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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해당되는 글 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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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개봉일 : 2009. 11. 12
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출연 : 존 쿠삭 (잭슨 커티스), 아만다 피트
   (케이트 커티스), 치웨텔 에지오포(애드리언 헬슬리)

관람 : 2010년 4월 11일, 관광버스

평점 : ★★★★

간단평 : 스펙타클한 재난 장면은 정말 압권임.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걸 후회할 정도로. 짜릿한 스릴과 거대한 스케일을 즐겼음. 반면, 매력없는 주인공 가족 대신 감동적인 몇몇 조연들로부터 희망과 에너지를 얻었음.


누구를 구할 것인가?

이 영화가 <투모로우> 의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것은 관람 후, 기사를 검색하며 알게 되었다. 롤랜드 에머리히를 재난 영화 전문감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싶지는 않다. 같은 소재지만, 표현하고 싶은 것은 매번 다를 수 있다. <2012>의 소재는 종합재난세트로 구성되어 있지만, 감독이 말한 영화의 초점은 재난이 아니라, 재난 그 이후다. "누구를 구할 것인가?" 이것이 영화가 보여 주려는 하나의 메시지다.

"새로운 세상 만드는 데 늙은 정치가보다
젊은 과학자가 필요하지."

-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생존을 포기하며

결국, 대통령은 죽는다. 희생적인 모습이 퍽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동체에는 현명하고 헌신적인 리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아의 방주'에는 선장은 있지만 실제적인 리더가 없었다. 최고의 지위를 가진 자가 아니라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이 리더다. 리더는 쉽게 알 수 있다. 사람들의 리더의 말을 따르기 때문이다. 노아의 방주는 문을 닫기 직전,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결국, 生의 기회를 준다. 그것은 젊은 과학자의 다음과 같은 양심어린 호소 때문이었다. 그 순간엔 그가 리더였다. 누구를 구할 것인가? 나는 하나의 대답은 할 수 있겠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헌신적인 리더!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두당 10억 유로의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구원해서는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
 
"남들이 흘린 피 위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선 안 됩니다."


가족의 의미 = 우리의 생존기반

주인공 가족은 매력적이지 않다. 주인공 잭슨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한 소설가다. 아내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몹쓸 남편이다. 결국 이혼을 당했다.  "당신에게는 모든 게 뒷전이고 글만 써댔잖아. 우린 내댕동이쳤잖아요." 일과 삶의 균형을 놓친 가장, 연민이 가지만 전혀 닮고 싶지 않은 주인공이다. 게다가 주인공 가족은 오직 자신들만의 구원을 향하여 달리고 또 달린다. 이 과정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스펙타클한 재난 장면은 정말 압권이다. 주인공 가족의 가족 이기주의 역시 스펙타클하다.

주인공 가족에 비해 티벳에서 만난 불교를 믿는 어느 한 가족의 모습이 빛났다. 불교 가족의 장남은 노아의 방주 호 건설에 참여한 인부였다. 그래서 그 가족은 방주에 올라타는 길을 알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주인공 가족을 만난다. 주인공 가족까지 들어갈 수는 없다고 제지당했을 때, 불교 가족의 리더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대지의 형제라고. 코즈모폴리터니즘(세계 시민주의)의 모습을 보여 준 장면, 내게는 무척 인상 깊었다. 주인공 가족에게 기대한 것을, 이렇게 다른 가족에게서라도 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들 모두 대지의 형제다
불교 신자로서 저들이 죽는 걸 모른 체 할 수 없다."


주인공 가족이 보여 준 것은 전혀 없지는 않다. 가족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했다. 영화는 노아의 방주에 무사히 탑승한 가족의 1년 6개월(?) 후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난다. 잭슨 커티스와 딸의 대화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딸이 묻는다. 아빠, 우리는 언제 집으로 가? 아버지가 대답한다.

"가족이 있는 곳이 바로 집이지"

그의 말은 정답이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중한 병에 걸리거나, 힘겨운 일이 당했을 때 우리는 늘 깨닫게 된다. 가족의 소중함을. 가족은 우리의 생존기반이다. 공룡은 자신의 생존기반인 숲을 매일 엄청나게 먹어치웠다. 생존기반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지혜가 없었다. 생존 기반을 돌보지 못하는 종은 언젠가는 멸종되는 것이 자연의 역사였다. 지금 우리는 인류의 생존 가능성을 물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거시적인 생존 기반이라면 가족은 미시적이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생존기반일 것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이 영화를 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선생님과 연구원들이 함께한 MT 를 다녀오는 관광버스 안에서 관람했다. (관광버스 안의 영상시설이 꽤 좋았다.) MT 를 통해 우리는 열심히 글을 쓰자는 마인드를 공유했다. 영화를 보다가 휴게소에서 쉴 때, 선생님께 농담조로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부님,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데 글을 쓰면 뭐 하나요?"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셨고, 옆에 있던 선배 연구원이 내 말을 받아주었다. "선생님,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저는 오늘 한 편의 글을 쓰겠습니다." 선배의 더욱 재치있는 말에 함께 있던 연구원들은 웃을 수 있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사람은 스피노자였던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의 生을 흔들림 없이 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이 인생일 터이니 스피노자가 말한 방식의 삶이 옳을 것이다. 재난 영화에서 으례 자신의 일을 끝까지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타이타닉>에서 침몰 직전까지 찬송가를 연주하던 바이올니스트들, <2012>에서 해일에 휩쓸려 가기 직전까지 종을 치던 승려. 그렇다면 작가를 꿈꾸는 나의 최후는 모니터 앞이 될 것인가? 그보다는 책을 읽다가 기도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공부하는 작가로서 '공부'에 초점을 두고 싶으니까.

19대 대통령 선거도 꼭 해야겠지요. MB를 생각하신다면.



Posted by 보보

"나이가 들수록 잘 보이고 싶은 대상도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본 대로 말하고, 바라는 대로 살고, 자신의 가치에 따라서만 시간을 쓰게 된다."

자기다워질 수 있으니 나이가 드는 것은 괜찮은 일입니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행복에 다가설 수 있을 테니까요.
행복은 태도와 마음 먹기에 달려 있으니, 행복해지기 위해 한 살 더 먹기를 기다릴 필요도 없겠지요.
앞으로 조금씩 늘어나게 될 잔주름, 서서히 떨어지게 될 체력 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삶의 지혜를 배워가기를 소원해 봅니다.

아들이 결혼을 생각할 무렵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명심해라. 너는 평생 사랑할 배우자하고만 결혼하는 게 아니다.
새로운 가족 전체와 결혼하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처신해야 한다.
너도 알게 되겠지만 가족은 무엇보다 소중하단다.”


제가 가족의 소중함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은 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 덕분이지요. 
할머니는 당신의 자녀들을 모두 키워 시집 장가를 보낸 후, 참 불행한 일을 당하셨지요.
당신의 첫째 딸(나의 어머니)를 먼저 하늘 나라로 떠나 보내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할머니의 막내 아들이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나를 가여워하시고, 저는 할머니를 생각할 때 마다 고생시켜 드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나를 믿어 주신 할머니와 돌봐 준 가족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습니다. 
가족은 참 소중하지요. 세상을 힘차게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이니까요.

"나는 사회학적인 시각을 가진 여행자라 할 수 있다. 나는 해당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들이 생활하고 일하는 모습은 어떤지를 보고 싶어하고 가능하면 그들을 직접 만나려 한다.
주제넘은 염탐꾼이 되지 않으면서 그런 욕구를 만족시킬 가장 좋은 방법은
방문하고 싶은 장소에서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과 연계하여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강연이나 세미나를 해달라는 초청을 꾸준히 받았으니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이 글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지요. 나의 여행을 설명할 수 있는 어휘를 찾았으니까요.
제게는 여행이 곧 공부요, 일이랍니다. 저는 일상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일상이 즐거워서 떠납니다.
더 멋진 일상을 만들기 위해, 제 일을 좀 더 창조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힌트를 얻기 위해 떠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 여행이 특별한 활동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한 장소에서 좀 더 오래 머무르는 경향이 있더군요.
무언가 생각이 떠오르면 잠시동안 글로 정리하는 습관 말고는 관광객과 비슷합니다. 
찰스 핸디의 영향력이 부러운 점도 있지요. 
저와 같은 곳을 다녀와도 그는 만나는 사람이 다르고 보는 눈이 달라 훨씬 많은 것을 배우더군요.
영어회화 실력과 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는 기운이 생겨납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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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지난 월요일, 친구와 함께 마포에 있는 이모네 가게로 갔다.
이모는 고깃집을 하는데, 친구와 함께 찾아가기는 처음이다.
2008년 가을, 외출나온 동생(군 복무중)이랑 함께 이모네서 고기를 먹었고,
2009년 겨울, 이모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것이 최근 일이다.
이리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내가 자주 찾아뵙는 것은 아님을 알리는 게다.
그런데도, 묘하게도 나는 이모가 무척 편하고 좋다. ^^

'이모가 편안하고 좋은 것은 당연하지. 엄마랑 다른 없는 사람이 이모인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엄마의 친자매가 아니라 사촌 여동생이고, 이모와는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살았기에
최근에 저렇게 두 번 뵌 것이 이모와 나와의 거의 첫 만남이기 때문이다. 
'거의'라고 한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결혼식 등 가족 잔치 때에 
많은 이모, 삼촌들과 함께 만났던 기억은 있기 때문이다. 

우정은 반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는 쌓일 리가 없고,
같이 어울려 다니며 함께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함께 떠들어야 쌓이는 법이다.
이것은 인생사도 마찬가지여서 잔치 때 함께 결혼을 축하는 것보다는
이모와 함께 밥 한 번 먹는 것, 이야기 한 마디 나누는 것에서 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친구와 만나 이모네 가게로 들어가기 전, 지갑을 들여다 보고 친구에게 말했다.
"종준아, 잠깐만! 저기 편의점에 잠깐 다녀오자. 현금을 좀 찾아야겠다.
카드 결재를 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아. 안 받으실 것이 뻔하거든."
나는 모처럼만에 찾아 뵈었으니, 고깃값을 꼭 내고 싶었다.
그래서 현금으로 책에 끼워서 드리든, 이모 주머니에 넣고 달아나든지 할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모의 입장을 전혀 고려치 못한 그저 내 생각이었다.)

고기는 퍽이나 맛있었다. 목살의 두께는 내가 먹은 고기 중 최고였고, (친구도 동의했다. ^^)
안창살의 부드러운 맛은 캬,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절대, 소주 먹고 난 뒤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모는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사랑을 내놓으셨다.
"어, 석이 왔어? 뭐 먹을래? 일단 쇠고기부터 순서대로 내줄께. 많이 먹어라."
"네. 이모. 그럼 안창살부터 먹을께요."

안창살 뿐 아니라, 곧이어 목살 2인분이 나왔고, 찌개와 계란찜 그리고 공깃밥 두 개가 나왔다.
마지막은 오리구일로 할래?, 다시 이모의 권유에 우리는 오리구이까지 먹었다.
배만 부른 게 아니라, 마음이 어찌나 포근하고 따뜻해는지... 정말 엄마 같았다.

2시간 동안,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사이다와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일어났다.
"이모, 나 이모에게 부탁 하나 해도 돼요? 이모 들어주실거죠?"
당황하실 만한데, "그래. 말해. 이모가 들어줄께" 하신다.
"들어준다 하셨으니까 말할께요. 오늘 고깃값 계산하고 가려구요. 그래야 다음에 또 오지요."

혼만 났다. 그러는 거 아니라고. 이모가 먹이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왜 그러냐고.
그 말을 듣는데, 아차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다. 서운하실 것도 같았다.
입장을 바꿔, 내 누이의 아들이 찾아왔을 때의 반가움을 상상해 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돈은 다시 내 주머니로 집어넣어야 했고, 준비한 두 권의 책을 전해 드리고 나왔다.
이모의 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하하, 사실 내 책이다. 호호. (이거 부끄럽구만.)

다음에는 선물을 하나 드리고 싶다. 내가 이렇게 고마워함을 이모에게 전하고 싶다.
거리만 가깝다면(선릉에서 마포구청역까지는 쬐금 멀다) 자주 갈 텐데 그게 어렵다.
자주 가야 이모도 포기하고(^^) 고깃값을 계산하도록 허락하실 테니 말이다.
친구도, 나도 이모의 사랑에 기분 좋은 식사와 대화 시간을 즐겼다.

생각해 보면 이모의 언니들도 참 그렇게 나를 따뜻히 맞아준다. (그 집안, 뭔가 있나 보다.)
모두 엄마의 사촌 여동생들인데, 이모들은 만나고 나면 엄마가 떠오르곤 한다.
'엄마, 잘 계시죠? 엄마 생각하면 잘 살아야 하는데, 좀 더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부끄럽네요. 그래서, 이렇게 엄마 동생들을 만나게 하시나 봐요.'

플래너를 뒤적여 본다. 또 언제 한 번 갈까, 날짜를 꼽아보기 위해.
선물은 뭐가 좋을까? 일단 손편지 하나는 꼭 써야지, 라는 것으로 정했다.
선물은 자문을 구해야겠다. 근데, 누구에게 구하지? 하하. 어쨌든 기분좋은 고민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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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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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 정우다. 어떤 기분으로 어젯밤을 보냈을까? 울진 않았을까? 짜식, 잘 적응하길...
동생은 어제 입대했다. 누구나 다 가는 곳이라지만, 나 역시도 거쳐 왔지만 그렇다고 하여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괜히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군대 가기 전에 해외여행을 함께 데려갔다.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고, 나 개인적으로 입대 전의 중국 여행이 군생활을 하며 힘들 때 많은 도움이 되었기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경주 가족여행의 일정이 6월 말이 된 것도 동생의 입대일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군생활은 쉽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적응을 하고 즐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뒤집어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도의 변화에도 잘 적응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왠지 변화를 두려워하며 요리 저리 외면하고 있는 내게 위로가 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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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과 숙모.
두분이 저렇게 다정하게 서 계신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다고 맨날 싸운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두 분이 싸우신 것을 본 것은 딱 한 번 밖에 없다. 십년을 같이 살면서 한 번 보았으니 적은 횟수리라.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십년간 나를 키워 주셨다. 당연히 그 은혜는 깊고 넓어 갚을 길이 없다. 이렇게 가족 여행을 한 100번 다녀오면 갚으려나? 아니다. 어림없다...


이번 가족 여행에는 내 동생의 여자 친구도 함께 했다. 결혼해야 할 나이에 있는 형은 애인 하나 데리고 가지 못했는데 동생은 버젓이 여자 친구와 동행했다. 열살이나 더 많은 형은 운전면허증도 없는데, 동생은 운전도 잘 해서 차 한대를 자기가 몰았다. 한 대는 정우와 여친이, 다른 한 대는 삼촌과 숙모, 할머니와 내가 탔다. 이틀 내내 삼촌이 운전하셨고 나는 이틀 내내 조수석에서 편하게 돌아다녔다. 삼십 년을 운전면허증 없이도 아무런 불편 없이 살았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결국, 운전면허를 올해 안에 따기로 결심했다. (아래 사진은 잘난 ^^ 내 동생과 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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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이번 여행에 대해서 잠깐 소개를 해야겠다.
나의 2008년 십대 뉴스 중에서 4번째로 중요한 뉴스가 '가족과 함께한 여행'이다. 올해 초부터 나는 이번 여행을 생각했었다. 내가 기획할 것이고 비용도 전액 내가 마련하려고 했다. 구정 때 가족들에게 이 생각을 선언했고, 5월에 다시 한 번 재공지했다.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하여 플래너의 목표 탭에다 중간단계를 적었다. 그리고... 6월 말에 여행을 다녀왔다. 전체 비용의 80% 이상을 내가 썼다. 100% 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삼촌의 재빠른 계산이 몇 번 있어서 달성하지 못했다. 삼촌에게 양해를 구하며 사전 봉쇄를 했는데, 절묘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 오는 삼촌의 지갑을 당해내지 못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깊은 여행이었다. 첫째는,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 여행을 떠난 것은 이 번이 처음이었다. 처음, 이라는 딱지가 붙으면서 이번 경주여행은 가족에게 영원한 추억이 될 것이다. 그여행을 준비한 자가 느끼는 감회란 캬!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는 기분이다. 아니 뽕 맞은 느낌이다.
둘째, 떠나는 정우를 향한 애정의 표현이었다. 말을 안 했지만 가족 모두는 최근 몇 개월간 정우를 한껏 배려했다. 할머니와 숙모는 먼 여행을 떠나는 손자와 아들에게 아쉬운 말보다는 사랑의 말을 선택하려 했을 것이다. 휴게소에서 군대를 주제로 얘기할 기회가 왔다. 삼촌과 나는 군생활을 멋지게 해 내기 위한 지혜를 끄집어내어 전했다. 그것이 녀석에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만은 전해졌으리라. 사랑이라는 소중한 마음.
셋째, 가족의 단합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이 해체된 것은 아니지만 보다 깊은 가족애를 느끼며 살기를 원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 몇 년 이어지고 있지만 이번 여행을 계기로 으쌰으쌰하는 분위기, 몇 년간 열심히 허리띠 졸라매고 이 상황을 타개하자는 분위기로 이어지기를 바랬다. 이것은 내가 여행 후에 해야 할 작업들이다.

가족사적 의미, 국가 방위적 중요성(정우 입대), 경제적 비전이라는 3가지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이번 경주여행이었던 게다. 여행을 돌아온 후, 할머니는 전화 통화에서 "큰 일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때에는 몰랐는데, 지금 이 3가지의 의미를 생각하니 새삼 비장한 마음이 들며(^^) 작은 일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앞으로 매년 가겠다는 비전을 선포한 것이 새삼 대견하게 느껴진다. 매년 가족여행을 가겠다고 선포했으니 회피할 길 없고 어떻게든 다녀올 것 아닌가! 그 다녀오고 난 후의 기분을 생각하니 에너지가 생긴다. 와우!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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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 가족 이야기.
불국사 앞에서 한 컷 찍었다. 정우 애인이 찍은 사진이다. 5명 우리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이 몇 안 되어 귀한 사진이다. 삼촌과 숙모, 할머니와 정우 그리고 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나는 꼭 10년을 5명의 식구들과 함께 살았다. 나는 삼촌과 숙모의 큰아들이 되었고, 정우의 형이 되었다. 두 분의 사랑을 먹고 컸다. 너무 많이 먹어 키가 이렇게 커져 버렸다. 헉.
그러다가 2002년에 서울에 왔다. 자주 함께 하지 못하지만 내 가슴에는 늘 가족을 향한 감사의 마으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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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웃으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나는 이 사진이 좋다. 고부 간의 갈등이 없을리 있겠냐만은 이 사진에서만큼은 찾아볼 수 없다. 사진이 영원한 현실이 되어 두 분을 행복하게 했으면 좋겠다. 일상의 찰나는 담는 것이 사진이다. 순간 순간 감정이 바뀌는 것이 사람이다. 행복의 찰나를 보다 많이 만들면 일상이 행복해질 것이다. 이 사진을 보며 행복했던 찰나가 어떤 느낌이고 모양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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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편안히 나무를 끌어안으셨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저 때의 할머니는 뭔가 느끼시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세상에서 이희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면 할머니가 1등을 하실 게다. 그 사랑에 감격하고 놀랄 때가 있다. 종종 부모교육 강연 때 할머니 얘기를 하기도 한다.
아직 해외여행 한 번 못가셔서 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할머니 이제부터 손자가 여행 자주 함께 할테니 건강관리 잘 하세요. 해외에 가려면 건강해야 하니까요." 진심이었고 간절한 소원이었다.

나는 너무 늦지 않게 실천할 것이다. 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한많은 생을 사신 할머니의 여생이 행복할 수 있도록 한껏 도와드리고 싶다. 돈을 잘 쓰시는 할머니께 용돈을 드리면서 자식 해 주고 싶은 것 다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느끼곤 한다.


숙모와 정우가 멋진 포즈를 취했다. 한 컷 찰칵!
그리고 삼촌의 자연스러운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담배 피는 모습을 3, 4장 찍었다. 그 중에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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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에도 나왔다던 복돼지다. 복을 빌며 웃는 부자의 모습이다. 기분까지 좋아지는 사진이다. 복돼지의 등과 머리 부분에는 반지르르 윤이 났다. 부자의 미소에는 빛이 났다. 여행은 이렇게 우리 가족에게 의미가 되어갔고 즐거움의 순간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각자의 마음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을 것이다. 일상을 살다가 지칠 때 그 추억이 불쑥 불쑥 나타나 우리 가족에게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복돼지야... 너도 도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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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행지는 문무대왕릉이다. (아래 사진)
바다를 보고 회를 먹는 것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였다. 우리 각자는 바다에서 잠시 머물렀다. 함께 모여 소원 한 가지씩을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음 번에 또 바다에 가게 되면 그 때에 꼭 해야겠다. 아이 참, 이번에 했어야 했는데... 갑자기 가족들의 마음 속 소원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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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간의 가족 여행.
강호동 일행은 매주 떠나지만 우리는 생애 처음이었다. 앞으로는 매년 떠나리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다잡아본다. 매년 가고 싶을 만큼 뜻깊은 여행이었다. 신혼 여행 이후, 삼촌과 숙모는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날이라고 했다. 그 얘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가족을 위한 수고를 잠시 거두고 짧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20년 만의 처음이라는 대목은 나를 울컥하게 한다.

아... 가족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출근 시간이 지나면 전화해보아야겠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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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야... 도착했냐?"
"집에 다 와 간다. 이제 계단 올라간다." (목소리가 씩씩하다.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통화를 더 하고 싶었지만,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를 터이니 서둘러 끊었다.
동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3박 4일간의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세 번째 중국여행이었지만, 내 동생에게는 첫번째 해외 여행이었다.
그에게 좋은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군대에 가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추억 중에 하나가 되길 바랐다.
나는 2003년에 입대하였고, 2002년에 38일동안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군대에서 힘이 들 때, 나는 종종 중국에서의 일들을 추억을 되살리려 힘은 얻곤 했다.
힘든 군생활 중에 정우에게도 힘이 되는 것이 있을 게다. 여자친구, 엄마와 아빠, 할머니, 친구들...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이번 중국 여행이 끼어들 수 있다면 좋겠다. 참으로 좋겠다.

정우야, 빡빡한 일정과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헤쳐가며 여행하느라 수고했다.
그래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구나. 사랑한다. 정우야.

*

"삼촌... 석입니다."
"응.. 그래 잘 다녀왔나?"

"네. 방금 정우랑 통화하고 연락드리려던 참인데..."
"그래. 이번에 정우 데리고 다니며 돈도 많이 썼을 텐데 수고 많았다.
이렇게 정우까지 신경 써 주니 고마운 마음이 드네."

"아이고. 삼촌..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지금까지 삼촌이 신경 써 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 말해 주니 고맙다. 근데, 이번에 푸켓에서 북경으로 바뀌었더라."

"여러 명이 가다 보니 마지막에 와서 일정과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푸켓은 휴양지잖아. 그런 점에서 정우한테는 북경이 낫다. 중국 유적지에서 역사도 배우고 말이다."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삼촌의 마지막 말은...
"자주 통화하자"였다. "네..." 라고 끊으면서도 늘 자주 연락드리지 못한 미안함이 온 몸을 감싼다.
사랑합니다. 삼촌. 앞으로 더욱 듬직한 큰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정우에게만큼은 형 노릇 참 잘하고 싶습니다!


*

숙모와도, 할머니와도 통화를 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가족은 그렇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에게서 나는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그들로 인해 누군가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에 대해 시도할 용기를 얻게 된다.

두어 달 전에 사 줬던 삼국지 전집을 모두 읽었다는 정우의 말이 떠오른다.
이번 주에는 새로운 책 몇 권을 사서 보내야겠다. 편지 한 장 담아야겠다.
고맙다는 편지, 형을 믿고 따라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한 줄 써 넣어야겠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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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


생각하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이 삶의 존재 방식을 도약시키고
도약한 삶은 한 차원 높은 생각을 만든다.
이 선순환의 출발점이 사색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나의 생일 날, 무엇보다 두어 시간 정도의 생각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2. 와우팀원

점심을 와우팀원 분과 함께 먹었다.
전화가 와서 약속이 없으면 점심을 사 드리겠다는 인사가 고마웠다.
출판사와의 선약이 있었지만 내일로 연기되어 와우팀원과 함께 먹었다.
이 분은 참 열정적이고 성실하신 분이다. 하시는 일이 잘 되기를 마음 속으로 바란다.
나와의 만남을 즐거워하시고 고마워하시니 나로서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3. 제자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와우팀원이 있다.
성격이 꼭 성경의 '베드로' 같기도 하고, 내 마음 속의 이미지는 '자로' 같기도 하다.
나의 의중을 몰라 줄 때도 있어 나를 원망하기도 하고 투덜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누구보다도 나의 영향력을 믿고 따라오는 놈이기도 하다.
그 놈으로부터 생일선물을 받았다. 작지만 그의 마음이 참으로 고맙다.
이놈, 이제 원망과 찬사, 그 중용의 길을 걸어다오. ^^

#4. 선물

와우 3기 전원이 진심으로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어떤 놈은 작은 선물을 주기도 했다. 컵 하나, CD 하나, 손수건 하나...
소박한 그네들의 선물이 어찌나 이쁘고 감사한지.
CD 안에는 짧은 글이 있었다. 첫 만남 때 음악을 좋아한다던 놈이다.

'음악은 잠들지 않고 꾸는 꿈'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나봐요.
어느새 음악보다 팀장님과의 만남, 와우팀원과의 만남이 더 좋아집니다.
와우를 통해 '잠들지 않고 꾸는 꿈'을 꾸게 해 주어 정말 감사합ㄴ디ㅏ.
생일 축하드려요.


잔잔한 감동이 드는 이 글과 함께 자신이 듣던 소중한 CD를 내게 주었다.
친구들의 문자 메세지 또한 고맙다. 이 모든 것들이 내게 참 기쁜 선물이다.
무심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주는 나의 고향 친구들에게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인다.

#5. 가족

삼촌과 숙모와 통화를 했다.
멀리 있으니 이렇게 말로만 축하를 전한다는 두 분의 말씀에 가슴이 찡하다.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는 건 삼촌 숙모 덕분입니다.
생일날 두 분의 은혜에 감사를 전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 드렸다.
이것은 나의 진심이었다.
정우의 문자 메시지도 참 귀엽다. 밥 잘 챙겨 먹고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랜다.
동생 말도 잘 들어야지.

#6. 2008 Hope Day

생일 날은 마침 회사 행사가 있는 날이다.
Hope Day 라고 하여 저녁 식사를 하고 공연을 하고 비전을 나누는 시간이다.
사장님부터 KLC의 회장님께서 오시는 큰 행사다.
생일이지만 참석했다. 유쾌한 1부 순서가 끝나고 더 유쾌한 2부 순서는 참아야 했다.
생각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2부까지 있어서는 안 되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일년에 한번뿐인 생일의 밤을 홀로 갖기 위해 집으로 나섰다.

#7. 생각의 시간

집에 돌아와 씻고 나니 10시 30분이 다 되었다. 얼마 남지 않은 아쉬움이 들었다.
이면지 한장 꺼내고 샤프를 들고
생일을 의미있게 보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단 하나의 생각으로 결론이 났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
가족, 와우팀, 친구, 은사, 그리고 영적 우정 들이다.
13명의 개인 혹은 단체에 편지를 쓰기로 했다.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8. 화려하지 않은 생일

2008년은 여느 때처럼 지나갔다.
미역국을 먹지도 않고, 촛불 하나 켜지 않았지만 기뻤다.
값비싼 선물을 받지도 않았고, 파티도 하지 않았지만 감사했다.
2월 15일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기에...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된 최초의 날이기에... 그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했다.
와우팀원, 친구들, 연구원들이 전해 온 생일 축하 전화와 메시지는 내게는 아주 특별했다.
부디 생일이 아니더라도 이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기를 소원하는 사이,
어느 새 시간은 2월 16일이 되었다. 이제 만으로도 삼십 대가 되었다. 이것은 신나는 일이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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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잊혀지기 마련이라는 말은
가족에게는 적용이 안 되는 것인가.
어머니를 눈으로 못 뵌지 16년이 지나도 여전하니 말이다.

구정에 대구에 갔다. 삼촌과 숙모, 할머니와 정우.
한동안 떨어져 있다 만나다보니 참 반갑다.
가족과 함께 있으니 이렇게 포근하고 편안하다.

가족 안에서는 외로움이 없어서 좋다.
물론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외로움이 있겠냐마는
가족만이 채워주는 마음의 공간은 있는 것 같다.

저녁에 잠깐 친구를 만난 걸 제외하면 내내 집에서 뒹굴었다.
삼촌 숙모와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TV를 보며 웃고 즐겼다.
할머니와 삼촌, 숙모에게 새배를 드릴 때에도 어찌나 마음이 평온하던지.

용돈을 더 많이 드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은 돈을 버는데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동기 부여인것 같다.

열심히 벌어서 올 여름 가족 바캉스 비용은 내가 다 내야지~ ^^

#2. 귀향, 상경 그리고 사랑

귀향의 길, 상경의 길.
2001년부터 대구와 서울, 안산, 성남을 수없이 오갔다.
나에게는 이동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별로 없다.
기동성은 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언제부터인가 대구로 가는 길 만큼이나 서울로 돌아오는 길도 편안해졌다.
귀향의 길과 상경의 길을 홀로 오갔다.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나는 누구를 만나서 언제쯤 결혼할까? 어떻게 살아갈까?
참 행복한 요즘인데, 그 행복을 나눌 가족이 한 사람 더 늘었으면 좋겠다.

#3. 친구

상욱을 만났다.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설레였다.
준비한 책 선물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의 앞장에 뭐라고 고마움의 말을 적었다.

11시가 다 되어 만나서 함께 호떡을 사 먹고 회포를 풀러 갔다.
원래 함께 발마사지를 받으며 피로를 풀고 얘길 나눌 계획이었는데 문을 닫았다.
그래서 고깃집에서 얘길 나웠다. 그리곤 맥주 한 잔을 하러 갔다.
맥주 한 병이 그대로 남을 만큼 우리는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사업(^^)과 올해의 꿈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서로의 잘됨을 축복해주며 즐거워했다.
함께 자며 얘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다음 날 기차 시간 때문에 헤어져야 했다.
아! 친구야... 네가 서울에서 사업하면 참 좋겠다.

#4. 어머니...

어머니에 대하여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독자는 오직 나 뿐이겠지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어머니의 얘기를 듣고 싶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30대 이후의 어머니다.
어머니의 유아 시절은 어떠했을까?
10대와 20대는 어떻게 보내셨을까?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어머니에 대한 그림을 만들어 보고 싶다.
어머니의 어머니에게서, 어머니의 남동생들에게서, 어머니의 친척들에게서,
어머니의 친구들에게서, 어머니의 남편에게서, 어머니의 의붓 딸에게서 얘기를 듣고 싶다.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망자에 대한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겠지만
더욱 미화되어 어머니의 본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어머니의 모습을 가슴에 간직하고 싶다.

#5. 나의 과거

구정 다음날,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그토록 무서워했던 아버지인데, 이제는 세월이 흘렀고 나의 마음도 많이 변했다.
미움에서 담담함으로, 두려움에서 연민으로..

내 안에 쓴 뿌리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음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를 이루는 모든 실체들에 대하여 경건하게 받아들인 까닭이다.
인정하기 싫고, 꺼내기도 싫었던 부분까지 해결했던 까닭이다.

다음 명절에는 찾아 뵈어 인사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미도 만나 그의 지난 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힘든 과거였지만 이것 역시 나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실체다.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더욱 성장하고 싶다.
이미 그 성장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미래는 과거와는 전혀 반대의 모양이 펼쳐지길....

그럼, 아주 아주 찬란한 날들이 올테지.

#6. 원고 작업

마지막 원고 작업을 했다. 많은 분량을 덜어낸 후에 구조를 다듬는 일이었다.
글을 읽으며 점점 흡족한 마음이 든다. ^^
과정을 즐겼으니 결과가 어떠하든지 이미 행복과 승리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도, 기쁨도 높아지는 과정이었다.
연주의 피드백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의 조언 한 마디로 인해 책의 분량을 덜어내길 결정할 수 있었다.

책이 나오면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늘어났다.
이것은 인생의 의미가 충만해지는 일이다.
더불어 작업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기쁜 일이다.

출간되면 얼마나 기쁠까? 최선을 다한 것의 보람이 과연 어떠할까?

*

긴 명절이었지만 큰 계획 없이 하루 하루를 보냈다.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흡족한 날들이었다.
가족과 함께 했기에, 좋아하는 일을 했기에, 친구를 만났기에
잔잔한 기쁨이 있는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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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팀원들을 만났다.
그들은 독서토론대회 예선을 통과했고 나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오늘은 본선 토론에 관한 설명회가 있는 날이다.
설명회 전에는 개인적인 약속이 있었고,
설명회 후에는 회사 동료들과의 저녁 회식이 있었다.
숙명여대까지 가야 하지만, 나는 당연히 간다는 생각으로
일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숙명여대로 갔다.
그들과 함께 설명을 들었고, 함께 식사를 하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를 얘기했다.
우리는 실제로 만났기에 마음과 우정을 나누었다.
만남은 전화 통화보다 강력하고 이메일보다 진하다.

서울 시내에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을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가는데 한 시간, 만나는데 한 시간, 다시 오는 데 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만날 일이 있으면 만나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만나야 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의 영역까지 효율성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시간 관리는 업무를 위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시간 투자를 해야 한다.
시간이 곧 사랑이다. 사람에게 아낌없이 시간을 줘야 한다.
홀로 있을 때에는 철저할지라도, 함께 있을 때에는 느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이 쫓기지 않은 채 나와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나는 효율적인 시간관리 세미나를 진행하는 강사다.
내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요즘 일이 없으신가 봐요. 무척 느긋해 보이세요."라는 것이다.
나의 느긋함이 그들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제일로 부끄러울 때에는 "바빠 보이세요."라는 말이다.
바빠 보이는 이들에게 쉽게 부탁하기는 쉽지 않다. 미안하기 때문이다.
나는 바쁘지 않다, 라고 말하며 폰과 마음을 열어 둘 때에는 일이 주지 못하는 행복감이 든다.

'자기 경영' 한답시고, 비인간화를 조장하는 이야기들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을 나누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을 주는 인간들의 관리를 한다.
자기 경영 담론이 효율성과 경쟁력 등의 얘기들로만 이뤄질 때 세상은 점점 삭막해져 갈 것이다.
존경받는 자기경영자는 세상에 따뜻함과 희망을 심으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살려면 세상이 더욱 살기 좋아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잘 산다고 하여 반드시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리라.
지금으로서는 알지 못할지라도 더욱 소중한 것이 있다. 더 큰 의미가 있고, 더 따뜻한 세상이 있다.
반드시 세상은 더욱 아름다울 여지가 남아 있다.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눈물이 난다. 세상이 점점 살기 힘들어져 가는 것 같아서.
나는 잘 살고 있다. 일도 재밌고 조금씩 역량을 쌓아가고 있는 것도 뿌듯하다.
하지만,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큼 세상 사람들도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선릉역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할머니가 계단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펼쳐놓은 수건 위에는 동전 몇 개가 널려 있었다.
이런 분들이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잠들려고 누웠다. 야구 소식을 듣고자 TV를 켰다.
채널을 돌리다가 <해바라기>라는 영화를 잠깐 봤다.
이렇게 하여 영화를 보는 거의 없는데, 이상하게도 영화에 끌렸다.
나쁜 사람들이 나온다. 정의를 모르고 편법을 일삼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이 오태식의 누이와 어머니를 헤친다. 마음이 아팠다.
문득, 악이 도덕적 미성숙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무지에서 올 수도 있음을 느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이 세상을 떠받드는 체제는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세상에 맞서리라.

해바라기 엄마는 아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 했다.
정약용 선생님은 나의 가족이 소중하다는 것을 헤아려 다른 이의 가족의 소중함까지 지켜내려 했다.
가족을 중요시하지 않는 자기 경영은 진리도, 지혜도 아니다.
부모님 어깨 주물러드릴 시간을 아까워하는 시간관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술이다.
<해바라기>에 등장하는 나쁜 사장님은 오태식 더러 "쓰레기는 쓰레기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바뀌어, 쓰레기도 재활용 기술을 거쳐 새로운 상품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은 스스로를 정화하고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을까?
쓰레기 같은 사상을 정화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상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까?
이제 자기 경영은 사회의 필요들과 비전들을 품어야 한다.
기업이 이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듯,
개인은 성공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공헌하는 삶을 살 수 있다. 누구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자신의 가족을 섬김으로써. 한 사람에게 사랑을 전함으로써.
한 번에 한 사람씩만 하면 된다. 이천 년전 예수님이 행하셨던 고전적인 방식을 신뢰하라.
그 분은 한 사람씩 만나셨다. 짧은 생애였지만 조급하지 않았다.
그저 한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듣고 나누었다.
이 소박한 방식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회복해야 할 방식이다.

인터넷은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만남의 형태를 가능케 했다.
우리는 일대 삼십의 만남까지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만남이 아니다. 새로운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전과는 다른 프랜드십으로 관계 맺으려는 새로운 생각과 마음이 필요하다.
사랑이 지속되지 위해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 교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더 깊은 파트너십으로 이전보다 깊은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다른 이들의 행복을 희생시켜서는 안 되리라.
조금만 더 생각을 하다 보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이것을 고민해야 나의 영혼도 성장할 것이고, 세상도 어제보다는 살 맛나는 곳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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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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