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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읽으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늘 어림잡아 대답한다.
읽은 책이 많아 헤아리지 못해서가 아니다.
권수를 헤아리며 읽지 않기에 그렇다. 
읽은 권수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헤아리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완독하는 권수로 따지면, 한 달에 3~4개 권 정도 될 거예요."

그래서 어림잡은 나의 대답이다.
끝까지 완독하지 못하는 책들도 있다.
뒷심이 약한 고약한 천성 때문이기도 하고,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이 형편없어서 읽다가 집어 던지는 책은 거의 없다.
이렇게 부분적으로 읽은 책들을 모두 모으면
한 달에 3, 4권 정도는 읽는 셈이 되리라 생각해서 내놓은 답변이다.

그러다가,
2010년 5월 1일부터 읽은 페이지를 체크해보았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매일 빠짐없이 기록했다.
책의 표지와 간지 등은 모두 제외하여 내가 읽은 페이지만을 계산했다.
5월 14일까지 2주가 지났다. 내가 읽은 페이지는 540페이지였다.
이제 누군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5월 첫번째 2주 동안, 540페이지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짓거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을 이렇다.

1. 소통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누군가 물으면 어림잡을 필요 없이 구체적으로 알려 줄 수 있다.
이것은 모호함을 구체성으로 대체한 것, 그 이상의 효과다.

540페이지를 권수로 따지면 두 권이 될 수도 있고, 한 권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는 540페이지짜리 책이다.
저 묵직한 책은 540페이지를 씹어 삼켜야 한 권을 읽는 셈이 된다.
반면, 어제 완독한 『30분에 읽는 니체』는 150페이지짜리 책이다.
540페이지는 이런 책을 4권 가까이 읽어야 도달하는 수치다.
페이지로 말하는 것은 "한 달에 2권의 책을 읽습니다"라는 말보다
읽은 분량에 대해서만큼은 오해없이 전할 수 있는 방법인 게다.

사람은 자기만의 해석을 보태어 듣거나 읽는다.
구체적인 '사실'만을 전해 주어야 그들의 해석을 도울 수 있다.
잘못 해석되는 오해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읽은 책의 권수가 부풀어지는 것은 막아 준다. 여기서 두 번째 교훈이 나온다.

2. 읽은 페이지를 공개하는 것은 거품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이것은 독서가 이희석의 거품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4천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결코 4천 권의 책을 읽었다고 말한 적은 없다.
나는 고작해야 일년에 50 여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이다.
이렇게 10년을 읽어야 500권 정도가 된다. 나는 달팽이 독서가다.
꽤 느리게 읽는다. 온 몸으로 읽기 때문이다. 책에는 이렇게 썼다.

"책을 읽다가 적용할 만한 것이 나오면 책을 덮고 당장 실행해 보자.
머리로 책을 읽을 때 우리의 지성은 날카로워지고,
가슴으로 책을 읽을 때 우리의 정서는 풍성해지고 따뜻해진다.
손과 발로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삶의 도약을 경험한다."

-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 p.179

나의 속도로 4천권을 채우려면 80년이 걸린다.
이것에 대해서 나는 20대 초반에 계산해 본 적이 있었다.
계산하고 난 후, 느낀 것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정말 적구나, 였다.
그 때 배운 것은 정말 좋은 책을 읽어야겠구나, 였다.
이것은 내 인생의 유한성과 읽고 싶은 책의 무한성에 대한 자각이었다.

읽은 책의 권수를 따지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냐? 고 물을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권수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권수는 중요하지 않다.
모호함은 성공으로 가는 사다리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3번째로 얻은 교훈이다.

3. 성공으로 가는 사다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알려야 한다.
책의 내용을 찾아서 옮겨 적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그럼에도 앞서 책을 인용한 까닭은 성공의 사다리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서다.
나는 많은 책을 읽어서 삶의 도약을 이뤄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천히 읽으면서 도약을 이뤄내었다.
천천히 읽게 되는 것은 자주 책장을 덮기 때문이다.
사색하기 위해서 혹은 실천하기 위해서.

요컨대, 나는 많은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으며 자주 내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읽은 책의 권수는 성공으로 가는 비법이 아니다.
책 읽는 Leader 들이 성공적인 삶을 이뤄가는 것은 이런 등식 때문이다.

독서 + Somethings =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

somethings 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좋은 대인관계, 실행력, 열정, 주도적인 태도, 리더십, 학력 등.

다음과 같은 말은 틀린 것이다.
"이희석은 4천 권의 책을 읽었으니 얼마나 예의바르고 지혜롭겠어?"
'4천권'은 사실이 아니고, '지혜'라는 결론도 틀렸다.
많은 책은 지혜보다는 지식을 안겨다 준다.
지혜는 좋은 책과 삶의 현장이 어우러져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을 읽었으니 지혜로워질 것이라는 명제에 나는 반대한다.
지혜를 다룬 책, 지혜로운 저자가 쓴 책을 읽어야 지혜로워진다.
(그저 이론과 지식을 담은 책들이 있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기능의 차이다.)

성공으로 가는 사다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나는 자기경영 강사이고, 누군가는 내 말을 실험해 볼 것이기 때문이다.
실험은 그의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고, 시간은 곧 그의 인생이다.
나의 그들의 실험이 성공을 창조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성공의 진실을 전해야 한다.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삶으로 실험하여 검증된 것을 전해야지
대충 짐작한 것이나, 숙고하지 않은 것을 전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나의 직업에 대한 윤리요, 성실함이라 생각한다.

Posted by 보보

4월 7일에서 13일까지, 7일 간에 걸쳐 한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윤석철 교수님의 『경영 경제 인생 강좌 45편』이라는 책입니다.

215페이지 짜리이니 두꺼운 책은 아닌데, 오늘에서야 마지막 장을 덮었습니다.

저의 책 읽는 속도가 이 정도임을 말하기 위해 구체적인 날짜와 페이지를 적었습니다.

많은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면서 읽어야 합니다.


저는 읽으면서 메모도 하고, 생각도 하느라 느리게 읽는 편이지요.

도대체 무엇을 메모하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을지 몰라,

저도 한 번 제 책을 훑어 보았습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어 보여 드리지요.


1. 적용하기 :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라


책을 읽으면서 「」표시를 자주 하는데, 이것은 책을 읽고 나서

노트북에 정리할 만한 내용들을 뽑아두는 저만의 기호입니다.

밑줄을 긋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간단한 방법이지요.

아래 사진에서 「」가 된 내용을 옮겨 보겠습니다.



[45] 고객이 느끼는 필요와 정서에 관한 철저한 조사 없이

막연한 기대만 가지고 사업에 투자하면 실패하기 쉽다.

정부와 국민,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가정에서는 부부 사이가

모두 고객관계이고 '주고받음'의 현장이다.

고객과 '주고 받음'의 관계에서 성공하려면

고객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숫자 45는 페이지를 의미합니다.

파란 글씨로 메모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A : 법원공무원에 대한 조사

- 이들의 대고객은 누구인가?

-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A는 Apply 의 약어로 책의 내용을 적용하자는 뜻이지요.

저는 4월 말에 법원공무원 연수원에서 강연을 하게 되는데,

강연 준비에 도움 될 만한 내용이 떠올라 이렇게 메모해 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나읽만』(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에서 강조했던 그대로입니다.



2. 조사하기 : 더 공부하거나 자료를 찾아 확인하라


또 다른 페이지에서 「」표시가 된 부분을 옮긴 후, 설명을 이어가겠습니다.  


[161] 당시 소련도 미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핵무기를 사용 않는) 재래식 전쟁으로는 지리적 거리로 인하여

카리브해에서 미국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흐루시초프 수상의 고민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흐루시초프 수상은 미국의 요구에 순응,

미사일을 철수함으로써 핵전쟁의 위기를 넘겼다.  (아래 사진 참고) 



쿠바 사태를 진정시킨 것은 케네디 대통령의 리더십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제게

책의 내용은 전체적인 이해를 도와 주었습니다.

물론, 저는 저자의 견해가 타당한지(역사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인지)

알고 싶어 책의 여백에다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S : 흐루시초프 수상에 대한 후대의 역사적 평가를 살펴 보자.


S는 survey의 약어로, 내가 직접 (책의 주장에 대한 진위 여부를) 조사해 보자는 게지요.



3. 생각하기 : 의심되는 대목은 반론 제기, 더 고민해 볼 대목은 생각을 이어가라


또 다른 페이지에는 저자의 견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된 내용도 있습니다.

저자는 물리학, 경영학, 전기공학 등 다방면에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석학입니다.

그런 학문적 배경 덕분인지 주장은 균형이 있고, 사례가 다양한 것이 책의 장점입니다.

반면, 몇 가지 사례는 거듭 반복되었고, (파나마 운하 사례는 3회나 등장하지요)

어떤 경우에는 '끈기'라고 해석하면 더 좋을 사례가 '상상력'으로 해석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책에 집중하여 읽으면 저자의 사례 제시에 대한 타당성 여부를 살펴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책의 핵심 주장이 아닌 사례에 관한) 지엽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책 전체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지요. 서로 별개의 문제니까요.




오늘, 책의 마지막 장을 덮기 전에 있었던 집중력의 변화를 이야기함으로 글을 정리하겠습니다.

200페이지가 넘어갈 무렵입니다. 45개 챕터 중에 2개 챕터만이 남은 상황이었지요.

얼마 남지 않았으니 끝까지 읽자는 마음이 들 무렵, 빨리 읽어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겨 두기는 찜찜하니, 그냥 읽고 치우자 식의 마음이었는데

그렇게 읽은 마지막 2개의 챕터는 눈으로 읽어 낸 것 외에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조바심이 드는 순간, 학습의 효과가 반감되(혹은 그 이상으로 줄어드)는 경험이었지요.


취미로서가 아닌 꿈을 이뤄 가고 자신을 계발해 가려는 목적이나

지성을 쌓아가려는 목적이라면 조바심을 버리고 정성들여 읽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은 이 글의 결론입니다.

책 읽는 속도보다 책 읽는 정성에 관심을 두어라.

정성이 쌓여 사고력이 쌓여가면 속도는 저절로 붙는다.

이해력이 좋아져서 독서의 속도가 붙어야지

눈을 움직이는 기술력이 좋아져 붙는 속도는 기술에 머문다.

진중한 독서를 위해 조바심을 버리고 독서를 즐기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보보


역설적인 말처럼 들리겠지만,

독서의 유익은 책을 읽고 싶다는 충동을 적절히 제어해야 얻을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내겠다는 목적에 눈이 멀어 사색의 충동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독서는 사색으로 가는 통로다.

그러므로 읽기책을 보기스스로 생각하기의 결합이 되어야 한다.

몰론, 책의 모든 내용을 한 번에 이해할 순 없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책의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순 없다.

"독서한 내용을 모두 잊지 않으려는 생각은

먹은 음식을 모두 채네애 간직하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말을 가볍게 책을 읽어도 된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는 만년의 저작인 『여록과 보유』의 독서론에서

줄곧 독서보다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독서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색의 대용품에 불과하다." - 쇼펜하우어

책을 굳이 골치아프게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느냐,

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쇼펜하우어는 단호하다.

그는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는 학자들과

사색을 통하여 새로운 견해를 만들어가는 사상가를 구분한다.


"학자란 타인이 남긴 책을 모조리 읽어버리는 소비자이며

사상가란 인류를 계몽하고 새로운 진보를 확신하는 생산자라고 표현할 수 있다."


생각하는 것 없이 책을 읽는다고 하여 자책할 필요는 없다.

독서가 무조건 생산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기분전환과 흥미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유익하니까.


읽기 = 보기 + 생각하기

그러나, 책을 통해 지성을 연마하고

학습 능력을 키워나가고 싶다면 위의 등식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읽어대려는 충동을 억누르고, 사색의 충동을 살려내야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1)
-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을 쌓고 싶은 분들을 위해


※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라는 책이 있으신 분들은
3장에서 객관적 독서와 주관적 독서의 차이를 이해한 후에
아래 글을 읽으면 좋을 테지만, 읽지 않으셔도 지장은 없습니다.


객관적 독서의 목표는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세계를 해석하는 핵심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라는 의문이 "아, 그럴 수 있지"라는 편안한 이해로 바뀌는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은 성공적인 인생과 행복한 삶을 사는데 중요한 기초다.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자신의 문제를 다룬 책들만 읽게 된다.
세계를 이해하는 것, 곧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세계를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읽으면서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독서모임에서 『좋은 사람 콤플렉스』라는 책을 함께 읽을 때였다.
책을 읽고 있던 와우팀원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제 얘기가 아닌 것도 많아서 그냥 설렁설렁 넘어가고 있어요."
그 말을 듣고 그와 나눈 대화를 정리해 본다. 먼저 그의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선생님이 말한 것을 보게 되요.
그러면 그 한 두 세 줄을 아, 이거 중요한 거지, 하고 들여다봐요.
하지만 다른 내용들은 내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뽑아낼 것 뽑아내고
넘어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필자는 세계를 해석하는 지식에 대한 그의 욕구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문제와 직접적인 연결이 되는 책들만 
읽는 독서 성향을 가졌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세계를 해석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거야.
네가 지금 이 책에 대해 느끼고 있는 것, 오늘 통화 후에 느낀 것 등을 기록해 두었다가
독서 모임 때 발표를 해 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발표도 잘 들어 봐.
그러면 분명히 하나의 책에 대해서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왜 그렇게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여 알아가게 될 거야.
이런 활동이야말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게다."

그는 이 책을 읽는 동기를 하나를 얻은 듯했다.

"아, 그러면 '이 책은 나와 상관없군' 이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유익한 책이겠네요.
저는 제 문제가 아니면 별로 신경쓰지 않았거든요."

자신의 지력 향상과 인격 성숙을 위해서 독서하는 것, 물론 옳은 얘기다. 
또한, 다른 사람을 이해하여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기 위해서도 책을 읽는다.
두 번째의 목적을 받아들이면 읽는 책의 분야를 넓힐 수 있다.
자신의 문제를 다룬 책만을 읽는 패턴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독서는 책을 읽는 것이다.
독서의 기술이란,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관한 것이다.  
첫째로 '어떤 책'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갖는 것이 중요하고
둘째로 그 책을 '어떻게 읽느냐' 에 답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객관적 독서의 달인이 되고자 한다면
다시 말해, 세상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고 싶다면,
먼저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객관적 독서를 이루려면 자신을 관심사와 고민을 뛰어넘는 책까지 읽어야 한다.

이것은 자기 독서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 생각의 틀 속에 갇혀 산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자기 관심사와 고민이 아닌 책을 읽으라고 동기 부여를 하기란 무척 힘겨운 일이다. 

거듭 말하건대, 세계를 해석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인간의 행동 이해가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관심사와 고민에 관련된 책만을 읽었더라도
이제는 '사람들의 행동 이해'를 목표로 둔다면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깨닫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중요하다. 자신이 읽는 책의 지평을 활짝 열어젖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서의 달인은 주관적 독서와 객관적 독서를 넘나든다.
주관적 독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고 도약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객관적 독서를 통해 자신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을 읽는다. 
주관적 독서와 객관적 독서는 독서법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이렇듯 읽을 책을 선정하는데서부터 차이가 난다.

이것은 큰 차이다.
어떤 책을 한 두 권 더 읽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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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책은 재밌었다. 어젯밤, 늦은 시각까지 책을 읽었다.
시작은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였고
끝은 장 자크 루소에 대한 책이었다.
읽던 책을 덮고 나니, 아침 6시가 되었다.

본래, 나는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책을 읽을 만큼의
끈기나 집중력이 있는 사람이 못 된다.
사실,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쭈욱 읽은 것이 아니라,
3권의 책을 번갈아 가면서 읽은 것이다.

이런 몰입의 순간이 종종 찾아왔으면 좋겠다.
나도 마냥 얕은 수준에서 놀 순 없으니까.
바닷가에서 물장구를 치는 수준이 아니라,
바다 깊은 곳에서 우아하게 유영하고 싶다.

라마크리슈나는 인도 벵갈 지역 출신의 성자다.
최근에 읽은 책이 인도의 고전 『카마수트라』에 관한 책이어서
점점 인도의 영혼의 스승들에 대해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라마크리슈나는 근대 인도에서 가장 빛나는 스승이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와 위대한 영혼 간디 그리고 네루가 하나같이 찬양한 라마크리슈나.
올더스 헉슬리는 라마크리슈나 잠언집의 영문 번역본에 서문을 썼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로망 롤랑은 그의 전기를 책으로 펴냈다. 
그는 자아실현에 관한 깊은 통찰이 깃든 명언들을 많이 남겼다. 하나를 옮겨 본다.

"사람은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세속에 사로잡힌 사람,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 자유를 얻은 사람, 그리고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이다.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은 타인의 유익을 위해,
즉 사람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세속에 붙잡힌 사람은 세상적인 것에 빠져 신을 망각한 자이고,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자이다."


*

장 자크 루소는 1차 자료가 아닌 개설서 두 권을 읽었다.
루소의 삶은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이야기꺼리가 많았다.
개인적 삶은 방황의 연속이었고, 볼테르의 폄하는 생각할 대목이 많았다.
칸트의 루소 찬양은 약간은 의외였는데, 이것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칸트는 루소의 초상화를 서재에 걸어 두고 그를 흠모했다.
루소의 『에밀』을 읽느라 한번도 빠짐없었던 산책을 걸러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루소로부터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는 칸트의 말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루소의 대표작은 『사회계약론』인데, 『에밀』이나 『신 엘로이즈』가 당긴다.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일수록 말하기를 좋아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침묵을 지킨다.
적게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요,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요한 경우나 질문을 받을 때 이외는 말을 아끼는 것이다."  - 루소


말의 많고 적음은 개인의 기질 차이가 반영되는 것이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루소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나는 같은 주제의 책을 한 권 읽을 때에 가장 시끄러워졌고
두 권, 세 권을 읽어가며 보다 잠잠해 졌으니 말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그대로 성립되는 것은 아니리라.
말이 많은 모든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은 아니란 말이다.
다만, 지식이 쌓여갈수록 신중해지고 겸손해지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깡통에 돌이 하나 있을 때 가장 요란하고, 가득 찼을 때에는 묵직하고 조용한 것처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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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사랑에 빠지면 온갖 충만한 감정과 착한 기운이 흘러 나옵니다.
이별을 경험하면 극심한 고통과 그리움이 우리를 감쌉니다.
사랑의 힘이고, 상실의 영향입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열정이 흘러 나올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해야 비로소 학습(=공부)이 일어납니다.
생각하고 있던 것을 실천하는 것 없이 학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기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전을 선택하기 보다 안주를 선택합니다.
안주하는 일은 (도전하는 일보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안전함은 느낌일 뿐입니다. '안전'은 어디에도 없을 지도 모릅니다.

공부는 생각이 아닙니다. 공부는 행동도 아닙니다.
생각과 행동을 통합하는 과정이 공부입니다. 이것이 공부의 정의입니다.
공부는 시간이 걸리는 과정임을 정의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공부는 배우고 익힌다는 뜻인데, 배우는 데에는 잠깐 일 수 있지만
그것을 익히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조바심은 공부의 적입니다.

조바심을 떨쳐 버리는 한 가지 비결은 신의 섭리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그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합니다.
우리는 시간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시간 관리의 미숙함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못합니다.

우리 인생은 하고 싶은 모든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까지 하기에는 참으로 부족할 수 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누군가의 공부론이 깊이보다는 속도에 치우쳐 있다면
그것은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어야 오래 갈 수 있고, 오래 가야 깊어질 수 있습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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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마이클 더다는 최근 2~3년 사이에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진 미국의 책벌레다.
1993년에 비평 부문 퓰리처상을 받은 영향력 있는 독서가이자, 평론가다.
이제 육십 줄(1948년생)에 접어든 그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책과 함께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눈앞에 보이는 건 그린 랜턴의 만화책부터
세계문학의 위대한 고전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 『북 by 북』中


더다의 자서전인 『오픈 북』에는 어린 시절의 남독하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나는 『오픈 북』을 읽다가 지루해서 1/3 밖에 읽지 못한 채 책장을 덮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도 저자의 어린 시절 독서기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마이클 더다의 자서전과 비슷한데, 2001년에 읽은 다카시의 책이 훨씬 재미있었다. 
벌써 9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책 이야기를 위주로 전개되어 재밌었던 것 같다.
더다의 자서전은 저자 중심의 이야기가 많아 지루했으니까.
한편,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이야기를 담은 『고전 읽기의 즐거움』은 재밌게 읽고 있다.
이상의 사실들로 『오픈 북』이 지루했던 원인 분석을 나름 시도했지만, 진짜 원인은 나도 모른다.

사실,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밝히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개별적인 경험을 인식할 뿐이다. 어떤 책이 재미없었다는 경험과 또 다른 책은 재미있었다는 경험.
그런 경험들의 인과 관계를 논할 때,
나는 어디까지 생각해야 하며, 도대체 어떤 생각과 어떤 생각을 연결해야 한단 말인가.
책을 읽을 당시의 내가 유난히 집중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물론, 거듭 노력을 했지만)
예전보다 지금의 내가 좀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앞서 내가 설명한 재미없고, 재있음에 대한 원인 분석이 틀리더라도 양해해 주시라.
혹, 훗날에 『오픈 북』을 재미있다고 번복하더라도 '아, 다시 재밌게 읽었나 보다'하고 생각해 주시라.

마이클 더다를 언급한 것은 그의『북 by 북』을 권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분야별로 저자가 생각하는 고전을 간략히 소개하며 추천한 책이다.
독서와 교양에 관한 명언이 많이 등장하여, 잠시 책을 놓고 생각하면서 읽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귀한 고전 목록을 손에 얻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엄청난 분량의 목록이지만, 마음에 와 닿는 목록들이다.
철학, 역사, 정치 등의 전형적인 분류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분류니까.

"큰 소리로 읽어도 괜찮고, 혼자 조용히 읽으면서
이런저런 일로 시달린 당신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책들을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p.124)
(목록은 생략 ^^)

"도덕주의자들은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본질적인 문제의 답을 구하려 애써왔다.
이 유구한 전통을 잇는 핵심적인 책들을 대력적으로 소개해 보자."
(p.204)
(역시, 목록 생략 ^^)

독서가라면, 이런 식으로 자신이 읽은 책을 분류해 두어 필요한 이에게 목록을 추천하고 싶으리라.
이것은 나의 꿈이기도 한데, 게으름과 불성실한 독서로 인해 아직 제대로 만들어 둔 목록이 없다.
더욱 직접적인 원인은 목록을 만들 만한 지식이 아직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계속 무지하게 살고 싶진 않기에, 인문학에서부터 교양이라 부를 만한 지식을 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이클 더다는 '가치 있는 지식'이라는 소제목을 달아 세계문학의 Must-Read Book을 소개했다.

"세계문학에 대해 우리는 어디까지 알아야 할까? 내 생각이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 독서 계획을 짜든 위대한 '표본 작품'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표본 작품은 후세의 작가들이 근본으로 삼고 수시로 언급하며 모방하려는 작품을 뜻한다."

 (『북 by 북』 p.25)

- 성경 (구약과 신약)
-『불핀치의 전설의 시대』 (혹은 그리스, 로마, 스칸디나비아 신화)
- 호메로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단테 『지옥편』
-『아라비안나이트』
- 토마스 말로리 『아서왕의 죽음』 (나남)
- 셰익스피어의 주요 희곡, 특히 『햄릿』『헨리 4세』, 『리어 왕』『한여름 밤의 꿈』『템페스트』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 대니얼 디포 『로빈슨 크루소』
-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 그림 형제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동화
- 세계 주요 민담집
-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 아서 코넌 도일 『셜록 홈즈의 모험』


(참고로, 희랍 고전의 번역서는 무조건 '천병희' 선생의 책을 고르면 된다.
『아서왕의 죽음』과 『오뒷세이아』 등은 한국에서 보다 널리 쓰이는 제목 표기를 따랐다.)

나는 이 목록을 『인문학 스터디』와 비교해 봤는데, 고대와 근대의 목록은 많은 부분 일치한다.
『인문학 스터디』에서는 근대 이후의 책은 다루지 않는데 반해,
더다는 현대의 고전을 많이 포함시켰기에 현대 문학의 목록을 서로 비교할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위의 목록에 대한 나의 결론은 더다의 권위있는 다음의 말에 고개 숙일 수 밖에 없다. 읽은 책이 없으니.
"이 책들부터 읽어라. 그럼 세계 문학의 거의 대부분을 읽은 셈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더다의 책 『북 by 북』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240페이지의 얇은 책이지만, 고전에 대한 알짜 정보가 가득하다.
아쉬운 것은 저자가 추천하는 책 중에는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태반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 말은 번역된 책들이 태반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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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책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당신의 생활은 부질없는 야심과 쾌락을
추구하는 데 바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그 세계는 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 볼테르


근사한 말이기도 하고,
책을 읽지 않은 이에게는
약간의 반감을 일으킬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잠깐 생각해 보자.
볼테르의 말은 옳은가?
아래 글이 생각을 돕기 위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볼테르의 책 찬양론 고찰


볼테르는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만약 그가 세상을 움직여 본 경험이 있고,
자신은 책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충분한 자격이 있는 것이리라.

볼테르는 명성이 높았다. 그가 머무는 마을에는 인구가 열배 이상 불어나기도 했으니.
그가 가는 곳마다 다양한 계층과 신분의 사람들이 볼테르에게 조언을 구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국왕, 러시아 여제 카타리나 2세가 볼테르에게 경의를 표했고
프리드리히 2세는 볼테르와 10년 이상 편지를 주고 받았고 여러 차례 초청하기도 했다.

분명 당대의 지성계를 뒤흔들었던 볼테르였다.
안광복 선생(『처음 읽는 서양철학사』의 저자)은
볼테르를 '프랑스의 대표 문화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한 달 동안 독일을 여행한 나로서는
"괴테는 독일의 대표 문화 상품"이라는 말에는 경험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직접 보았으니.
그러나 3일 동안 파리만 여행했으니 안광복 선생의 말은 책을 통해 확인할 수 밖에 없다.
아직은 안광복 선생의 말에 대한 찬성은 유보하기로 한다.

빅토르 위고가 볼테르를 치하한(?) 말은 정말 놀랍다.
"이탈리아에는 르네상스가 있었고, 독일에 종교개혁이 있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었다."
다른 두 나라의 역사적 사건에 비견되는 인물이라니.
이상의 사실로도 볼테르의 독서 찬양론에 타당성이 부여되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러나 빅토르 위고의 말 역시 판단 유보다. 
빅토르 위고는 다소 과장된 표현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을지 모르니까.

볼테르는 분명 당시 세계에서 존경 받는 지성인이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가 남긴 책은 99권이다. 볼테르는 독창적인 사상으로 철학사를 풍성하게 하기보다는
달변의 사상가이고, 열정적이고 끈기 있게 글을 써낸 사상가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학자가 아닌 사상가로 불려질 수 있는 까닭은
역사의 서술에서 이전과는 다른 길을 개척했고
당시 세태를 탁월한 풍자로 비판했던 지성이었기 때문이다.

볼테르는 『여러 민족의 풍속과 정신에 관한 시론』를 썼다.
역사서인 이 책에서 그는 개별적인 사실들만을 나열하고 싶지 않았다.
역사를 꿰뚫어 설명하는 원리를 예술과 정신의 진보에서 찾았다. 
그리하여 '군주나 크고 작은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예술과 정신의 역사'를 썼다.
 
"나의 목적은 인간 정신의 역사를 쓰는 것이지,
하찮은 사실을 무수히 열거하거나 위대한 군주들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 어떤 단계를 거쳐 야만에서 문명 상태로 진보해 왔는가를 알고자 한다."

이 책은 페르시아, 중국, 인도의 역사를 포함하기도 하여
지금까지의 역사서와는 달리 폭넓은 시각과 이민족의 문화까지 다룬 역작이 되었다. 

볼테르는 불의한 기독교와 교회를 신랄히 비판하고 풍자하기도 했다.
그의 유명한 "파렴치한들을 타도하라"는 말에서 파렴치한은 모든 종파의 교회를 지칭한 것이다. 
자신을 '이신론자'라고 말하면서도, 예수의 존재나 산상수훈에는 열광적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평생 신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나 이신론자의 정체성대로 기독교를 수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서로 반목하는 종교, 공허한 겉치레, 난해한 형이상학적 견해를 비판했다. 

루소와 함께 대표적인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
그에 견줄만한 당대의 지성은 드니 디드로, 루소 등 극소수다.
만약, 볼테르가 지식과 독서, 글쓰기 등에 대하여 주장한다면,
그가 말한 내용들은 신뢰할 만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의 지성 전체를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1)

볼테르가 독서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다시 적어 본다.

"당신은 책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당신의 생활은 부질없는 야심과 쾌락을
추구하는 데 바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그 세계는 책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나는 이 말의 출처를 원전에서 찾지 못했다.
스티브 레빈의 『전략적 책읽기』에서 본 말인데
거기에는 출처가 볼테르라고만 적혀 있었다.
그래서 볼테르의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한스2)에 따르면, 볼테르의 책이 당시 시대상을 풍자한 내용이 많아
지금으로서는 그의 원전이 거의 읽히지 않는단다.
그러면서도 소설 『캉디드』를 오늘날에도 독서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꼽았다.
나는 『캉디드』와 『관용론』을 읽어야겠다.
관용은 상대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필수품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한 손에는 복음을, 다른 손에는 관용을 들어야한다.
상대주의 시대에 (복음이라는) 절대주의를 전파하려면 고도의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관용이라는 키워드에 그러한 지혜가 깃들어 있으리라고 믿는다.
오래 전부터, 관용(톨레랑스)를 한 번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다.



1) 볼테르는 윌 듀란트의 지적처럼 민중을 신뢰하지 않는다.
부자였던 볼테르는 보수주의 쪽으로 기우는 생각을 지녔던 것이다.
대지진 후에 염세주의 쪽으로 흘러버린 점도 아쉽다.
대중에 대한 불신과 염세주의는 쇼펜하우어와 닮은 꼴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점에서 볼테르를 따를 수 없다. 그러나 지성은 존경한다.


2)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는 『세계 철학사』의 저자다.
이 책은 나의 눈높이에 딱 맞으면서도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요즘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권하는 책이냐고? 모르겠다.
왜냐고? 좀 두껍다 싶어, 지금 막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했더니 1187페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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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정말 삶을 바꾸는가?

나는 이 질문을 두고 한동안 회의했다.
물론, 나는 독서가 즐겁다. 독서를 통해 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행여라도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독서가 유익하다는) 관념을
아무런 회의 없이 받아들여 나 스스로도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었던 것이다.

더이상 나의 머리로 사고하지 않은 채, 나의 삶으로 살아보지 않은 채 
어딘가에서 전해 들은 관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20대 초반, 술자리에서 종종 등장하는 주제는 군대 이야기다.
군대에 다녀오는 것이 과연 인생에 도움이 되느냐? 라는 거창한 주제가 술안주로 오르기도 한다.
그 때, 한 여대생이 의견을 주장한 적이 있다. "남자라면 군대에 다녀와야 해"라고,

나는 여대생의 의견을 듣고, 그것이 스스로 생각해 낸 결론인지 회의했다. 
그녀는 군생활이 남자들의 향후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군필자와 미필자의 사고에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사회는 그 둘을 다르게 바라보는지,
과연 둘 사이에 차이가 있기나 한지에 대하여 깊이 사고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했다.
어쩌면, 어느 다른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었으리라. "남자는 군에 다녀와야 해."
그 이야기를 별다른 생각없이 들었다가 반대편 귀로 흘려 버렸으리라.
그러다가, 오늘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다 자기도 모른 채,
다른 자리에서 전해 들은 그 말을 불쑥 여기에서 내뱉았으리라.

상상이 지나칠 수 있지만, 개연성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나는 내 머리로 스스로 생각하며 살자고 결심했고,
내 삶에 들어온 몇 가지 의심쩍거나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긴 관념에다 물음표를 던졌다.
회의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어 확신을 갖게 된 것도 있고,
지우개로 지워 버리게 된 관념들도 있었고, 여지껏 회의하고 있는 관념들도 있다.

독서는 내게 유익한가? 라는 질문은 오랫동안 궁리하다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풀렸다.
즐겁긴 한데, 실제로 내 삶에 도움을 주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YES" 라는 답을 얻었기에 첫 책을 독서를 주제로 쓸 수 있었다.

최근, 내 삶을 돌아보며 "YES"라는 대답에 더욱 힘을 실어 줄 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냈다.
내가 가진 좋은 생각들, 강연 때 전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모두 독서를 통해 얻은 것이었다는 명백한 증거들을 많이 찾아낸 것이다.

2000년 1월, 나는 『지도력의 원칙』이라는 리더십 관련서를 읽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힘과 영향력을 다룬 책이다. 
좋은 책인지는 지금 다시 읽어봐야겠만
당시 나는 이 따분해 보이는 두꺼운 책을 절반 이상이나 읽었다.

퍽 즐겁게 읽었고 한동안 책의 내용을 교회 후배들에게 전했던 기억이 난다.
책은 3가지의 지도력을 설명한다. 두려움을 이용한 강압적 지도력,
거래를 이용한 실리적 지도력(사장과 직원간), 그리고 원칙 중심의 지도력이다.
존경심에서 나오는 영향력이 원칙 중심의 지도력인데
책의 절반 이상은 영향력을 업그레이드하는 방법 등 영향력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나는 지금 한 권의 책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잊고 있었던 어떤 책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작은 조직과 공동체에서 리더의 위치를 경험하고 나서
리더십의 핵심은 신뢰, 사랑, 존중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의 생각이 회사라는 조직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견이 있겠지만, 
제임스 C. 헌터의 『리더십 키워드』를 통해 이러한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

리더십에 대한 나의 생각은 다름 아닌
『지도력의 원칙』이 주장하는 핵심 메시지다.
며칠 전부터 『지도력의 원칙』의 책 속지에 적힌 글귀를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한 구절이 이 책에 쓰였다는 기억이 났던 것이다.
오늘 책장에서 책을 꺼내 펼쳐 보았더니 이런 말이었다.

"당신에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다만 그들을 신뢰하고, 격려하고, 존중해 주면 된다."

당시에도 이 말이 참 좋았고, 진실이라 믿었다.
지금은 이 말 덕분에 와우팀장이 될 수 있었고
교회 공동체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리더가 되는데 큰 도움을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스티븐 코비의 책에서 배운 '공감적 경청'이다.)


『지도력의 원칙』에는 내가 적어 둔 메모들이 있는데,
메모가 되어 있는 페이지를 뒤적이다가
'연령에 따른 자신감의 변화'에 대한 내용을 발견했다.
누구에게나 두 번 정도(유년 시절과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찾아온다는 내용이다.
그것은 나의 경험과도 일치하여 마음을 쳤던 내용이다. 
종종 강연에서 나는 이 이야기를 전하곤 했다.

지금껏 나는 자신감에 대한 이 이야기를 어디에서 배웠는지 알지 못했다.
오늘에서야 십년 전 읽은 책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독서를 통해 십년 전에 배웠던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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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

독서가 내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는 많았다.
다만, 내가 나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그것을 설득력있게 전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독서는 유익하다"는 구호 같은 메시지가 아니라,
나의 삶으로 독서의 유익을 전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20대 초반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행복하게 잘 사는 삶은
'기어오다가 과자를 집는 데 온 정신을 쏟는 아가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삶'
일지도 모른다."
(글의 전문은 http://www.yesmydream.net/25 를 클릭해 보세요.)

나에게 행복은 정말 전망 좋은 아파트, 멋진 차, 높은 연봉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아기 귀에 난 솜털을 봐라. 뒷마당에 앉아서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어라.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라. 인생을 곧 막이 내릴 무대로 여겨라.
그러면 기쁨과 열정을 품고 인생을 살게 될 테니까.
그런 마음으로 살면 사는 것처럼 살게 될 테니가."

나는 어느 작가의 이 말을 믿었다. 아니, 자연스럽게 믿어졌다.
그 작가는 자신의 책에다 "목적지가 아닌 여정을 사랑하라"는 말도 언급했다.

삶을 살면서 행복에 대한 생각이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나의 첫번째 반응은 놀라움이다. 처음엔 정말 놀라웠다.
그러다가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행복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지금 앞서 언급한 이야기를 쓴 작가 애너 퀸들러의 책이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이라는 아주 작은 책자다. (30여 페이지 정도, 그림까지 포함해서)

나는 그 책을 통하여 행복이 일상 곳곳에 깃들어 있음을,
그래서 행복을 발견하는 눈만 가지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당시엔 이 깨달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후, 수년 간을 살아오면서 점점 그 작은 책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행복에 대한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그 책이 진정 고맙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행복』을 뒤적이다가 또 하나의 옛 추억을 발견했다. 
쏜살같은 시간의 속도에 절절함을 느끼던 20대 중반,
나는 내가 예순이 되는 연도를 계산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일이 바로 이 책에 기록되어 있었다.
책에는 "인생은 짧습니다. 그 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라는 말이 있었고,
그 옆에는 내가 적은 메모가 있었다. " 내가 예순일 때는 고작 2037년이다."
잊고 있었던 한 권의 책이 이리도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니...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애너 퀸들런'을 검색해 보니
이 작은 책은 아직도 판매되고 있는 듯 했다.
(내가 가진 책은 2001년에 나온 책이다. )
일독을 권하지만 구매를 권하는 것은 아니다.
(권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15분 만에 읽어낼 수도 있는 아주 작은 분량의 책이니.)


전하고 싶은 말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나는 스무 살 이후, 14년째 읽었던 책들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뒤적일 때마다 나는 아주 즐거워진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가 마구 쏟아지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가만히 속삭인다.

'독서는 정말 내 인생을 바꾸었구나.
나는 정말 읽는 것으로 만들어져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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