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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 Story/사랑하며 살아가며'에 해당되는 글 13건


1. 
티벳의 영적 스승 소걀 린포체의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를 읽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무엇을 행하든지 우리의 모든 행적은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해 줍니다.
모든 것, 그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감안됩니다."
(p.48)

나는 영적 스승도 한번씩 그릇된 말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지난 날의 과오 몇 가지는 제외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흐뭇한 일 몇 가지는 과중치가 부여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죽음의 순간, 내 모든 행적이 나의 평가에 반영된다는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관건인데
실제로 이 부분에서 포기를 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알려면 자신의 결점을 끄집어내서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자신에게서 그것이 발견되면 쓰레기통의 뚜껑을 덮듯이 닫아버리게 됩니다."
(여원재님)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어느 블로그 방문객이 남겨 주신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내가 쓰레기통의 뚜껑을 닫듯이 나의 과오를 외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신의 어두운 부분도 받아들여야 함에 깊이 공감했다.
내 안에는 영적 구루의 말을 부정하려는 마음도, 인정하려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2.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은 지혜와 영성이 담긴 놀라운 책이다.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인정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간디에서 히틀러까지, 모든 인물이 될 가능성이 숨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히틀러가 될 수 있는 면이 있음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부정적인 모습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부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자신은 결코 부정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할 리가 없다며
자신에게 잠재된 어두운 면을 완전히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큰 문제입니다.
자신에게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일단 인정하고 나면 노력으로 그것을 내보낼 수 있습니다." (p.26)


3.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에 힘을 얻고서야 
비로소 소걀 린포체가 던진 지혜로운 말들을 온전히 수긍하게 된다.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엘리자베스로부터 도전과 위로를 동시에 얻은 덕분일 게다.

죽음의 순간에 내 모든 행적이 나를 보여줄 것이라는 말을 거부했던 것은
나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인간의 양면성을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사람에 대해 믿음을 거둘까 봐 걱정해서다.

사람들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려 들지만
한 사람 안에도 좋은 면과 나쁜 섞여 있기에 보다 큰 지혜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을 우상화하지 않고, 나쁜 사람을 절대악으로 간주하는 않는 인간이해 말이다.

마틴 루터 킹의 여성 편력에 대한 실상을 알고 나서도 그의 업적을 존중할 수 있고
『악마』가 톨스토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상상하면서도 그를 존경할 수 있어야
사람의 양면성을 이해한다고, 그리고 사람이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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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내용이 가볍고 이것저것 짜집기해 놓은 게 많다는 이유로
일본 번역서를 읽지 않는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저 읽지 않으면 될 터인데, 짜증난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감정 표현이 진솔하다 생각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감정에 쉬이 휘둘리곤 했다.

그는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정신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보다 우위에 둔다. (철학용어로 관념론자다.)
실제의 세상은 정신과 물질로 구성되어 있고 사람은 둘 중 하나를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사람은 물질적인 것을 정신적인 것보다 우위에 둔다. (이는 유물론자다.)

관념론자는 물질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을 열등하게 본다.
경박하다고, 고상하지 못하다고 그래서 답답하다고.
유물론자는 정신적인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을 열등하게 본다. 
뜬 구름 잡지 말라고, 세상 물정 모른다고 그래서 답답하다고.

서로가 서로를 답답하다고 한다. 
정신과 물질의 조화로 이뤄진 것이 세상인데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만 해석하고 그것만 중요하게 여겨서 그렇다.

부부지간에는 각자가 정신중시와 물질중시 중 하나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남편이든 아내든 한 쪽은 현실적인 관점으로 가계를 운영한다. (물질중시)
너무 돈만 밝힌다, 고상하지 못하다는 핀잔을 듣지만 실제적인 가계를 책임지고 있다.
다른 한 쪽은 현실감각은 떨어지지만 가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정신중시)

오래 살아 온 부부는 안다. 처음에는 상대의 입장이 이해 안 되고 못마땅 했지만,
살다 보니 서로의 세계관이 상호 보완의 역할을 해 주고 있었음을.
물질을 중시한 쪽은 고상하진 않더라도, 집안 살림은 그로 인해 굴러간다.
정신을 중시한 쪽은 뜬 구름 잡는 소리를 하긴 하나 그의 낙관론은 삶의 해독제다.

일본의 실용서들도 물질 중시의 입장에서 보면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책들이 많다. 
내가 만난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관념론(정신중시)의 입장에서만 바라본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그가 추천했던 책들(몰입이나 티벳의 종교서적들)도 매주 좋은 책들이나
유물론(물질중시)의 입장에서는 모호하고 신비주의적이라는 평을 받게 될 수 있다.

요컨대, 세상은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통해 이뤄진다.
관념론은 인간이 마땅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데 탁월하다. 『논어』를 보라.
유물론은 실제로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통찰한다. 『군주론』을 보라.
관념론과 유물론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 지혜가 된다.

유물론자가 『논어』를 읽고서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관념론이 인류에게 주는 유익(이상적인 방향 제시)를 발견하게 되면 눈이 열린다.
관념론자가 『군주론』을 천박하다고 판단하지 않고 
유물론적 관점이 얼마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지를 발견하면 역시 눈이 열린다.

보이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사랑하게 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관념론자가 물질적인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리고 유물론자가 정신적인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한층 더 지혜로워질 것이고 자유로워질 것이다.

잘 이해하는 것을 증오하는 경우는 드물다.
몰라서 오해하고 오해하다 보니 멀리하게 된다.
어떤 것을 싫어하는 감정이 많아질수록 그것을 외면하고 매인다. 

많은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이다.

알지 못하는 대상을 사랑하기란 힘들다.
잘 보이지 않는 대상을 아는 것도 역시 힘들다.
문제는 우리가 많은 것을 보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보이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사랑(이해하고 존중)하게 될 텐데 말이다.

여기에 배움의 중요성이 있다. 배워야 보이고 알게 된다.
"널리 배우며 매일 자기에 대해 생각하고 살피면
앎이 밝아지고 행동에 허물이 없을 것이다." 학문에 힘쓰라는 순자의 당부다.
내가 날마다 배우려고 애쓰는 까닭은, 보게 되고 알게 되어 결국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것들을 사랑할수록 많은 자유를 누린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사랑하진 못하더라도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을 열등하게 보지는 말아야 한다.
내가 틀리지는 않더라도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지식에 마음을 열어두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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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고등학생 자녀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오늘 친구랑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갈께요." 먼저 엄마의 이성이 생각한다. '이녀석, 틀림없이 친구 집일꺼야.'라고. 이성을 따라 "정말 친구 집 맞아? 친구 한 번 바꿔 봐." 라고 말하는 순간, 자녀는 엄마가 자신을 믿지 않음을 느낀다.

이성은 '이 녀석 거짓말일꺼야'라고 생각하는 반면, 신뢰는 '사실일지도 몰라'라고 믿는 것이다. 누구나 이성과 신뢰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대부분은 이성을 선택한다. 신뢰보다는 이성이 더욱 그럴듯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성이 의혹을 제기한다면, 신뢰는 가능성을 믿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보다 가능성을 믿어주는 것이 더 긍정적인 결과를 부른다. 의혹 제기는 수사관에게 맡겨 두고 우리는 더욱 자주 신뢰를 선택해야 한다.

의심스러운 자녀의 말까지도 믿기로 선택한다면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믿기'가 안 되면 '믿어주기'라도, 믿어주기도 안 되면 '믿어보기'라도 한다. '믿어보기'는 마음엔 불신을 갖고 있더라도 믿는다는 말과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믿지 않기'보다 좋다.

심증을 갖고 계속 지켜보더라도 일단은 믿어보는 것이다. 믿어보기를 적극 권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믿지 않기'보다는 분명히 낫다. '믿어주기'나 '믿기(신뢰하기)'로 점진적 발전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신뢰가 중요한 까닭은 신뢰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제적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부모가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자녀는 엉뚱한 짓을 하려다가 관둘 수도 있다. 골치 아픈 녀석이라고 믿는다고 느낀 자녀는 더욱 골치 아픈 짓만 하려들 것이다.

신뢰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신뢰가 불확실성과 의혹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신뢰를 받는 사람들은 신뢰의 비이성적인 면모를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신비로운 힘에 이끌린다. 신뢰는 부모, 선생,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신뢰를 선택하다가 손해를 보거나 둘러가는 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신뢰를 선택하는 이들이 종종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리석다는 혹은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이다. 신뢰는 자기 이익을 계산하는 머리로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성장을 바라는 마음으로 얻는 것이다.

진정으로 누군가의 변화와 성장을 돕고 싶다면, 신뢰를 선택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신뢰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믿는 것임을 명심하자. 신뢰에 대한 보상은 자신이 믿은 것을 실제로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신뢰, 愛를 써서 추구할 만한 가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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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나는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다시 시작하자고도 말했습니다.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나의 말이 예전처럼 달콤하지 않다고. 그녀의 말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부탁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세 번이나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 3번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녀는 마음이 닫혔고, 나는 뒤늦게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나를 떠났다가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온 그녀의 진심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거절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거절한 원인은 지금도 잘 모르지만, 나는 다시 그녀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나를 떠난 후였습니다. 너무 늦게 부탁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여러 번 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방식은 아주 조심스럽게 정중했습니다. 약속도 없이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못 만나면 그냥 돌아오는 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나는 출간된 내 책을 들고 용기를 내어 다시 그녀 집 앞 지하철역에서 기다렸습니다.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 해의 첫 눈이 왔기 때문입니다. 추운 날, 밖에서 3시간 30분 정도를 기다린 듯 합니다. 눈은 그쳤고 그녀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지하철 막차를 타고 오는 귀갓길이 참 쓸쓸했었지요. 큰 우산을 들고, 긴 코트를 입고, 건네지 못한 책 한 권을 들고...

사람들은 확신이 있다면 아주 적극적으로 구애하라고 했습니다. 열번이고 스무 번이고 찾아가고 마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내 베필이라는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평생을 노력할 자신은 있었고,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방식은 여전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사귈 때에 많이도 마음을 아프게 해서, 헤어진 이후에 다시 그녀를 괴롭히기는 싫었습니다. 그녀가 괴로울지 은근히 기다릴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들 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서 완전히 돌아섰음을.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뒤돌아설 때에는 화끈하게 딱 잘라 돌아서는 그녀의 성정을.
 
이듬 해까지 나는 그녀를 잊지 못했습니다. 새해가 되자, 묵상집과 성경책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회사로 보냈으니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아직도 모릅니다. 그리고 화이트데이가 되었습니다. 동덕여대 강연이 있던 날이기도 했지요. 나는 꽃다발을 선물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함께 있던 동료와 헤어져 그녀의 회사 근처로 갔습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큰 꽃다발을 샀습니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 맞추어 그녀 회사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니 그녀가 나왔습니다. 길 건너편에 있다가 그녀 쪽으로 가려 했는데, 그녀가 활짝 웃더니 곧 어떤 남자를 만났습니다. 둘은 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남자의 차는 내가 서 있는 곳에 주차해 있었기에 둘은 내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보느라, 그리고 내가 비스듬하게 서 있었기에 나를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둘의 관계가 궁금했고, 어렵지 않게 연인이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 한 두 번은 보았던 장면입니다. 남자가 준비한 꽃다발을 손에서 턱, 하고 놓아버리는 장면, 하지만 나는 꽃다발을 꼬옥 붙들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놓칠 뻔 했고,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참 혼자 있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소주 한 잔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료를 다시 만나기로 하여 우리는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헤어진지 10개월이 되어서야 나는 이제 정말 놓아주어야 한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사실 마음이야 여러 번 먹었었지요. 내가 놓아주든 말든 이미 그녀는 저만치 멀리 떠나버리기도 했었지요. 놓아주겠다는 마음은 그녀에게 붙들려 있던 내 마음은 달래는 일이었습니다. 2년을 사귀고 헤어졌고, 10개월 동안 마음앓이하다가 우리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같은 나무에서 났지만 낙엽이 떨어지는 시간은 서로 다르듯이, 같은 사랑인데 서로에게서 마음이 떠난 것은 10개월이나 차이가 납니다. 끝까지 붙어 있는 마지막 잎새처럼, 나도 오랫동안 마음을 놓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그녀는 결혼한지 1년 반이 지났고,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슬픈 화이트데이 날에도,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들었던 날에도 나는 참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나도 마음 속에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하나를 품게 된 것입니다.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음도 절절히 받아들였습니다. 이별을 노래한 유행가사를 듣고 공감할 수 있는 사림이 되었습니다. 마음 아프지만, 인생의 일부를 진하게 체험한 것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한 번도 사랑으로 마음 아파 본 적이 없는 사람보다 열렬한 사랑 후에 죽도록 가슴 아파 본 사람의 영혼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시간은 모든 것을 치유합니다. 그녀의 아이 소식 들었을 때에는 먹먹함이 덜하였고, 전심으로 그녀를 축복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결혼할 때에도 멀리서나마 온 마음을 다해 축하했었지만, 약간의 먹먹함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별로 사랑은 맺습니다. 헤어짐이든 이혼이든 사별이든 끝은 항상 이별입니다. 이것이 삶입니다. 내가 가수라면 삶을 노래할 것입니다. 작가라면 삶에 대하여 쓸 것이고, 상담가라면 인생을 상담할 것입니다. 김광석의 노래가 듣고 싶고,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을 읽고 싶은 날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youniqu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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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대지진 소식을 접한 것은 금요일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섰더니 TV 아나운서는 끔찍한 뉴스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이고, 역사상 다섯 번째로 큰 지진이라는 말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이후, 등급이 격상되어 역사상 네 번째로 큰 지진으로 기록되었지요.) 뉴스 화면으로 참사 현장을 보고 있으려니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결국 눈물이 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한 자리라 마냥 뉴스를 보고 있을 순 없었지만(친구는 이미 뉴스를 모두 알고 있어서), 엄청난 참사 앞에 절망스러워 할 저들이 눈 앞에 어른거렸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고통과 힘겨움을 겪는다지만, 지금 일본인들이 느낄 엄청난 절망과 두려움을 누가 이해해 줄 수 있을까요? 모든 재산을 잃은 그들의 슬픔을 누가 만져줄까요? 아침에 인사를 하고 저녁에 다시 만날 줄만 알았던 가족과 영영 헤어진 이들의 고통은 어떡해야 할까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가족 분은 더 좋은 곳에 갔을 겁니다, 식의 
어설픈 위로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더 좋은 곳에 가면 무얼 합니까? 그 곳에 나는 없고, 이 곳에서는 그가 없는 걸요. 

TV 뉴스를 통해, 인터넷 기사를 통해 연일 보도되는 대지진 소식
대참사를 보며 밀려 오는 슬픔과 고통. 
그리고 흐르는 눈물.

슬픔 속에 잠기어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애통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일본을 보고 계신 걸까요?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참사 속에서 어찌 자신의 믿음을 이어갈수 있을까요? 이해못할 일은 무조건 덮어두는 식의 지적 자살을 자행하며 기도와 믿음으로만 밀고 나가는 것이 참 신앙은 아닐 진데 말입니다. 사회의 주요 이슈가 생길 때마다, 목사님들께서 주일 설교를 통해 성도의 신앙적 이해를 위해 (편향된 근본주의 같은 관점이 아닌) 성경적 관점으로 그 이슈를 다뤄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정말 그래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대에서 온갖 고문을 받았던 할머니가,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겨 일본을 위한 성금을 하였습니다. TV를 통해 그 장면을 보면서, 저것이야말로 세상을 살리는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용서의 힘 말입니다. 또한 공감의 힘이기도 하겠지요.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마치 자신의 정서처럼 느끼는 공감력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에게 힘을 주니까요.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배용준 10억, 김현중 1억, 류시원 2억, 박찬호 1억 4천, 박지성 1억 이렇게 스타들이 일본을 위해 기부하였습니다. 일본에서 벌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우리들입니다. 돈이 없을 때에는 쉬이 보였던 일도 실제 돈이 있으면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배은망덕'이라는 고사성어를 세상에 구현시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용서와 보은은 우리의 본성과는 거리가 먼 행동인지도 모르지요.

저네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일본에서 보낼 앞날을 감안한 기부면 또 어떻습니까. 우리가 행하는 대부분의 선행도 나의 유익이 깃들어 있는 것 아닌지요? 잘 나가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기가 쉽지, (선물에 대한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낮은) 고아와 과부에게 베풀기는 얼마나 어려운지요. 깊은 인격이란, 전혀 보상이 없는 일일지라도 기꺼이 행하는 힘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떤 선행에 진정성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따지는 그 시간에 실제로 선행을 하는 것을 포함해서요.

제 생각에 아직은 일본의 미래에 대하여 논할 때가 아닌 듯 합니다. 지금 저들이 당한 고통과 아픔을 함께 느끼고 아파하는 일이 더욱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들이 읽지도 못하는 네이버와 다음 게시판에 "힘 내세요" 올리는 것은, 어쩌면 저들을 위로하고 있다는 우리들만의 집단 기만 행위인지도 모릅니다. 모두가 애도하고 있으니 나도 동참한다는 식이니까요. 위로하려는 마음을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진짜 그들을 위로하는 것인지 물어보자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올리는 위로는 그들에게 전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면, 작은 돈이라도 성금을 하거나 일본인들의 메일 주소를 수집하여 영어나 일본어로 몇 마디의 위로를 전하는 것은 어떨까요? 짧은 몇 줄이라도 마음이 통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는 여행 중에 만난 일본인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물론, 저도 바쁜 일이 있지요. 하지만, 지금은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참혹스러운 일을, 우리 이웃 나라가 겪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어집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삶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며칠을 미뤄 온 이야기, 일본의 참사에 비하면 한없이 하찮은 나의 동네에 있는 개 이야기도 적어 보려 합니다.) 또한 나와 내 가족, 내 친구의 형편을 몰라라 해서는 안 되겠지요. 하지만, 이웃이 있기에 우리가 있고, 그들이 있기에 우리의 삶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의 일상을 꾸려가는 노력, 가족과 친구를 섬기려는 노력을 하다가 어느 때에는 이웃을 돌아보려는 노력도 하는 것이 좋은 삶이겠지요. 지금은 이웃의 범위를 동네, 지역, 나라에서 지구촌으로 확대해야 할 순간입니다. 민족주의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지구촌 의식이 필요할 때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2. 순항 중이던 희망적인 인생

- 불청객이 찾아들기 전의 날들 

독서와 음악감상, 이것이 그의 취미였다. 요즘에서야 누가 취미나 관심사를 물을 일도 없지만, 그도 한 때 대학생이었고 서너 번의 미팅을 했다. 처음 만난 남녀들은, 말수가 적어질 무렵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묻는다. "취미가 뭐예요?" 이것은 비장의 무기가 아니다. 이 말을 던진 자기도 무안해하며 후회하는, 어색한 침묵을 견디다 못해 꺼내 든 비운의 카드다. 그는 대답했다. 제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이라고. 이런 대답은 "난 취미 같은 거 안 키워요"라는 말보다 썰렁하고, "열심히 공부만 해서 취미는 없어요"라는 말보다는 센스없는 류다. 심심할 때면 누구나 한 번 즈음은 집에 있는 잡지를 뒤적여 봤을 터이고, 10대를 거쳐온 이라면 귀에 꽂은 이어폰 속 세상으로 빠져든 적도 있었을 것이다. 독서와 음악감상은 Everybody의 취미였고, 그러니 Nobody의 취미이기도 하다.

독서를 진짜 취미로 가진 이들에게는 억울할 일이다. 그도 억울한 경우에 속한다. 그의 집에는 책이 많다. 아니, 책'만' 있다. 서른이 넘은 그의 집에는 반듯한 가전제품이 하나 없고, 친구들은 이미 7~8년 전부터 소유하기 시작한 My Car도 없다. 5천여권의 책'만'이 그의 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책값으로 만만치 않은 비용을 썼으니 다른 것들을 구입할 여력도 없었다. 집은 작은 도서관 같다. 도서관에는 책장과 책상 그리고 책이 있을 뿐이다. 책을 읽는 이를 위한 냉난방 기구와 복사기 외에는 다른 것들이 없다. 그의 집도 마찬가지다. 5천여권의 책 외에는 냉난방 기구와 옷장 하나 뿐이다. 집을 나선 그는 BMW를 타고 다닌다. Bus와 Metro를 타거나 Walking을 애용한다는 말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이동시간을 독서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의 취미는 독서다. 대학 시절에는 수도 없이 서점과 도서관을 드나들었고, 어딜 가나 책을 들고 가며 틈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처음 몇 년간은 독서노트를 작성했고, 언젠가부터는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리뷰를 쓰기도 했다. 독서를 통해 조금씩 생각이 깊어지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쌓일 무렵부터 그에게는 독서 이외의 또 하나의 취미가 생겼다. 메모! 알게 된 모든 지식을 체계화하고 싶은 욕망이 그로 끊임없이 메모하게 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볼펜을 들고, 책의 여백에 메모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단상들을 적어 노트북에 파일별로 정리해두기도 했다. 물론 아직 자신의 메모를 통합할 만한 사고의 틀을 갖지는 못했지만, 언젠가는 수많은 메모들이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도록 노트북에 폴더별로 잘 저장해 두었다. 그는 그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 포부를 가진 것이다. 그가 읽는 책의 분야는 다양했다. 뉴턴인가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관심사를 묻는 질문지에 "Everything"이라고 썼다는데, 그는 이 이야기 좋아했다. 자신의 관심사를 묻는 질문에 종종 그 이름 모를 과학자의 일화를 들곤 했다.

그는 자신이 독서를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하여 독서를 주제로 한 책도 여러 권 읽었다. 살아 있는 지식을 좋아했기에, 책을 읽은 후에는 책의 내용이 실제 자신의 독서 생활에 도움을 주는지 직접 적용해 보았다. 그가 훗날 마르크스의 유명한 포이어바흐의 열 한 번째 테제,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일"이란 말을 좋아한 것은 당연하다. 자신을 이해하고 세계를 해석하는 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세계를 변혁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식을 중요하게 여겼다. 어느 날, "당신의 독서 생활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책들은 무엇입니까?"라는 메일을 받은 그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지적 생활의 방법』, 『북 by 북』, 『생각을 넓혀 주는 독서법』, 『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의 5권의 책을 소개하며 한 권, 한 권에 대해 소갯말을 덧붙여 회신해 주었다. 그는 자신의 독서 생활에 진지한 사람이었다.

그가 이런 질문 메일을 받은 까닭은 웹진으로 독서 칼럼을 썼고, 자신의 독서 생활을 담은 한 권의 책을 출간했기 때문이다. 취미삼아 시작한 독서 생활이 오랫동안 축적되어 책 출간, 독서 강연회로 이어졌으니, "나이 취미는 독서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된 것이다. 올해로 그는 첫 책을 낸지 벌써 삼년이 지났고, 그 동안에도 그의 독서와 메모는 계속 쌓였다. 그의 강점은 방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정보 더듬이다. 예능 프로그램 만큼이나 다큐멘터리르 좋아한다. QOOK TV를 신청한 후로, 원하는 시간에 양질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일은 그가 식사 시간이나 휴식 시간에 하는 일이다. 집필하고 있는 책의 주제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필요한 자료를 워드로 정리하는 것은 그의 일과 중 하나다.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자신이 즐거워서 시작한 독서와 메모 그리고 자료 정리는 다행스럽게도 그의 직업이 될 만큼 조금씩 실력이 되어왔다.

책을 좋아하는 그였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즐거워했다. 특히, 자신이 배운 것을 잘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강연으로, 글로 공유하는 일에서 기쁨을 느꼈다. 20대 초반을 보내면서 그는 기업교육 강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틈이 날 때마다 읽고 배운 것을 파워포인트로 교육 자료를 만들었다. 노력의 결과로, 혹은 사람들의 소개로 그는 여러 번의 강연 기회를 맞았고 그 때마다 강연을 즐겼다. 청중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술을 마시는 것과 비슷했다. 어떤 날은 매우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어떤 날엔 머리가 아플 정도로 괴롭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까지 속이 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그가 실력 있는 강사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강연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의 강연 자료도 탄탄해져갔고, 강연 경험도 다양해져갔다. 무엇보다 즐거워하는 일이니 아주 오랫동안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강연도 그를 키워 주었지만, 결정적으로 그를 성장시킨 것은 20대 중반에 시작한 작은 모임이었다.

<와우팀>이라 불리는 모임은 매년 10명 이내의 사람들을 모집한다. 강연을 통해, 블로그를 통해, 책을 통해 그를 알게 된 불특정 소수의 사람들 중 1년 동안 '자기발견'을 위해 함께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은 일년짜리 <와우> 과정에 지원한다. 그는 10명의 성실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같은 책을 읽고, 긴 시간의 수업시간을 통해 발표하고 토론하며 자신의 고유성과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공부한다. 그는 그 수업에 온 마음을 다해 참여한다. 자신이 구성한 커리큘럼이지만, 자신이 가장 많이 배우는 것이다. 8년째 진행해 온 경험과 커리큘럼, 그리고 모임 때마다 기록하고 정리해 둔 깨달음을 정리하여 2011년에는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내심, 첫 책보다 훌륭한 책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미 책의 목차와 대부분의 글들은 완료된 상태다. 몇몇 기업에서 책의 내용으로 워크숍으로 진행한 결과도 좋았다. 책상에서 고민한 내용들과 현장에서 검증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사례가 곁들여졌으니 기대할 만한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책이란, 바쁘게 현장을 뛰어다니면서도 책상 앞에서 진득하게 연구할 줄 아는 사람들이 써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야 살아 펄떡이면서도 깊이가 있는 책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책을 낼 만한 삶을 살려고, 그는 노력하고 있었다.

그의 열심있는 삶을 좋아해서인지, 블로그의 글들에 공명해서인지 아니면 책이나 강연으로 만난 인연 때문인지 사람들은 종종 그에게 메일을 보낸다. 자문을 구하는 메일도 있다. 그는 자신을 찾아 준 이들에게 고마움이 느껴져 시간을 내어 정성스럽게 회신한다.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그다. 착하다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의 어려움을 도우려는 성정이라는 말이다. 아줌마들의 오지랖을 닮기도 했다. 누군가와 정성스럽게 주고 받은 메일은 그것 자체로도 소통의 기쁨이 있었지만, 메일 내용이 그의 지적 자산이 되었다.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자신도 생각지 못한 것들에 대해 깨닫거나 좋은 표현을 발견하기도 했다. 매일 60~9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이지만, 메일 회신은 그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즐거움이었고, 종종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꿈으로 한 방향 정렬된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필요한 일은 자신의 일상을 개편하는 일이다. 2011년, 그는 일상의 개혁을 단행했다. 지난 해까지는 항상 꿈 따로 삶 따로였던 삶이었다. 책을 내겠다고 하면서도, 독서 생활은 즉흥적이었다. 출간할 책과는 관련없더라도 그때그때 자신의 흥미에 맞는 책이면 즉흥적으로 선택으로 독서했다. 새해가 되면서 이런 습관을 내던졌다. 한 해 동안 어떤 책을 출간할 것인지 꼼꼼히 따졌고, 출간할 책을 위해 어떤 책을 읽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계획했다. 그렇게 일년 독서계획을 세우는데 대여섯시간을 할애했다. 신중하게 계획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접한 덕분이었다.

2011년은 승부를 걸 시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인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이 더욱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서, 경영서들을 조금씩 읽어왔지만, 요즘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다. 더 늦기 전에 지금까지 공부하고, 읽어오고, 써 왔던 자기경영에 관한 지식들을 책으로 묶어야 했다. 지금을 놓치면 쓰지 못하게 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2년부터는 동양고전과 역사학을 깊이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2011년은 매우 희망적으로 보였다. 새해의 일상 개편을 위해 지난 해 11월부터 준비해 온 것 핸드폰 없애기, 일상을 단순화하기, 목표에 집중하기 등이 주효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불청객의 등장은 갑작스러웠고,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과연 불청객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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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풍전야
- 어느 기분 좋은 하루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일주일 내내 괴로웠던 그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신의 일터인 카페로 돌아간 날, 세상은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엔 질퍽했던 길바닥 위에도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가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원하듯이 눈송이는 더욱 도톰해졌다. 새하얀 도화지에는 어떤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으니까. 집을 나서기 전, 사내는 샤워를 했다. 여느 때보다 오랜 시간 동안 비누거품을 내어 온 몸의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는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빠짐없이 거품을 보내며 생각했다. 지금은 나를 괴롭혔던 가공할 만한 공허감과 무력감을 씻어 내리는 중이라고.

정확히 6일 전, 사내는 자신이 지금 앉아서 창 밖의 눈을 바라보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즐겁게 일을 마무리했다. 1월의 어느 월요일이었다. 월요일마다 일단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발송한 후, 점심 식사는 파리바게뜨에서 오믈렛을 주문하여 먹었다. 오믈렛을 먹으며 캐나다 여행에서 자주 오믈렜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캐나다 뿐만 아니라, 20여개 나라를 여행했다. 여행 때마다 여행 기록과 깨달음을 기록해 두었다. 언젠가 여행에 관한 책을 낼 때, 긴요하게 쓸 사진도 많이 찍어 두었다. 사내는 그렇게 오믈렛을 먹으며 북미의 어느 식당에서의 식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 있을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

식사 후에는 양평군 양서면으로 가서 서너 시간 발품을 팔았다. 새로 이사할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도시에서만 자란 사내에게 시골의 집들은 지저분했다. 신축이 아니면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중개인이 소개해 준 3개의 매물은 사내에게 이상과 현실의 조율을 요구했다. 사내는 여전히 20대의 원대한 포부를 가졌지만, 꿈의 실현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란 걸 알 만한 나이였다. 서른이 넘었으니까. 서른은 현실을 직시하는 눈이 형성되는 나이다. 서른을 넘긴 덕분에 그는 마지막으로 소개 받은, 한적한 시골 마음에 위치한 집이 마음에 들자,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이 집으로 하겠습니다. 부동산 중개인이 받아쳤다. 화끈하시네요. 세 번째 중개인이 소개해 준 첫 집이니, 그에게는 네 번째 본 집이지만, 중개인에게는 첫번째 집이었다. 결정 후, 사내는 자신의 과단에 뿌듯해하면서도 너무 빨리 결정한 것 아닐까, 하며 살짝 불안해하기도 하며 용산행 중앙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래도 중요한 일 하나를 끝냈다는 청량감이 컸다.

시간만 나면, 2011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계획해 왔던 사내는 수첩을 펼쳐 들고 이사에 따른 삶의 변화를 따져가며 자신의 비즈니스 구상을 다듬어나갔다. 자리에 앉자, 머릿속에 정리된 노트북을 열어 파일로 저장했다. 그러다가 무슨 까닭에서인지 노트북 화면이 멈추어 버렸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화면을 닫았다. 화면을 닫으면 자동 대기 모드로 바뀌는 노트북이기에 집에 가서 확인해 볼 요량이었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수첩을 다시 펼쳐 들어 구상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뭔가 많은 일을 한 듯 뿌듯함이 느껴지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퇴근시간이 지났는지 지하철에는 직장인 차림의 사람들이 많아졌다.

저녁 약속은 어느 청년을 만나는 일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자기 동생이 요즘 방황을 하고 있으니 한 번 만나달라고 하여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 청년에 대한 소개를 들어 보니, 허황된 기대를 가질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사람은 사람으로 변한다. 허나, 단 한 번의 식사 교제 만으로 그의 모든 절망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방황 청년은 그럴 허항된 기대를 할 성정이 아님을, 약속을 정하는 메일을 주고 받으며 알았던 것이다.

기적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것이 한번씩 일어난다는 점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 허황된 일이 그 날, 일어났다. 방황 청년도 오늘 그저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왔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식사 후, 카페에서 100여분 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놀랍도롭 변하였다. 눈빛은 반짝 빛났으며,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온 몸에 활력이 넘쳤다. 그를 만난 것은 매우 기쁘고 자신에게는 큰 행운이라고, 방황 청년이 말했다.

사실, 방황 청년은 이미 방황을 끝낸 후였다. 다만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모를 뿐이었다. 청년은 어떤 하소연이나 환경 탓을 하지도 않았다. 지난 날의 과오와 방황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자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대오각성 없는 다짐은 하루 이틀 꿈틀대다가 사그러진다. 방황 청년은 크게 뉘우친 흔적이 역력했다. 청년은 자신의 앞날을 긍정하기도 했다. 청년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듣고 있는 그는 방황 청년의 앞날을 기대했다. 청년에게는 새로운 삶을 열고자 하는 뜨거운 욕망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에게서 대오각성, 자신감, 욕망을 확인한 그는 구체적인 지침을 이야기해 주었고, 청년은 그가 제시한 일련의 지침에 감명을 받은 듯 했다. 이제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청년과의 만남이 매우 잘 진행되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흥얼거리며 샤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잠시 후 자신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새해가 되어 굉장한 생산성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가, 하나의 사건 때문에 며칠 동안 잠 못드는 날을 보내게 될 줄은, 무얼 해야 할지 몰라 하루 종일 TV 예능 프로만 연이어 쳐다보게 될 줄은, 전화 한 통을 받고서는 자기도 모르게 초조해다가 결국 흐느끼게 될 줄은 정말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종종, 도무지 예상하지 못할 일이 일어난다. 불청객은, "오늘 오후 2시 40분, 내가 당신을 찾아갈 거요. 그렇고 알고 계쇼"라는 언질 없이 불쑥 찾아오는 법이다. 그래서 인생이요, 그래서 불청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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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혼식에 가면 경건해지고 숙연해집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그 날부터 가정을 이루어 '한 집'에서 산다고 하니 경험하지 못한 저로서는 마냥 신기하기도 합니다. 경건과 숙연함이 저를 찾아드는 까닭은 삶을 살아가며 맞이하는 장면들 중 결혼식은 가장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고맙습니다.
사람 많은 자리에 가기 싫어하는 내 성향을 이겨 내 준 스스로에게 말입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져서 시선을 의식해 참석하는 일은 없으니까요. 부작용도 있지요. 마음을 끌리지 않으면 여지없이 그만 둔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 속에 축하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이 대견합니다.
사랑받고 싶은 바로 그때 누군가에게 사랑을 기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주변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이 사랑을 체험하는 비결임을, 결혼식 때마다 축하의 기도를 드리며 새삼 깨닫습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니 경쟁자로 생각해야 할 이유도 전혀 없겠지요.

더 많은 경조사에 참여하지 못한 지난 날들이 아쉽습니다.
회사 동료의 결혼식, 교회 친구들의 결혼식, 아는 지인의 부친상 등 알면서도 가지 못한 적이 많으니까요. 물론, 대부분 다른 일정과 겹치어 참석하지 못한 것이지만, 축하나 위로의 마음을 전하거나 봉투조차 건네지 못한 적도 많습니다. 얇은 지갑 때문이었다면, 그저 정성스러운 마음만으로 참석해도 될 터인데, (있지도 않은) 내 체면을 생각하느라 몸을 움직이지 않은 적도 있었네요.

살면서 알게 되어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에게
도리를 다하는 2011년이 되도록 愛써야겠습니다. 그간 내 삶만을 돌보고, 나의 앞날 만을 생각하느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무심했습니다. 때로는 어떤 이를 향한 나의 마음이 무심하지 않은데, 표현하기에 게으르다 보니, 나를 무심한 이로 생각하기도 하더군요. '꼭 연락을 해야 마음을 아나? 나는 매일 생각하고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야속할 때도 있지만, 표현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을 알기란 힘들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마음을 돌려 먹습니다.

소통하고, 축하하고, 마음을 나누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나의 이미지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침묵이나 무반응은 누군가의 마음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낼 수도 있으니까요.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그런 일을 많이 저질러 왔는지도 모르지요. 새해가 되었으니 조금이라도 선한 사람이 되고자, 달력을 펼쳐 들어 소중한 이들의 생일과 기념일을 체크해 두었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 감사나 축하 인사를 전할 날짜를 확인해 두었습니다. 나는 보다 친절한 사람, 보다 정겨운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섬기며 삽시다. 축하하며 삽시다. 사랑하며 삽시다.
우리는 삶의 어떤 시간을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하지만, 행복도, 자기경영도, 자유도 우리가 '사회적 존재'임을 깊이 인식할 때 얻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친밀함은 2011년 와우팀의 비전입니다. 일년 후의 비전이지만, 친밀함이란 하루 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와우카페에도 올려 두었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축하하며 사랑하며 살아야지요. ^^

CCM 중에 <꿈이 있는 자유>란 그룹이 있습니다. 많은 기독 청년들이 좋아하는 남성 듀엣입니다. 저도 좋아하지요. 이 글을 쓰는 동안 그들의 '하연이에게'라는 곡이 떠오르네요. 가사를 기억나는 대로 적으며 글을 맺습니다. 부끄럽지만, 고백해 봅니다. 제 블로그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 사랑합니다~! 필레오1)의 사랑을!


하연이에게

우리가 간직해야 할 소중한 것 있다면
내 삶을 누군가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것
약하고 어리석은 나 자신을 본다 해도
그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으며
비교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가꿔가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 분을 믿으며
외로운 사람들 품에 안아줄 수 있도록
우리 맘 속에 소중한 것은 간직하며 살아요
삶에 지친 사람들 찾아와 쉬어가도록
우리 맘 속에 누군가의 자리 남겨두며 살아요
사랑하며 살아요


1) 헬라어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가 정교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을 에로스, 우정 같은 사랑을 필레오,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을 스톨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가페라고 표현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려니 부끄러워 괜히 이렇게 주절주절 설명하게 되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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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여행 라라라>를 시청하다가
유희열과 김장훈이 <토이>의 '그럴 때마다'를 불렀다.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 노래방에서 내가 이 노래를 부르면 퍽이나 행복해했던 그녀.

오늘 서랍 정리를 하다가 영수증 몇 장을 발견했다.
헤어지기 전날과 헤어졌던 날에 함께 밥을 먹었던 식당의 영수증이다.
2년 8개월 동안 간직했던 영수증을 바라보다가 잠시 멍하니 회상에 잠겼다.

그녀는 곧 결혼한다...

오랫동안 넘어져 있던 나도 곧 일어설 것이다.
'그럴 때마다'의 가사를 마음으로 따라 읽으며
그녀의 행복과 가족의 건강을 빌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가 선물해 주었던 인형을 내다 버렸다.

별다른 생각 없이 가지고 있었고
그걸 볼 때마다 그녀를 떠올린 것도 아니었지만,
더 이상 그립지 않은 추억까지도 간직하는 성향을 지닌 나지만,
무언가 달라지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주 오래 넘어져 있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나는 서 있을 때보다
넘어져 있을 때 지혜에 더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넘어질 때마다 무언가를 주워서 일어나서 그런가 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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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사랑에 관한 추억.
스무 한 살 청년과 스무 살 숙녀의 사랑 이야기.
선명히 기억나는 세 가지 장면.
변진섭의 <숙녀에게>라는 곡이 떠오르는 날에.

#1. 즉흥 여행
어느 날, 선물이 있다며 나에게 하루를 비우라더니
가까운 바다로 놀러 갈 당일치기 여행 계획과 거금 2만원을 쥐고 나온 그녀.
여행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녀의 사랑은 넉넉하고 귀여웠다.
그렇게 떠난 즉흥 여행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종종 생각나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날, 바다로 떠났는지 다른 곳으로 갔는지는 가물가물 하지만,
즉흥 여행을 떠나고자 계획한 그녀의 사랑과 거금을 준비한 정성은 선명하다. 
눈물나게 사랑스러웠고 고마웠기에.

#2. 이별을 날려 버린 포옹
나를 무척이나 아껴 주었고 진하게도 사랑해 주었던 그녀.
그녀 집 앞에서 다투고 난 후, 헤어지자는 나의 말에 그녀는 알았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난, 그녀 집 앞을 쉽게 떠나오지 못했고 몇 분 동안 주변을 서성이다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에 도착하기 전, 집에서나 입을 법한 옷차림으로 주먹 꼬옥 쥐고 걸어가는 그녀를 만났다.

어디 가니? 오빠한테. (멈칫했다) 옷이나 입고 나오지 그랬어? 오빠 가 버리면 영영 못만날까 봐.
그 말에 감동해 안아 주려 했더니 그녀의 작은 주먹에 무언가가 쥐여 있었다. 900원어치의 동전이다.
이건 뭐니? 오빠 집으로 가는 지하철비. 이것 뿐이야? 응.
날 못 만나면 어케 돌아와? 그냥 오빠 만날 때까지 오빠 집 앞에서 기다리려고 했지. (뭉클했다)
그녀를 꼬옥 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수십 분 전의 헤어짐을 포옹으로 취소했다.

#3. 사랑스런 "오빠, 오빠"
오빠, 오빠.
그녀는 나를 이렇게 두 번씩 불렀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하기 위해서란다.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자기는 이미 나에게는 여느 여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인데...

그녀와 난 종종 우리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도서관에 가기 위해 자주 만나던 골목 어귀가 있다.
가난했던 스무 살 무렵의 연인은 이렇게 카페가 아닌 길거리에서 만났다.

길거리에서의 만남에는, 먼 발치에서 걸어오는 연인의 모습을 설렘으로 바라보는 낭만이 있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녀는 아주 예쁜 걸음으로 총총, 엇박자 리듬에 맞춰 걷는 듯 뛰어온다.
그리고는 품에 안겨 나를 부른다. 오빠 오빠.
그 사랑스런 표정이 오늘 문득, 떠올랐다.

*

다시 이렇게 사랑하고 싶다.
2만원으로 즉흥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넉넉한 마음과 삶의 여유로 한 여인을 사랑하고 싶다.
900원을 쥐고 헤어질 위기의 연인을 찾아 나서는 그 순수함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두근거리는 떨림과 구름 같은 낭만으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2년 전, 헤어진 연인이 순수한 사랑의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며
다시 한 번 내 안에 동화 같은 마음과 순수한 사랑을 불어넣는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감상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렇듯 사랑으로 살고프다.

나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조건과 배경으로 사랑을 가늠질하고 사람을 평가할까 봐 덜컥 겁이 나는 날이다.
세월이 가져다 주는 것들 중에서 지혜로움만을 쏘옥 취하고
현실주의로 가장한 속물 근성은 단연코 거부해야 할 텐데...
세상 일이 내 뜻대로만은 되지 않으니, 나는 선한 싸움을 계속 싸워야만 할 것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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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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