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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할 때, 책의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합니다. 아래 글은 그런 노력들 중 일부를 정리한 것입니다. 단 하나의 최선책이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일반론이란 없습니다. 이것 저것 스스로 실험하며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가야 합니다. 나의 얘기도 하나의 실험꺼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밑줄을 긋고 모서리를 접어라


나는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다. 7, 8년 전에만 해도 자를 대고 반듯하게 줄을 그었다. 색깔을 달리 하여 긋기도 한다. 이를테면 저자의 주장이나 주제에 관한 내용들은 빨간색, 책의 큰 흐름과 관계되어 정리해 두고 싶은 내용들은 파란색, 그 외 필자의 흥미와 관련된 내용들은 검은색으로 긋는 식이다. 한 손에는 책을, 한 손에는 삼색 볼펜을 들고 다닌다. 책가방이나 주머니에는 늘 삼색 볼펜이 있다. 요즘에는 2가지 색으로 압축하여 그을 때도 있다. 자를 대지 않은지는 꽤 오래되었다. 주로 이동할 때 책을 읽기 때문에 자를 대고 긋는 것은 시간적으로 엄청난 손해다.


한 문단 전체를 밑줄 그을 때에는, 밑줄 대신 문단 전체를 직사각형 박스로 묶어두는 게 빨랐다. 한 챕터 전체가 중요하면 글의 제목 부분에 별표를 해 두면 그만이다. 중요도에 따라, 혹은 나의 가슴 떨림에 따라 별표 수를 달리했다. 하나짜리 별표에서 최고는 네 개짜리까지 있었다. 밑줄을 그은 후에는 책의 모서리를 접어 두었다. 이렇게 해 두면,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찾기가 수월해진다.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엄청난 독서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밑줄을 긋지 말라고 했다. 밑줄 긋는 시간에 계속 읽어나가면 책 읽는 속도가 5배는 더 빨라진다는 게 그의 논리다. 그의 제안을 따라 해 보았다. 책 읽는 속도가 5배까지는 아니었지만 분명 빨라지기는 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후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았고 책을 뒤적여도 밑줄이 전혀 없으니 어떤 구절을 곱씹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다시 밑줄을 긋기로 했다. 직접 실험해 보고 자신에게 가장 유익한 방법을 택하면 될 것이다. 


메모를 하거나 자기만의 표시를 하라


책 읽기는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이는 활동인 동시에 사고의 확대 재생산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좋은 책을 읽으면 사고력이 활발해진다. 펌프질을 할 때, 마중물을 붓는 것처럼 내 안에서 아이디어와 새로운 깨달음이 마구 샘솟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메모를 해야 한다. 메모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지금까지 우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져 버린 좋은 아이디어를 아쉬워하라. 이제부터는 그 아이디어를 놓치지 말자.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데, 책 읽기에서도 유용하다. 책을 한 권 읽었다는 결과론적 사실보다는 책 한 권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변화하고 성장하였는지가 중요하다. 한 페이지의 책을 읽었더라도 개인사적 도약을 경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독서는 철저히 개인의 변화와 성숙에 초점을 맞춘 과정 지향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 변화와 성숙을 일으키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지적 발견이 자신을 찾아올 때, 그것을 메모로 남겨야 한다.


나는 주로 책의 여백을 활용하여 메모한다. 감격적인 책일수록 책의 여백에 쓰인 메모가 많아진다. 지하철에서는 물론이고, 길거리를 걷다가 멈춰서 메모할 때도 있다.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 환승역에서는 갑자기 멈춰서면 안 된다. 뒤따라오던 행인이 나에게 부딪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 때에는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이때는 마치 차를 주차하듯이 서서히 인도의 가장자리 쪽으로 걸어가서 멈춰야 한다. 그렇게 멈춰 서서 수 분 간을 메모할 때도 있다. 이상하게도 커피숍에 앉아서 책을 읽을 때에는 메모할 것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이때의 메모는 참 편안할 텐데, 신기한 노릇이다. 걷는 것이 생각하기에 더없이 효과적이라는 데 경험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소요학파 철학자들처럼 일부러 걷기 위해 밖으로 나가곤 한다. 생각하기 위해서.


이동하는 시간에 책을 읽는 편이어서 별도로 수첩을 들고 다니기가 쉽지 않다. 주로 책에다 메모를 하는 편이다. 책에다 메모를 하면 찾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별도의 수첩에 기록하거나 책 제목별로 파일을 만들어 PC로 관리하는 분들도 있다. 좋은 방법이다. 집중하여 읽고 싶은 훌륭한 책이거나, 가만히 앉아서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노트나 파일을 만들어 메모하며 읽는 것도 좋다. 중요한 책들은 읽고 난 후, 가슴을 치고 들어온 구절을 노트북에 옮겨 두면, 훗날 책의 내용이 필요할 때 검색을 통해 재빠르게 활용할 수 있다.


자기만의 차례와 색인을 만들어라


책에 제시된 차례와는 별도로 자신만의 차례를 만들어 보라. 이것은 몇 가지 방법 중에서도 가장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이다. 특히 메모와 밑줄을 연계하여 활용하면 더욱 효과가 좋다.


책 표지를 한 장 넘기면 책 본문이 시작하기 전까지 한두 장의 간지가 들어 있다. 이곳에다가 자신만의 차례를 만들어 보라. 감동이나 깨달음을 주었던 페이지 수를 표시하고 옆에다가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 두면 된다. 메모해 둔 페이지를 적어 두는 것도 좋다. 『미완의 시대』라는 책을 읽고서 만든 나만의 차례 중 일부를 예로 들어 본다.


* 어머니 : p.24, p.69

* 독서에 대한 언급 : p.p.40~41, p.141, p.p.162~167

* 학교 수업보다 독학을 통해 더욱 많이 배운 에릭 홉스봄 : p.102

* 공산주의자 에릭 : p.229, p.237, p.258

* 홉스봄이 공산당에 남은 이유 : p.p.356~357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라는
책의 표지를 넘기면 모두 21개의 ‘나만의 목차’가 적힌 간지가 나온다. 이 정도면 꽤 많은 편이다. 나만의 목차는 책 한 권에 적게는 4~5개에 불과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10개 정도가 된다. 이러한 목차는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 중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 p.p.55~57 : 이야기 전체를 기억하기

* p.p.66~67 : 토머스 에디슨의 ‘재난의 가치’ 잃어버린 독서카드, 다시 시작하면 된다.
* p.p.95~97 : 가르침은 사랑이다. 그것은 아이의 부서진 가슴을 껴안고 함께 우는 것이다. * p.149 : 깨달음 3가지


지금 당장 독서노트를 시작하라


독서를 하며 삶의 성장과 변혁을 꿈꾼다면 책의 중요한 내용을 기억하고 내 삶에서 재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식의 넓이가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기에 독서노트 따위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하기보다는 일단 독서 습관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에 부담이 되는 방법은 훗날에 시도하는 것이 좋다.


모든 영역에서 보다 효과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은 없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보다 발전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구체적인 독서 Tip 의 마지막 방법으로 독서노트 쓰기를 제안한다.
나는 1998년 12월 17일부터 독서노트를 써 왔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을 해야 깊어진다. 이를 두고 나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읽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쓰지 않으면 깊이 알 수 없다. 깊지 않으면 사이비다.”


지속적으로 학습하지 않아 깊이가 얕아지면 결국 더욱 깊이 있는 다른 강사들에 비하여 나의 강연은 사이비가 되고 만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강연을 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독서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독서를 마쳤으면 종이에 뭔가를 써 보라. 처음부터 그럴듯한 글을 쓰려고 하지 마라. 그냥 편하게 시작하라.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묻지도 마라. 그냥 한 줄만 써도 좋다. 읽은 것에 대한 간략한 소감도 좋고, 이번 책이 지루하다고 적어도 좋다. 나의 초창기 독서노트에는 몇 페이지에 오타가 있으니 출판사에 전화해서 알려 주어야겠다고 적은 기록도 있다. 처음엔 아무 내용이나 써라. 부담 없이 써야 오래간다.

중요한 것은 읽은 것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매일 쓰다 보면 재미가 붙어 독서노트를 쓰기 위해 책을 읽기도 한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고 멋진 서평 하나를 쓰는 것은 쉽지 않지만, 오늘 읽은 내용에 대하여 어떤 감상이나 생각을 한두 줄 적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스프링 노트 한 권을 사라. 거기에 날짜를 적고 오늘 읽은 책의 제목과 읽은 페이지를 표시하라. 다음으로, 좋았던 구절을 옮겨 적거나 간단한 소감을 적어 보라. 나의 첫 번째 독서노트는 파란색의 딱딱한 표지가 있는 일반노트였다. 첫 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1998년 12월 17일 맑음

“나의 미래를 위해 오늘부터 독서일지를 시작하려 한다.

많은 책들로 내 삶의 질이 향상되고 희망으로 가득차기를 믿으며.

가만히 생각해 보자. 99년까지 100권을 읽을까?

좋다. 100권 이상이 목표다. 희석아 출발!”


이렇게 시작된 독서노트는 읽은 책에 대한 유아적인 메모로 가득하다. 몇 개를 더 옮겨 본다.


1998년 12월 28일 월요일

『만화보다 더 재미있는 주식투자』, p.p.1~117

내용이 다소 어렵다. 하지만 자꾸 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장을 넘겼다. 독서일기를 쓴다는 게 기쁘다. 또한 기대된다.


1999년 1월 5일

『조선왕조 오백년․하』, p.p.220~240 끝 ^^ 히히

고종 시대에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 특히 헤이그 밀사 사건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일본에 대항하는 우리나라의 애국자들! 그에 반해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 5적신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박제순, 권중현.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게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이들이 자랑스럽다. 나 또한 그 분들 보기에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으리라!


1999년 1월 25일 월요일

『존 F. 케네디』 p.p.97~160 끝

전기문임에도 너무 사실적 묘사만 있어서 사건에 대한 감동이 덜했다.


처음부터 완벽해지려는 욕심을 버려야 편하게 시작할 수 있다. 저렇듯 유치했던 필자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조금씩 성숙해졌다. 4년이 지난 2002년의 독서노트를 보니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보며 스스로의 성장을 느끼는 것은 최상의 행복이다. 2002년 독서노트는 분량이 많아 이번 장의 마지막에 실었다.


독서노트의 목적은 독서하며 생각하고, 또 그 생각을 놓치지 않기에 위해 기록하는 것이다. 자신의 비전이 소설가가 아니라면, ‘문장가’보다는 ‘사색가’를 지향하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 좋은 글과 아름다운 문장은 지속적인 독서와 깊은 사고의 결과물이다. 과정보다 결과에 치중하는 것은 독서에도, 자기 계발에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결과에 대한 그림을 가슴에 품어 열정을 지니되, 집중해야 할 곳은 과정이다.


여러분에게 독서노트 쓰기를 권유한다. 어떤 형식을 찾지 마시라. 무형식의 자유로움이 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데에도 좋고, 편안함을 느끼기에도 좋다. 독서노트에 당신만의 형식으로 자유롭게 사유를 펼쳐 가자.


                                                  - 이희석의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 제4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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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책이 아무리 많더라도 제대로 정리해 두지 않으면 장서의 효용가치를 기대할 수 없다. 반면 그 수는 적더라도 완벽하게 정리해 둔 장서는 많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많은 지식을 섭렵해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불분명해지고, 양적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장서에 비유로 하여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했지만, 저는 '장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가려 합니다. 14년 동안 책을 읽어 오며 장서 관리의 중요성을 깊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적 능력을 향상해 가는 기본이 장서입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제 강연을 깊이 있다고 평가해 준다면, 그것은 꾸준히 책을 사들여 구비한 장서 덕분일 것입니다. 

1. 잘 갖추어진 장서는 지적 능력의 기반입니다.
"좋은 책을 구비해 가는 것은 정보력과 지적 생산성을 드높이는 비결입니다."

수년 동안 자신의 키워드에 따라 책을 구입해 왔다면, 그 주제에 대해서 점점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정보력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책은 절판되어 시간이 흐르면 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2010년에 만화책을 포함하여 4만 291종의 신간을 발행하였습니다. 평균 판매부수는 2,639부입니다. 1쇄를 2천부 정도 찍는다는 감안하면, 1쇄 남짓한 분량이 책의 수명입니다.

좋은 책은 오래 가겠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입니다. 오늘도 저는, 마르크스의 생애를 객관적으로 기술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사야 벌린의 걸작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을 구입하려 했지만, '절판'임을 확인해야 했죠. 1인 기업가들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는 다니엘 핑크의 『프리에이전트의 시대』도 절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2001년 출간 그리고 절판, 2004년 복간 다시 절판되었지요.

장서를 갖추기 시작한 세월이 쌓일수록 지적 생산의 기반이 든든해지고, 남다른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자기 분야의 장서를 갖추기 위해 한 달에 한 두 번은 서점에 가서 관련 책과 잡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시간을 충분히 투자하여 양서를 골라내어 돈을 아끼지 말고 사들여야 합니다. 요즘의 저는, 한 달에 20만원, 그리고 10시간 이상을 서점 나들이에 투자합니다.

장서가 지적 능력의 기반이 되는 이유는, 차별화된 정보력 외에 하나 더 있습니다. 장서는 우리의 시간을 절약해 줍니다. 오랜 세월, 자신의 키워드를 쫓아 장서를 구비해 왔다면 관련 지식이 필요할 때, 효과가 드러납니다. 별다른 조사를 할 필요도 없고 도서관에 달려갈 일도 없이 자신의 장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교양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장서가 없더라도 젊을 때에는 자신의 기동성과 시간으로 만회할 수 있지만, 시간도 활력도 무한한 자원이 아니니 중년 이후엔 점점 장서의 위력이 드러납니다. 20~30년 동안 전문적인 주제에 대해 장서를 갖추어 왔다면 그 책과 자료 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그 분야에 대한 경험이 있다면 책쓰기에는 더욱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되겠지요.  

지적 성장이나 책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훌륭한 장서를 갖추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2. 장서 관리는 주요한 지적 생활입니다.
"집 안에 책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어떻게 보관할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가 됩니다."

물건이 집 안에 있더라도 어디에 두었는지 알지 못하면, 필요한 순간에 꺼내 쓸 수 없습니다. 필요한 순간에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 두는 것이 보관의 관건입니다. 이 때,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가 중요해집니다. 쓰임에 따라 보관 장소가 달라지니까요. 주방도구는 당연히 주방에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 쓰이는지는 눈으로 척 보면 압니다. 국자와 망치를 보면 한 눈에 쓰임이 파악되죠.

그런데 책은 조금 복잡해집니다. 제목 만으로도 어떠한 책인지 가늠할 수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책도 있습니다. 책을 보관하는 일에 신경써야 하는 까닭입니다. 손 쉽다고 해서, 책을 가나다 순, 혹은 출판사 순으로 보관하는 것은 판매를 위한 서점에서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활용하는 독서가 입장에서는 유용하지 않습니다.

책을 가나다 순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면, 실제적인 쓰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책이 수십 권이라면 어떻게 두어도 한 눈에 찾을 수 있겠지지만, 수백 권을 넘어가는 경우라면 자신만의 정리 체계가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두 가지 기준을 동시에 활용하기를 추천합니다. 일반적인 분류법에 따라 정리하면서, 자신만의 키워드에 걸리는 책들은 따로 보관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 '듀이십진분류표'를 변형하여 사용합니다. 도서를 분류하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저는 듀이십진분류표가 편합니다. 대학시절, 나의 모교 도서관이 이에 따라 구분했기에 제게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듀이십진분류표는 도서관에 가시면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아래와 같이 분류된 번호 팻말이 책장 서고마다 눈에 띄니까요. (적다 보니, 대학시절 도서관이 그리워지네요. ^^ )
 
  • 000 – 컴퓨터 과학, 정보, 총류 (Computer science, information & general works)
  • 100 – 철학, 심리학 (Philosophy & psychology)
  • 200 – 종교 (Religion)
  • 300 – 사회 과학 (Social sciences)
  • 400 – 언어 (Language)
  • 500 – 과학 (Science)
  • 600 – 기술 (Technology)
  • 700 – 예술, 레크리에이션 (Arts & recreation)
  • 800 – 문학 (Literature)
  • 900 – 역사, 지리 (History & geography)

  • 이렇게까지 구분할 정도로 장서가 많지 않은 경우에는, 사회과학(경제, 경영, 정치, 교육, 법 등)/ 자연과학(물리, 수학, 의학, 천문, 생물 등)/ 문학예술(소설, 시, 음악, 미술 등)/ 인문학(역사, 철학, 종교, 심리 등) 정도로 정리하는 것도 좋겠지요. 저도 처음엔 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학예술, 인문학으로 구분하다가, 책이 2천 권을 넘어서면서부터 듀이 십진분류표처럼 세분화하여 보관하고 있지요.

    이것은 전체 장서를 보관하기 위함이고, 자신의 현재 주요 관심사를 별도로 정리하여 관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나만의 키워드에 걸린 책들, 현재의 업무에 필요한 책들은 따로 구분하는 겁니다. 저의 경우, 앞선 분류법보다 우선하는 키워드들이 있습니다. 리더십, 1인 기업, 시간관리, 명랑정신, 실용주의, 자기다움 등은 분야를 막론하여 보관상의 최우선 키워드들입니다.

    예를 들어, '1인 기업'이란 키워드에는 1인 기업가의 조건을 다룬 실용서가 있는가 하면, 1인 기업가가 탄생한 시대적 사회적 배경을 분석한 사회과학 서적도 있습니다. 1인 기업에 관한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읽다 보면 거시적인 관점에서부터 구체적인 노하우까지 알아가게 됩니다. 시간관리의 키워드 칸에는 시간관리에 관한 실용서부터 시간을 다룬 인문학, 자연과학 그리고 소설이 있습니다.

    장서 보관시, 쓰임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제목만 보고 대충 예상하는 것은 지적 게으름입니다. 제목과 표지에 책 소개, 저자 서문과 번역서인 경우엔 옮긴이의 글을 읽으며 어떤 책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한 두개의 챕터를 읽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책을 어떤 키워드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파악해야 자기 키워드의 깊이를 더해갈 수 있습니다.

    장서는 지적 생활의 키워드입니다.
    끊임없이 책을 사고 읽는 일상이 지적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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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보보

    매년 6월이면 삼성동 코엑스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립니다. 올해로 17회입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책 축제요, 출판계의 큰 행사입니다. 저는 일산에서 열리는 여러 책 관련 행사에 가 보았지만 단연 서울국제도서전이 최대 규모입니다. 이벤트와 강연회가 있고, 책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요. 사실 예전에는 책 염가판매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러 부대 행사와 인문학 강연 등으로 그런 느낌은 사라진 듯 합니다. 

    올해의 여러가지 프로그램 중에 제 눈을 끈 것은 <인문학 카페>입니다. 홈페이지에 나온 <인문학 카페>에 관한 설명을 들어보시죠. "유명인사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문학, 역사, 고전, 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강의를 통해 독자들이 인문학에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합니다." 지난 해, 저는 철학자 강신주 님의 강연을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한 분의 강연은 당연하고 따분한 이야기만 늘어놓아 무지 지루했던 기억도 함께.

    올해는 어떤 분들의 강연이 있는지 보시죠. 조용헌, 윤구병, 박원순, 강신주, 조 국, 김난도. 이름만 들어도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작가요 지성인분들입니다. 혹시 잘 모르신다면, 직접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난도 교수님은 서울대 강의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분이라 하니 가 볼 만 할 듯하고(직접 들어보지 못해 이렇게밖에 말 못하겠네요), 조 국 교수님은 당신의 생각을 본받고 싶은 분이라 들어보고 싶네요.


    어제(15일) 개막했지만, 약속된 일정이 많은 날이라 아직 들러 보지는 못했습니다. 평일날 가야 조금이라도 덜 혼잡하게 관람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사전등록을 하셨다면 무료 입장 가능하지만, 사전등록은 행사 시작 전에 마감되었습니다. 돈을 내고 가도 좋으실 거예요. 3천원의 입장료이니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할인하여 판매하는 책들 몇 권 구입하면 금액상 손해보실 일은 없을 테니까요. 2011 서울국제도서전. 코엑스 A, B홀. 6월 15일(수)~19일(일)까지. 공식사이트 www.sibf.or.kr/2011/kor/index.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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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보보

    보물이 숨겨진 피라미드를 향해 사막을 건너고 있는 청년 산티아고. 그는 양치기였던 시절부터 늘 책 한 권을 들고 다녔다. 지루할 때면 꺼내 읽기도 했고, 책을 베개 삼아 잠을 자곤 했다. 그러나 사막 위의 산티아고에게 책은 무게만 나가는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다. 책 읽기보다는 대상 행렬을 바라보거나 바람 소리를 듣는 것이 더욱 재미있었다. 낙타를 더 잘 알고 싶기도 했다. 그는 책을 던져 버렸다. 여기에는 책만 들여다보는 영국인이 한 몫 거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른 아침에 하늘에서 그 별자리가 빛나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알았다. 이제 여자들과 물과 야자수들과 종려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리라는 것을. 거의 책만 들여다보고 있던 영국인만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문학동네, p.128

     

    파울로 코엘료는 독서의 한계를 말하고자 했다. 독서의 한계를 언급한 작가들은 많지만 굳이 그들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다치바나 다카시, 마르셸 프루스트 등) 나의 삶을 돌아보더라도 독서'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회의 시간만 되면 침묵에 빠지곤 했다. "말을 할 때에는 그것이 침묵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멋진 조언을 실천하려고 노력한 건 아니다. 오히려 뭔가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상사의 눈에 들고 싶었다. 나의 입술은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듯 좀처럼 말을 떼지 못했다. 대학생이었을 때 적지 않은 책을 읽었는데, 독서를 하면 말을 잘 하게 된다는데...

     

    문제는 최소한 두 가지였다.

    1) 나는 '조사'하는 독서를 했다. 회의 안건이 주어지거나 보고서 작성을 할 때면, 책을 뒤적였다. 책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회사와 똑같은 사례가 없었던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있었다. 똑같지 않았기에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회사의 상황을 분석하여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했다. 나는 '조사'하는 독서와 함께 '생각'하는 독서를 해야 했다. 책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힌트가 있었기에.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독서라면 마르셸 프루스트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독서는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하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종결'이 독자들의 '종결'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의 '자극'으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사고'로 이어갈 수 있다면 내가 겪었던 실수를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퀴즈 프로그램에 출전한 것이라면 책에서도 정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책에서는 힌트를 얻는다는 태도를 가지는 게 나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독서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힌트는 아주 구체적이고 통찰을 지닌 것들이 많기에 '굉장한 힌트'라고 부르고 싶다. 그 힌트를 갖고 생각을 펼쳐나가면 된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상황에 대한 생각 말이다. 자신과 조화로운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하듯이, 문제를 해결하는 독서를 하려면 자신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두 번째 문제와 연결된다.

     

    2) 나는 외부 세계를 관찰하지 못했다.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법도, 그것이 유익한지도 몰랐다. 지금은 열심히 배워가는 중이다. 코엘료는 그것이 무엇이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산티아고의 입술을 통해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보여 준다.

    "난 대상 행렬이 사막 건너는 것을 쭉 지켜봤어요. 대상 행렬과 사막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막은 대상 행렬이 자신을 건너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겠지요. 사막은 대상 행렬이 자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나는 곳마다 끊임없이 시험을 해요. 만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면 대상 행렬은 오아시스가 있는 곳까지 가게 되겠지요. 우리들 중 누군가가 아주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사막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행은 시시각각 엄청난 고난의 연속일 거예요." (『연금술사』 문학동네, p.135)

     

    영국인은 산티아고의 말에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 그가 말한다. "이제부터는 나도 행렬을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봐야겠군." 내가 몇 년 전에 했던 말이기도 하다. 산티아고가 대꾸한다. "나는 선생이 갖고 있는 책들을 읽어야겠어요." 두 사람이 대화가 조화로운 느낌이다.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책을 읽는 것에서도, 삶을 읽는 것에서도 배움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책 읽기와 세상 읽기의 조화를 이루면 된다. 말은 참 쉽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현하기는 어려운 단어들의 목록을 만든다면, '조화'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온갖 가치 있는 단어들이 모두 그렇다. (몹쓸 일로 여겨지기도 하고, 이것이야말로 삶의 모험이요 즐거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비율로 섞어야 A(책읽기)와 B(세상읽기)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드러커의 메시지를 알아 두는 것은 이 문제를 숙고하는데 필수다. "자신이 배우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드러커는 읽으면서 배우는 이, 들으면서 배우는 이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읽으면서 배우는 사람이라면 A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반면, 독서가들은 종종 현명한 비독서가들을 만난다. 분명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인데, 자신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B의 달인들이다. 물론 코엘료도 조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연금술사』의 141~142페이지는 A와 B의 조화에 대한 그의 통찰이 기막히게 서술된 장면이다. 산티아고의 독백은 이 글의 주제인 책 읽기와 세상 읽기의 조화에 대한 결론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문학동네, p.142


    - 2009. 10. 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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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수년 전, 저는 목사님, 청년회장 그리고 20 여 명의 청년들로 구성된 팀의 일원으로 중국으로 선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단체로 움직였습니다. 팀원들 중 어느 누구도 한 나절의 개인 시간이 없었습니다. 같은 사람을 만났고, 같은 음식을 먹었고, 같은 풍광을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매우 비슷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선교여행을 다녀온 후, 당회에 제출한 보고서와는 별도로 목사님, 청년회장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사람이 교회 소식지에 글을 실었습니다. 허나, 그 글의 깊이가 어찌 그리 다르던지요. '나도 그걸 보았는데, 왜 난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경험이 인식에 도움을 주지만, 탁월한 인식은 경험 이외의 어떤 것이 필요함을.

    같은 직장에서 10년차의 근무 경험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있더라도, 다 같은 10년차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10년차다운 내공이 느껴지는 분이 있는가 하면, (과장스런 표현이겠지만) 1년차 같은 생활을 10년 동안 반복하신 듯한 분이 있을 수도 있지요. 무엇을 보고 체험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보고 체험한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도 중요하지요. 경험이 중요하지만, 경험을 해석하고 재가공할 수 있는 힘도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힘의 근원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였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통찰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직관력에서 오는 힘입니다.

    말하자면, 아래 글은 경험이 인식에 어떠한 기여를 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쓴, 통찰을 다룬 글입니다. 8기 와우팀에 지원하신 어느 분에게 드리는 글이기도 하지요. ^^ 2007년에 쓴 글을 옮겨 와 봅니다.


    1. “1944년 6월, 나는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았다. 일본인이 어떤 국민인가를 규명하기 위해서, 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연구 방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다.” 일본 문화를 알기 위하여 꼭 읽어야 하는 명저 『국화와 칼』을 쓴 루스 베네딕트의 말이다. 미국 국무성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리고 종전 후 일본을 통치하려면 일본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 연구를 부탁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46년 결과물이 나왔다. 그 결과물은 탁월하여 일본 문화에 관한 명저가 되었다.

    국무성의 위촉을 받은 그녀는 일본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검토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하지만, 두 나라가 교전 중이기에 문화인류학자의 가장 중요한 연구 기술인 현지 조사를 포기해야 했다. 그랬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일본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저서는 탁월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일본 문화를 설명한 명저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통찰력이 있으면 먼 곳에서도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음을 베네딕트가 보여 주었다.

    2. 갓 결혼을 한 마이크 메이슨이라는 젊은 청년이 제임스 패커(신학자)라는 대학자에게 책을 하나 쓰고 싶은데,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의 주제로'결혼'을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제임스 패커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결혼은 여러 인간관계 중 가장 복잡미묘하고 요구가 많은 관계로서, 결혼을 주제로 글을 지혜롭게 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니 갓 결혼한 처지에서는 잘 쓸 수가 없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그러나 마이크 메이슨은 『결혼의 신비』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을 제임스 패커에게 보여 주었다. 노 교수는 감격하였고 이 책의 서문에 기꺼이 추천사를 적어 주었다. 추천사에는, 결혼의 연륜이 짧은 사람은 결혼에 대하여 좋은 책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했다. 마이크 메이슨의 책을 읽으면, 경험하지 않아도 일가견을 제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3. 19세기 프랑스의 자유주의 사상가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현대 민주주의론의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를 썼다. 1831년 5월 9일 미국에 도착한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실체를 눈여겨 보았다. 이 때 얻은 경험과 생각으로 쓰여진 『미국의 민주주의』는 당시 미국이 만들어가고 있던 새로운 정체제도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는 평가를 받았고, 1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고전이 되었다.

    토크빌이 미국에 머무른 기간은 단 9개월이었다. 대작이 만들어지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기간의 방문이었던 것이다. 토크빌은 예리한 시각이 있다면 짧은 기간에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음을 나타내는 사례가 되었다. 미국사에 대한 16권 짜리 전집을 출간한 강준만 교수도 한 강연을 통해, 짧은 방문 기간에도 많은 것을 보고 정리한 토크빌의 탁월함에 대해 극찬했다.


    루스 베네딕트는 통찰력이 있으면 천리 밖에서도 볼 수 있음을 알려준다. 박경리 여사가 북한 땅을 한 번 밟아보지 않은 채 『토지』라는 대작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비슷한 사례이다. 마이크 메이슨과 토크빌 역시 어떤 것에 대한 경험의 여부만큼 통찰력의 소유하고 있느냐의 여부도 중요함을 보여준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사안에 대하여 대가가 되기 위하여 경험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경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대가가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탁월한 식견을 갖지 않으면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없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주견을 갖지 않으면 미국에 9개월이 아니라, 9년을 머물러도 토크빌과 같은 책을 쓰지 못할 것이다.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적 치열함과 통찰력을 가졌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토크빌은 미국 여행을 마친 후 책을 집필하는 데 5년여의 시간을 투자했다.


    사물을 보고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면, 상황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한다.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면 미봉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속에 뛰어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상황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는 능력, 탁월한 통찰력과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 등이 있다면, 경험하지 않아도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짧은 기간만으로도 그 주제에 대하여 탁월한 견해를 제시할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이 처음에 얻어야 할 것은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 달간 정보를 꾸준히 수집하면 정보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보를 해석하여 재가공하지 못하면 지적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독서의 일차적인 목적도 정보 수집에 있지 않고,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데에 있다. 그래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전체를 보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 그것이 통찰이다. 『국화와 칼』도 『미국의 민주주의』도 『결혼의 신비』도 모두 저자들의 탁월한 통찰력이 만들어 낸 역작인 것이다.

    저는 강사 혹은 컨설턴트라는 직함을 달기엔, 어린 나이에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젊음의 미숙함이나 오만이 아니고, 열정과 자신감에 의한 결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젊음도 심오할 수 있고 통찰력은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 삶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였기에,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통찰력은 독학과 평생 학습에 대한 제 삶의 푯대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여기에 분석력을 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위나 자격증을 뛰어넘는 진짜 실력을 갖고 싶은 게지요. 4년 전의 글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어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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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몇 십년 동안 맹목적으로 집단을 뒤따라 걸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은 뒤에 나만의 길을 걸어가려고 방향을 바꾸었다. 이렇게 몸을 돌리는 것이 바로 대전환이다. 이것은 생명의 돌파구이자 새로운 출발선으로, 자유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몸을 돌릴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 몸을 돌린 뒤로는 나날이 생명에 가까이 다가서고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며 빛을 추구하던 어린 시절의 본능에 가까이 다가선다."

    중국의 실천적 지식인 류짜이푸의 말이다. 맹목은 눈이 멀어 시비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맹목성은 스스로를 책깨나 읽었다고 생각하는 이들, 하지만 아직은 지성이라 부르기 힘든 수준의 초보 독서가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만이다. 교만은 조바심과 함께 학습자의 성장을 빼앗아가는 2인조 강도다. 교만을 물리치는 것은 지혜다.

    교만의 대비책으로서의 지혜란, 두 가지 태도를 갖는 것이다. 첫째,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내일이면 틀렸다고 증명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믿는 태도이며, 둘째,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의 백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태도다. 겸손한 자가 지혜를 얻는다. 지혜가 교만을 물리치고, 교만하지 않아야 맹목성을 떨쳐낸다.

    사실, 지혜의 모습은 다양하다. 겸손의 모습을 띄는가 하면, 또 다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로버트 풀검은 말했다. 나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유치원에서 배웠다고. 풀검이 제시한 것은 당찬 자신감이 아니다. 그의 훌륭한 책을 읽으면 지혜를 낳는 또 하나의 근원을 알게 된다. 그는 말한다. 우리의 삶이 정체된 것은 배워야 할 것을 아직 배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배운 것들을 실천하지 않고 살기 때문이라고.

    지혜의 두 가지 근원을 명심하자.
    하나는 겸손이고, 다른 하나는 실천이다.


    초보 독서가들에게 부족한 것이 겸손과 실천이다. 자신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여 쉽게 판단하고 단정 짓는다. 그들의 독서감상은 종종 "이 책은 그저 그런 책인 줄로 알았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런 말을 한다고 그가 교만하다는 말은 아니다. 초보 독서가의 독서는, 자신의 어줍잖은 지식으로 단정지은 어떤  책을 읽으며 오해를 걷어가는 과정인 경우가 많다는 거다.

    또한, 실천의 場에 뛰어들지 않았기에 그들의 지혜는 성글다. 읽어야 할 실제로 책을 읽고 생각하며 자신의 사유를 형성해가기보다는 어딘가에서 주워 들은 견해를 자기 머릿 속에 가득 채우고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한 실천의 부재란,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지 않는 것을 말함이 아니다. 어떤 좋은 책을 실제로 읽지 않고 제목만 알고 어줍잖게 아는 척 하는 태도를 말한다. 책에 대한 정보를 들은 바 알지만, 정작 그 책이 어떠한 책인지에 대한 내용 이해는 결여된 경우 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다.

    어느 신실한 그리스도인 여성이 자기는 유교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이야기를 잠깐 나누다 보니, 그녀가 유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유교의 인간관에 대해 말해 주었다. "유교에서는 인간을 중시합니다. 자연 자체나 인간이 죽은 후의 내세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세계관입니다. 유교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완성해 갈 수 있는지, 또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반영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실천 위주의 인간관에 대한 문제를 중시합니다."

    유교박물관에서 주워 익힌 것을 말한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세계관과 어긋나는 대목이 많다. 그녀는 이 얘기를 듣자마자, 자신이 유교와 온전히 어우러질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기 성정이 유교의 이미지와 비슷한 게 있어서 그리고 조선이라는 나라에 관심이 많아서 자신이 유교를 좋아한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유교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녀의 유교 추구에서 맹목성이 떨어져 나간 순간이었다. 이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파악과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때, 맹목성이 찾아든다.

    독서 실천의 부재(제목을 아는 게 아니라, 실제로 책을 읽는 것)는 전문 지식과 내공을 쌓아주지는 못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러면서도 독서법에 대해서는 정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독서가들은 독서의 기술이 향상되는 것과 자신의 진짜 실력이 정비례하지 않음은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가 생겼다면 실제로 관련 분야의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한 사례 하나를 더 들어본다.

    어느 기독 청년이 매트 리들리와 리처드 도킨스 모두를 싸잡아서 낮게 평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고만고만한 저자들'이라는 평이었다. 비판의 이유는 간단했다. 두 저자는 자신이 믿고 있는 바와 다른 세계관을 지녔기 때문이란다. 이 탁월한 두 과학자는 진화 생물학자들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창조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기독 청년에게 형편없다는 투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 청년은 책을 읽어 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교회 내 어느 분이 한 이야기라 했다. 읽을 가치가 없는 저자라는 식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한 이가 실제로 책을 읽었는지는 이 글의 논의가 아니다. 아니, 그렇게 말한 것까지는 좋다.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여 확대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맹목성이 치고 들어온 것이다. 이렇듯 맹목성은 자기와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을 맹목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맹목적으로 좋아하든, 맹목적으로 거부하든 두 가지 모두 현명함과는 거리가 멀다. 나도 기독인이지만, 매트 리들리와 리처드 도킨스에게 열광한다.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은 깊은 감명을 받아 강연 때에 자주 인용하기도 했다. 내가 믿음이 없어서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지 못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던 시간이 적었기 때문이지, 두 저자의 책을 읽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들에게 열광한 까닭은 그들의 세계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학문적 깊이와 철저함 때문이니까. (사실 나는, 신념이 다른 저자가 쓴 책의 가치를 폄하한 기독 청년에게서 어느 기독단체의 봉은사 땅밟기가 떠올랐다. 땅밟기가 왜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기독청년과 겹쳐졌던 것이다.) 1)

    맹목성을 떨쳐내야 지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오늘 글은 어떤 것이 맹목성인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맹목을 떨쳐낼 수 있는 지혜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았다. 언젠가 마음이 동하면 맹목성을 떨쳐내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 써 보겠다. 글이 도움되는 독서가들이 있다면, 의견 주시길 바란다. 의견과 조언에 힘을 얻어 좋은 방법론을 담은 글을 올릴 수 있도록. ^^

    1) 나는 절에 가서 땅을 밟으며 절이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것을 이해는 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기독인이다. 그들의 순수한 신앙을 인정한다. 아니 정말 존경한다. 신앙의 열정에서는 나보다 훨씬 낫다. 하지만, 순수함에는 강건함과 지혜로움이 더해져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꾸고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순수함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 기특하기는 하지만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포교 활동에서 필요한 지혜는 관용이다. 그리스도인이 스님에게 가서 포교 활동을 하는 것은 순수한 신앙 열정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상대의 기분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비관용적인 태도다. 스님을 보는 순간, 우리는 그의 종교가 무엇인지 안다. 그런데 스님에게 가서 잘못 살고 있다는 투로 전하는 포교 활동에서는 관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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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2010년 독서를 결산하는 나만의 '올해의 책' 선정을 했었지요. 선정 기준은 '제 삶에 영향력을 미친 정도'입니다. 저는 '앎'보다는 '삶'에 미친 영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윗'이라는 필명을 쓰는 블로거는 "앎의 크기가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말을 대문에 걸어 두었는데, 저에게는 절반 정도만 들어맞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저는 앎과 실천 사이의 거리가 꽤 큰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실천의 크기가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제 블로그의 어떤 글이 실천이 아닌 바람을 말하는 글이라면, 그것은 아마 실제의 제 존재보다 조금 나은 모습일 것입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한 포스팅 제목을 <2010년 올해의 책>이라 하지 않고, <나를 감동(感動)시킨 책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목록이 나를 감(感)하고 동(動)하게 만들었던 책들이기 때문입니다. 감동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느껴 '마음'이 움직인다는 뜻이지만, 저는 느끼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의미로 썼습니다. 언어의 사회적 소통 기능을 반(反)했지만, 머리와 마음 속에 머물러 있는 지식을 손과 발로 끌어내려는 제 의도에는 잘 합(合)하는 변용입니다. 목록이 매우 주관적이다, 라는 말입니다. 제가 뽑은 목록은 올해 출간된 저서가 아니란 점에서, 많이 팔린 책이 아니란 점에서, 언론사의 목록과는 다르니 주관적이지요. ^^

    '올해의 책'이라는 제목의 글을 여러 개 읽으며 몇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 3가지만 언급하고 물러갑니다. 따뜻한 연말 보내세요~


    1. 올해의 책 ≠ 베스트셀러

    국민일보의 박동수 기자님은 12월 24일자 칼럼에서 "올해의 책 선정엔 여러 기준이 적용될 수 있지만 판매 부수가 가장 중요시돼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고 썼습니다. 저는 판매 부수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책들이 판매 부수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2005년과 2006년 연말, 직접 올해의 책과 베스트셀러와의 연관성을 비교해 본 적이 있습니다. 출판저널와 3개 메이저 언론사의 '올해의 책'으로 공동으로 선정된 책에는 『블루오션 전략』이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와 같은 대박 베스트셀러가 있는가 하면, 『대담』이나 『강의』 와 같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책들도 있습니다.  『대담』의 한 해 판매부수는 8,000부 정도였습니다. 책을 출간한 출판사의 팀장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니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저도 그 해 『대담』을 읽었지요. 매우 유익한 책이었는데, 적게 팔려 아쉬워했던 마음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올해의 책은 베스트셀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2005년도의 경우, 올해의 책 10권 중 4권이 베스트셀러라고 불릴 만한 판매부수였습니다. 많이 팔리지 않아도 좋은 책이면 올해의 책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판매부수는 올해의 책을 선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 고려할 여러 기준 중의 '하나의' 기준입니다. 

    신간은 매혹적이지만, 그래서 고약합니다.
    고전을 향한 관심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2. '올해의 책'을 바라보는 태도 한 가지

    우리는 콜럼버스에게 "왜 오세아니아주는 발견하지 못했냐?"고 따지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매체에게서 '궁극의 리스트'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진보성향의 언론사와 보수성향의 언론사가 선정한 목록은 당연히 다릅니다. 과학잡지와 인문계열의 교양지가 선정하는 목록도 다를 수 밖에 없지요. 독자로서 목록의 균형을 요구할 때에는 분별있게 요청해야 합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흔드는 균형이 아니라, 그들의 전문 분야 내에서의 치우침이 없는 목록을 요청해야 합니다. 어설픈 균형을 요구하는 것보다는 치열함에 가까운 성실함을 요구하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각 매체의 성격과 특징을 잘 파악하는 혜안이 아닐까요? 그리고 나에게 결여된 부분이 있음을 깨닫고, 그것을 보완해 주는 매체를 찾아내는 열정과 열린 마음 아닐까요? 과학도를 꿈꾸는 대학생이 뽑은 올해의 책 목록을 보며 '너는 왜 인문학이 없냐?'고 지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질문이 부드러운 권면 정도면 좋겠지만, 균형을 잃었다는 꾸짖음이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극단을 향한 몰입이야말로 우리에게 성장을 안겨다 줍니다. 진정한 균형은 서로 다른 양 극단으로의 몰입을 통해 이뤄지는지도 모르지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물에 가서는 숭늉을 찾고,
    방앗간에 가서는 떡을 찾는 상식입니다.



    3. 제목을 기억해 두는 것보다 유익한 것

    좋은 책의 제목을 알아두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책을 읽을 기회가 열려 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그것 자체로도 이야기꺼리 하나를 더 가진 셈이니까요. 그런데 독서가들 중에는 책의 제목을 아는 지식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지식보다 앞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독서에 관련된 책을 출간한 저자들 중에도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책의 목록을 수집하는 일을 멈추고, 책 한 권을 잡아 진중하게 읽는 것입니다. 진짜 실력을 키우고, 지성인의 사고력을 갖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면 말이죠. ^^ 

    명실상부는 전문가의 도덕이요, 목표입니다. 
    이름과 내실의 균형을 추구합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옛날에는 서책이 많지 않아 독서는 외우는 것에 힘을 쏟았다.
    지금은 사고(四庫)의 서책이 집을 가득 채워 소가 땀을 흘릴 지경이니,
    어찌 모두 읽을 수 있겠는가?
    다만 『주역』,『서경』,『시경』,『예기』,『논어』,『맹자』 등은 마땅히 숙독해야 한다.
    그러나, 강구하고 고찰하여 정밀한 뜻을 얻고,
    떠오른 것을 그때그때 메모하여 기록해야만 실제로 소득이 있게 된다.
    그저 소리 내서 읽기만 해서는 또한 아무 얻는 것이 없다."
    - 정약용, 「반산 정수칠에게 주는 말」

    우리 나라는 일 년에 4만 여종의 책을 출간하는 출판대국입니다.
    모든 책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모든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 읽을 만한 가치가 없는 책이라면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보는 건 어떤지요?

    분야마다 반드시 읽어야 할 소수의 중요한 책을 읽는 것으로도
    멋진 삶을 살기에도, 전문지식의 기반을 닦기에도 충분합니다. 
    소수의 명저들을 읽어 깨달음을 얻게 되면 나머지 책들은 좀 더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산맥의 최고봉에 오르면 모든 산의 높이를 파악할 수 있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러니 그 분야에 가장 중요한 책들을 골라 숙독하여 익혀야 합니다.

    다산 선생님은 유학이라는 사상의 얼개를 세우는 데에 중요한 고전을 소개하였습니다. 
    200여년 세월을 견뎌낸 중요한 책들입니다. 몇 권의 책을 추가할 수도 있겠지요.
    소개한 6권의 책은 유교의 핵심 경전인 사서삼경의 목록입니다.
    『대학』과 『중용』은 『예기』에 포함되어 있고, 주역의 다른 이름이『역경』입니다.
    사서를 읽으신다면, 『대학』『논어』『맹자』『중용』의 순으로 읽으면 됩니다. 

    자기 경영서 중의 최고봉이라 할 만한 몇 권의 책을 더불어 소개합니다.
    자기계발 분야에서만 목록을 뽑는다는 것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내공 깊은 작가가 드물고
    인문 서적에 속하지만 자기경영에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 많기 때문입니다. 
    엄선한다는 의미로 책의 권수를 최소한으로 줄여 소개해 봅니다. 

    성공학의 고전 (필독)
    -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 앤서니 라빈스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추천 자기경영 명저
    - 피터 드러커 『프로페셔널의 조건』
    - 구본형 『낯선 곳에서의 아침』
    - 파커 파머『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제프 콜빈『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시간관리 명저
    - 하이럼 스미스『10가지 자연법칙』
    - 앨릭 메켄지『타임전략』


    시간관리를 다룬 책은 실제적이고 디테일해야 합니다.
    직관형의 사람들은 자세하고 현실적인 방법론을 다룬 책들을
    지루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중요한 시간관리 고전들을 낮게 평가하곤 합니다. 
    혹은 시간관리의 기술들이 비인간적이라 하여 거부감을 갖기도 합니다. 
    돈과 마찬가지로 기술의 가치는 중성적입니다.
    좋은 철학을 가진 이에게 기술은 멋지게 활용될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인생의 지혜를 갖도록 돕는 고전들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인생수업』
    - 스캇 펙『아직도 가야할 길』

    1인 기업가를 꿈꾸는 이들의 바이블
    - 찰스 핸디『코끼리와 벼룩』
    - 다니엘 핑크『프리에이전트의 시대』

                                                                                        2008. 11. 09/ 2010년 일부 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세 권의 책을 허벅지 위에 떨어지지 않게 올려 놓고 이 글을 쓴다. 11월 들어, 우리 집에 세 녀석들이 '침입'했다. 내 허락없이 우리 집에 들어왔기에 침입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책 구입을 자제하리라는 내 의지를 짓밟고 들어왔으니 '정복'이라 표현하는 것이 이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렇다. 11월에도 기어이 나는 두 권의 책을 사고 말았다. (한 권은 선물 받았다.) 먼저, 나를 정복한 두 권의 책. 『왜 도덕인가?』와 『책을 읽을 자유』.


    『왜 도덕인가?』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도덕주의의 유익과 한계'는 요즘 나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 하나'가 아니라, '중 하나'라는 게 조금 머쓱하긴 하지만, 요즘의 내가 자주 도덕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분명하다. 도덕주의, 곧 도덕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입장은 분명 고결하지만, 순진해 보인다. 순진하다는 인상은 아마도 도덕주의 자체가 아니라, 현실인식이 빈약한 일부 도덕주의자들 때문이리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도덕주의자는 유물론에 흠뻑 젖어 보아야 한다. 도덕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들이어서 육체, 시스템, 현실을 정신, 마인드, 이상보다 열등하다고 여긴다. 저명한 시인은 멋지게 표현했다.
     

    영혼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몸에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예이츠의 말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는 도덕주의자의 말이라면, 나는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도덕을 자기 삶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더다는 도덕주의에 덧붙일 만한 가치를 언급했다. 도덕주의자들은 합리주의, 자기 수련, 신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더다는 도덕주의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세 가지 모두 건강한 자유 시민에게 필요한 자질이기는 하다. 그러나 환희, 공동체 정신, 의혹은 어떤가?"

    내가 보기에 더다가 덧붙인 세 가지의 가치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도덕주의는 숭고하고 삶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도덕주의자들이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도 우리를 숭고하게 만들고, 세상에 공헌한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결해질 수 있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반복과 오해가 생긴다. 더다에 의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미국인은 유순한 소공자와 착하고 얌전한 소녀를 결코 높이 평가하지 않"고, "미국인의 전형은 허클베리 핀과 스칼릿 오하라, 바트 심슨"이다. 하나같이 규칙을 무시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하나? 비도덕주의자? 반도덕주의자? 이것 역시 도덕이라는 가치로 폄하한 언어일 뿐이다.

    도덕은 니체에게도 중요한 단어다.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전복의 대상으로서 중요했다. 니체에게 도덕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뛰어넘기보다는 신과 국가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그래서 전복해야 할 가치다. 도덕에 굴복하는 삶은 초인의 길을 포기한 삶이다. 내가 니체의 명제가 다소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열광하는 까닭 중 하나는 도덕의 계보를 파헤친 그의 논리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니체의 망치질은 국가와 도덕 뿐만 아니라, 내 머리를 흔들기에도 충분했다.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을 읽는 수고를 하느냐말야?
    자네가 말한 것처럼 책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까?
    천만에. (...)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 카프카


    스무살 무렵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 나는 분명 도덕주의자였고, 모든 현실에 관련한 것들을 이상보다 열등한 것이라 여겼다. 이후 서른 살까지, 내가 현실 인식이 빈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 이후부터는 빈약의 원인을 알게 되었고, 괴테, 니체, 마르크스로부터 받은 조금씩의 도움으로 현실 인식을 키워오던 중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명제에도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슨무슨 주의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사유하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현실적인 것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방해하는 것들이 신앙, 도덕, 국가였다. 이것이 나의 결론인지, 니체를 읽은 당연한 귀결인지는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의도적으로 도덕주의의 반대편에 서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진정한 중용은 양 극단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만이 맛보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도덕주의에 관하여, 나를 흔들어 깨울, 마음 속 견고한 바다를 깰 수 있을 법한 책을 찾던 중이었다. 도덕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도 아닌, 감정적인 비난도 아닌 균형있고 건전한 견해를 만나고 싶었다. 저자가 도덕을 찬양하든, 멸시하든지는 상관없다. 그저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잘 전개한 책! 도덕주의자의 전형을 보여 준 칸트에서부터 도덕으로부터의 자유를 설파한 니체가지 이어지는 스펙트럼을 훑어 주는 책이면 더욱 좋겠다.

    『왜 도덕인가?』가 적임자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구입했다. 도덕주의적인 삶을 살아 온 내가 니체의 메시지에 전율했다가, 다시 니체와는 다른 메시지에 설득당하고 싶은 것이다.  왜 도덕이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탁월한 논증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일방적이고 당연한 주장이 아닌, 반대편의 견해를 오목조목 따져 드는 성실함과 예리함을 가졌다고 판단했다. 이왕이면 니체의 망치질로 손상된 도덕의 가치를 말끔히 복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도덕주의자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좀 더 도덕주의에 대한 반감을 견지하고 싶다.

    사실, 내 삶의 방식은 도덕주의적인 모양으로 결론지어진 것인지 모른다. 이번 양양 여행 중 하조대에 갔을 때, 명상에 잠겼는데, 생각이랄 것도 없는 뻔한 결론이어서 실망한 적이 있다. 그 뻔한 결론을 옮겨 본다. '바다에서 하는 다짐은 늘 같다. 한 마디로 잘 살자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자! 좀 더 성실하게, 좀 더 순수하게 살자!' 스스로도 허무했던지라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것은 내 나이 스물 하나였을 때의 다짐이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네.' 나는 원점이 아닌 곳에서 사유하고 싶다. 도덕주의가 자꾸만 '왜'라는 질문을 죽이는 듯 하다. 옳은 것이니까, 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듯 하다. 도덕주의에 대한 내 반감은 의도적이지만, 치열하다. 그 치열함은 사실 중용을 위함이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 장정일, 『공부』 서문에서.


    『왜 도덕인가?』의 목차를 펼쳤다. 와! 머리를 즐겁게 해 줄 내용들이 가득해 보인다. 경제적 도덕, 사회적 도덕, 정치적 도덕, 교육과 도덕, 종교와 도덕 등 목차가 품고 있는 담론부터 폭넓고 다양하다. 우리에게 도덕적 가치가 왜 중요한가?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은 무엇인가? 시민의식은 과연 회복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으로 구성된 챕터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예상했던 대로 칸트(대표적인 도덕주의자다)와 롤스(20세기 가장 중요한 '정의' 학자다)가 보인다. 존 듀이의 등장은 뜻 밖이다. 자, 이제 읽을 준비는 완료 되었다. 시간아, 나를 외면치 말아 다오.


    지금 나는 '책을 읽을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선물 받은 『책을 읽을 자유』는 그 자유로운 시공간 속으로 흠뻑 빠져들때 집어 들고 싶은 책이다. 내공 대박인 로쟈의 10년 동안 진행되어 온 책읽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움이 깃든 놀이요, 깊은 배움이 있는 학습이다. 80페이지까지 책을 읽은 바로는 정말 그렇다. 이 책을 선택한 까닭은 저자의 전작 『로쟈의 인문학 서재』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런 저자들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 그의 다른 책들을 구입하여 읽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사람들 말이다. 로쟈 이현우는 내게 자신의 전작을 읽게 만드는 저자다. 다음 책이 나와도 나는 선택할 것이다. 그런 책을 선물 받았으니, 참 기쁜 일이다.


    『회의주의자 사전』은 언젠가 교보문고(강남점)에서 살펴 본 후, 구입하고 싶었던 책이다. 하지만 책값이 비쌌다. 32,000원짜리가 인터넷 서점에서 50%이라는 달콤한 특가 세일을 하길래 덜컥 주문했다. 허허. 싸다는 것이 구입 이유라니. 하하. 3권의 책이 손에 들어 온 이유가 갈수록 단순해지고 저렴해지네. 이것이 나다. 이 글의 모양새가 그렇듯이, 초반의 반짝 열정이 내 성정이요, 용두사미가 내 주특기다. 특기를 최대한 살리려면, 어서 슬그머니 맺는 것이 좋으리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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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달 전인가, 나는 한 소설가에 관하여 신나게 떠들어 댔다. 김영하가 얼마나 훌륭한 글을 썼는지에 대해서 나는, 『퀴즈쇼』의 어떤 대목을 그대로 읽기도 하고, 나의 견해를 덧붙이기도 하며 한참을 이야기했다. 지루했을 법한 긴 이야기를 '갑자기' 들어야 했던 이는 친하게 지내는 동네 누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기는 하지만, 책에 대해서 이리 침 튀기며 이야기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퀴즈쇼』라는 소설이 내게 안겨다 준 감동은 컸다. 누나가 20대에 대해 알고 싶어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김영하 자랑은 분명 누나에겐 뜬금없음이었고,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퀴즈쇼』 이후, 나는 김영하의 단편집 두 권을 더 읽었다. 『오빠가 돌아왔다』(이하 오빠)와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이하 엘리베이터). 오빠를 읽으며, 나는 김영하의 저력이 무엇인지 서서히 깨달아갔다. 김영하는 세상과 사람을 세밀하게 관찰하는 듯 했다. 관찰 결과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거나,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명제나 이론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그저 정확하게 이야기로 옮겨 놓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듯 했다. 그랬기에 그의 책 속에는 진짜 세상살이의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특히, 김영하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원인과 결과를 모두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믿는 듯 했다. 오빠는 인생의 비합리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을 탁월하게 짚어주는 책이다. 나같은 이는 인생살이의 단면이 이론화되고 도식화되는 순간에 벌어지는 삶으로부터의 괴리감을 싫어한다. 삶과 멀어진 이론과 도식은 더 이상 '진짜'가 아니고, '진짜'를 설명하지도 못한다. 물론, 이론과 도식의 유익을 모르는 바 아니다. 이해를 돕기도 하고, 더 깊은 논의를 위한 구분하기는 필요하다. 이론과 구분의 유익이나 필요성을 모르는 바 아니나, 많은 이론가들은 자기 이론이 삶과 괴리되는 시작한 것도 모른 채 필요 이상의 지점까지 나아간다. 나는 그것이 싫은 것이다.

    김영하에게서 맛보는 쾌감은 그의 소설이 삶과 괴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빠와 엘리베이터를 읽으면서, 줄곧 삶에 대해 한 수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삶, 다시 말해 희노애락애오욕의 모든 삶의 모습들이 김영하의 책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어떤 사건을 듣기 좋은 명제로 갈무리하거나, 인생의 지혜를 몇 단계의 지침으로 조언하지 않는 점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도덕적 판단이나 조언 없이도 그의 단편들은, 이를 테면 「이사」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고, 「크리스마스 캐럴」은 혼외 정사를 저지른 이들이 뜨끔하거나 반성하도록 이끄는 힘이 있었다. 오빠를 읽으며 나는 점점 김영하의 저력에 빠져 들었다.

    엘리베이터, 그거 되게 답답하게 읽었어.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은 누나가 던진 말이었다. 그래요? 응, 너도 한 번 읽어 봐. 근데 주인공이 널 닮았더라. 나는 또 한 번, 그래요?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땐 책을 읽기 전이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엘리베이터를 읽었다. 단행본에 함께 실린 다른 단편들도 읽었다. 이제 나는 김영하의 저력에 빠져 든 정도가 아니라,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김영하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세요? 라고 물어 오면 내놓을 답변이다. 나도 (누군가의 추천이나 평론가들의 힘을 빌지 않고) 내 가슴과 머리로 좋아하는 작가를 갖게 된 것이다.  

    깔깔거리며 웃기도 하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기도 하고,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 가슴 졸이며 책장을 넘기기도 하며 좋아하게 된 작가, 김영하! 소설 속에서 보여 준 그의 인간 이해에 전율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그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김영하의 소설들을 재료 삼아 삶에 대해 사색하고 싶어졌다. 어제는 한 후배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김영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난 번 누나에게는 김영하가 얼마나 좋은 책을 썼느냐 정도로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김영하의 인생관이 얼마나 깊은지, 그가 얼마나 좋은 소설가인지에 대해 이야기한 셈이었다. 그것 또한 갑자기였다. 어느 새 나는, 책 한 권을 잘 쓴 저자가 아니라, 훌륭한 통찰력을 지는 소설가요 작가로서 김영하를 존경하고 있는 게다.

    그 사람 블로그에 한 번 써 봐. 언젠가 누나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김영하 작가의 블로그에 가서 내가 당신을 참 많이 좋아한다, 라고 써 보라는 것이다. 에이 누나, 이제 전 겨우 책 3권 읽었는데요 뭘. 그걸 갖고 어떻게 좋아한다는 말을 써요? 아니지. 그 정도면 많이 좋아하는 거지. 내가 보니까 흠뻑 빠져 있구만 뭐. 그런가요? 하며 하하하 웃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김연수가 대단하다길래, 그의 책을 읽었는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김영하에게만큼 빠져들지는 못했다. (김연수와 같은 리스트는 몇 분 더 꼽을 수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래 전 김영하의 『굴비낚시』도 즐겁게 읽었던 것 같다.

    사실, 김영하가 얼마나 훌륭한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게 얼마나 큰 즐거움과 깊은 배움을 주고 있는지는 잘 안다. 바로 그 점이 참 좋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겨갈 때마다 조금씩 매료되기 시작했고, 매료된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더욱 그를 존중하게 되어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는 사실이, 난 참으로 좋다. 2009년 독일을 여행하며 읽은 『괴테와의 대화』, 그리고 괴테를 향한 열정이 떠오른다. 지난 해에 괴테를 만나 행복했다면, 올해는 쏠비치에서 김영하를 만나서 행복하다. 책을 통한 만남이 언젠가는 삶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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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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