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에 해당되는 글 490건

  1. 2018.11.07 오늘도 난 헤매고 그립니다 (1)
  2. 2018.11.05 인연이 그리워지는 가을
  3. 2018.10.29 11월을 향한 뜨거운 기대 (2)
  4. 2018.10.28 고마운 가을 아침
  5. 2018.10.27 잠시 평온했다는 것으로 (4)
  6. 2018.10.26 하룻밤 숙면에도 감사해요
  7. 2018.10.18 절실한 바람만 있을 뿐
  8. 2018.10.12 오늘 선택한 행복 (2)
  9. 2018.04.14 마음아, 너는 어떠니?
  10. 2018.04.13 상실의 방을 명랑하게

양평에도 비가 옵니다. 안개가 자욱하여 거실에서 내다보이던 산 풍광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분명 저기쯤 존재하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네요. 생경한 느낌의 아침입니다.

  

소멸이 아니니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하고 자꾸 찾게 되네요. 존재함을 알기에 찾습니다. 새삼 그리움이란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감정임을 깨닫습니다.


'소멸'이든 '부재'든 여기에 없으니 그리워하고, 존재함을 알고 있으면 찾거나 헤매게 됩니다.


아침 시선이 헤매는 까닭은 제가 찾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절절히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와 깊은 친밀함을 누렸던 응보겠지요. 오늘도... 나는 헤매고 그립니다. 

Posted by 보보


대화의 희열! (2018년 9월부터 시작된 KBS2 프로그램명입니다.) 이리도 매혹적인 제목이라니요! TV가 없기도 하고 잘 보는 편도 아니라 송해 선생님의 기사를 통해 프로그램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관심이 갑니다. 위로, 희열, 감동, 자극을 얻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송해 선생님 편부터 보고 싶습니다. 아래 기사 때문이에요. 기사 만으로도 위로가 되더군요. 제 인생의 상실을 들여다보면 30~40대의 삶이기보다는 50~60대의 삶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이야 그렇다 쳐도 친한 친구들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갔기에 하는 말입니다. 

 

'92세 송해의 그리운 사람들'이란 기사의 마지막 두 문단을 옮겨 둡니다. 너무나도 슬픈데 희망적이어서... 


<송해는 올해 1월 부인 故 석옥이 씨와도 사별했다. 송해는 "어머니, 아들만 생각하면 하늘이 무너지는데 마누라까지 그러게 됐다"며 "처음엔 어처구니가 없었다. 같이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갔는데 아내는 못 나왔다. 폐렴이라는게 나쁘다. 아내의 빈자리는 (나중에) 동행하는 날까지 채울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송해는 "내가 실의에 빠지지 않게 각오해야지 도리가 없더라. 견디기 힘들지만 손녀 둘과 손자 하나가 있는데 그 아이들이 내 희망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놈들에게 할아버지 본 때를 보여줘야지 하면 거뜬해진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가족이야말로, 특히 자녀야말로 삶의 존재 이유이자 삶을 버티는 기둥이겠지요. "녀석들에게 든든한 힘(울타리, 기동, 희망)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이 고통과 힘듦을 버티게 만들고 삶의 무상함을 얼마간 덜어내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나의 솔로 생활을 부러워하는 친구가 이리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원아, 나는 정말 네 자유가 부럽거든. 그런데 주말이나 명절엔 네 생각이 안 나더라. 녀석들이 내 삶의 기쁨이거든." 두 아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행복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이 '친밀한 관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네요. 친구, 연인, 스승이 그리워지는 가을입니다.  

Posted by 보보

이제 막 카페에 와서 100개에 달하는 카톡을 모두 읽었어요. 집에선 인터넷이 안 되니 이런 수고를 해야 하네요. 차를 타고 5분을 달려 양수리 카페에 오는 ‘수고’ 말이죠. 조금 불편하지만 재밌는 일상이에요. 월말 며칠 동안만 겪는 불편함이니 일시적이고요. 물론 카톡을 하러 카페에 온 건 아니에요. 오늘은 인문정신 수업이 있는 날이니 외출해야 하죠.


창밖 풍광이 아름다워요. 초록, 연두, 주황, 노랑, 붉음이 어우러진 단풍들이 고즈넉하게 한강을 바라보고 있어요. 정말 그래요. 내가 단풍을 바라보는지, 단풍이 나를 바라보는지 순간 혼동될 만큼 저네들이 사람처럼 느껴지네요. 이런 표현은 과장이나 의인화가 아닌 지금의 제 감상이에요. 이곳에서 우리 셋이서 대화를 나누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울까요?


중고 도서로 『인생의 맛』을 구했다는 소식을 봤어요. 나까지 즐거워지는 기분이었죠.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이들에게 권하는 책이거든요. 부담 없이 읽히는데 깊은 인문적 풍미를 만나고, 문장이 좋은 데다 또 다른 책(『수상록』) 읽기로 이끌어 주니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입니다. 게다가 분량은 또 얼마나 착해요?!


내가 읽을 책을 선택하는 일은 그야말로 즐겁고 흥분되는 일상입니다. 반면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어렵고 힘들어요. 때론 곤혹스러운 정도죠. 훌륭한 책이면 다소 어렵고(『인생의 발견』처럼) 읽기에 편하면 내용이 아쉬워요(대다수 베스트셀러 입문서들). 『인생의 맛』은 복잡한 심경을 날려 줘요. 『고민하는 힘』, 『예술 수업』 등도 그렇고요.


공부에 대한 얘기를 나눴더군요. ‘혼자 하는 공부’와 ‘인식을 열어 주는 청강’의 조화라면 공부 여정에 힘이 붙을 테죠. 답사가 가능한 공부라면 길을 떠나면 좋을 테고, 동학과 함께 대화마저 곁들인다면 공부가 깊어지고 즐거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공부를 위해 내년에는 공자의 묘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최근 『논어』를 열심히 읽었거든요.


‘책방’은 예상하신 대로 <최인아 책방>입니다. 여느 책방이면 함께 프로그램을 하자는 제안에 뜸을 들이고 늑장을 부렸겠지만 이번에는 바로 "YES"라고 대답했죠. 사부님과의 인연도 한몫 했지만, 말씀하신 대로 지금까지 참여한 분들의 면면이 훌륭하거든요. 저도 슬쩍 끼어 후광효과라도 맛보고 싶은 겁니다. 책방에서 어찌 제게 제안을 했는지 의아하기도 해요.


토요일에 책방 홀에서 독서 특강을 했는데(그날 세미나룸에서는 김상근 교수님이 함께하는 독서 토론 모임이 있었죠) 선전했지만 기분 상으로는 ‘폭망’한 느낌입니다. 논리적으로 진행하지 못했고 재미가 결여되었고 무엇보다 청중의 몰입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이 경청해 주었지만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한 분들께는 재미없었을 거에요.


이미 읽으시어 알고 계신 대로, 지난주부터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했어요. 오랫동안 가꾸지 못한 곳이라 막상 첫 글을 쓰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국엔 마음 준비의 문제지만 그 마음을 먹고 실행하기가 마냥 쉽진 않더군요. 마음 속 잡초를 뽑고(다음 주부터 하지 뭐), 밭을 갈아(무엇을 쓸까 고민하고), 씨를 뿌렸어요(글을 써 올리는 일이죠).


블로그를 가꾸는 일은 상징적인 출발이에요. 일상의 변화가 비단 포스팅에만 그친 게 아니거든요. 상실의 고통이 3개월 쯤 지나니 회복되기 시작하나 봐요. 책도 열심히 읽기 시작했어요. 어제는 하루키 단편을 읽고 서평을 하나 썼어요. 주말의 여유를 빌어 단편 소설을 읽고 그에 관해 마음 가는 대로 글을 끼적인다는 게 내게는 행복이더라고요.


제가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하시겠죠? 이럴 땐 자진 신고가 살 길입니다. (함구한다고 해서 갑자기 죽는 건 아니지만 ‘살 길’이란 표현을 썼네요. 은근히 장난끼가 발동한 겁니다.)

『잠의 사생활』(잘 자는 법에 대한 최신 연구 결과가 흥미로웠어요), 『그리스인 조르바』(이젠 놀라지도 않죠?), 『어떻게 나로 살 것인가』(초반 1/3은 훌륭해요. 끝까지 괜찮으면 추천할게요. 자기다움이 아니라 꿈의 실현에 관한 책예요), 『반딧불이』(하루키 단편집입니다. 아주 재밌진 않으나 제겐 울림을 주네요) 등을 읽거나 읽는 중입니다. 


강원도의 여러 산들을 다녀오셨다고요? 강원도가 선사하는 숲 종합선물세트를 만끽하신 느낌이네요. 양평에선 그나마 가까운 산들인데 저도 얼른 시간을 내고 마음을 챙겨 다녀와야겠습니다. 아직은 마음이 쓸쓸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만나는 가을 풍광도 또 다른 맛과 멋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이 즈음이면 흔히 듣는 단풍 나들이인데(지난주에도 친구의 단풍 여행 소식을 들었거든요) 어찌 이번에는 ‘나도 가야겠다’고 결심한 걸까요? 가까운 이들끼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친구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해질 확률이 15%라고 했던가요? 친구의 친구면 6%(가물하네요)! 이 영향력은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까지 가야 소멸 된다죠?


오늘 아침 두 분이 전해 준 긍정적인 에너지와 행복의 기운에 감사드려요. 3개월 넘게 진행된 저의 불면증은 점점 떠나가는 것 같아요. 아직 정상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수면 시간이 확실히 늘었어요. 잠을 자니 기운이 생겨요. 쓸쓸한 마음을 달래려면 기운이 필요한데, 불면이 악순환을 가속시킨 것도 같더라고요. 더욱 회복되어 저도 행복한 마음을 나누고 싶네요.


11월에는 분명 전환의 시간이 될 거예요. 이건 느낌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그리 만들고 말 테니까요. 월초에는 인문정신 세미나(4주 희랍 고전 과정)이 시작되고 중순에는 최인아 책방 독서토론(6주 과정)이 출발해요. 월요일마다 인문정신 수업이 진행되고요. 무엇보다 책을 많이 읽으며 글을 부단히 쓸 겁니다. 이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연지원이 살아났다!”


Posted by 보보

같은 풍광을 보고도 때마다 반응이 달라요. 기분이 좋을 때에는 감탄사가 나오고, 마음이 아플 때에는 한탄이 나오더군요. 오늘 아침의 가을 풍광은 여전히 아름다웠죠. 서정주의 <푸르른 날에>가 떠오르는 아침이었습니다. 가을이 산에 부린 마술에 감탄하기보다는 그리운 시절을 회상했다는 말이에요.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었습니다. <다섯 가지 소원>이라는, 10여 년 전에 읽은 자기계발서를 어젯밤에 침대 옆 테이블에 두었거든요.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이었어요. 처음 읽었던 당시, 나의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저는 내게 필요했을 내용을 은근슬쩍 회피하면서 읽었거든요. 그리고는 10년이 훌쩍 지났네요.


다시 읽은 소감은 ‘후회막급’입니다. 책에 대한 후회가 아닙니다. 왜 그때 나의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입니다. 다시 생각하니 '막급'까지는 아니네요. 후회하면서도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도 크거든요. '그래, 문제를 외면했으니 지금 이 모습이 된 거야' 하는 자기 직시의 심정으로 책을 읽었던 겁니다. 이번에는 문제로부터 도망가지 말아야죠.


구 선생님은 당신의 책에 이런 표현을 쓰셨어요. “마흔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힘든 시절이다.” 이 구절의 한참 뒤에는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는 말도 나와요. 전환에 성공하려면 자신의 문제와 적절한 거리 감각이 필요하겠죠. 자기 문제를 모조리 개선하는 사람은 없을 테고, 중요한 문제의 해결 없이는 삶의 도약이 없을 테니까요.


최근 3일 동안 아침마다 긍정적인 기운을 만나요. 창조적인 일에 마구 달려들고 싶은 요즘이네요. 무진장 책을 파고들거나(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늘 독서예요) 의미 가득한 여행을 떠나거나(아, 정말이지 내게 필요한 건 여행인지도 모르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거나(필라테스나 일본어는 어떨까요? 영어부터 잘 하고 싶긴 하네요)! 사랑에 폭 빠져도 좋겠어요.


지금 양평에는 비가 내려요. 가을비에 마음이 조급해졌다가 이내 평온을 되찾았어요. ‘아! 단풍이 더 떨어지겠구나. 추워질 테고. 하지만 괜찮아. 달리 어쩌겠어? 이것이 계절의 순환인 걸. 아쉽게도 마음앓이를 하느라 2018년 가을을 향유하지는 못했지만 여유롭고 우아한 이들은 올 가을을 즐겼을 거야. 세상의 좋은 것들을 언제나 누릴 수는 없지.’


아침 음악은 재즈로 연주되는 캐롤 곡이에요. 흥겨운 리듬을 듣고 있어요. 마음에서는 알싸한 그리움과 경쾌한 설렘이 손을 잡고 춤을 추어요. 사랑하는 연인과 보낼 크리스마스를 꿈꾸면 좋겠지만 지금 난 상실감에 아파하고 있어요. 마음에 들진 않지만 고통스럽지 않음에 감사해요. 어젯밤에도 숙면을 취했거든요. 3일 연속으로 5시간 이상을 잤어요.


열흘 동안 숙면에 성공하면 이렇게 선언하려고요. “연지원 씨, 오늘 부로 이번 불면증은 떠나갔습니다. 땅땅땅!” 내가 나에게 보내는 판결입니다. 이 판결을 받기 위해 숙면을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가려고요. 밤사이 괜찮은 숙면을 취했고, 알싸한 마음이지만 고통스럽지 않으며, 잠깐의 여유에 기대어 글을 끼적였다는 사실로도 충분히 고마운 가을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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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아침 햇살이 거실 바닥에 드러누운 모습을 봅니다. 가을의 평화, 주말 아침의 여유, 햇살의 따사로움 등을 슬쩍 느끼면서도 마음의 중심부에 자리한 쓸쓸함과 공허감을 토닥거리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허전한 마음들이 가시겠지만 2018년의 여름과 가을은 혹독하네요. 거실 창문을 열고 책상에 앉았어요. 쌀쌀한 공기와 함께 까마귀와 까치 소리가 번갈아 거실을 방문하네요. (양평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포스팅하진 않았군요. 저는 지금 양평에 삽니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수면 시간부터 체크했죠. 그제처럼 푹 자지는 못했지만 나쁘지 않은 성적입니다. 이만하면 이틀 연속으로 숙면을 취한 셈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누군가가 보내 준 '만남'에 관한 글을 읽었어요. 사별과 상실이 많은 제게 위로를 건네기 위함이겠지만 저보다는 메시지를 보낸 그에게 더 절실한 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통찰이란 결국 인간의 개별성을 얼마만큼 이해하는가에 달린 일이 아닌가 싶어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와 함께 말이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물을 한 잔 마시고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여섯 번째 읽는 중이죠. (일곱 번째인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는 보수적으로 체크하고 싶네요.) 오늘은 11장을 읽었습니다. 오후 특강 준비 탓인지, 쓸쓸함 탓인지 희열을 느끼며 읽진 못했습니다. 11장이 다소 약한(?) 챕터였는지도 모르죠. (아무렴! 정말 그럴지도요.) 가슴을 울린 구절이 없진 않았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라 막연한 단상을 글로 적어보았어요. (별도 포스팅으로 올려 볼게요.)


잠시 일어나 양말을 신고 두꺼운 니트를 걸쳤어요. 거실의 공기가 많이 차가워졌거든요. 창문을 닫기는 싫었고요. 몸은 따뜻하고 공기는 차가운, 이 양극의 조화가 정신을 맑게 하는 것 같아서요. 무엇이든 상반된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최상의 가치를 만들어내겠지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에도 크림 소스와 토마토 소스를 조화시키는 것처럼 말이죠. 방금 까치 한 마리가 테라스에 앉았어요. 작은 소리로 깟깟! 소곤대더니 이내 날아갔어요. 반가운 손님이 오려나요?


오후에는 강연이 있어요. 좋아하는 책방에서 불러준 강연이라 기분이 좋으면서도 '아무 일정 없이 하룻동안 집에서 뒹굴거리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실제로 아무런 일정이 없다면 '아, 외로운 하루구나' 하고 아쉬워할 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죠. 요즘의 제가 고독을 잘 즐기지 못해요. 스스로도 낯선 모습입니다. 혼자만의 시간은 제게 성취와 낭만의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실제 일정이 없다면 '오늘도 정말 외로울까?' 하는 물음이 드네요. 마음이 얼마나 나아졌나 궁금한 거죠. 


진솔함과 편안함을 좇아 생각나는 대로 끼적이다 보니 기분이 나아지네요. '한결' 달라진 건 아니지만 '쓰는 동안' 잠시 평온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나 같은 글쟁이는 이렇듯 '쓰는 동안' 온갖 보상을 받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쓰면서 자기를 만나고, 쓰는 동안 평온해지며, 쓰는 순간에 살아 있는 거죠. 상대적으로 글을 발표하지 않아도 되는 부류들입니다. 저는 아마 이런 부류에 속할 테고요. 이러한 성향이야말로 열 편에 가까운 책 원고를 투고하지 못한 채 끌어 안고 사는 근본적인 이유겠고요.


'가장 힘겨웠던 여름 날들을 이렇게 끼적이면서 살아야했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너무 늦진 않았겠지요. 제 삶이 다시 일상적인 궤도를 찾고, 제 마음이 다시 평온해지는 날까지, 다시 부지런히 '글이라도' 써 보렵니다. 나도 모르게 '글이라도' 라고 표현하게 되네요. 자조적인 기분이 자주 저를 휘감기 때문입니다. 책을 쓰기 위한 집필을 하지 않을 때에 종종 느끼는 기분입니다. 해결 방안이 또렷히 보이네요. 진솔한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책을 집필함으로 존재 이유에 다가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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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어젯밤엔 무려 7시간을 잤습니다. 최근 열흘 동안 2시간 넘게 잤던 날이 딱 하루 뿐이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아니, 7월 23일 이후로 이렇게 많이(7시간을 말함입니다) 잔 적이 처음입니다. 잠을 제대로 잔다는 것! 참 좋은 일이더군요. 눈이 개운했고 몸이 가벼웠습니다. 푸석했던 피부도 나아졌고요. 무엇보다 하루를 살 만큼의 신체적 에너지가 채워졌음을, 오늘을 보내는 동안 줄곧 몸으로 느꼈습니다. 


기뻤습니다. 마음이 회복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여전히 슬픔과 원통함이 남아 있으니까요. 숙면은 어젯밤에 먹었던 감기 약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몸살 기운이 있어서 약을 먹고 자연스레 잠들었거든요. 무엇 덕분인지 몰라도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저는 긴 잠을 잤고 덕분에 하루를 잘 살았으니 그걸로도 고맙고 만족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좋은 숙면으로 어젯밤의 일로만 치부하고 싶지도 않더군요.


어떻게 하면 오늘밤에도 단잠을 잘 수 있을까요?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3개월 내내 느껴왔습니다만 오늘은 또 다시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싶어진 날이었습니다. 운동을 했고, 세 끼를 건강하게 먹었고, 잠깐의 명상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하루를 감사함으로 돌아볼 생각입니다. 내일부터는 숙면에 관한 책도 읽을 테고요. (데이비드 랜들, 『잠의 사생활』입니다.)


몇 주 전부터 이 블로그를 가꾸고 싶어졌습니다. 지인들은 네이버 블로그를 해야 한다, SNS가 대세다, 브런치에 글을 쓰셔라 등의 말들을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저는 다시 이곳에서 마음을 담고 있네요. 예전만큼 블로그 운영에 열심을 내고 싶지만 출발은 가볍고 산뜻하게 하는 게 좋겠지요. 자주 진솔한 글들을 끼적이고, 댓글마다 정성스럽게 화답하기! 이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가볍게 시작하려 합니다.


계획을 내비친 김에 원대한 포부도 적어 봅니다. 수 개월 동안의 마음앓이에서 벗어나 명랑한 도전을 해보고도 싶거든요. 다시 열심히 책을 읽고(오늘은 미치도록 읽고 싶은 열 권의 책을 선정했죠), 와우 12기도 출범하려고요(11월 초에는 공지할 생각입니다). 건강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강연도 자주 해 볼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조만간 다음 책 집필에 돌입하여 신바람 나게 글을 쓰고 싶네요. 설레는 계획들입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가을밤... 버스커버스커의 <가을밤>을 듣습니다. 숙면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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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마흔이 되어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다. 왜 그런지 잘 몰랐다. 잠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흐릿한 밤이 며칠 계속되면 한 곳에 정신을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몸은 피곤에 전다. 긴 잠 속으로 죽은 듯 빠져들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쉽던 일이 더 이상 쉽지 않게 되었다.” - 구본형


분명치 않은 이유라고는 했지만 구 선생님은 ‘모호함’과 ‘불안’이라는 단어로 마흔의 불면을 회상했다. 불면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어느 정도는 불면을 즐겼다. 한밤중에 일어나 음악을 들었고 고독을 즐겼다(그때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때때로 미래를 구상했다(마음 속 가장 먼저 떠오른 모습이 저술가였다).


불면이라는 불청객을 창조의 시간으로 전환시키는 선생님의 모습은 부러움과 위로를 동시에 안긴다. 불면증이 안긴 극도의 피곤한 일상을 지내셨으리라 생각하니 일종의 동질감이 먼저 느껴졌다. 글로 표현된 선생님의 불면은 막연한 ‘불쾌감’이나 ‘불안감’이었지 극심한 고통이나 외로움은 아니었다. 같은 불면증 환자로서 그가 처한 불면의 등급(?)이 내심 부러웠다.


불면증에 등급이 있다면 수면의 양과 질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태도 감안해야 하리라. (내면의 힘겨움으로만 따지면) 고민으로 잠이 오지 않는 경우는 3등급, 불안으로 잠이 오지 않음은 2등급이 되겠다. 고통 때문에 잠이 달아났다면 1등급이다. 고민, 불안, 고통의 구분선이 명료하게 존재하진 않겠지만 내게는 선연하게 차이가 느껴지는 세 단어다.


심장이 뛰고 마음이 고통스러워서 밤을 꼬박 새거나 새벽에서야 잠깐 눈을 붙이는 일은 고역이다. 뜬 눈으로 푸르스름한 새벽을 맞이하는 날엔 하루 종일 몽롱하게 지내게 된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다가 정신을 놓친다. 내려야 할 지하철역을 지나치기 일쑤다. 거리를 걷는데도 줄음이 쏟아진다. 요즘의 내 일상이다. 불면의 밤들을 벌써 3개월째 보내고 있다.


잠을 달아나게 만든 고통과 날마다 동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고통스럽다. 불면의 원인은 두 가지다. 상실의 슬픔 그리고 원통함이다. 상실의 괴로움이야 여러 번 체험하며 알아(?) 왔지만 억울함을 안고 사는 일이 이리 고통스러운지 미처 몰랐다. 고통에서 헤어나려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매일같이 쓰러지고 패배한다. 하루하루가 링이고 나는 날마다 패하는 권투 선수다.


대개 두세 시에 깬다. 잠이 깨면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한다. 뒤척이다가 결국엔 일어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그때부터 미명이 밝아오기 전까지의 서너 시간이 힘들다. 불면으로 맞는 새벽은 괴롭기 짝이 없다. 몹시 피곤하여 몸을 누이지만 눈을 감으면 잠이 달아난다. 온 몸을 몽둥이로 맞은 것도 같고 온 몸이 경직되어 한없이 뒤틀리기도 한다.


아침이 밝아 의식이 깨어나면 몸의 통증도 얼마간 사라진다. 눈이 시리고 몸이 찌뿌듯하지만 새벽의 몸 상태에 비하면 한결 낫다. 다행하게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네 시간 이상을 잔다. 여러 날을 연속으로 4시간 이상씩 잤던 적도 3개월 중 두 번쯤 있었다. 이것이 전부다. 나머지 날들은 괴로운 불면의 밤들이었다. 그제도 어제도 그런 날이었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의식이 완전히 깨기 전에는 피곤에 전 몸이 따라주지 않고 의식이 깨어나면 마음이 도와주지 않는다. 몸은 불면으로 파김치처럼 시들어 있고 마음은 상실감과 원통함으로 쑥대밭이니까.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기란 아직 요원하다. 오늘 하루의 생존이 우선이다.


계획도 성찰도 무의미하다.

절실한 바람만 있을 뿐.


3개월 후 : 일상을 회복한다.

2개월 후 : 내 삶과 화해한다.

1개월 후 : 상실을 받아들인다.

오늘 :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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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행복하게 ‘사는’ 일은 만만치 않지만 행복을 ‘맛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내면에 가득한 슬픔에 침잠하는 대신 작지만 확실한 기쁨을 창조하면 된다. 상실과 고통이 무슨 의미인지 묻는 대신 서랍 하나를 열어 깨끗이 정리하고, 대충 온 몸에 물을 끼얹는 대신 뽀득뽀득 비누칠 샤워를 정성스레 하는 일은 내게 행복이다. 행복이 깃들면 그 기쁨의 감정을 잡아채어 잠시 음미한다. 맛난 디저트나 그윽한 차를 맛보듯이 온 몸의 감각을 열어 향유하는 것이다.


‘아! 좋다.’


내 안에 슬픔과 외로움이 가득한데도 하루에 한 번은 이렇게 기쁨을 만끽한다. 행복한 삶이라고 해서 눈물이 없지 않듯 힘들고 불행한 삶이라 해서 웃음이 없지 않다.


오늘 선택한 행복은 조식이다. 할 일이 많은 날이라 간편하게 아침을 먹을 법도 했지만 느긋하게 조식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조바심을 내려놓고 한 시간을 뚝 떼어냈다.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향유했다. 갖가지 야채와 계란 요리를 먹었다. 커피 세 잔을 마시며 하루키의 소품 세 편도 읽었다(단편집 『반딧불이』에 실린 <세 가지의 독일 환상>). 마지막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계획하고 나니 딱 한 시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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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울음을 참으며 3월을 지냈다. 4월 2일 어머니 기일이 되면 엄마 묘 앞에서 한 번 실컷 웃자고 생각하면서 나를 달랬다. 4월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 '한 번의 실컷'을 감행하지 못했다. 내 인생에 벌어진 일들을 직면하지 못하고 있다.

 

내게 필요하다 싶어 집어든 책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삶의 고통에 직면하라!" 조언을 좇고 싶은데도 견뎌낼 여력이 없다. 가슴이 미어져 책을 내려놓고 만다. 얼른 다시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렇다고 마냥 세월을 보낼 수도 없다. 


나에게는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픈 마음을 보다듬고 그녀를 축복하고 내 시선을 앞으로의 날들로 돌리는 리추얼의 시간이 절실하다. 매주 시도하지만 번번이 포기한다. 아직은 너무 아프다. 매주 기대를 품는다. '이번 주말엔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움과 담대함을 양손에 하나씩 움켜잡고 내 마음의 방을 두드려 봐야겠다. '상실의 방'이라 부르는 그 공간에는 슬픔, 아픔, 회한, 고통 그리고 한 움큼의 희망이 들어차 있다. 용기를 내어 본다. '똑똑. 나는 준비됐어. 마음아, 너는 어떠니?'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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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선생님은 벚꽃이 피고지던 무렵 떠나셨습니다. 5년 전 오늘입니다. 존경하던 분이라 여전히 마음 한켠엔 그리움과 아린 슬픔이 있네요. 오늘은 지난 기일들과는 달리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로 하루가 훌쩍 지났습니다. 오늘을 잊은 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저 바쁘게 보냈습니다. 수원으로 강연을 다녀왔고 저녁엔 사람들을 만났죠. 반쯤은 의도한 일정이었네요. 아직은 '상실'이라는 아픔을 직면하기가 두려워던 겁니다.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선생님의 책 한 장을 읽지 않고 사진 한 번 바라보지 않고 보낸 하루를 후회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겠네요. '오늘 하루를 아침부터 다시 산다면 선생님이 잠드신 곳으로 찾아뵐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내 선택을 후회하면서도 달리 선택할 힘은 없는 겁니다. 달갑지 않은 현실이지만 현실의 내 모습을 인정하자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내면 속 상실의 방을 지혜롭게 정리하고 명랑한 공간으로 가꾸고 싶은데··· 아직은 때가 아닌 건지 아니면 내 영혼이 연약한 건지 궁금합니다. 고통에 직면하자니 여전히 아픕니다. 일상이 멈출 만큼 힘겹습니다.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굳이 현자들의 목소리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외면, 기만, 엄살, 등은 모두 고통을 대하는 지혜로운 태도가 아니니까요. 우선은 두 자아로 살아보렵니다. 상실을 아파하는 자아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자아로 내 마음을 모두 살피는 겁니다.


머잖아 고통을 직면해야죠. 상실에서 깨우친 배움을 삶의 에너지로 전환시킬 날을 기대하면서 두 자아를 통합해야겠지요. 제가 기대하는 통합이란, (수잔 제퍼스의 말처럼) 상실의 경험을 오늘로 불러와 죽음과 이별을 삶의 재앙으로 여기지 않고 함께했던 시간들을 행복하게 추억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내 삶에 벌어진 슬픔과 화해하여 전보다 조금 그윽한 사람이 된다면 더없이 좋겠네요. 조급하진 않아야겠죠. 서두름은 영혼의 일을 다루는 도구로선 적절치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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