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앞에 섰다. 방금 떠오른 2018년 첫 번째 태양을 바라본다. 설렌다. 오늘을 기다린 건 아닌데 반갑기도 하다. 태양이 세상의 동쪽을 비춘다. 건물은 해바라기가 된 마냥 햇빛을 받아 밝아졌다. 나는 환한 마음으로 노트에 새해 소망을 적는다. 하나씩 이뤄갈 때마다 명랑해질 내 인생을 생각하며. ‘2018년은 정말 환상적인 해로 살아보자!’

 

출간. <나는 조르바 학교에 입학했다>

탈고. <리버럴 아츠를 공부하라> 외 한 권

번역. <수잔 손택 평전>

독서. 수잔 손택 全作,『수상록』『포커스』

공부. 인지과학, 예술이론(미진사)

 

여행. 포틀랜드, 펠로폰네소스(그리스), 제주

와우. 와인시음회, STORY 매뉴얼, 유니컨 디너

공간. 아카이브 인테리어 작업, 중고물품 판매

행동. 인터뷰, 팟캐스트, 특강

관계. 가족여행, 블로그 독자의 밤, 와우수업

 

하루를 잘 살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한 해를 계획했다. 가족이랑 통화하고 여느 때보다 좀 더 치열하게 운동했다. 오후엔 서쪽 하늘로 저무는 해를 지그시 내다보았다. 태양은 예술가였다. 온 하늘을 주홍빛으로 채색했다. 여의도 너머 서해 바다로 향하는 태양을 바라보며 나도 일상의 예술가가 되고 싶어졌다.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예술가!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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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두 손 안에 붙잡아 두었는데

속절없이 빠져나간 한 줌의 모래

 

새해 계획, 다시 수립할 필요 없이

뚝딱 복사(Ctrl+V)하는 언짢은 놀이

 

모임

만나면 정교해지는 기하학적 필연이거나

만나도 허전한 우연을 쫓는 기이함이거나

 

은인

막차가 떠났나, 새벽녘 을지로의 물음을

하나 둘 챙겨 올리는 진짜 막차의 휴머니즘

 

나이

한 주 한 주 꾸준하더니 시나브로 550회

<무한도전>을 보던 이의 탄식, 언제 이렇게…

 

꿈, 빈둥거리고 기웃거리다 꺼뜨렸던

12월이면 밝아지는 마음속 불빛

 

희망

우리의 열망이 곧 우리의 가능성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에 주억거리는, 회의를 머금은 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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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독

 

"나의 벗이여, 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너는 요란한 위인들의 아우성에 귀가 멀고 소인배들의 가시에 마구 찔려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지 않은가. 

숲과 바위는 너와 더불어 기품 있게 침묵할 줄을 안다. 다시 한 번 네가 사랑하는, 저 넓게 가지 뻗은 나무처럼 되어라. 나무는 조용히, 그리고 귀를 기울이며 바다로 뻗어 있다. 

고독이 멈추는 곳, 그곳에서 시장이 열린다. 시장이 열리는 곳에서 배우들의 소란이 시작되며, 독파리들이 윙윙대기 시작한다." - 니체/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독은 생산적이다. 고독이 꺼려지는 이유는 외로움과 착각하기 때문이고 자신과 놀 줄 모르는 까닭이다. 외로움은 고독만큼 창의적이거나 생산적이지 않다. 쓸쓸하고 적적할 뿐이다. 외로움은 인간의 실존이다. 나만 외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유대관계를 회복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고독으로 전환하는 법을 익혀가면 된다.

 

고독과 외로움이 물과 기름처럼 구분되진 않으리라. 현재 누리고 있는 삶에 질에 따라서 눈 앞의 시간이 고독이 되기도 하고 외로움이 되기도 한다. 관계성, 의식, 삶의 만족도 그리고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지금 외롭더라도 내일을 희망하면 되고, 희망을 실현키 위해 지혜로운 선택을 하면 된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고독은 무엇을 생산하는가. 감사, 명상, 창의적 아이디어 등이 있겠지만 나에게 고독이란 무엇보다 성찰과 관조의 기쁨에 이르는 통로다. 연말에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곳곳에서 니체가 말한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2. 모임

 

SNS엔 수많은 모임들 사진이 올라온다. 뜻깊은 모임이 어디 연말에만 가능하겠냐마는, 인간이란 함께하는 사람 뿐만 아니라 환경과 시기 그리고 공간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시기와 타이밍은 중요하다. 모임 사진들을 보면서 느낀 단상 중 하나는 '연말은 근사하고 의미있는 모임을 가질 최적의 시기'라는 점이다. 

 

(페북 세계가 종종 그래왔듯이) 사진에는 허와 실도 있으리라. 사진은 진실의 일부다. 제외되고 편집되고 꾸며진다. 세상에는 즐겁지 않은 모임도 많다. 최근 와우팀원 한 명이 모임에 간다길래 이리 말했다. "지루하고 의미 없거나 또는 의외의 재미나 소득이 있거나 둘 중 하나겠네요." 후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이왕 가는 김에 모임에 흠뻑 집중하길 바랐다. 절친한 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모임이었기에 얼마간의 염려도 있었다. 

 

이튿날 그녀가 들려준 말은 이렇다. "정말 재미 없었어요. 지루해서 혼났죠. 그냥 친한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뻘쭘하기만 했네요." 기우에 그치기를 바랐던 걱정이었는데 현실이 됐다. 친한 이들끼리의 모임이 아니라면 준비한 손길이 세심하고 정성스러워야 하는데 듣자 하니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정성스러운 손길'을 생각하니 강민지가 떠오르네. 나는 그의 모임이라면 처음 만나든 아니든 기꺼이 추천한다.)

 

(온갖 가치있는 것들이 그렇듯) 정겹고 뜻깊은 모임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감사한 분들이나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한 연말 모임을 정성스럽게 준비하면 어떨까. 혼자 지내기를 즐기는 한 와우가 친밀함에 대한 책을 읽고서 송년 모임을 기획하고 준비했다. "누굴 초대할까 생각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고 하나씩 준비하는데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한 말이다.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 채러티 바넘은 이렇게 말했다. "모두에게 사랑 받을 필욘 없죠. 곁에 좋은 사람만 몇 명 있으면 된 거예요." 편안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모임은 우리를 얼마나 고양시키고 행복하게 하는가. 

 

최근 SNS에서 조에스더 대표의 '더애인' 송년 파티 사진을 인상 깊게 보았다. 열 명을 초대한 "조에스더의 애정인 모임"이란다. 공간도 마음에 들었다. (망원동의 작은 레스토랑 '공작'이었다.) 준비한 손길도 정성스러워 보였다. 참석하진 못했으니 이리 예상할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묘하다. 사진 가득한 포스팅 하나를 보았을 뿐인데 이리 글로 쓰고 나니, 쇼윈도 밖에서 상점 안의 초콜릿을 바라보는 아이가 된 기분이네. ^^

 

3. 영성

 

성탄절이 코 앞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날이다. 크리스마스 예배나 미사를 드림으로 신을 섬기는 시간만큼 성스러운 시간이 또 있을까. 우리는 때때로 파이프오르간이 빚어내는 경건한 음악보다 거룩한 존재가 된다.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하는 의인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는 극소수의 정치가들만큼이나 진실로 예배하는 자들은 아름답고 거룩하다. 일상에서 추하게 살았던 이들의 예배라고 해도 가식이 아니다.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열망이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영성을 추구할 순 있다. 신을 구하는 마음으로(무신론자라면 신이라는 말을 섭리나 지혜 또는 사랑으로 바꿔도 좋겠다)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소망하는 마음을 갖는 시간은 아름답다. 자신만의 시간을 갖더라도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공간을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학제 간 연구인 '신경건축학'은 공간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다양한 연구 결과로 보여 준다. (콜린 엘러드의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극단적 예이긴 하나 카페보다 성당에서 기도 드리기가 쉽다는 말이다.  

 

종교인에겐 미안하지만 영성을 아주 개인적 차원으로 치환할 수도 있다. 존 나이스비트와 함께 『메가트랜드』를 저술했던 패트리셔 애버딘은 21세기를 주도할 메가트렌드로 '영성'을 첫째로 꼽았다. 그녀가 말하는 영성을 일상 용어로 풀면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감각이다. 비전과 사명의 발견, 다시 말해 영적 성장이야말로 삶의 가장 큰 변화를 불러온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종종 자신의 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는 존재다. 돌아보고 내다보는 일은 연중 언제라도 시도해야겠지만,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실행하는 게 가장 유익하지 않을까.

 

4. 기쁨

 

여기 두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성탄절마다 기쁨에 차 올라 춤을 추고 탬버린을 친다. 이와는 다른 남자도 있다. 그는 연말이면 아쉬워하고 괴로워했다. 저물어가는 한 해를 보며 심장에서 이파리 한 장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느꼈고 암흑의 지옥으로 한발짝 다가섰다고 생각했다. 고심하고 주저하느라 행동이 빈약했다는 사실에 비참함에 잠기기도 했다. 전자는 그리스인 조르바고, 후자는 그의 두목 화자다. 

 

아이들과 함께 흥겹게 탬버린을 두들기다가 잠시 짬을 낸 조르바가 말했다. "두목, 무슨 생각을 해요? 얼굴이 똥색이오. 오늘 같은 날 나는 꼬마로 되돌아갑니다. 그리스도처럼 다시 태어납니다. 예수님은 해마다 새로 태어나지 않소? 나도 그렇지!" 화자는 서른 다섯이고 조르바는 예순 다섯이다. 그가 송년에도 기쁨에 빠져드는 비결이 뭘까? 조르바는 현재를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을 사는 사람이었다.

 

조르바는 눈앞의 현재를 붙잡았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는 즈음의 조르바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조르바,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성탄절이지. 그럼 예수님처럼 다시 태어났다고 상상하며 현재를 즐기시게. 조르바 지금은 언제인가? 연말이야. 그럼 올해가 완전히 다 가기 전에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게. 지금은 또 언제인가? 새해가 밝았지. 그럼 얼른 새해 소원을 빌게. 한 살 더 먹었으니 더 멋진 꿈을 꾸시게나.” 그렇게 조르바는 예순 다섯 살에 만난 새해를 소원을 빌면서 시작했다. 지나간 일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다가올 일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야 현재를 붙잡을 수 있다. 기쁨은 이러한 깨어있음에 깃든다.

 

과거와 미래의 좁은 틈 다시 말해 현재에 존재하는 이들에게, 신이 기쁨을 선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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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나는 형의 교과서와 소설 따위를 꽤 많이 읽어 경우에 따라서는 당시의 시골 학교 동급생보다 아는 게 훨씬 많았는데도 나 자신은 누구보다 더 안다거나 앞서 있다는 생각을 당초부터 하지 않았다.” 3남 2녀의 막내로 자라난 문학비평가 김병익 선생의 말이다.(『글 뒤에 숨은 글』p.12)

 

누구와 함께 있는가. 이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물음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함께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영혼이 연약해서가 아닐 것이다. 상호 교감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형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더 많이 안다고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를 그저 평범한 소년으로 자족했을 뿐이다.”(김병익) 비단 한 집안의 형들만이 우리의 부족함을 일깨우는 건 아니다. 주변에 훌륭한 이들이 존재한다면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볼 수 있으리라. ‘내가 좀 안다’는 착각은 세상의 뛰어난 이들을 만나지 못함에서 오는 불운인지도 모른다.

 

인용문에서 김병익 선생의 남다른 의식도 느낀다. 형을 둔 모든 이들이 ‘절로’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자족을 배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형에게 기가 죽거나 질투를 느끼는 반작용도 있을 것이다. 내 친구는 자신보다 매우 뛰어난 친형으로 인해 20대 초반까지 형을 모방하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

 

선생은 열망이 남달랐다. “나는 겸손하고, 또 겸손해야 했다. 적어도 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기를 바랐고 그런 사람을 존경했다.” 선생의 겸손과 자족은 막내라는 집안 환경의 덕분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타고난 성정이 빚어낸 가치관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당신의 수줍음을 환경의 영향으로만 서술한 부분에서는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선생은 자신의 가치관을 따라 학창시절을 보냈고 인생을 살았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의 선생이니 학창시절에는 당신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있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선생이 자주 쓰시는 표현이다) 선생은 늘 자신보다 뛰어난 학생을 올려다보며 자신을 바로 잡았다. 그렇기에 선생에게는 “배워야 할 상대는 있었지만 경쟁할 만한 상대는 없었다.”

 

나를 성장시키면서도 겸손하게 사는 비결 하나를 배운다. 성품이나 실력이 뛰어난 이들과 함께 어울리거나 나보다 나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어 그들로부터 배우며 살기! 어렸을 적 나의 아버지는 배움이 많지 않았던 아내와 어린 아들에게 많은 말을 했지만, 당신의 영향력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진 못했던 것 같다. 아버지보다는 넓고 멀리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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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서면, 나는 돌멩이를 집어 들어 강을 향해 날리곤 했다. 돌은 자신의 필연을 쫓는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간다. 휘익, 하고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겠다. 돌은 하늘을 날아서 상쾌했을까, 이내 물속으로 떨어져 아쉬웠을까?

 

나는 돌을 멀리 멀리 보내주고 싶었다. 돌의 여정은 상황마다 달라진다. 동행이 있으면 힘껏 던지지는 못한다. 저 앞에서 퐁당! 편한 친구가 있을 때엔 있는 힘을 다한다. 저 멀리서 풍덩! 나는 멀리 멀리 던지고 싶었다. 내 젊음이 무사한지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마냥.

 

소년 시절, 학교 체력검사에는 멀리 던지기가 있었다. 나는 전교에서 제일 멀리 던지는 학생이었다. 팔 힘이 없어 보이는데 어찌 그리 던지느냐는 물음이 귓가에 선하다. 지금도 그때만큼 멀리 던질까? 강가에 서서 있는 힘껏 던져보는 까닭이다.


20~30년 전 만큼 던지지는 못한다. 너무 세게 던지면 어깨가 아파올 수 있음도 안다. 강가에 설 때마다 세월 또한 돌처럼 휘익 날아갔음을 느낀다. 어디로 날아간 걸까? 멀리 가지는 못했나 보다. 손목과 어깨에 내려앉아 있으니. 가슴에는 친구를 향한 그리움이 쌓였고.

 

며칠 전, 이동저수지 물가에 섰다. 일행들과 떨어져 돌멩이 하나를 던져 보았다. 무슨 까닭에서인지 있는 힘을 다하지는 못했다. 이제와 그것이 못내 아쉽다. ‘지금까지 매사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추동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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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에는 봄날의 기운이 완연했다. 포근한 햇살, 살랑거리는 봄바람. 카페 창가에 앉았다. 카페 밖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창문을 두드렸다. 벚꽃도 싱그러운 봄 날씨에 기분이 좋았던 걸까. 바람과 함께 벚꽃 가지가 춤을 추었다. 나흘 전, 연남동 카페 <noah's roasting>에서 맛난 커피와 함께 그렇게 낭만 속의 과업을 즐겼다.



오늘 다시 같은 카페를 찾았다. 벚꽃이 창문을 두드리던 그 창가에 앉았다. 그새 풍광이 달라졌다. 벚꽃의 세상 나들이는 짧았다. 연분홍빛 벚꽃 사이로 얼굴을 내민 초록잎들! 바람이 불면 춤을 추던 벚꽃들인데, 이제는 바람과 함께 후두두 떨어진다. 벚꽃이 잠시 머물렀던 가지마다 짙은 아쉬움이 내려앉는다. 바닥을 거니는 꽃잎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나는 벚꽃을 아주 좋아한다. 산길을 걷다 숲 속에 심심찮게 묻혀 자란, 꽃이 만발한 벚나무를 만나면 늘 그 허리를 쓸어준다. 그 밑에 서서 꽃들 사이로 하늘을 보려 한다. 바람이 불고 이내 꽃비 오듯 그 작은 꽃잎들이 떨어져 내리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구본형 선생님이 당신의 책에 써 두신 말이다. 나는 벚꽃이 좋지만은 않다. 바라보면 살짝 서글퍼진다. 올해도 여러 번 외면했다.

 

선생님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던 밤을 잊지 못하리라. 가로수가 짧은 벚꽃터널을 만든 거리를 지나갈 때였다. 나무에서 해방된 벚꽃 잎들이 하늘을 날았다. ‘저 벚꽃들도 선생님과 함께 자유로워졌구나!’ 눈물이 흘렀다. 인생을 비유하는 여러 말들 : 여행, 마라톤, 하루짜리 소풍…! 모두 혜안이 담긴 말이겠으나, ‘벚꽃 같은 인생’도 아름다운 표현이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저리 단아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면 겨울 추위야 능히 견뎌내야 하리라), 피어 있는 동안 사람들과 더불어 흥겨워했다가(벚꽃축제야말로 봄을 대표하는 꽃놀이가 아닐까), 때가 되면 홀연하게 떠나버리는 삶! “목련은 아름답지만 지고 난 다음 그 무거운 주검을 주체하기 어려운데, 이 작은 꽃은 살아 있을 때처럼 갈 때도 가볍기 그지없다.”


 

‘내년 벚꽃은 웃으며 만나야지!’ 선생님의 바람일 테니까. 읽던 책을 펼치니 선생님이 계신다. “시간이 지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으니 세월은 무섭게 살을 헤집어드는 사나운 채찍이다. 세월이 들어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자신을 보는 일은 추운 일이다. 세월이 지나 어떤 것에도 마음을 쏟지 못한 자신처럼 미운 것은 없다.”(구본형) 아, 잘 살고 싶다. 자유롭고 아름다웠던 선생님의 삶처럼!

 

오늘은 선생님의 4주기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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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돌아보는 3월]

봄날의 제주 여행



3월의 초입에 여행을 다녀왔다. 꽃샘추위에도 유채꽃이 하늘을 향해 활짝 웃었다. 찬바람이 불 때마다 나는 옷깃을 여미었지만 꽃들은 춤을 추었다.



초정리의 뒷골목에 자리한 '길리'는 연인이 생기면 다시 찾고 싶은 카페다. 창가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고 싶은 곳. "오늘 저녁에는 전복구이 먹을까?" "내일은 어디 갈까?"



침대에 누웠다. 옷걸이에 걸린 옷들이 외롭게도 보였다가, 단정하게도 보였다. 내일 입으려고 개켜 놓은 옷, 소파 위의 노트북, 그리고 혼자 차지한 2인실의 방.



'소심한 책방'은 마스다 미리의 그림책이 어울리는가 싶더니, 신형철 평론집과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도 품은 고상한 서점이다. 리처드 호가트의 『교양의 효용』과 같은 책도 있다. 감성과 지성이 어우러진 책방!



마지막 날 아침 식사는 객실에서 과일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와 빵을 즐겼다. 적당한 포만감에 곁들이는 진한 모닝커피는 그야말로 일급 낭만이다. 까눌레가 풍미를 더했다.



모던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으로 나를 유혹했던 카페 도렐! 48시간 여정 중 두 번이나 찾아가 편안하고 기분 좋게 작업했다. 작은 식물원 같은 청량감마저 선사해 주었던 고마운 공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공간은 두 개의 편집샵이었다. 달리센트 그리고 FAVORITE! 내 취향의 소품, 가구, 음악, 전시된 책들이 영감과 에너지를 안겨 주었다. 위 두 사진은 특히 마음에 들었던 'FAVORITE'.



떠나는 날의 바다 빛깔이 아름다웠다. 유독 황홀하게 느껴진 것은 떠나는 아쉬움 때문일까, 날씨가 좋아진 덕분일까. 바다, 대형 바람개비, 하늘이 한 마음이 되어 나에게 인사를 한 것이리라. "조만간 또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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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해 본다. 내가 강의를 업으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십여 년 전만 해도 이런 가정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젠 가정이 하나에 그치지 않고 릴레이로 이어졌다. 내가 인문학을 전공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때 읽었던 책이 스티븐 코비의 책이 아니었더라면? 가정의 행진은 내 인생의 피할 수 없는 물음을 마주하고서야 멈춰 섰다.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불가피한 상황도 있었고, 선택의 기로도 있었다. 엄마와의 사별은 숙명이었다. 숙명은 강력했다. 싸울 대상이 아니었다. 책 속 현자들의 권고를 정리하니 “숙명과 화해하여 벗으로 지내라” 쯤의 명제가 되었다. 엄마 없이 25년을 살면서 이를 어느 정도는 실현했으리라. 사별 덕분에 잃은 것이 많을까, 얻은 게 많을까? 득실의 저울추가 균형을 이룰 거라는 사람들의 순진함에, 나는 그저 웃는다.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부르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게다가 세상은 공평하지도 않다. ‘부모 제비뽑기’보다 우리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또 있을까.

 

쓰고 나니 오해 사기에 딱이다. 나를 숙명론자로 보는 사람들은 이리 말한다.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을 바라보는 인식과 태도가 더욱 중요해요.” 나도 동의한다. 한 단어만 뺀다면 말이다. ‘더욱’을 삭제해야 한다. 외부 환경과 개인의 정신 모두가 중요하니까. ‘더욱’이라고 말하려면 둘을 비교한 결과여야 한다. 환경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가 얼마나 환경을 능히 극복하는지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대개는 이러한 숙고 없이 자신이 타고난 기질대로 환경을 더 강조하거나, 개인의 힘을 더 강조한다.

  


삶은 숙명으로도 전개되지만, 내가 개입할 여지도 존재했다. 직장생활을 기업 교육회사에서 시작한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내 인생에 들어온 단어들이 지금도 내 삶의 일부분이다. HR(인적자원), 기업 교육, 강연가, 학습조직, 리더십 등등. 내 책장의 일부는 다음과 같은 책들이 꽂혀 있다. 실천공동체, 살아있는 학습조직, 컨설턴트는 어떻게 일하는가, 성과측정,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책장에만 꽂힌 게 아니리라. 책의 내용들이 내 삶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었을 테니까. 정말이지 내 삶은 읽는 것들의 영향을 받아왔다.

 

나는 두 가지의 중대한 지혜를 터득해야 멋진 삶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숙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훌륭한 선택을 하려면 어떡해야 할까가 그것이었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몰랐지만, 탐구할 질문을 일찌감치 발견한 셈이다. 나는 숙명과 선택을 아우르는 명제를 고민했다. 숙명을 원망치 않으며 선택의 지혜를 자유로이 발휘하는 인생을 그윽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인생은 필연의 터 위에서 자유의 집을 짓는 여정이다.” 2010년의 결과물이다.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저 문구도, 내 인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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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그는 진지하고 선하다. 사유하는 힘이 조금 약할 뿐이다. 괜찮다.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어 보인다. 그는 이미 멋진 사람이고 자신을 좋아하는 이들과 더불어 잘 산다.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깊어지고 싶어요. 더 성장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내게 ‘한 말씀’ 듣기를 원했다. ‘지금도 괜찮으신데….’ 이건 그가 원하는 ‘한 말씀’이 아니리라.

며칠이 지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오늘 아침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 떠오르는 대로 '한 말씀'이 아닌 '몇 마디'를 적어 보냈다. 핵심은 양면성이다. (사례를 덜어내고 명제만 모아 블로그 벗들과 공유한다.)

“세상의 양면성을 탐구하세요.” 이 ‘양면성’을 이해할수록 더욱 깊어지실 겁니다. 양면성을 탐구한다는 말은 눈물과 미소를 동시에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심원한 열망’입니다. 선의 무용함을 발견하고, 악의 유용함에 눈뜨는 ‘역설의 여정’입니다. 표현이 모호했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적어 볼게요.

1) 평온은 내면에서도 발견하지만 외부에서도 찾아옵니다. 최신 과학(신경건축학)은 공간이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밝혔고, 70년 전에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진다네.” 환경의 중요성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2) 인간관계는 인연과 노력의 합작품입니다. 인연을 과하게 중시하여 상대방과 맞춰 나가려는 노력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동시에 노력만을 중요하게 여겨 인연지간에서 빚어지는 상응의 불꽃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건강은 타고나는 걸까요? 노력하는 걸까요? 둘 다입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니, 인연만을 중시하는 메시지에 현혹되지 마세요.

3) 영적인 것을 제대로 사랑하면 세속적인 것도 얕보지 않습니다. 죄 짓는 일을 제외하면 모두 영적인 활동입니다. TV 시청한 일,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모두 영적이라는 말입니다. 내용만큼이나 다루는 방식도 중요합니다.

4) 내용과 형식, 질과 양이 모두 중요합니다. 양극의 가치들을 구분하려 들지 말고, 어떻게 유기적으로 상호보완의 관계를 맺는지 탐구해야 합니다. 창조와 파괴는 양극적 관계이기도 하지만, ‘창조적 파괴’라는 말도 진실이지요. 모든 양극적 가치는 연합하면 더 강력해집니다.

5) 결국 ‘선악’이 아니라 ‘정확성’이 중요할 겁니다. 나에게 필요한 가치를 정확히 알고 그 가치가 얼마나 필요한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 양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소량의 독은 생명을 구하지만, 치사량이 되면 목숨을 앗아갑니다.

6) 우리가 어찌 정확성에 이를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정확성’이라는 단어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입니다. 어제보다 조금 더 정확해지면 그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의 정확성은 내일의 그것보다는 부정확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고요. 어제보다 나아짐에 기뻐하세요. 내일보단 부족하니 너무 오래 안주하지는 마세요.

7) 무엇이든 정확하게 이해하면 깊어집니다. 이 글도 당신에게 정확히 이해되기 바랍니다.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면서 썼으니, 이해가 안 되는 구절에선 사전을 펼쳐 단어의 뜻을 찾아보세요. 자기 견해도 중요하지만, 대상을 이해한 후의 견해가 더 단단합니다. 글이든,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해하고 싶다면 대상을 꽉 붙잡으세요. 물병의 뚜껑을 열려면 먼저 한 손으로 병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뚜껑을 비틀어야 합니다. 붙잡기가 비틀기보다 앞서야 합니다. 그래야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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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방금 <Jazz Radio>를 켰는데, Cool Jazz 채널에서 폴 데스먼드가 보이는거야. 바로 클릭했지. 아, 미치겠다. 역시, 데스먼드야. 이 베이스소리 어쩔! 색소폰 연주자로는 스탄 겟츠랑 폴 데스먼드가 최고인 듯. 부드럽고 달콤하거든. 존 콜트레인은 종종 날카로워. 사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모두 품고 있음이 콜트레인의 힘이겠지. 아, 데이브 브루벡으로 넘어가 버렸네! 휴우, 아쉽다. 사실 데이브 브루벡도 좋지. 그 유명한 브루벡의 <take five>를 폴 데스먼드가 작곡했어. 맞나? 헷갈리네.” - 카친과의 대화



카톡 대화가 끝나자 트럼페터들이 아우성쳤다. 리 모건, 쳇 베이커, 클리포드 브라운이 협연으로 나를 부른다. "어이, 친구! 자네 인터넷 카페 닉네임이 한 동안 '리모건'일 정도로 나를 좋아했지 않나. 잊었는가?" 그럴 리가요. 이미 당신이 연주한 <You go to my head>도 감상했는 걸요. 베이커 씨도 끼어든다. "재즈 발라드로는 내가 최고라며?" 맞아요.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스탄 겟츠와 당신은 제게 최고의 재즈 발라더예요. 최고는 늘 복수(plural)로 존재하잖아요. "헤이, 나더러 정말 달콤하다며?" 클리포드 브라운의 질문에는 결국 말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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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