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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5'에 해당되는 글 3건


성실한 창수 : 형,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제 소명이 아닌 것 같아요.
믿음의 형제 : 창수야, 네가 있는 지금 그 곳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을 섬기듯 일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전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 네가 잘 할 수 있어. 
                   그럼, 주님께서도 기뻐하시고 거기서 소명을 발견할지도 몰라. 

믿음의 형제에게 창수 대신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럼 당신이 하시죠. 그 일을."

(이런 과격함은 가끔 명료함을 준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정의이지 예의가 아니니까.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언어 폭력이고.)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상황을 넘어서는 믿음을 주셨다.
믿음으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성경에 의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믿음으로 우리는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우리의 반응을 바꾸어 낸다.
믿음의 형제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옳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함께 주신 것은 고유함이다.
각기 다른 재능과 기질을 주셨다. 각기 다른 삶을 살도록 계획하셨다.
재능으로 우리는 삶의 재미를 만끽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다.
성실한 창수는 자기 재능과 직업이 맞지 않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니 그도 옳다. 부분적으로.

저들이 저런 이야기를 한 까닭은 마음 속 품은 생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창수는 이직을 원하고, 형제는 머물기를 바랬다.
둘 다 옳다고 결론 내리면, 둘다 틀렸다는 결론과 마찬가지다.

자기경영의 지혜는 모순된 것들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에 통합시키는 법을 배울 때 얻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인생을 이해하는 데에도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저들은 각기 다른 개념으로 소명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부르심(소명)이다.
1차 소명이라 부를 수 있는 이것은 형제의 입장이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부름 받은 것인가보다는
하나님께 의해 부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직업적 소명이라 해도 좋을 2차 소명은
어디로, 혹은 무엇을 위해 부름받았냐는 질문을 다룬다.
자신의 재능과 기질에 맞는 직업으로의 부르심이다.
성실한 창수는 자기 일이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 사이의 구별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먼저는 두 소명을 함께 붙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둘이 올바른 순서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다.
소명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첫째 것이 첫째 자리를 지키도록,
즉 일차적인 소명이 항상 이차적인 소명 앞에 오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일차적인 소명이 이차적인 소명으로 연결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차적인 사명을 받지 못했다고 하여 아무 것도 행하지 않은 소극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소명이란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일차적인) 부르심에 반응함으로써 자신의 (이차적인) 부르심을 성취하는 것이다.”

일차적 소명에 몰입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차적 소명이 발견된다는 것은
오늘의 의미를 일깨우는 동시에, 미래를 꿈꾸게 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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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아, 요즘 김연아라고. 그 녀석 하는 것 보니 기분 좋두만.
나도 기분 좋아. 경희대에서 연락이 왔어.

(더 큰 목소리로)아니, 김연아 올림픽 스케이트 선수 말야.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어?

(쩌렁쩌렁하게) 아니, 김연아가 어제 1등했잖우.
아, 그렇지. 나도 어제 봤어.


카페에서 여든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의 대화다.
저만치 떨어진 곳이었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도 다 드릴 만큼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기본적으로 컸다.

나도 봤다. 김연아 선수의 쇼트 경기.
김연아의 경기는 환상적이었다. 경기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김연아의 예술을 보기 위해 여행 출발을 미룬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TV 앞에 앉았다. 한국의 곽민정 선수 경기도 보았다. 
가녀린 모습의 소녀는 실수없이 잘 해 냈다. 올림픽 첫 무대인데,
해설자가 참 잘했다고 설명한다. 그런가 보다 한다.
53.16 점을 받았다. 곽민정은 2위에 올랐네. 대단한 것이구나, 한다.
본선 진출을 확정한 소녀는 인터뷰에서 말도 잘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떨렸어요.
큰 실수 없이 잘 했지만 아직도 떨리네요.
그렇게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섰는데,
이 한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아사다 마오가 나왔다. 김연아와 마오 모두,
국민들의 부담과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출전했을 것이다.
연아씨 마오씨. 부담은 반반 나눠 가지시게.
먼저 등장한 마오씨. 멋진 경기 펼쳐 주시게.
나는 당신이 넘어지지 않기를, 작은 실수조차 하지 않기를 바란다네.
약하다는 점프를 아주 성공적으로 해내길 기원한다네.

아사다 마오의 경기가 끝났다. 좋았다. 전율이 일었다.
끝나고 만족해 하는 모습과 링크 밖을 나와 코치와 끌어안는 모습,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다. 나도 저런 표정을 지으며 살아야 하는데...
점수가 발표됐다. 쇼트 프로그램 본인의 올해 최고 점수를 받았다. 73.78점이다.

이제 김연아다.
그래, 라이벌의 실수가 아닌 라이벌의 최고 실력을 넘어설 때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것이다. 연아 씨~! 잘 해.

제임스 본드 메들리에 맞춰 시작된 김연아.
나는 놀랐다. (사실,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제대로 관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연아는 시작부터가 달랐다. 운동 선수가 아니라 예술가 같았다.
스피드는 어찌나 빠른지. 3회전 연속으로 성공한 김연아의 표정과 포즈는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쇼트 프로그램, 직선 코스에서 보여 주었던 스텝과 포즈는
자신감이 넘쳤고, 음악과 온전한 조화를 이루었다.
2분 48초가 끝나고 당당한 표정으로 마무리한 김연아. 최고다. 자랑스럽다.

해설자는 다시 보여주는 김연아의 트리플 점프 슬로우 모션을 보며
"품격이 다르죠"라고 해설했다. 정말 그랬다.
점수 발표.... 78.50 점. 쇼트 세계 최고 기록 경신이란다.
와~!

김연아는 바다 건너 여든의 할아버지들에게도 기쁨을 주는 존재였다.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들, 자신의 신화를 창조해가는 사람들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전한다.
그들의 첫째 목적이 세상에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향해 열심히 훈련하는 사람들,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사람들,
성장을 갈망하며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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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이승훈은 '행운의 금'을 목에 걸었다.
'은'메달을 땄어도 축하할 일이고 장한 일이다.
세계 2위라 해도 얼마나 대단한 실력이란 말인가!
그러나 1위로 골인한 크라머의 실격 소식이 전해지고
이승훈은 금메달의 주인공이 되었다. 감격적이다.

동시에, '불운의 주인공'에게 관심이 간다.
아뿔싸! 그는 코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실격 되었다.
10,000m 경주에서는 인라인, 아웃란인을 번갈아 타야하는데
순간의 착각으로 코스를 놓쳐 버린 것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네 인생이었다.

*

스포츠에서 Rule 을 지키지 못한 메달은 박탈 당한다.
인생에서도 Rule 을 지키지 못한 영광은 빛이 바랜다.
스포츠만큼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지도 모른다.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계속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은총 주기를 즐기는 신이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다.

살아가다가 받게 되는 크고 작은 충격은
'지금 당장, 당신의 삶을 들여다보세요.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 변화하세요!"라는 표지다.
변화의 메시지를 무시하거나 '아! 괜찮구나'라는 표지로 잘못 인식한 사람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 찾아든다. 그가 깨달을 때까지.

그가 뒤늦게 깨닫는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이런 엄청난 괴로움을 여러 번 막을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신이 지속적으로 그런 기회를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자신은 잘 사는 삶에 대해 뭔가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쌓은 돈과 명예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

인생의 승리만큼 중요한 것은
인생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다.
나는 게임의 규칙을 제시하고 싶지 않다.
참다운 삶에 대해 고민하여 스스로의 인생 철학을 세워볼 일이다.

자기 인생이니 스스로 알아서 하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덕을 지킬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를 쫓아가라는 말이다.

정의와 덕(悳)을 지켜나가는 사람의 인생은 빛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조금씩 자기 영혼의 빛이 희미해져간다. 
밤하늘의 별빛에서 죽은 물고기의 어둔 빛으로 바뀌어간다.
내가 사탄이라면, '조금씩 조금씩'의 전략을 쓰겠다.
사람들이 '이번 한 번만' 이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즈음 하면, 크라머의 얘기보다 훨씬 많이 진전되었다.
한 가지만 정리하고 다시 크라머 얘기로 돌아가자.
최고, 최대를 추구하다 보면,
정의와 도덕이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정의를 벗어난 최고, 최대의 인생은 예상만큼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

지금까지 다소 일반적인 인생 이야기를 했다면,
크라머에게서 배울 점을 생각해 본다.
마치 크라머가 잘못한 것처럼 글을 써 오게 되었는데,
사실 이번 실격은 크라머 선수가 아닌 코치의 잘못이었다.
크라머와 2위 선수와의 시간차를 확인하다가 순간 착각한 것이다. 

다음은 연합뉴스 박성진 기자의 상황 보도다.
"경기장 25바퀴를 도는 10,000m 종목에서 선수들은
같은 거리를 뛰어야 하기 때문에 코스 안쪽과 바깥쪽을 번갈아 탄다.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하다가 잘못된 코스에 접어들지 않도록
코치들은 경기장 밖에서 선수들에게 코스를 지시한다.

그날 경기에서 크라머는 8바퀴를 남겨 둔 상황에서 아웃코스로 들어가려다
켐케스의 지시를 받고 황급히 인코스로 바꿨다.
켐케스가 인코스라고 지적하는 바람에 잘못된 진로를 택하게 된 것이다.
인코스를 두 번 탔다는 이유로 크라머는 금메달을 딴 이승훈(21.한국체대)보다
4.05초 앞선 가장 빠른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실격당하고 말았다.

켐케스는 8바퀴를 남겨 둔 시점에서 크라머에게 이승훈과의
시간차를 알리려고 글을 쓰느라 정신이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코스 선택을 두고 망설이던 켐케스는 크라머와 함께 레이스를 펼치던
이반 스코브레프(러시아)가 어느 코스를 타는지도 쳐다봤다.
레인을 바꾸는 교차 구간 시작 부분에서 미리 코스를 바꿔 인코스로 치고 들어온
스코브레프를 본 켐케스는 잘못된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됐다."

때로는 엄청난 충격이 다른 사람들의 잘못으로 인해 닥치기도 한다.
자기 실수나 잘못이 아니기에 더욱 억울하고 화가 난다.
크라머는 결승선 골인 직후 실격당한 사실을 알고 격분해 고글을 집어던졌다.
켐케스 코치도 한탄과 자책을 거듭했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이런 말 자체가 크라머에게 위로가 될 순 없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잘못했다는 사과가 아니라, 금메달의 놓친 상황을 되돌리는 것일 테니.
인생을 되돌리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충.분.히. 분노를 표현하고, 그를 용서함으로
과거에 집중된 자신의 관심과 에너지를 오늘로 되돌리는 일이 최선이다.
Big Picture Mind 를 회복하여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는 것이 내 마음이었다.

언론이 전한 크라머의 사건 후 모습을 이렇다.
- 절망 속에 하루를 보냈다. 화를 냈고, 코치에게 말도 안 했다. 
- 다음 날, 훈련장에 나타난 크라머는 지난 일을 깨끗이 잊은 표정이었다.
- 이렇게 말했다. "켐케스 코치와 함께 해온 지난 몇년은 너무 좋았다.
                        그만한 일로 누군가와 떨어질 수는 없다."

그의 넓은 모습이 금메달 감이었다. 그는 말한다.
"켐케스 코치와 대화를 재개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그 문제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화를 내는 스타일의 사람이 아니다.
그런 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아마추어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크라머가 품은 다짐이요, 마음 속의 결론이다. 멋진 모습 아닌가. 24살 청년인데.
허나 그가 여느 사람과 같다면, 현실 속에서는 당분간은 괴로움이 떠오를 것이다.
그럴 때마다, 더 큰 선수가 되는 자양분으로 삼아 훌륭한 선수가 되길 바란다.
아울러 이승훈 선수는 금의 맛을 알았으니, 크라머의 위대한 라이벌이 되어 주길.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랫동안 훌륭한 1인자와 위대한 2인자의 모습을 보여 주길.

크라머와 함께 지난 5년간 동고동락해왔던 켐케스 코치.
그는 크라머가 세 차례 세계선수권대회 타이틀과 4개의 유럽선수권대회 금메달,
그리고 이번 올림픽 남자 5,000m 금메달을 따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켐케스 코치야말로 그의 말처럼 '세상이 무너지는 날'을 맞았으리라.
할 말이 없다. 그저 힘내시라는 말 밖에.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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