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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성, 삶을 새롭게 창조하는 출발점
- 에릭 부스의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을 읽고

1.
그는 구도자가 될 운명이었나 보다.
인생을 이해하고 지혜를 구하고자 오대산 속으로 들어갔다. 
산 속에서 정각 9시 취침과 새벽 4시 기상을 기본 생활 수칙으로 여기며
미숫가루와 신선한 채소로만 식사를 해결했다. 
겨울엔 아궁이에 불도 때지 않고 냉방에서 생활하며 심신을 단련시켰다. 
단전호흡을 하고 매일 100리 길을 산책하며 구도자처럼 살았다.
20년 세월을 보내니, 그를 지칭하는 말들이 생겨났다. 
오대산의 현인이라 불리는 박해조 선생의 이야기다.

박해조 선생의 지혜는 한없이 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가 쓴 책을 쉬이 권하기는 힘들다.
난해하기보다는 내용과 표현이 생경해서 독자들마다 호불호가 분명할 테니까.
아마도 『천국을 낭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팔렸을 텐데, 나도 감동적으로 읽은 책이다.
살면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은 즐겁게 풀어야 할 ‘놀이’에 불과하다고, 책은 말한다.
요컨대, 인생살이는 3가지의 놀이다. 의식주 놀이, 만남 놀이 그리고 문제해결 놀이.
나는 글에서도, 강연에서도 박해조 선생의 놀이 비유를 소개하곤 했다.
사명완수 놀이를 덧붙이며, 나는 인생을 4가지의 놀이로 생각한다고.


『천국을 낭비하는 사람들』은 '삶은 3가지의 놀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할 수 있으면 살아가는 태도와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많은 구루들이 관점 전환의 중요성과 노하우를 다룬 까닭이다. 
구루들마다 관점 전환을 조금씩 다른 명칭으로 불렀지만, 핵심은 하나다. 
관점을 바꾸면 하는 행동이 달라지고, 하는 행동이 달라지면 얻는 결과가 달라진다! 

2.
찰스 핸디와 톰 피터스는 경영학의 구루들이다.  
그들 모두 관점 전환의 중요성을 재구성 Re-framing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찰스 핸디는 『비이성의 시대』에서
"관점을 전환하는 재구성(Re-frame)은 사물, 문제, 상황, 사람 등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정면이 아니라 옆에서 보거나 앞뒤를 바꾸어서 바라보기, 
다른 배경이나 맥락 속에 놓아보기, 문제가 아니라 기회라고 생각하기,
대재앙이 아니라 가벼운 딸국질로 간주하기" 등이 그 예다.
재구성의 달인이 되려면 "기존의 방식에는 '왜지?'라고 되묻고,
재구성 작업으로 얻은 대안에 대해서는 '안 될 게 뭐야?'라고 묻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이렇게 묻기만 해도 문제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톰 피터스 역시 『The Project 50』[각주:1] 에서 이렇게 썼다.
"가장 중요한 단어는 재구성이다.
모든 업무를 차이를 만들어내는 일로 바꾸는 일이다!"
책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와우 프로젝트의 세계는 이 하나의 단어를 기초로 한다. 재구성(Re-frame)!"

스티븐 코비는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이 처음 사용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으로
보는 관점을 설명했고 관점 전환(
패러다임 시프트 paradigm shift)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구성을 뜻할 법한 용어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Re-imagine이다. 
Re-frame 이란 단어가 보편적이지만, 관점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이 
창의력과 상상력이란 점에서 나는 Re-imagining이 더 좋다.

Re-imagine은 톰 피터스의 『미래를 경영하라』의 원제이기도 하다.
(이 단어가 사전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개념으로 웹에는 종종 등장한다.)

3.
박해조 선생은 삶의 관점을 전환하라는 말을 비유와 이야기로 풀어냈고
찰스 핸디는 학습 과정에서 재구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론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톰 피터스는 선동가답게 재구성으로 독자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톰은 재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다음과 같은 행동법칙을 적어 놓았다.

(1) 현재 프로젝트를 한 페이지로 설명하라. 
명함철을 뒤적여 3~4명의 멋진 사람들에게 그것을 보내라.
재구성을 위해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라.

(2) 가장 멋진 사람과 48시간 이내로 약속을 잡아라.
프로젝트의 전권을 그에게 넘긴다면 어떻게 재구성할지 물어보라.  


4.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이하『일상 예술』)의 핵심 아이디어도 재구성이다. 
저자 에릭 부스는 '예술'을 도구로 가져와
삶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한다.

"섹스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 부탁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예술을 전문가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예술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무척 클 뿐만 아니라
개인의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술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이 책의 목적은 매혹적인 것들과 끝없이 교감하는
우리의 타고난 예술적 권리를 되찾는 데 있다."


책이 지향하는 곳은 예술의 일상화가 아니라 일상의 예술화다.
다시 말하자면, 예술 작품을 대중에게 소개하거나 예술 입문을 권하는 게 아니라
일상을 예술처럼 살라고, 특히 예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배우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결과물이 아름다운 그것이 곧 예술이다.
인간이 빚어내는 예술의 스펙트럼에서 우리의 일상이 한쪽 끝을 차지한다면
걸작이라고 평가되는 예술은 또 다른 한쪽 끝을 차지한다.
예컨대 신혼부부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정성스럽게 차린 저녁 식탁이 한쪽 끝을 차지한다면
다른 쪽 끝에는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있다."


책의 제목에도, 본문에도 줄곧 예술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고
하루를 경영하는 것이야말로 훌륭한 예술 행위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술은 삶의 관점을 재구성하여 새로운 일상을 창조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 삶의 순간마다 의미를 발견하기 위한 도구다.

5. 
"예술이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값비싼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예술은 '짜맞추다'라는 동사로서 결과가 이나라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이란 일련의 경험이나 실험처럼
무엇인가를 관찰해서 얻어내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


예술이 어떠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책의 아이디어는 너무 비약적인 것이 되지만

예술의 어원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임에 주목하면 이 책은 인생경영의 잠언집이 된다. 

6. 
그렇다면 예술 행위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정확히 답하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 행위는 3가지다. 세상 만들기, 세상 탐구하기, 세상 읽기.
세상 만들기는 의미 있는 것을 창조하는 행위다. 
세상 탐구하기는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는 행위다. (호기심, 사랑, 감정이입이 중요하다.)
세상 읽기는 평범한 부분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행위다. 
창조하고 배우고 의미를 찾아내려는 모든 노력이 예술 행위라는 말이다.

삶의 경영에 예술 행위의 과정을 도입하라는
책의 핵심 아이디어가 아주 매혹적인데도, 책을 이해하기가 힘들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3가지의 예술 행위를 명쾌하게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들고 배우고 의미 찾기를 각각 세상 만들기, 탐구하기, 읽기라는 비유로 전환한 것과
거기서 다시 비유로 사용한 개념(세상)을 설명하다 보니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다행하게도 3가지의 예술 행위에 대해서는 '3장 : 일상 창조의 조건'에서 자세히 기술된다.

7.
책은 4개의 챕터로 나뉜다. 
다시 소주제로 구분되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는 챕터 구분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Chapter one. 책의 메인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예술의 본질은 결과(작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행위)에 있다.

Chapter two. 결과물(예술 작품)이 아니라, 걸작이 탄생하는 과정(예술 행위)을 소개했다.

걸작 탄생의 원천 5가지로 열망, 관찰, 비유, 재구성, 참여를 들었다.
당연히 나와야 할 내용이고 모두 예술 행위의 중요한 재료들이다.


Chapter three. 세상 만들기/ 탐구하기/ 읽기, 라는 예술 행위를 파고든 장이다.
책의 핵심 주제는 '예술 행위'를 구체적으로 다루었기에 중요한 내용이다.
나는 2장과 3장의 순서가 바뀌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Chapter four. 예술 행위를 시작하기 위한 조언 등의 실제적인 문제를 다룬 장이다.

마지막으로 아마추어 정신을 소개하며 열망과 몰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책의 구조는 안정적이나 챕터의 내용이 어색하여
다른 챕터로 옮기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있었고, (아마추어 정신)

챕터의 순서에 대하여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목차를 보고 있으면 책의 내용이 잘 정리되니, 괜찮은 구조다.


8.
책을 읽다가 자주 톰 피터스를 떠올렸다. 
재구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먼저 깨달음을 준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시드니 코퍼레이션의 필 다니엘스의 말을 들려 주며
내가 성공과 실패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뛰어난 실패에 상을 주어라. 그저 그런 성공에는 벌을 주어라."
(Reward excellent failures. Punish mediocre successes.)


『The Project 50』책의 여백에는 2002년 9월에 써 둔 메모도 있었다.
"나는 신입사원들에게 주어진 프로젝트의 팀장이 되었다.
또 하나의 그저 그런 성공을 거부하자.
주어진 임무를 재구성하여 영원히 기억될 프로젝트로 만들자.
실패하더라도 뛰어난 실패가 되게 하자."


2008년에는 톰 피터스의 영향이 컸음을 보여주는 글을 쓰기도 했다.
"예술 작품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바다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이나 바다 위로 떨어지는 석양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몽골의 초원과 하늘만이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고객에게 보내는 한 통의 이메일이 아름답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는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아름답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진정 내 삶이 아름답지 말라는 법은 또 어디에 있는가?
아름다움은 예술과 자연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도, 나의 일에도 아름다움을 조각할 수 있다."


9.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니 그리고 『일상, 그 매혹적인 예술』을 읽다 보니
언젠가부터 내가 재구성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음을
또한 어느 정도는 재구성에 성공하여 좋은 결과를 얻은 적도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 예술』을 일독한 것은 도움이 됐다.
재구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할 수 있었으며
의미 있는 것을 창조하거나 배움을 더할 수 있는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기 때문이다. 
『일상 예술』이 재구성 그 이상을 다뤄준 덕분이다.


예술가처럼 살아가라는 관점을 제대로 설득했을 뿐만 아니라, (재구성)
예술이 이뤄지는 과정(예술 행위)을 보여줌으로 재구성의 노하우를 전수해주었다.
게다가 예술 행위의 원천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고
아마추어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다뤄주었다.

보상을 바라지 않기에 더욱 순수한 열망으로 몰입할 줄 아는
아마추어의 정신에 대해 생각하며 나의 열정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도 가졌다.

아마추어의 열의를 지니지 않고 탁월한 프로페셔널이 될 수 없음도 상기했다.

10.
첼리스트 요요마의 말처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은 우리의 삶 자체"다.

『일상 예술』을 읽은 이가 시도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일상 예술가가 되어 날마다 예술을 행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예술 행위에 몰입할 것이다.
의미 있는 것을 창조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 평범한 일상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면서.

내 삶이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워지기를 꿈꾸고 도전하고 실천하고 싶다.
2
008년에 썼던 나의 글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자, 이제 일하러 가자. 일감바구니를 뒤적여보자.
한 가지 업무를 꺼내 Beautiful하게 만들 방안을 생각해 보자.
필요한 것은 재능과 최고의 지식이 아님을 명심하고 시도하자.
집중력을 발휘하고 상상력을 덧입혀 업무의 개념을 재창조하자.
나는 평범한 메일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고객서비스를 하는 것이고
고객을 ‘열광하는 팬’으로 만드는 유혹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조각하는 것이다.
나는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의 변화를 돕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하는 회사원이 아니라,
하루를 멋지게 사는 비결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일상 예술가다.

Wow를 조각하는 예술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1. 『The Project 50』는 2002년에 출간된 『와우프로젝트 1, 2, 3』중에 두 번째 책인데 절판되었음. 2011년에 세 권을 합본하여 『와우프로젝트』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음. (21세기북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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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읽고

메디치 이야기, 리더십의 핵심을 찌르다!



리더십은 영향력이고 영향력의 근원은 신뢰다

 

지위가 높거나 지식이 있다고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된다. 리더십은 곧 영향력이다. 훌륭한 리더들의 행동 특성은 저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더십은 영향력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영향력의 모양이 리더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리더들은 자신만의 강점과 기질로 형성된 고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리더라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행동 특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리더라면 반드시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리더에게 영향력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사람들이 리더의 말을 듣는지, 듣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가 말하면 사람들은 경청한다. 반면 리더십이 없는 그저 ‘지위상의 리더’가 말하면 듣지 않는다. 영향력이 없다는 의미다. 영향력을 높여가는 길이 리더가 되는 과정이다. 영향력은 리더의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도 그의 삶과 태도가 더 큰 소리로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리더다“라고 소리칠 게 아니라, 사람들이 리더라고 인정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컨트롤하여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 리더십 향상의 본질이다.

 

사람들이 따르도록 만들고, 그들의 마음을 얻는 힘이 영향력이다. 영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리더십의 전문가 존 맥스웰은 『리더십 불변의 법칙』에서 리더십의 굳건한 토대는 ‘신뢰’라고 역설했다. 리더십 구루인 워렌 베니스도 자신의 책 『리더 On Becoming a Leader』에서 다음과 같이 신뢰를 강조했다. “사람들을 리드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신뢰다. 나는 신뢰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계속 함께 하는 데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리더십은 영향력이고, 영향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리더가 되고 싶다면, 신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스토리, 전달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도구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신뢰를 획득하라는 말은 옳지만, 뻔 한 말이다. 문제는 이 식상한 말이 리더십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뢰라는 개념에 생생한 현장성을 부여해야 한다.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 삶에서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건강관리는 자기경영에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지만, “건강은 매우 중요합니다”라는 말로는 사람들의 건강관리를 제대로 도울 수 없다. 건강관리를 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그림 그리듯이 묘사해 주어야 한다. 혹은 실제 삶에서 어떤 행동을 실천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어야 한다. 신체 에너지 관리를 위해 좋은 간식을 섭취해라, 라는 조언은 보다 구체적인 말이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

 

“에너지 바나 견과류를 사 두었다가 오전 10시 즈음과 오후 3~4시 즈음에 간식으로 먹어라. 건강에도 좋고, 특히 오후 간식은 저녁의 과식을 방지하여 다이어트에 좋다. 그 무렵에 떨어지는 신체적 에너지를 끌어올려 저녁 시간까지 활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아침을 거르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곡물 시리얼과 요구르트 그리고 바나나, 사과 등 과일 한 조각이라도 먹자. 아침식사 - 오전 10시 차 한잔과 소량의 간식 – 점심식사 – 3~4시 간식 – 저녁 식사로 이어지는 음식패턴을 만들라.”

 

이렇듯 조언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에 대한 인식이나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나는 회사 내에서 인재를 잘못 배치한 적이 있다. 리더십이 없는 P를 팀장으로 세웠던 것이다. 그로 인해 회사의 중요한 일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고, P의 팀원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P는 팀의 리더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과 회의 등을 미리 준비하는 계획성과 성실함이 부족했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마음을 터놓은 대화 덕분인지 P는 불편한 주제인데도, 나의 생각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하지만 P는 말했다. “제게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책임감에 대하여 오랫동안 설명해야 했다. 책임감에 대한 그와 나의 이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그에게 “책임감이 필요하다”라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책임감 있는 팀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하여 사례를 들어가며 묘사하듯 이야기했다. 그제야 P는 자신이 생각하는 책임감이 리더에게 요구되는 책임감의 정도와 모양에 미치지 못함을 이해했다. 그는 덧붙였다. 사례로 설명할 때에야 비로소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개념을 전달했다고 하여 교육이 이뤄졌다고 착각하는 교사들,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했다고 하여 그 비전이 공유되었다고 착각하는 리더들이 많다. 사전 이해와 지식이 다를 경우, 단순한 개념 전달은 교육과 비전의 공유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개념이 눈에 그려질 때까지 혹은 무엇을 행동해야 하는지 알게 될 때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어야 한다. 글의 서두에 워렌 베니스와 존 맥스웰의 말을 빌려 신뢰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신뢰가 실제 삶에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하여 보여주지 못하면 신뢰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요컨대, “신뢰가 중요하다”라는 주장으로는 신뢰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사람에게 신뢰에 대하여 아무 것도 가르쳐 줄 수가 없다.

 

이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스토리다. 개념이 삶에서 어떤 모양인지를 보여주려면 스토리를 들려주어야 한다. 스토리는 개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미지를 만들어내어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김상근 교수는 자신의 저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에서 스토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리더에게 필요한 덕목을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책이 가진 4가지의 훌륭한 장점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대목이다.

 

『사람이 마음의 얻는 법』이 가진 4가지 장점

 

첫째, 메디치 가문의 역사적인 인물들은 리더의 자질을 논의하는 데에 아주 적절했다. 최고의 리더십을 보인 ‘코시모 데 메디치’, 인재를 소중히 여기고 문화 예술을 부흥시켰지만 리더로서 결정적 실수를 한 ‘로렌초’, 의리와 신용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메디치 가문의 창업자 ‘조반니 디 비치’의 이야기는 리더가 리더십을 얼마나 잘 발휘했는지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여주었다. 생생하고 유익한 이야기였다.

 

둘째, 책은 리더십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존 맥스웰은 “사람들은 리더를 수용해야 리더의 비전을 수용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리더’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순간 이미 리더가 아니기 때문이다. 메디치 가문의 역사는 신뢰 수호의 역사였다. 책은 말한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고 신뢰를 지키라고. 언제나 대중의 편에 서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정신을 가지라고.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고. 리더십에게 사람들의 신뢰는 곧 생명이다.

 

셋째,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 그리고 리더로서 성과를 내는 일의 균형을 이뤄낸 점도 훌륭했다. 신뢰는 성품과 역량의 균형으로 극대화된다. 성품이 매우 훌륭하지만 실력이 없는 의사에게 중요한 수술을 맡기기는 힘들고, 실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도덕성이 결여된 펀드매니저에게 돈을 맡기기도 힘들다. 책은 메디치 가의 리더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낸 사례뿐만 아니라, 리더가 성과를 달성할 만한 역량을 가져야 함을 주장한다. 시대의 흐름을 파악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실행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우아한 도덕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는 일의 중요성도 놓치지 않았다.

 

넷째, 스토리를 통하여 리더십의 중요한 키워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개념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를 통해 전달했다. 저자는 오랫동안 유럽의 시대정신을 추적해 온 학자다. 오랫동안 16세기 동서양 문화사상의 원류인 르네상스 예술을 연구했다. 흥미로운 역사 스토리를 들려주며 독자가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여기서의 공감대란, 감정적인 동질감이 아니라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밑그림을 말한다. 이러한 밑그림 위에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가치들을 설명했다. 책의 훌륭한 서술 방식 덕분에 나는 개념을 얻은 것이 아니라, 리더로서의 나는 부족한 점과 비전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은 감동적으로 읽혔다. 가장 감동했던 대목은 위대한 리더 ‘코시모’가 카라라에서 열리던 종교회의를 피렌체로 옮겨 개최한 사건이었다. 이를 위한 비용을 전액 부담하면서까지 추진한 것은 피렌체와 시민들에게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종교회의의 장소 변경은 서로 다른 두 문화의 만남을 이끌었고, 코시모의 의도대로 사상의 대융합을 이뤄냈다.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플라톤 철학이 주도하고 있던 동방 비잔틴 교회와 라틴어를 사용하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사상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서방 카톨릭 교회”가 피렌체에서 만난 것이다. 나는 코시모의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자신의 판단대로 일을 진행하는 추진력에 매료되었다.

 

사실 여민동락, 융합, 신뢰 등은 우리가 많이 들어 왔던 단어들이다. 익히 알고 있던 단어로 독자를 감동시키는 저자야말로 내공 깊은 이다. 우리의 삶을 도약시키는 것은 새로운 비결보다는 근본 원리와 기본적인 가치를 실천하는 일이다. 이 책은 리더들이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무엇을 실행해야 하는지를 (개념이 아닌) 스토리를 통해 훌륭하게 ‘보여’ 주었다. 우리는 ‘들은’ 것보다 ‘본’ 것을 더욱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 이 책의 키워드를 많이 들어왔더라도 일독할 만한 충분한 이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전문가/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ceo@younicon.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보보



- 김영하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리뷰


『오빠가 돌아왔다』는 김영하의 단편 8편을 묶은 책입니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고, 김영하는 이미 한국 문단을 이끄는 주역 중의 한 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김영하의 소설을 처음 읽은 것은 2010년도 가을입니다. 이제서야 읽게 된 것은 문학의 유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다분히 시간의 유한성 때문이랍니다.

읽고 싶은 책도 많고, 부지런히 읽어오기도 했지만, 항상 읽을 책들은 제가 독서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압도해 버립니다. 희망 독서 리스트를 들여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시간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유한함이지요.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기에는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런 유한성이 있기에 시간을 효과적으로 경영하는 맛이 있기에 도전적이기도 합니다.

8개의 단편을 읽고 간단히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 은 저의 영감을 자극한 정도를 표시한 것입니다. 재미를 표시한 것은 아닙니다. 김영하의 단편은 거의 모두 나를 즐겁게 했으니까요. 간혹, 이게 뭐야? 하는 의문이 든 단편이 있었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의문이 든 작품에는 별표를 달지 않았고, (나의 가용 시간이 많지 않아) 리뷰도 생략했습니다. 별표의 숫자가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점을 오빠가 돌아왔다의 리뷰에서 누나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밝혀 두었습니다.


오빠가 돌아왔다 (이하, 오빠) ★
첫인상이 불편했다. 이를 테면 이런 문장들이 그랬다. "(아빠가) 가끔 저렇게 오빠한테 개기다가 두들겨 맞는 걸 보면 정말 구제불능이다. 개도 몇 대 맞으면 꼬리를 내린다는데 저 아빠라는 인간은 똥개보다도 지능지수가 낮은 게 아닐까 가끔 의심스럽다."(p.10)
소설은 재밌었지만, 책에 실린 8편의 단편 중 별표 순위로는 6위였다. 한편, 오빠를 함께 읽기로 한 동네 누나는 오빠를 제일 재밌는 단편으로 꼽았었다. 내겐 6위였는데, 누나에게는 가장 와 닿았던 작품이라니! 전화를 걸었다. 내가 불편했던 문장을 읽어 주었더니, 누나는 이 문장보다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의 주인공을 보며 더 답답했단다. 하하!  <엘리베이터>는 내가 가장 유쾌하게 읽었던 작품인데! 기분이 묘하다. 나에겐 가장 유쾌했던 작품을 누나는 가장 답답하다 하시니, 이건 뭘까? 하는 즐거운 의문이 들었다. 모든 독자의 마음에 가서 닿을 수 있는 김영하의 힘인가! 놀라울 만큼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성에서 온 삶의 신비인가!

참고로, 누나는 돌아온 엄마의 심정을 깊이 공감했다. 여자를 데리고 들어 온 스무살 아들, 중학생 딸의 어미 노릇을 하러 들어 온 모습에서 뭉클함을 느꼈단다. 나는 이 책으로 독서토론회를 한 적이 있는데, 오빠를 좋았다고 꼽았던 이들도 서로 다른 이유로 좋아했다. 그 중에 중년 부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누나의 이유를 듣고 새롭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었다. 경험이 책의 해석을 풍성하게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사 ★★
먼저 밝혀 둘 것이 있다. 나는 이사 임박자다. 이사할 집을 구하기 위해 올해 봄부터 수원 조원동, 송파구 송현동과 석촌동의 여러 집을 살펴보았다. 인천 삼산동과 남양주 진접지구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8개월 전부터 이사를 준비해 왔는데도, 아직 이사 완료자가 아니라 이사 임박자다. 엄밀히 말하면, '임박'이라는 표현보다 '희망'이 어울릴 것이다. 아직 집을 구하지 못했으니까. 그렇다. 나는 어서 이사하고 싶다. 그런데 아직 못했다.
김영하의 단편 <이사>는 내가 왜 이사를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나는 책이 망가질까 봐, 혹은 책 한 박스를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이 많은 책을 옮겨 달라고 인부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미안해서 수개월 동안 이사를 못하고 있는 게다. <이사>는 나의 개인적인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 참 즐겁게 읽혔다. 하지만, 별 두 개를 주게 된 것은 즐거워서가 아니다. 2가지 이유 때문이다.

1)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사'라는 행위를 과연 왜 하는 것인지 생각하게 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오직 분명한 한 가지는 그가 전날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잠들게 된다는 것뿐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이사라 한다."(p,71) 
사람들은 왜 이사를 할까? 동물들도 이사를 한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이사가 동물적 본성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뭘까? 이사라는 실존적인, 살아가면서 여러번 하게 될 필연적인 행위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 주어 고맙다.

2) 살의를 느낀 진수가 별표의 두 번째 이유다. <이사> 주인공 진수는 '여간해서 언성을 높이지 않는' 얌전한 사람이다. 진수 집에 들이닥친(!) 인부는 그런 진수가 큰 소리를 치게 할 정도로 거칠고 무례한 사람이었다. 진수는 시종일관 한 두 번 큰소리를 칠 뿐 이사가 끝날 때까지 내내 침착한 편이었고, 인내하는 쪽을 택했다. 그러나 진수는 그 무례한 인부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두어 번 느꼈다. 물론 일시적인 충동이고 살의보다는 분노에 가까울 수도 있지만, 반복적이긴 했다. "노란 조끼가 장롱을 들여놓다가 새로 깐 장판을 세 군데나 찢어 놓았을 때 진수는 다시금 새로운 살의를 느꼈다." (p.66) 나는 아버지를 용서한 이후로 '살의'를 느낀 적이 없다. 간혹 때려주고 싶다는 충동은 있었지만,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시적인 살의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새삼 일깨워준 것이 있었으니, 영화 <공공의 적>이 그랬고, 김영하의 소설이 그랬다. 고마운 일이다. 나는 세상을 보다 온전하게 이해하고 싶으니까. 내가 원하지 않는 대목을 걷어내며 이해한 세상은, 온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이해 방식은 진짜에 접근하지도 못한다.

보물선 ★
386세대의 대학 생활을 묘사한 대목으로 시작되는 <보물선>은 첫 장부터 흡입력이 있었다. "그들은 '역사연구회'라는 별로 유서 깊지 않은 동아리에서 만났는데~ '역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p.75) 386세대 대학 동아리의 진실을 담은 묘사를 통해 웃으며 책장을 넘겼다.

소설은 형식과 재만의 삶을 다룬다. 형식은 진지하고, 순수하다. 그는 동아리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진짜 역사를 공부했다. 졸업하더니 홀로 가두 투쟁을 했다. 그는 스스로 공부하여 얻은 신념대로 살았다. 하지만 현실의식이 빈약하여 그의 삶은 엉뚱한 방향, 이를 테면 이순신 장군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따온 것이라 믿고 동상 제거에 힘쓰며 살아간다. 형식은 어리석을 만큼 현실 인식이 빈약한 것이다. (언급했듯이 형식의 힘은 진지와 순수다).

재만은 돈의 흐름을 읽을 줄 알고, 기회가 있는 곳에 머무를 줄 안다. 게다가 돈의 흐름이 끊어지는 지점, 기회가 위기로 바뀌는 순간을 알기에 제때 빠질 줄도 안다. 재만은 '역사연구회'에서 은근슬쩍 빠져나가 실리를 찾았고, 사회에서도 잘 치고 잘 빠져서 주식 투자로 크게 성공한다. 성공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비리와 술수를 마다하지도 않는다. 비리와 술수가 기회와 돈을 안겨 준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재만의 힘은 영리함이다. (하지만, 영리함이 순수와 정의로부터 멀어질 때 영악함이 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 재만과 형식이 사회 생활을 하다가 만나는 대목부터 소설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형식은 여전히 진지하고 현실 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듯 했다. 그는 보물선을 찾고 있었고, 보물선 사업에 투자할 투자자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만 일당을 만난다. 재만은 주식 투자, 정확하게는 몇 번의 작전주로 큰 돈을 벌고 있었다. 재만 일당은 보물선에는 관심이 없다. 형식은 보물선을 믿고 찾아나선 것이고, 재만은 그걸 재료로 한 작전을 하여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서로 힘을 합친다. 이 절묘한 협업으로 재만은 큰 돈을 벌지만 형식은 보물선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투자자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사회적 성공의 잣대로 보면 볼 때, 재만과 형식의 삶은 어떠한가? 인생의 아름다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또 어떤가? 재만과 형식 중 어느 한 사람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두 사람 모두 어느 한 가지를 결여하고 있다. 형식은 진지하고 순수하나 현실인식이 없고, 재만은 세상의 이치에 밝아 돈을 많이 벌지만 비도덕적이다. 두 사람의 좋은 면을 조화롭게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어리석지 않을 정도의 진지함, 영악하지 않은 영리함의 조화를!

소설은 세기 말의 코스닥 열풍과 작전주가 횡행했던 시절의 뒷 이야기를 잘 보여준다. 말로만 들었던 작전주에 얽힌 비화는 주식 관련 서적에서도 접하지 못한 흥미로운 읽을거리였다. 무엇보다 형식과 재만이 보여 준 대학에서의 모습과 사회에서의 모습이 일관적이어서 감탄하며 읽었다.

너의 의미 ★★
삼류 감독과 신인 소설가의 '못말리는' 사랑 이야기다. 이 러브 스토리의 방점은 '못.말.리.는'에 있다. 아무도 못말리는 두 사람의 닭살 애정 행각이 넘치는 러브 스토리가 아니다. 지나치게 순박한 20대 여인의 사랑이 못말릴 정도로 답답하다는 뜻이다. 남자는 38살, 무명의 영화감독으로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배우와 잠자리를 함께 하는 속물이다. 배우와 섹스 한 번 했다고 '속물'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무자비하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판단하지는 않는다. 속물이라고 하기에 충분한 조검을 조건을 갖췄다. 남자는 뮤직비디오 한 편을 여러 번 우려 먹는다. 그의 말이다.

"그 한 편 덕분에 벌써 세명의 배우지망생과 두 명의 모델들을 침대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예쁜 여자가 좋다. 쓰레기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면전에서 하지만 않는다면."


이 남자 속물 맞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니 열받게도 순진하고 예쁜 신인 소설가가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이 열받음이 왠지 언제 한 번 느껴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영화 <연애의 목적>을 볼 때의 느낌이었다.) 속물을 사랑하게 된 여자의 나이는 스물 다섯, 예쁘고 착하다. 밝히는 그 남자가 예쁘다고 했으니 평균 이상의 외모일 것이다. 그녀는 남자를 사랑한다. 이렇게 순진한 여인이 저런 속물을 사랑하게 되다니! 열받는다. 아니, 어쩌면 순진하니까 속물을 사랑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남자의 속물스러움과 여자의 순진한 사랑을 잘 묘사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를 묻는 듯 했다. 제목도 '너의 의미'다.

여자가 쓴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은 사랑에 빠졌는데, 왜 하필 그 여자를 사랑하는지 끝내 납득하지 못했다. 심사평에 의하면, 이 신인의 소설은 "왜 하필 그 사람인지를 설명할 수 없는 데에서 오는 고통"을 다룬 소설이란다.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왜 그 사람이냐고 합리적인 이유를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까?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점을 지닌 파트너에게 매력을 느꼈다가, 결혼하면 매력을 느꼈던 바로 그 점 때문에 힘들어한다. 이 순진한 여자 역시 자기와는 너무나 다른 속물에게 매력을 느꼈지만, 만약 그 남자와 결혼에 이르게 된다면, 힘들어지지 않을까? 그제서야 남자의 매력이 새로워서 동경한 것이지 매력의 실체를 몰랐던 것이라고 한탄하지 않을까?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그래서 작가에게 '너의 의미'의 두 남녀가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써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기도 했었다.

크리스마스 캐럴 ★★
"인생을 살다가 발목 잡힐 일을 한 적 있어요?" 올해 초, 어느 중년 부인으로부터 받은 질문인데, <크리스마스 캐롤>을 읽고서 그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22살 때였나? 오락실에서 거대한 덩치의 깡패 같은 사내를 때리고 도망쳤던 일(그는 무례했고, 나는 그에 대한 정당한 응징을 한다고 시도한 일이다. 다행히도 잡히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독서실 친구들이랑 슈퍼마켓에서 미니초코파이 한 상자를 훔친 일, 헤어지는 여자 친구에게 험한 말을 했던 일 등이 떠오르지만, 이것은 발목 잡힐 정도는 아니다.

질문에서 말한 발목 잡힐 정도의 일은 사회적 지탄을 받을 정도의 잘못을 의미한 것이리라. 감옥에 갈 정도의 일이라면, 분명 발목 잡히는 일이 될 것이다. 감옥에 갈 일은 아니더라도, 친한 친구에게 말하지 못할 정도의 일이라면 이 역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을 받았던 당시, 나는 답했다. "있지요."

<크리스마스 캐럴>은 발목 잡힐 만한 일을 저지른 세 남자의 이야기다. 발목 잡힐 일은 그 본질상 영원히 들통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허나, 소설 속의 세 남자는 동시에 들통의 위기 속에 처한다. 세 남자는 모두 가정을 가진 중년의 남자다. 젋었을 때, 그들은 진숙이라는 한 여자와 몸을 섞은 묘한 사이다. 당시 진숙은 조금 '띨한 걸레'였다. 욕망을 추스리기 힘들었던 20대 초반의 남자들에게 진숙은 좋은 상대였다.

소설은 세월이 흘러 잘 살고 있는 세 남자에게 진숙이 찾아오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뤘다. 사건이라 함은 십수 년이 지난 후, 독일에서 살던 진숙이 잠시 한국에 들어왔는데 살인을 당한 것이다. 진숙이 살인을 당한 날에 세 남자를 만났으니, 자연스럽게 세 명의 남자는 용의자 후보가 되었다. (누가 범인인지는 직접 읽어 보시길.)

남자들은 한동안 잊고 지냈던,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던 '발목 잡힐 만한 일'을 떠올려야만 했다. 그리고 소설 내내 그것이 발각될까 봐 불안해 한다. 그들은 진숙의 죽음을 슬퍼할 여유가 없다. 살인 혐의를 벗어나기도 해야겠고, 젊은 날의 과오에 대한 죄의식을 떨쳐 버리기도 해야 했다. 여유 없기는 성적 충동이 강렬했던, 그래서 과오를 저질렀던 젊은 날의 모습과도 같았다. 한국으로 돌아 온 진숙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십대 초반의 너희들은, 기분 나쁘게 듣지 마, 어차피 지나간 얘기잖아, 그래, 음, 똥 마려운 강아지들 같았어. 너희들은 남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었어. 욕망에 허덕대는 스스로를 혐오하느라 다른 누군가를 동정하고 자시고 할 여력도 없었지. 개폼을 잡고 내 자취방에 기어들어와 십 분 만에 사정하고 도둑놈들처럼 기어나가면서 자기들이 무슨 게릴라나 된 줄들 알고 있었지."

이렇게 말하는 진숙에게, 세 남자는 살의를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진숙이 피살되었을 때, 모두 자기 손을 찬찬히 살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내가, 나도 모르는 새에 칼질을 해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이런 죄의식을 다룬 소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하게 되었다.

진숙은 살해당하기 전, 세 남자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는데, 소설은 한 남자의 부인이 크리스마스 카드를 찢어 버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카드는 쓰레기통에 들어갔지만, 음악이 내장된 칩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은 멈추지 않았다.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오늘 밤에 다녀가신대." 아내는 쓰레기통을 뒤져 음악칩을 찾아내 베란다 밖으로 던져 버린다. 하지만, 캐럴은 배터리가 소모될 때까지 끊임없이 울려퍼질 것이다. 발목 잡힐 일을 저지른 적이 있는 이들을 괴롭힐 음악이.  

"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 앤지."
세 남자에게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갔다.
나에게도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갔었다.
그 순간이 생각나서 나는, 이 소설이 얼마간 무섭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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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나는 책과 독서에 관심이 많다. 누군가를 만나면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를 묻기도 하고,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아는 경우에는 이렇게 묻는다. 어디까지 읽었어요? 전화통화로도 종종 묻는데, 수화기 너머로, 두번째 것까지 읽었어요, 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김영하의 단편집에서 <엘리베이터를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와 <사진관 살인사건>을 읽었다는 말이다. 뭐가 더 재밌어요? 첫째 건 답답했고 두 번째가 재밌었어요. 그의 대답을 나는 이렇게 해석했다. 첫번째 소설은 이해가 잘 안 되어 답답하셨구나, 라고. 그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주인공이 선생님을 닮은 것 같아요." 이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나는 그 책을 읽지 못했으니.


6권의 책으로 구성된 김영하 컬렉션을, 나는 지날 달에 샀었다. 『엘리베이터를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도 그 중 하나였고, 『오빠가 돌아왔다』의 감동으로 인해 기대감으로 <엘리베이터>를 펼쳤다. 동해 바다가 내다 보이는 호텔에서, 한가로이 드러누워 책을 읽었다. 단편을 중간 즈음까지 읽고 나서야 그가 <엘리베이터>를 읽고서 느낀 답답함은 이해불가에서 온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캐릭터가 지닌 성격에서 느껴지는 그야말로 답답함 혹은 안쓰러움의 감정이었다. 그는 주인공에게서 답답함을 느꼈지만, 나는 주인공에게서 깊은 공감을 느꼈다. 리뷰는 매우 개인적인 기쁨과 감상으로 흐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어느 남자의 하루다. 24시간도 아닌, 아침부터 그가 귀가한 저녁까지다. 그 날은 주인공에게는 참 이상한 하루, 모든 일이 뒤틀어져버리는 지극히 재수 없는 하루다. 왕재수(없음)의 시작은 부러진 면도기로 인해 수염을 반만 깎은 상태로 출근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엘리베이터의 고장이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주인공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목격한다. 출근 시간이 빠듯하지만, 주인공은 남자를 살짝 건드려 생사를 확인한 후, 뛰어내려가면서 119에 신고하겠다고 소리친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신고하려고 핸드폰을 빌려보지만(주인공은 핸드폰이 없다), 돌아오는 것은 이상한 눈초리 뿐이다. 그 사이 버스가 와서 주인공은 버스에 올라탄다. 지갑을 놓아두고 온 것을 알게 된 것은 버스카드를 꺼내려고 바지 뒷주머니를 만질 때다. 기사에게 사정을 봐 달라고 부탁하지만, 어림없다. 그 때, 반대편 트럭이 주인공이 탄 버스를 들이받는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와중에도 주인공은 도착한 경찰에게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 이야기를 하지만 도무지 믿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재수없음의 시작이다. 잠시 후, 사고 버스에 탔던 승객들은 다음 버스를 타게 된다. 이 때, 주인공은 신이 났다. 어느 정도인가.

"다행한 것은 앞 버스 승객들에겐 버스 카드 제시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다소 비좁긴 했지만 공짜 아닌가. 지갑을 가지러 다시 십오층까지 걸어올라가는 것도 끔찍했고 올라가면서 오층과 육층 사잉에 끼여 있는 남자의 발을 다시 봐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에게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경비는 순찰 중이고 사람들은 핸드폰을 빌려 주지 않고 공중전화는 고장이고 경찰은 얼굴의 수염이 반만 있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하란 말인가."

나는 이 장면에서 매우 웃었다. 수염을 절반만 깎은 주인공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상황이 딱하기도 했다. 두 버스의 승객이 하나에 탔으니 버스 안은 매우 비좁다. 한 남자의 손이 주인공을 가로질러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다. 그 바람에 주인공이 치한으로 오해받아 누명을 뒤집어 쓰고 버스에서 추방 당한다. 이제서야 이 단편이 주는 답답함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던 게다. 왜 그 누명을 자기가 감당한단 말인가! 답답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도 재수없음의 연속이다. 회사에 도착한 주인공이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췄다. 주인공은 한 여사원과 함께 갇혀 버렸다.

주인공은 가까스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여자를 먼저 내보낸다. 그러는 와중에 옷은 걸레처럼 구겨지고 더렵혀진다. 여자가 관리인에게 신고를 해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함께 갇혔다는 것이 민망해서인지) 여자는 주인공을 위해 아무 일도 해 주지 않았다. 한참 후, 관리인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한 주인공. 그제서야 옷이 더러워진 것을 발견하고 생각한다. '아 그렇다면 먼저 올라간 미스 정도 옷의 앞쪽이 이렇게 더러워져버렸겠구나. 그녀가 좀 측은해졌다. 나는 남자니까 괜찮지만 그 여자는 어쩌나.' 하고. 그리고, 관리인에게 말한다. "지금이라도 꺼내줘서 정말 고맙다"고.

사무실에 갔더니 미스 리가 하는 말. "아니 정대리님. 하수도로 출근하셨나봐요? 거울 좀 보세요." 머리는 엉겨붙어 있고 면도는 반만 되어 있고, 어깨엔 여자의 하이힐 자국이 패였고, 양복은 기름으로 더러워져 있고 구두는 엘리베이터 안에 있다. 주인공은 중요한 회의에 있었고, 불쌍하게도 이런 차림으로 참석한다. 아, 가여워라! 회의가 끝난 후, 구두를 찾으러 1층 안내 데스크에 갔지만, 경비원들은 주인공을 잡상인으로 오해하고 회사 밖으로 들어낸다. 주인공을 구해 준 이는 동료인 한 대리. 주인공은 "한대리, 내가 점심살께"라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한다. 거기에 잡상인으로 오해한 경비원들에게 대한 원망은 없다.

아직까지도 주인공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를 생각한다.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어 보일 만큼 자신의 처지보다는 그 남자를 생각한다. 온갖 수모을 받고 고생을 당하면서도, 그야말로 최악의 하루를 보내면서도 주인공은 그 남자를 계속 생각한다. 119에 신고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가로막히면서도 말이다. 주인공은 그 날 퇴근 길에서도 같은 아파트 사람들에게 묻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사람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인터폰으로 경비에게 묻는다. 하지만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 전화인 줄 알았던 경비는 "밑에 공고도 안 보고 다녀요?"라는 말을 차갑게 내뱉고 끊어버린다.

아, 그래서 지금도 나는 궁금하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단편은 이렇게 끝난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 역시 그 남자의 안녕이 궁금했다. 주인공의 상황이 잠시 답답하긴 했지만, 주인공을 향한 공감과 그 남자에 대한 안녕이 더 궁금했다. 전화로 들었던 말처럼, 주인공은 나를 닮았다. 아니, 나는 주인공과 매우 닮았다. 상황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태도와 대화를 보며 많이 놀랐다. 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소설을 답답함보다는 크게 웃으며 짜릿한 공감을 느끼며 읽었다. 그에게 답답한 소설을 읽으며 내가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나와 주인공이 닮아서일까, 더 큰 공감이 되어서 웃은 것일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확실한 이유가 궁금하다.  

대단한 김영하(!)다. 독자는 김영하가 그려낸 다양한 캐릭터에서 자신을 만날 것이다. 물론 김영하의 소설에는 나와 전혀 다른 인물도 많이 등장한다. 김영하는 그저 행동만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마음의 지형도까지 그려냈다. 엘리베이터의 주인공에게서 내가 전율했듯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신을 닮은 캐릭터를 보고 전율할 것이다. 나는 엘리베이터의 주인공이 나의 마음과 매우 비슷하여 한껏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었다.

주인공이 화를 내지 않은 대목, 화를 내는 대신 감사의 마음을 전한 대목은 <엘리베이터>의 백미다. 그 대목에서 화를 냈다면, 나는 관심을 잃었을 것이다. 화를 내지 않음으로 주인공의 캐릭터는 '진짜'가 되었다.  주인공을 닮은 이들이라면, 모두 자신만의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가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교대역 3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계단에 앉아 껌을 팔던 할머니의 안녕이, 선릉역 5번 출구 앞에서 더풋샵 광고지를 나눠주던 씩씩한 청년의 안부가, 동훈빌딩에 건강음료를 배달하는 젊은 여인의 근황이 궁금하다. 그리고 김영하가 그려 낸 인물들의 높은 개연성과 정확한 서술에 감탄한다.

내 책을 읽은 어느 독자의 리뷰 첫 머리가 기억난다. "
이 책은 친절하면서도 정직하며 이름모를 독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으로 가득차 있다." 혹 누군가가 불특정 다수를 향한 애정이 어떠한 것인지 궁금해한다면, 직접 대답하는 대신 이 책 <엘리베이터>를 소개하면 되겠다. 김영하 소설을 읽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유형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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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더다의 『북 by 북』을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독서의 즐거움에 빠졌고, 책장을 덮을 즈음에는 저자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독서 리뷰를 적었습니다. 서평은 무엇보다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데, 길기만 했지 재미를 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떤 독서 여정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알 수 있는 리뷰입니다. 마지막 대목에서는 사상에 대한 이야기가 지루하게 이어질 것 같아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언젠가 더 재미있게 말할 수 있을 날을 기약하면서 말이죠. ^^


2001년 가을, 이제 막 점화된 내 독서 불꽃에 뜨거운 화력(火力)을 더해 주었던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1997년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단계 진보한 독서를 하게 되었다. 독학의 방법론에 눈을 떠 독서를 통해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보다 열정적으로 독서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을 토대로 하고 여러 독서 관련 책을 정리하여 살을 붙여 후배들에게 독서 노하우를 전해 주었던 것을 훗날 내 책을 쓰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도 여러 독서 노하우를 담은 책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흥분과 열정을 안겨 주지는 못했다. 그들은 다치바나 다카시 만큼의 독서 열정이나 전방위적인 독서 체험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읽었던 책 중에는 표정훈의『탐서주의자의 책』, 모티머 애들러의『생각을 넓혀 주는 독서법』,  에밀 파게의 『독서론』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랬다.


그러다가 2010년에 마이클 더다를 만났다. 사실, 그의 책은 일이 년 전에 『오픈북』을 먼저 읽기 시작했(
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관두었)다. 재미 없었던 기억이다. 혹은 끈기 없는 내 성정 때문이거나. (아마도 이렇게 읽다가 관둔 책이 완독한 책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오픈북』은 책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저자의 독서기가 지나치게 상세하게 기술되어 재미 없었다. 청소년들에게나 유익할 듯 한 책이라 생각하며 손을 놓았었다. 그런데 지금의 난 그 행동을 의아해하고 있다. 마이클 더다의 『북 by 북』은 나를 매우 흥분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2010년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이 책을 읽었다. 글을 읽는 속도가 느리고, 집중력이 평범한 내게는 단숨에 읽은 책에 속한다. 책은 지적 자극도, 각 주제마다의 깨달음도,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도 충분했다. 책장을 덮을 즈음엔, 다치바나 다카시에 이은 나의 두 번째 역할 모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반갑다. 다치바나 다카시에 흥미를 잃은 지가 오래 되었으니.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읽으면서, 점점 그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대목이 많아졌다.)


첫인상과 끝맺음이 좋았다

책은 교수이자 평론가 (공격적인 서평가로 알려지기도 한) 마빈 머드릭의 말로 시작한다.
"운명을 함께 하느니 서로 간섭하지 않고 공존하는 게 낫고, 풀이 죽어 있느니 활기찬 게 낫다. 동정할 바엔 사랑하고, 대체 가능한 것보다는 독보적인 게 낫고, 똑같은 생각보다는 다른 의견이 낫다. 이해관계보다는 원칙이 먼저이고, 원칙보다는 인간이 먼저이다."
나는 이 말이 참 좋았다. 특히 마지막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마이클 더다는 이 말에 대해 추가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사상을 대변하는 말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다시 인용문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유명한 말, "심판의 날에 우리는 무엇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믿음의 '실천'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윤리가 담긴 말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는 유명한 기독 고전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다.) 나는 이 말도 좋았다. 책벌레보다는 리더(Leader)가 되기를 꿈꿔온 나의 독서철학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독서하는 것 자체가 곧 실천일 수 있기에 '대부분'이라고 표현했다. 책을 읽고 평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이들 말이다. 그들에게는 읽기와 쓰기가 곧 실천인 것이다. 그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중시하는 저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삶에는 독서 이상의 것이 있고, 독서 말고도 배울 수 있는 원천이 많다. 얼마 전, 군 입대를 앞둔 친구가 자신의 군생활 목표를 '300권 독서'라고 하길래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군대 목표가 '300권 독서'라면 너무 많은 듯 합니다. 책만 읽기에는 군대라는 장소가 특별한 곳이니까요. 우리는 살면서 늘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기 마련입니다. 계급이나 취향 등이 비슷한 사람들을 말이지요. 그러다가 전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군대가 그런 곳 중에 하나입니다. 전국팔도에서 몰려 든 이들, 나와 다른 말투를 쓰고 들어보지도 못했던 학교를 나온 이들이지요. 군대 밖에서는 전혀 만나지 못할 이들을 통해 우리는 사고의 전환을 하기도 하고, 진짜 세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독서의 목적이 삶과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 함이라면, 군대에서는 살을 부대껴 가며 그들과 교류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읽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책 뿐만이 아니라 군대에서 만난 사람들도 읽으라는 게지요. 300권 독서는 그럴 시간이 없을 정도의 목표니까요."

책의 세계에 매료되다

"지난 오십 년 동안 나는 많은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 그냥 많은 시간이 아니라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용문을 제외한 저자가 쓴 첫 문장이다. 그는 어린 시절에는 그저 읽었고, 대학원생이었을 때에는 비교문학 전공자로서 읽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전문서평가이자 칼럼니스트로서 책을 읽었다. 누구 못지 않은 성실한 독서가요 비평가라는 사실은 퓰리처상 수상(1993년 비평부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북 by 북』을 읽으며 직접 느낄 수도 있다. 책은 10개의 주제마다 좋은 문장을 가려 뽑은 사화집(anthology)의 형식에다 주제에 대한 저자가 쓴 몇 개의 글, 그리고 주제별 고전들이 추천되어 있다.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챕터에서는 명문들을 꼽씹는 즐거움이 있고, 주제에 대한 마이클 더다의 통찰을 맛볼 수도 있다. 게다가 저자가 가려 뽑은 추천 도서 목록을 얻는 기쁨까지 있다. <4장 사랑의 책>을 통해 예를 들어 본다. 사랑에 관한 잠언들이 이런 식으로 소개된다.
 
사자와 짝지어지는 암사슴은 사랑 때문에 죽게 마련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첫사랑의 마법은
언젠가는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 벤저민 디즈레일리

낭만주의는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며

사실주의는 그들의 실상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 존 업다이크


잠언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가 하면, 다음과 같이 저자가 여러 문헌들을 통해 익힌 지혜를 들려 주기도 한다.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시기는 매우 짧다. 열정은 곧 잔잔한 애정으로 가라앉는다. 아주 이상적인 변화다. 50퍼센트는 열정이 완전한 무관심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잔한 애정을 뛰어넘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운 좋은 부부가 있다. 그런 결혼생활은 본질적으로 둘이서 꾸려가는 문명 세계이며, 그런 세계에서 가장 큰 기쁨은 수십 년 동안 끊이지 않는 대화다. 남편과 부인 간의 섹스가 진정한 기쁨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며, 그런 섹스는 자식과 더불어 가정의 행복을 지탱하는 진정한 토대가 된다."  깊이 공감하여 별표 네 개를 주었던 문장이다.

그리고 사랑을 주제로 한 고전적 문헌부터 20세기의 훌륭한 소설들까지 소개한다. 사랑의 문학 중 걸작으로 꼽히는 사포의 시, 플라톤의 『향연』 중 사랑의 본질에 대해 토론하는 대목, 카툴루스와 호라티우스의 시선집, 아서왕 이야기, 흠모하는 페트라르카의 시, 존 던의 욕망적인 시 '침대에 막 누운 여인에 대하여' 등이다. 20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에 출간된 소설도 빠뜨리지 않았다. 제임스 솔터, 존 크롤리, 아룬다티 로이, 필립 로스, A. S. 바이어트. 에드먼드 화이트 등의 소설 10권을 소개했다. 이 책들 중 국내 번역된 책이 극히 소수인 것이 아쉽다. 인터넷 서점 등에서 확인해 보니,  A. S. 바이어트의 『소유』,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정도가 번역되었다. (국내 번역을 확인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편집자 혹은 옮긴이가 국내 번역 여부와 원제를 알려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
 
저자의 사상(?)에 동의하다

나는 아직 내가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 그것이 얼마나 유용한지 알지 못한다. 내 사고의 근원이 되는 세계관을 5가지 문장으로 정리해 두긴 했지만, 아직은 설익은 철학이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철학사를 공부하며 관심이 가는 사상가들을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염원이 있을 뿐, 아직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초, 와우팀원들을 대상으로 20시간짜리 철학 특강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중용, 칸트에게서 정언명령, 데이비드 흄의 회의론, 존 듀이의 실용주의 등에 대해 정리해 본 것이 무척 도움이 된 정도다. 이런 내용들이 내 안에 깊이 스며들고 잘 어우러지면 나도 일관되고 체계적인 세계관을 갖게 될 것이다. 언급한 내용들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화두들이고, 세계관의 얼개가 되어 줄 사상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나의 지적 수준이다.

신자유주의를 배격하는 노암 촘스키와 자본주의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닌 장하준 교수의 책들에 열광하는 정도로는 세계관을 정리할 수 없다. 그들이 B급 저자라는 것이 아니라(그들은 특A급 학자들이다), 열광하느라 성찰과 연구를 하지 못했던 나의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그들을 보다 깊이 있게 읽어내면서 경제학이나 사회학 사상가들의 책을 섭렵해야 한다. 이것이 스스로에게 진단한 지적 처방이다. 내가 갖게 될 자유주의 사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는 하이에크를 읽으며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하이에크의 반대편에 서서 그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겠지. 이처럼 '자유론'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지에 대하여 궁금하던 차였는데, 마이클 더다를 통해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사야 벌린이 구세주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사야 벌린은 시스템 설계자, 일원론적 이론가 등 우리는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고, '소극적 자유(negetive liberty)', 즉 개개인이 억압과 제약에서 벗어나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했다. 그러나 개혁가들과 광신자들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를 고집하며, 인간은 원하는 것은 선택하는 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것을 선택하는 데 자유로우면 된다는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노동자 계급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면, 현명하고 선견지명이 있다는 보호자들이 나서 무지한 프롤레타리아를 인도하고 재교육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벌린은 인간의 도덕적 주권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이런 관리통제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


마이클 더다가 설명한 이사야 벌린이다. 이어지는 내용(p.198~199)에 구구절절 동의하고 감동했다. 이 즈음하면 이사야 벌린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낼 수 밖에 없다. 아! 나의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내가 가지고 있다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일부는 잠과 식사 등 생리적 욕구에게 주어야 하고, 일부는 사회적 관계를 위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나는 욕망을 가진 존재다. 동물적 욕망 앞에서도, 나는 무릎을 꿇고 시간을 내어 줄 수 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욕망 가운데에는 호기심을 쫓아가는 지적 욕망도 있으니 결국 나는 인터넷 서점을 찾아가 이사야 벌린이 쓰거나 그에 관련된 책, 『고슴도치와 여우』,『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를 카트에 집어 넣고 말았다. 그리고 보르헤스 책 한 권과 마이클 더다의 원서까지 합쳐서 주문해 버렸다. 아! 요즘 자주 강림하신다. 책 지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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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더다의 책 『북 by 북』을 읽으며 자주 떠오른 책이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였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 덕분에 저의 2000년대 독서 생활이 풍성해진 것은 분명합니다. 세계관과 연구 분야가 달라 저는 다치바나 보다는 오히려 드러커가 좋다는 말을 제 책에서 한 적이 있지만, 지금까지의 독서 생활 면에서는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 다치바나 다카시입니다. 독학의 비결, 인터뷰어의 자세 등에서 특히 감동적인 배움을 얻었고, 독서가로서 쫓아갈 하나의 푯대가 되어 주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에, 그 책을 읽고 쓴 리뷰가 있어서 아래에 소개합니다. 문장의 어미와 형용사 정도를 고쳤을 뿐, 글을 새로 고쳐 쓰지는 않았습니다.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 씨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읽은 분들의 반응을 잘
정리한 바 있어, 그 내용을 옮겨본다.
"읽어 본 분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였다. 우선 다치바나가 대단한 독서광이고 특유의 독서 노하우를 지닌 범상치 않은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그의 독서술, 독서론이 일반인들에게는 부적합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책을 읽고 책을 집필하여 먹고사는 저술가나 저널리스트에게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문자향, 서권기의 세계를 주유하며 인류 선단의 지식정보를 갈무리하는 다치바나의 모습에서 감동마저 느껴지더라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인 분들 가운데는 자신의 독서 생활을 반성했다는 분도 있었고, 자기 방 서재의 책들이 달라 보이더라는 분도 있었으며, 책 세상에 대한 동경 내지는 그리움이 고개를 들더라는 분도 있었다."

나는 이 두 가지 반응 중, 단연 후자에 속하는 부류다. 『베스트셀러 죽이기』독자리뷰에 잠깐 언급한 것처럼, 나는 책을 무지 좋아한다. 『베스트셀러 죽이기』서평을 쓴 이후, 교보문고에서 또 4권의 책을 샀다. 불과 하루만의 일이다. 다치바나 씨와 비교하기에는 열정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열정의 순수함에서는 차이가 없다. 지금 내 방엔 다치바나 씨가 말하는 것처럼 각 분야별로 책이 50~60cm씩 쌓여 있다. 세 개의 책장에 책을 다 꽂고도 흘러 넘치는 책들을 둘 때가 없어서 이 곳, 저 곳에 쌓아 둔 것이다. 리더십, 경영, 금융, 사상, 과학, 철학, 사회학, 역사, 종교, 재즈, 문학, 영어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이다. 아직 각론을 깊이 파고 든 흔적은 없지만, 꽤 전방위적인 독서편력이다.

50cm이상 되는 책기둥(?)들만 10개가 넘는다. 작은 책장에 기대어 있는 책기둥 하나는 1미터가 넘는다. 경영서 중에 읽고 싶은 것들만 뽑아 놓은 것들이다. 이러한 기둥들이 책상 위의 공간까지 차지해버려, 나는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땐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서 해야만 한다. 게다가 자료를 모은다는 명목으로 신문더미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방은 온통 책 투성이다.

이러다보니, 당연 나는 다치바나 씨의 얘기가 마치 내 얘기인냥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들려 왔다. 이제 갓 인생을 배우려고 첫 발걸음을 뗀 젊은이에게 고명(高明)한 종교가나 학자의 말씀은 가슴에 팍팍(!) 와 닿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내가 가려는 길 최전방에 있는 다치바나의 얘기들은 모두 나에게로 와서 내 안으로 들어왔다. 다치바나 씨의 독서술, 독서론, 서재론은 내게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 표정훈 씨 말대로 '단 하나의' 모델은 아니지만, 분명 아주 고무적인 모델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그가 인터뷰를 할 때의 준비하는 모습과 고전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독학하는 방법과 책을 선택하는 요령은 당장 내게 꼭 필요한 말들이었다.(이 부분들이 특히 좋았다. 궁금하시면 읽어 보시라. p.10~20, 51~61, 64~81)  한 분야를 정복하기 위해 거금을 챙겨 서점에 가서 몇 시간을 투자해 고른 책을 싸들고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은 정말 가볍다. 양팔에 무거운 책을 든 발걸음이 정말 가볍다. 마음이 하늘을 날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는 지적인 사람이 되겠지, 라는 비전 날개를 달고서 미래를 날아다니는 것이다.

많은 독서가들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준 다치바나 씨에게 진한 고마움이 느껴진다. 다치바나는 책을 모으고, 아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사실 그는 책을 애써 소중히 다룰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속독법과 발췌독을 통해 그 책들을 읽어나감으로 실전(인터뷰, 글쓰기 등)에서 그 책들을 이용한다. 이런 점에서 표정훈 씨의 조언 "책을 읽는 리더(reader)에서 더 나아가 책을 부릴 줄 아는 유저(user)가 될 필요가 있다"라는 말이 적절한 표현 같다. 나 또한 '내 방에 책이 많다'로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라고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는 동시에, 내 가슴에는 읽은 책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는 다시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을 묵묵히 읽어나가는 성실한 독서가이고 싶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 독서를 (취미로서가 아니라, 전문가가 되려는 수단으로) 즐기는 이들에게 이 책은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독서가들에게 이 책,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하나의 학문 세계로 들어갈 때, 우선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 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밑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머리 속에 그리는 일이다. 그 학문 분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방법론에서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 학문으로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가? 이 '무엇을', '어떻게'라는 물음은 어떤 학문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더라도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다.

2001.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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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소박한 삶』을 읽고.


한 번 갔던 레스토랑이나 바(bar)에는 가고 싶지 않다. 좀 더 멋지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에 가고 싶다. 뭐, 새롭게 생긴 곳이 없나?

요즘 내 친구와 시내에서 만나면 이런 고민을 한다. 눈앞에 수많은 레스토랑이 있지만, 우리는 식사 한 끼를 근사하게 해결하고 싶은 욕망에 아무 곳에나 들어가지 않는다. 큰일이다. 혹시 허영심이라는 불필요하고 가치 없는 놈이 내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아닐까?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 소비 수준이나 가치가 소박한 삶과 거리가 멀거나, 삶의 의미를 잃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참된 삶의 의미, 특히 소비가 인생의 목표인양 '비곗살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판을 치는 시대에서 한 번쯤은 내가 가는 길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현대인의 그릇된 소비 성향과 물질적인 것으로 비대해진 인생의 부조리를 일깨워주는 『소박한 삶』은 나에게 그런 필요를 채워주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소박한 삶』은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며 살아왔다고 얘기한다. 소비는 현대인들의 당연한 여가 생활이 되어버렸다(우리는 기분이 좋거나 나쁘다는 것만으로도 카드를 긁는 합당한 이유가 된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미 '우리는 더 이상 소비를 하며 잃어 가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 (p.7) 레기네 슈나이더의 말대로 우리는 물건을 살 때마다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정말 필요한 물건일까? 잠시 동안은 마음을 달래주지만 장기적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물건은 아닐까? 내 구매욕이 뭔가의 조종을 받은 결과일까, 아니면 내 주체적인 판단에 의해서일까?"

지나친 구매욕은 그릇된 가치관에서 기인한 것 같다. 자신의 존재 가치가 소유함의 정도에 비례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존재 가치와 소유 가치는 전혀 별개의 가치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광고 '선전대로 갖추어 입고 남들 앞에 나서고 싶어'하고, '쇼핑을 위대해지는 느낌과 결합시켜 고상하고 스케일이 큰 특정 그룹에 속한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이러한 쇼핑 중독증은 '새로운 유형의 가난한 사람들'을 탄생시켰다(p.66). 많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과소비로 인해 지게 된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독일의 200만 가계가 위험수위의 빚을 지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이는 우리 나라의 상황을 얘기하고 있는 듯 하다. 이유가 과소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의 가계가 안고 있는 빚도 적지 않다.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지고 있는 카드빚의 심각성을 보도한다. 과도한 소비로 인한 개인의 빚 문제가 이제 사회 문제가 되어, 제도적인 조치와 함께 의식의 전환이 요구되고 있다.

저자는 무분별한 소비가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새로운 유형의 가난한 사람들은 카드사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삶의 질이 구매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현대인들이 깊이 깨달아야 할 시기이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숙해지는 것이라 말하면서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성숙한 소비 활동은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해내고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광고에 이끌리지 않는 것, 소비세계의 유혹에 맞서는 것이다. 광고가 떠들어대는 거짓약속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독일은 우리보다 일찍 '새로운 소박함'의 비전을 발견한 것 같다. 독일 국민들은 미친듯한 자신들의 소비 성향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직 염증을 느끼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소비를 하면서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더 나은 커피를, 더 나은 악세사리를 선택하기 위해 인생을 낭비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염증을 느끼지 않고, '새로운 소박함'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에는 여러 일반인들의 수기가 많이 실려 있다. 한 여성 동독인은 서독인의 소비 모습을 굉장히 불건전하다고 느낀다. 돈쓰는 것이 전부였던 삶을 살던 한 여성이 자신의 인생은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소박함의 기쁨을 통해 참다운 행복을 발견한다. 이전의 삶은 끊임없이 보이기 위한 삶이고, 주류에 끼어 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반인들의 수기를 읽으며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뒤늦게 후회하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 의미 있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지막 장의 제목은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이다. 1장에서 현대인들의 소비에 대한 잘못된 태도와 삶의 방식을 고발하고, 2장에서는 소비 지향적인 삶으로부터의 구원 방법으로 '새로운 소박함'이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그리고 나서, 저자는 묻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언인가? 그것은 큰 일보다는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소비하기를 포기하고 '속도에 대한 광기 어린 신념'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느림의 기쁨과 삶의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다. 정원의 꽃향기를 맡으며 자신의 인생이 의미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중년 여성 '잉고'의 말처럼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결정이나 사고 방식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가치나 원칙은 물질주의적인 것에 희생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고귀하고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해야 한다. 다소 시대 착오적인 제안처럼 들릴지라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정말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발견해야만 우리는 광고로부터, 그리고 이 시대의 망령인 소비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는 이미 충족되었기 때문에 광고는 인위적으로 욕구를 조작한다. 광고가 아니었으면 아무도 자각하지 못했을 욕구를 일깨우는 것이다. p.42~43)

나는 오늘 시내에서 그 친구를 만난다. 오늘은 새롭고 고급스런 어떤 카페를 찾지 않을 것이다. 그냥 눈 앞에 보이는 아무 곳에 들어가서 적당한 가격의 음식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멋진 식당을 선택하느라 낭비하지 않은 그 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성숙한 소비 활동은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해내고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광고에 이끌리지 않는 것, 소비세계의 유혹에 맞서는 것이다. 광고가 떠들어대는 거짓약속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 2002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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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혁신은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관을 갖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제보다 아름다운 삶을 꿈꾸며 변화와 자기계발을 시도하지만, 작은 개선에 그치고 만다. 스스로를 혁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계관 (패러다임)을 바꾸기보다는 새로운 행동과 방법만을 찾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위대함으로의 길에 첫발을 들이지 못하는 까닭이다. 스스로를 전면적으로 ‘혁신’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개선’하려는 시도가 창조적 발전을 가로막는다. 거듭 말하지만, 혁신이란 행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행동을 바꾸면 작은 성취를 얻지만 패러다임을 바꾸면 영속적으로 원대한 결과를 얻는다. 성공한 리더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가장 다른 점은 세계관의 차이다. 그들이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보는 시각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물론, 혁신은 개선보다 위험하다. 피터 드러커는 "모든 사업 계획은 암흑의 세계를 향한 비약이며 용기와 신념을 필요로 하는 행동"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다음의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성공은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며 삶과 인간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혁신은 체계적이며 조직적으로 미지의 세계로 도약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과학의 힘과 풍부한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서 오늘 소개할 책, 『옛시 읽는 CEO』의 미덕이 필요하다.

『옛시 읽는 CEO』는 생각의 여백과 상상의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하는 책이다. 사색의 공간에 어울리는 책이다. 전작 『시 읽는 CEO』를 통해 ‘시’와 자기계발의 메시지를 절묘하게 결합했던 고두현 기자가 일 년여 만에 내놓은 책이다. 전작의 부제는 '20편의 시에서 배우는 자기창조의 지혜'다. 부제에 맞추어 자기 경영에서의 화두 20개를 다뤘다. 저자는 친절하게 몇 가지 화두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나는 편하게 몇 가지를 배웠다.

『옛시 읽는 CEO』는 전작에 비하여 저자의 주장이 완곡함과 여백의 뒤로 숨었다. 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고, 사색하게 한다. 또한 독자 스스로가 현실에 적용할 대목을 찾게 한다.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으로 결론 맺지 않음은 전작과 다른 점이다. '나를 재창조하는 생각의 여백'이란 부제에 꼭 맞는 저자의 전략이고 배려일 게다. 고수에게는 친절한 설명보다 촌철살인의 메시지와 정제된 핵심이 더욱 유용하다. 이미 지식과 경험이 많은 독자라면 그것을 끄집어 올릴 수 있는 마중물 한 바가지가 필요한 것이다. 『옛시 읽는 CEO』는 적어도 3가지 정도의 기회를 끌어올릴 수 있는 힘찬 마중물이다.

 
시는 ‘신선한 감각’과 ‘발상의 전환’이 가득 담긴 상상력의 보고다. 저자는 중국의 시인 곽말약(1892~1978)의 '초승달'을 소개한다. 필자도 이 시를 입에 물고 한참을 읊조리다 보니 상상력의 경계가 끝이 없음을 절감했다. 이러한 상상력이 창의와 혁신의 출발임을 안다면 어찌 한 두 줄 지식을 더 읽지 못하였다고 조급해할 것인가!
 

 

 
신뢰는 리더십의 굳건한 토대다. 성품이 신뢰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온전한 신뢰는 성품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뢰는 성품과 역량이 조화를 이뤘을 때 온전해진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것은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다. 서양에 비하여 우리는 리더의 도덕적 자질을 크게 따진다. 사람들은 리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리더의 비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리더가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가 제시한 비전이 옳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이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성적인 인간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예다. 요컨대, 한국 사람들은 탁월한 역량에다 훌륭한 성품을 갖춘 인간적인 리더에게 더욱 매력을 느끼고 잘 따른다는 것이다. 굳이 리더십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적 매력을 지니고 사람들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가진다면 행복감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저자는 책의 여러 곳에서 인간적인 리더십을 강조했다. 조선의 이태백으로 불린 이안눌(1571~1637)의 '따뜻한 편지'를 통해 “가슴을 데워야 사람을 얻는다”고 역설했다.
 
 
이 편지를 읽고서, ‘오늘의 단점’을 지적하며 부하 직원들에게 충고하려던 말을 삼가고, ‘내일의 가능성’을 보며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은 어떤가?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늘 격려를 필요로 하는 '결핍'의 주인이자, 누군가에게 격려를 해 줄 수 있는 '배려'의 친구 아닌가! 리더라면 인기보다는 존경을 추구해야겠지만, 역량에 성품을 더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장사 밖에 모르는 CEO라면 누가 그를 리더로 따르겠는가!


 
삶의 보폭이 다르다 하여 누가 앞서고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길을 자기 속도로 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송익필(1534~1599)의 시를 통해 다시금 되새긴다.
 
 
송순(1493~1583)의 시를 통해 저자는 남의 곳간을 탐내는 욕심 많은 부자가 아니라, 남의 곳간이 가득한 데서 기쁨을 느끼는 진정한 부자에 대한 생각을 나눈다. 인류에 공헌할 기회를 생각하도록 돕는 글도 있다. 푸르른 절경은 경탄할 만한 대상인 동시에 후손들에게 물려 줄 아름다운 유산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 기업,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우주의 섭리라는 저자의 말이 반갑다.
 
 
『옛시 읽는 CEO』는 직장인들과 기업의 리더들에게 사색의 시간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는 실용적 기능을 가진 책이다. 옛 시의 음률에 맞춰 감흥에 젖는 것은 보너스다. 한 편의 짧은 시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한 줄의 행간에 삶의 통찰을 담은 옛 시인들의 능력은 감탄할 만했다. 옛 시 읽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상상력을 발견하기도 했고, 일상에 치여 밀려나 있던 나의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기도 했다. 이렇듯 옛 시 읽기로 자신의 세계관을 교정하고 상상력을 일깨우며, 생각지 못한 경영의 묘안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혁신이다. 경영이나 자기계발 책에서 방법론을 찾는 것이 개선이고 변화라면 세계관의 변화, 상상력의 활용이야말로 혁신이다! 이 가을에 어울리는 옛 시와 함께 혁신의 길을 모색해 보시길.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출처 : 교보문고 <북모닝 CEO> 10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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