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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8'에 해당되는 글 2건


누구나 삶을 살며 조금씩은 힘겨움을 겪지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사별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고서 뒤늦게 사랑을 그리워하기도 했지요.
여행에세이를 내고 싶어 두 달 동안 여행하며 빼곡히 기록한 노트와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며 구입한 자료들을 몽땅 잃어버리기도 했지요.
참 보고 싶었던 선생님을 찾아 뵈었더니 2년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며
준비한 꽃다발을 동료 선생님께 전하면서는 또 얼마나 울었는지요.

이 모든 일은 제가 가슴에 담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들이지요.
어떤 슬픔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평생을 안고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묘한 것은 한없이 기쁠 때에도 슬픔이 슬쩍 지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첫 책을 출간하고서 저는 참으로 기뻤는데요,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가장 먼저 나더군요.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기 마련이다.
완전히 무기력해지는 짧은 순간은 있을지언정, 완전히 무기력한 인생은 없다.'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 는 말은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오랫동안 제게 힘이 되어 주었던 구절입니다.
"인간은 고난을 겪은 만큼 성장한다"는 간디의 말도 도움 되었지만,
신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과 결합되었을 때,
더욱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절망적일 때에는 고난을 견디고 난 후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보다는
당장 내게 이런 고난을 견딜 만한 힘이 있는지부터 회의하게 되니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지금 힘겨운 일로 고통스러워하는 분이 계신다면
조심스런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힘을 내시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결국 이겨 내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엄청난 고통을 당한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기가 참 부끄럽고 무안합니다.
아니 하지도 않겠지요. 흉악한 범죄에 자녀를 희생당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그렇습니다.
아이티, 칠레의 지진 소식을 들을 때에는 무기력해지기까지 합니다. 
이 글은 그런 분들까지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엄청난 재난은 생각의 전환과 함께 복합적인 문제 해결책이 필요하니까요.
힘든 일이지만, 우리는 엄청난 재난을 당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생각을 전환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깊은 힘겨움이라는 사실도 인식해야 합니다. 
"잘 될 거예요"라고 가벼운 낙관주의를 전하는 것은 그들에게 오히려 상처가 됨을 깨달아야 하니까요.

놀라운 것은 일이 다 잘 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행복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암시하면서 얻는 얕은 행복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얻는 깊고 진한 행복까지도 말입니다. 
저에게 행복은, 신나는 비행과 같이 들뜬 감정이기보다는
잔잔한 호수에서 맛보는 평온함과 이해와 수용함에서 오는 안정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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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내 인생의 노래 (1)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십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친구들 몇이서 모여 놀다가 친구네 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 때의 다른 일은 기억이 나지 않고 두 가지가 지금도 또렷하다.

하나는 친구 집의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원한 전망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높은 집은 처음 가 보는 듯 했다. 
초등학교 친구 한 녀석이 11층에 살았는데 그보다 더욱 높았던 것 같다. 
친구들이 소파에 앉아 있을 때에도 혼자 슬쩍 베란다 쪽으로 가서 
집 앞 전망을 내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창 밖을 내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는데 
어떤 생각이었는지까지는 잊어 버렸다.
지금은 그저 찰스 핸디의 말이 함께 떠오를 뿐이다.
"남의 것을 엿보는 것은 훌륭한 학습"이라고. 
남들이 살아가는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움이 있다.
사람들이 삶을 맞이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든,
사람들이 거주하는 물리적인 환경을 보는 것이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일이 줄어드는 것 같다.
고작해야 집들이 정도랄까? 외에는 친구 집에 갈 일이 많지 않다.
친구 녀석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나마 좀 더 뜸하게 된다.
친구와의 우정이 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녀석이 사는 곳까지 가는 발걸음은 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제 고향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결혼한 지 40일 정도가 지난 녀석이다.
언제 내려오냐? 4월 4일에 내려가. (난 이리 고향 가는 날을 미리 정해 두는 편이다.)
그럼 이번에 우리 집에 한 번 와라. 가도 되냐?
되지 임마. 친구 집인데. 그러네. 친구 집이지? 근데 왜 난 네 와이프 눈치를 봤다냐? 하하하.

우린 함께 웃었다. 아님, 멋적어서 나 혼자 웃었나?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게 뜸해진다.
이번에 내려가면 친구네 집에 가 보아야겠다.


또렷이 기억나는 다른 하나는 친구가 들려준 노래였다.
그 때 당시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이후로 이 노래를 들을 때에 몇 번 감상에 젖곤 했다.
노래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었다.
"가사가 좋아. 잘 들어 봐" 친구의 말에
우리 모두는 (아니면 적어도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 지새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가네
흰 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노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김광석의 유작이 된 [다시 부르기 2]에 수록된 곡이다.
1995년 발표된 이 앨범은
김광석이 선정한 '한국 모던포크의 대표곡 모음집'이다.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창기의 <변해가네>, 한동헌의 <나의 노래> 등을 실었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동익 밴드가 세션의 맡아 주었고,
편곡자 조동익이 원곡을 김광석 버전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 앨범을 2002년 코엑스의 에반레코드에서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도, 지금도 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가사에 몰입한다.
노래는, 들으며 가사를 옮겨 적을 수 있을 만큼
느린 템포이고 나는 가사를 적으며 노인네의 인생을 따라간다.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평온한 부부의 인생이 그려져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다가 결국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라는 가사에 눈물이 핑 돈다.

노인네의 인생을 엿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나도며
깨닫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흥과 배우자의 소중함이다. 
상상의 나래를 타고 생각 여행을 떠나, 어느 인생을 엿보는 것도 훌륭한 배움이구나.
며칠 전에 보았던, 최근 들어 노인들의 자실이 급증했다는 기사도 떠올랐지만 
사회적 문제까지 글에 담지는 않으련다.

대신, 감동적이면서도 마음 아픈 깨달음이 담긴 글 하나를
소개함으로 글을 맺는다. (출처를 찾지 못해 주소만 적어 둔다.)

http://blog.daum.net/dolpiri58/15692629?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dolpiri58%2F15692629

나는 이 글을 읽고 여의도의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읽었다.
읽고선 마음이 슬프고 안타까워 잠시 카페를 나서야 했다.
여의도의 넥타이 부대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글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시는 내외분에 대한 안타까움과
두 분의 애틋한 애정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문득 나의 할머니 생각이 났다. 

혼자 다짐했다. 
아름답게 살자고, 잘 살아가자고.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삼키며.

오늘은 노랫말처럼 살아가고픈,
60대가 아니라 70대, 80대까지 함께 살고픈
한 여인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나도 김광석 노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감상에 빠져든다.

"그(김광석)의 노래에 감염된 나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 안도현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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