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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은 노력하지 않는 자들의 핑계일 뿐이다."

이 말은 용기와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유익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는 주의해야 할 말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인한 정신은 아름답습니다. 자신의 한계란, 지금까지의 자기 삶이 만들어 놓은 경계를 말합니다. 게으름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주저하거나 포기하여 경험하지 못한 자기 삶의 경계를 뛰어넘는 것, 이것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들풀을 땅에 낼 때에도, 새를 공중에 날릴 때에도, 신은 그 작은 생물에게 이름과 소임을 주어 세상에 보냈습니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글을 읽었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이 땅에서 무언가 해야 할 일과 누군가를 도와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살아 있는 모든 영혼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지녔습니다. 그리고 목적 달성을 도울 재능을 가졌습니다. 자기경영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자신을 믿으세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창조할 가능성을 지닌 자신을 믿으시란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되 인간의 한계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 속에서 한없이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루를 열심히 일하면 밤에는 쉬어야 하고, 쉼 없이 일하다 보면 몸살이 앓는 것이 인간입니다.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을 오해한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건강이 무너진 이들이 제 가까운 지인 중에도 두 명입니다. 

L은 성실하고 열정적인 청년입니다. 직장 일도 열심히 했지만 배움을 좋아하여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책임감이 강하여 맡은 일을 쉬엄쉬엄 하는 법이 없습니다. 믿음직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일하느라 몸을 돌보지 않습니다. 주말 만큼은 쉬어 주어야 하는데, 주말마다 시골교회를 섬긴다고 서울에서 강원도 속초까지 오갔습니다. 직장, 대학원 그리고 장거리 교회 출석을 1년 6개월 동안 지속하다 면역 체계가 무너져 수십 가지의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 병을 얻었습니다.

P는 카이스트에 다닐 정도의 똑똑한 청년입니다. 대학 시절, 뛰어난 학생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이틀에 한 번씩 잠을 자며 공부를 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 자는 잠도 겨우 두 시간을 잘 뿐이었습니다. 눈이 아프면 안약을 넣어가며 공부를 했습니다. 시신경의 안압이 높아지는 것도 모른 채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결국 녹내장이라는 병을 얻었습니다. 하마터면 시력을 잃을 뻔 했지만, 기적적으로 그런 불행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놓은 삶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력이 무한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모두 계발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한계란, 
자신의 한계이지 인간의 한계는 아닙니다. 불가능은 있고, 그 불가능이 반드시 절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닫힌 문 덕분에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또 다른 문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실패란 무조건 나쁜 것이고, 불가능은 인간의 가능성을 무시한다는 식의 사고는 단편적인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실패 덕분에 우리는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성공으로 가는 배움을 얻기도 합니다. 실패는 피해야 할 불청객이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이정표, 라고 생각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 방식이 중요합니다. 불가능이란 없다, 라는 말이 어디까지 유효하고, 어디에서부터 우리를 편협하게 만드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가능이란 없다! 이 말은 아마도 미국에서 흘러 들어온 프런티어 정신에서 나온 말이라 생각됩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프런티어 정신! 하지만, 프런티어 정신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프런티어 정신은 도전과 생산성을 만들어내지만, 안식의 기쁨과 유익을 알지 못합니다. 안식은 은퇴한 사람, 바쁘지 않은 사람 혹은 체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균형 있는 삶을 살고 싶어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되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역사를 완성하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에 참여하는 존재입니다. 지나친 욕심을 내려 놓고 현실에 충실하며 결과에 초연해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일의 결과는 결국 그 사람의 그릇에 달린 일입니다. 좋은 결과를 원한다면 성실하고 현명한 과정 보내기에 힘쓰면 그만입니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자각을 하여 건강 관리와 관계의 친밀함을 위해 애써야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전문가/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오늘, 달력을 보셨는지요? 어.느.새. 2011년의 절반이 지나 6월 30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써 두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무얼 하며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월말이나 연말 즈음이면, 실행하지 못한 일들 그리고 생각과 계획만 난무했던 지난 날들이 떠올라 약간의 자괴감이 듭니다. 나도 모르게 쩝, 하고 입맛을 다시게 되고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자기 존재를 괴롭히며 자기 모멸감으로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타성에 젖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경멸하는 '건강한 자괴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당당한 삶을 창조해 갑니다. 배울 때에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비워낼 줄 알아야 더 큰 배움을 얻습니다. 지혜는 양 극단이 아니라, 서로 상반되는 가치 사이의 건강한 중간 지대에 깃들어 있습니다. 

호연지기의 사람이 되려면 부끄러움과 당당함 사이에서의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학습의 달인이 되고 싶다면 비움과 채움라는 두 키워드를 적절하게 조화시켜야 하겠지요. 이것이 어디 학습과 호연함의 기상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겠습니까? 자기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경멸할 수 있어야 스스로 사랑할 만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경멸이 위대한 도약을 돕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경멸하기! 이것은 니체가 말한 '초인'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몰락을 희망하는 것이 초인의 특징이지요. 변화와 성장은 끊임없는 자기 극복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이란 현재 바로 이전의 자기를 스스로 몰락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더 이상 올라갈 사다리가 없다면 그대는 자신의 머리를 딛고 올라설 줄 알아야 한다." 경멸과 도약 사이의 균형을 이룬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짓밟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쏜살처럼 한 해가 저물어갈 때 자괴감과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 역시 제 삶의 어떤 대목에 대한 씁쓸한 아쉬움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그런 감정에 빠져든다면, 이런 감정을 부정하기보다는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정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니체가 말한 '위대한 경멸'을 시도해 보는 겁니다.

나의 모습이 참 못마땅할 때, 자괴감의 감정을 푸념과 불평으로 풀어내면 삶의 도약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건강하게 분노하며, 자괴감을 좀 더 나은 삶을 창조할 에너지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나에게 달린 일입니다. 어떤 마인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의 인생에 희망과 즐거움이 깃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살이, 때로는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닐 수 있습니다!

                                    <실천을 위한 조언>

1. 내일부터 해야지, 하며 미뤄왔던 일들을 오늘부터 시작합시다. '에이, 6월의 마지막인데...' 하며 7월로 넘긴다면, 우리의 7월도 지난 날들과 비슷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일'은 자기경영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는 위험한 단어입니다. '오늘'이야말로 안전하고 확실한 단어입니다. ^^

2. 2011년 상반기 '나만의 5대 뉴스'를 작성해 보세요. 성찰을 통해 오늘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거나 새로운 목표를 세울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경영이란 타인과의 비교나 세상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제와 비교하는 것이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성찰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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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소원과 의무의 균형 유지하기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기 ④]

고유성 추구하기에 대한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오직 깨어있음으로 자기 마음의 소원을 따라야 한다"는 문장이 지난 글의 마지막 글귀였습니다. 자기 소원은 분명히 세상에서 고유한 것입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고유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관계 속의 역할까지 힘써 실천해야 고유성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고유성은 자기다움의 본질입니다. 이번 글을 잘 이해하면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손에 잡히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저도 세상 누구와도 다른 '고유한 나'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나'이기도 합니다. '고유한 나'와 '관계 속의 나'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의 본질입니다. '본질'이란 그것을 더욱 그것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유한 내가 되기 위한 노력과 맺고 있는 관계 속의 역할을 훌륭히 해 내려는 노력은 모두 우리를 더욱 우리답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두 개의 나'는 서로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고유한 나'의 소원을 이뤄 냄으로 여러 사람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습니다. 자기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섬김은 영속적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재능으로 섬기는 것은 날마다 샘솟는 우물을 다른 이들에게 퍼 주는 것과 같아서 탈진하는 법이 없습니다. 또한 '관계 속의 나'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해 내면서 우리는 '고유한 나'를 실현해 갑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만 '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교류와 상호 인정 없이는 '고유한 나'는 나르시시즘에 빠질 것입니다. '고유한 나'를 추구하는 것이 이기적 본성(에고)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보다는 자기 소원에만 관심을 두기도 합니다. 에고이즘에 빠질 수 있는 위험 신호입니다. '고유한 나'를 추구하는 것을 자기중심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고유한 나'를 추구하는 것은 나의 길을 가되, 앞만 보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관계를 살피며 걷는 것입니다.

말이 어려웠습니다. 쉽게 풀이하자면, 자기다움이란, 자기 본연의 모습을 쫓아 고유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말은 어려웠지만, 자기다움은 매우 구체적인 것입니다.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한껏 도전하는 것이고, 관계 속에서 맡은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힘써 노력하는 것입니다. 소원과 의무의 균형을 이루어 잘 유지해 가는 것이 곧 자기다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자기다움은 '나'를 살리고, '나의 사람들'을 돕는 일입니다. 

부모님에게 나는 고유한 관계입니다. 친구들에게도 나는 고유한 친구입니다. 그들에게 나만이 줄 수 있는 기쁨을 주는 것이 곧 자기다워지는 길입니다. 직장에서도 나는 고유한 직원입니다. 나와 비슷한 전임자가 있었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직장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공헌을 하는 것이 자기다워지는 길입니다.

그러니 자기다움을 실현하려면 다음의 두 가지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고, 그 답변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입니다.
- [소원] 이번 달에 나의 기쁨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 [의무] 이번 달에 가족의 기쁨과 회사에의 공헌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최근 여러분은 소원에 치우쳤나요? 의무에 치우쳤나요? 이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 지인들에게 물어보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시기 바랍니다. 균형 추가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면, 당분간은 놓치고 있는 것들을 행하세요. 그것이 자기다워지는 비결이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독서 매주 400페이지의 책을 읽자. 하루에 50페이지씩 읽고, 주말에는 50페이지를 더 읽자. 그러면 400페이지가 된다. 얇은 책들은 2권에 해당되는 분량이고, 두껍지 않은 경우라면 한 권은 읽는 셈이 된다. 철학 원전이나 어려운 이론서인 경우에는 더욱 꼼꼼하게 읽어야 하므로 일주일에 200페이만 읽자. 그래도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은 비슷할 테니까.

영화 매주 한 편의 영화를 보자. 어느 날이든 한 번 즈음은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보자. 관람한 후에는 간단하게라도 리뷰를 쓰자. 이왕이면 테마를 정해 관람하면서 언젠가 주제별로 묶어 책을 낼 수 있도록 준비해 두자. 월별 테마를 정하여 영화로도 공부하자. 11월은 사랑, 12월은 가족으로 정하자. 하지만, 일차 목적은 소박하게라도 문화 생활을 즐기는 것이다.

만남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과 일주일에 한 번은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을 보내자. 식사를 하며 그간의 소식을 나누고, 혹 내게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면, 내가 전할 수 있는 것들만이라도 정성껏 이야기 나누자. 이것은 세상에 태어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공헌이다. 시간을 내되, 일주일에 한 번을 초과하지는 말자. 삶의 균형을 위해서.

여행 국내 여행을 떠나자. 당일 혹은 1박 2일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산수, 혹은 역사가 깃든 곳으로 다녀 오자. 우리 나라에도 참으로 멋진 곳이 많음을 깨달았으니, 깨달음을 실천으로 이어가자.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자연이 지닌 멋과 에너지를 얻자. 하루, 이틀 간의 여행은 나머지 일주일을 더 큰 활력과 창조성으로 살아가게 한다. 빠뜨리지 말자.

쓰기 하나의 독서리뷰를 쓰고, 2개의 칼럼을 쓰고, 7개의 포스팅을 올리자. 책을 읽었으니 정리하며 곱씹는 것이고, 삶을 살았으니 깨달은 바를 글로 옮기며 되새기는 것이고, 사람과 소통하려는 블로그를 가졌으니 날마다 노력하는 것이다. 글쓰기는 블로그를 찾아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고, 나의 전문성을 갈고 닦는 것이고, 무엇보다 그것 자체로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다. 

운동 3번의 운동을 하여 활력을 유지하자. 신체적 건강은 중요하지만, 소홀히 하기 십상이다. 언제까지나 젊음을 유지할 순 없지만 활력을 잃지 않을 순 있다. 땀을 내며 달리자. 시간을 내지 못한다는 말은 그것에 대한 중요성을 온 몸으로 깨닫지 못한 것이다. 운전자가 아무리 바빠도 주유소에는 가야 하듯이,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양양 하조대에서 바라본 풍광


양양8경의 하조대에서,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면 만족스러울까? 에 대하여 생각한 것들이다. 최근 들어 줄곧 생각해 왔던 것이고, 몇 가지는 이미 실천해 왔던 것들이다. 영성이나 돈벌이는 제외했고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만남과 놀이를 다루었다. 이것은 이루고 싶은 나의 소원 목록이요, 지키고 싶은 규율들이다. 11월 한달 동안 힘껏 실천하여 내게 얼마나 유용한지 살펴 보자. 마음이 앞서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것들은 걷어 내고, 미처 생각지 못한 영역들을 더해 가자.

브라보..!! ^^ 매주마다 생애 최고의 일주일을 보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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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CBS 라디오, <변상욱의 뉴스쇼>에서 승장 김성근 감독과 인터뷰했다. 이런 질문이 있었다.   

"어떤 팬들은 이런 생각도 할 것 같습니다. 한 경기쯤은 어떻게든 내주지 않을까?
감독들이야 그런 생각 못하시겠죠?"

"이건 페넌트레이스랑 달라서 하나 지고 다음에 하나 하면 되는, 그런 시합 아니니까요.
흐름이 있을 때 끝내버려야지 흐름이 끊어져버리면 모든 상황이 바뀌고요.
특히 우리 같은 팀은 중간 투수 갖고 싸워야 되는 팀이니까
시합이 많으면 많을수록 피로도가 겹치니까요.
4차전으로 끝난 게 우리한테는 아주 좋지 않았나 싶네요."
-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

나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냉철한 승부사다. 프로다움에서는 최고의 모습이다.(이 점은 존경할 만하다.)
허나, 실리 위주의 야구는 내 성향에는 흥미가 없다. (나는 한방을 노리는 짝퉁 모험가이니까.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30대는 이런 대박을 노리는 한방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짝퉁 모험가라 함은, 진정한 모험가는 위험이 아니라, 기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내가 프로야구 감독이라면, (이건 무슨 쓸데 없는 상상이 아니다. 나에게 야구는 삶의 일부다.)
김성근 감독과는 다른 모습의 감독이 될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어떤 팀을 이끌든지 팀을 꼴지로 이끌어가고 말 것이다.
내게는 프로다움이 없고, 나의 눈은 실리에 어둡기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과 비슷한 감독이 될 거란 말을 하려니, 그 분께 죄송한 일이어서 관뒀다.)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1) 흐름이 끊어지면 모든 상황이 바뀐다.

야구의 본질이 담긴 말이고, 삶의 법칙이라 할 만한 진실 하나가 담긴 말이다.
야구는 흐름의 경기다. 호투와 좋은 수비로 공격을 잘 막으면 좋은 기회가 온다.
흐름을 잡아야 한다. 작은 것 하나가 큰 흐름으로 번질 수 있음을 야구에서 숱하게 본다.

나는 여기에서 일과 여가의 균형있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생각한다.
일과 쉼의 균형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일과 여가의 균형은 좀 더 어려운 듯 하다.
일하다가 여가를 즐기고 다시 일에 몰입하라, 는 말은 높은 균형의 경지다.
집중의 호흡이 긴 이들에게는 일과 여가의 장면 전환이 쉽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난 후, 한 동안 영화에 빠져 있기도 하고
여행을 다녀 온 후에는 후유증이라 불릴 만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반대로 일을 하다 보면 덩어리 시간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되어 여가를 놓치기도 한다.

균형이 있는 삶, 그것은 직장과 가정, 일과 삶이라는 영원한 평행선을 연결하려는 시도다.
한 쪽에 빠지지 않고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면서도 자기 삶의 흐름(리듬)을 끊지 않아야 한다.
삶의 작은 리듬을 놓치면 원래의 흐름을 찾기 위해 며칠 동안 노력해야 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까지 덩어리 시간으로 일을 하고, 언제 쉬어야 하는지 그 시점을 찾는 것이
균형 있는 삶을 살면서도 흐름을 놓치지 않는 비결이다.
균형은 뉴턴의 제1법칙(관성의 법칙)을 잘 활용하면서도
언제 균형을 향한 전환을 해야 하는지, 그 창조적 단절의 순간을 분별하는 지혜에서 온다.

2) 우리는 중간 투수 갖고 싸워야 되는 팀이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이 이끄는 팀을 잘 알았고 (강점과 약점을 잘 알았다는 말이다)
강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활용하기 위해 자기 팀을 분석하고 그에 맞추어 훈련했다.
프로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한 김성근 감독의 말은 옳다.
"인생에서는 과정도 중요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과정을 너무 중요시해 왔기에 (그래서 결과가 없기에) 말하지 않으련다. 

자기 훈련이 부족하고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나는 프로야구 감독, 아니 어떤 프로 스포츠의 감독으로서 자격이 없다.
(이런 가정이 우습기는 하다. 어떤 누구도 나에게 감독을 시키지 않을 테니까. ^^)

나는,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에게서 두 가지를 배웠다.

흐름을 놓치지 말자!
지금 내게는 균형의 삶 그 이상이 필요하다! 그 이상을 만드는 것은 몰입이다.
11월말까지 잠시 균형은 잊자! 나의 일에 미치어 보자.

프로의 세계로 뛰어들자!
성과가 없는 프로는 이미 아마추어로 전락한 것이다.
성과 달성을 위해 노력하자. 그리고 나를 알자. 나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활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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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비오는 월요일 아침.
음악이나 듣고 싶다.
침대에 누워 책이나 읽고 싶다.
오늘도 어제처럼 휴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몇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날이었으면 좋겠다.
 
책장을 들여다보아 읽고 싶은 책 한 권 꺼내어
몽촌토성으로 들고 가 책을 읽다 오고 싶다.
이문세, 김광석, 이승철, 변진섭의 노래를 들으며
의자에 기대어 잠들다 음악 듣다가를 반복하고 싶다. 

이것은 소박한 나의 소원들이다. (어쩌면 게으름이다. 비가 왔기에. ^^)
'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이들에게
'하고 싶은' 소원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의무라면 성실을 발휘하여 완수해 내야 한다.
시간이 많다고 미뤄 두면 자유가 필요할 결정적일 때
의무에 휩싸여 가슴이 답답하게 된다.
가슴을 벅차게 하는 것은 소원과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것이다.

나의 소원들을 펼쳐 나가기 위해
오늘 주어진 '해야 하는' 일에 뛰어든다.
오늘은 강연이 있는 날이다. 열심히 준비해야지.
한 권의 책을 1/2 정도는 읽어야 하는 날이다. 열심히 읽어야지.

해야 하는 일을 미루지 않으면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든다.
성실하여도 그 시간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다음을 점검해야 한다.
- 나는 효과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가?)
- 나는 생산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목표를 달성하고 있는가?)
- 나는 효율적으로 일하고 있는가? (불필요한 과정없이 신속히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세 가지 질문에 모두 Yes, 라고 대답해도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들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 많은 것이다. 
나도 종종 그럴 때가 온다. 방법은 하나다. 일을 줄이는 것이다. 
주의할 점은, 위의 세 가지 질문을 통과하지 않은 채 일을 줄이면
직장에서 무책임하다거나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No 라는 답변을 했다면 그들의 지적은 일정 부분 정당하다.

감상에 빠져들길 좋아하는 나다.
동시에 의무에도 즐겁게 빠져드는 법도 알아가는 중이다.
노하우의 핵심은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다른 이들을 섬기는 기쁨을 깨닫는 것,
일을 효과적, 생산적, 효율적으로 처리할 때의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의무에 빠져드는 법과
소원에 빠져드는 법이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점이다.
보다 많은 실험 후에는 똑같다는 말을 하게 될 날이 올까?

[덧] 당신의 집중업무 시간이 몰입의 즐거움으로 넘쳐나기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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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개미와 배짱이의 이솝 우화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대책 없이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의 삶보다는 성실하게 일하는 개미의 삶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베짱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개미에 대하여는 줄곧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이솝 우화의 영향이었다.


인생 말년의 개미, 자신의 삶을 후회하다


하지만, 컬럼비아 대학교의 랜 키베츠 교수의 논문은 개미와 베짱이의 삶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컬럼비아대 학생들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조사 시점에 따라 ‘일’과 ‘파티’에 대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일주일 전에 공부나 일 대신 파티를 택했던 학생들은 ‘그 선택이 후회스럽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5년 전 선택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나타냈다. 5년 전의 일에 대해서는 당시 파티 대신 일을 선택했던 학생들이 ‘후회스럽다’고 답변했던 것이다. (동아일보 2006년 12월 23일자 40면 참조)


키베츠 교수는 졸업한 지 40년이 지난 컬럼비아대 동문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젊은 시절을 즐기면서 보냈던 동문들은 대체로 “잘한 선택이었다”고 대답한 반면 일만 하면서 지낸 동문들은 “젊었을 때 좀 더 인생을 즐겨야 했는데 후회가 된다”고 답변했다. 키베츠 교수는 이를 ‘원시(遠視·멀리보기)의 오류’라고 말했다. 미래만 염두에 두고 현재를 희생하면 장기적으로는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베짱이, 일하는 베짱이로 변신하다


이 기사를 실었던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은 “개미보다 베짱이로… 젊을 때 즐겨라”였다. 나는 이 주장은 평생을 열심히 일한 개미들에게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베짱이들에게 젊을 때 즐기라고 한다면, 일을 하지 않아 고생과 서러움을 겪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일을 하지 않으면 자유도, 미래도 없다”고 화를 낼 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D. 퀸 밀주가 그의 연구원들과 함께 쓴 책 『균형』의 프롤로그는 일벌레가 된 베짱이의 과거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해 겨울은 10년에 한 번 온다는 강추위로 많은 곤충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베짱이는 다른 곤충이 살다가 떠난 빈 집에서 춥고 배고픈 겨울을 견디어냈다.

마침내 겨울이 지나고, 베짱이는 허기진 배를 붙잡고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 때, 개미 가족이 녹은 눈을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작년 겨울에 개미는 먹을 것을 구걸하던 나를 차갑게 몰아냈었지.’

그 기억을 떠올리니 베짱이는 마음이 아팠다. 살아서 다시 세상을 보게 된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지난 기억은 베짱이에게 많은 것들을 깨우치게 해 주었다.

노래하는 한량 베짱이, 그는 더 이상 한량으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노래하는 베짱이가 아니라, 일하는 베짱이가 된 것이다. 그의 생각의 결론은 이런 것이었다. ‘진정한 자유는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일 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일을 하면 먹을 것과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로부터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자유가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미와 베짱이, 어느 삶이 옳은가?


이 베짱이의 후회를 생각할 때, 나는 랜 키베츠의 논문을 개미보다 베짱이로 살아야 한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베짱이가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시즌의 행복만으로 행복한 삶을 누렸다고 말하기에는 우리 인생은 길다. 랜 키베츠 교수는 일만 하면서 지낸 동문들이 인생의 말년에는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하버드대 D. 퀸 밀즈 교수는 베짱이가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여 일하는 베짱이로 탈바꿈한 스토리를 책으로 썼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미의 삶과 베짱이의 삶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


조안 B. 시울라는 그의 저서 『일의 발견』에서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올바른 해석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그에 의하면, 이 우화의 주제는 일하는 삶이 노래하는 삶보다 낫다는 것이 아니라, 만약 노래하기를 원한다면, 그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주제는 ‘공평함’과 ‘자급자족’이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만약 당신이 일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먹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먹을 것을 주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이솝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선택’하도록 한다. 우리는 베짱이처럼 짧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도 있고, 개미처럼 길고 빈틈없는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삶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조안 B. 시울라의 말처럼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나, 어떤 선택이 현명한 것인지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이 선택의 어려움을 표현하기 위하여 두 교수님을 끌어들여 설명한 것이다. 자, 이제 선택을 하기 위하여 조안 B. 시울라의 견해를 빌려 한 번 따져보자. 먼저 개미는 어떤가?


우리의 역할모델은 개미도, 베짱이도 아니다


개미는 미래를 위해 산다. 검소하고 부지런하다. 이러한 개미가 갖고 있는 인생 계획의 장점은 그를 궁핍으로부터 구하고, 늘 비상시를 대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조안 B. 시울라는 막상 미래가 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개미가 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개미의 삶의 방식이 갖는 (내가 보기에) 치명적인 결함은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D. 퀸 밀즈 교수도 베짱이가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듯, 개미 역시 후회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책의 수 페이지를 할애했다. 퀸 밀즈 교수가 묘사한 개미의 말년은 이렇다. 개미의 아내는 일만 열심히 하는 남편에 불만을 품고 세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 혼자 남게 된 개미는 일을 하다가 몸을 다쳐 누워 있었다. 이 때 베짱이가 찾아왔다. 일하는 베짱이는 예전에 자신의 역할 모델이 되었던 개미에게 무언가 조언을 구하러 찾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개미에게 들은 얘기는 뜻밖의 말이었다.


"나는 일 때문에 가정을 소홀히 했어.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가정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거든.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과 부를 얻는 만큼 가정도 행복해질 것 같았지. 하지만 삶은 단순하지 않아. 내가 더 많은 것들을 붙잡으려 할수록 더 많은 할 일들이 생겼지.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 했어. 그렇게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나를 이곳으로 몰고 왔지.”

개미는 지금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베짱이는 어떠한가? 그는 현재를 위해 살고 미래를 희생한다. 노래 부르는 베짱이의 삶에는 즐거움이 있지만, 놀이는 아무 데에도 이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베짱이는 놀이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경솔한 삶을 대표한다.


개미의 삶도, 베짱이의 삶도 우리의 역할 모델로는 부족하다. 둘 다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둘 다 삶의 균형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성공뿐만 아니라, 의미와 행복을 추구할 때 더욱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일은 왕 노릇을 하면서 가정은 물론 다른 것까지 삼켜버릴 수 있음을 개미의 뒤늦은 후회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제3의 대안, 균형을 추구하라!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기가 힘들 때 흔히 우리는 절충 방안을 생각한다. 하지만, 절충은 어느 한 쪽이 일정 부분을 양보하고 포기해야 한다. 절충보다 강력한 것은 창조적인 제3의 대안을 찾아보는 것이다. 스티븐 코비는 제3의 대안을 찾아본다는 것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적인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제3의 대안을 찾기란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존재한다. 제3의 대안은 시너지를 발휘한다. 시너지는 1+1의 결과가 2가 아니라, 3 이상이 되는 것이다. 시너지는 차이점을 인정하고 강점을 활용하는 동시에 각각의 선택이 가지는 약점을 서로 보완해 주는 데서 발생한다. 개미와 베짱이 사이에서 선택하기를 거부하며 제3의 대안을 생각하던 나에게 조안 B. 시울라는 반가운 문장을 선물해 주었다.


“꿀벌은 개미처럼 일하면서도 베짱이처럼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즐긴다. 꿀벌은 사람들이 고맙게 여기는, 훌륭하고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서 기쁨을 얻고 의미를 찾는다."

시와 문학작품 속에서도 개미보다 유쾌한 일꾼으로 묘사된다는 꿀벌의 삶을 통해 개미의 삶의 방식과 베짱이의 삶을 방식을 결합한 창조적인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은 균형이라는 키워드다. 개미도 베짱이도 놓쳤던 균형의 삶, 나는 지금 이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음을 설명하고자 이 글을 썼던 것이다. 균형을 추구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기 위해서는 균형 잃은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성찰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찰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준다. 어제까지의 삶의 방식이 개미와 닮았다면, 혹은 베짱이와 닮았다면, 이제 삶 속에서 균형을 찾아나서야 할 때이다. 균형으로 가는 길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가 모두 중요한 것이라면,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아가야 한다. 다행히도 이 추격은 고달프지 않다. 오히려 행복한 추격이다. 균형을 추격하라. 균형을 추격하는 길에 그간 얻지 못했던 의미와 행복을 가득 주워 담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 글은 균형을 얻기가 쉽지 않음을 다루었습니다.

다음에 이어질 글은 균형을 얻는 비결과 균형 있는 삶을 누리는 사람에 관한 내용입니다.]


(참고로, 랜 키베츠 교수의 논문 내용은 동아일보의 공종식 뉴욕 특파원의 기사를 인용하였습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더 깊은 성공으로 나아가자~!

 

20대 초반, A4 용지에 나는 이런 문구를 적었다. 미국의 어느 CEO의 말이다. 내 안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멋진 말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당신은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문구를 눈에 잘 띄는 책상 위의 벽에다 붙여 두었다. 나의 왕성한 호기심과 남다른 열정은 나에게서 게으름뿐만 아니라, 고맙게도 잠까지 앗아가 주었다. 건강에는 자신 있었던 나에게, 잠자는 시간은 일하는 시간을 방해하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열정은 어떤 일이 하고 싶어서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혹은 그 일로 인하여 이른 새벽에 눈이 번쩍 떠지는 것이다. 종종 그 열정이 우리를 탁월한 곳으로 데려다준다. 열정이 성실함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성실히 보낸 하루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고 그 성취로 인한 기쁨과 뿌듯함을 누린 하루라면, 분명 보람차고 의미 있는 날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열정의 부작용도 있다는 것을 세월이 조금 흐른 뒤에야 알았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단 한 가지라면, 이 부작용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소중한 것은 여러 가지이다. 직업에서의 성공, 가정에서의 행복 그리고 몇몇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와 건강. 이 중에서 어느 하나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열정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은 균형을 잃어버리는 삶이다.


균형은 추구할 만한 가치이다. 일의 성공과 가정의 행복 사이에서의 균형이 가장 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균형일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일과 삶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일의 성공과 가정의 행복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동시에 추구해야할 영역이다. 다행히도 이런 균형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의 조언이 담긴 책도 있다.


하지만, 크게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 몇 분들이 균형은 포기와 함께 이뤄진다고 표현한 점은 무척 아쉬운 점이다. 잭 웰치는 이렇게 말했다.

“일에서의 성공을 첫 번째로 꼽는 사람들은 자녀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어느 정도까지는 포기해야 한다. 일과 생활의 균형은 교환이다. 다시 말해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할지를 스스로 나누는 것이다.”


『코리아니티』에는 호주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뉴스캐스터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하는 맥신 맥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은 무엇인가를 포기합니다. 그것이 생활입니다. 저는 커리어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갖지 않았습니다. 아마 지금도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을 함께 키워갈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균형은 힘든 것이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잭 웰치나 맥신 맥큐는 우리보다 더 성취 지향적인 반면에 덜 관계 지향적인 사람들일 수 있다. 만약 누군가가 이들과 같은 정도의 성취심을 가진 동시에 관계 지향적인 성향까지 가지고 있다면, ‘포기’라는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잭 웰치나 맥신 맥큐는 분명 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그렇다면, 일하는 방식에서는 이들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그다지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잭 웰치는 두 번이나 이혼의 아픔을 겪었고, 맥큐는 아이가 없다. 그렇다면, 삶의 방식에서는 이 두 사람의 얘기를 조언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미국이 경제부국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문화까지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직장에서 성공하였다고 하여 삶의 방식까지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다.


그렇다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는 또 다른 모델링이 필요하다. ‘균형’을 이룬 사람들의 조언이 필요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의 가까운 사람들의 대부분은 균형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지나친 완벽주의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나의 상사, 가정에 있어야 할 시간을 마련하지 못한 정도로 직장에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삼촌, 건강의 중요성을 잊을 정도로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던 어느 팀원이 그렇다.


항상 그래왔듯이, 나는 책을 찾았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와 연구원들이 쓴 『균형』, 마르코 폰 뮌히하우젠의 『균형잡고 살아라』, 데이비드 히넌의 『일과 삶의 균형 더블 라이프』등의 책들은 균형을 이상 강령에서 실천 지침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준다. 그 중『균형잡고 살아라』의 저자는 ‘균형’이라는 말만 기억하고 생각해도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 삶의 균형을 위협하는 7가지 편견을 제거하라고 조언한다.


․ 직장에서 성공하면 인생도 성공한 거야.

․ 바쁘고 힘들어야 열심히 사는 것 같아.

․ 돈이 많으면 행복도 따라오는 거야.

․ 나만 정신없이 사는 게 아냐. 다들 그렇게 살아.

․ 성공한 후에 다 할 수 있어.

․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 사생활은 계획하기가 어려워.


이는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인생은, 종종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인생은 모든 사람들에게 실패의 자리에서 성공의 자리로 나아오라고 초대한다. 그 초청에 손을 내밀어 성공으로 가는 길에 올라서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또한 인생은 얕은 성공의 자리에 머물고 있는 이들을 더 깊은 성공의 자리로 초대하고 있다. 이는 더 큰 기쁨이 있는 곳이며, 더 의미 있는 성공이 있는 곳이다. 그 곳으로 가는 비결이 우리 삶에 ‘균형’을 덧입히는 것이다.


팀원 중에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2시간씩만 잠을 자며 공부를 하던 녀석이 있었다. 나는 말렸다. 그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다가 그의 몸에 탈이 났다. 그제서야 그 녀석은 자신이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다고 토로하며 그 열정을 후회했다. 열정으로 인해 잠 못 드는 밤이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열정이 도를 넘어선 것이다. 이때부터 열정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때의 열정은 더 이상 열정이 아니라, 조급함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열정의 부작용이다.


잠들기 전에 잠시 누리는 여유는 아름답다. 열정이 이러한 여유를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나태함이 끼어들 틈이 없는 치열한 일상은 여유를 더욱 아름다운 시간으로 만든다. 잠자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을 정도라면, 치열한 열정은 반가운 손님이다. 안절부절 못하는 조급함이 아니라면, 치열한 열정은 필요한 삶의 태도이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보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약속해 주리라.


물론, 일에서의 성공은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다준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발휘되어야 할 영역은 직장이다. 가정에서는 또 다른 행복의 근원을 위한 공간이기에 일에 대한 열정의 스위치를 OFF로 전환시켜야 한다. 잠자는 시간을 아까워하기 전까지만 치열함을 가지는 것이 열정의 역할이다. 마찬가지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아까워하기 전까지만 열심을 내어 일하는 것이 열정의 역할이다.


구본형 소장님은 『코리아니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 예를 들어 일, 가정, 친구, 배움 등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삶을 받치는 기둥이어서 버리는 순간 삶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은 버릴 수가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니, 먼저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가려면 나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성찰해 볼 일이다. 그 성찰의 결과로 3가지의 중요한 것들이 발견되었다면, 균형 감각으로 그 3가지를 모두 누리며 살아가게 될 것을 기대하자.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것들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지만, 최고 ․ 최선의 방법은 아니다. 조화와 균형에 이르는 방법을 모색하자. 열정과 균형이 어우러진 삶을 꿈꾸자.

인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니, 우리는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할 수 있다! 균형, 그것은 더 깊고 의미 있는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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