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10여 년 전의 일이다. 아마존닷컴에 이메일을 보내야 할 일이 생겼다. 주문한 피터 드러커와 잭 웰치의 책이 한 달이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이전에 배송되었던 것보다 확실히 늦어지고 있으니 문의를 해야 했다. 이왕 메일을 보내는 김에 완벽한 영문 이메일을 작성하고 싶었다. 그러기엔 영작문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영작문 책을 한 권 샀다. 공부할 시간이 넉넉지 않아 진도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당연히 메일 쓰기도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려는 완벽주의자였던 것이다. 일을 제대로 처리할 자신이 없으면 할 일을 미루곤 했던 완벽주의자 말이다.

문득,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그저 메일 한 통 보내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내 뒤통수를 쳤다. 완벽주의를 떨쳐버리고,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영문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10여 분만에 책이 배송되지 않았다는 영문 이메일을 완성했다. 순간, 영어를 잘 하는 후배에게 메일 내용이 정확한지 물어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히 고개를 내미는 완벽주의를 억누르며 SEND 버튼을 눌렀다. 의사전달에 문제가 없었나 보다. 다음 날, 내가 원했던 답변을 얻었으니까. 몇 통의 이메일을 더 주고받았다. 만약 완벽주의와 타협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일을 미루게 되면, 실제로 그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 사건(?)이었다. (10분 만에 끝낼 수 있는 일을 나는 영작문 책을 구입하고 공부하느라 보름을 더 지체했다.) 그리고 완벽주의가 나의 미루는 습관의 주범임을 확인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여러분들은 완벽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은 시간이나 분위기 또는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일을 미루지는 않는가? 베티가 말했다. “음, 난 분명 완벽주의자가 아니에요. 우리 집과 차는 늘 엉망이죠.” 자신의 정리 정돈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을 두고 완벽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편지를 쓸 때면 셰익스피어의 문장력이 나올 정도로 영감을 받을 때까지 기다린다. 이것은 완벽주의의 가벼운 증상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현숙씨는 퇴근 후에 책 읽을 시간을 마련하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연말이라 업무가 많아서 야근이 잦아졌다. 간만에 집에 일찍 귀가하여 식사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책상 위에 먼지가 보였다. 이를 가만 두지 못하는 현숙 씨는 청소를 시작하였고 기어 나오는 먼지들을 모두 청소하느라 독서하기로 했던 한 시간을 고스란히 청소에 투자했다. 이제 책 읽을 상황이 준비되었지만 시간이 없다. 잠들 시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현숙 씨 역시 스스로 자신은 완벽주의자라고 고백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은 어떠한가? 아래의 테스트를 한 번 실시해 보자.
(체크리스트는『완벽주의로부터의 해방』中에서 가져 왔음)

아니오  
① 나는 종종 완벽하게 할 자신이 없어서 할 일을 미루곤 한다.
② 나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최고의 것을 기대한다.
③ 어떤 일을 하고 나면 ‘그 일을 더 잘 할 수도 있었는데’라고 생각한다.
④ 내가 계획한 대로 일이 잘 돌아가지 않으면 화가 난다.
⑤ 남들은 일을 제대로 처리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이해 못할 것이다.
⑥ 나는 너무 자주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일이 형편없어서 실망한다.
⑦ 나는 분명한 목표점을 제시하는 최고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⑧ 내가 하는 일이 보통의 수준이라고 평가받으면 정말 기분 나쁘다.
⑨ 실수를 반복하면 스스로 나 자신을 깔보게 된다.


동의하는 항목이 많을수록 완벽주의 성향이 높아지는 것이다.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는 필자는 5개의 YES가 나왔다. 여러분들은 어떤가? (만약 독자 분들이 몇 개가 나왔는지 댓글로 공유해 주신다면 자신의 완벽주의 정도를 서로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이 나왔다고 좌절하지 말자. 완벽주의자는 다소 느리지만 일을 제대로 해내는 사람들이다. 필자도 적은 편이 아니지만, 완벽주의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면 ‘탁월함’을 창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기대감을 갖자. 완벽주의를 극복하면 지금보다 높은 업무 성과를 달성하게 된다.


[글의 전문을 보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하세요.
완벽주의 성향을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Tip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보의 드림레터 #14. 완벽주의를 벗어던지고 지금 곧 시작하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거북이의 4월 추천도서]
이 책은 알람시계이기를!



"아티스트로서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자신이 초보자임을 인정하고 기꺼이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됨으로써

진정한 아티스트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훌륭한 아티스트가 될 것이다."

- 『아티스트 웨이』, p.75


<보보의 독서카페> 3월의 도서는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였습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돕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입니다.

창조성을 발견하는 방법, 자기 내면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힘에 접속하는 방법 등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이 책의 명성을 들었지만 2010년이 되어서야 읽은 것이 아쉽습니다.

책 제목을 알고 있다고 해도, 내용을 알고 있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희 집에는 책이 많은 편이고, 그 중에는 『아티스트 웨이』도 있었습니다.

집에 이런 보물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묘한 감정이 듭니다.

읽지 않은 책이라면 가지고 있다고 하여 내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이 책을 읽어달라고 권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더라도

(제게는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그것은 제가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동기부여와 실천 사이에는 또 하나의 강이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실천만이 실천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 책의 제목을 알리거나, 구입하시라고 말하고 있음이 아닙니다.

책장을 넘기며 읽으시기를, 책의 제안들을 따라 매일 아침 모닝페이지를 써 보기를 권하는 게지요.


책이 알람시계처럼 "저는 꼭 읽어야 하는 좋은 책입니다"라고 시끄럽게 울어대면 어떨까요? 그러나 아무리 좋은 책도 조용하게 책상 위에 놓여 있을 뿐, 우리를 초대하는 법이 없습니다. 성장하고픈 열망으로 책의 첫 장을 열어 젖히는 실천과 책장을 넘겨가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실천과 노력을 『아티스트 웨이』에게 주어, 정성껏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당신께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될 용기를 줄 것입니다. 훌륭한 아티스트가 되리라는 꿈과 함께.


당신은 아티스트와는 상관이 없는 일을 하고 있다구요?

천만예요.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아티스트입니다. 하루를 경영하여 예술 같은 인생을 창조하는, 삶의 감탄사를 만들어가는 예술가입니다. 저 역시 누군가가 내 삶의 이야기를 듣고 '와우'라는 감탄사를 연발할 만한 삶을 조각하는 예술가입니다. 예술가 당신께서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면, 이 글이 『아티스트 웨이』로의 매개체가 되길 기대합니다.


저는 이 책이 알람시계였으면 하는 상상을 합니다.

날마다 잊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이니까요.

매일 읽으면 내 삶이 바뀌리라는 확신이 드니까요.



※ 책의 리뷰는 오랜 후에야 작성할 수 있을 듯 하네요.

저는 두 달 전에 이 책을 읽었고, 아직 책이 제안하는 12주 훈련을 마치지 못했거든요.

과정이 즐겁고 효과가 좋아서 흥분한 제가 인내심이 없어 이리 소개글이라도 올렸습니다.


Posted by 보보


뭐가 두려운 걸까?
왜 내 마음 속의 소원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내기가 이렇게 힘들까?
왜 그것에 인생 전부를 걸어 열렬하게 도전해 보지 못할까?

적어 보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 함께 밥 먹고 이야기 나누기 (내가 좋아하는 야구선수 양준혁과 좋아하는 개그맨 3인)
- 저술여행 떠나기 (동남아 휴양지로)
- 소규모독서모임 100곳에 강연 제안하기 (좋은 독서친구 만들어가기)
- 인터뷰어로서 스스로 참 좋았다고 생각하는 인터뷰 10개 해 보기
- 이사하기 (나의 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서재를 만들 수 있는 곳으로)
- 와우스토리연구소 프로그램 론칭
- 열흘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기
- 언론사 <올해의 책 10선>에 꼽히는 작가 되기

이 목록들은 오늘 아침에 문득 떠오른 것이 아니다.
아침 햇살이 떠오르면 사라지고 마는 안개처럼
문득 떠올랐다가 이내 저물어버리는 그런 소원들이 아니다.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떨림으로 머물고 있는 소원들이다.

마음 속의 소원들은 내게 열정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어떻게... 혹은 아직은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어
도전하지 못한 채 마음 속에 꾹꾹 놀러 두었던 목록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내가 이뤄 온 모든 목표들은 
떨림으로 다가서며 용기 내어 두려움을 넘어서면서
하나 둘 이뤄 온 것들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듯 활동하는
불도저같은 성취주의자들의 돌진이 부럽기도 하다.
자신감 넘쳐서 무엇에든지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을 지닌 이들도 부럽다.

절대로 한 번의 실패를 통해 우울해지거나 움츠러들지 말자.
성공은 실패를 앞세우고 온다. 실패는 성공으로 가는 이정표다.
움츠러들면 다음 번 선택에서 나의 소원을 따르지 못하게 된다.

삶을 두려워 말자.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 말자.
오직 자신이 두려움에 움츠러드는 사람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자.


나와 같은 꿈꾸는 청춘들에게 외치고 싶은 말이다.
청춘들이여, 일어나라. 햇살을 향하여 일어나는 봄의 새싹들처럼.
청춘들이여, 도전하라. 느리지만 그래도 원하는 길을 걸어가려는 나 거북이처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1월 음악회를 다녀온 후,
두 달여 만에 예술의 전당에 갔습니다.
이번에는 전시회나 회화전을 보기 위함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더군요. 한 달에 한 번 있는 휴관일이라네요.

야외 벤치에 앉아 있기에는
햇살은 좋았지만 바람이 쌀쌀했습니다.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카페마다 문을 닫아 캔커피 하나를 마신 후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예술의 전당을 감싸고 있는 우면산 자락을 둘러보며
봄꽃이 피었는지 정도는 볼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봄이 오지 않은 것은
3월 말에 어울리지 않은 쌀살한 날씨 탓이 아니었습니다.
주변을 둘러 볼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지 못한 제 탓이었습니다.
새로운 변화든, 진정한 계절이든 마음으로부터 시작되나 봅니다.

"그대 가슴에 꽃이 피지 않았다면
온 세상에 꽃이 핀다고 해도 아직 진정한 봄은 아닙니다."
  - 이외수

중요한 이야기 하나는 전하고 마쳐야지요.
매월 마지막 월요일은 예술의 전당 정기휴관일이랍니다.
예술의 전당 관람의 시작은 휴관일 정도는 미리 확인하는 준비성이고,
봄의 시작은 가슴 속의 꽃을 피워내어 마음으로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요?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가끔씩 제 필명인 '보보'의 의미에 대해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지요.

보보라는 개념 속에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생각이 들어 있답니다. ^^ 

 

1. 보보의 의미

 

'보보(Bobo)' '부르조아 보헤미안(Bourgeois Bohemian)' 약칭입니다.

'부르조아'(Bourgeois) 경제적 기반에

'보헤미안'(Bohemian) 자유로움을 가진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보보스]라는 책을 읽고 사용하기 시작한 닉네임이지요.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20세기는 부르조아의 자본주의 세상과

보헤미안의 '반문화(counterculture)'를 구분하기가 쉬웠으나

지금은 사람들에게서 보헤미안과 부르조아가 한데 뒤섞여 있습니다.

저자의 직접 설명을 들어보죠.

 

"부르조아는 진지하고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전통과 중산층의 도덕을 옹호했다.

그들은 대기업에서 일하고, 교외 지역에 살고, 교회에 다녔다.

반면에 보헤미안은 전통을 비웃는 자유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술가와 지식인들로서 히피족과 비트족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헤미안은 진보적인 1960년대의 가치를 옹호했고,

부르조아는 1980년대의 기업 중심적인 여피들이었다."

 

그런데, 21세기의 엘리트들은 이 두 가지의 가치를 조화시킨 사람들입니다.

금융 자본 못지 않게 아이디어와 지식이 성공에 필수적이며,

아이디어와 감성을 제품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앞서 나갑니다.

이들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로서(공교육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헤미안의 창의성과 부르조아의 경제적 안정을 추구합니다.

말하자면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 '부르조아 보헤미안(Bourgeois Bohemian)'라 불리울

신계급이 탄생한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였고, 제가 살아가는 방식과 비슷하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자가 설명하는 보보들의 삶과 저의 삶은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삶의 방식은 같을지라도 추구하는 가치와 삶을 바라보는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부르조아가 제 삶을 들여다보면 "당신이 어찌 부르조아인가?"하고 따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이지, 화려한 경력과 부러울만한 업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저는 보헤미안 쪽으로 조금 더 가까운 보보입니다.

 

경제적 안정을 누리면서도 욕심장이가 아니고

오히려 물질을 선하게 사용하고 원대한 이상과 영적인 변화를 추구합니다.

상사의 기대를 충족시키면서도 비위를 맞추기보다는 자기 영혼의 소리에 귀기울입니다.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면서도 사회적 평등이라는 이상을 추구하고,

넉넉한 삶을 살면서도 과도한 소비보다는 현명하고 거룩한 지출을 추구합니다.

교육을 통해 탄탄한 지식을 갖추었으면서도

예술적 취향과 자유 정신으로 감성이 메마르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보보입니다.

 

물론 보보라고 불릴 만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이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계층이든 구성원들이 똑같은 모습을 가지지는 않으니까요.

 

2. 와우팀장 삶에서 발견되는 보보의 특성

 

정장을 입고 괜찮은 기업에서 근무하며 그곳에서 인정받기를 꿈꾸었습니다.

부르조아의 미덕인 검약, 정직, 질서, 중용, 근면, 인내, 절제 등의 가치를 추구했고,

보다 세련된 모습의 교육받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근데, 언젠가부터 '세련'과는 거리가 멀어졌지요.)

이것은 부르조아들과 가까운 모습들입니다.

이들 부르조아가 자주 경멸의 대상이 되는 까닭은 그들의 물질주의 때문입니다.

좋게 말하면, 실용주의라고 볼 수 있으나, 지나치게 물질을 만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지배 이데올로기가 옳지 않을 때에는 과감히 나의 목소리를 내며

세속적 성공보다는 나의 이상과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었고, 창의력, 상상력, 영혼을 좋아했습니다.

이것은 보헤미안과 가까운 모습들입니다. 

 

나는 부르조아의 영역에서 보헤미안의 특성을 한껏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제가 추구하는 사상에 대한 깊이를 가지면서도 (보헤미안적 사상)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실용성을 추구했습니다. (부르조아의 특성)

강사와 저자로서의 명예를 꿈꾸면서도 (부르조안의 사상)

영적 가치와 자유 정신을 잃지 않기를 갈망했습니다. (보헤미안의 사상)

나는 기업에서 근무를 하며 그들과 어울리면서도 (부르조아의 특성)

내 영혼이 다른 이들을 따라가지 않도록 주의하였습니다. (보헤미안의 사상)

자유롭고 때로는 진보적인 정신을 가지고 지식인이 되고자 노력하면서도 (보헤미안)

문화에 지나치게 적대적이지 않는 중용을 실천하기를 바랐습니다. (부르조아)

 

부르조아와 보헤미안, 이 두 계급의 특성을 두부 가르듯이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지만,

두 계층 간에 사상과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고,

디지털 시대의 엘리트들이 그 다름의 경계를 허물어버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로 보입니다.

저 역시 두 계층의 좋은 점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보보'라고 생각했답니다.

두각각의 나쁜 점들은 쏙 빼놓고 이야기한 반쪽짜리 설명이었음을 감안해 주세요.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국리더십센터 웹진으로 발행되는 [보보의 드림레터]를 모두 모았습니다. (20편 완결)
아직 읽지 못하신 것 있으시면 시간 날 때 하나씩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0편까지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보보의 드림레터 목록]

보보의 드림레터 #20. 미소와 행복으로 하루를 채우기

보보의 드림레터 #19. 실행 마인드로 무장하여 지금 당장 시작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18. 효과적인 휴식과 에너지 관리로 건강을 유지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17. 무리한 계획, 엉성한 계획, 무(無)계획을 집어 던져라

보보의 드림레터 #16. 시간 관리의 기본, 정리 정돈을 마스터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15.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능률 무한대 시간을 발견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14. 완벽주의를 벗어던지고 지금 곧 시작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신년특집] 2007년을 성찰하고 2008년을 희망하자

보보의 드림레터 #13. 시간 예술가여, 인생의 작품을 만들어라

보보의 드림레터 #12. 기쁨 넘치는 사명자로 살아라

보보의 드림레터 #11. 내면 속의 불꽃을 발견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10. 당신의 이야기, 당신만의 세계를 만들어라

보보의 드림레터 #9. 비전 날개를 달고 힘차게 비상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8. 성공과 행복을 스스로 정의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7. 인생을 변화시킬 용기를 가져라

보보의 드림레터 #6. 인생의 큰 그림을 향하여 전진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5. 새벽에 일어나 함께 가자

보보의 드림레터 #4. 절대로 중도 포기하지 마라

보보의 드림레터 #3. 위대하고 경이로운 일상을 만들어라

보보의 드림레터 #2. 몰입과 성찰을 끊임없이 반복하라

보보의 드림레터 #1. 나는 보보 스타일을 만들고 싶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지난 주, 와우팀원과 함께 강남역 인근의 <노리타> 라는 레스토랑에 갔었지요.
두번째로 찾은 곳인데, 첫째 방문은 또 다른 와우팀원과의 식사 만남이었습니다.
<노리타>는 건물의 8층과 9층을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두 층은 서로 다른 분위기로 꾸며져 있고, 저는 두 곳 모두 가 본 셈이 되었네요.

맛좋은 스파게티집으로 유명한 곳인데, 저는 그 곳의 분위기에 흠뻑 취했답니다.
이번에 간 곳은 아래층인데, 실내의 어두운 조명과 다정스러워 보이는 연인들,
그리고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화려한 네온싸인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몇몇 공간을 와인병으로 인테리어한 것은 <매드포갈릭>과 비슷했습니다.

<매드포갈릭>은 친구나 직장 동료들도 많이 보이는 편이지만,
<노리타>에는 연인 둘이서 찾거나, 소개팅을 많이 하는 곳처럼 보이더군요.
그래서인지 들리는 음악은 감미롭고, 분위기는 달콤했지요.
문득 든 생각은 "아, 이런 곳에 온 것이 참 오랜만이구나.' 였습니다.

아! 연인의 손을 잡고 사랑의 눈빛을 주고 받은 적이 언제였던가?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2005년 여름, FP 라는 카페에서의 추억이네요.
지금 제가 시도하려는 것은 과거를 향한 향수가 아니라
과거를 성찰하여 삶의 에너지로 삼을 만한 새로운 기운 찾기입니다.
'현실도피를 위한 낭만주의'에 빠지는 것은 잠깐의 위안 만을 주니까요.

한적한 곳에 위치한 분위기 좋은 카페,
FP를 발견하여 우리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자주 그 곳에서 달콤함 시간을 가졌었지요.
손님이 없는 날이면 기타를 빌려 노래를 불러 주곤 했지요.

또 다른 사랑의 추억은 몇 년 전 가을, 토다이에서의 추억입니다.
그 날은 연인의 생일이었고, 기독교 세계관 책을 선물했지요.
드물게도 그녀는 책 선물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두꺼운 책으로 준비했어죠.
이것 저것 준비한 작은 이벤트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사랑의 추억이 있으니까요.
가슴 아픈 사랑일지라도, 사랑을 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것보다 좋습니다.
사랑을 노래한 많은 대중가요들을 절절한 가슴으로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참 햇살 좋은 날입니다.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는 날마다 이렇게 화창한 세상이겠지요.

이 봄엔 더욱 뜨겁게 사랑합시다.
연인이 없다면, 좋은 인연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마음 속 그녀가 있다면 용기를 내어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직 우린 젊기에 지난 사랑을 추억하기보다, 새로운 사랑을 꿈꾸어야지요.

나는 열렬히 살아가고 있는가?
생생한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노리타>에서의 잠깐의 감상은 사랑에 대한 추억을 하게 했고,
제가 살아가는 세상이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재능과 기질을 지녔지만
군대에서 만났던 전우들만큼 다양한 배경과 출신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삶의 경계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경계 속에서 새로운 경험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었지요.
홍대 클럽에 한 번 가 본 적도 없고, 한강변을 신나게 드라이브 한 적도 없습니다.
고작해야 한 달에 한 두번 영화를 보는 것이 제 유흥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청교도적인 바른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내 삶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적당한 삶이라 생각되네요.
지금 불만을 느끼는 것은 마음껏 즐기지 못한 지난 젊음이 아닙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진지해져버린 제 자신이 못마땅한 것입니다.

뒤늦게 클럽에 다니고 싶다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아니, 이것일까요? ^^)
아마도 저를 거기에 데려다 놓으면 불편해하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할지도 모르지요.
지금 저는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순간적인 호기심을 느끼는 중입니다.
맛있게 빵을 먹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지요.

욕심이 많은 것이기도 하고, 자족할 줄 모르는 마음이기도 할 것입니다.
제 인생에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살아 숨쉬는 역동성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한자어로 人生입니다. 조혜련 씨는 "사람이 생생한 것이 인생"이라네요.
사랑을 하든, 일을 하든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끼도록 치열하게 해 보자구요. 

두서 없었습니다. 글이 차례나 갈피 없이 산만했다는 말입니다.
제 삶도 마찬가지여서 산만하고 두서가 없습니다.
두서 없는 삶은 생기 없는 삶, 사랑이 깃들지 않은 삶보다는 낫습니다.
다소 두서가 없더라도 열렬하게 살아가고, 뜨겁게 사랑해야겠습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제게는 와우팀원들에 대한 책임의식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제 넘는 간섭이나 조언을 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아닙니다.
물론 그들에게 '결정적 한 방'과 같은 조언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은 그들의 자존감을 세워 주고 독립성을 높여가는 과정을 돕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책임의식은 리더를 따라 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와우팀원 한 분을 만나, 출근 전까지 커피 한 잔의 시간을 가졌지요.
이직을 두고 고민하고 있는 그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30대 중반의 남자 분인데, 저를 진지한 대화 상대로 여겨 주어 고마웠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그가 이런 류의 말을 하시더군요.
"와우팀을 통해 자 자신을 들여다 보는 과정이 없었더라면
저는 아마 1인 기업의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독립은 커녕
이직에 대한 고려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라고.

저를 격려하시는 차원에서 하시는 말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당신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고 믿지요.
앞서 말한 책임의식은 이런 일을 지켜 보면서 생겨나는 감정입니다.
그것은 애정이기도 하고, 나의 말이 동기부여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이기도 하지요.

어린 시절, 무언가를 (품목이 기억 안 나네요) 사려고 길을 나섰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새로 이사간 동네여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마음이 이끄는 방향으로 정하여 길을 걸었습니다.
큰 도로를 따라 걷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걸었습니다.

대구에 살던 시절이었는데, 앞산사거리에서 서부 정류장을 지나 송현동까지 걸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갈 생각은 없었는데 걷다 보니 다시 돌아갈 수는 없더라구요.
이미 많이 왔다는 사실이 앞으로 더욱 걸어가게 되는 묘한 상황이었습니다.
길을 나서서 멀리 떠나 본 자들은 이런 '절망적 용기'를 갖게 됩니다.

저는 우리네 인생길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공병호 소장님의 말 중에 가장 와 닿았던 메시지 하나는
"인생에서 안정이란 단어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안정이란 없습니다."
암울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면 자유로워지기도 했습니다.

이 길도 불안하기 마련이고, 저 길도 불안하기 마련입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지 두려움이 따르니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지는 말아야겠지요.
묘한 것은 이미 무언가를 느끼고 깨달았으면, 이전 상태로 살기는 싫어지지요.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습니다.

"인식의 나무 열매를 먹은 사람은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 막스 베버


말하자면, 와우팀에서 우리 모두는 인식의 나무 열매 몇 가지를 먹은 것입니다.
그것은 때로 와우팀원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팀원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전진하기도 하고, 후진하기도 하면서 성장하니까요.

우리의 성장하는 모습이 상향식 나선형일 것이라는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성장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살지는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묘한 딜레마지요.
이런 딜레마에 빠뜨린 죄(?)로 저는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내가 직접 체험하여 살아 숨쉬는 지식을 골라내어 그것을 전한자,
등의 와우팀장으로서의 제 나름의 원칙 몇 가지가 있었지만
이제 더욱 제 삶으로 실험하고 더 많이 연구하는 리더가 되어야 함을 느낍니다.

이 글은 제 노력의 일환입니다.
지금까지 와우팀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잘 적지 않았습니다.
자랑한다는 느낌을 주거나 그런 피드백을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런 두려움까지 이겨내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인식의 나무 열매를 먹은 당신이라면,
두렵고 부담스러워도 계속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절망적 용기를 맛보아 그 힘으로 계속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무언가를 찾아 떠났던 어린 시절의 그날 이야기로 글을 마칩니다.

서부정류장을 지나 첫번째 사거리에서 우측 비스듬한 길로 걸었습니다.
10여 분을 더 걸어서 결국 저는 원하던 물건을 파는 집을 발견했습니다.
어디에서 힘이 생겼는지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걸어서 돌아왔지요.
오가는데 적어도 두 시간은 지났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러 장면이 기억 납니다.

20년 전의 그 기억이 선명한 것은
길을 떠나 부딪쳐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럴 때 우리는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 본 글은 2010년 2월 28일 작성한 것입니다.


NO.1 이 아니어도 좋다!
어제의
자신을 뛰어넘었다면.

-보보의 벤쿠버 올림픽 간헐적 관람기


그야말로 전국민의 관심이었던
김연아 선수의 경기 장면을 제외하곤
이번 벤쿠버 동계올림픽을 자주 보지는 못했다.

언론에서 '중요한 경기'라고 소개하는 경기들은
금이냐, 은이냐를 가르는 결선 경기였다.
간혹 예선 경기중에 중요한 경기가 있긴 하지만,
그것은 유력한 금 후보가 또 다른 유력 금 후보를 만난 것이었다. 
'중요함'의 기준은 다분히 '금'과의 접근성이었다. 

사실, 그들의 금은동이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더 엄밀히 따지자면 올림픽도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나의 삶이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다.

나는 나대로 살 것이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나와 무관해,
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나의 생각은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작가를 꿈꾼다. "작가는 세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는 수잔 손택의 견해에도 동의한다.
나 또한 세상 일에 무관심한 편은 아니니까.

사실,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은 '내 삶의 중요성' 여부가 아니라,
벤쿠버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을 포함한 '개인들의 삶의 중요성'이다.
지난 2월 2일, 벤쿠버로 떠나기 전, 결단식을 가졌던 83명의 태극 전사들의 삶 말이다.
당시, 금메달 6개, 종합 10위를 목표했던 대한민국은 무난히 목표를 달성했다.

동메달 2개, 은메달 6개, 금메달 6개로
캐나다, 독일, 미국, 노르웨이에 이은 종합 5위!


일본은 끝내 No Gold 로 대회를 마감했다.
한일전 경기마다 나 역시 민족주의로 다져지긴 하지만,
그들의 이번 대회 성적에는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번 대회의 몇 장면을 지켜보며 한국인으로서 느끼는 행복감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빈약한 결과와 비교한 상대적인 만족이 아니다.
자기 신화를 이뤄낸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데서 오는 행복이다.

금메달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나는 볼슬레이 팀의 선전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영화 <국가대표>를 떠올리게 했다.
올림픽 첫 출전으로 60년 썰매 역사를 지닌 일본을 제치고
결선에 진출하여 최종 성적 19위로 마감했다. (일본은 21위)
이것 역시 일본을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열정과 저력 때문이다.

[볼슬레이팀 관련기사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03145523&isYeonhapFlash=Y]

나는 곽민정의 선전에도 무한히 기뻤다.
어린 소녀는 올림픽 첫 도전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넘어섰다.
대단한 선배 김연아처럼, 곽민정도 어제의 곽민정을 넘어선 영웅이었다.
점수를 받고 기뻐하는 곽민정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것은 내게도 행복이었다. 

한국 선수만 지켜 본 것은 아니다.
TV를 자주 보지 못해 올림픽 경기 자체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틈이 나면 누구의 경기든 관심으로 지켜 보았다.
지켜 본 사람 중에는 크세니아 마카로바라는 피겨 선수가 있었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55.38 의 시즌 베스트를 갖고 있던 크세니아 마카로바가
59.22 라는 높은 점수를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그녀도 자신을 뛰어 넘은 사람이 되었다.
(아쉽게도(?) 그녀의 성적은 이후에 경기한 아사다 마오, 김연아 등에게 밀려났다.)
크세니아 마카로바는 좋은 체격 조건에다 화려한 기술의 조화로 참 아름다웠다.
우리의 김연아 선수가 이보다 더 잘한 단 말인가! 라는 생각에 감동적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김연아 선수의 뛰어남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모든 선수들을 응원했다.
혼신을 다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에는 그들과 함께 아쉬워했다. 
혹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더라도 그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을(그것이 욕심일지라도) 시도하다
최악의 상황을 연출해 버린 이호석에게도 욕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호석을 탓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어떤 논리 때문에 이호석 비방론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잘 몰랐다.
그러던 차에 만난 동아대학교 정희준 교수의 글을 읽었는데 
참으로 통쾌하고 명쾌했다.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어느 누리꾼은 관련 기사에서 "이호석 선수가 금메달 100개를 따와도 반갑지 않다"고 했단다.
 "올림픽 경기 중이라도 이호석 선수와 그의 담당 코치를 징계해야 한다"고도 했단다.
한국에 이렇게 정신 나간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이런 분이 둘만 되도 참 문제다.
이런 분에겐 이호석을 대신 해 한 마디 해드리고 싶다. "네가 타라. 스케이트."
- 정희준 교수님의 글 중에서

내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까닭은
스포츠 선수들이 모두 자신을 넘어서려는 치열함을 지닌 행동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올림픽 선수단에 포함된 83명을 모두 존경한다. 

언론은 보다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올림픽 소식을 보도해 주었으면 했다.
2월 27일 모 방송의 저녁 뉴스에서 벤쿠버 소식을 전했는데, 김연아에 대한 보도가 주였다.
그것은 결코 나쁘지 않다. 나는 주류에는 무조건 마음이 꼬이는 벤댕이가 아니다.
게다가 김연아에 대한 관심을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날이었으니.
다만, 다음 날에도 최고 이외의 소식을 전하는 데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 아쉽다.

어제 저녁 뉴스에 불편했던 뉴스 중 하나는 김연아 선수의 부상 소식이었다.
올림픽 출전 전에 부상이 있었고,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은 부상 투혼으로 얻은 값진 메달이라는 것.
뉴스는 긍정적인 사고의 힘이 메달의 공신이라는 표현으로 끝났다.

나는 생각했다. '부상을 안고 출전하는 것은 분명 부담이고
더 큰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허나 그런 일은 매우 흔하다.
성공은 실패를 앞세우고 온다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부상 투혼은 위대한 승리자들에게서 자주 발견된다.
승리는 실패와 도전를 넘어선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김연아 선수의 부상 투혼 뉴스는
봅슬레이의 선전 소식 등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또 하나의 불편한 방송은 SBS의 <연아의 트리플러브>라는 특집 방송이었다.
토요일 종일 강연을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했지만, 방송을 끝까지 보기 힘들 정도였다.
(두 분의 아나운서 탓이겠냐만은) 아나운서 두 분은 김연아에 대해서도,
피켜 스케이팅에 대해서도 무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수준 낮은 질문이 반복된 그 방송을 보신 분이 많을 것이기에 일일이 언급하진 않겠다.
(근거 없는 주장이 명예훼손이라도 될까 봐 관련기사 링크를 걸어둔다.)

[<연아의 트리플러브> 관련기사 : http://media.daum.net/entertain/view.html?cateid=100030&newsid=20100228103306934&p=starnews]

혹시라도 김연아라면 무조건 시청률이 높을 것이고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이었다면 그야말로 저널리즘 정신을 상실한 태도다.
이번 벤쿠버 경기 중에 생방송으로 관람한 경기는 많지 않다. 
이호석, 선수와 성시백 선수가 넘어졌던 바로 그 경기와 
김연아 선수의 7분 경기가 전부다. 찾아서 본 경기는 김연아 선수 뿐이다. 
쇼트와 프리, 두 개의 경기를 보기 위해 일부러 일정을 맞춰 집에 들러 홀로 즐겼다. 

뉴욕타임즈도 "이번 올림픽은 김연아의 것이었다"고 흥분했다.
나는 그것이 호들갑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 그녀는 여왕다웠다.
"힘들었던 기억은 많고 기뻤던 순간은 잠시 뿐이었다.
올림픽 챔피언, 해치워 버려서 기분이 좋다"고 말한 김연아 선수의 말 속에서
그간의 힘겨움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녀의 메달이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갑자기 김연아 선수 이야기를 한 것은
내가 김연아 선수 안티가 아님을 전하고 싶은 게다.
나 역시 짜릿한 감동으로 김연아 선수를 지켜 보았고, 뜨겁게 환호했다.

다만, 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은 것이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에 일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어제의 자신을 넘어선 자는 모두 위대한 도전의 승리자들이다.
우리는 1등에게만 박수를 몰아 주기보다는
위대한 승리자들 모두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야 한다.
나 역시 'No. 1'보다는 'Only 1'을 꿈꾸는 사람이기에.

이제 벤쿠버 올림픽은 끝났다.
김연아에게 보냈던 정성스런 응원과 눈물 섞인 간절함보다 
더한 정성과 간절함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할 순간이다.
어제의 자신을 뛰어넘기 위해. 김연아처럼.

그리고
김연아에게 보냈던 응원만큼의 정성을 담아
82명의 태극전사들에게 전해 드린다. 잘 싸웠다고.
간절히 기원 드린다. 내일은 더 큰 선수가 되시라고.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선생님은 책 선정과 읽는 순서를 어쩜 그리 기막히게 정하셨어요?
이번 명랑 (프로젝트) 너무 좋아요."

명랑 프로젝트에 참가한 팀원이 한 말이다. 다른 팀원 한 명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명랑 프로젝트는 12주 동안 6번의 만남을 가지며 자신의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나는 그네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허접한 선생을 어쩜 그리도 치열하게 따를 수 있냐?"
 
괜한 겸손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다.
열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길이 열리기 마련이다.

독서가 쌓이게 되면, 서로 다른 책의 내용이 연결되기 시작한다.
내가 아는 내용을 만나는 반가움. 부분과 부분을 연결하여 새로운 것을 깨닫는 재미.

책의 순서가 조금 바뀌어도 그런 반가움과 깨달음을 얻는 데 지장이 없다.
좋은 책을 성실하게 읽어나가는 독자라면 누릴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 팀원의 저 말은 영광스러운 말이지만, 나에 대한 거품이 끼어 있다.
거품을 걷어 내고 상황을 들여다 보면 본인의 열심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는 하기 좋은 겸손의 말로 진실을 가리고 싶지도 않다.
나는 분명 주제에 맞는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 수 시간을 투자했으니까.

아무 책이나 성실하게 읽을 필요는 없다. 무슨 일이나 효과적인 방법이 있으니까.
좋은 책의 목록을 구하여 치열하게 읽는 것, 독서에서는 그것이 중요하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123

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보보

달력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래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