아주 기분 좋게,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질 때면 귀가길이 행복하지.
그러나 숙취로 다음 날까지 머리가 아픈 날도 있을 테고
술기운에 말을 많이 하고 나서, 자신의 푼수를 후회하는 날도 있겠지.
나는 강연을 할 때 그래. 아주 행복한 날도 있고,
숙취한 것처럼 머리가 아픈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찜찜한 날도 있지.  

어제 독서모임은 운영자님이 잘 준비해 주셔서 
참가자 분들에게 뜻 깊은 순간들이 되었지. 무척이나 고마웠지. 
나는 카페 주인이고, 성실한 와우팀원 한 분이 운영자시거든. 
주인장으로서, 카페를 잘 운영해 주니 얼마나 고맙겠냐. ^^
근데, 나는 내가 맡은 순서를 잘 진행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그랬다. 
이를 테면, '나의 푼수를 후회하는 날'이라고 할까? 
영화 <500일의 썸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심히 느낀 바가 있어 말할까 말까를 고민하다 말을 꺼내게 됐지.
아! 그리고는 후회했다. 말을 급하게 마무리해 버렸다.
온전히 설명한 것도 아니고, 말을 안 꺼낸 것도 아닌 어중간한 
마치 설익은 밥처럼 소화하기 힘든 말이 되었던 게지. 

이건 내가 민감하고 소심해서 그런 것인지
실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불편해 했을지 궁금하기도 해.
어쩌면, 나의 견해를 말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지. 친구야, 뭐 잡히는 게 있으면 말해 주라. 

오늘 네게 한 말은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들이다. 
사람들을 향한 고마움, 그리고 허튼 소리를 하고 난 후의 건강한 자괴감 말야.
자괴감은 부정적인 어감인가? 자신을 괴롭히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부끄러워 한다는 뜻인데 수치심이라 말하는 게 더 좋니?
수치심이라 하던, 자괴감이라 하던 뜻은 같다. 부끄러워한다는 것 말야. 
어쩌면 이 부끄러움 때문에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인 덕목으로 용기, 절제, 온화함 등과 함께
수치심을 꼽았더라. 책에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수치심은 성품이기보다 감정에 가까우니 하나의 덕으로 보기엔 힘들대.
잘못에 치우칠 때마다, 불명예스러운 일을 할 때마다 수치심이 억제해 주니
이런 역할 때문에 수치심을 꼽았던 게지.
수치심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네.
청년들은 아직 덕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쳐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니 말야.
그러니 수치심이 있는 젊은이는 칭찬할 만하나, 어른을 수치심이 있다고 칭찬하진 않는대.
나이 먹은 사람은 아예 부끄러움 느낄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나.
나는 젊은이에게서 이제 어른이 되고 싶네. 아님 그 중간 어딘가에 있겠지.
친구야, 너는 어디 즈음에 있니? 요즘도 음주운전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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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재밌었다. 어젯밤, 늦은 시각까지 책을 읽었다.
시작은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였고
끝은 장 자크 루소에 대한 책이었다.
읽던 책을 덮고 나니, 아침 6시가 되었다.

본래,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읽을 만큼의
끈기나 집중력이 있는 사람이 못 된다.
사실,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쭈욱 읽은 것이 아니라,
3권의 책을 번갈아 가면서 읽은 것이다.

이런 몰입의 순간이 종종 찾아왔으면 좋겠다.
나도 마냥 얕은 수준에서 놀 순 없으니까.
바닷가에서 물장구를 치는 수준이 아니라,
바다 깊은 곳에서 우아하게 유영하고 싶다.

라마크리슈나는 인도 벵갈 지역 출신의 성자다.
최근에 읽은 책이 인도의 고전 『카마수트라』에 관한 책이어서
점점 인도의 영혼의 스승들에 대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라마크리슈나는 근대 인도에서 가장 빛나는 스승이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와 위대한 영혼 간디 그리고 네루가 하나같이 찬양한 라마크리슈나.
올더스 헉슬리는 라마크리슈나 잠언집의 영문 번역본에 서문을 썼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로망 롤랑은 그의 전기를 책으로 펴냈다. 
그는 자아실현에 관한 깊은 통찰이 깃든 명언들을 많이 남겼다. 하나를 옮겨 본다.

"사람은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세속에 사로잡힌 사람,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 자유를 얻은 사람, 그리고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이다.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은 타인의 유익을 위해,
즉 사람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세속에 붙잡힌 사람은 세상적인 것에 빠져 신을 망각한 자이고,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자이다."


*

장 자크 루소는 1차 자료가 아닌 개설서 두 권을 읽었다.
루소의 삶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이야기꺼리가 많았다.
개인적 삶은 방황의 연속이었고, 볼테르의 폄하는 생각할 대목이 많았다.
칸트의 루소 찬양은 약간은 의외였는데, 이것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칸트는 루소의 초상화를 서재에 걸어 두고 그를 흠모했다.
루소의 『에밀』을 읽느라 한번도 빠짐없었던 산책을 걸러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루소로부터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는 칸트의 말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루소의 대표작은 『사회계약론』인데, 『에밀』이나 『신 엘로이즈』가 당긴다.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말하기를 좋아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침묵을 지킨다.
적게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나 질문을 받을 때 이외는 말을 아끼는 것이다."  - 루소


말의 많고 적음은 개인의 기질 차이가 반영되는 것이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루소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나는 같은 주제의 책을 한 권 읽을 때에 가장 시끄러워졌고
두 권, 세 권을 읽어가며 보다 잠잠해 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그대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리라.
말이 많은 모든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은 아니란 말이다.
다만, 지식이 쌓여갈수록 신중해지고 겸손해지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깡통에 돌이 하나 있을 때 가장 요란하고, 가득 찼을 때에는 묵직하고 조용한 것처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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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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