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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그녀를 환경운동가 혹은 사회운동가로만 알아왔다. 인권 문제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아 2004년에 시드니 평화상을 수상한 '아룬다티 로이' 말이다. 그녀를 환경과 연결시킨 것은 2003년에 『생존의 비용』을 읽었기 때문이고, 사회운동가로 생각한 것은 미국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에세이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도 양심적 지성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비판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고종석의 글을 통해 알게 됐다. 그는 "최근 10년 사이에 미국의 주먹(군사적 신보수주의)과 보자기(경제적 신자유주의)에 맞서 가장 열정적으로 펜을 휘두른 논객"으로 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과 같은 원로들과 함께 한 세대 젊은 아룬다티 로이를 꼽았다. (『고종석의 여자들』아룬다티 로이 편)

하지만 아룬다티 로이는 작가이기도 '했다'. 1997년에 출간된 그녀의 첫 책 『작은 것들의 신』은 그녀가 쓴 유일한 소설이고 인도 여성으로는 최초로 부커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십년 전의 나였더라면 그녀의 정치 에세이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를 읽었을 테지만, 지금의 나는 그녀의 소설을 읽으려 한다. 요즘엔 자꾸 문학 작품에 관심이 간다.

아룬다티 로이는 소설가로 출발했지만, 그녀의 소명은 사회운동에 있을 것 같다. 소설을 쓸 것인지는 그녀 자신도 모를 일이지만, 현재까지는 정치적 에세이만 써왔고 사회 운동에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고종석은 글 후반부에서 아룬다티 로이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보였는데, 그녀의 활동을 균형 있게 판단하도록 돕는 좋은 글이었다.)

2.
나의 독서는 조선의 역사서에서 출발하여, 피터 드러커의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계기로 경영과 실용서로 이어졌다. 역사서는 고작 몇 권을 읽은 수준이니 내 독서 여정의 출발점은 경영학과 실용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더 많은 기간 동안 몰두했던 분야는 사회과학과 철학이었다. (그 때도, 지금도 여전히 남독 수준이긴 하다.)

강준만 교수의 책을 즐겨 읽었고, 월간 <인물과 사상>을 애독했다. 김규항, 진중권, 홍세화선생의 책을 한 두 권씩 읽기도 했다.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와 노암 촘스키의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를 열광하며 읽었던, 그리고 미셸 푸코, 보드리야르의 책을 만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입사하면서 나의 독서는 다시 경영서로 전환되었다.

철학과 역사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지만, 회사 생활에 필요한 책들을 먼저 읽는 경우가 많았다. 서른 즈음, 서준식의 『옥중서한』 몇 장을 읽고서 강렬한 지적 희열을 맛보았을 때에도 그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을 만큼의 여력은 없었다. '언젠가는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 둘 뿐이었다. 그 '언젠가가'가 아주 오랜 훗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슬픈 상상을 하면서.

서른이 넘어서는 자기다움과 인생의 지혜를 다룬 책을 많이 읽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나 파커 파머의 에세이를 좋아했고,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 심리학자나 철학자들의 책도 간혹 읽었다. 그리고 삼십 대 중반인 지금에 이르러, 나는 문학 작품을 본격적으로 읽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다.

3. 
본격적이란 것이 대단하거나 특별한 것은 아니다. 그저 작가별 혹은 나라별 문학 작품을 연달아 읽는 것 뿐이다. 혹은 세계문학전집을 한권씩 읽어 나가거나. 스토리를 즐기는 것 뿐만 아니라 작가의 문제의식을 탐구하려는 노력을 남다른 점으로 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깊이가 있는 편은 아니어서 내세울 만한 것이 못 된다.

나라별로 읽는다는 것은 이런 식이다. 치누아 아체베(1930), 월레 소잉카(1934), 치마만다 아디치에(1977)를 연달아 읽기. 이들은 나이지리아 문단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들이다. 월레 소잉카는 1986년 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수상 연설에서 치누아 아체베에게 찬사를 바쳤다. 모두 아프리카 문학을 공부할 때 놓칠 수 없는 작가들이다.

어제 도착한 예스24 택배상자에는 일본 소설들이 들어 있었다. 나는 나오키상 수상작인 『마크스의 산』,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2004년작 『7월 24일 거리』,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는 오쿠다 히데오의 『한밤중에 행진』 그리고 모리 오가이, 나쓰메 소세키 등의 작품이 수록된『일본 대표작가 대표 단편선』을 주문했었다.

나의 독서는 경영학에서 출발하여 철학과 사회과학을 거쳐 이제 문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소명을 추측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오랫동안 천착하고 있는 주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나는 여전히 산만하다. 나의 관심사는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어떤 책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하지만 조바심은 없다. 흥미진진하니 나를 그냥 내버려 두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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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오랫동안 양준혁 선수를 좋아해 왔다. 그가 삼성에서 LG로 이적당할 때 열받았고, 그가 신기록을 세울 때마다 기뻐했다. 새로운 기록을 이어가기를 염원했고 그가 은퇴할 때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가 없는 프로야구가 아쉽다. 그리고 그립다. 야구장에서 빠라빠빠빰 위풍당당, 빠라빠빠빰 양준혁! 을 신나게 외쳐대던 때가.


왠지 양준혁 선수를 만나면 그도 나를 반가워할 것 것만 같다. 물론 그는 나를 모른다. (놀랍게도 그는 내가 다녔던 회사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난 외근 중이었던가 퇴사한 이후였던가 그랬다). 어쩌다 나는 그가 나를 반가워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걸까? 연예인이 마치 지인처럼 느껴지는 이 느낌 말이다. 
 


2.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 『불안』,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등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 글짓는 실력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작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찰스 핸디, 말콤 글래드웰을 아주 좋아한다. 아! 그들처럼 쓰고 싶다. 물론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알랭 드 보통은 프랑스어로 쓰는 작가 아니냐고 질문할 분이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랬다. 그는 영어로 글을 쓴다. 그것도 아주 멋진 문장을 써 낸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 출신이고 지금은 런던에서 거주하는 작가다. 나는 왜 그가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고 착각했을까?

3. 
저 훌륭한 작가들과 비슷하게라도 글을 쓰려면, 한 달에 백여 권의 책을 훑는다는 알랭 드 보통처럼 책을 읽거나 말콤 글래드웰처럼 치밀하게 조사하고 탐구하거나 찰스 핸디처럼 나의 삶을 들여다보며 통찰력을 키워내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왜 대가를 치를 생각은 하지 않고 꿈만 꾸는 걸까?


"우리는 어둠 없는 빛을 원하며 겨울의 고난 없이 봄의 영광을 원한다. 그런 파우스트적인 거래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지 못한다." 파커 파머의 말에 깊이 감동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파우스트처럼 굴고 있다. 왜 나는, 오늘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일이면 왠지 뭔가 이루질 거라고 착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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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두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한 사람은 편집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편집자다. 둘 중 한 사람이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를 좋게 읽어 주었고, 독서에 관한 책을 써 보자고 제안하는 자리였다. 설명하기는 난감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좋았다. 이사야 벌린의 책을 출간한 회사라는 점으로 인해 출판사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계약하기로 마음 먹었다. 무엇보다 2012년에는 상실감을 이겨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지난 달의 일이다.

한 달이 지났고 그 사이 해가 바뀌었다. 지난 달의 만남 직후, 나는 세 개의 한글 파일을 출판사로 보냈는데, 그 중 하나를 마음에 들어했다. 오늘 출판사에 갔다. 사장님을 만나 계약 사항을 협의하기 위함이었지만, 나는 세 분께 양해를 구하고 계약을 하지 않았다. 원고를 모두 쓰고 나서 계약하고 싶었다. 경험에 의하면, 먼저 계약을 하면 계약금을 받았다는 것 때문인지 자유롭지가 않았다. 나는 마감일자 때문에 쫓기듯 글을 쓰고 싶지는 않으니까.

내게 자유는 중요했다. 수백만원을 몇 개월 먼저 받는 것보다 자유롭게 일하는 게 좋다. 어떤 상황 속에서 일해야 내가 즐겁게 일할 수 있는지를 알고 있어서 다행이다. 지난 번의 출간 경험을 하고서야 알게 된 것들이다. 경험은 나를 알게 한다. 경험을 한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자기를 알게 되는 건 아니다. 잠시 동안이라도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 성찰, 귀찮은 일이지만 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자기지식(self-knowledge)은 행복한 삶에 절대적이다.

2.
출판사 사장님은 바빴다. 찰나에도 그 분이 편안하고 진솔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조건대로 계약하려면, 그에게 나를 남다른 인물로 각인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돈이 없어서 인세를 조금 더 달라는 작가로 비춰졌을 뿐이다. 실제로 그는 내게 형편이 어렵냐고 묻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묻는데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게 그가 지닌 힘인 듯 하다.

나는 그에게 나를 잘 소개하지 못했다. 얼굴을 붉힌 채 횡설수설했다. 말도 더듬었다. 편안하고 진솔한 분을 앞에 두고서도 명쾌하게 내 얘기를 못한 것이 한심했다. 그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져 올 만큼, 나는 아마추어처럼 행동했다. 아니 아마추어였다. 프로답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자리에서 나는 항상 아마추어였다. 마포구 창업지원센터장님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안할 때도 그랬고, 하나은행 인사팀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나의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삶에 나타나는 실제 모습은 사교성이 풍성한 편은 아닌 것 같다. 어른 앞에서 지나치게 주눅이 드는 것도 같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촉이 발달하여 나를 인정해 주면 자기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나에 대한 지지가 없으면 기가 죽고 나서지 않는 사람들. 내가 그렇다. 지금까지 많이 넘어섰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다.

3.
편집자는 시종일관 나의 눈을 쳐다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종종 나의 이야기를 자기의 언어로 바꾸어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기도 했다. 의견을 조율하려는 그의 노력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에게는 발언 기회가 많지 않았다. 사장님이 계신 자리였고, 편집팀장도 함께한 자리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나를 도와주지는 못했지만, 도와 주려는 의도는 내게 충분히 전해졌다. 때로는 마음만 전해져도 힘이 되는 법이다.

내 원고를 좋아해주기도 했다. "자기계발서가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며 놀랐어요. 철학 책 같기도 하고 심리학 책 같기도 했는데, 공부를 많이 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순간, 공부를 많이 했던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나를 믿고 원고를 계속 밀어붙이기로 했다. '아직은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원고를 그냥 노트북에 저장해 두었다가 날려 버리는 일은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니까. 편집자의 말이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사장님이 떠오른다. 나는 그 분이 좋았다. 인상도, 말투도 무척이나 시원했다. 그런 호탕한 분과 친해지고 싶었다. 그러면 나의 좀스러운 면이 희석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오늘이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다. 출판사에 다시 갈 일은 없을 테니까. 계약은 등기로 해결할 것이고 다음에 편집자를 만나면 식사나 함께 할 것이다. "다음엔 밥 한 번 같이 먹으며 이야기 해요." 그의 마지막 인사였다.

4.
생각하기는 부끄럽지만 생각해야 할 미팅이었다. 
이 글을 쓴 까닭이다. 나는 글쓰기를 하며 나를 들여다보고 개선하니까.
나는 와우스토리연구소의 리더다. 지위는 중요치 않다. 영향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경험과 학습을 통해 나를 개선하여 좀 더 나은 리더가 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매일마다, 하루 만큼씩 꿈에 다가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노력하자고 다짐해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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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12일. 점심을 먹고 글을 하나 써서 포스팅했다. 정오 무렵부터 몸이 무거워지기 시작하더니 오후 2시가 가까워지면서 팔다리가 뻐근하고 묵직해졌다. 늘 마시던 와인이 바뀌어서 그런가, 하며 오침을 청했다. 자리에 누웠는데 몸이 으스스하다. 아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느 때 같으면 20분이면 일어나는 오침인데, 4시간 동안 잠을 잤다. 저녁 무렵 눈을 떴다. 이곳저곳 몸이 쑤셨다. 내일 8시간 동안 강연을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순자』의 한 구절이 절절히 다가온다. "화를 입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복은 없다."
아! 아프지 않고, 마감기한에 촉박하지 않고, 불안한 일이 없는 일상의 평온함이여!
아픔이 지나가고, 여유가 오고, 마음이 평온하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함을 만끽해야지.

2.
13일 아침, 몸이 무거웠다.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9시간이나 잠을 잤지만 소용 없었다. 조금만 더, 를 반복하며 누워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허겁지겁 강연 준비물을 챙겼다. 강연장은 불광동, 차를 몰아서 갔다. 두 가지에 의존해야 하는 날이었다. 나의 체력과 일을 할 때의 몰입감. 나의 체력은 8시간을 잘 버텨 주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효과도 톡톡히 보았다. 몸은 아팠지만, 정신은 즐거웠다. 

어떤 경험이든, 우리에게 유익과 가르침을 줄 것이다. 나는 10대 때 신나게 운동했다. 그것이 내게 좋은 체력을 안겨다 주었다. 삶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는 건 아니다. 보다 진한 유익을 주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를 찾으려는 노력이 그렇다. 나는 직업적인 면에서 나를 찾았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은 컨디션이 좋지 않은 강연을 할 때에도 내게 힘을 준다. 열심히 경청해 준 한동 학생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찾은 내 인생이 고마웠다.

3. 
이틀 연속 푸욱 잠을 잤더니 14일에는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 신체적인 회복 탄력성이 높다는 사실이 내 나이에 대한 감사함을 상기시켰다. 열살 쯤 더 나이들면, 정신적인 성숙으로 인해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진 컨디션으로 화성시에 소재한 청호인재개발원에 다녀왔다. 한국가스공사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있었다. 나는 청호인재개발원 정문을 30m 앞에 두고서야 수년 전에 이곳을 다녀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집에 가면, 내가 언제, 무슨 강연으로 왔었는지 찾아보리라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 가장 만족스럽게 강연을 진행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언제 그 곳에 갔었는지 찾아보았다. 무슨 주제로, 어떤 회사를 대상으로 한 강연인지를 금방 알 수 있을 거란 기대감으로. 하지만, 포기해야 했다. 내가 정확히 일년 전에 모든 자료를 상실했음을, 순간적으로 잊었던 거다. 이것은 좋은 징조다. 순간적으로 잊다니,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이 잊게 되길 바란다. 세월은 강하다. 아주 큰 상실의 절망감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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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성탄절 밤이다. 사람들은 성탄절의 주인공을 생각하며 이 날을 보낼까? 산타 클로스는 아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태어난 날이다.) 예수 믿자는 말은 아니다. 불신 지옥이라고 덧붙이기는 더욱 싫다. 하루 하루를 음미하며 사는 것, 중요하다. 어떤 하루는 의미가 깊다. 광복절이 그렇고, 자기 생일이 그렇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성탄의 의미를 생각하자는 글은 아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성탄절을 보낼까, 를 생각하다가 '나는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잠시 들여다 보고 쓴 글이다. 나의 하루 역시 예수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고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펼친 까닭이다. 내년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은 좀 더 하루를 잘 음미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성탄절 밤, '한 시간 동안의 나'를 관찰하고 난, 성탄절과는 무관한 생각들이다.
 
1. 창 밖을 내다본다. 사거리 교차로가 보인다. 좌회전 신호가 거의 끝날 무렵, 저만치 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온다. 속도를 죽이지 않고 부채살을 그리듯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운전자는 관성을 오롯이 느꼈을 법한 속도다. 그는 어디로 달려가는 것일까?

'어디'가 아느라 그저 집으로 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여유보다는 조바심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일지도. 그리고 어쩌면, 크리스마스 밤을 홀로 집 안에서 보내는 것이 아쉬운 이가 친구를 만나러 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사거리를 지나가는 수 많은 차량 중에 몇 대는 쓸쓸한 밤을 달래기 위해 술을 찾아, 친구를 찾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집에 있다가 목적지를 억지로 만들어, 길을 나서는 발걸음은 쓸쓸하다. 사람이 그리워 나선 것일까? 쓸쓸함을 뒤로 하고 싶어 나선 걸까? 비슷한 감정이니 구분하기 힘들 것이다. 혼자 사는 즐거움을 누리는 나도 오늘 밤은 좀 쓸쓸하다. 오랜만이군. 이 감정. 왠지 반갑다. 생각하기에 좋은 감정이라 그런가 보다. 사람들은 언제 쓸쓸함을 느낄까? 그리고 쓸쓸함을 어떻게 달랠까?

2. 고백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 들어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았던 것이 괴롭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고백은 좌회전 할 때, 자주 생각나는 일이다. 자주, 라는 말은 중요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설명하는 것일테니까. 중요한 것이니 한 번쯤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짧게! 쓰련다. 어떤 생각은 쓸쓸하지 않을 때 해야 한다.

나는 좌회전 할 때 종종, '엄마'를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면 어머니라 부르겠지만, 열 다섯 중학생인 내게는 아직 엄마였다. 엄마는 생계를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음료 배달을 하셨다. 4월의 어느 따뜻한 봄날, 엄마는 좌회전을 하다가 오토바이 핸들이 트럭에 부딪혀 넘어지셨다. 엄마의 몸은 트럭으로 들어갔고, 트럭의 바퀴는 엄마를 피하지 못했다.

좌회전은 엄마를 생각나게 하는 단어다. 평생 어머니와 함께 붙어다니는 단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것도 트라우마인가? 누구나 저마다 가슴 속에 아픈 상처 혹은 지독한 슬픔 하나씩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것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걸까? 화해했을까? 외면하고 있는 걸까? 달라진 일상에 익숙해져가더라도 한 번씩 가슴이 아플 텐데 말이다.

3. 교차로를 20 미터 정도 앞두고 승용차 한 대가 비상 깜빡이를 켜 둔 채로 길 가에 서 있다. 우회전 하려던 차량은 비켜가야 했다. 차선을 따라오던 차량들은 아주 작고 가벼운 불편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나는 잠시 상상한다. 어떤 운전자가 불법 정차한 차량의 운전자에게 화를 내는 장면을. "뭐 하는 거예요? 사람 불편하게시리. 어서 차 빼세요."

잠시 후, 비상 깜빡이 차량이 출발할 때까지 그런 상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불평하기보다는 그저 지나가는 것이 편하고 쉽다. 잠시 핸들을 돌리는 것이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 차량 때문에 차가 밀린 것도 아니니까. 그런데 이 일을 두고, '역시! 세상엔 경우 바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라고, 적은 정보로 성급하게 결론 짓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편협하게 단정짓지 않고 다각적으로 사고할 수 있을까?

4. 할 일이 없으면 쓸데 없는 생각을 한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에 부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 말은 환경이나 상황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이다. 할 일이 있든 없든, 제대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도 있다. 부분적 부정은 부분적 동의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있긴 하나, 하기 싫어하는(?) 중이다. 일을 미루다 보니, 쓸데 없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밤은 친구를 만나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은 날이다. 친구를 만나는 게 왜 쓸데없는 생각이냐고? 친구가 너무 멀리 있기 때문이다. 지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멀다. 가장 친한 친구는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 또한 삼십대를 넘어선 후의 대화는 곧잘 이상적이기보다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동네 친구, 인생의 고단함을 모르던 날의 친구가 그리운 게다.

커피 한 잔이든, 술잔과 알탕이든 상관 없다. 대화 상대가 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라면 말이다. 물론, 삶의 힘겨움을 쏙 빼낸 죽은 대화는 싫다. 다만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생의 에너지와 비전은 살아 숨쉴 수 있으니, 대화를 하고 나면 힘이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싶다. 사람들은 그런 친구와 얼마나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살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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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데라야마 슈지의 책


1. 한번쯤 말하고 싶었다. 세상이 책이라고.
삶에 대한 통찰을 지니고 싶거나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책'도' 읽어야 하는 것이지,
책'만' 파서는 아니 될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데라야마 슈지처럼 파격적인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그의 한국어판 책 제목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책을 읽느라 인생길을 걷지 못하고 있다면,
책을 내던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한번쯤 말하고 싶었다.
구체적인 삶의 경험 없이는 내공도 없을 거라고.
내공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은 관념에서나 통하는 짝퉁이라고.
그러니 내공을 쌓고자 한다면 책과 세상을 모두 읽어야 한다고.

2. 한번쯤 말하고 싶었다. 책은 읽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가 자기는 취미로 책을 보는 거라 말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지만,
나는 기왕지사 책을 펼치고 나면, 책을 읽어내려고 愛쓴다.
읽는다는 것은 관찰하고 생각하는 행위다. 읽기 = 보기 + 생각하기, 인 게다.

나에게, 사람이나 세상을 읽는다는 말은
객관적인 관찰 위에 생각을 덧입힌다는 뜻이다.
관찰력이 중요하고 사고력이 필수다.
때론 책을 읽는 것보다 사람과 세상을 읽음에서 더 많이 배운다.

한번쯤 말하고 싶었다.
세상에는 책을 읽지 않은 현명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책 속의 지혜를 신봉하는 책쟁이들은 이런 사람들의 지적 근원을 모른다.
그들은 세상을 읽고 인간살이를 읽고 자기를 읽는다.

3. 한번쯤은 이말도 하고 싶었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고.
제대로 읽어야 할 책이 아니면, 나는 책을 잘 안 읽는다.
부지런히 읽기 위해 노력하지만 책만 읽는 것은 아니다.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내 인생살이를 읽으려는 노력, 누군가의 삶을 읽으려는 노력은 한다. 
다른 전문가들에 비하면 독서량이 일천하니, 독서전문가라는 말은 민망하다.
어색한 말이지만, '읽기전문가'라면 내게 좀 더 어울리는 호칭이리라.

굼벵이에게도 재주가 있듯, 내겐 '독서 편력'은 없지만 '도서 편력'은 있다.
온/ 오프라인 서점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책을 무진장 사들였으니까.
도서구입비가 2~3년이 지나면 1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나는 읽어가는 속도보다 사들이는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사람이다.

우리 집에 온 이들은 "이 많은 책을 다 읽었어요?"라고 묻지만
그것은 '도서' 편력가들의 생태를 모르는 이들의 질문이다.
그들이 잘못한 것은 없다. 순수한 호기심은 멋진 가치니까.
굳이 문제가 있다면 분수를 모르고 사들이는 나의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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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전하는 영혼이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도전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함이다. 그는 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고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나 자신"임을. 그러면서도 항상 가장 두려운 자신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 승리했다. 힘겨운 승리이기에 값지고 고귀하다. 그의 승리는 드물어서 귀한 것이 아니라, 고귀하기에 드물다. 자기를 이기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세계적인 산악인 박영석의 얘기다. 그의 등반기록은 놀랍다. 세계 최초, 세계 최단의 기록들이 수두룩하고, 세계 유일의 기록도 있다. 그는 인류 최초로 7대륙 최고봉, 세계 3극점, 8,000m 급 14좌를 모두 등반했다. 사람들은 이를 '산악 그랜드슬램'이라 부른다. 박영석 대장은 세계 최고봉의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는 진정한 프런티어요, 챌린저다.

"세상의 주인은 따로 없다.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다."

8,000m급 14좌 완등을 마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나도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어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던 차에 포털사이트에서 '박영석 대장 실종'이란 기사를 보았다. 히말라야 3대 거벽 중의 하나인 안나푸르나 남벽을 등반하다가 10월 18일 오후 4시부터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내용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팬들의 마음 속은 타고 있다. 

급기야 20일에는 서울의 동료 산악인들이 구조대를 급파했다. 남아 있는 대원들의 등반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이었다. 구조대는 박 대장 일행이 크레바스 등에 빠진 고립 상태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도 있다고 낙관하며 하늘을 날았다. 이들의 판단은 옳았고, 낙관은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위대한 모험가를 만나서 얻게 되는 기쁨과 유익이 있다. 그의 도전 덕분에, 나도 어디 도전해 볼 것이 없나 하고 내 삶의 나태한 구석을 살펴보게 된다. 나의 세계를 창조할 용기를 얻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 그리고 땀과 희생을 오롯이 던질 만큼의 가치 있는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길을 거침없이 걸어간 영혼이 무사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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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을 강남구 역삼동에 살았다. 선릉역 5번 출구로 나와 첫번째 골목길에서 우회전하여 경복아파트 사거리로 이어지는 골목길 어딘가에 살았다. 3분만 걸어나가면 테헤란로지만, 사는 곳은 주택가가 밀집된 구역이다. 차를 몰고 나가지 않는다면 교통이 편리한 곳이다. 2호선과 분당선이 가깝고 차를 타고 두어 정거장 가면 9호선을 탈 수 있다. 5분 거리에 선릉공원이 있어 도심에서 숲의 기운을 느낄 수 있고, 집 주변에 수십 개의 카페가 있어 마음 당기는 대로 즐기는 맛도 있다.

역삼동으로의 이사 결정은 난관이 많았다. 월세가 비쌌기 때문이다. 내 형편에는 분명 과분했으니 그 과분함을 설득할 수 있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허영심 많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는 않으니까. 나는 신앙인이기도 해서 '거룩한 이유'도 가져야 했다. 이번 이사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타당한 처사'인지를 묻는 신앙인들에게 내놓을 카드도 필요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를 지켜보는 몇몇의 와우연구원들도 있다. ^^

아! 나는 이렇게 관계와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은 한탄이 아니다. 어렵다고 엄살부리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어떤 행동 이면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원인이 있기도 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진짜 이유를 숨길 수 있는 합리화의 달인이란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문득, BMW를 사고 싶어했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그의 형편상 외제차는 과소비로 비칠 위험이 있었다.)

비싼 월세를 낼 만큼 합리적인 이사란 것을 스스로 설득하는 것은 쉬웠다. 나는 늘 회사 근처에 살아 왔으니까. 출퇴근 시간을 무척 아까워하는 나다. 회사가 수서에 있을 때에는 지하철로 7분 거리인 경원대역 인근에 살았고, 회사가 선릉으로 이전하면서 역삼동으로의 이사를 감행한 것이다. 성남과 강남은 세 배에 가까운 월세 차이가 났지만, 나는 '시간이 돈'이라는 관념에 삶으로 동의했다. 출퇴근 시간을 돈으로 산 것이 역삼동으로의 이사였던 셈이다.

거룩한 이유도 있었다. 김용규 선교사님의 『내려놓음』에는 자동차와 집이 전도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언급이 나온다. 집으로 초대해 손대접을 하거나 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면서 '좋은 소식'을 전하면 상대방이 어찌할 수 없이 듣게 된다는 이유다. 역삼동 집에서는 성경공부를 하기에 좋았다. 교통이 편리했기 때문이다. 역삼동 집에서는 매주 성경공부 모임을 가졌고, 와우팀원들과의 수업이나 크라스마스 이브 파티를 갖기도 했었다. 

어디에 사세요? 역삼동이요. 좋은 데 사시네요. 아, 네. (그리고 침묵)

종종 어디에 사느냐는 물음을 받을 때가 있다. 역삼동이라 대답하면 가장 자주 듣는 소리는 '좋은 데 사시네요'다. 잘 사시네요, 보다는 우회적이면서도 상대에게 약간의 관심을 표현하는 대답일 것이다. 청담동, 논현동, 삼성동 등의 동네에 살면 잘 사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실은 나만 해도 아닌데 말이다.) 좋은 데 라는 말에 별달리 할 말이 없어서 침묵을 하곤 했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 말에 으쓱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 '강남'과 같은 좋은 동네에 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잘 살고 싶으니까.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사는 지역에 대한 부러움을 받고 싶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어떤 이는 역삼동, 잠실동에 사는 나를 부러워했다.) 사는 동네를 말하고 나면, 동네 집값의 시세나 재테크로 이야기가 이어질 때도 있다. 물론 이런 주제로도 즐겁게 말을 주고 받을 순 있지만, 진정으로 내가 나누고 싶은 주제가 아님은 대화를 하면서도 인식하고 있다. 양평군 양서면 복포리에 살아요, 라고 답할 때에는 전원생활이나 삶의 여유에 대한 주제 등과 같은 대화를 하게 된다.

나는 경제적인 대화보다는 경영적인 대화를 좋아한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리고 목적 달성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또한 철학적인 대화를 좋아한다.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하여 사색하고 의미를 묻고 나누는 대화다. 내가 만약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대화 주제를 원하는 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소심하게' 부탁 드리고 싶다. 나에게 '어디에 사세요?'라는 질문을 하지 말기를. 문화 예술의 도시나 전원 마을에 살지 않는 이상, 자칫하면 경제적인 대화로 흐르기 쉬우니까 말이다.

나는 고상함을 추구하는 속물인지라, 강남이든 송파구든 좋은 동네에 살고 싶다. 소심하게 부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곳에 사는 모든 이들이 속물이란 말이 아니라, 내 안의 한 구석이 속물 같다는 말이다. 물론 나에게도 멋진 구석이 있다. 고상함을 추구하며 속물 근성을 벗어나고픈 열망이 있다. 올해 초, 그런 열망과 그간 써온 많은 글들을 갈무리하여 책으로 내자는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역삼동에서 양평 원룸 전셋집으로 이사를 갔다. 

지금은 비즈니스와 편의를 목적으로 서울 잠실에서 사무실을 하나 마련했다. 졸지에 양평에 서재 같은 집을 두고, 잠실에는 사무실을 둔 부자가 된 것이다. 허나, 실속은 없다. 하우스푸어라고 들어보셨는가? 그것이 나다. 내 집이 아닌 전세요, 월세이니 실은 하우스푸어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처럼 속물이 고상함을 추구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것은 넘지 못할 장벽이라기보다는 꿈을 추구함에서 오는 난관이다. 속세에 마음을 두고 있는 중처럼 나는 수련이 많이 필요한 사람이다. 고승이 되고 싶어하니까.

이런 나에게 중요한 질문은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다.
지난 5년, 나는 강남구의 부유한 재정에 견줄 만큼 빛나는 삶을 살아왔던가.
부디, 사는 곳에 따라 목에 힘을 주거나 부끄러워 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내가 살아가는 모양에 따라 하늘 앞에서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삶의 모양으로 떳떳한 사람이 되자.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펼쳐가자.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사는가?
아니,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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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거운 날입니다. 팔과 다리가 쑤시기도 하고, 고개를 조금만 흔들어도 머리가 아픕니다. 어제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이렇게 컨디션이 급격하게 나빠졌습니다. 앓아누울 정도는 아닙니다. 어제도 일을 한 후엔 저녁 모임에서 와우 연구원들과 함께 족발을 뜯기도 했으니까요. 오늘은 전라도 광주로 내려가 강연을 하고 상경하는 중입니다.

고백하자면, 앞서 말한 증상은 조금은 과장된 것입니다. 엄살을 부린 것인데, 지금이 감기를 조심해야 할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께 밤에 샤워를 하고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누워 있다가 그만 잠이 들었습니다. 얇은 홑이불도 덮지 못하고 창문은 열어 둔 채였습니다. 밤사이, 두어 번 뒤척이면서 '아 춥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침까지 잠을 잤지요.

그러고 난 후부터 몸이 무거워진 것입니다. 목이 칼칼한 걸로 보니 감기에 걸린 듯 합니다. 열이 나지도 않고 거동이 힘든 것도 아니니 가벼운 감기입니다. 글로 쓰며 엄살 부릴 만한 일은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일교차가 큰 요즘에 감기에 걸리기 쉽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었습니다. 나의 아픔을 통해 환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요.

"여러분, 환절기입니다. 감기 조심하셔서 건강하세요."

나는 건강해서 감기에는 걸리지 않지, 라고 말씀하실 분도 있겠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감기와는 담을 쌓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골골 대고 있네요. 미리 예방하여 나쁠 것은 없으니, 밤에 잘 때에는 얇은 이불이라도 덮고 주무시기 바랍니다. 밤늦게까지 외출할 경우에는 바람막이로 가디건이나 긴 팔 셔츠라도 챙기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자기경영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면, '건강 관리'는 필수과목일 겁니다. 필수과목에서 낙제하면 졸업할 수 없듯이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건강 관리 없이는 자기경영 성적이 높을 리가 없습니다. 자기 몸에 적합한 운동이 무엇인지 알아 꾸준히 실천하고, 일과 쉼의 균형을 창조하기 위해 애쓰고, 건강한 식생활 습관을 가지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지요?

어제 모임에서 우연찮게 수영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도 가끔씩 수영을 하는 터라, 한 분이 제게 물었습니다. "25m(실내수영장 레인 길이)에서 왕복으로 몇 번이나 수영하세요?" 그렇잖아도 최근에 몇 번이나 갔다올 수 있는지 헤아려 본 터라 구체적인 수치로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한 열번은 왔다 갔다 하지요. 500m 정도 수영하는 셈이죠."

"체력 좋으시네요." 모두들 놀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얼만큼 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고, 레인 도시는 걸 헤아린 적도 없었으니 그저 웃었습니다. 꾸준히 수영한 것도 아닌데 아마 체력이 좋은 편인가 봅니다. 학창 시절에 매일같이 농구, 당구, 축구를 했던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한 일입니다. 체격 대신 체력이라도 좋으니 말이죠. 

담양 여행을 하며 찍은 사진 중에는 참 마음에 안 드는 제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한 장 있었습니다. 제 얼굴의 측면을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인데, 여드름과 잡티가 많은 제 얼굴이 무척이나 못마땅하더군요. 얻다 쓰겠냐, 싶어 지웠는데 아쉽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이미지로 활용하면 좋을 텐데 말이죠. 피부 관리를 좀 해야겠다 싶어 책 한 권을 주문했습니다.


내용도 알지 못한 채, 제목에 끌려 지른 책입니다. 맺음말에서 비결이라고 강조한 것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규칙적인 생활습관,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을 배제하고 자연식에 가까운 식단, 적당한 운동의 삼박자가 젋은 피부를 만드는 비법"이란 말입니다. 그러면서 "피부는 다시 젊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럴 수 있는지는 직접 실천하며 확인해 봐야겠지요. 중요한 사실은 그 실천이란 것이 하루 이틀의 실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속적이고 꾸준한 실천'이 필요합니다. 건강 관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은 호기심어린 한 두 번의 도전으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관리'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난 건강에 대하여 관심만 많을 뿐,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제 삶을 한 단계 도약시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겨났고, 무엇보다 지금껏 방치했던 건강 관리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피부를 젊게 만드는 것보다 활력과 에너지를 젊음의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좀 더 쉬워 보입니다.

타고나지 않은 사람에게 희망이 있으니, 바로 '꾸준한 관리'입니다. 아예, 건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 생각하렵니다. 타고난 건강을 믿다가 꾸준히 망가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허약한 체질이었지만 꾸준한 건강 관리로 활력 넘치는 삶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나는 오늘부터 건강을 관리해 보려구요. 그러다보니 여러분의 건강은 안녕한지 궁금해진 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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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별 내용이 없는 시시한 글일 수 있음.


<7광구>를 보았다. 아쉬운 영화였다. 서사는 비약적이었고, CG는 엉성했다. 영화의 중반부에서부터 흥미를 잃었지만, 하지원의 열연 덕분에 잠들지는 않았다. '7광구'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던 내가, 7광구의 존재와 중요성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 것이 영화가 나에게 준 유익의 전부였다. 

영화를 보다가 결정적으로 흥미를 잃은 대목은 캡틴의 탈출 장면이었다. 해준(하지원 분)의 말처럼, 캡틴은 '현장의 치열함을 모르면서 이론만으로 결정'하는 리더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헤아릴 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부하들을 버린 인간이었다. 

그도 부하들의 절규를 보며 잠시 갈등하긴 했다. 하지만, 선택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캡틴이 부하를 버린 대목에서, 나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좋았다. 캐릭터가 일관성을 유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몰염치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상황에서 부하에게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영웅일 것이다.

문제는 다음 장면이다. 캡틴은 잠수정을 타고 석유 시추선을 안전하게 탈출했다. 해저로 서서히 돌진하는 잠수정! 그런데 돌연 괴물이 나타나 잠수정을 습격하여 캡틴을 죽인다. 불의한 자의 비참한 결말에 속이 시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스토리의 리얼리즘은 크게 손상되었다. 괴물을 자신이 쫓던 이들을 잠시 놓아두고 시추선에서 어찌 해저로 한걸음에 달려왔단 말인가.

(시추선 아래로 떨어진 동수(오지호)가 밧줄을 타고 탈출하는 장면, 괴물과 해준(하지원)기나 긴 사투도 사실성이 떨어졌다. 캐릭터 중에는 송새벽과 박철민의 활약이 컸다. 약방 감초처럼 적절할 때마다 웃음과 감동을 주었다. 비중 있는 오지호와 안성기보다 인상 깊은 장면을 연출했다고 생각한다.)


SF  액션 장르에 리얼리즘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최소한의 스토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서사는 극의 기본이다. <7광구>에는 그 기본이 없다. 석유시추선에 오르게 된 인물들의 사연도 없고, 괴물의 탄생 배경도 시간 설정이 헷갈렸다. 해준과 동수의 러브 라인도 약했고, 위기 대처 상황에서의 등장 인물들이 보여 준 캐릭터의 표현도 악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자기 캐릭터를 일관되게 표현해야 한다. 표현의 결과로 괴물은 괴물다워야 하고, 주인공은 주인공다워야 한다. 불사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위기나 갈등과 같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자기 캐릭터를 보여 주어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7광구>의 위기는 그저 쫓고 쫓기는 위기일 뿐, 위기를 통한 인물의 캐릭터 표현과 극적인 긴장감을 몰아가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장르 영화의 승부처가 되어야 할 컴퓨터 그래픽도 엉성했다. 해준과 동수가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은 영화가 아니라 게임의 배경처럼 어색했다. 나는 영화에 대한 집중도가 좋은 편이지만, 서너 번은 '저건 정말 CG 티가 너무 나는구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결론! <7광구>는 실망스러웠다. 영화 지식이 없어 실망의 원인을 분석할 순 없다. 그저 아쉬운 감정을 나열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실망의 감정을 나열하기 위해 이 글을 쓴 것인가? 아니다. 질문 하나가 생긴 것이다.
"삶을 살다가 어떤 것에 실망하게 될 때, 어떡해야 하는가?" 흔히들 얘기하는, 실망을 줄이는 법은 기대를 낮추는 것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기대감이 주는 떨림과 흥분은 긍정적인 것이니까.

실망을 느낄 때의 대처법은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실망을 줄 만큼 시시한 것들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것이 시시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에는 감탄을 줄 만한 대단한 것들도 많으니까. 시시한 것을 만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조금씩 시큰둥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리고 대단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든지, 안목 있는 이들의 조언을 듣기 위해 부지런히 검색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시큰둥해지는 것을 막는다는 것은 '에이 한국 영화는 역시 별로야'라고 성급하게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다. 방금 보았던 영화가 시시했을 뿐이다. 부분의 특성을 전체의 특성으로 착각할 때, 우리는 편협해진다. 전체에 대한 판단은 섣불리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성격이 복합적인 것 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가장 새로운 최신의 것이 항상 가장 좋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교훈도 기억하자. 감탄할 만한 대단한 영화를 찾는다면 신작 개봉관만을 찾을 일이 아니라,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명작을 찾는 게 빠를지도 모른다. 가슴을 뒤흔들 대단한 책을 찾는다면 신간 코너를 뒤적일 게 아니라 인류사라는 시간의 검증을 견뎌 온 고전 한 권을 읽는 게 나을지도.

시시한 영화 하나를 먼저 접한 자로서, 누군가에게 "이것은 시시해요"라고 말하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어쩌면 나는, 시시한 것에 투자한 내 시간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노력이 부질없는 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보지 않으려고 했다가 이 글 때문에 '7광구'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또 무슨 상황일까? 인생은 그렇다. 예측불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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