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 5

살짝 다른 삶을 꿈꾼다

1.'다르게 살아보자!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삶이 힘들다면 살짝 다른 삶을 시도해 보는 거야.' 온 몸으로 샤워 온수를 받아내며 거듭 다짐했다. 조금은 결연했다. 들뜨기도 했다. 세신(洗身)하고 세심(洗心)하는 영혼이 되어, 결심이 단단하게 영글때까지, 나는 샤워를 멈추지 못했다. 몸을 닦고 나오니 40분이 지났다. 이번 다짐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모를 일이다. 관심 갖지 않으련다. 또 하나의 결심으로 새로운 주간을 맞이하는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다. 얼마간의 들뜸 덕분에 비장하진 않았다. 다행이다. 비장함을 도구로 삼고 싶진 않으니까. 전쟁이 벌어지거나 슬픔에 휩싸이지 않는 이상, 삶을 영위하는 도구는 '무기'가 아닌 '장난감'이리라. 인생살이는 전시가 되기도 하지만 놀이가 되기도 하는 법이니! 주..

포틀랜드에서 만난 인연

1.필슨(Filson)을 만난 순간이 떠오른다. 젊고 세련된 감각이 느껴지는 도시 포틀랜드(미국 오리건 주)에서였다. 나는 중고 서점 ‘파웰 북스’ 인근에 위치한 에이스 호텔에 묵었다. 호텔 맞은편에는 Union Way라는 작은 쇼핑몰이 있다. 예닐곱 개의 상점이 들어선 30m 즈음 되는 거리로 기억한다. 초입에 이라는 편집샵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거기서 한 눈에 반해 들고 나온 품목이 ‘필슨 토트백’이다. 2014년의 일이다. 그 이후로 가장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이 되었다. 2. 필슨(Filson)은 꽤나 전통 있는 브랜드다. 19세기 말 미국에는 골드러시 열풍이 불었고, 창업자는 황금을 찾아 모험을 떠난 이들에게 필요한 의류를 제작했다.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필슨의 탄생이었다(Since 1897)...

대지와 감성이 촉촉해진다

비가 온다. 좋다. 대지와 감성이 촉촉해진다. 기분 좋은 차분함이다. 그윽함이기도 하다. 고요한 새벽, 세밀한 빗소리 그리고 해갈의 산뜻함. 회색빛 하늘이 아름답다. 햇살을 머금은 푸른 빛깔의 하늘이 때때로 처연하듯이 회색빛 하늘도 황홀할 수 있다. 그것이 자연이고 삶이다. 밤이면 좋겠다. 이 순간이 하루 일과가 끝난 밤이라면 하염없이 감상에 젖어들 것이다. 와인과 음악이 나의 벗으로 함께하리라. 그리움마저 행복이 될 시간! 지금은 아침이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몇 곡의 노래를 들었다. 이제 9시다. 어젠 푹 쉬었다. 오늘은 일을 즐겨야지. 마음은 이미 도구들을 챙겨 집을 나선다.

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

1.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 프랑스 태생이지만 음악적 고향은 독일.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관심. "베토벤은 정신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고 또 가장 많이 연주하는 작품이죠."(월간 객석. 2012년 10월호) 2. 그는 내게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꿈을 이뤄가는 낭만주의자다. 다음의 인터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출처는 월간 객석) 3. 꿈을 이뤄가는 낭만주의자의 면모가 보다 또렷하게 보이는 대목도 있다. "만약 한국에서 연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단연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싶어요." 월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터뷰는 2012년 9월 파리에서 진행됐다.) 그리고 5년 후 그는 자신의 바람을 이뤘다. 2017년부터 2020년에 ..

나의 에너지 발전소

오후 햇살을 맞으며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진심 어린 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강연이 끝나고 진행자가 안내 멘트를 하는 사이 나는 화이트보드 뒤편으로 고양이 걸음으로 이동했다. 나를 발견한 참가자 분들이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스스로의 강연에 자주 불만족스러워하는 편인데, 오늘은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이 붙인 건 내내 '희열'이었다가, 마지막 시간에 '선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나는 희열 - 선전 - 선방 - 절망, 으로 강연을 평가한다. 참가자 분들의 반응과는 별도로.) 행복감만이 찾아들면 좋으련만, 피곤함도 나를 껴안았다. 일방적인 접근이다. 나는 거부했지만 녀석이 달려들었다. 힘이 없어서 뿌리칠 수도 없었다. 이럴 때엔 얄밉다. 잘 진행된 강연 직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