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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4'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0/02/24 봄을 선취(先取)하다 (2)
  2. 2010/02/24 2010 여행 소망 (4)
  3. 2010/02/24 겨울나무에도 봄은 온다 (2)
  4. 2010/02/24 친구에게 (2) (6)

겨우내내 옷걸이에 걸려 있던 파란색 자켓을 끄집어내어
몸에 걸쳤다. 포근한 날씨에 봄옷을 꺼내 든 것이다.
오후에 전화가 왔다. 점심 먹고 회사로 들어가는 와우팀원이다.
"팀장님, 오늘 날씨 정말 좋아요. 근데 회사로 들어가야 해요."

"나는 놀러가지롱~!" 이라고 말했던가? 기억 안 난다.
분명한 것은 그 말이 머릿 속에 맴돌았다는 사실이고
했다면 놀리려던 것일 테고, 안 했다면 어떤 이유로 참았던 것이겠지.
오늘부터 3일 동안 나는 휴가다. 여행을 떠난다. 마음 가는 대로.

오늘 날씨가 좋았지만, 실내에 있은 시간이 많았다.
화창한 햇살을 보며 동장군이 물러가고 있음이 실감난다.
허나, 동장군이 가만히 물러가진 않겠지. 방구를 뿡뿡 두 번 정도는 뀌어 대겠지.
3월이 다 가기 전에 두 번 정도는 꽃샘추위가 올 테니.

그가 자취를 감추면 하늘과 땅에는 봄기운이 만연하겠지.
도시의 가로수는 푸릇해지기 시작하고,
시골의 개구리는 노래를 시작하겠지.
그럼 나도 기운차게 일어나야지. 봄의 새싹들처럼.

나는 오늘의 포근함을 열심히 일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이제 곧 좋은 날씨가 찾아들 테니, 열심히 일해 두어 참 좋은 날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그런 날에 밀린 일들 때문에 발목잡히지 말라는 메시지.
지난 해, 좋은 날마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난다.

올 봄에는 약속도 많이 잡지 않고
해야 할 일들을 미리미리 끝내 두어
한가한 날들을 많이 마련해 두어야겠다.
햇살이 화창한 어느 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2010년 봄은
내가 접수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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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관동 8경 중 3~4군데 다녀와야지.
2경은 북한에 있으니 불가능하고,
나머지는 마음에 품었으니 행해야지.

한 달 동안 유럽에 다녀와야지.
지난 해, 바이마르에서의 다짐을 기억해야지.
'결혼하기 전까지 매년 한 달 간의 유럽 여행을 떠나자.'

와우들과 함께 빙고 졸업여행을 떠나야지.
베트남이 되든, 인도가 되든 와우들과 함께 하니 
오랫동안 즐거워할 추억 하나 만들고 와야지.

연구원 여행도 빼놓을 수 없지.
선생님과 동료들과 함께하는 곳이니
어디든지 따라가야지.

작가 제의 여행도 실천해야지.
홀로 훌쩍 떠나 성큼성큼 낯선 곳을 밟으며
나의 내일을 희망차게 그려 보아야지.

춘천 한 번 다녀와야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춘천 가는 기차를 타고 호젓한 여행을 누려야지.
호반을 바라보며 그윽한 시간 가져야지.

wow4ever들과 안동에도 가야지.
10여 년 만의 방문에 옛 추억에 잠겨도 보고
소중한 이들과의 여행이니 유쾌하게 놀아야지.

그리고
엄마에게도 다녀와야지.
이곳에도 함께 가고 싶어하는 사람과 가면 좋겠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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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고통으로 절망에 빠진 당신에게
- 『마음의 행복을 찾아주는 책』을 읽고
작성일 : 2002-04-26     

저는 지금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깊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열흘도 넘게 슬픔과 고통의 구덩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게는 꽤 오랜 기간 동안 상한 마음의 치유를 경험하며 인내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깊은 상처는 세심한 치유의 손길과 시간의 경과가 없으면 훗날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이상한 행동, 불행한 가정 등을 낳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괜찮은 것 같다가도 날마다 한 두 번씩 너무 힘들어합니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가슴이 답답해져버립니다. 곧이어 터질 것만 같은 내 가슴을 쥐어뜯으며 혼자 슬퍼하죠. 세상이 나만 괴롭힌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할 뿐, 나는 어쩌지도 못합니다. 그야말로 정신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3~4시간을 보냅니다. 저는 책을 통한 치유를 결심하였습니다. 이런 갈급한 심정으로 찾아 낸 책 중의 하나가 『마음의 행복을 찾아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는 사람들,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혹은 뭐든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한 책입니다. 삶을 계속 이어지게 하고(고통이 너무나 힘겨우면 삶의 끝을 결심하기도 하죠), 상처를 치유하고 더 성숙해지는 지름길을 제공하는 책입니다. 저는 이런 책을 쓰는 사람들은 정말 괴로운 고통을 경험했고, 그 고통을 이겨냈음을 믿습니다. 

저 역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고통과 시련은 사력을 다해 피해야 할 불청객이 아니라, 더 깊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면, 우리 마음은 육체와 똑같이 자연스러운 치유과정을 시작합니다. 혹시, 지금 마음의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는 당신이다면 이 책을 읽어보십시오. 이 책은 우리가 고통을 극복해 나가는데 필요한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조언들로 가득합니다. 쓰러져있는 우리에겐 "저 멀리 보이는 밝은 미래를 바라 봐"와 같은 막연한 긍정적 조언보다는 당장 일어서는 방법에 관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책은 바로 우리가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제 저자들의 가르침들을 정리해 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상실이 함께 합니다. 확실한 상실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이별, 사랑의 깨어짐 등이고, 불확실한 상실은 실직, 돈을 잃는 것, 이사, 도둑맞음, 목표의 상실 등입니다. 상실의 느낌은 무기력해지고 비관적이 되는 것입니다. 초조해지고 식욕을 잃어버리거나 잠도 오지 않습니다. 극도의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고 쉽게 피곤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고통들은 '피하는 것이 최고'라는 말은 거짓 유혹입니다. 완벽한 치유는 이런 고통을 통과하여 고통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상실감은 우리에게 쇼크를 주고, 비극적인 상황을 거부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분노와 의기소침을 경험하지만, 결국에는 이해하고 수용하게 됩니다. 이것이 상실감의 회복 단계입니다. 이 단계들은 온전한 치유와 상실감의 극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며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상처의 크고 작음에 따라 이 단계를 거치는 시간과 감정의 깊이가 다를 뿐입니다. 상실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상실 후의 고통은 정상적이고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고통을 느끼고 아파하는 것들은 치유 과정에서 무척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로 고통을 덮어두거나 도망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저자들은 "당분간 아파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치유의 과정에는 시간이 걸림을 이해해야 합니다. 상처가 아물려면 많은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치유의 과정은 진보와 퇴보, 극적인 올라감과 기분 나쁜 뒷걸음질로 가득차 있음을 알고 충분한 휴식과 힘찬 행동의 멋진 어우러짐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당신을 편하게 하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자살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 수도 있지만, 결코 행동으로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흐느끼시고, 침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십시오. 화를 내되 안전하게 내는 것입니다. 치유과정에서 화를 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오히려 술로 달래거나 약물에 의지하는 것은 자연적인 치유과정을 방해하여 더한 상실감을 불러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처를 '별 문제 아니야'라는 식으로 얘기하여 성형수술 하듯 덮어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고통을 거부하면 온전한 치유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고 나면, 당신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이젠 문제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해야 할 단계입니다. 이용당했다 하더라도 용서할 수 있다면 마침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새롭게 생기기 시작한 에너지를 창조적인 일에 투자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일을 두려워 마십시오. 각종 모임에 참가해 보십시오. 고통을 이겨낸 당신은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덜 자기중심적이 되고, 감정이 더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정도의 단계에 이르면 당신을 축하하십시오. 살아남았음을 말입니다. 살아남았다고 표현될 만큼 고통은 우리 마음속의 모든 것들(희망, 긍정적 마음 등)을 죽여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구성이 상실, 고통, 치유 그리고 성숙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우리는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통에 빠진 모든 자들이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통을 피하려고 하거나 치유의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에게 이 책은 쉽고도 실제적인 조언을 해 줄 것입니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 그리고 시인 이렇게 3명의 저자가 쓴 책입니다. 한 쪽 페이지에는 간결하고 구체적인 조언이 있고, 옆 페이지에는 관련된 시가 실려 있습니다. 멋진 편집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고통으로 힘겨워하는 여러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상한 마음의 치유를 위한 또 다른 책으로는 『당신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을 어디서 얻는가』(세종서적), 『상한 감정의 치유』(두란노), 『세왕 이야기』(예수전도단), 『춤추시는 하나님』(두란노) 등이 있습니다. 두란노와 예수전도단은 기독교 출판사이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분들이라도 치유 분야에서만큼은 하나님이 도움될 것입니다.

[인상깊은구절]
고통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더라도, 고통과 함께 하십시오. 고통을 느끼십시오. 고통에 기대십시오. 끝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고통과 함께 하고, 슬픔을 경험하고, 아파하는 것들은 치유의 과정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고통을 거부하거나 덮어 버리거나 거기에서 도망치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과 함께 하십시오. 당분간 아파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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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만남은 이런 모양이다.
대화 주제는 아주 진지한 것들이고, (이를 테면 자기 꿈에 대한 이야기, 직장 내 어려움 등) 
나는 그런 만남들 후 집을 돌아오면서 깊은 만족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지.
그리고 나를 찾아 준 그들에게 깊은, 아주 깊은 고마움을 갖게 되고 말야.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글에서 이 같은 마음이 잘 표현된 바 있어 옮겨 적어볼게.

"밖에서 사람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강가로 난 방축 길을 걸어서 돌아옵니다.
혼자 걸어오면서
'이 못난 나를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또 '오늘 내가 허튼 소리를 많이 했구나.
오만도 아니고 이건 뭐 망언에 지나지 않는 얘기를 했구나.'
하고 반성도 합니다.

문득 발밑의 풀들을 보게 되지요.
사람들에게 밟혀서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건만
그 풀들은 대지에 뿌리내리고
밤낮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해와 달을 맞이한단 말이예요.
그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내 스승이요 벗이 되는 순간이죠.
나 자신은 건전하게 대지 위에 뿌리박고 있지 못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다는 생각에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암. 고맙지. 참 고마워.
와우팀을 만나고 돌아올 때가 특히 그렇지.
사실 기수마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
고마운 감정만큼은 비슷하게 다들 있지.
와우팀을 대하다가도 짜증 비슷한 감정이 날 때도 있어.
이런 감정은 바깥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거지.
대부분 나의 인격이 리더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때니까 말야. 

이런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해도
와우팀원들에 대한 나의 가장 큰 감정은 고마움이 될 것 같아. 
그들이 경제적인 비용을 나에게 던져 주어서 그런 것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각자 어딘가에서 살아가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 이후로 더욱 힘껏 살아주고, 성장해 주어 고맙더라. 
나는 한 사람이 열정으로 도전을 감행하고
장애물을 뛰어넘고, 사랑스럽지 않은 자기와 화해해 가며
결국엔 해내는 자기실현의 Full Story 를 보게 되니까 말야.
고마운 일이지. 용기를 내어 준 그에게도, 이런 기회를 준 하나님에게도.
 
지금까지 말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어 고맙다는 것이고,
와우팀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기에 고마움이 드는 점도 있어서 짧게 얘기해 볼게.
와우팀을 하면서 깨달은 건
사람은 분명,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하고
타인의과의 상호 인정 속에서 자아가 건강해진다는 거야.
나는 와우팀에 나를 던졌고, 그들도 할 수 있는 전부를 던짐으로
얻은 것이 친밀한 관계, 건강해지고 있는 자존감 등이겠지.

다시 사랑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이야기로 돌아갈게.
나의 직업 특성상 나는 과대평가될 수 있는 사람이지.
살아가다가 얻은 교훈, 책에서 배운 것들이 진짜인지 실험하여 얻은 깨달음을
글이나 혹은 강연으로 교훈과 깨달음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나누는 것.
이것이 나의 일이야.  이미 '얻으려는 그들'이기에 배움이 일어나는 것이지,
내가 훌륭하다거나 잘 해서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게야.
참가자들의 학습 열정이 없는 강연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그러나 강연 후의 "강연 참 좋았어요"라는 감사 인사는 나만 들어서도 안 되고 말야.
강연이 좋다는 말의 진짜 뜻을 알고 난 후라면 다음과 같이 말을 하면 어떨까? 
"강연도 좀(^^) 좋았는데, 나의 오픈 마인드와 학습 열정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사실, 나는 참가자들의 '고맙다'는 말을 저렇게 환원하여 듣는 것 같아.
내 블로그에 와서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심정이야. 고마움이지.
글을 읽어 주었다면 그냥 가도 고맙고, (찾아와 주었으니)
댓글을 달아 소통해 주면 더욱 고맙지. 
그들은 글에서 무언가를 얻어서 고맙다는 말을 간혹 하지만,
이 역시 그들이 홀로 고민하지 않고, 블로그를 찾아다닌 노력했기 때문이고
혹은 그냥 놀러 왔더라도, 긴 글을 한 번 읽은 그들의 활동 덕분이기도 할 테지.
나는 그들의 (생각만 하는 게 아닌) '활동'했다는 점,
마음을 열고 누군가의 글을 '읽었다'는 점이 고맙더라구.

어제는 독서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연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한 녀석을 만났어. 
몇 번 통화도 하고, 문자도 주고받았던 녀석이기에 무척 반갑더라구.
녀석도 뜻밖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에 놀라고 반가워하고. 
그 때, 나는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인사해야 했어.
내가 되게 점잖게 행동했나 봐. 독서 모임 멤버들이 모두 있어서 그랬나 봐.
녀석과 헤어지고 나니 와우팀원이 그러더라구.
"선생님, 되게 어른처럼 점잖게 인사하시던데요."
와우팀원은 다른 뜻으로 얘기했겠지만, 나는 듣자마자
방금 만나고 헤어진 그 녀석이 나의 반가움을 고스란히 전해 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음에는 좀 더 호들갑스러워야지, 하고 생각했다.
반가웠으니까. ^^ 물론 딱 내가 느낀 반가움만큼의 호들갑스러움. 더도 덜도 아닌.
이건 뭐, 내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누구나 장소에 따라, 함께하는 사람들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니까.

이렇게 매 순간 온전한 나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살이가 외롭지 않아. 고맙지. 암 고맙고 말고. 
이렇게 고마움만 느끼고선 잠자코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또 그들이 뭔가 내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줄로 착각하여
한 번씩 허튼 소리를 한다는 게 문제야. 암. 문제고 말고.

강연을 한다는 게 말야. 혹은 누군가에게 내 견해를 내어놓는다는 게 말야,
어떨 땐 꼭 술 마시는 것과 비슷한 것 같더라고.
아주 기분 좋게,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질 때면 귀가길이 행복하지.
그러나 숙취로 다음 날까지 머리가 아픈 날도 있을 테고
술기운에 말을 많이 하고 나서, 자신의 푼수를 후회하는 날도 있겠지.
나는 강연을 할 때 그래. 아주 행복한 날도 있고,
숙취한 것처럼 머리가 아픈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찜찜한 날도 있지.  

어제 독서모임은 운영자님이 잘 준비해 주셔서 
참가자 분들에게 뜻 깊은 순간들이 되었지. 무척이나 고마웠지. 
나는 카페 주인이고, 성실한 와우팀원 한 분이 운영자시거든. 
주인장으로서, 카페를 잘 운영해 주니 얼마나 고맙겠냐. ^^
근데, 나는 내가 맡은 순서를 잘 진행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그랬다. 
이를 테면, '나의 푼수를 후회하는 날'이라고 할까? 
영화 <500일의 썸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심히 느낀 바가 있어 말할까 말까를 고민하다 말을 꺼내게 됐지.
아! 그리고는 후회했다. 말을 급하게 마무리해 버렸다.
온전히 설명한 것도 아니고, 말을 안 꺼낸 것도 아닌 어중간한 
마치 설익은 밥처럼 소화하기 힘든 말이 되었던 게지. 

이건 내가 민감하고 소심해서 그런 것인지
실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불편해 했을지 궁금하기도 해.
어쩌면, 나의 견해를 말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지. 친구야, 뭐 잡히는 게 있으면 말해 주라. 

오늘 네게 한 말은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들이다. 
사람들을 향한 고마움, 그리고 허튼 소리를 하고 난 후의 건강한 자괴감 말야.
자괴감은 부정적인 어감인가? 자신을 괴롭히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부끄러워 한다는 뜻인데 수치심이라 말하는 게 더 좋니?
수치심이라 하던, 자괴감이라 하던 뜻은 같다. 부끄러워한다는 것 말야. 
어쩌면 이 부끄러움 때문에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인 덕목으로 용기, 절제, 온화함 등과 함께
수치심을 꼽았더라. 책에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수치심은 성품이기보다 감정에 가까우니 하나의 덕으로 보기엔 힘들대.
잘못에 치우칠 때마다, 불명예스러운 일을 할 때마다 수치심이 억제해 주니
이런 역할 때문에 수치심을 꼽았던 게지.
수치심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네.
청년들은 아직 덕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쳐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니 말야.
그러니 수치심이 있는 젊은이는 칭찬할 만하나, 어른을 수치심이 있다고 칭찬하진 않는대.
나이 먹은 사람은 아예 부끄러움 느낄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나.
나는 젊은이에게서 이제 어른이 되고 싶네. 아님 그 중간 어딘가에 있겠지.
친구야, 너는 어디 즈음에 있니? 요즘도 음주운전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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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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