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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너만의 길을 걸어라.

서두르지 않되, 쉬지도 말라.

휘파람 불며, 콧노래 부르며

거닐 수 있는 길을 선택하라.


이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기를!

내딛는 걸음 하나 하나마다

웃음과 진지함으로 밟기를!


그대여, 너만의 길을 걸어라.

행진 자체가 선물이 되는 길을.

- 리노


짧은 글 하나 지어 보았습니다.
(한 번쯤 천천히 읽어 주실래요? ^^)
시라고 하기엔, 저는 시가 무엇인지 모르네요.
하지만 보기 좋은 말을 데려다 놓은 글은 아닙니다.
제가 믿는 것들을 마음 속에서 꺼낸 말들이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나의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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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인간관계, 시간관리 등을 강연하는 어느 강사의 말이다. 나는 반감이 들었다. '누구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계를 맺어가는 유형은 3가지로 나뉜다.

사교형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금새 친해진다. 그들은 새롭고 신선한 교류에 에너지를 얻는 편이어서 한 달에도 여러 명의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낯선 이들을 편안하게 만들 줄 아는 사교형의 사람들은 지금 자신과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한다.

 

관계형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 앞에서는 어색해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사람과는 깊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기존의 사람들과 더욱 깊이 친밀해지는 데서 에너지를 얻는다. 섬세하고 조용하게 관찰하는 편이라 상대방의 필요를 민감하게 파악한다. 이들이 선물을 하면, 상대방의 성향과 생활방식을 고려한 맞춤형 선물인 경우가 많다.

 

개인형의 사람들은 앞선 두 부류의 사람들에 비해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홀로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다. 절제력과 자립심이 강한 편이어서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되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들은 사생활을 중시하기에 아주 친한 친구에만 속내를 털어놓는다. 이들은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거나 단체 생활을 싫어하여 MT나 수련회에 참석하기를 꺼린다.

 

사람의 다양성을 이해하기

 

여러분은 어느 유형에 속하는가? 자신을 몽땅 어느 한 부류에 넣는 것은 무리다. 한 사람 안에는 세 가지 유형의 삶이 조금씩 섞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의 유형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자신에게 좀 더 높은 경향성으로 나타나는 유형을 기질이라 하자. 사교형, 관계형, 개인형 중에서 자신의 기질을 파악하여 자기 기질에 맞게 살아야 한다. 물론, 상황과 사람에 따라 잠시다른 유형으로 살아가는 것도 지혜다. 우리가 서로 다른 기질을 지녔다는 것은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말이다. 그 강사의 말처럼, 누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 다르다. "누구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말은 일부의 사람(주로 사교형)에게만 옳다. 나를 포함한 개인형이나 관계형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상대적으로 덜 좋아한다.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나 이미 친한 사람들을 만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앞서 소개한 강사는 자신의 강연을 좀 더 효과적으로 적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다음의 질문을 던지면 좋을 것이다. "당신은 사교형입니까? 관계형입니까? 개인형입니까? 만약, 당신이 새로운 관계에 관심이 많은 사교형이라면, 제가 가진 노하우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관계형이나 개인형이라면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미래를 피할 수는 없지만 꿈을 가짐으로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마찬가지로 교육자가 사람의 다양성을 피할 순 없지만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로 좀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다. 강사의 자의식은 서로 다르다. 스스로를 교육자로 볼 수 있고, 전달자나 엔터테이너로 볼 수도 있다. 또는 강사를 수많은 직업 중의 하나로 여길 수도 있다. 자의식에 따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 이어지는 내용은 '강사=교육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을 위한 것이다.

 

자기계발 강사가 씨름해야 할 2가지 질문

 

복합적인 인간의 문제를 피상적인 기술이나 단편적인 지식으로 '고치려' 하는 자기계발 강사들이 있다.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열정과 동기 부여 뿐이고, 그 유익과 영향력마저 자신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복합적인 인간의 문제를 단편적으로 해석한 메시지는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 인생은 살아 숨쉬는 것이고, 삶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은 그야말로 총체적인 것이기에 자기계발은 통합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분에 함몰되어 전체를 보지 못할 수 있다.

 

자기계발의 목적은 삶을 제대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자기계발 강사들이 그 목적을 이루려면, 다시 말해 공허하고 관념적인 조언을 하지 않으려면 삶의 복합성과 사람의 다양성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자기계발 담론에는 뿌리 깊은 환원주의가 있다. 환원주의란 '다양한 현상을 기본적인 하나의 원리나 요인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인간 이해를 방해하는 환원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러 가지 솔루션을 가지지 않은 컨설턴트는 무슨 문제든 자기가 가진 솔루션 중에서 하나를 줄 수 있을 뿐이다. 깊지 않으면 환원주의에 빠진다.

 

아쉽게도, 사람들은 환원주의에 빠진 조언에 열광한다. 가볍고 얄팍한 조언이 인기를 끄는 까닭은 사람들이 쉽고 명쾌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느라 명쾌하게 단정짓지 못한다. 이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을 즐겨 하여 명쾌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환원주의가 깃든 조언은 지혜와는 거리가 멀다. 탁월한 교육자가 되고 싶은, 혹은 큰 영향력을 갖고 싶은 자기계발 강사는 두 가지의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 어떻게 하면 환원주의를 극복하고
      사람과 인생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가
?

- 어떻게 하면 복합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지혜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실천 지침으로 제시할 수 있는가?

 

 첫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은 통찰력과 지혜가 깊어지는 길이고, 둘째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은 자신의 모든 이론에 실용성을 더해가는 길이다. 통찰력과 전문성에서 나온 깊이 있는 강연!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자기 삶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강연! 깊이 있으면서도 실용적인 강연을 하고픈 강사라면, 두 가지의 질문과 씨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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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마이클 더다의 『북 by 북』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서의 즐거움에 빠졌고,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저자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독서 리뷰를 적었습니다. 서평은 무엇보다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데, 길기만 했지 재미를 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떤 독서 여정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알 수 있는 리뷰입니다. 마지막 대목에서는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지루하게 이어질 것 같아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언젠가 더 재미있게 말할 수 있을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죠. ^^


2001년 가을, 이제 막 점화된 내 독서 불꽃에 뜨거운 화력(火力)을 더해 주었던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1997년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단계 진보한 독서를 하게 되었다. 독학의 방법론에 눈을 떠 독서를 통해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보다 열정적으로 독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하고 여러 독서 관련 책을 정리하여 살을 붙여 후배들에게 독서 노하우를 전해 주었던 것을 훗날 내 책을 쓰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독서 노하우를 담은 책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흥분과 열정을 안겨 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다치바나 다카시 만큼의 독서 열정이나 전방위적인 독서 체험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읽었던 책 중에는 표정훈의『탐서주의자의 책』, 모티머 애들러의『생각을 넓혀 주는 독서법』,  에밀 파게의 『독서론』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랬다.


그러다가 2010년에 마이클 더다를 만났다. 사실, 그의 책은 일이 년 전에 『오픈북』을 먼저 읽기 시작했(
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관두었)다. 재미 없었던 기억이다. 혹은 끈기 없는 내 성정 때문이거나. (아마도 이렇게 읽다가 관둔 책이 완독한 책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오픈북』은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저자의 독서기가 지나치게 상세하게 기술되어 재미 없었다. 청소년들에게나 유익할 듯 한 책이라 생각하며 손을 놓았었다. 그런데 지금의 난 그 행동을 의아해하고 있다. 마이클 더다의 『북 by 북』은 나를 매우 흥분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2010년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이 책을 읽었다. 글을 읽는 속도가 느리고, 집중력이 평범한 내게는 단숨에 읽은 책에 속한다. 책은 지적 자극도, 각 주제마다의 깨달음도,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도 충분했다. 책장을 덮을 즈음엔, 다치바나 다카시에 이은 나의 두 번째 역할 모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반갑다. 다치바나 다카시에 흥미를 잃은 지가 오래 되었으니.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으면서, 점점 그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대목이 많아졌다.)


첫인상과 끝맺음이 좋았다

책은 교수이자 평론가 (공격적인 서평가로 알려지기도 한) 마빈 머드릭의 말로 시작한다.
"운명을 함께 하느니 서로 간섭하지 않고 공존하는 게 낫고, 풀이 죽어 있느니 활기찬 게 낫다. 동정할 바엔 사랑하고, 대체 가능한 것보다는 독보적인 게 낫고, 똑같은 생각보다는 다른 의견이 낫다. 이해관계보다는 원칙이 먼저이고, 원칙보다는 인간이 먼저이다."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마이클 더다는 이 말에 대해 추가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는 말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다시 인용문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유명한 말, "심판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믿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윤리가 담긴 말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유명한 기독 고전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다.) 나는 이 말도 좋았다. 책벌레보다는 리더(Leader)가 되기를 꿈꿔온 나의 독서철학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독서하는 것 자체가 곧 실천일 수 있기에 '대부분'이라고 표현했다. 책을 읽고 평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이들 말이다. 그들에게는 읽기와 쓰기가 곧 실천인 것이다. 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중시하는 저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삶에는 독서 이상의 것이 있고, 독서 말고도 배울 수 있는 원천이 많다. 얼마 전, 군 입대를 앞둔 친구가 자신의 군생활 목표를 '300권 독서'라고 하길래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군대 목표가 '300권 독서'라면 너무 많은 듯 합니다. 책만 읽기에는 군대라는 장소가 특별한 곳이니까요. 우리는 살면서 늘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기 마련입니다. 계급이나 취향 등이 비슷한 사람들을 말이지요. 그러다가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군대가 그런 곳 중에 하나입니다. 전국팔도에서 몰려 든 이들, 나와 다른 말투를 쓰고 들어보지도 못했던 학교를 나온 이들이지요. 군대 밖에서는 전혀 만나지 못할 이들을 통해 우리는 사고의 전환을 하기도 하고, 진짜 세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독서의 목적이 삶과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 함이라면, 군대에서는 살을 부대껴 가며 그들과 교류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책 뿐만이 아니라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도 읽으라는 게지요. 300권 독서는 그럴 시간이 없을 정도의 목표니까요."

책의 세계에 매료되다

"지난 오십 년 동안 나는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 그냥 많은 시간이 아니라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용문을 제외한 저자가 쓴 첫 문장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그저 읽었고, 대학원생이었을 때에는 비교문학 전공자로서 읽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전문서평가이자 칼럼니스트로서 책을 읽었다. 누구 못지 않은 성실한 독서가요 비평가라는 사실은 퓰리처상 수상(1993년 비평부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북 by 북』을 읽으며 직접 느낄 수도 있다. 책은 10개의 주제마다 좋은 문장을 가려 뽑은 사화집(anthology)의 형식에다 주제에 대한 저자가 쓴 몇 개의 글, 그리고 주제별 고전들이 추천되어 있다.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챕터에서는 명문들을 꼽씹는 즐거움이 있고, 주제에 대한 마이클 더다의 통찰을 맛볼 수도 있다. 게다가 저자가 가려 뽑은 추천 도서 목록을 얻는 기쁨까지 있다. <4장 사랑의 책>을 통해 예를 들어 본다. 사랑에 관한 잠언들이 이런 식으로 소개된다.
 
사자와 짝지어지는 암사슴은 사랑 때문에 죽게 마련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첫사랑의 마법은
언젠가는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낭만주의는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며

사실주의는 그들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 존 업다이크


잠언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가 하면, 다음과 같이 저자가 여러 문헌들을 통해 익힌 지혜를 들려 주기도 한다.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시기는 매우 짧다. 열정은 곧 잔잔한 애정으로 가라앉는다. 아주 이상적인 변화다. 50퍼센트는 열정이 완전한 무관심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잔한 애정을 뛰어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운 좋은 부부가 있다. 그런 결혼생활은 본질적으로 둘이서 꾸려가는 문명 세계이며, 그런 세계에서 가장 큰 기쁨은 수십 년 동안 끊이지 않는 대화다. 남편과 부인 간의 섹스가 진정한 기쁨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런 섹스는 자식과 더불어 가정의 행복을 지탱하는 진정한 토대가 된다."  깊이 공감하여 별표 네 개를 주었던 문장이다.

그리고 사랑을 주제로 한 고전적 문헌부터 20세기의 훌륭한 소설들까지 소개한다. 사랑의 문학 중 걸작으로 꼽히는 사포의 시, 플라톤의 『향연』 중 사랑의 본질에 대해 토론하는 대목, 카툴루스와 호라티우스의 시선집, 아서왕 이야기, 흠모하는 페트라르카의 시, 존 던의 욕망적인 시 '침대에 막 누운 여인에 대하여' 등이다. 20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에 출간된 소설도 빠뜨리지 않았다. 제임스 솔터, 존 크롤리, 아룬다티 로이, 필립 로스, A. S. 바이어트. 에드먼드 화이트 등의 소설 10권을 소개했다. 이 책들 중 국내 번역된 책이 극히 소수인 것이 아쉽다. 인터넷 서점 등에서 확인해 보니,  A. S. 바이어트의 『소유』,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정도가 번역되었다. (국내 번역을 확인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편집자 혹은 옮긴이가 국내 번역 여부와 원제를 알려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
 
저자의 사상(?)에 동의하다

나는 아직 내가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 그것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지 못한다. 내 사고의 근원이 되는 세계관을 5가지 문장으로 정리해 두긴 했지만, 아직은 설익은 철학이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철학사를 공부하며 관심이 가는 사상가들을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염원이 있을 뿐, 아직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초, 와우팀원들을 대상으로 20시간짜리 철학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중용, 칸트에게서 정언명령, 데이비드 흄의 회의론, 존 듀이의 실용주의 등에 대해 정리해 본 것이 무척 도움이 된 정도다. 이런 내용들이 내 안에 깊이 스며들고 잘 어우러지면 나도 일관되고 체계적인 세계관을 갖게 될 것이다. 언급한 내용들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화두들이고, 세계관의 얼개가 되어 줄 사상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나의 지적 수준이다.

신자유주의를 배격하는 노암 촘스키와 자본주의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장하준 교수의 책들에 열광하는 정도로는 세계관을 정리할 수 없다. 그들이 B급 저자라는 것이 아니라(그들은 특A급 학자들이다), 열광하느라 성찰과 연구를 하지 못했던 나의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그들을 보다 깊이 있게 읽어내면서 경제학이나 사회학 사상가들의 책을 섭렵해야 한다. 이것이 스스로에게 진단한 지적 처방이다. 내가 갖게 될 자유주의 사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는 하이에크를 읽으며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이에크의 반대편에 서서 그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겠지. 이처럼 '자유론'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하여 궁금하던 차였는데, 마이클 더다를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사야 벌린이 구세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시스템 설계자, 일원론적 이론가 등 우리는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소극적 자유(negetive liberty)', 즉 개개인이 억압과 제약에서 벗어나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했다. 그러나 개혁가들과 광신자들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를 고집하며, 인간은 원하는 것은 선택하는 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것을 선택하는 데 자유로우면 된다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동자 계급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면, 현명하고 선견지명이 있다는 보호자들이 나서 무지한 프롤레타리아를 인도하고 재교육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벌린은 인간의 도덕적 주권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이런 관리통제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


마이클 더다가 설명한 이사야 벌린이다. 이어지는 내용(p.198~199)에 구구절절 동의하고 감동했다. 이 즈음하면 이사야 벌린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낼 수 밖에 없다. 아! 나의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내가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일부는 잠과 식사 등 생리적 욕구에게 주어야 하고, 일부는 사회적 관계를 위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나는 욕망을 가진 존재다. 동물적 욕망 앞에서도, 나는 무릎을 꿇고 시간을 내어 줄 수 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욕망 가운데에는 호기심을 쫓아가는 지적 욕망도 있으니 결국 나는 인터넷 서점을 찾아가 이사야 벌린이 쓰거나 그에 관련된 책, 『고슴도치와 여우』,『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를 카트에 집어 넣고 말았다. 그리고 보르헤스 책 한 권과 마이클 더다의 원서까지 합쳐서 주문해 버렸다. 아! 요즘 자주 강림하신다. 책 지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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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마이클 더다의 책 『북 by 북』을 읽으며 자주 떠오른 책이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였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덕분에 저의 2000년대 독서 생활이 풍성해진 것은 분명합니다. 세계관과 연구 분야가 달라 저는 다치바나 보다는 오히려 드러커가 좋다는 말을 제 책에서 한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독서 생활 면에서는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다치바나 다카시입니다. 독학의 비결, 인터뷰어의 자세 등에서 특히 감동적인 배움을 얻었고, 독서가로서 쫓아갈 하나의 푯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에, 그 책을 읽고 쓴 리뷰가 있어서 아래에 소개합니다. 문장의 어미와 형용사 정도를 고쳤을 뿐, 글을 새로 고쳐 쓰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 씨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은 분들의 반응을 잘
정리한 바 있어, 그 내용을 옮겨본다.
"읽어 본 분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였다. 우선 다치바나가 대단한 독서광이고 특유의 독서 노하우를 지닌 범상치 않은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그의 독서술, 독서론이 일반인들에게는 부적합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책을 읽고 책을 집필하여 먹고사는 저술가나 저널리스트에게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문자향, 서권기의 세계를 주유하며 인류 선단의 지식정보를 갈무리하는 다치바나의 모습에서 감동마저 느껴지더라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인 분들 가운데는 자신의 독서 생활을 반성했다는 분도 있었고, 자기 방 서재의 책들이 달라 보이더라는 분도 있었으며, 책 세상에 대한 동경 내지는 그리움이 고개를 들더라는 분도 있었다."

나는 이 두 가지 반응 중, 단연 후자에 속하는 부류다. 『베스트셀러 죽이기』독자리뷰에 잠깐 언급한 것처럼, 나는 책을 무지 좋아한다. 『베스트셀러 죽이기』서평을 쓴 이후, 교보문고에서 또 4권의 책을 샀다. 불과 하루만의 일이다. 다치바나 씨와 비교하기에는 열정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열정의 순수함에서는 차이가 없다. 지금 내 방엔 다치바나 씨가 말하는 것처럼 각 분야별로 책이 50~60cm씩 쌓여 있다. 세 개의 책장에 책을 다 꽂고도 흘러 넘치는 책들을 둘 때가 없어서 이 곳, 저 곳에 쌓아 둔 것이다. 리더십, 경영, 금융, 사상, 과학, 철학, 사회학, 역사, 종교, 재즈, 문학, 영어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이다. 아직 각론을 깊이 파고 든 흔적은 없지만, 꽤 전방위적인 독서편력이다.

50cm이상 되는 책기둥(?)들만 10개가 넘는다. 작은 책장에 기대어 있는 책기둥 하나는 1미터가 넘는다. 경영서 중에 읽고 싶은 것들만 뽑아 놓은 것들이다. 이러한 기둥들이 책상 위의 공간까지 차지해버려, 나는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땐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서 해야만 한다. 게다가 자료를 모은다는 명목으로 신문더미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방은 온통 책 투성이다.

이러다보니, 당연 나는 다치바나 씨의 얘기가 마치 내 얘기인냥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들려 왔다. 이제 갓 인생을 배우려고 첫 발걸음을 뗀 젊은이에게 고명(高明)한 종교가나 학자의 말씀은 가슴에 팍팍(!) 와 닿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내가 가려는 길 최전방에 있는 다치바나의 얘기들은 모두 나에게로 와서 내 안으로 들어왔다. 다치바나 씨의 독서술, 독서론, 서재론은 내게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표정훈 씨 말대로 '단 하나의' 모델은 아니지만, 분명 아주 고무적인 모델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그가 인터뷰를 할 때의 준비하는 모습과 고전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독학하는 방법과 책을 선택하는 요령은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말들이었다.(이 부분들이 특히 좋았다. 궁금하시면 읽어 보시라. p.10~20, 51~61, 64~81)  한 분야를 정복하기 위해 거금을 챙겨 서점에 가서 몇 시간을 투자해 고른 책을 싸들고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정말 가볍다. 양팔에 무거운 책을 든 발걸음이 정말 가볍다. 마음이 하늘을 날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는 지적인 사람이 되겠지, 라는 비전 날개를 달고서 미래를 날아다니는 것이다.

많은 독서가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준 다치바나 씨에게 진한 고마움이 느껴진다. 다치바나는 책을 모으고, 아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사실 그는 책을 애써 소중히 다룰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속독법과 발췌독을 통해 그 책들을 읽어나감으로 실전(인터뷰, 글쓰기 등)에서 그 책들을 이용한다. 이런 점에서 표정훈 씨의 조언 "책을 읽는 리더(reader)에서 더 나아가 책을 부릴 줄 아는 유저(user)가 될 필요가 있다"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 같다. 나 또한 '내 방에 책이 많다'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라고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는 동시에, 내 가슴에는 읽은 책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는 다시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을 묵묵히 읽어나가는 성실한 독서가이고 싶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 독서를 (취미로서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려는 수단으로) 즐기는 이들에게 이 책은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독서가들에게 이 책,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하나의 학문 세계로 들어갈 때, 우선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 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밑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머리 속에 그리는 일이다. 그 학문 분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방법론에서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 학문으로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가? 이 '무엇을', '어떻게'라는 물음은 어떤 학문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더라도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다.

200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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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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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8경 제2경 석문


2010년 10월 8일과 9일, 1박 2일에 걸쳐 단양 8경을 모두 둘러보고 왔습니다. 금요일 오전 8시 50분에 출발하여, 토요일 밤 9시에 도착했지요. 소감을 한 마디로 남기자면, 올 가을 단풍 나들이는 단양으로 떠나 보심은 어떠하신지요? 입니다. 내장산과 주왕산의 단풍도 아름답지만, 산수의 풍광이 어우러진 단양8경도 빠지지 않은 여행지입니다. 8경 중에서도 도담삼봉과 석문, 구담봉과 옥담봉은 필수 코스이고 추천코스는 사인암입니다. 특히, 구담봉과 옥담봉 바위 틈 사이 사이로 오른 소나무들의 단풍은 천하의 절경입니다. 시간이 남으시면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까지 둘러 보시면 단양 8경을 모두 구경하시게 됩니다. 참! 식사하실 때에는 단양 읍내에서 도담삼봉 가는 길목에 있는 '장다리식당'을 빠뜨리지 마세요. 1만 5천이라는 가격으로 드실 수 있는 맛 중에서 단연 최고 수준입니다. 그럼, 단양8경 제2경인 '석문'과 장다리식당에 대한 답사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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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도담삼봉 음악분수


단양8경 답사기 (2) 석문과 장다리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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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은 도담삼봉을 감상한 후에 걸어서 10여 분만 가면 된다. 음악분수대 오른편으로 나 있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음악분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도담삼봉과 남한강이 연출하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망치는 (라디오 방송 스피커에 이은 또 하나의) 주범이기 때문이다. '음악분수'는 2,000원을 넣으면 분수와 함께 노래방 시스템이 가동되는 하나의 관광 상품이다. 누군가가 제안한 아이디어일 테고, 몇몇이 동의하여 탄생한 '비극적인' 합작품일 것이다. 나는 그 의사결정의 과정을 모르니, 그들의 노고 또한 상상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상상력이 미약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음악분수대는 실패한 아이디어로 평가하련다. 주로 아주머니들이 노래를 불러서 그런지 뽕짝 메들리가 이어지곤 했고, 트로트 음악은 도담삼봉의 정취에 빠져드는 것을 방해했다. 석문으로 오르는 고풍스런 분위기 또한 차단했다. 일상을 탈출한 아주머니들에게는 속풀이 송을 부를 수 있는 좋은 기회겠지만, 그런 점을 널리 헤아리더라도 음악분수는 단양8경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뽕짝 반주에 맞춘 그들의 흥겨운 노래 소리는 조용히 감상하려는 여행자들의 흥을 깼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일행 중 한 분이 "제가 단양군수로 내려와야겠네요"라고 농을 던져 주어 음악분수의 어이 없는 출현에 깨질뻔한 흥을 겨우 살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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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석문으로 올랐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작은 정자가 나타난다. 와우팀원들과 함께 이곳에서 잠시 누워 쉬었다. 정자의 난간에 기대어 서면 남한강 줄기가 멀리까지 보이고, 도담삼봉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정자에 서서 잠시 말없이 감상하다가 석문을 향하여 GO~! 정자에서 석문까지는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자를 지나 석문으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 계단이다. 그러니 무지개 형상의 자연이 만든 장관, 석문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보게 된다. 와~! 저 아래로 보이는 석문의 절묘한 형상에 내뱉게 되는 감탄사다. 석문에 가까이 이르면 다시 한 번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석문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 다시 강 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석문과 함께 마치 한 편의 그림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석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동행한 어른께서 "이곳은 선계요, 저 너머 보이는 곳은 속계네요"라고 우리의 마음을 잘 표현했다. 다른 이가 "그럼 우리 모두 신선이네요"라고 되받았다. 하하하하. 그래, 저리도 멋진 풍광을 보는 이 순간이야말로 신선놀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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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여럿 몰려왔다가 가고, 잠시 동안 인적이 끊겼다. 우리는 쉬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계단을 조금 올라와서 석문을 바라보았다.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선계와 속계를 운운하신 분이 또 한 번의 기지를 발휘하셨다. 허리를 한껏 숙여서 석문을 거꾸로 바라보셨던 것이다. 우리 모두 따라서 '석문을 완전히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를 시도했다. 그것은 곧 예술이었다. 거꾸로 보기는 일상적인 바라보기에 무디어진 감각을 다시 민감하게 만들어 주었다. 예술의 기능 중 하나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 익숙한 것을 새롭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르게 느끼게 하여 정서적인 감탄을 만들어낸다. 일단의 평론가들이 이런 기법을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이라 불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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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허리를 숙여 석문을 거꾸로 보았던 것과 다름 아니다. 우리 모두 '예술가 와우팀원'을 따라 허리를 숙여 거꾸로 보았다. 과연, 석문이 다르게 보였으니 이 글을 읽고 가는 단양8경 여행자들에게도 거꾸로 석문 보기를 권한다. 예상시간보다 석문에 머물렀던 시간이 길었다. 식사 시간이 훌쩍 지났으니 서두를만도 했지만, 석문과의 헤어짐은 길었다. 모두들 석문을 도담삼봉보다 우위에 두었던 만큼 오래 오래 감상했다.
 


자동차에 올라타니, 시장기가 몰려왔다. 우리의 식사 예정지는 마늘 정식으로 유명한 장다리식당이다. 도담상봉에서 단양읍내로 가는 길목에 있다. 단양에서 가장 유명한 맛집이라는 기대감으로 찾아간 곳이긴 했지만, 기대를 훌쩍 뛰어넘어 가격 감동, 맛 감동을 주었던 식당이다. 12,000원짜리 평강 마늘정식에서 가격이 오를수록 반찬이 추가되는 식이었다. 우리는 15,000원짜리 온달 마늘정식을 주문했다. 평강 정식의 모든 메뉴에서 마늘육회와 감자떡 등이 추가되는데, 평강보다 이 온달 정식을 추천하고 싶다. 식사를 마친 후, 가장 맛있었던 반찬을 꼽아 보았는데 평강 정식에는 없는 마늘육회가 2표(^^)를 얻어 1등을 했던 것이다.

장다리식당의 온달 마늘정식


장다리식당은 '제7회 한국외식경영학회 업소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충청북도 제6호 향토음식 기능보유자의 집'이기도 하다. 이들 타이틀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기가 막히게 음식이 정갈하고 맛있다는 것이다. 일행 중 한 명은 전역 후에 먹어 본 최고의 음식이라고 평했다. (아쉽게도 그는 전역한 지가 얼마 안 된다. 2009년 5월에 전역했으니 이제 1년 6개월 정도가 되었다.) 유홍준 교수님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전라남도 강진의 해태식당, 해남의 천일식당을 한국의 3대 한정식집으로 추천하셨다. (나머지 한 곳은 인사동의 '영희네집'이다.) 나는 2009년에 wow4ever들과 함께 해태식당과 천일식당에서 식사를 했었다. (해태식당의 한정식은 25,000원이고 천일식당은 22,000원) 나는 장다리식당을 그 두 곳에 못지 않은, 혹은 더 나은 한정식 집으로 추가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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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에서의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시간들, 장다리식당에서의 행복이라 부를 만한 만찬을 즐긴 시간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했기에 더욱 즐거웠으리라. 와우빙고들과 함께했기에~!
그러니 단양8경을 최고로 즐기는 비결은 장다리식당에 들르는 것도 아니고, 가장 좋은 날씨를 골라 떠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떠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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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2008년(혹은 2009년) 가을이었나? 나는 노트북 '내 문서'의 10년 동안 변함 없었던 폴더 순서를 바꾸었다. 이전까지의 1) 강의 2) 글쓰기 3) 와우팀원이었던 것을, 1) 글쓰기 2) 와우팀원 3) 강연으로 바꾸었다. 그 무렵, 그러니까 삼십대 초반의 어느 날,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좋은 강연자가 되고 싶다는 꿈보다 커진 것이다. 이 일은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에 형성된 것을 어느 날 알게 된 것'이다. 땅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영양분을 빨아들인 새싹이 어느 날 흙을 뚫고 세상에 등장한 것처럼. (폴서의 순서는 2010년 7월. CFW 라는 0순위가 생겨나기도 했다.)

내게는 작가가 될 만한 상상력과 통찰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김영하의 소설이 지닌 인물 묘사와 천명관의 상상력 넘치는 서사를 읽을 때마다, 나는 감탄과 함께 '호기 어린 절망'을 느낀다. '문필가'라는 단어가 내가 꿈꾸는 글쟁이의 모습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드러커가 자신을 표현하는 데 사용했던 단어, 문필가. 사전적 정의는 "글을 지어 발표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 훌륭한 문필가가 되려면 자신의 생각을 정확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독창성을 인정 받든지, 통찰력을 인정 받든지 그것은 자기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 차후의 문제다. 자기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기 전에 필요한 일은 자기의 생각을 아는 것이다. 나는 나의 생각을 아는가? 아니, 나는 (나만의 철학이라 부를 만한) 생각이 있기나 한 건가?

내가 글을 쓰는 목적에 관련된 생각 하나는 분명히 안다. 라마크리슈나의 평전을 읽다가, 책의 여백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나의 글은 '생산성'을 가득 담은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산성은 고상한 단어도 아니다. 조금은 천박한 이미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과학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생산성이라는 단어, 혹은 이 단어가 지닌 의미가 좋다. 투입한 것보다 많은 것을 거둬들이면 생산성이 높은 것이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면, 나는 그가 독서에 들인 시간 그 이상의 가치를 얻어갔으면 좋겠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독서 또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함으로써 행할 수 있다. 나의 글을 읽는 것이 '다른 일'을 하는 것보다 나을 수 있기를 바란다.

생산성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까닭은, 기회비용의 최소화라는 나의 바람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이론이 실제적인 삶의 지혜와는 유리되어 공허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생산성의 부재라고 표현한 것이다. (단어가 부적합하다면 의미만 받아들여 주시길!) 지리산 자락의 옥종이라는 작은 마을의 온천에 갔었다. 유명 스파가 아닌, 허름한 곳이었지만 동네 어르신이 많았다. 온천 탈의장에서 옷장 문을 열면서 동행했던 분이 말했다. "신발장에서 미리 락커 키를 받아올 때는 홀수 번호가 좋은 거 알죠? 홀수 번호가 보통 윗쪽 옷장이거든요." 맞다. 나도 알고 있는 '지혜'다. 그는 덧붙였다. "저는 이런 게 삶의 지혜라고 생각해요." 동의했다. 나는 이런 실제적인 삶의 지혜를 담은 글을 쓰고 싶었다. 강남에서 2호선을 타고 가다가 8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열차의 맨 앞쪽에 타면 좋다는 식의 구체적인 지혜를. (이런 정보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건 좋다. 하지만, 그런 식의 생뚱한 태도라면 '자기를 아는 지식'을 제외한 세상 모든 지식이 그렇다는 사실도 인정하시길.)

보보는 실용적인 글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나의 전부를 이해한 것도 아니다. 나는 실용에 대한 오해를 걷어 내고 싶다. 실용서만이 실용적인 것이 아니다. 철학이나 예술도 얼마든지 실용적일 수 있다. 분명, 철학은 삶을 돕는다. 관념적으로 철학하는 태도가 삶과 유리된 것이지, 철학 자체가 삶에 무익한 것은 아니다. 예술 역시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교양과 무질서』를 쓴 영국의 평론가 매튜 아놀드의 말처럼, 예술은 '삶의 비평' 역할을 한다. 아름다움과 추함, 옳고 그름을 생각하도록 돕는다는 말이다. 나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 모든 분야의 텍스트를 정성껏 읽는다. 산만해지지 않으면서도 편협하지 않은 독서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 관념적인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관념적인 껍질에 싸여질 수 있다. 나는 다양한 원천을 뒤적여가며 그 껍질을 벗겨 삶에 도움이 되는 지혜를 얻고 싶다.

그렇게 쓰인 나의 글들은, 읽는 이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했으면 좋겠다. 내 글의 주제가 꿈이라면 "그래 이제 나의 꿈을 상상해 보자"라고 말했으면 좋겠고, 글의 주제가 리더십이라면 더 나은 리더가 되기 위한 일에 자신을 던졌으면 좋겠다. 실천을 다룬 나의 글을 읽은 이들이 그저 머리를 끄덕이는 것에 그친다면, 아마도 나는 좋지 못한 글을 쓴 것에 대하여 조금은 자괴감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실천을 다룬 글을 읽었다면, 책장을 덮고 문을 열어 세상으로 나가 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차원에서, 나는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를 흠모하게 된다. 페리클레스가 말을 하면 시민들은 "말을 정말 잘하는군!"하고 칭찬했단다. 하지만, 데모스테네스가 말을 하면 시민들은 "행군하자!"고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내가 꿈꾸는 작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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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 열풍은 옛말이다. 한때는 자기계발서가 출판시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영광의 시기는 지나간 듯하다. 필자의 친구는 2009년에 자기경영 서적을 한 권 썼고, 출판사와 계약을 했지만 출간되기까지는 4, 5개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출판시장 내에서 자기계발서의 매력이 떨어졌기에 적절한 출간 시점을 노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자기경영 서적들이 출판계를 이끌던 시대와는 달라진 현상이다. 자기계발서의 힘이 사라진 까닭은 간단하다. 명실상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름과 실상이 서로 부합하기보다는 명성에 비해 거품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2000년대 독자의 관심은 언제나 '나'였다. 그들은 한 때 '성공'을 꿈꾸었다. 벤처 열풍과 함께 남보다 반 걸음만 앞서가도 물질적 성공을 쉽게 이룰 것으로 보였다. 처음에는 미국발 자기계발서의 속삭임을 듣고 자신을 조금만 변화시키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가 권유하는 것처럼 돈과 부자에 대한 생각만 바꾸어도 가능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어 저자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다 주었지만, 무수한 개인의 텅 빈 주머니는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여러분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자기계발서의 효용에 회의하거나 불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지금까지의 자기계발 콘텐츠는 복합적인 인간 문제들을 피상적인 기술이나 단편적인 지식으로 '고치려는' 경향을 지녔었다. 피상성은 자기계발 콘텐츠의 특징이자, 한계였다. 그렇다면, 자기계발 담론이 피상성이라는 한계를 지녔으면서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3가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자기계발 강사이고, 좋은 자기계발서를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자기계발 담론에 대한 나름의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첫째, 자기계발에 대한 수요가 갑작스럽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대적 상황이다. IMF 전후로 한국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직장인들의 생존 문제는 그 중 하나다. 회사는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곳이 못 되었다. '개인의 경쟁력'만이 믿을 만한 것이 되면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자기계발 수요자의 탄생이다. 문제는 이들의 탄생이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이전 시대와의 단절이라 불릴 만한 급격한 변화였다는 점이다. 수요에 공급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수요가 급증한 곳에서는 공급자들의 역량과 신뢰 문제를 따지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거품이 끼어들고 가짜도 돈을 벌기 시작한다. 이처럼, 자기계발 콘텐츠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시대적 상황이 한 몫 거들었다.


둘째, 공급자들의 소명 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급자들이 가진 문제다. 수요가 있으니 책을 내고 강연을 한다는 식의 지나치게 비즈니스적인 접근을 했던 것이다. 자기계발이라는 교과목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의 성장과 변화에 대한 실용적인 연구'를 하는 과목일 것이다. 일부 자기계발서의 저자들은 그런 연구보다는 수요자들에게 '희망'을 파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희망은 필요하다. 그러나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지혜도 필요하고, 때로는 '자신을 아는 진실'과도 마주해야 한다. 자기계발 저자들은 그러한 진실과 지식을 전하기보다는 듣기 좋은 이야기만을 전하는 쪽이었다. 공급자들에게 '돈'에 초연하라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돈을 쫓되, 돈을 지불한 사람들에게 그에 합당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의 직업군 안에는 자신의 업을 돈벌이로 보는 이들과 천직으로 보는 이들이 공존한다. 돈벌이로 보는 이들이 훨씬 많아질 때, 그 직업군의 사회적 영향력은 감소한다.)


셋째, 수요자들의 일시적인 판단 착오 때문이다. 이것은 수요자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경제력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뽑았던 나라의 리더를 보며 그것은 통합적인 시각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깨닫고 있다. 한해 두해 살아가면서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제대로 달리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자기 철학이 없고, 장기적이고 통합적인 시각 없이는 성공적인 인생 경영이 힘들다. IMF라는 국난을 맞은 개인들은 '경쟁력'이라는 허망한 단어를 자기 것으로 갖추기 위해 자기계발 독자가 되었다. 이제는 잠시 눈이 멀었던 그들이 정신을 차리면서 자기계발이 아닌 다른 주제의 책으로 관심을 돌렸다. 그 동안 자기계발서가 잘 팔린 까닭은, 경쟁 사회가 되면서 다급해진 수요자들의 책을 선택하는 안목이 일시적으로 하향 평준화 되었던 까닭이었다. 그 덕분에(?) 수준 낮은 자기계발서도 선택될 수 있었다.


글의 서두에서 난무하다, 피상적이다 등의 자극적인 단어를 쓴 것은 필자가 자기계발 담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좋은 방법이 관대함이라면, 나를 사랑하는 좋은 방법은 엄격함이다. (엄격함은 자신을 높은 기준에 몰아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이나 부족함에 정직하게 직면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을 돌아볼 때, 엄격하지 않으면 자기 합리화가 끼어든다. 자신의 진실을 받아들이려는 용기 없이는 변화도 없다. 나는 자기계발 강사로서 내가 다루고 있는 담론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들여다보고 싶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과연 유용한지,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려 한다.


다소 비판적인 글이었다. 한계를 뛰어넘는 위해서는 자아비판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 가지의 원인에 대해서 썼지만, 앞으로의 글을 통해 두 번째의 원인을 깊이 들여다 볼 것이다. 나는 좋은 공급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고, 다른 두 가지 원인보다 내가 곧장 실행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지 않은 채, 주변의 일들에 딴죽을 거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굿바이 자기계발]은 자기 일에 딴죽을 걸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분들이 반가워하는 연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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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에서 승장 김성근 감독과 인터뷰했다. 이런 질문이 있었다.   

"어떤 팬들은 이런 생각도 할 것 같습니다. 한 경기쯤은 어떻게든 내주지 않을까?
감독들이야 그런 생각 못하시겠죠?"

"이건 페넌트레이스랑 달라서 하나 지고 다음에 하나 하면 되는, 그런 시합 아니니까요.
흐름이 있을 때 끝내버려야지 흐름이 끊어져버리면 모든 상황이 바뀌고요.
특히 우리 같은 팀은 중간 투수 갖고 싸워야 되는 팀이니까
시합이 많으면 많을수록 피로도가 겹치니까요.
4차전으로 끝난 게 우리한테는 아주 좋지 않았나 싶네요."
-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

나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냉철한 승부사다. 프로다움에서는 최고의 모습이다.(이 점은 존경할 만하다.)
허나, 실리 위주의 야구는 내 성향에는 흥미가 없다. (나는 한방을 노리는 짝퉁 모험가이니까.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30대는 이런 대박을 노리는 한방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짝퉁 모험가라 함은, 진정한 모험가는 위험이 아니라, 기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프로야구 감독이라면, (이건 무슨 쓸데 없는 상상이 아니다. 나에게 야구는 삶의 일부다.)
김성근 감독과는 다른 모습의 감독이 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어떤 팀을 이끌든지 팀을 꼴지로 이끌어가고 말 것이다.
내게는 프로다움이 없고, 나의 눈은 실리에 어둡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과 비슷한 감독이 될 거란 말을 하려니, 그 분께 죄송한 일이어서 관뒀다.)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1) 흐름이 끊어지면 모든 상황이 바뀐다.

야구의 본질이 담긴 말이고, 삶의 법칙이라 할 만한 진실 하나가 담긴 말이다.
야구는 흐름의 경기다. 호투와 좋은 수비로 공격을 잘 막으면 좋은 기회가 온다.
흐름을 잡아야 한다. 작은 것 하나가 큰 흐름으로 번질 수 있음을 야구에서 숱하게 본다.

나는 여기에서 일과 여가의 균형있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한다.
일과 쉼의 균형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일과 여가의 균형은 좀 더 어려운 듯 하다.
일하다가 여가를 즐기고 다시 일에 몰입하라, 는 말은 높은 균형의 경지다.
집중의 호흡이 긴 이들에게는 일과 여가의 장면 전환이 쉽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한 동안 영화에 빠져 있기도 하고
여행을 다녀 온 후에는 후유증이라 불릴 만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반대로 일을 하다 보면 덩어리 시간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되어 여가를 놓치기도 한다.

균형이 있는 삶, 그것은 직장과 가정, 일과 삶이라는 영원한 평행선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한 쪽에 빠지지 않고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자기 삶의 흐름(리듬)을 끊지 않아야 한다.
삶의 작은 리듬을 놓치면 원래의 흐름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노력해야 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까지 덩어리 시간으로 일을 하고, 언제 쉬어야 하는지 그 시점을 찾는 것이
균형 있는 삶을 살면서도 흐름을 놓치지 않는 비결이다.
균형은 뉴턴의 제1법칙(관성의 법칙)을 잘 활용하면서도
언제 균형을 향한 전환을 해야 하는지, 그 창조적 단절의 순간을 분별하는 지혜에서 온다.

2) 우리는 중간 투수 갖고 싸워야 되는 팀이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이 이끄는 팀을 잘 알았고 (강점과 약점을 잘 알았다는 말이다)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활용하기 위해 자기 팀을 분석하고 그에 맞추어 훈련했다.
프로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한 김성근 감독의 말은 옳다.
"인생에서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과정을 너무 중요시해 왔기에 (그래서 결과가 없기에) 말하지 않으련다. 

자기 훈련이 부족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나는 프로야구 감독, 아니 어떤 프로 스포츠의 감독으로서 자격이 없다.
(이런 가정이 우습기는 하다. 어떤 누구도 나에게 감독을 시키지 않을 테니까. ^^)

나는,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에게서 두 가지를 배웠다.

흐름을 놓치지 말자!
지금 내게는 균형의 삶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 이상을 만드는 것은 몰입이다.
11월말까지 잠시 균형은 잊자! 나의 일에 미치어 보자.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자!
성과가 없는 프로는 이미 아마추어로 전락한 것이다.
성과 달성을 위해 노력하자. 그리고 나를 알자. 나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활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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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이번 주 들어, 독서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허기져 하고 있음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제가 정신의 둔감함을 감지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가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독서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뜻이고(이건 플래너를 보면 금방 알 수 있지요), 지적 충만함이 사라졌고(이건 생각과 글이 날카롭지 못함에서 알 수 있고), 정신이 조금 예민해졌다는 말이지요(이건 신경질적인 모습이 나주 나타남에서 알 수 있습니다).

독서량이 늘어난 결정적인 이유는 이틀간의 휴가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용 시간이 늘어났다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이유일 것입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의 원인 분석은 보기 좋은 말을 갖다 붙여 놓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우리는 이성적인 동물이어서 무척 편리합니다. 의도적인 목적 없이 시작한 일이라고 해도, "우리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거나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자기합리화에 능한 사람들을 비꼬는 말투입니다.  

요즘 저는 (수입이 줄어들더라도)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 보려고 동료들과 의논 중입니다. 동료들은 전적으로 저의 의견을 존중해 주겠다면서 며칠 동안의 생각할 시간을 주더군요. (멋진 그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이 지금의 상황에서 더 좋은 선택인지 몰라 갈등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원과 욕심, 다시 말해 편안한 일상을 바라는 나의 소원과 명예와 돈을 얻을 수 있다는 욕심 사이에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니, 합리적인 생각 후에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제 의견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나면, 저는 그 의견에 맞추거나 보완하기 위해 그럴듯한 이유를 끌어오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더군요.

어쨌거나, 제가 좋아하는 일에 풍덩 빠져 시간을 보냈던 오늘은 제게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 저는 마이클 더다의 『북 by 북』을 첫 장부터 150페이지까지 읽었습니다. 구입하여 듬성듬성 읽던 것을 지금에서야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겁니다. 참! 독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떠올랐습니다. 이 책이 나의 입맛에 딱(!) 맞았다는 사실입니다. 제게는 흡입력이 매우 강한 책입니다. 오늘 하루동안 4시간 30분의 시간을 투자하여 읽은 것 같네요. 저는 책을 느리게 읽는 편이랍니다.

『북 by 북』은 주제별로 목차를 정하여, 주제마다 책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삶, 배우, 일과 여가, 사랑, 가정 등의 주제마다, 좋은 책을 추천하기도 하고, 저자가 좋은 책을 읽어오며 가려 뽑은 좋은 문장들을 담았습니다. 저자의 통찰과 지혜까지 곁들어져서 주제별 추천도서와 주제별 생각꺼리를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이클 더다는 미국의 다치바나 다카시라 불릴 만한 탁월한 독서가입니다. 퓰리처 상 수상이라는 타이틀에 독서력만큼은 전혀 무색하지 않습니다. 주제마다 읽을 만한 책들, 특히 고전에 대한 지식은 독자를 흥분케 하거나(읽고 싶은 비명을 지르기에), 압도합니다(와, 제목도 모르는 이 많은 책들이라니, 라고 놀라기에).

오늘 낮에는 약속이 있어서 놀다가, 저녁 먹은 이후부터 11시까지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역에 앉아서 90분 동안 책을 읽었습니다. 조사하고 싶은 대목, 읽어야지 하고 마음먹은 책들, 기억하고 싶은 인용문 등을 체크해 가며 열심히 읽었습니다. 처음 알게 된 책들이 무지 많았지만, 나의 무지에 압도당하기 보다는 무지한 사실이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만약, 부끄러워해야 한다면, 무지를 부끄러워하지는 않으렵니다. 정확하지 못한 지식을 부끄러워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독서 리스트를 다듬게 되었고, 공부할 꺼리들을 한아름 얻었습니다.

실제로 공부로 이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은 제게 곧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독서가 나를 이리도 즐겁게 하고 충만하게 하니, 우선순위를 부여하여 하루가 시작되면 다른 일에 앞서 책을 손에 잡아야겠습니다. 소중한 것을 미루면 마음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하니까요.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은 『북 by 북』, 『공산당 선언』,『CEO 인문학』(이 책은 수개월 동안 읽고 있네요)인데, 10월 말까지 다 읽고 독서리뷰를 하나씩 써야겠습니다. 11월에는 마이클 더다가 안겨 준 달콤한 독서 리스트를 따라가고 싶지만, 읽어야 하는 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네요. 『오빠가 돌아왔다』, 『한국의 1인 주식회사』,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사람풍경』,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 등입니다. 독서모임, 개인컨설팅, 집필 작업 등을 위해 읽어야 하는 책들이지요.

아! 또 마음이 앞서갑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몽상가요, 허풍쟁이네요. 허허.
아주 가끔씩 실천이 뒤따를 때에는 꿈꾸는 자이기도 하구요.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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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삼성이 코리아시리즈 4연패했던 날, 나의 하루.

* [흥분] 중요한 순서대로 일을 차곡차곡 제대로 처리해 냈다.
저녁에는 물러날 수 없는 일전(一戰)을 벌인다는 생각이 흥분케 했고, 몰입케 했다.

* [긴장] 잰 걸음으로 집에 도착하니 경기 시작 1분 전.
초반의 무기력한 공격, 하지만 장원삼의 호투를 반가워하며 경기를 관전했다.

* [불안] 마운드에서는 장원삼이 무너지고, 타자들은 5회와 6회 두 번 연속된
무사 1, 2루의 찬스를 날렸다. 번트 작전을 하지 않은 감독을 이해하지 못했다.
딱 1점만, 경기 종반에 추격을 위한 발판이 될 1점만을 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 [통한] 1점의 기회는 날아가고, 심지어 8회 1사 만루의 절호의 찬스마저 날려 버리는
타자들을 보며 가슴을 쳤다. 무지 속상했다. 이 때부터 서서 관전했다.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 [불평] 9회 말에는 타자가 들어설 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관전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칠 순 없었다. 9회말의 사자는 움찔했지만 힘차게 포효하지는 못했다.
9회에 안타를 친 강봉규를 8회 만루 찬스 때 대타로 내보내지 않은 감독이 떠올라 아쉽고 괴로웠다.

* [절망] 경기가 끝하는 순간 눈물이 찔끔 나왔다. 경기 후, 우울했다.
속상했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함께 경기를 보았던 이가 "We are the champion"을
따라 부르는 것을 보다가 참지 못해 농담 반, 진담 반의 화를 냈다. 하지만, 진담이 51%였다.

* [부정] 경기 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패배는 아쉽지 않다. 경기 내용이 좋지 못했다.
그것이 괴로웠다. 예능 프로로 잠시 괴로움을 달래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었다.

* [수용]  어제 패배에서 얻을 교훈은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것이고,
분명한 결론은 나는 여전히 삼성의 팬이라는 것이다.

* [수습] 이번 주 내로 스카이라이프를 해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카이라이프를 시청한 유일한 이유는 프로야구 경기 관람이었으니.

* [다시,일상] 어제는 불평밴드를 수도 없이 바꿔껴야 했던 날이었다.
허허. 옆에 있던 이가 밴드 끊어지겠네. 했다. 그도 나도 웃었다. 다시 웃으며 살자!

* 4연패를 당한 뒤, 27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일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프로 선수가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최선의 노력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서서히 희미해지거나, 아주 교묘히 사라지곤 한다.
그것을 발견하여 다시 지극의 노력을 기울일 줄 아는 이는 소수의 위대한 선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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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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