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이틀 전, 우연히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전율하며 만났다는 우리(그도 그랬고 나도 그랬다)는 마음이 잘 통했다. 이야기는 김광석의 요절에 관한 대화로 이어졌다. 그의 죽음은 매우 애석한 일이지만 뜻밖의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는 슈퍼콘서트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만한 가능성을 살필 수 있는 말도 했다.

"한동안 뭔가 모르게 자꾸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을 때예요. 뭐 정말 '그만 살까?'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럴 때 어차피 '그래도 살아가는 거, 좀 재미거리 찾고 살아봐야 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하며 만든 노래입니다. <일어나> 보내 드리면서 물러가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나는 이야기를 나누던 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김광석의 정서가 잘 이해돼요." 정말 그랬다.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 버리듯 우리네 인생도 언젠가 허망하게 끝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인생의 선배처럼 느껴지는 김광석도, 노래 부르던 시절의 모습은 나보다 어린 나이다. 내 어머니는 서른 아홉에 세상을 떠나셨다. 참 허망했다.

세상 모두가 외면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인생이 외면하는 순간 모든 것은 끝난다. 이러한 생의 덧없음을 표현한 작가는 얼마나 많은가! 사르트르는 아침마다 찾아오는 안생무상의 기분을 '구토'라고 표현했고 카프카는 '부조리'라고 명명했다. 이것을 노래한 곡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나는 종종 생각한다. 그만 살고 싶다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다. 삶이 힘에 부칠 때 아무 염려 없는 그 곳으로 가고픈 소망을 품게 된다. 이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인 동시에 소망의 대상이다. 그 소망을 스스로 선택하고픈 생각이 들 때, 왠지 모를 평안함이 찾아 든다. 이것은 아마도 나약함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종종 나약해진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실천하고 싶진 않다.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 사람들은 인생에 대한 소망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다는 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뜻이다. 죽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아직 할 일이 남았다는 뜻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다. 구토는 인간의 착각일 뿐이다.

궁극적으로 천국 소망이 주는 것은 죽음에 대한 염원이 아니라 생에 대한 열정이다. 나는 생에 대한 열정이 신앙의 깊이라고도 믿는다. 아침에 눈을 뜬 것은 신의 뜻을 쫓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영혼이 생생히 살아 있을 때에는 아침에 눈을 뜨며 내 인생을 기대하는 신의 기운을 느끼곤 한다.

어쩌면 나는 김광석과 비슷한 정서를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한없이 평온해지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내가 좋아하는 4명의 가수 중에서도 정서적으로는 가장 깊은 공감을 느끼는 가수다. 하지만 나는 생의 허무로 빠지지는 않는다. 그와는 다른 세계관을 가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와 공감하다가도, 나는 적절한 순간에 허무와 무의미 대신 열정과 소명을 생각한다.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나는 김광석이 좋다. 그의 진솔함이 좋고, 마치 삶을 자기 두 발로 걸어가는 듯한 주도적인 모습이 좋다. 소박하고 투명하게 느껴지는 그의 말투가 좋고, 진정성이라 하고픈 그의 노래 부르는 모습도 좋다. 김광석이 지은 노래들이 좋고, 그가 선택하여 리메크한 노래 역시 마음을 울린다. 그의 라이브를 못 들은 것이 아쉽고, 영원히 그럴 수 없음이 슬프다.

잠시 슬퍼도 나는 오늘을 열정적으로 산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눈을 떴으니까! 때로는 나에게도 생의 힘겨움이 찾아올 것이다. 고난이 없는 인생은 없지만 고난에 강한 사람은 있다. 그러니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 봄의 새싹들처럼~! 그만 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지만, 그럴 때 우리가 선택할 것은 봄의 새싹들을 벤치마킹 하는 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ceo@younicon.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보보



지난 주말에 김광석 동영상을 여러 편 보았습니다. 문득 그가 그리울 때 동영상은 나를 달래어 줍니다. 때로는 더 짙은 그리움으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그의 노래를 듣다가 그리워졌고, 그리워서 그의 콘서트 영상을 몇 개 보았습니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차분해졌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지요. "행복하십쇼" 라는 담백한 그 말을.

주말 아침 들었던 노래, 따라 부르다가 눈물을 흘렸던 노래는 <어느 60대 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이 노래가 좋습니다. 깊은 울림으로 다가 온 곡들 중의 하나입니다. 언젠가 이 곡에 관한 글을 썼는데 블로그에 올렸던 것 같습니다. 곡은 생의 허탈함이 아닌, 고마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것이 노래 덕분인지, 제 가치관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노래는 감동적입니다. 

 이곳에 올려 둔 동영상은 '여백의 가수'라는 제목의 e-지식채널 영상입니다. 어느 20대에게 보여주고 싶어 여러 번 보았던 영상을 다시 올립니다. 나는 그를 잘 모릅니다. 최근 어떤 힘겨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압니다. 눈망울이 맑는 그녀가 이번 일로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에게 김광석을 말을
들려 주고 싶었습니다. 

"10대 때는 거울처럼 지내지요. 자꾸 비추어 보고 흉내내고. 선생님, 부모님 또 친구들.
그러나 20대 쯤 되면 뭔가 스스로를 찾기 위해 좌충우돌 부대끼면서 그러고 지냅니다.
가능성도 있고 나름대로 주관적이든 일반적이든 객관적이든 기대도 가지고 지냅니다.
자신감은 있어서 일을 막 벌리는데 마무리를 못해 다치기도 하고 아픔을 간직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유리처럼 지내지요. 자극이 오면 튕겨내 버리던가 스스로 깨어지던가." 

말은 더 이어지지만 김광석의 음성으로 듣는 게 나을 듯 하네요. 영상이 그녀에게 도움이나 위로를 준다는 자신 없습니다. 다만 그녀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건 있지요. 자신이 참 소중한 사람이란 사실과 한 사람이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소중한 새벽시간을 내어 글을 썼습니다. '김광석 영상을 찾아보세요'라는 말만 전하는 것보다는 좀 더 정성스러운 것 같아서요.

힘 내렴! 그에게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나는 영상 속의 한 장면이 참 그립습니다. 여대생 두 명이 동작을 맞추어 힘차게 춤을 추는 장면 말입니다.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지, 춤 동아리 학생들인지는 모르지만, 저네들의 몸짓이 20대의 열정과 에너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습니다. 30~40대가 지니지 못한 어떠한 것을 20대는 지닌 게지요. 그러다가 지치기도 하겠지만, 다시 춤을 추는 힘이 그네들에겐 있습니다. 나는 그녀가 그런 힘을 내어 주기를 바랍니다. 

이리 말하니 남몰래 짝사랑하는 듯한 뉘앙스가 풍기네요. 오해들 마세요.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것 역시 사랑의 한 형태이긴 하겠네요. 히브리어로 '필로스'라고 불리는 친구 간의 우정과 같은 사랑 말입니다. 아무도 오해하지 않는데 혼자서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 되겠군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행복하십시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younique@daum.net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Posted by 보보




내 인생의 노래 (1)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십년이 훌쩍 넘은 일이다.
친구들 몇이서 모여 놀다가 친구네 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 때의 다른 일은 기억이 나지 않고 두 가지가 지금도 또렷하다.

하나는 친구 집의 아파트에서 내려다 보이는 시원한 전망이었다. 
아마도 그렇게 높은 집은 처음 가 보는 듯 했다. 
초등학교 친구 한 녀석이 11층에 살았는데 그보다 더욱 높았던 것 같다. 
친구들이 소파에 앉아 있을 때에도 혼자 슬쩍 베란다 쪽으로 가서 
집 앞 전망을 내다 보았던 기억이 난다.

창 밖을 내다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했는데 
어떤 생각이었는지까지는 잊어 버렸다.
지금은 그저 찰스 핸디의 말이 함께 떠오를 뿐이다.
"남의 것을 엿보는 것은 훌륭한 학습"이라고. 
남들이 살아가는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움이 있다.
사람들이 삶을 맞이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든,
사람들이 거주하는 물리적인 환경을 보는 것이든.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일이 줄어드는 것 같다.
고작해야 집들이 정도랄까? 외에는 친구 집에 갈 일이 많지 않다.
친구 녀석이 결혼을 하게 되면 그나마 좀 더 뜸하게 된다.
친구와의 우정이 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녀석이 사는 곳까지 가는 발걸음은 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어제 고향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결혼한 지 40일 정도가 지난 녀석이다.
언제 내려오냐? 4월 4일에 내려가. (난 이리 고향 가는 날을 미리 정해 두는 편이다.)
그럼 이번에 우리 집에 한 번 와라. 가도 되냐?
되지 임마. 친구 집인데. 그러네. 친구 집이지? 근데 왜 난 네 와이프 눈치를 봤다냐? 하하하.

우린 함께 웃었다. 아님, 멋적어서 나 혼자 웃었나?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게 뜸해진다.
이번에 내려가면 친구네 집에 가 보아야겠다.


또렷이 기억나는 다른 하나는 친구가 들려준 노래였다.
그 때 당시 눈물을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이후로 이 노래를 들을 때에 몇 번 감상에 젖곤 했다.
노래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로 시작되었다.
"가사가 좋아. 잘 들어 봐" 친구의 말에
우리 모두는 (아니면 적어도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막내 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 지새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 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가네
흰 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노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다.
김광석의 유작이 된 [다시 부르기 2]에 수록된 곡이다.
1995년 발표된 이 앨범은
김광석이 선정한 '한국 모던포크의 대표곡 모음집'이다.
한대수의 <바람과 나>,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창기의 <변해가네>, 한동헌의 <나의 노래> 등을 실었다.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조동익 밴드가 세션의 맡아 주었고,
편곡자 조동익이 원곡을 김광석 버전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이 앨범을 2002년 코엑스의 에반레코드에서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도, 지금도 나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가사에 몰입한다.
노래는, 들으며 가사를 옮겨 적을 수 있을 만큼
느린 템포이고 나는 가사를 적으며 노인네의 인생을 따라간다.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평온한 부부의 인생이 그려져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다가 결국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라는 가사에 눈물이 핑 돈다.

노인네의 인생을 엿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나도며
깨닫는 것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흥과 배우자의 소중함이다. 
상상의 나래를 타고 생각 여행을 떠나, 어느 인생을 엿보는 것도 훌륭한 배움이구나.
며칠 전에 보았던, 최근 들어 노인들의 자실이 급증했다는 기사도 떠올랐지만 
사회적 문제까지 글에 담지는 않으련다.

대신, 감동적이면서도 마음 아픈 깨달음이 담긴 글 하나를
소개함으로 글을 맺는다. (출처를 찾지 못해 주소만 적어 둔다.)

http://blog.daum.net/dolpiri58/15692629?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dolpiri58%2F15692629

나는 이 글을 읽고 여의도의 어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읽었다.
읽고선 마음이 슬프고 안타까워 잠시 카페를 나서야 했다.
여의도의 넥타이 부대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글은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시는 내외분에 대한 안타까움과
두 분의 애틋한 애정에 관한 것이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문득 나의 할머니 생각이 났다. 

혼자 다짐했다. 
아름답게 살자고, 잘 살아가자고.
가슴에 뜨거운 무언가를 삼키며.

오늘은 노랫말처럼 살아가고픈,
60대가 아니라 70대, 80대까지 함께 살고픈
한 여인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나도 김광석 노래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감상에 빠져든다.

"그(김광석)의 노래에 감염된 나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 안도현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라디오를 즐겨 듣던 10대의 어느 날...
좋아하던 노래가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아직 내 영혼이 순수하였을 때, 그 때의 떨림은 영혼에 각인되곤 했다.
그런 떨림은 종종 음악이 주곤 하였다.

이십 대 이후, 그런 떨림의 횟수는 줄어들었다.
순수함을 잃어버려서인지, 떨림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해서인지 모르겠다.
분명 순수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죄도 참 많이 지었고, 못된 짓도 참 많이 했다.
또한 떨림의 기회가 많이 사라지기도 했다.
아무 할 일 없이 편안히 라디오를 들어본 것이 언제였던가?

사람들은 어쩌면,
십대 시절 그 떨림을 준 몇 곡의 음악을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영혼에 각인된 노래를 들으면 온갖 회상에 잠기게 된다.
그런 노래들은 당시의 상황을 함께 갖고 온다.
내 머릿 속은 고스란히 당시의 상황으로 상상에 잠기고
내 마음 속은 아즈라히 절절한 그리움으로 회상에 빠져든다.

초등학생 때 사촌 형이 들려 주었던
(정확히 말하면 그가 혼자 듣던 음악이 무심결에 들렸던)
이선희의 '영' 을 들으면 어렸을 적 우리 집이 생각난다.
그 때, 우리 집에 살았던 사촌 형의 안부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그 집에 살아(!) 계셨던 엄마가 그리워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등학교 6학년 때 천안으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속버스 안에서
처음 들었던 변진섭의 '숙녀에게'
그리고, 그 즈음에 알게 된 '로라'와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거죠'
이 곡들을 들으면 초등학교 친구들이 생각난다.
지금은 시집을 간 짝꿍이었던 유경이, 공부 잘 했던 진희,
소공자 분위기의 상헌이.. 이들과 함께 떠났던 여름 캠프가 아련히 떠오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학생이었을 때, 이승환의 노래를 좋아했었다.
그의 발라드가 좋았다.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가 좋았다.
3집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은 참 인연이 깊은 곡이다.
난 이 곡을 참 좋아했고, 이 곡을 컬러링으로 가졌던 여인을 사귀었다.
그 후로 8집 '사랑하나요'까지 발라드 곡은 대부분 좋아했다.
'사랑하나요'는 옛 애인에게 불러주곤 했던 곡이다.

다시 중학교로...
서태지의 노래를 참 많이도 들었었다.
그의 모든 것이 좋았다. 춤이 좋았고, 노래가 좋았고, 그의 실험 정신이 좋았다.
서태지의 노래를 들으면 중학생 시절이 함께 떠오른다.
처음 서태지의 음반을 보여준 친구 지홍이... (교실 뒤에서 처음 1집 앨범을 보았다.)
함께 2집 노래를 들으며 화투를 쳤던 친구 기수...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90년 중반에는 김민종의 노래를 참 많이 들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고등학교 친구들이 떠오른다.
독서실에서 김민종 노래를 들으며 공부하곤 했다.
노래방에 가면 남학생들은 곧잘 김민종 노래를 불렀다.
여학생들은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알 길이 없지. 같이 가지를 못했으니...
김민종의 노래륻 들으면 친구 종국이가 생각나고 수범이와 준규가 떠오른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나는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의 곡을 듣고 있으면 가슴이 절절해진다. 누군가가 그리워지고 생각에 잠기게 된다.
때로는 살짝 진지해지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한다.
소설가 정이현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듣는 이를 압도하려 들지 않는다.
그의 노래에는 틈이 많다.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여백 속에서
스스로를 반추하게 만든다는 데에
김광석 노래의 진정한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이상하게도 김광석의 노래는 내 영혼에 쉽게 각인된다.
그의 곡에서 아픔이... 사랑이... 그리움이 묻어난다.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르고 나서 그가 곧잘 했던 말은 "행복하세요"라는 말이다.
그도 지금 행복하기를 명복을 빈다.

마지막으로...
난 이승철의 노래가 좋다. 참 좋다.
'희야' 때부터 '긴 하루' '소리쳐'까지...
최근 앨범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이승철의 노래를 들으면 사랑이 그리워진다.
여인이 그리워지고, 그녀와의 키스가 그리워진다.

*

김광석 노래를 찾다가 어느 중년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이선희의 노래가 있고, 김광석의 노래가 있고, 조용필의 노래가 있었다.
아.. 조용필의 '추억 속의 재회'라는 곡을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많이 듣곤 했던 여러 곡들...
조정현의 '슬픈 바다'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이상은의 '담다디'와 그 이후에 발표된 '언젠가는'..
이 모든 곡들이 당시의 추억과 함께 다시 나에게 밀려든다.

영혼에 각인된 음악들은 이렇게 추억을 선물한다.
추억이 아련한 회상에 잠기는 것 뿐이라면 그것은 기억에 가까워지고 그리움에 머문다.

하지만 추억은 아름다운 옛날을 그리워하다가 결국은 오늘을 살아갈 힘을 내게 쥐어준다.
내 인생의 순수했던 그 날을 그리며,
다시 한 번 순수하게 살아가기를 다짐하게 한다.
그래서, 아무 것 하지 못한 채 추억 속에 잠긴 어느 날의 밤도 나에겐 소중하다.
이 밤도 눈부실 만큼 아름답고 소중하다. 내 인생이니까...

(지금의 10대들이 중년이 되면,
내가 이선희와 변진섭을, 그리고 김광석을 그리워하듯
FT 아일랜드와 HOT, 그리고 원더걸스를 그리워할까?)

Posted by 보보
1

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보보

달력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래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