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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독서의 유익은 책을 읽고 싶다는 충동을 적절히 제어해야 얻을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내겠다는 목적에 눈이 멀어 사색의 충동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독서는 사색으로 가는 통로다.

그러므로 읽기책을 보기스스로 생각하기의 결합이 되어야 한다.

몰론, 책의 모든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할 순 없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책의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순 없다.

"독서한 내용을 모두 잊지 않으려는 생각은

먹은 음식을 모두 채네애 간직하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말을 가볍게 책을 읽어도 된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만년의 저작인 『여록과 보유』의 독서론에서

줄곧 독서보다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색의 대용품에 불과하다." - 쇼펜하우어

책을 굳이 골치아프게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느냐,

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쇼펜하우어는 단호하다.

그는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는 학자들과

사색을 통하여 새로운 견해를 만들어가는 사상가를 구분한다.


"학자란 타인이 남긴 책을 모조리 읽어버리는 소비자이며

사상가란 인류를 계몽하고 새로운 진보를 확신하는 생산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 없이 책을 읽는다고 하여 자책할 필요는 없다.

독서가 무조건 생산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기분전환과 흥미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유익하니까.


읽기 = 보기 + 생각하기

그러나, 책을 통해 지성을 연마하고

학습 능력을 키워나가고 싶다면 위의 등식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읽어대려는 충동을 억누르고, 사색의 충동을 살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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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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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개봉일 : 2009. 11. 12
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출연 : 존 쿠삭 (잭슨 커티스), 아만다 피트
   (케이트 커티스), 치웨텔 에지오포(애드리언 헬슬리)

관람 : 2010년 4월 11일, 관광버스

평점 : ★★★★

간단평 : 스펙타클한 재난 장면은 정말 압권임.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걸 후회할 정도로. 짜릿한 스릴과 거대한 스케일을 즐겼음. 반면, 매력없는 주인공 가족 대신 감동적인 몇몇 조연들로부터 희망과 에너지를 얻었음.


누구를 구할 것인가?

이 영화가 <투모로우> 의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것은 관람 후, 기사를 검색하며 알게 되었다. 롤랜드 에머리히를 재난 영화 전문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지는 않다. 같은 소재지만, 표현하고 싶은 것은 매번 다를 수 있다. <2012>의 소재는 종합재난세트로 구성되어 있지만, 감독이 말한 영화의 초점은 재난이 아니라, 재난 그 이후다. "누구를 구할 것인가?" 이것이 영화가 보여 주려는 하나의 메시지다.

"새로운 세상 만드는 데 늙은 정치가보다
젊은 과학자가 필요하지."

-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생존을 포기하며

결국, 대통령은 죽는다. 희생적인 모습이 퍽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동체에는 현명하고 헌신적인 리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아의 방주'에는 선장은 있지만 실제적인 리더가 없었다. 최고의 지위를 가진 자가 아니라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이 리더다. 리더는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리더의 말을 따르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는 문을 닫기 직전,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결국, 生의 기회를 준다. 그것은 젊은 과학자의 다음과 같은 양심어린 호소 때문이었다. 그 순간엔 그가 리더였다. 누구를 구할 것인가? 나는 하나의 대답은 할 수 있겠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헌신적인 리더!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두당 10억 유로의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구원해서는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
 
"남들이 흘린 피 위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선 안 됩니다."


가족의 의미 = 우리의 생존기반

주인공 가족은 매력적이지 않다. 주인공 잭슨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한 소설가다. 아내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몹쓸 남편이다. 결국 이혼을 당했다.  "당신에게는 모든 게 뒷전이고 글만 써댔잖아. 우린 내댕동이쳤잖아요." 일과 삶의 균형을 놓친 가장, 연민이 가지만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주인공이다. 게다가 주인공 가족은 오직 자신들만의 구원을 향하여 달리고 또 달린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스펙타클한 재난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주인공 가족의 가족 이기주의 역시 스펙타클하다.

주인공 가족에 비해 티벳에서 만난 불교를 믿는 어느 한 가족의 모습이 빛났다. 불교 가족의 장남은 노아의 방주 호 건설에 참여한 인부였다. 그래서 그 가족은 방주에 올라타는 길을 알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 가족을 만난다. 주인공 가족까지 들어갈 수는 없다고 제지당했을 때, 불교 가족의 리더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대지의 형제라고.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 시민주의)의 모습을 보여 준 장면, 내게는 무척 인상 깊었다. 주인공 가족에게 기대한 것을, 이렇게 다른 가족에게서라도 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 모두 대지의 형제다
불교 신자로서 저들이 죽는 걸 모른 체 할 수 없다."


주인공 가족이 보여 준 것은 전혀 없지는 않다. 가족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했다. 영화는 노아의 방주에 무사히 탑승한 가족의 1년 6개월(?) 후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난다. 잭슨 커티스와 딸의 대화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딸이 묻는다. 아빠, 우리는 언제 집으로 가? 아버지가 대답한다.

"가족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지"

그의 말은 정답이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중한 병에 걸리거나, 힘겨운 일이 당했을 때 우리는 늘 깨닫게 된다. 가족의 소중함을. 가족은 우리의 생존기반이다. 공룡은 자신의 생존기반인 숲을 매일 엄청나게 먹어치웠다. 생존기반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지혜가 없었다. 생존 기반을 돌보지 못하는 종은 언젠가는 멸종되는 것이 자연의 역사였다. 지금 우리는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물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거시적인 생존 기반이라면 가족은 미시적이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생존기반일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이 영화를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선생님과 연구원들이 함께한 MT 를 다녀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관람했다. (관광버스 안의 영상시설이 꽤 좋았다.) MT 를 통해 우리는 열심히 글을 쓰자는 마인드를 공유했다. 영화를 보다가 휴게소에서 쉴 때, 선생님께 농담조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부님,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데 글을 쓰면 뭐 하나요?"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고, 옆에 있던 선배 연구원이 내 말을 받아주었다. "선생님,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저는 오늘 한 편의 글을 쓰겠습니다." 선배의 더욱 재치있는 말에 함께 있던 연구원들은 웃을 수 있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사람은 스피노자였던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의 生을 흔들림 없이 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 인생일 터이니 스피노자가 말한 방식의 삶이 옳을 것이다. 재난 영화에서 으례 자신의 일을 끝까지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타이타닉>에서 침몰 직전까지 찬송가를 연주하던 바이올니스트들, <2012>에서 해일에 휩쓸려 가기 직전까지 종을 치던 승려. 그렇다면 작가를 꿈꾸는 나의 최후는 모니터 앞이 될 것인가? 그보다는 책을 읽다가 기도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공부하는 작가로서 '공부'에 초점을 두고 싶으니까.

19대 대통령 선거도 꼭 해야겠지요. MB를 생각하신다면.



Posted by 보보


#1. 진솔함

저는 기뻐요. 가슴이 벅차요.
누군가가 제게 진솔하다고 말해 주었거든요.
나의 진솔함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하네요.

진솔해지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지요.
용기를 낸 것을 그가 알아 주는 듯 해서 고마웠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마음을 알아 주고, 나는 고마움을 느끼다는 것.

이것이 바로 소통이겠지요.
투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이었는데,
오늘 그 소원을 잠시 동안이나 이룬 것 같아 기분 좋습니다.

보다 자주 소원을 이루어
보다 많은 날들을 기쁘게, 가슴 벅차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늘 진솔한 것은 아니니까, 진솔해질 기회는 참 많네요.


#2. 행복한 저자

LG의 한 계열사에서 5개월 동안 독서 코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21명이 신청하셨고, 저는 그들의 좋은 독서 코치가 되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그 첫날이었고, 오전 8시부터 2시간 동안 모임을 진행하고 왔지요.

매달 한 번씩 만나게 될 터이니, 참가자 분들과 조금씩 알아가고 싶었습니다.
몇 분과는 Mail 친구가 되고, 한 두 분과는 친한 벗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친밀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제 특기입니다.

아주 잘 생긴 과장님 한 분이 모임 후, 제 책을 들고와 싸인을 받아가셨습니다.
제게 퍽이나 영광스러운 일인데, 어찌나 그 사인을 고마워하시던지 인상 깊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회사 1층 미팅룸에서 우연히 그 분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신께서 제 책을 너무나도 잘 읽었기에, 거듭 고맙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어느 모임에서는 제 책을 소개하며 여러 사람들에게 읽어보길 권했다 하셨습니다.
"제게 맞다고 여러분 모두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겠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이셨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이 분은 열려 있는 분이시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 역시 제 책이 모든 이들에게 유익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세상의 '일부'로 보내었던 것이지요.

몇몇 분들이 좋아해 주시니 저는 '행복한 저자'입니다.
좋아해 주지 않으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더욱 '성장하고픈 저자'입니다.
언젠가는 스스로를 저자가 아니라,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을 '꿈꾸는 저자'입니다.


#3. 뻔하거나 이론적인 얘기

이번 주에는 두 번의 강연회에 다녀왔습니다.
하나는 여러 개의 세션이 있었으니 총 4~5회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짜릿한 깨달음을 주었던 강연은 구본형 선생님의 강연 하나였습니다.  

다른 강연들은 '뻔한 얘기'이거나, 현장을 모르는 '이론적인 얘기'였습니다.
유명한 교수님들의 강연도 이론적 탄탄함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즈니스맨의 현실을 감안하지 못해 비실용적인 이야기들일 수 있습니다.

모 교수님은 책을 '보는' 수준에서 '읽는' 수준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메모하고 요약하면서 읽어야 한다 하셨지요.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도 적극 동의하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일년에 100권씩 읽으라는 주장,
특히 100권을 읽어야 소통할 수 있고, CEO가 될 수 있다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학자가 아닌 비즈니스맨이 일년에 100권을 (보는 것이 아닌) '읽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또한 책을 읽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고,
일년에 50권을 보아도 CEO가 될 수 있으니까요.
도전을 주기 위한 발언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는 반대하렵니다.

왜 갑자기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냐구요?
이 글은 제 일상 나눔입니다. ^^ 워낙 글이 뜸해 사소한 제 일상이라도 나누려구요.
보보가 어느 강연을 들었는데, 얻는 것 없이 돌아왔던 일상이지요.

한 가지 얻은 게 있긴 했지요.
뻔한 얘기, 이론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하나?
라는 제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는 것.

Posted by 보보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1)
-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을 쌓고 싶은 분들을 위해


※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라는 책이 있으신 분들은
3장에서 객관적 독서와 주관적 독서의 차이를 이해한 후에
아래 글을 읽으면 좋을 테지만, 읽지 않으셔도 지장은 없습니다.


객관적 독서의 목표는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세계를 해석하는 핵심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라는 의문이 "아, 그럴 수 있지"라는 편안한 이해로 바뀌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과 행복한 삶을 사는데 중요한 기초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자신의 문제를 다룬 책들만 읽게 된다.
세계를 이해하는 것, 곧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세계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읽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독서모임에서 『좋은 사람 콤플렉스』라는 책을 함께 읽을 때였다.
책을 읽고 있던 와우팀원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제 얘기가 아닌 것도 많아서 그냥 설렁설렁 넘어가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해 본다. 먼저 그의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선생님이 말한 것을 보게 되요.
그러면 그 한 두 세 줄을 아, 이거 중요한 거지, 하고 들여다봐요.
하지만 다른 내용들은 내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뽑아낼 것 뽑아내고
넘어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필자는 세계를 해석하는 지식에 대한 그의 욕구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문제와 직접적인 연결이 되는 책들만 
읽는 독서 성향을 가졌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세계를 해석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거야.
네가 지금 이 책에 대해 느끼고 있는 것, 오늘 통화 후에 느낀 것 등을 기록해 두었다가
독서 모임 때 발표를 해 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발표도 잘 들어 봐.
그러면 분명히 하나의 책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왜 그렇게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여 알아가게 될 거야.
이런 활동이야말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게다."

그는 이 책을 읽는 동기를 하나를 얻은 듯했다.

"아, 그러면 '이 책은 나와 상관없군' 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유익한 책이겠네요.
저는 제 문제가 아니면 별로 신경쓰지 않았거든요."

자신의 지력 향상과 인격 성숙을 위해서 독서하는 것, 물론 옳은 얘기다. 
또한, 다른 사람을 이해하여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기 위해서도 책을 읽는다.
두 번째의 목적을 받아들이면 읽는 책의 분야를 넓힐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다룬 책만을 읽는 패턴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독서는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의 기술이란,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관한 것이다.  
첫째로 '어떤 책'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둘째로 그 책을 '어떻게 읽느냐' 에 답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객관적 독서의 달인이 되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 세상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고 싶다면,
먼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객관적 독서를 이루려면 자신을 관심사와 고민을 뛰어넘는 책까지 읽어야 한다.

이것은 자기 독서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 생각의 틀 속에 갇혀 산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자기 관심사와 고민이 아닌 책을 읽으라고 동기 부여를 하기란 무척 힘겨운 일이다. 

거듭 말하건대, 세계를 해석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인간의 행동 이해가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관심사와 고민에 관련된 책만을 읽었더라도
이제는 '사람들의 행동 이해'를 목표로 둔다면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깨닫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자신이 읽는 책의 지평을 활짝 열어젖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서의 달인은 주관적 독서와 객관적 독서를 넘나든다.
주관적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도약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객관적 독서를 통해 자신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을 읽는다. 
주관적 독서와 객관적 독서는 독서법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이렇듯 읽을 책을 선정하는데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것은 큰 차이다.
어떤 책을 한 두 권 더 읽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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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in Frankfurt

9월 12일 오후 18시 41분 도착

9월 14일 오후 16시 15분 떠남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저녁 7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빠져나왔다.

나의 성능 좋은 방향 감각은 여행에 큰 도움이 된다.

카이저 거리로 향하는 나의 직감은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행복한 인생살이의 비결은 정체성과 방향성을 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중 어느 한 단어도 파악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정체성 : 나는 누구인가?

방향성 :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누가 이 질문에 대하여 쉽게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행인 것은 대답을 빨리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젊은 날에는 질문에 답을 해야만 회사에 입사하는 줄 알았고

답을 가져야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인생이란 걸.

삼십 대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는 것도 빠른 것이란 걸.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동기와 성격』이라는 훌륭한 저술을 펴낸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말이다.

정체성과 방향성은 평생에 걸쳐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은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낯선 곳에서는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여행도 이 두 가지의 단어를 알고픈 소원에 맞닿아 있다. 


중앙역 정면의 길을 건너면 바로 카이저 거리다.

중앙역 맞은편으로 보이는 금호타이어 영어 간판이 반갑다.

카이저 거리, 우리말로는 황제의 거리이니

대도시로 들어가는 메인 도로의 이름으로는 제격이다.

카이저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두 시간 전까지 머물렀던 바이마르와는 다른 곳임을 느낀다.

 

바이마르에서 6박 7일을 머무르면서

트램이나 버스를 탄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고 보니, 그 작은 도시에는 지하철도 없었다.

관광 명소들도 대부분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들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큰 도시다.

카이저 거리에 들어서며 그것을 실감하게 된다.

동양인들도 많고 흑인들이나 중동 지역의 사람들도 많다.

책에서 읽지 않았더라도 프랑크푸르트가 교통의 허브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플랫폼

 

카이저 거리는 나의 상상과는 달리

고급스럽고 깨끗한 거리가 아니었다.

술 취한 행인들이 보이고, 걸인들이 많았다.

여럿이 모여 다소 무서운 분위기가 형성된 불량스러운 패거리도 보였다.

 

반갑게도 길을 건너자마자 <프랑크푸르트 호스텔>이 나타났지만,

미리 검색해 둔 <Easybed24>를 향하여 걸어갔다.

조금 더 저렴하고 인터넷도 무료인 호스텔이다.

카이저 거리와 직각으로 만나는 Morsel 거리에 있으니 멀지 않다.

Morsel은 첫 번째 사거리에서 만나는 거리다.

 

Morsel 거리의 번지수를 따라 좌회전하는 하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화려한 네온사인은 모두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사실, 별로 자극되지는 않았다. 살짝 긴장했기에.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인들과

남자 호객꾼들을 지나치며 걸어갔다.


워낙 평화롭고 조용한 곳에 있다 왔기에

약간 긴장은 했지만, 무섭거나 염려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함부르크의 유명한 환락가를

대담하게 걸어 다녔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들 가게들은 어떤 곳인가 하는 호기심이 자극되기는 했다.

선하게 보이는 흑인 호객꾼이 나의 호기심을 간파했나 보다.

저들의 독심술은 배울 만하다.

 

나는 못 이기는 척 하며 가게로 들어가고 싶었다.

가게 안에는 혹시 거리에 나온 여인들보다

더 과감히 노출한 여인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맙게도(?) 나를 붙잡은 남자와 여인이 나를 가게 안으로 끌어들였다.

안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높은 칸막이가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는 것 밖에는.

술자리인지, 남성 접대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바가지를 쓸 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시 들어갔다 나왔던 유흥 주점

 

호기심도 있었고, 일탈에 대한 욕망도 일었지만,

무서움과 바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웃으며 거절의사를 밝혔다.

내 팔에 힘을 주고 있는 남자를 뿌리치고 나왔다.

영어를 잘도 하는 흑인에게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오겠다고 했다.

남자도 직감했으리라. 내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란 걸.

빠져 나왔다. 다시 숙소로 걸어간다.

 

나는 여행자다.

내 안에는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는 모험심도 있었다.

그리고 일탈에 대한 욕망도 있었다.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두뇌도 가졌기에 이성적 존재지만,

여인을 안고픈 아랫도리도 가졌기에 욕망적 존재이기도 했다.

 

무섭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바가지를 쓰지 않을 자신이 있었더라면

나는 여인들의 젖가슴을 쳐다보며 술을 마셨을까.

누구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선 덕분에 도덕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우리는 덜 도덕적인 사람이 되곤 하니까.

여행지에서의 일탈이 보다 쉬워지는 까닭이다.

어쨌든 54일 간의 유럽 여행에서, 나는 나를 지켰다.

 

여행자는 욕망을 지닌 존재다.

모든 여행지는 여행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과

여행자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을 함께 지녔다.

여행자는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지녀야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자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거리를 걷는 것이지

욕망을 자극하는 곳을 드나드는 것이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니짜 산책로



우리는 인생 여행자다.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지금 주어진 일에 몰입하여 업무를 하나씩 해내며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발견해 가는 여행자다.

무얼 하며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면서도

인터넷 앞에서는 연예기사나 음란 사이트를 드나드는 것은

유익한 여행을 방해한다. 그런 일을 할 바에는 차라리 잠을 자는 게 낫다.

 

가게에서 빠져 나와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조금 있으니 흑인 청년이 들어왔다.

(방금 전의 그 사람이 아니라, 룸메이트다.)

호스텔에서 흑인과 함께 방을 쓰는 건 처음이다.

유혹을 이겨내니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난생 처음, 흑인과 길게 몇 마디를 나눌 수 있는 기회.

그는 따뜻하고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낭만 유럽여행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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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개봉일 : 2010. 4. 1
감독 : 루이스 리터리어
출연 : 샘 워싱턴 (페르세우스), 리암 니슨 (제우스),
          랠프 파인즈 (하데스)

관람 : 2010년 4월 9일, 코엑스 메가박스

평점 : ★★★

간단평 :  올림푸스 신전, 신화 속의 괴물, 신과 인간의 싸움, 장엄한 스케일 등 볼거리가 많음. 신과 인간의 경계 등 생각꺼리도 있음. 그러나, <아바타>의 공감각적인 메시지 확장은 없음.



※ 스포일러 있음. 그러나 <타이탄>은 미스테리도 아니고,
    시나리오가 치밀하거나 마지막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니 영화 보시는 데에는 무방함.


오전 8시 30분이라는 이른 시각에 본 영화 <타이탄>. 관객보다는 출근하는 시민이 많은 시각에 영화관으로 향하는 기분이 묘했다. 일해야 하는 시간인데, 라는 불편한 마음을 떨쳐 내야 했던 점도 있지만 그것은 일부다. 더 큰 감정은 즐거움이다. 3~4시간 동안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짓는 일도 아닌데 괜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해야 할 일을 완료해 두어야 더 즐거울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위해서는 일을 보다 효과적이고 생산적으로 처리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러닝 타임 내내 신과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했다. 줄거리 역시 신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인간은 신에게 도전하여 제우스의 거대한 동상까지도 무너뜨린다. 신들의 왕 제우스는 여러 신들과 함께 인간의 도전을 어찌 다뤄야 할지 고민한다. 제우스의 전지전능함을 질투하는 지옥의 신 하데스는 인간에게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제우스의 허락을 얻은 하데스는 인간 세계를 파괴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제우스에게서 신적 능력을, 인간인 어머니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물려 받은 영웅 페르세우스다. 그가 하데스의 파괴를 막아낸다는 이야기가 줄거리다. 승리는 페르세우스의 것이고, 그는 신들의 세계인 올림푸스 신전이 아닌 인간 세계에서 살기로 선택한다.

바다속으로 빠지는 제우스 동상


신과 인간 사이에서 펼쳐지는 싸움. 각 진영의 장군은 지옥의 신 하데스와 반신반인 페르세우스다. 사실, 기독교인인 필자로서는 신과 인간의 '싸움'은 상상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계시가 있고, 그것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미덕이니까. 분별과 순종을 추구했고, 회의와 반항은 멀리했다. 그럼에도, 영화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필자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어서인지, 아니면 영화의 스펙타클이 주는 몰입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기독교는 지적 자살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심과 회의를 환영한다. 회의에서 건너 온 확신이 더욱 굳건한 믿음이 되곤 하니까. 
 

<타이탄>은 <아바타>의 명성에는 못 미쳤다.


시나리오가 탄탄한 영화는 아니었다. 함께 보았던 친구는 "<반지의 제왕>보다 논리적 연결이 엉성하다"고 했다. <타이탄>은 블록버스터 영화로서는 부족하지 않다. 스케일이 크고, 영화의 장면이 되는 공간들은 '저긴 어디지?'라는 질문과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었다. 주요 볼거리들이 모두 섬세하게 만들어져 엉성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그러나 <아바타>와 비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바타>의 주인공(샘 워싱턴)이 다시 한 번 페르세우스 역으로 주연을 맡았다는 점 만이 비교할 만하다. <아바타>의 감동과 메시지가 훨씬 깊고 울림이 크다. 나에게 <아바타>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인간은 자신들의 생존기반을 돌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소한 성찰이라도 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받은 메시지다. 다른 이들이 받은 메시지는 나와 달랐다. 이것은 곧 <아바타>가 메시지 확장이 열려 있는 영화란 의미다. 볼거리는 물론이고, 공감까지 자극하는 영화였다.
 

올림푸스 신전의 신들


그에 비해 <타이탄>은 매력은 볼거리 속에 숨겨져 있다. <아바타>를 압도하는 수준의 영상은 아니다. 메두사, 올림푸스 신전, 거대한 전갈 등은 볼만 하지만, 경탄이나 아름다움까지는 아니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타이탄>의 중요한 메시지는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다. 이 점에서 생각을 자극하기는 했다. 신화에서의 신은 개신교의 하나님과는 다르다. 개신교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시고 인격적으로 온전한 분이시다. 반면, 신화 속의 신들은 하나씩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인간과의 '싸움'이 일어날 만한 신이고,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 중에서 어느 곳이 더 살만한 곳인지 고민해 볼 만한 신이다.

영화 속의 기이한 괴물들


신화에서 중요한 것은 질문이지 정답이 아니다.


필자는 <타이탄>의 장엄한 스케일, 신화 속의 신들을 표현한 방식 등도 흥미로웠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신과 인간이 나누는 대화 속에서 얻은 약간의 철학적 단상들이다. 인문학자 도정일 교수님은 신화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에 의의가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신화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신화에서는 회의를 얻어 오면 된다. 질문에 대한 답은 삶의 현장 속에서, 인류의 지혜 속에서, 약육강식의 자연사 속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어제까지의 역사와 오늘의 현장 속에서 말이다. 때로는 정답보다 질문이 중요하다.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가 된 것은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라고 회의한 그의 질문 때문이지, '물'이라는 대답한 정답 때문이 아니다.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는 무엇인가?
신에게는 인간이 필요한가? 왜 필요한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등이 내가 얻은 질문들이다.

"서로 싸우게 하여 우리로 돌아오게 하라."
- 제우스가 동생 하데스의 인간 공격 명령에 찬성하며

"인간을 창조하셨으면서도 인간을 모르시는군요."
- 페르시우스가 아버지 제우스에게 한 말.


필자의 마음에 남아 있는 몇 마디의 대사를 인용해 하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영화에서, 신들은 인간의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지옥의 신 하데스가 형 제우스에게 인간을 공격하겠다는 허락을 얻을 때, 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서로 싸우게 하여 우리로 돌아오게 하라." 제우스의 목적은 싸움이 아니라 인간과의 화해였다. 제우스는 인간을 자신에게 돌이키기 위해 싸움을 선택한 것이다. 의문이 생긴다. 선한 목적을 이뤄가는 수단이 부당할 때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나는 지혜로운 선택을 알지는 못한다. 분명한 것은, 목적만큼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합의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페르세우스는 신이 인간을 모른다고 말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상대를 이끄는 선의가 폭력적일 때가 있다. 상대방을 알지 못한 채 이끌 때다. "인간을 창조하셨으면서도 인간을 모르시는군요." 인간을 창조했지만,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길을 모를 수 있음, 지적한 것은 아닐까? 복잡한 문제다. 아이를 낳았으면서도 아이를 잘 모르는 부모님이 많다. 그렇다고 그들의 사랑이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니 자녀 교육의 지혜도 어려운 문제다.

"제게 필요한 건 여기 다 있어요."
- 페르시우스가 올림푸스 신전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청을 거절하며.

아들에게 동전을 건네는 제우스


영화에서 제우스는 자신의 아들 페르세우스에게 2번 초대한다. 신들의 세계 올림푸스 신전으로. 아들은 2번 모두 거절한다. 두 번째 거절을 하면서 "제게 필요한 것은 여기 다 있어요"라고 말한다. 신화에서의 신과 종교에서의 신은 능력과 인격이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페르세우스의 신념을 현대의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구원이 신에게 있다고 믿었던 중세, 이성과 과학기술에 있다고 믿었던 근대, 그리고 다원성을 중요시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구원과 행복, 신과의 적합한 관계는 중요한 문제였다. 인간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가졌는가? 신만이 채울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아니면 인간 세계에 필요가 모두 있는데, 사람에 따라 발견하거나 못하거나의 차이인가? 고민해 볼 일이다.

"우리보다 나은 존재가 되렴."
- 제우스가 아들 페르시우스를 인간의 땅에 남겨둔 채 승천하기 직전에 한 말.


제우스는 2번에 걸친 아들의 거절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다. 그는 올림푸스 신전으로 돌아가기 전, 아들 페르세우스에게 "우리보다 나은 존재가 돼"라고 말했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다운 성품과 권위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신의 세계를 버리고 자신이 창조한 세계에 남겠다는 아들에게 신보다 나은 존재가 되라고 하는 말은 내게 울림이었다. 오만하지 않은 겸손의 말이고,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아들에게 보내는 사랑과 축복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타이탄>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에게는 고민꺼리를 줄 수 있다. 그러니 신에게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볼거리 이상의 메시지는 없다. 이것이 <아바타>와의 차이점이다. <아바타>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울림 있는 메지시를 준다. 사랑, 자연, 더불어 살기, 소통 등에 대하여. <타이탄>은 잘 만든 영화지만, 아바타가 가진 메시지의 확장 면에서 2%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 영화의 메시지들이 좋았다. 기독교 세계관과는 맞지 않아 필자의 견해와 달랐지만 말이다. 다르다고 하여 영화를 두고 괜히 흥분하고 싶지는 않다. 대신 생각을 하고 싶다. 신에 대하여. 인간에 대하여. 그리고 인생과 나에 대하여.


※ <아바타>를 통해 3D 영상에 매료되셨더라도, <타이탄>의 3D를 추천하지는 않는다.
    3D 대중화를 일궈 낸 <아바타>와는 다르다. 혹자는 말했다. "어찌 대사만 3D로 나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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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라고 해서 성실하고 규모 있는 삶을 사는 아니다. 위대한 정신을 지닌 소수의 작가를 제외하면 작가의 글과 '일상' 별개다. 작가도 우리들처럼 게으르고 나태한 일상을 산다. 우리가 하루 8~9시간을 직장에서 일하는 것처럼, 그들도 많은 시간 (글을 쓰는) 일을 한다. (전업 작가가 아닌 경우, 일을 하며 글을 쓴다.) 퇴근 시간 관리를 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나 우리나 매한가지다. 작가들이 내놓은 책이라는 결과물로 그들의 일상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일년에 내놓은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우리의 일상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오류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글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말은 아니다. 글은 작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여러 요소 중의 하나다. 작가의 삶은 그의 일상, 지금까지 써낸 , 다른 이들과의 관계, 마음에 품은 정신, 살아온 환경 등이 어우러져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우리의 하루는 일상적인 시간,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수면 시간 등으로 이뤄진다. 일상은 삶의 일부다. 일상이 삶의 전부가 아니듯 작가의 글이 작가의 전부가 아니다. 글과 작가의 '일상' 다를 있다는 말이다. 글은 작가의 '일상' 아니라, 일상, 관계, 정신 등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총체적인 '' 반영한다.

 

이것을 이해한 작가들이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질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신감이 땅에 떨어졌거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독자들을 위로할 있는 작가는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서른이 되기 전에 알아야 것들』을 레슬리 가너는 그런 작가다. 저자는 위로의 달인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독자를 다독이고 아픈 부위를 부드럽게 만져준다. 이것이 저자가 글을 쓰는 방식이다. 책에는 한번도 적이 없는 명상을 배우기 위해 저자가 인도로 떠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녀는 명상 훈련을 처음으로 받았던 날을 다음과 같이 재치 있게 묘사했다.

 

"명상을 시작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머릿속에는 '다리 저려, 엉덩이도 아파 죽겠네'라는 생각만 맴돌았다. 가부좌나 딱딱한 바닥에 익숙지 않은 서양인들이 명상을 시작하고 가장 애를 먹는 부분 하나다. 이상 견딜 없던 나는 쯤에서 번째 명상을 끝내기로 했다. 눈을 떠보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혼자였다. 손목시계 바늘은 3분도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 동안 내가 것이라곤 엉덩이를 들썩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참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린 고작이었다." (p.53)

 

명상의 달인 같은 모습이 아니라,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 독자들에게 "나도 봐야지"하는 자신감을 전한다. 저자는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 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가 자신의 부족함이니 진솔함을 드러내는 것은 독자의 마음을 열어 자신의 통찰과 지혜를 전하기 위해서다. 마음을 여는 공감과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모두 지녔으니 쉽게 읽히면서도 울림이 있는 책이다. 책이 다루는 주제는 감사로 삶을 채우는 (29),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하는 (19), 실패를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2), 인생의 겨울을 대처하는 (14), 사랑하는 사람에게 조언하는 기술(12) 삶의 지혜에 관한 것이다.

 

책의 초반부에서 저자는 실패를 권한다. "실수나 실패를 범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과 달리 예술에서는 오히려 실수를 권장하기도 한다. 배우들이 즉흥연기 수업을 받는 이유는 창의성을 이끌어내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공연 중에 예기치 못한 실수를 범했을 경우에도 공연을 계속할 있도록 자유롭고 즉각적인 연기를 몸과 마음에 익히는 과정이다."(p.26) 그러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많이 실패하고, 실패해야 것이다.

 

인생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희망적이다. "바다가 거칠면 돛을 고쳐라 땅이 어는 겨울이 오면 가을에 추수한 식량에 의지해서 살아라. 가축들을 초원으로 끌고 나갈 없을 때는 건초를 주고 불가에 앉아 융단을 짜거나 텐트를 고쳐라. 당신이 어부도 유목민도 아니라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다. 동면의 시기에 있는 일들은 많다. 당신이 가진 것들을 편집하고, 자료들을 수집하며, 진행을 평가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우정을 쌓고, 책을 읽거나 부족한 잠을 채우고, 꿈을 돌보고, 꿈을 키워야 한다. 배워야 것이 있다면 인생의 겨울에 배워라." (p.121)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 분석이 아니라 자신감과 용기다. 자신은 변하지 않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 답을 찾아내려 하지 말자. 답을 찾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것이고, 찾아낸다 해도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의 지식에 머무르고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경영의 본질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다. 오직 실천만이 실천이다. 지식도, 이해도 실천이 아니다.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요원하다.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를 위로하고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사람과의 만남이다. 레슬리 가너가 그런 사람이다. 인생의 항해에 뛰어든 20대들, 그리고 새롭게 도전하려는 인생 여행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소개드린 책]
레슬리 가너, 『서른이 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Life Lessons』, 브리즈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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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해변의 야자수


태국 이야기가 나오면 흥분하는 여인이 있다.
"아~! 태국 너무 좋아요. 또 가고 싶어요.
제가 가 본 곳 중에서 제일로 좋아요."
그는 매우 유쾌하고 공감을 잘 하는 사람이지만
감정 표현을 다소 과장되이 하는 편이었다.
그는 태국이 참 좋은 여행지라고 했다. 나도 동의한다.
태국은 세계적인 휴양지와 관광 상품을 가지고 있으니까.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 태국"이라는 말이
(그녀에겐 진실이겠지만) 좀 더 객관적인 발언이 되려면
그녀가 여행을 좀 더 다녀오면 좋을 것이다.
당시, 태국은 그녀의 유일한 여행지였으니까.

(그녀의 과장된 표현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활력 넘치고 풍부한 감정 표현은 그녀의 매력이다.)


자기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자기 인식이다.
"난 마감 전날 밤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내가 딴죽 걸고 싶은 말이다.
객관적인 발언이 되려면 그가 밤에도 몰입해 보고
낮에도 몰입해 보고, 아침에도 몰입해 본 후에
가장 생산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비교해 봐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이 말한 사람은 시간 관리를 잘 하지 못하거나
긴급성 중독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긴급성 중독이란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여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야 업무에 착수하는 증상을 말한다.
소중한 일들보다는 긴급한 일들에 휘둘린 결과다.

긴급성에 중독된 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소중한 일이 아니라 긴급한 일이다.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데드라인이다.
누구에게나 마감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루는 성향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자기경영의 적이기에
마감효과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은 자기경영에 도움이 된다.
이 말은 자신만의 데드라인을 세워 지켜라는 말이다.

고질적인 긴급성 중독이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긴급성 중독에 걸려 있으면
자신의 업무 생산성이 가장 높아지는 프라임 타임을 찾기도 힘들다.
프라임 타임을 찾기 위한 실험은 긴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마감 전날 밤에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야"라는 말은
객관성이 결여된 말일 가능성이 높다.
태국만을 가본 여행자가의 말처럼
그도 마감 시간 전에만 몰입해 보았을 테니까.

효과적인 자기 경영을 하려면
자신을 다양한 업무 상황에 노출시켜 최적의 상태로 일할 수 있는
시간대, 환경, 장소 등을 알아 두면 좋다.
어젯밤 9시, 나는 집에서 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주에 있을 모임 준비를 위해 관련 자료를 서치하는 등의 일이었다.
그저께, 커피숍에서도 같은 시각인 9시부터 일을 했었다.
커피숍에서 밤 12시까지 높은 집중력으로 일을 했기에
어제도 그런 정도의 집중력과 업무 결과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는데, 깨어나고 보니 아침이었다.
11시 30분 전후로 하여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것이다.

이틀은 비슷한 정도의 업무 열의였으니
나는 그 시간대에는 어디에서 업무 생산성이 더 높은지 알 수 있었다.
결과는 커피숍의 승리였다.
매일 그렇게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훗날 또 그렇게 저녁 9시 무렵에 일을 할 날이 온다면
나는 귀찮지만 가방을 싸 들고 커피숍으로 이동할 것이다.
(물론, 장소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조건이 똑같은 순 없을 것이다.)

집이냐 카페냐를 두고 비슷한 시간대에
세 번의 실험을 했는데, 모두 카페의 승리였다.
묘한 것은 시간대를 달리하면 집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가장 효과적인 업무 환경을 찾아가는 것, 즐겁다.
또한 자기경영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자문자답.

- 자기경영을 위해 이런 귀찮은 실험까지 해야 하는가?
에머슨이 답한다.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입니다.
보다 많은 실험을 한다면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갈 것입니다."

- 인간은 환경을 뛰어넘는 존재이지 않은가?
맞다. 자기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인드다.
그러나 물리적 환경의 개선은 정신력을 더욱 고양시킨다.

- 그냥 지금 자기가 가장 효과적인 상태라고 믿으면 그만 아닌가?
낙관적인 사고 방식은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매우 좋지만,
종종 좋은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과정까지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2009. 3. 9
3일 간의 실험 후 쓰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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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어제는 두 명의 (옛 직장 동료이기도 했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을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각자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어떤 '통'하는 것이 있어서인지 종종 만납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어떻게 지냈는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의 어려움과 고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다른 곳에서는 터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지요.
자신을 열어 마음을 나누고, 받으려고만 욕심을 털어내면
진실한 우정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느꼈던 밤입니다.

두 친구 모두 부모님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참으로 마음 아팠습니다.
한 친구의 어머니는 3년째 암 투병 중이시고,
다른 한 친구의 어머니는 지난 2월에 뇌종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고,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곤 했지만
여전히 당신들의 투병기는 마음 아프고 속상했습니다.

지인들 혹은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이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꽤 자주 듣게 됩니다. 참 무서운 녀석, 암입니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에는 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날 전체 인구에서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암으로 사망하는데,
실제 암에 걸린 사람의 수는 이보다 좀 더 많아서 두 명에 한 명 꼴로 암을 만난다
.
다시 말하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나 둘 중 한 명은 암에 걸린다는 뜻이다
."(p.187)

무서운 일이지요? 사실, 저는 지금 무서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보험 하나 권하려는 게 아니라,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자는 말을 하고 싶어서요.
암에 대하여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 하나,
"100 퍼센트 암을 피할 수 있는 예방법은 없다!"입니다.
정기적인 건강 검진을 통한 조기 발견이 최선이라 말합니다.

(저자는 특히, PET를 추천했지요. PET 에 대해서 한 번 검색해 보시지요.)
이 책 때문만은 아니지만, 약간의 자극을 얻어 저도 지난 해에 건강 검진을 받았답니다.
오늘 만났던 친구가 꼭 건강 검진을 받으라고 몇 번이나 권해 준 덕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도 지난 해 검진을 거르셨다면, 올해엔 꼭 시간 내어 받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건강한 자신입니다.
제가 번거로워도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까닭도 귀찮아도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모두 아내 곁에서 건강한 배우자로 평생을 함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을 더한다면 배우자에게 더욱 훌륭한 선물이 되겠지요.

오늘 모임은 서로의 안녕과 가족의 안부를 묻고 대답하며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무리되었습니다.
2010년 1/4분기의 마지막 밤이 친구들 덕분에 참 따뜻했습니다.
헤어지면서 5월 초 즈음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였습니다.
집으로 도착한 우리는 아쉬움의 마음을 담아 문자를 나누었지요.
친구는 행복으로 가는 동반자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요?

두 친구의 부모님이 건강하시기를,
항암치료를 잘 견뎌내 주시기를 기도하며 4월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힘차게. 씩씩하게. 뚜벅뚜벅 걸어가야지요.

여러분들의 아름다운 4월을 응원하며.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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