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삶을 살며 조금씩은 힘겨움을 겪지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여서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사별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고서 뒤늦게 사랑을 그리워하기도 했지요.
여행에세이를 내고 싶어 두 달 동안 여행하며 빼곡히 기록한 노트와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며 구입한 자료들을 몽땅 잃어버리기도 했지요.
참 보고 싶었던 선생님을 찾아 뵈었더니 2년 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며
준비한 꽃다발을 동료 선생님께 전하면서는 또 얼마나 울었는지요.
이 모든 일은 제가 가슴에 담고 살아가야 하는 슬픔들이지요.
어떤 슬픔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평생을 안고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묘한 것은 한없이 기쁠 때에도 슬픔이 슬쩍 지나가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첫 책을 출간하고서 저는 참으로 기뻤는데요,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가장 먼저 나더군요.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기 마련이다.
완전히 무기력해지는 짧은 순간은 있을지언정, 완전히 무기력한 인생은 없다.'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 는 말은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오랫동안 제게 힘이 되어 주었던 구절입니다.
"인간은 고난을 겪은 만큼 성장한다"는 간디의 말도 도움 되었지만,
신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는다는 말과 결합되었을 때,
더욱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절망적일 때에는 고난을 견디고 난 후의 결과를 상상하는 것보다는
당장 내게 이런 고난을 견딜 만한 힘이 있는지부터 회의하게 되니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에 지금 힘겨운 일로 고통스러워하는 분이 계신다면
조심스런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힘을 내시라고 응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결국 이겨 내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엄청난 고통을 당한 분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기가 참 부끄럽고 무안합니다.
아니 하지도 않겠지요. 흉악한 범죄에 자녀를 희생당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그렇습니다.
아이티, 칠레의 지진 소식을 들을 때에는 무기력해지기까지 합니다.
이 글은 그런 분들까지 염두에 두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엄청난 재난은 생각의 전환과 함께 복합적인 문제 해결책이 필요하니까요.
힘든 일이지만, 우리는 엄청난 재난을 당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생각을 전환하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깊은 힘겨움이라는 사실도 인식해야 합니다.
"잘 될 거예요"라고 가벼운 낙관주의를 전하는 것은 그들에게 오히려 상처가 됨을 깨달아야 하니까요.
놀라운 것은 일이 다 잘 되지 않아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은 행복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암시하면서 얻는 얕은 행복이 아니라,
모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얻는 깊고 진한 행복까지도 말입니다.
저에게 행복은, 신나는 비행과 같이 들뜬 감정이기보다는
잔잔한 호수에서 맛보는 평온함과 이해와 수용함에서 오는 안정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 My Story/끄적 끄적'에 해당되는 글 140건
- 2010/03/08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
- 2010/03/08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김광석 (1)
- 2010/03/04 여행친구를 만나다 (3)
- 2010/03/02 안부 (2)
- 2010/02/25 피겨 예술가, 김연아
- 2010/02/24 친구에게 (2) (6)
- 2010/02/22 친구에게 (1) (17)
- 2010/02/21 짜증 섞인 하루 (4)
- 2010/02/20 철학의 유익
- 2010/02/18 또 하나의 상실
내 인생의 노래 (1)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십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친구들 몇이서 모여 놀다가 친구네 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 때의 다른 일은 기억이 나지 않고 두 가지가 지금도 또렷하다.
하나는 친구 집의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원한 전망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높은 집은 처음 가 보는 듯 했다.
초등학교 친구 한 녀석이 11층에 살았는데 그보다 더욱 높았던 것 같다.
친구들이 소파에 앉아 있을 때에도 혼자 슬쩍 베란다 쪽으로 가서
집 앞 전망을 내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창 밖을 내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는데
어떤 생각이었는지까지는 잊어 버렸다.
지금은 그저 찰스 핸디의 말이 함께 떠오를 뿐이다.
"남의 것을 엿보는 것은 훌륭한 학습"이라고.
남들이 살아가는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움이 있다.
사람들이 삶을 맞이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든,
사람들이 거주하는 물리적인 환경을 보는 것이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일이 줄어드는 것 같다.
고작해야 집들이 정도랄까? 외에는 친구 집에 갈 일이 많지 않다.
친구 녀석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나마 좀 더 뜸하게 된다.
친구와의 우정이 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녀석이 사는 곳까지 가는 발걸음은 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제 고향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결혼한 지 40일 정도가 지난 녀석이다.
언제 내려오냐? 4월 4일에 내려가. (난 이리 고향 가는 날을 미리 정해 두는 편이다.)
그럼 이번에 우리 집에 한 번 와라. 가도 되냐?
되지 임마. 친구 집인데. 그러네. 친구 집이지? 근데 왜 난 네 와이프 눈치를 봤다냐? 하하하.
우린 함께 웃었다. 아님, 멋적어서 나 혼자 웃었나?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게 뜸해진다.
이번에 내려가면 친구네 집에 가 보아야겠다.
또렷이 기억나는 다른 하나는 친구가 들려준 노래였다.
그 때 당시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이후로 이 노래를 들을 때에 몇 번 감상에 젖곤 했다.
노래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었다.
"가사가 좋아. 잘 들어 봐" 친구의 말에
우리 모두는 (아니면 적어도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 지새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가네
흰 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노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김광석의 유작이 된 [다시 부르기 2]에 수록된 곡이다.
1995년 발표된 이 앨범은
김광석이 선정한 '한국 모던포크의 대표곡 모음집'이다.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창기의 <변해가네>, 한동헌의 <나의 노래> 등을 실었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동익 밴드가 세션의 맡아 주었고,
편곡자 조동익이 원곡을 김광석 버전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 앨범을 2002년 코엑스의 에반레코드에서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도, 지금도 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가사에 몰입한다.
노래는, 들으며 가사를 옮겨 적을 수 있을 만큼
느린 템포이고 나는 가사를 적으며 노인네의 인생을 따라간다.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평온한 부부의 인생이 그려져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다가 결국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라는 가사에 눈물이 핑 돈다.
노인네의 인생을 엿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나도며
깨닫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흥과 배우자의 소중함이다.
상상의 나래를 타고 생각 여행을 떠나, 어느 인생을 엿보는 것도 훌륭한 배움이구나.
며칠 전에 보았던, 최근 들어 노인들의 자실이 급증했다는 기사도 떠올랐지만
사회적 문제까지 글에 담지는 않으련다.
대신, 감동적이면서도 마음 아픈 깨달음이 담긴 글 하나를
소개함으로 글을 맺는다. (출처를 찾지 못해 주소만 적어 둔다.)
http://blog.daum.net/dolpiri58/15692629?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dolpiri58%2F15692629
나는 이 글을 읽고 여의도의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읽었다.
읽고선 마음이 슬프고 안타까워 잠시 카페를 나서야 했다.
여의도의 넥타이 부대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글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시는 내외분에 대한 안타까움과
두 분의 애틋한 애정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문득 나의 할머니 생각이 났다.
혼자 다짐했다.
아름답게 살자고, 잘 살아가자고.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삼키며.
오늘은 노랫말처럼 살아가고픈,
60대가 아니라 70대, 80대까지 함께 살고픈
한 여인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나도 김광석 노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감상에 빠져든다.
"그(김광석)의 노래에 감염된 나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 안도현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한 여인이 선릉역 출구에서 서 있는 나를 앞서 나갔다.
옆 모습만 보았는데도 그녀를 알아 본 것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전화 통화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기억났던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했던 프라하에서 만난 배낭 여행객이었다.
한국인 7~8명이서 함께 우르르 체코의 맥주를 즐겼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그녀는 상록회관 근처로 엄마를 만나러 가는 중이랜다.
순간 상록회관 지하에 있는 상록마트에 가서 장이나 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세련된 옷차림의 커리어우먼과 청바지 차림의 장보러 가는 남자는 어울리지 않은 듯했기에.
어쨌든 같은 방향을 걸으면서 5분 정도의 대화를 나눴다.
반가움에 어색하진 않았다. 다만, 동네 마실 차림의 내 상태가 부끄러웠을 뿐.
"강의를 하신다고 했죠?" 그가 물었다. 기억해 주어 고마웠다.
"제가 이번에 프리랜서들을 인터뷰하며 책을 하나 쓰려고 하는데
주변에 혹시 성공한 프리랜서 아는 사람 없나요?"
그녀는 준비 중인 책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고,
오늘도 프리랜서 한 명을 인터뷰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아! 제가 바로 성공한 프리랜서지요."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좀 더 친했으면 던졌을 법한 농담인데, 이 타이밍에서는 썰렁한 분위기를 만들어낼테니까.
"성공이라 하면, 어느 정도의 수준이어야 하나요?"
정말 궁금하여 물어본 것이다. 그녀의 대답은...
회사 나와서 홀로 자기 영역을 잘 개척해 나가는 사람 정도였던 것으로로 기억된다.
우린 서로 메일로 연락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상록회관으로, 나는 카페데베르로.
아니다. 도중에 빠리바게뜨에 들러 소보루빵을 하나 샀구나.
소보루빵 두 개를 양쪽 주머니에 찔러 넣고 걸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똑같은 주제의 책을 쓰고 있구나.
(나도 1인 기업가에 대한 책을 구상하고 있으니.)
같은 주제의 책을 쓴다고 해서 그녀가 경쟁 상대가 되는 건 아니다.
우린 각자 열심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예전 같으면 경쟁 도서를 내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안다. 두 사람이 같은 주제로 책을 쓰더라도 전혀 다른 류의 책이 된다는 것을.
물론 책이 덜 팔릴 순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장은 하나니까.
그저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익한 책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일이다.
이럴 땐, 경쟁 의식이라도 좀 생겼으면 좋겠다. (천하태평인 나다.)
그나저나, 성공한 프리랜서라... 누굴 소개해야 하나?
메일 써야겠다. "저는 어때요?"
하하.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깡촌이다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 시절 흉내내기 딱 좋은 것 같습니다."
전화 통화로 들은 그의 얘기에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그는 원대한 꿈을 품은 20대 초반의 청년입니다.
작년에 만난 20대 청년 중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녀석입니다.
그와 나는 지난 해 가을에 강사와 참석자로 서로 알게 되었지요.
녀석은 강남의 어느 고시원에 머물며 공부하고 운동하며
자신의 꿈을 착실히 준비해 가는비전 청년입니다.
원대한 이상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의 치열한 노력이 저를 매료시켰지요.
"어 선생님! 선생님께서 여기 왠일이십니까?"
얼마 전, 우연히 길가에서 녀석을 만났습니다.
그 곳은 녀석이 머무르는 고시원 근처였고, 저는 근처에서 모임을 마친 후였습니다.
우리는 반가움을 나누었고, 일행이 있어 금새 헤어졌습니다.
불과 지난 주의 일인데, 오늘 통화를 했더니 녀석은 고향에 있었습니다.
머물던 고시원도, 다니던 체육관도 일단 정리하고 내려갔다고 하네요.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당분간 돌봐드려야겠다고 말합니다.
"효자구나. 그럼, 언제 다시 올라오니?"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가야지요."
그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나의 염려하는 마음이 전해졌는지 묻지도 않은 말을 하네요.
"깡촌이다보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 시절 흉내내기 딱 좋은 것 같습니다."
녀석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이소룡을 존경하거든요.
고향에서도 운동과 공부에 게으리지 않을 녀석이지만,
어머니를 돌보느라 제 건강을 소홀히 할까 봐 염려되네요.
부디, 어머님의 쾌차를 기원할 뿐입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아, 요즘 김연아라고. 그 녀석 하는 것 보니 기분 좋두만.
나도 기분 좋아. 경희대에서 연락이 왔어.
(더 큰 목소리로)아니, 김연아 올림픽 스케이트 선수 말야.
올림픽에서 금메달 땄어?
(쩌렁쩌렁하게) 아니, 김연아가 어제 1등했잖우.
아, 그렇지. 나도 어제 봤어.
카페에서 여든은 되어 보이는 어르신들의 대화다.
저만치 떨어진 곳이었는데, 내가 있는 곳에서도 다 드릴 만큼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기본적으로 컸다.
나도 봤다. 김연아 선수의 쇼트 경기.
김연아의 경기는 환상적이었다. 경기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김연아의 예술을 보기 위해 여행 출발을 미룬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TV 앞에 앉았다. 한국의 곽민정 선수 경기도 보았다.
가녀린 모습의 소녀는 실수없이 잘 해 냈다. 올림픽 첫 무대인데,
해설자가 참 잘했다고 설명한다. 그런가 보다 한다.
53.16 점을 받았다. 곽민정은 2위에 올랐네. 대단한 것이구나, 한다.
본선 진출을 확정한 소녀는 인터뷰에서 말도 잘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떨렸어요.
큰 실수 없이 잘 했지만 아직도 떨리네요.
그렇게 꿈에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섰는데,
이 한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어요."
아사다 마오가 나왔다. 김연아와 마오 모두,
국민들의 부담과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출전했을 것이다.
연아씨 마오씨. 부담은 반반 나눠 가지시게.
먼저 등장한 마오씨. 멋진 경기 펼쳐 주시게.
나는 당신이 넘어지지 않기를, 작은 실수조차 하지 않기를 바란다네.
약하다는 점프를 아주 성공적으로 해내길 기원한다네.
아사다 마오의 경기가 끝났다. 좋았다. 전율이 일었다.
끝나고 만족해 하는 모습과 링크 밖을 나와 코치와 끌어안는 모습,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다. 나도 저런 표정을 지으며 살아야 하는데...
점수가 발표됐다. 쇼트 프로그램 본인의 올해 최고 점수를 받았다. 73.78점이다.
이제 김연아다.
그래, 라이벌의 실수가 아닌 라이벌의 최고 실력을 넘어설 때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것이다. 연아 씨~! 잘 해.
제임스 본드 메들리에 맞춰 시작된 김연아.
나는 놀랐다. (사실,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제대로 관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연아는 시작부터가 달랐다. 운동 선수가 아니라 예술가 같았다.
스피드는 어찌나 빠른지. 3회전 연속으로 성공한 김연아의 표정과 포즈는
스포츠가 아니라 예술이었다.
쇼트 프로그램, 직선 코스에서 보여 주었던 스텝과 포즈는
자신감이 넘쳤고, 음악과 온전한 조화를 이루었다.
2분 48초가 끝나고 당당한 표정으로 마무리한 김연아. 최고다. 자랑스럽다.
해설자는 다시 보여주는 김연아의 트리플 점프 슬로우 모션을 보며
"품격이 다르죠"라고 해설했다. 정말 그랬다.
점수 발표.... 78.50 점. 쇼트 세계 최고 기록 경신이란다.
와~!
김연아는 바다 건너 여든의 할아버지들에게도 기쁨을 주는 존재였다.
자신을 넘어서는 사람들, 자신의 신화를 창조해가는 사람들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전한다.
그들의 첫째 목적이 세상에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향해 열심히 훈련하는 사람들,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사람들,
성장을 갈망하며 방황하는 모든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만남은 이런 모양이다.
대화 주제는 아주 진지한 것들이고, (이를 테면 자기 꿈에 대한 이야기, 직장 내 어려움 등)
나는 그런 만남들 후 집을 돌아오면서 깊은 만족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게 되지.
그리고 나를 찾아 준 그들에게 깊은, 아주 깊은 고마움을 갖게 되고 말야.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글에서 이 같은 마음이 잘 표현된 바 있어 옮겨 적어볼게.
"밖에서 사람을 만나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강가로 난 방축 길을 걸어서 돌아옵니다.
혼자 걸어오면서
'이 못난 나를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또 '오늘 내가 허튼 소리를 많이 했구나.
오만도 아니고 이건 뭐 망언에 지나지 않는 얘기를 했구나.'
하고 반성도 합니다.
문득 발밑의 풀들을 보게 되지요.
사람들에게 밟혀서 구멍이 나고 흙이 묻어 있건만
그 풀들은 대지에 뿌리내리고
밤낮으로 의연한 모습으로
해와 달을 맞이한단 말이예요.
그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내 스승이요 벗이 되는 순간이죠.
나 자신은 건전하게 대지 위에 뿌리박고 있지 못하면서
그런 얘기들을 했다는 생각에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암. 고맙지. 참 고마워.
와우팀을 만나고 돌아올 때가 특히 그렇지.
사실 기수마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다르긴 한데
고마운 감정만큼은 비슷하게 다들 있지.
와우팀을 대하다가도 짜증 비슷한 감정이 날 때도 있어.
이런 감정은 바깥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한 거지.
대부분 나의 인격이 리더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 때니까 말야.
이런 모든 부정적인 감정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해도
와우팀원들에 대한 나의 가장 큰 감정은 고마움이 될 것 같아.
그들이 경제적인 비용을 나에게 던져 주어서 그런 것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각자 어딘가에서 살아가다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인연이 닿아
만나게 된 이후로 더욱 힘껏 살아주고, 성장해 주어 고맙더라.
나는 한 사람이 열정으로 도전을 감행하고
장애물을 뛰어넘고, 사랑스럽지 않은 자기와 화해해 가며
결국엔 해내는 자기실현의 Full Story 를 보게 되니까 말야.
고마운 일이지. 용기를 내어 준 그에게도, 이런 기회를 준 하나님에게도.
지금까지 말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 주어 고맙다는 것이고,
와우팀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기에 고마움이 드는 점도 있어서 짧게 얘기해 볼게.
와우팀을 하면서 깨달은 건
사람은 분명,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존재하고
타인의과의 상호 인정 속에서 자아가 건강해진다는 거야.
나는 와우팀에 나를 던졌고, 그들도 할 수 있는 전부를 던짐으로
얻은 것이 친밀한 관계, 건강해지고 있는 자존감 등이겠지.
다시 사랑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이야기로 돌아갈게.
나의 직업 특성상 나는 과대평가될 수 있는 사람이지.
살아가다가 얻은 교훈, 책에서 배운 것들이 진짜인지 실험하여 얻은 깨달음을
글이나 혹은 강연으로 교훈과 깨달음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나누는 것.
이것이 나의 일이야. 이미 '얻으려는 그들'이기에 배움이 일어나는 것이지,
내가 훌륭하다거나 잘 해서 배움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게야.
참가자들의 학습 열정이 없는 강연에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그러나 강연 후의 "강연 참 좋았어요"라는 감사 인사는 나만 들어서도 안 되고 말야.
강연이 좋다는 말의 진짜 뜻을 알고 난 후라면 다음과 같이 말을 하면 어떨까?
"강연도 좀(^^) 좋았는데, 나의 오픈 마인드와 학습 열정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사실, 나는 참가자들의 '고맙다'는 말을 저렇게 환원하여 듣는 것 같아.
내 블로그에 와서 댓글을 다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심정이야. 고마움이지.
글을 읽어 주었다면 그냥 가도 고맙고, (찾아와 주었으니)
댓글을 달아 소통해 주면 더욱 고맙지.
그들은 글에서 무언가를 얻어서 고맙다는 말을 간혹 하지만,
이 역시 그들이 홀로 고민하지 않고, 블로그를 찾아다닌 노력했기 때문이고
혹은 그냥 놀러 왔더라도, 긴 글을 한 번 읽은 그들의 활동 덕분이기도 할 테지.
나는 그들의 (생각만 하는 게 아닌) '활동'했다는 점,
마음을 열고 누군가의 글을 '읽었다'는 점이 고맙더라구.
어제는 독서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강연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한 녀석을 만났어.
몇 번 통화도 하고, 문자도 주고받았던 녀석이기에 무척 반갑더라구.
녀석도 뜻밖의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만남에 놀라고 반가워하고.
그 때, 나는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인사해야 했어.
내가 되게 점잖게 행동했나 봐. 독서 모임 멤버들이 모두 있어서 그랬나 봐.
녀석과 헤어지고 나니 와우팀원이 그러더라구.
"선생님, 되게 어른처럼 점잖게 인사하시던데요."
와우팀원은 다른 뜻으로 얘기했겠지만, 나는 듣자마자
방금 만나고 헤어진 그 녀석이 나의 반가움을 고스란히 전해 받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음에는 좀 더 호들갑스러워야지, 하고 생각했다.
반가웠으니까. ^^ 물론 딱 내가 느낀 반가움만큼의 호들갑스러움. 더도 덜도 아닌.
이건 뭐, 내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누구나 장소에 따라, 함께하는 사람들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니까.
이렇게 매 순간 온전한 나로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곁에 있어 주는 사람들이 있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세상살이가 외롭지 않아. 고맙지. 암 고맙고 말고.
이렇게 고마움만 느끼고선 잠자코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또 그들이 뭔가 내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줄로 착각하여
한 번씩 허튼 소리를 한다는 게 문제야. 암. 문제고 말고.
강연을 한다는 게 말야. 혹은 누군가에게 내 견해를 내어놓는다는 게 말야,
어떨 땐 꼭 술 마시는 것과 비슷한 것 같더라고.
아주 기분 좋게,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질 때면 귀가길이 행복하지.
그러나 숙취로 다음 날까지 머리가 아픈 날도 있을 테고
술기운에 말을 많이 하고 나서, 자신의 푼수를 후회하는 날도 있겠지.
나는 강연을 할 때 그래. 아주 행복한 날도 있고,
숙취한 것처럼 머리가 아픈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찜찜한 날도 있지.
어제 독서모임은 운영자님이 잘 준비해 주셔서
참가자 분들에게 뜻 깊은 순간들이 되었지. 무척이나 고마웠지.
나는 카페 주인이고, 성실한 와우팀원 한 분이 운영자시거든.
주인장으로서, 카페를 잘 운영해 주니 얼마나 고맙겠냐. ^^
근데, 나는 내가 맡은 순서를 잘 진행하지 못한 것 같아 조금 그랬다.
이를 테면, '나의 푼수를 후회하는 날'이라고 할까?
영화 <500일의 썸머>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데,
심히 느낀 바가 있어 말할까 말까를 고민하다 말을 꺼내게 됐지.
아! 그리고는 후회했다. 말을 급하게 마무리해 버렸다.
온전히 설명한 것도 아니고, 말을 안 꺼낸 것도 아닌 어중간한
마치 설익은 밥처럼 소화하기 힘든 말이 되었던 게지.
이건 내가 민감하고 소심해서 그런 것인지
실제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불편해 했을지 궁금하기도 해.
어쩌면, 나의 견해를 말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이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지. 친구야, 뭐 잡히는 게 있으면 말해 주라.
오늘 네게 한 말은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들이다.
사람들을 향한 고마움, 그리고 허튼 소리를 하고 난 후의 건강한 자괴감 말야.
자괴감은 부정적인 어감인가? 자신을 괴롭히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부끄러워 한다는 뜻인데 수치심이라 말하는 게 더 좋니?
수치심이라 하던, 자괴감이라 하던 뜻은 같다. 부끄러워한다는 것 말야.
어쩌면 이 부끄러움 때문에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인 덕목으로 용기, 절제, 온화함 등과 함께
수치심을 꼽았더라. 책에서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수치심은 성품이기보다 감정에 가까우니 하나의 덕으로 보기엔 힘들대.
잘못에 치우칠 때마다, 불명예스러운 일을 할 때마다 수치심이 억제해 주니
이런 역할 때문에 수치심을 꼽았던 게지.
수치심은 특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네.
청년들은 아직 덕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에 치우쳐 잘못을 저지르기 쉬우니 말야.
그러니 수치심이 있는 젊은이는 칭찬할 만하나, 어른을 수치심이 있다고 칭찬하진 않는대.
나이 먹은 사람은 아예 부끄러움 느낄 만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나.
나는 젊은이에게서 이제 어른이 되고 싶네. 아님 그 중간 어딘가에 있겠지.
친구야, 너는 어디 즈음에 있니? 요즘도 음주운전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친구(2) 2010/02/24 12:34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내가 생각하기에도 "친구'의 요즈음 모습은 예전보다는
많이 달라진것 같아 안타깝네...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인사하고,
항상 밝고 건강한 모습이 참 좋았었는데
요즈음은 ...
가라앉은 목소리,
덤덤한 표정,
힘없는 모습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예전의 모습이 그립네...
라디오에서 "화양연화"주제곡이 흘러나오네
따뜻한 햇살과,
화양연화의 구슬픈 바이올린 소리
괜스리 슬퍼지는구만...
친구...
친구는 사랑해주는이가 많아서 좋겠네.
친구,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누시게.
함께 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더 원하니.-
보보 2010/02/24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친구여.
아마, 너만이 느끼는 것일 게다. ^^
항상 밝고 건강한 모습은 여전하고
다만 서른 중반이 되어가며 조금 점잖아진 것인데
점잖음은 늘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니까.
나는 너무 경박해서 말야. ^^ 하하하하.
가라앉은 목소리,
덤덤한 표정,
힘없는 모습.
하하하. 이건 무슨 시체를 표현한 것인가?
다행히도 이런 표현이 마냥 반가우니 어쩌겠나.
경각심을 좀 가져야 하는데 말야.
나를 그대의 생각에 가두지 마시게.
나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
다만, 아이다운 순수한 마음만 간직하고 싶을 뿐.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란 쉽지 않네.
나는 누군가의 평가가 두렵진 않아.
이미 욕을 먹는 일도 많아졌으니. ^^
평가 때문에 내가 움츠러드는 것이 두렵지.
세상은 도전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니까 말야.
마음 속의 이야기를 못 나눈 것이
두려움 때문은 아니라는 말일세. ^^
진솔한 얘기 고맙네.
그대가 내 친구였음 좋겠네.
-
-
친구야. 잘 지내고 있니?
이 글은 아마 너에게 전해지지는 않을 거야.
친구야, 라고 쓰기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분 전까지만 해도
너에게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난 그저 <짜증 섞인 하루>라는 글을 블로그의 전면에 두는 건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글 하나 쓰고자 '글쓰기' 버튼을 눌렀을 뿐이야.
불현듯 '친구야'라는 말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그저 진솔한 이야기 몇 마디를 쓰는 데 대상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고.
난 잘 있다.
사실, 누군가가 내게 잘 지내냐고 물으면
자동적으로 머리가 돌아간다. '어디까지 얘기해야 하나?'하고.
나의 더듬이는 분위기와 상대방의 표정을 캐치한다.
'그는 나에게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인가?'
나의 머리와 더듬이는 소심하고 예민한 편이라
상대방이 원하는 것보다는 '덜' 얘기하곤 한다.
원하는 것보다 '더' 얘기하는 것보다는 나은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덜' 하게 된다. '더' 얘기하게 되는 경우도 물론 있다.
문제는 내 얘길 듣기 원하는 이에게는 '덜' 하게 되고,
원하지 않는 이에게는 '더' 하게 되는 센스 없음이지. 하하하.
그래서 나는 오늘 가상의 '너'에게 편지를 보낸다.
네가 원하는 것보다 내가 말을 더 많이 하든지, 말을 덜하게 되든지
너는 항상 나에게 맞춰진 가상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련다.
말하자면, 내가 너에게 맞출 필요가 없으니, 너는 무척이나 편안한 수신인이다.
내가 말을 많이 하면, 너는 많은 것을 듣고 싶어한 친구가 되는 것이고,
내가 말을 적게 하면, 너는 나의 이야기를 조금만 듣고 싶어한 친구가 되는 것지.
그래서, 나는 늘 너의 필요을 잘 채워주는 친구가 되는 것이고. 하하하. 복잡하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잘 지내고 있는 대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대목도 있다.
잘 지내고 있는 대목은 와우팀장으로서, (예비) 작가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의 모습이다.
와우팀은 이제 곧 7기가 출범할 것이고, 와우팀원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변화되고 있지.
나는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기쁘고, 나 역시 성장하고 있음이 느껴져서 좋아.
와우팀원들과 함께 한 모든 일들은 훗날에 더욱 큰 의미가 될 것이라 믿어.
요즘엔 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도 조금씩 추진하고 있어.
며칠 쉬긴 했지만, 다음 책의 원고에도 (느린 속도로) 손을 대고 있어.
산만함을 날려 버리기 위해 애쓰고 있지. 올해 중에는 다음 책을 춮간할꺼야.
삼촌과 동생에게서 점점 더 깊은 친밀함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도 아주 만족스런 대목이야.
요즘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삼촌과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참 좋다.
그것은 친구 상욱이와 삼촌이 동업을 하고 있기에
현실적으로 더욱 자주 볼 수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됐지.
친구 만나러 가도 삼촌이 계시고, 집에 가도 삼촌이 계시니까 말야. ^^
그러고 보면, 정신적인 영역에서의 성장과 변화도 중요하지만,
물리적인 현실을 개편하는 것을 간과해서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닫게 돼.
잘 지내고 있지 않은 대목은 와우팀장으로서, (예비) 작가로서,
그리고 강사로서,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이다.
와우팀장으로서의 나를 들여다 보면, 부족한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와우팀장의 역할은 상담도 아니고, 코칭도 아니고,
멘토링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 생각해 봐라. 내가 멘토라니. 하하.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어려움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만은 없기에 와우팀은 내게 힘겨운 도전이다.
허나, 그 도전은 나의 비전을 포함하고 있고,
나를 성장시킬 도전이기에 '위대한 도전'이라 부르고 싶다.
작가로서의 모습에서 글쓰는 속도가 더딘 것은 나의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지.
어쩌면 그것은 '내가 써 낸 글이 허접하면 어떡하나?'라는 두려움인지도 모르겠다.
글 하나 쓰고 나면 기분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거든.
'이 글은 완전 뻔한 내용인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해서 어찌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분량을 써 낼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생각들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대책보다는 한 숨만 나오니까. ^^
강사로서의 나, 이 영역은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 헷갈린다.
2009년도부터 의도적으로 강연을 줄여가고 있거든.
2, 3년 전보다 확연히 강연 횟수가 줄어들었지.
와우팀과 글쓰기에 집중하려는 마음으로 의도적으로 강연을 줄인 후의
일상 생할은 두 가지 점을 제외하면 더욱 만족스럽지.
만족스러운 점은... 시간적 여유가 생겼고, 읽고 싶은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고
누군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는 날이 많아진 것 등이야.
올해 들어서 하루 온 종일 와우팀원과 함께 한 날이 이틀이었고,
4시간 이상을 함께 보낸 것도 지금 바로 기억나는 것도 4, 5회가 되네.
만족스러워진 점에서 제외된 두 가지 점도 말해야겠구나.
하나는 수입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 "강사님 한 달에 강연은 얼마나 해요?"라는 질문이다.
분명히 강연 수입은 줄어들었어. 이건 예상했던 것이니 그나마 OKay.
그런데 강연 횟수를 묻는 질문은 살짝 피하고 싶더라구.
강연 횟수가 곧 강사의 명성으로 연결될 터인데, 나는 많이 하지 않으니 말야.
한 달에 12회 강연으로 제한했을 때에는 몰랐는데,
5~6회 정도의 강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만난 이들에게 할 땐 괜히 부연설명을 하곤 했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해.
(불만족스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잘 하지 못한 대목에 강사로서의 일을 넣은 것은
올해 들어, 강연일지를 꼬박꼬박 적겠다는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지난 강연을 돌아보는 과정은 필요한 일이 분명한데, 자주 빼먹곤 한다. 내게는 재미 없더라.
이것은 내일을 바라보며 새로운 것을 계획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 때문이겠지.
과거를 들여다 보는 훈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성실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말하자면 부끄러울 지경이다.
새로운 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교회를 바꾼 건 아니야)
함께 하기로 한 친구가 여행 등으로 3주 연속으로 함께하지 못해서 나까지 좀 방황하고 있다.
내 잘못이 분명하니 그의 탓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함께 드리고 한 예베를 홀로 드리면서 예배 시간을 바꾼 결정에 대하여 고민한 게지.
부끄럽다고 말한 것은 기도와 말씀, 신앙 서적 읽기 등 모든 신앙 생활이 게을러졌지 때문이야.
간간히 갖게 되는 경건의 시간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읽는 것이 요즘 신앙 훈련의 전부네.
이렇게 너에게 하나 둘 이야기하다 보니
내 안에 나누고 싶은 일상의 이야기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강연을 통해서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 말야.
강연에서 하지 못하는 까닭은 나를 거짓으로 포장하고 감추어서가 아니라,
나에게는 참 중요하지만 그들에겐 사소한 것들이기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이지.
와우팀원들과 만나면, 이야기의 중심은 그들의 꿈과 고민이기에
이런 시시콜콜한 나의 이야기를 나눌 만한 시간은 많지 않고 말야.
결국, '친구야'라고 시작한 이 글은 너의 안부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나의 안부와 이런 저런 일상을 나누려고 쓴 글인 셈이네. ^^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친구 2010/02/24 00:27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친구야~ 편지 잘 읽었어.. 마침 어떻게 사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그랬구나..그랬구나~그랬구나~" 또 시시콜콜해 주어~ 팅구양 마이샹훼~^o^
-
-
친구(3) 2010/02/24 01:29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그래서 선생님이 참 좋아요...^^
언제가 되야...
선생님께서 편해하시며 자연스럽게 소소한 일상과 고민까지 털어놓으실 수 있는..
친구가 되어드릴 수 있을까...^^
음..
이렇게 다른 이름으로 댓글 올리는 느낌..
색다르네요..^^ -
친구(4) 2010/02/24 12:23 댓글주소 댓글쓰기 수정/삭제
밥은 먹고 다니냐?
잠은 잘 자고있냐?
부쩍 까칠해진 네 얼굴을 보며
걱정이 된다.
제발 걱정 좀 시키지 마라!
걱정 시키지 말라는 것이, 너를 감추란 이야기가 아니라
너를 드러내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는 이야기야. 알지?
더 많이 이야기하자. 우리!
(내가 누구게^^메롱) -
오전 두 시간 반.
공유기를 샀기에 보안 강화가 필요했다.
네트워크나 PC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것 저것 시도해 보았다. 잘 되길 바랬다.
오류가 발생했다.
오류를 제거할 수 없었고,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닫히지도 않는 창, 해결되지 않는 오류.
이걸 갖고 끙끙대느라 두 시간 반을 보냈다.
컨트롤되지 않으니 신경질이 났다.
기계를 만지느라 보낸 시간이
아까운 것이 화의 중요 원인이다.
골치가 아파져 잠을 청했다.
연이어 세 시간.
부아가 치밀어오르거나
머릿 속이 복잡해질 때, 자는 것이 최고다.
일어났다. 또 다시 3시간이 지났다.
으악, 이렇게 오전 시간이 다 지났다.
노트북을 보니 오류가 그대로다.
결국 전원을 뽑아 강제 종료했다.
결국, 이 놈 때문에 날린 시간이 5시간 30분이다.
다시 두 시간 반.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집을 나섰다.
토요일 오후여서 그런지 지하철 2호선은 무지 복잡했다.
한 대를 그냥 보냈다.
하하. 이럴 때 한 대를 보내면
곧장 (비교적) 텅 빈 열차가 오기도 하니까.
제길, 그 다음 열차까지의 텀은 길었고,
사람은 더 복잡했다. 에이씨. 이거 뭐야.
탔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 그리고 불쾌함.
정거장마다 지하철은 사람들을 쏟아냈고
다시 그 공간은 또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더 이상 타고 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강남역에서 내렸다.
9호선 신논혁으로 뛰어갔다.
뛰면 급행을 탈 수 있는 시간대였기에.
겨우 탔다. 땀이 났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일찍 공함에 도착했다.
허나,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
만나기로 한 장소를 알 수가 없었다.
휴대폰은 켜자마자 다시 꺼졌다.
헉! 큰일이다. 편의점에서 충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떠오르지 않았다. 넓은 공항을 찾아다녔다.
어쩌면 못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기적처럼 만났다.
지금 생각해도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5시 2분이다. 약속 시간에 2분 지각이다.
이렇게 두 시간 반을 이동하는데 보냈다.
이동하면서 책을 읽어 즐거웠지만, 지각한 것은 싫었다.
결론은 지각
올해 들어, 세번째 지각이다.
지각으로 처리하기엔 도착한 시간을 따졌을 때
아쉽지만, 어쨌든 만난 시각은 늦었다.
나를 늘 관대하게 대해 왔으니 올해 만큼은 바뀌어 보자.
모임과 약속 모든 시간 약속을 제대로 지키겠다는 결심을
지금까지는 훌륭하게 잘 지켜왔다. 세번의 지각은
한 번은 6분 지각, 또 한 번은 10분 지각, 그리고 오늘이다.
훌륭히 해 오던 것을 오늘 깨뜨린 것 같아 이것도 짜증이었다.
허허. 오늘은 참 여러 번 짜증내며 지내는구나.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
귀가하는데 다시 2시간. 긴 하루였다.
후회만 남은 하루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도로 가는 녀석을 배웅한 것이 오늘의 (유일한) 의미였다.
불만족한 상태로 살 수는 없기에
나는 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며 하루를 마감한다.
마지막 한 마디.
하루의 마지막 순간에
고달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있어 고맙다.
나는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미가 됨으로 살아가는 힘을 얻으며 산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결국, 지갑은 찾지 못했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아쉽다.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근거 없는 낙관으로 이틀을 지내고 나서야
카드사와 은행에 전화를 걸어 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신고를 한 후, 이번 일을 잠시 돌아보았다. 대견한 구석도 있었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기정 사실임을 인정해야 했던 이틀 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하필 그 때였나, 하는 (대상없는) 원망이었다.
지갑 분실은 여러 사건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사건 하나만 빠져도 지갑 분실이라는 사건을 일어나지 않았을 것다.
자리를 뜨기 전 평소처럼 앉았던 자리를 슬쩍 훑어보았더라면 (나는 늘 훑어본다.)
카페에서의 미팅을 마치고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집으로 갈까, 카페에 갈까를 고민했던 그 때 카페를 선택했더라면 지갑은 내 수중에 있을 텐데..
이런 식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좋은 일 역시도 따져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의 절묘한 조합으로 일어나는 것이니,
나쁜 일만을 따져가며 하필 그 때 그 일, 이라는 식으로 원망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원망을 멈추고 상실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했다.
상실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상실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삶에서 상실은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의미없었다.
'상실을 겪을 때,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상실과 사이좋게(^^) 하는가?'가 중요했다.
없었던 일로 치자, 라는 생각은 사건 자체를 지우는 것이니 배울 수 있는 교훈도 날아가버린다.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자, 라는 생각은 평범한 일상의 균형을 잃을 수 있다.
지난 해, 배낭을 잃어버리고서 배운 것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외면하지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고 감정과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이렇게 생각하니 지갑 분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몇 번의 크고 작은 상실로 갖게 된 개똥철학 덕분인 것 같다.
철학은 행복한 시절엔 고상한 장식처럼 보이다가,
불행의 시기에는 지혜로운 안식처가 된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마도 지갑을 잃어비린 것 같다.
덕분에 집안을 뒤지느라, 외투 주머니를 확인하느라,
가방의 포켓마다 열어 보느라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확실하게 지갑을 사용한 것은 어제 1시경이다.
이후에 집으로 왔고, 오후에는 강연을 위한 미팅이 있었다.
잠시 집에 들렀다가 다시 저녁 약속으로 나갈 때 지갑이 없어서
그냥 카드만 들고 나왔다. 약속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 후,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지갑의 부재에
놀라며 집안을 뒤졌다. 그런데, 아쉽게도 없다.
유력한 분실 후보지인 어제 오후 미팅을 했던 곳, 카페 데 베르에 왔다.
"혹시 분실 지갑 들어온 게 없나요? 제가 어제 지갑을 두고 간 것 같거든요."
라고 물어야 할 터인데,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도록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조급함이 사라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근원은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이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지갑이 이곳에 있다면 찾게 될 것이고
나도 모르는 곳에 있다면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서두를 게 무어란 말인가!'
아내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내가 이러고 있는 걸 알면, 얼마나 답답할고.
아이고야. 이를 어이할고. 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허탈한 웃음이 아니라, 정말 재밌다.
내가 이리 웃으면,
어떤 분들은 '보보님,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갑이 있을 만한 짐작되는 곳이 있겠지, 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지 않다. 나는 정말 믿는 것도, 짐작 되는 곳도 없다.
만약 이곳 카페 데 베르에 없다면, 찾을 희망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집안을 너무 샅샅이 뒤졌고
어제 내가 지갑을 들고 간 곳은 카페 데 베르 밖에 없다.
희망을 남겨 두기 위해 집안을 설렁설렁 찾을 걸 그랬나?
희망을 살려 두기 위해 카페 데 베르에 묻지 말까?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희망 때문에 묻지 않는 게 아니다.
그저, 이런 일에 무덤덤한 자신이 신기해서 이러고 있다.
지갑을 잃은 상황인데도, (안에 돈이 적은 것도 아닌데도)
20분 동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신기하다.
뭘까? 이 덤덤함은.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덤덤함과 진한 아쉬움 사이를 왔다갔다 하겠지.)
문득, 지난 해 유럽 여행에서 잃어버린 배낭이 떠오른다.
하하. 만약 오늘의 초연함이 그 상실 예방주사 덕분이라면,
상실의 경험은 두고두고 삶에 도움이 되겠구만. ^^
※ 이 글을 쓰고 나서 등록하기 직전에 카페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분실 지갑 들어온 게 없냐고. 대답은 기대와는 달리 예상했던 대로였다.
지갑에는 뭐가 들었을까? 각종 신용카드와 현금 그리고 참 아쉬운 일도 하나 생각난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