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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를 만났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친구다. 교보문고에서 만나 가까운 카페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나는 그를 만나기 직전에 어떤 아주머니로부터 받아 든 광고 전단지를 D에게 건네 주었다. 녀석이 내게 물었다. "이게 뭐니?" 일단 질문을 이끌어냈으니, 성공적인 장난이었다. 나는 히죽거리며 대답했다. "쓰레기."

"역시, 쓰레기통에서는 쓰레기가 나오는군. 어이구! 이 쓰레기통 같은 놈."
녀석은 나를 짓밟는 유머를 했다. 쓰레기통에서는 쓰레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투로 던진 녀석의 말은 무지 웃겼다. D는 덧붙였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지. 속에 가득 찬 것이 밖으로 나오게 마련이라고." 나는 정말, 웃겨 죽는 줄 알았다.

2.
D는 전도사님이다. 그도 교회에서는 점잖은 전도사님이겠지. 나도 와우스토리연구소에는 폼 잡는 선생이다. 하지만 우리도 친구지간으로 만나면 유치하고 짖궂은 장난을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된다. D가 이 말을 들으면 바로 대꾸할테지. "이 자식이 돌았나? 너 혼자 유치한거지. 나까지 끌어들이고 난리네." 그러면 나는 또 한바탕 배를 잡으며 웃을 것이다.

3.
카페에서는 자뭇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평소에 궁금했던 이것저것에 대해 물었다. 사본학, 칼 바르트의 신학, 『야곱』이라는 책의 탁월함 등 우리의 대화 주제는 꽤 깊었다. (대화 내용은 얕았다.) D는 이제 막 3년차에 접어든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간단히 끝났지만,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배우자와 함께 살아가는 것의 힘겨움 혹은 한 사람이 얼마나 복합적인 면모를 지녔는지에 대한 말이었다.
"결혼 첫해에 아내를 조금 안다고 생각했는데, 둘째 해가 되니까 새로운 면이 또 나타나더라고. 올해는 또 다른 면이 나타났지. 정말 놀라워." 여기까지는 해도 나는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야 '함께 행복하게 살기'의 어려움이 진하게 전해졌다. "결혼 전의 모습은 정말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빙산의 일각."

나는 플래너를 꺼내 '빙산의 일각'이라는 다섯 글자를 적으며 생각했다. '일각'의 경험만으로 배우자를 선택해야 하는 일은 다행인 걸까? (그렇지 않으면 결혼을 못할 테니까) 불행한 걸까? (결혼한 후에 빙산을 발견하며 당황할 테니까) '빙산'까지 안다고 생각하며 결혼할 수많은 커플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들은 사랑의 힘으로 선견지명을 발휘한 것일까? 아니면 사랑에 눈이 멀어버렸기에 결혼에 성공한 것일까?


4.
D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곰돌이 푸우 인형이었다. 가방에 왠 푸우? 정말 예측못할 전도사님이다. 요즘 인형뽑기가 취미란다. 동전을 놓고 갈고리 모양의 걸개를 전후좌우로 조정하여 인형을 건져 올리는 기계 말이다. "내 카톡 사진 못 봤어?" D가 묻길래, 얼른 카톡에 등록된 그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을 보고 웃었다. 인형이 소파를 점령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모두 자기가 뽑은 인형이란다. D가 사진 밑에 적어 둔 글귀를 보고 또 한 번 웃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소파에 충만!"


5.
D와 나는 매우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배움의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의 만남은 인생의 활력소다. 우정이 중요한 까닭이다. 우정을 만드는데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는 깊은 우정을 쌓거나 속깊은 대화를 나누기가 거의 불가능함을. 존 오트버그는 이런 말을 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우정, 부모 자식 간의 사랑, 부부애 등을 전자레인지에 음식 데우듯 즉석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6.
물론 30분의 시간으로도 충분히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이 곧 우정이나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정과 사랑 모두 속깊은 대화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 즈음에서 D에게 아쉬운 점이 생긴다. 우리는 고작 2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생각해 보니, 지난 만남도 
2시간만을 함께 했었다. 그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마시길. 우리는 친.한. 친구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D도 나처럼 인생의 여유를 만끽하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라고.'

할 일은 많고 세상 돌아가는 속도는 엄청 빠르다 보니 풍류를 즐기는 법을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는 공부도 해야 하고(아직 신학생이다), 사역도 해야 하고(전도사님이니), 아내와의 시간도 가져야 한다(그녀는 함께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나도 해야 할 일은 늘 넘쳐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정을 쌓는 일에 시간을 듬뿍 주기란 쉽지 않다. 좋은 삶, 균형 있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노력할 때마다 삶이 조금씩 나아진다는 사실이 참 좋다.

7.
봄에 만날 때에는 3시간 동안 이야기나누자고 말했다. 알겠단다. 나는 또 쓰레기 같은 걸 준비할지도 모르겠다. 녀석을 골탕먹일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매번 기막힌 반격을 주는 녀석은 설교 준비는 안 하고,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농담 연습을 하는 것은 아닐까? 참 좋은, 재밌는, 고마운 친구다. 그에게 <목회와 신학> 정기구독을 신청해 주었다. 마음은 3년짜리이지만, 1년치 밖에 하지 못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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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휴일 오후, 양평 서재의 책장을 정리했다. 책장 정리는 즐겁다. 읽고 싶은 책을 꿈꾸는 시간이고, 읽은 책을 확인하며 되새기는 시간이기에 그렇다. 책기둥을 살피다가 밀란 쿤데라의 『향수』를 발견했다. '어? 밀란 쿤데라의 책이 여기에 있었구나.' 별 일 아닌데, 반가웠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말고도 한 권 더 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몰랐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와 글자로는 같은 제목이지만, 서로 다른 의미의 단어라는 사실은, 책 뒤표지의 글귀를 통해서야 알았다. 쿤데라의 '향수'는 Perfume이 아니라, Nostalgia이었다. 파트리크의 『향수』는 읽었으니, 언젠가 밀란 군데라의 『향수』도 읽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뒤표지의 글을 읽었다.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이다. 괴로움은 '알고스'이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탤지어'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생긴 괴로움이다. 향수는 무지(ignorance)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무엇이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잃어버린 유년기 또는 첫사랑에 대한 욕망."

잡힐 듯하지만 잡히지 않는 안개 같은 글귀였다. 이해될 듯 하면서도 아리송한 느낌. '밀란 쿤데라'라는 이름이 반가워 『향수』를 뽑아 들고 책장을 드르르륵 넘겨 보다가, 깜짝 놀랐다. 책의 곳곳에 밑줄이 그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책을 읽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었다. 군데군데 쓰인 메모는 내 필체가 분명했으니까.

2.
분명히 읽었는데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책이 있다는 사실은 상쾌한 충격이다. 읽은 책을 꽤 잘 기억하는 편이지만,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왠지 모르게 기분도 좋다. 삶의 어떤 진실을 만난 느낌이다.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모두 기억할 수 없다는. 그리고 읽은 책의 내용은커녕 책의 목록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는.

3.
얼마 전, 비전과 목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강사의 강연을 들었다. 긴 강연이 끝나고 자신의 이야기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사의 사례도 30분 가까이 진행되었다. 강사는 열정적이었고, 명석했다. 많은 도전을 감행했고, 하나의 도전이 성공에 이르지 못할 때에는 다시 시도할 만큼 자신감과 열의가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후,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지금의 그를 만든 힘은 비전과 목표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기지식 그리고 새로운 분야에도 거침없이 도전하는 하는 자신감과 도전정신이다.'

그가 비전과 목표를 신중하게 세우기도 했다. 그가 20대 중반에 작성한, 무려 6페이지에 달하는 인생 로드맵은 감동적이었다. 로드맵은 그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인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성공요인을 모두 설명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비전에 대해 공부하고 나면 자기 삶을 들여다 보며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내 삶에도 비전이 큰 역할을 해 주었군.' 하지만 그가 실행력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실행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한다. 우리는 어떤 주제를 인식하고 나서야 그것의 유용성을 깨닫게 된다. 그날 만난 강사는 아직까지 비전과 목표에 대한 책만을 읽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4. 
우리가 무엇 덕분에 성공하고 성장했는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책, 어떤 만남, 어떤 사건이 우리를 크게 도왔을 수도 있다. 심지어는 결정적인 도움이었음에도 우리가 그것을 잊었을 수도 있다. 『향수』를 읽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나처럼 말이다.

5.
기둥 사이에서 『당신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을 어디서 얻는가』를 본 순간, 나는 옛 추억으로 빠져들었다. 무엇 때문에 힘겨워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책을 읽었을 당시의 나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을 찾고 있었다. 아래와 같은 구절에 밑줄을 쳐 둔 것을 보니 희망과 꿈을 찾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시련이 크고 고통이 심하더라도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그 어떤 것에도 질 필요가 없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당신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삶은 아름다운 경험이 될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의 시련을 기회로, 비극을 승리로, 상처를 행복으로, 분노를 봉사로, 실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20대 초반, 나는 "여전히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말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래서 밑줄을 그었는지, 당시의 내가 어떤 힘겨움에 허덕거리고 있었기에 감동이 되어 그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내가 20대 초반부터, 위로를 안겨다 주는 책, 마음의 힘을 키워주는 책, 누군가를 이해하거나 용서하도록 도와주는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을 어디서 얻는가』,『눈물이 나도록 용서하라』,『부서진 영혼을 고치는 공구상자』,『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등을 읽었으니 말이다. 어떤 책은 끝까지 읽어냈고, 어떤 책은 중간 정도까지만 밑줄 그어진 것도 있었다. 어떤 페이지에는 긴 메모가 있었다. 메모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모든 힘듦을 이겨내고 다시 결심하자."

6.
자신이 읽어 온 책들을 살펴보면, 그간의 지적 성장과 자기 영혼에 일어났던 일들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내가 만약 예전보다 영혼의 힘이 강해졌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강인한 영혼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꾸준히 읽어왔으니까. 

7.
하지만 나는 내가 읽어온 책들을 잊고 있었다. 눈물 나도록 용서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유익과 변화를 안겨다 주었는지는 세심하게 살펴보지 못했다. 내 영혼의 부서진 곳을 고칠 수 있는 공구를 찾아나섰던 날들도 내가 읽은 책들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잊고 있었다.

나의 성공 경험을 말할 때가 있다면 성실한 관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핵심 성공 요인을 모를 수 있다. 혹은 성공 요인을 전달한다고 해도 불충분한 수준으로 말하게 될 수도 있다.

밀란 쿤데라의 『향수』로부터 시작된, 과거의 독서 회상은 휴일 오후를 즐기는 나를 잔잔한 감상에 젖게 했다. 자신의 책장을 살펴보는 일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유익하다. 향수를 불러 일으켜 진한 감상을 느끼게 하고,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며 자기 발견의 기회와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옛 시절을 그리면서 느껴지는 애잔한 아픔 정도는 견딜만한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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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한 장의 포스터를 보자마자 마음의 동요가 일었다. 포스터의 풍광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언덕에 계단식으로 들어선 주택들, 그 사이로 난 도로는 내 앞까지 뻗어 있다. 짧은 스커트의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철도 건널목이 "이 곳은 일본"임을 말하고 있다. 나는 저 거리를 거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 
사실 하나 : 짧은 스커트의 교복은 종종 어른들의 성적 상상력에 불을 지핀다.
사실 둘 : 나도 어른이다.
두 가지의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또 다른 두 가지의 사실 때문이다.
사실 셋 : 대부분의 여중생들은 (어른들의 응큼함과 달리) 순수하다.
사실 넷 : 나도 어렸을 땐 순수했지만 지금은 그것을 잃어버렸다. 

순수함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영화 <박하사탕>에서 영호의 부르짖음이 떠오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

3.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읽었다. 주인공 가즈코는 열다섯 여중생이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즈음, 나도 중학생이 된 듯 했다. 소설 속에 흠뻑 젖어든 것이다. 그리고서 저 포스터를 보았다. 유난히도 짧은 스커트의 학생을 바라보는데도, 나는 순수함만을 느끼었다. 이 때, 나는 성장소설, 청소년소설, 어른을 위한 동화를 자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음란물과 야한 가십거리와는 더욱 멀어져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문득, 정채봉 선생은 나보다 훨씬 맑고 순수한 마음을 지녔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어른을 위한 동화를 쓰는 작가다.)

4. 
짧은 스커트의 소녀, 그 뒤로 보이는 건널목 그리고 조밀하게 붙어 있는 건물들은 내가 상상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이었다. 나의 상상이 얼마나 실제의 일본과 일치하는지는 모른다. 상상은 대중매체 혹은 내가 본 몇 편의 영화가 준 이미지일 것이다. 설사 직접 내가 일본으로 날아간다고 해도, 내 상상 속의 일본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정말로 날아가서 거리를 거닐며 이렇게라도 말해보고 싶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그저 상상 속에서 노니는게 더 나았을거야"

하지만 일본에 대해 잘 알 것 같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나의 상상이 일본과 일치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그의 대답을 일본으로 가야 한다는 표지로 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그저 내 마음을 따를 뿐, 나의 행동에 그럴듯한 이유를 끌어모을 생각은 없다.

5. 
C는 종종 말했다. 태국이 참 좋다고. 다시 가고 싶은 나라 1순위라고. 내가 물었다. 지금까지 어느어느 나라 가보았냐고. 그녀는 태국 뿐이라고 수줍어하며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혹은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태국이 세계 최고의 여행지 같다고. 적어도 서너 군데는 다녀오고서 그렇게 표현하는 게 어떠냐고.

지금은 그 말이 괜히 미안하다. 누구나 체험한 것 이상을 그리워하기는 힘들 테니까. 나에게는 중국이 항상 가보고 싶은 나라에 포함된다. 십년 전에 38일 동안이나 배낭여행을 하며 중국의 여러 도시를 주유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추억이 나를 강하게 유혹하는 것이리라. 그녀에게 태국이 그렇듯이.

6.
경험은 중요하다. 어렸을 때의 경험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인식하고, 갈망하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의 경험이 온통 슬프고 불행한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경험'보다 더욱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모든 과거를 뛰어넘을 수 있다. 어제의 나와 결별하겠다는 뜻을 품고 새로운 결단을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행동하면 된다.

7.
우리가 체험한 것만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다. 가진 적도 없고, 체험한 적도 없더라도 어떤 것을 그리워할 수 있다. 하지만 가져본 적, 체험한 적이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은 희미하다. 그리움의 실체도 분명하지 않을 테니까, 이런 그리움은 이내 지워져 버릴 것이다.

8.
그래서 우리에게 상상력이 주어졌을 것이다. 마치 체험한 것처럼 구체적이고 분명한 이미지로 상상하는 힘 말이다. 인생의 진짜 위기는 자원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상상력이 부족할 때 찾아오는지도 모른다. 저명한 사람들은 종종 지식보다 상상력을 강조했다.

9.
무엇이 상상력을 키울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을 읽으면 도움이 될까? (잘 모르겠으니 읽어보아야겠다.) 그 책을 읽지 않아도 한 가지의 답변을 분명히 내놓을 수 있다. 소설! 상상력의 사전적 정의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힘"이다. 나는 지금 일본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덕분이다.

소설, 더 정확하게는 이야기는 우리의 상상력을 키운다. 영화도 이야기고, 소설도 이야기다. 이야기는 마치 체험한 것처럼 분명한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서를 간접체험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이처럼 한 사람에게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는 일이 한 권의 책을 통해서도 일어난다. 한 권의 책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종종 변화의 시발점이 되기는 했다.

9.
팔라우, 독일, 오스트리아, 중국, 브라질은 다시 가고 싶은 나라들이다. 미국, 인도, 이탈리아는 가보지 못했지만 가고 싶은 나라들이다. 지금까지 일본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다. 오사카에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인상적이지 못했고, 나는 일본 문화에는 무관심했다. 일본어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이 모든 일에 반전이 생겼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읽고서 포스터 한 장을 본 이후로. 우리는 종종 상상하는 것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10.
한참동안 플래너를 골똘히 쳐다보았다. 일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3박 4일 동안의 여유시간을 찾기 위해서. 2월 중에는 없었다. 강연과 세미나 일정이 많았다. 와우들을 만나는 일정도 여러 날이었다. 뭐가 이렇게 바쁘담? 좀처럼 하지 않는 약속 변경을 한다면, 가능한 일정이 있나 살펴 보기도 했다. 하나의 약속만 취소하면 3박 4일을 뺄 수 있는 일정이 있었지만 바로 전후로 강연이 있어서 무리일 것 같다.

3월달 플래너를 펼쳐두었다. 3월은 집중 집필 기간인데... 아! 한 권의 책이 고민까지 안겨 주었다. 오늘의 일본 단상과 그리움은, 절반 정도가 책의 힘일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내게 다가온 호기심을 힘껏 끌어안으려는 실천의지 덕분일 것이다. 내가『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나오는 타임리프(시간도약)이나 텔레포테이션(신체이동)을 할 수 있다면, 고민은 사라질 텐데! 오늘 잠시 일본에 다녀오면 될 테니까. 호호. 즐거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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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나는 한없이 어리석다가도 종종 지혜로울 때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 '사람도 인생도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매우 지혜롭다가도 한참 어리석어지는 나.

때로는 참 명쾌하다가도 때로는 한없이 불확실해지는 인생.


나의 의식은 맑고 밝은 것을 좋아하지만,

마음은 마치 파도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을 출렁입니다.

의식과는 별도로 내 마음이 동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지나친 욕심과 불필요한 생각에 마음을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생각의 집입니다. 좋은 생각이 머물게 하면

마음은 평온하고 고요한 집으로 바뀌어 갑니다.

정돈하지 못하고 주의하지 않으면

마음은 집착과 싫음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집착과 싫어함으로는

마음의 평온을 느낄 수 없습니다.

결과를 컨트롤하려 할 때마다, 욕심을 끌어안을 때마다

평정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 까닭입니다.


마음이 바다라면 생각은 파도입니다.

하루에도 끊임없이 밀고 당김을 반복하는 생각은

파도처럼 그저 왔다 갔다 할 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락가락 하는 생각에 휘둘리지 않은 때 깊은 바다와 같은 고요한 마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엔 항상 두 마리의 늑대가 있습니다.

한 마리는 욕심과 두려움이 가득하고, 한 마리는 따뜻하고 정직합니다.

어떤 늑대가 이길까요? 우리가 먹이를 주는 놈이 이길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를 기울임으로 원하는 쪽을 키울 수 있습니다.

염려, 불안, 두려움 대신 신뢰, 평안, 용기를 키우시기 바랍니다.

원치 않는 생각이 찾아들면 그저 마음을 거쳐 지나가도록 놓아두십시오.

생각은 바람 같은 것이니까요. 오직 마음 속에 들이고 싶은 것만 들이십시오.


주의를 기울여 마음 속의 생각들을 살펴 보세요.

윌리엄 제임스는 "내 경험은 내가 주의를 기울이기로 동의한 것이다.

오직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만이 내 정신을 구성한다"고 말했습니다.

주의를 기울이면 누구나 마음의 평온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절대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하지 못하겠다고 물러나지도 마십시오.

고승이나 우리나 근본은 하나되, 서로 다른 것을 꾸준히 키워왔을 뿐입니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반드시 먼저 뜻부터 확고히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마음을 지키겠다고 결심하세요.

"어찌 선사들만이 마음의 평온을 누리는가.

나도 일체의 혼돈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겠다."

키와 외모는 바꿀 수 없지만, 마음은 바꿀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중요한 일을 앞두었다면, 여러분의 마음에게 조용한 시간을 주십시오.

이런저런 생각들로 인해 마음은 지쳐있을 테니 말입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마음을 쉬게 하십시오.

바람처럼 지나가는 생각으로 마음을 괴롭히지 마세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며 자유하세요.

"모든 일의 결과는 나의 그릇대로 지어질 것이다.

바람처럼 왔다갈 생각에 미혹되지 말고

그저 나의 그릇을 더욱 키워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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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화성시의 한 연수원에서 진행된 워크숍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 전화가 두 통 왔다. 발신인 이름이 뜨지 않는, 모르는 번호였다. 받지 않았다. 어쩌면, 아는 사람의 번호일지도 모른다. 아이폰을 구입하면서 예전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던 전화번호를 옮기지 않았으니까. 가족과 소수의 친구 그리고 와우 연구원들의 번호만 옮겼다. 그리고 변화경영연구소 동문회장이 된 후, 연구원들의 전화번호를 저장했을 뿐이다.

집에 도착하니,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소식 들었어?" 불길하다. "B 어머니께서 오늘 소천하셨대." 내일 장례식장에 가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의 10년을 어머니께 드리고 싶다"던 내 친구 B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http://www.yesmydream.net/1414) 모르는 사람의 전화는 아마도 비보를 전하려던 중요한 전화였던 것 같다. 소식을 전해 준 친구에게 고맙다. 그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고마웠다.

1. 병원 가는 사람들

장례식장은 연세 세브란스 병원이었다. 신촌역 1번 출구 계단을 올랐다. 지상으로 오르기도 전에 나는 줄을 서야 했다.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바로는, 셔틀버스는 5분 만에 한 대씩 온다. 난 생각했다. '그렇게 병원 가는 사람들이 많나?' 많았다. 그리고 셔틀버스는 정말 5분 만에 왔다. 사실, 내가 탄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다음 버스가 와 있었다.

35명 정도 되는 승객 중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운전 기사분에게 묻는다. "늘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기사분은 친절했다. 여러 가지 설명을 해 준다. 많지요. 아프신 분들, 면회가는 분들, 협력업체 관계자 분들, 뭐 다양한 사람들이 타니까요. 내가 빠졌다. 나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조문가는 사람들도 있다. 셔틀은 몇 대예요? 승객이 다시 물었다. 6대요, 경북궁역으로 가는 셔틀도 있습니다. (연세 세브란스로 가는 셔틀은 신촌역, 경북궁역 두 군데서 출발한다.)

병원 본관 앞에 도착했다. 건물 안에도, 건물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내게, 그 누구도 생로병사의 인생사를 피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태어났고 늙어가고 있지만(노화는 25세 이후로 시작된다), 병으로 고생하고 있지 않으니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병동에 있는 이들은 창 밖의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할까? 우리는 몸이 쇠약할 때, 비로소 평범한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본다.

걸어다니는 사람들 중에 병동 속의 사람들처럼 길 가의 꽃을 신비롭게 바라보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순간, 겨울의 찬 바람이 매우 신선한 공기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장례식장으로 걸어가고 있다. 오늘은 객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저 공간의 주인이 되어 누군가를 맞이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6개월짜리 시한부 인생, 다른 이는 30년 짜리 시한부 인생.

2. (주체에게는) 가장 외로운 길

인간이라면 종종 (혹은 자주)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겠지만,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는 우리의 외로움을 다독여 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달랠 수 없는 게 있다. 죽음 말이다. 죽음은 그야말로 외로운 길이다. 홀로 가야 하는 길이다. 마지막 인사로 배웅할 수는 있을지라도 그리고 신의 환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죽음으로 가는 그 길은 아무도 동행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에피쿠로스는, 죽음은 경험 바깥에 있는 것이므로 삶에 있어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죽음은 가장 두려운 악이지만,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아니다. 왜나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분명 죽음을 앞둔 존재이지만,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에피쿠로스의 교훈이다. 에피쿠로스는 감각적 쾌락을 강조한 점 때문에 많은 오해를 받았지만, 그것은 정말 오해였다. 그는 삶의 향유를 권장한 것이지, 물질과 정신의 균형이나 절제를 불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정작 에피쿠로스의 삶은 모범적이라 할 만큼 자제심이 있었다고 한다.(한스 요하임 슈퇴리히)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위로를 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느라 삶의 향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일시적인 동요에 빠지긴 하지만 결국엔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6개월 뒤에 죽는다는 사실이 오늘의 삶을 방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제어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친구의 어머니도 그러했고, 2011년 연말에 1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강영우 선생도 그러시다. 

사람들은 죽음을 더디게 맞이하려고 안간 힘을 쓴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지금 여기의 삶을 향유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다. 한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고통을 멈추기 하기 위해서다. 그런 선택까지 하도록 만든 절망스러운 상황이 한스럽고 슬프다. 에피쿠로스는, 현자들이 죽음을 대하는 방식을 소개한다. 우리들과 정반대다.

"사람들은 죽음을 가장 큰 악이라고 생각해서 두려워하다가도, 죽음이 인생의 악을 중지시켜 준다고 생각해서 죽음을 열망하기도 한다. 반면, 현자는 삶을 도피하려고 하지도 않고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삶이 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삶의 부재를 악으로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는 경우처럼, 현자는 단순히 긴 삶이 아니라 가장 즐거운 삶을 향유하려고 노력한다."

3. (타자에게는) 가장 슬픈 일

17호실 입구에는 친구 어머니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차분하지만 환하신 표정이다. 생전에 뵈었던 그 모습, 하지만 생애 마지막 2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 (어머님은 2년 전에 뇌줄중으로 쓰러지셨다.) 처음으로 B의 집에 놀러가셨을 때에는 어머님께서 반겨 주셨고, 신앙 생활 열심히 하라고 덕담도 해 주셨다. 그 때의 어머님 모습이 떠올라 덜컥 눈물이 나려 했다. 나는 잠시 복도에 있는 의자에 앉아 진정해야 했다.

나는 슬펐다. 지하철 신촌역에 내렸을 때, 영정 사진을 뵐 때, 마지막 인사를 올릴 때, 친구로부터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들을 때 슬펐다. "임종하셨던 모습을 좀 들려줘." 이미 여러 번 고비를 맞으셨기에 가족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사별에 비하면 이것은 축복이다. 당황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인과 작별 인사를 했다는 점에서.) 친구가 들려준 말은 이러했다.

토요일에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위독하시다고. 다음 주를 넘기시기 힘들 것 같다고. 토요일 밤 가족이 모였다. 그 날과 일요일은 잘 넘기셨다. 월요일에 집에 씻으러 왔는데, 오후 3시 쯤 다시 연락이 왔다. 오늘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고. 가족이 모였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는 어머니께서 우리의 말을 다 들으셨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 5시 30분에 영원히 잠드셨다.  

"어머니가 대학원 시험을 기다려 주신 것 같아. 토요일 시험을 치자마자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으니까. 어머니께서 만약 토요일 이전에 돌아가셨으면 시험 못 치고 휴학했을지도 몰라." 어머니는 가시는 길에서마저 아들의 안녕을 돌보셨다. 조문 오셨던 한 분은 이 말에, 당신의 아버지도 모든 자녀를 만나고 난 후에 돌아가셨다고 거들었다.

내 친구네는 신앙인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해 온 터라 죽음을 초연히 맞이했지만, 일상을 살다 문득 어머니의 부재를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가족과의 사별은 슬프다. 사별 당시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슬픔을 느끼지 않던 사람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 때의 멍했던 감정이 슬픔이었음을 알고 뒤늦게 통곡하기도 한다. 자, 나는 이 즈음에서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던 에피쿠로스의 말에 부분적인 반대 의견을 내놓고 싶다.

죽음에 관한 에피쿠로스의 모든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을 맞이한 당사자의 입장만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죽음은 충격이고 슬픔이고 때로는 상처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란, 잠시 시간 내어 현금을 넣은 봉투를 들고 조문을 다녀오는 일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죽음은 충격과 슬픔이다.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그렇다.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고 난 이후, 두 번을 찾아 뵈었다. 죽음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기에는,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기 전의 집안 분위기와 너무 많이 달라졌다. 반겨주셨던 어머니는 안면이 마비되어 표정이 없으셨고, 휠체어에 앉아 거동도 전혀 못하셨다.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어야 할 집안은 약간 어수선했다. 가족들이 오직 어머니의 건강을 돌보느라 그럴 수 밖에 없었으리라.  

죽음은 외로운 길이지만, 에피쿠로스의 지혜를 쫓아 아무 것도 아닌 일로 만들 여지는 있다. 죽음의 주체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친밀한' 타자에게는 가장 슬프고 충격적인 일이다. 또한 삶의 이런 저런 변화를 불러오는 사건이다. 오늘 밤, 다시 조문하러 가서 2년 동안 부모님께 효심을 다한 친구에게 수고했다고 전하려 한다. 그리고 침묵으로 위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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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과 실제 자기는 다를 수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일꺼야' 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의 나'를 가장 자주 발견하는 현장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곳이다. 누군가의 실제 모습을 알고 싶다면, 그의 말이 아니라 관계적 삶을 보면 된다. 우리는 책상 앞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어떤 강사의 지식을 알고 싶다면 그가 강연장에서 하는 말에 경청하면 되지만, 그의 실제 모습을 알고 싶다면 강연장 밖에서의 삶을 보아야 한다. 성공과 성품을 강의하는 어느 강사가 사내에서 젊은 여직원에게 험한 말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의 말과 삶이 그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말은 그에게 지식이 있음을, 삶은 그의 행동이 비인격적임을.

말과 삶이 다를 수 있듯이, 생각하는 자신과 실제의 자신이 다를 수 있다. 그 괴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특히 연애할 때의 자신을 들여다 보면 된다. 밀접한 관계는 자기 존재가 훤히 드러나는 곳이다. 낯선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모습도 우리의 일부이고, 가족이나 연인에게 곧잘 짜증내는 모습도 우리의 일부다.

나도 연애해 본 적이 있다. 만나서 데이트하고 뽀뽀하고 함께 밥 먹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은 참 괴롭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 때문에 싸우고, 서로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서 오해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느라 화해를 외면하였던 괴로운 날들을 보냈다. 싸움 자체도 괴로웠지만, 실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도 괴로움이었다.

실제의 나는,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달랐다. 내 생각만큼 고상하지도 인격적이지도 않았다. 내 생각이 더 옳다고 주장하기 일쑤였고, 얼어죽어야 할 '멋'을 위해 여자 친구에게 상처를 준 일도 있다. 서른이 넘어서부터 좀 더 나은 연인이 된 것은, 20대의 10년 동안 연애를 하면서 나의 진짜 모습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정했다. 실제의 나는 내 생각만큼 멋지지도, 인격적이지도, 살갑지도 않음을. 그렇다고 해서 추하고 비인격적이고 냉소적인 것만 내 안에 가득한 것은 아니다.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 적절히 섞여 있다는 말이고, 중요한 것은 '생각 속의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극을 내가 인식했다는 점이다.

인정한 이후로는, 내가 오늘 행한 말과 행동이 오늘 나의 실제 모습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인식의 전환이었고, 진짜 나와의 대면이었다. '나 정도면 괜찮지' 라는 착각에서 벗어났고, 생각 대로 살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탓하지도 않게 되었다. '실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은 처음이 어려울 뿐, 받아들이고 나면 자유로워진다.

'생각 속의 나'에서 벗어나 '실제의 나'를 살펴 보라. 아내에게, 부하 직원에게, 친구에게, 자녀에게 오늘 한 말과 행동이 곧 '오늘의 나'다. '생각 속의 나'는 언젠가 그렇게 해야지, 하는 미래의 모습일 뿐이다. '생각 속의 나'에게 함몰되어 있으면, 사랑과 친절을 실천하지 못했으면서도 인격적으로 행동했다고 착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

'실제의 나'를 인식하면, 다른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착각 속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대화가 시작된다. 자기 행동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다른 이들의 말에 경청하는 사람이 대화를 잘 하기 마련이니까. '실제의 나'를 만나는 것은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길이다.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필요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생각들은 대개 '미래의 나'에 대해 말해 줄 뿐, '현재의 나'는 오늘 내가 한 행동과 관련이 있었다. 결국, 자기 경영도 오늘의 나를 바꾸어가는 활동이다. 나를 바꾸어가는 첫걸음이 실제의 나를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인생 수업을 통해 자기를 알아가는 백년학생이다.

생각 속의 나 그리고 실제의 나. 괴리가 있어도 괜찮다. 괴리를 모른 채 살아왔지만 우리에게는 친구가 있고, 누군가는 우리를 사랑해 주었다. 오늘 글로 인해 괴로움이나 부담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지금도 괜찮은 우리지만, 두 가지의 나 사이에 있는 괴리를 좁혀간다면 더욱 성숙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달라진 우리를 더욱 좋아해 줄 것이다.

[실천을 위한 조언]

1. 자기를 아는 지식(self knowledge)은 우리의 일상에 실용적인 의미를 지닌다. 자기 지식이 삶에 유익이 된다는 사실부터 믿어야 한다. 우리의 집중력은 낮다. 확고히 믿는 일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오랫동안 주지 못한다. 수긍하지 않은 일에 노력을 기울일 확률은 낮다. 그러니 자기 지식의 효용성에 대해 신뢰하기 바란다. 인식을 바꾸어야 행동이 바뀐다.
 
2. 자기지식을 얻으려면, 두 가지 접근을 취해야 한다. 하나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며 감정과 생각을 성찰하는 것이다.(성찰) 다른 하나는 밖으로 드러난 자기 행동과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다.(관찰) 성찰과 관찰은 모두 자기반성적 활동이고, 우리에겐 둘 다 필요하다. 그러니 둘의 조화가 중요하다. 오늘 글은 관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3. 관찰은 내가 행한 행동과 그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 친구와의 내일 약속을 미루게 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여자 친구가 '필요 이상'으로 서운해 한다고 가정하자. '필요 이상'은 당신의 느낌인데, 이것이 정당한 느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서 관찰과 성찰을 발휘해야 한다. 

'그의 반응'을 살피고  '나의 행동'을 돌아보라는 말이다. 그의 반응은 서운함이다. '필요 이상'의 서운함이라 생각하기 전에 나의 행동도 살펴야 한다. 약속 연기가 불가피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매주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는 위기라면 이것은 위기가 아니다. 미리 예방하고 사태를 준비하면 되니까. 습관적으로 야근했거나, 약속을 자주 미루는 편이라면 이 역시 자신의 무책임을 인정해야 할 일이다.

물론 그녀가 독립적이지 못하여 지나치게 남자 친구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이번엔 정말 피치 못할 긴급 업무일 수도 있고, 전혀 예상 못한 회사 일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진짜 위기이거나 긴급 상황인데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필요 이상'의 아쉬움이라는 당신의 느낌은 옳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행동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여자 친구의 불만이 정당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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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대학 교수가 세상에 던지는 아름다운 작별 인사였다. 책은 (죽음과 인생을 다루면서도) 유머와 재치가 넘쳤고,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지혜로 가득했다. 그의 메시지에 감동하여, 당시 내가 책을 읽었던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마지막 강의』 리뷰 http://www.yesmydream.net/289)

스티브 잡스는 '기술이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공헌'이 무엇인지, 그 공헌이 얼마나 위력적인지를 보여 주었다. 말로 '가르치기' 보다는 삶으로 '보여' 주였다. 내게 스티브 잡스는 매우 실천적인 사람, 행동하는 사람이다. IT에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도 그의 두꺼운 자서전을 읽어보려는 까닭이다. 나도 행동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의 염원을 뒤로 하고, 랜디 포시는 2008년 7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스티브 잡스 역시 자신의 병을 더 이상 이겨내지 못했다. 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모두 췌장암이었다. 췌장암이 새삼 얄미워지는 것은 방금 전에 본 기사 때문이다. <강영우 박사 "허락된 시간 많지 않아">라는 기사, 왠지 불길한 예감으로 클릭했다.

나는 7~8년 전, 박사님의 책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를 읽었다. 세세한 내용이 기억나는 것은 아니나, 감동과 울림을 받았던 기억은 선명하다. 이후로도, 줄곧 박사님의 성함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시각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박사님 삶의 행보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어려움이 없었던 게 아니라, 어려움도 훌쩍 넘어서는 인격의 소유자였으리라.

기사는 박사님이 췌장암 진단을 받았음을 전해 주었다. 어느 정도 직감했지만, 놀랐던 것은 고작 "한달 여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료진의 말 때문이다.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 받은 삶을 살아 온 제가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 받아 감사하다"는 장문의 메일을 신문을 통해 지인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몇몇 유명 인사의 죽음 앞에 설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안타까움(더욱 오래 사셔서 인류에 공헌해 주었으면 하는)이고, 그리고 이내 나는 경건한 열망(공헌과 기쁨의 조화를 누리며 살고자 하는)을 품게 된다. 열망인데도 들뜸의 감정이 아니다. 언젠가 이루게 된 날을 상상하면서 흥분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일을 가늠하면서 차분해지는 것이다.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게 된다면 삶은 갑자기 놀라운 것으로 보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로버트 프루스트의 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사할 때 이와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다. 5년 동안 살던 역삼동을 떠날 때, 그제서야 나는 선릉공원이 주는 청량함과 문명의 이기들, 그리고 편리한 교통 환경이 절실하게 고마웠다. 가까운 사람이나 유명인의 사망 소식을 들을 때에도 이런 감정을 경험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느낌은 살아가는 방식을 바꿀 만큼은 강력하지 않다. 하루가 지나면 다시 일상적인 심정과 생각으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프루스트는 "우리가 삶을 사랑하기 위해 대재난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우리는 인간이니 오늘 저녁 죽음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테니까요"라고 말하지만, 나는 죽음을 자기 삶에 진지하게 적용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러지 못한다.

인간은 필멸성(必滅性)을 지닌 존재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불멸성을 믿으며 살아간다. 이런 깨달음을 파스칼의 『팡세』를 읽으며 배웠는데, 참 귀한 배움이다. 죽음이란 주제는 현재의 삶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힘에 대해 사색하고 싶다면, 파스칼의 잠언집도 좋지만,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이 좀 더 재밌고 읽기에도 수월할 것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사실은, 강영우 박사님의 갑작스러운 췌장암 소식이 아니다. 그런 소식이 언제라도 내게 해당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살고 싶다. 나의 친구에게도 혹은 나의 가족에게도 말이다. 불안에 떠는 염세주의로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필멸성을 믿는다는 것이 염세주의로 직결되는 일은 아니다. 

나는 이사를 떠나기 직전만이 아니라, 살고 있는 동안에도 '지금 이 곳'의 귀함을 누리고 싶고,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을 때' 뿐만 아니라 비교적 충분할 때에도 삶에 대한 열렬한 애착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강영우 박사님은 삶을 귀히 여기는 열정으로 평생을 사셨으리라. 일찍 깨닫고, 그 깨달음 대로 살려고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종종 유명한 분들의 죽음 소식을 듣지만, 실은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무명씨들이 자신의 생과 작별하는 것이 세상사다. 언젠가는 내게도 그 시간이 다가올 것이다. 그때, 나는 무엇을 자랑스러워하고 무엇을 아쉬워할까? 죽음이란 단어 앞에 정직하게 서면, 내게 참으로 소중한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방치되어 있던 내 가치관과 꿈들이 선명히 드러난다.

그러면 나는 다짐하게 된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일을 갈무리하고,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사랑을 나누고 도전하며 살자고. 위인들이라고 하여 죽음 앞에 마냥 의연하지만은 않겠지만, 인류를 사랑했다면 우리에게 이런 기대도 가질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나는 자신을 추모하며 슬퍼하기보다는,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에 헌신하여 세상에 공헌하기를.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나의 세계 속 사람들에게 따뜻한 공헌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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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네요, 늘 많이 읽지 않으세요? 라고 마음 속으로 묻는 분이 계실지 몰라 설명을 덧붙인다. 여기, "오늘은 날이 밝았다" 라는 문장이 있다. 어떤 느낌인가? 새삼스럽지 않다. 그래서 어색하다. 날은 '오늘'만이 아니라, 매일 밝아오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가 매일 어둠 속에 살았다고 한다면? 오늘은 날이 밝았다, 라는 문장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아니, 이 문장만으로는 감정을 담아내기 힘들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나는 늘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 바쁘기 때문이다. 할 일이 많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기도 해서다. 근근히 혹은 가까스로 한 달에 두어 권 완독하는 정도다. 그러니, 요즘 책을 좀 많이 읽고 있다, 는 첫 문장은 내 감정을 절제한 것이다. 제대로 쓰면 이렇게 돼야 한다. 드디어(!)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야호!

12월 들어, 10권의 책을 손에 잡았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얇은 책들은 이미 3권을 완독했다. 하루 이틀만 더 지나면 50여 페이지를 남겨 두고 있는 『닥치고 정치』를 완독할 것 같다. 김탁환의 『천년습작』도 해가 바뀌기 전에 마지막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사는 속도는 항상 읽는 속도를 능가한다. 사들인 책을 말하라면, 나는 좀 더 신이 날 것이다. 예스24사 주문내역을 살펴 보니, 12월에만 3번에 걸쳐 20만원 넘는 책 구입에 썼다. 그 중 『사유 속의 영화』가 가장 탐난다. 영화 이론을 묶은 선집이다.

12월부터는 독서일지도 새로 시작했다. 독서노트가 나의 리뷰를 적는 노트라면, 독서일지는 그저 내가 어떤 책을 읽었나를 추적하기 위한 책의 목록을 담은 기록이다. 2011년 1월, 노트북 파일을 모두 잃고 난 이후, 11개월 동안 중단되었던 개인사의 독서 파트를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내게는 고무적인 일이다.

읽은 책이 있으니 독서일지를 쓰고 싶었고, 무엇보다 언젠가는 새로 시작해야 될 일 하나를 시작한 점이 나를 기쁘게 한다. 2012년에는 이렇듯 몇 가지 일을 더 시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다시 책을 쓰고, 다시 강연 PPT를 만들고, 다시 여행 사진을 폴더에 정리하고...!

나의 상실을 위로한다는 좋은 의도로, 어떤 이는 액땜했다고 치부하란다.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기라'는 뜻일 텐데, 사실 액땜 운운하는 말은 상투적이다. 늘 써서 버릇처럼 된 것을 여전히 쓰는 것이 상투다. 상투적인 것은 힘이 없다. '상투'에는 대상에 대한 진지한 애정도 관찰도 없기 때문이다.

엄살이 아니라, 올해 초의 상실은 '가벼운 곤란'이 아니었다. 그것 자체가 엄청난 액이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사회적 관계와 머릿 속의 기억 그리고 웹에 올려 둔 기록을 제외한 '나의 모든 것'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느낌의 많은 부분은 실재였다.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달라진 삶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이겨내려는 노력도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뭔가 하려고 하면, 너무나 큰 상실 앞에 내가 지쳐가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사별에 버금가는 힘겨움이었다.

그러다가 '요즘'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고, '다시' 독서일지를 작성했다. 매우 반갑고, 이런 일을 선사해 준 시간이 고맙다. 문득, 새로운 노트북에 새 폴더를 만들던 때가 떠오른다. 십 수년 간 자료를 모아왔던 옛 폴더가 아니라, 새로운 폴더를 만들고 폴더의 이름을 '복구'라고 붙였을 때, 그 폴더 안에는 아무런 파일도 없음을 바라보며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지금도 지구 상의 누군가는 상실의 아픔에 힘겨워하고 있으리라. 그들도 안다.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고 있다. 어떤 새로움은, 온갖 슬픔과 고통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하기를 기원한다. 독서는 내 삶의 많은 순간 속에서 나에게 힘을 주었다. 원래도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11개월 동안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독서의 힘을 잊고 살았던 날들이다. 다시 읽었더니 내가 언제, 어떻게 힘을 얻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시 시작하려는, 아니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그 일을 시도해 보라는 말이다. 눈물을 서둘러 닦으라는 것도 아니다. 30분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면, 슬픔이 내면에 쌓인다. 충분히 울고 난 다음 무얼 할지 모르면, 그 때 자신에게 힘을 주었던 일을 다시 시작해 보자는 조심스러운 권유다.

나는 2012년에도 책을 읽을 것이다. 올해보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열심히! 올해를 되돌아본다. 너무 힘들어서 아무 일을 못하기도 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아 더욱 힘들어졌는지도 모른다. 내년에는 '다시' 시작하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시'는 하다가 그친 것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다시! 난 이 말이 참 좋다. 나에게 '다시'는 곧 '생성'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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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여유로웠다. 누구나 그렇듯이 회사에선 분주해지겠지만, 어제 그의 표정에는 조급한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초조함이 없었다. 우리는 함께 20분을 느긋하게 걸어 도착한 삼계탕 식당에서 점심을 즐겼다. 인삼주를 3~4잔씩 들고 나니 기분 좋은 취기가 올랐다. 취기가 없어도 서로의 대화에 취할 수 있는 우리 사이지만, 삼계탕과 인삼주, 어울리지 않나!
 
술잔의 부딪침에 기원을 담았다.
몸과 영혼의 건강함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여행이 되기를!
그는 오늘 밤,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오른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하여.

2. 갑작스런 전화였다. 하긴, 전화가 어디 갑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는 자기 표현이 분명한 편이다. 에둘러 말하는 것은 시간 낭비를 초래하고, 소통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상대에 따라 완곡하게 표현할 줄도 안다. 저녁 약속 이전에 잠시 쉬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그를 만났다.

그는 2개의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나는 개인 프로그램, 하나는 회사에서 추진하는 프로그램의 책임자였다.
나는 몇 가지 조언을 했고, 그는 만족해했다. 서로 흡족한 미소로 헤어질 수 있었다.

3. 이제 막 기말고사를 끝낸 여대생을 만났다. 와우 연구원 막내였다. 연구원 중 유일한 대학생이라, 그를 만날 땐 약간의 긴장감이 있다. 세대차가 느끼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까진 아니다. 그녀의 문자 메시지는 재기발랄한 느낌이라(다른 연구원과는 분명 다르다), 혹시 나에게서는 진지해서 지루한 어투가 묻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이미지 관리 차원의 작은 염려다.

우리는 김연우 이야기에서부터 20대 조바심의 근원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와 진지한 이야기, 그리고 가슴 속의 고민까지 나누었다.
저녁 식사였던 갈비전골만큼이나 깊은 맛의 대화였다. 정답은 없었지만, 소통이 있었다.

4.  저마다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다. 지금의 삶으로부터 잠시나마 도피하려고 떠나는 일탈으로서의 여행이 아니라, 자기 삶을 더욱 사랑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여행을 떠난 30대 중반의 사내. 자신이 준비한 것이 부족할 때마다 도움을 구하고 학습을 더하여 최고의 자기를 이끌어내는 30대 초반의 강사. 시시하게 살고 싶지 않아 배운 대로, 아는 대로, 믿는 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여대생.

당신은 어떤 열심을 창조하고 있으신가?
피곤해서,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 사람이 싫어서 라는 핑계를 대고 있진 않으신가?
그 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했다, 고 과거의 열심을 내세우고 있진 않으신가?
'오늘'이라는 시간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할 것만 같다.

"나는 당신께 귀한 존재로 대접 받고 싶어요.
어제는 과거의 일이고, 내일은 미지의 영역이니
후회와 두려움은 내려놓고 오늘에 집중해 주세요. 
새로운 열심으로 오늘 하루를 채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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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남자) 친구 '때문에' 힘들어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나도 있습니다. 아니, 많습니다. 다툴 때가 힘들더군요. 그럴 땐, (연인과 다투기나 한다는) 자괴감과 (다른 사람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자괴감은 더 인격적인 내가 아님에서 느끼는 감정이고, 무력감은 나를 컨트롤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다가 지쳐버리는 지점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내 힘겨움의 정체는 이렇게 두 가지의 감정입니다. 하지만 만사는 좋음과 나쁨이 섞여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요. 한 사람 속에 좋음과 나쁨이 섞여 있으니까요. 자기경영 차원에서는 내 안의 좋은 것들을 점점 키워가고, 사회적 관계 차원에서는 다른 이들의 좋은 점을 발견하기 위해 '무지' 애를 써야 할 일입니다.

사람들 뿐만 아니라, 만사(Everything)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겪는 힘겨움에도 좋은 점이 있다는 말입니다.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과 실제로 행동하는 자신이 다를 때마다 그 괴리감을 줄이기 위해 끊임없이 합리화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이란 말입니다.

말장난 같지만, 자기합리화도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기합리화가 마음의 평안을 안겨 주기도 하니까요. 마음이 괴로울 때, "그래도 나는 행복해"라고 말하며 자신의 불행과 힘겨움을 덮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자기기만이지만, 잘못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생을 향한 치열한 노력이니까요. 다만, 그 행복이 가벼워서 사소한 일에도 날아가버린다는 점이 안타깝지요.

할 수 있다면, 자기합리화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속도로 자기 진실을 마주해야 합니다. 그 속도는 자신의 내면이 얼마나 강한가에 따라 결정되고, 자기 진실을 마주하는 방법은 실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도전해야 할 때 도전하는 것입니다. 상황을 외면하거나 회피를 합리화하지 않고 말이죠. 직장에 뛰어들고, 누군가를 사귀는 것도 바로 자기 진실을 만나는 지름길입니다.

직장은 자신의 업무 생산성을 검증하는 최초의 공간입니다. 학교는 배움(學)으로 버틸 수 있지만, 직장에서는 배운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배우고 익힌 것만이 성과로 이어집니다. 생각으로만 살 수 있는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의 나로 살아가는 실제 세계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신이 바라고 생각하는 있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에서 적잖은 혼돈을 느끼기도 합니다. 

연애는 조건적 밀착관계로 접어드는 최초의 경험입니다. '조건적'이라 한 것은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헤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무조건적 밀착관계인 뗄레야 뗄 수 없는 가족과는 다르지요. 연애를 시작할 때,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말하지만, 연애를 하며 자기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결혼 전까지 감쪽같이 감추는 이들을 제외하면 말이죠.

자기합리화는 스스로에게 거는 주술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직장이라는 공간과 연인이라는 관계는 자기합리화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영역입니다.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고, 그래서 진짜 모습으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연애 경험과 직장 생활은 우리의 진짜 모습를 파악할 수 있는 유익한 시공간입니다.

연인 '때문에' 겪는 힘겨움의 유익은 연인 '덕분에' 자기 인격의 실체를 알 수 있는 기회를 맞은 것입니다. 직장 생활 '때문에' 겪는 괴로움의 유익은, 그 '덕분에' 자기 능력의 현재 수준을 진단할 찬스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괴로움이 상사나 동료나 후배와의 관계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사회적 관계를 맺는 수준을 알게 되는 것이겠구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럼 모든 게 내 탓이냐?"고 화를 내거나 풀이 죽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모두 내 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다른 사람 탓이라고 해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니 내 탓으로 일어난 대목을 찾아내어 힘써 노력하자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발견했다면 용기를 내어 의분을 토하자는 것입니다.

글을 맺겠습니다. 성장하고 싶다면, 자신의 실체를 대면해야 합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겠다면,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과 '실제로 자신이 살아온 행동' 중에 어느 것이 진짜 자기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가지 모두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생각'만이 아니라, 자기 '행동'도 자신의 절반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삶의 갈등, 사소한 일상, 연인과의 다툼, 직장에서의 태도와 행동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줍니다. 지금까지는 '자기 생각'만이 100% 자기였다고 여겼다면, 이제부터는 그 절반 50%는 '실제 삶의 모습'도 자기라고 여겨야 합니다. 나머지 50%는 여전히 자기 생각으로 남겨 두어도 좋겠습니다. 생각이 체계화되고 일관성을 갖추면 실천으로 이어지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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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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