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사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8/05 나의 어머니 (20)
  2. 2009/04/12 엄마 (14)
  3. 2008/09/09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어머니는 바쁘셨다.
학교 어머니회 일원으로서 학교 행사를 돕거나
교회 집사님으로서 결혼식 피로연 준비 등의 교회 행사에 참여하거나
회사에서 긴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와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바쁘셨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가 생활비를 집으로 가져다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고단하셨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200원 짜리 '스콜'이라는 음료를 배달하셨다.
판자촌의 골목엔 비탈길이 있었고, 우리가 살던 허름한 집의 대문은 작았다.
100cc 짜리 오토바이를 대문 밖으로 내었다가 들이는 일은 힘겨웠을 것이다. 
지아비는 심리적 안정을 주지 못했고, 생활고는 어머니께 육체적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나는 가난이 싫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난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다.
나는 지금도 가난한 편이다. 주머니는 늘 가볍고 저축액은 전혀 없다. 
자발적 가난이기에 서글프지 않다. 오히려 만족하고 행복하다. 
나는 필요한 만큼 벌고, 번 돈이 조금 있으면 여행을 떠나며 놀거나 일 대신 공부를 한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하면 된다.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고 있다.

가난이 싫다고 한 것은 가난이 가져오는 상황이 싫다는 의미다. 
어머니에 대한 내 기억이 풍성하지 않은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기에 생활고에 시달렸다. 
생활고는 어머니를 바쁨으로 몰아갔다. 
아침에 나가셔서 저녁에 돌아오셨다. 
그런 매일의 바쁨이 어머니에게 육체적 고단함을 주었으리라.

일요일이 되면, 어머니는 잠시 누워 있곤 하셨다. 피곤을 그렇게 달래셨을 것이다.
참 아쉽게도 나는 어머니와 충분히 대화할 시간을 가지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난이 준 상황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교에서 돌아 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땐 내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당시가 서글프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것은 내 생활이었고, 누구나 자기 삶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다행한 것은, 상황은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만
인간은 항상 상황보다 더 큰 존재라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그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주셨다. 
아쉽게도, 석아! 사랑한다,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퇴근하실 때, 닭발이나 순대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오셨다. 
초등학생 1학년 때였나? 내 생일날, 우유와 100원짜리 런치빵을 사 주셨던 기억도 있다.
소박한 생일선물이었지만 그 런치빵 그리고 순대와 닭발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퇴근하셔서 
저녁을 짓는 어머니께 내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엄마 피곤해" 라는 말로 이야기를 끊지 않으셨다. 
방과 부엌 사이에 난 작은 문을 통해 나는 종알종알거리며
나는 하루 동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어머니는 잘 들어 주셨다. 
이렇게 짧은 시간을 통해서도 어머니와의 우정이 생겨난 것은 사랑의 힘일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사건은 내가 '사랑의 꽃다발'이라 부르는 일이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집 근처의 영수 학원에 다녔다.
나는 예쁜 수학 선생님을 좋아했고, 스승의 날에 선물을 해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께 꽃을 사 달라고 졸랐고, 당신께서는 알겠다고 하셨다.
기억에 의하면, 엄마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아니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다.
오셔야 할 시각에 오지 못하여 나는 울상을 짓고 학원에 갔다.
엄마는 오토바이를 타고 학원에 오셨다. 꽃다발을 들고서.

기억이 맞다면, 나는 숨어 버렸다. 어머니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걸어 오신 것도 아니고, 일하시던 모습으로. 그것도 오토바이를 타시고 오셨던 것이다.
내가 수학 선생님을 그저 치기어린 수줍음으로 좋아했다면,
어머니의 나를 향한 사랑은 '꽃다발' 처럼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당신께, 꽃다발 주인공은 수학 선생님이 아니라 나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불운하게도, 어머니와의 우정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던 봄날에 교통사고로 내 곁을 떠나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학원에 오셨던 것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로 가셨다.
이것만큼은 애석하고 슬프고 가끔씩은 억울하기도 하다. 
슬플 때 기대어 울 가슴이 없다는 사실이
기쁜 일이 있어도 그 소식을 나눌 분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 때는 어머니를 어찌할 수 없는 가난 속으로 밀어넣은
아버지의 무책임을 미워하기도 했지만, 원망은 지혜롭지 못한 일임을 깨달았다.
아주 가끔은 어머니가 무척 그리워 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는 실현되지 않을 일이다.
어머니의 부재는 내 인생이다. 이것을 거부할 순 없다. 거부하는 순간, 
어두움 하나를 갖게 되는 것이고,
민감한 대화 주제 하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빛이 그렇듯이 어두움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나의 어두움과 관련된 주제를 꺼내면
나는 
내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편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인생이 아니었다. 나는 상황을 뛰어넘고 싶었고, 성숙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두움을 걷어내고,
나의 인생 전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인생 전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는 동시에 과거를 온전히 수용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나는 상실의 경험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내 인생을 받아들이기 노력했다.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혹은 받아들인 결과로 몇 가지를 깨달았다. 

- 아무리 슬프고 부정적인 사건도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다. 
- 우리는 자신의 성격, 지니고 있는 질병, 잊고 싶은 과거보다 더 큰 존재이다.
-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이
만들어가야 할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하여 잘 알게 되면, 나도 '상처 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어머니와의 이별로 인해 나의 인생은 큰 변화를 맞이했고
변화의 크기만큼 나는 인생에서 동년배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보다 내가 낫다고 말할 순 없다. 그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나도 사랑 없이 자란 것은 아니다. 그저 어머니를 둔 이들이 부러울 뿐이다.
어머니가 떠나신 후, 나는 절망과 슬픔에서 적응과 익숙함을 거쳐
지금은 망각과 그리움을 시계추처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
내게는 부담감도 편안함도 느껴지지 않는 참으로 낯선 단어다.
이 말을 들으신 내 어머니는 서운해 하실까? 대견해 하실까? 궁금한 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1. 기일

4월 2일은 어머니 기일이었다. 올해로 17년 째 되는.
청도 인근의 남성현 고개, 어느 작은 산으로 갔다.
엄마가 잠들어 계시는 곳. 앞에 서면 눈물 나는 곳.

망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있지 않기에
망자를 그리는 이들은 이렇게 뼈가 묻힌 곳을 찾는다.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기에 항상 함께 하지만
그리움이 절절해질 때, 혹은 특별한 날에 그 곳으로 간다.

지난 해, 출간한 책을 엄마 묘 앞에 두고 왔는데 아직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찾았는데, 책은 없었다.
올해는 외삼촌, 외숙모, 외할머니와 함께 엄마에게 갔다.
이렇게 넷이서 가기는 처음이었다.

엄마가 무척이나 반가워하셨을 게다.
엄마, 남동생, 올케, 그리고 아들이 함께 왔으니.
허나, 할머니는 여느 때보다 더 서럽게 우셨다.
아들과 함께 오시니 큰 딸이 더욱 그리워지셨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우시다가 "석이가 저렇게 컸다. 영화야 니 모르제?" 하신다.
삼촌이 당신의 어머니를 달래며 "모르긴 왜 몰라. 다 보고 있는데..."

먼 발치에 앉아 엄마를 지켜보던 나도 삼촌과 할머니의 대화를 듣고 울컥한다.
몰래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의 가슴 아픔이 느껴졌다. 아..!

삼촌이 내 곁에 오셔서 앉으셨다.
삼촌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엄마와의 추억을 여쭈었더니 몇 장면을 말해 주셨다.
엄마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묻고 싶던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날들보다
엄마가 떠난 후의 살아 온 날들이 더 많아질 무렵부터 
이렇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고 싶었다.

삼촌과 단 둘이서 한엄마에게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2. 봄날의 슬픔

올해 기일은 봄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1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날처럼.
이것이 가끔씩 따뜻한 봄 햇살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원형이었다.


#3. 외할머니의 슬픔

"하나님이 데리고 갔다 해도 그게 지워지지 않어.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 2000년 7월 19일, 할머니가 하신 말.


#4. 나의 슬픔

엄마랑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헤어진 것.
젖가슴을 만지며 잘 수도, 엄마 머리칼을 꼬아가며 잘 수도 없다는 것.

하늘에서 다시 만난다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픈 소원은 이뤄질 수 없다. 슬픔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 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 『엄마를 부탁해』中



#5. 사별

선배 형의 친척분이 밤사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30대 초반의 젊은 주부가.
친구 교회의 누나 오빠가 역시 밤사이 사망했다. 30대였고, 참 건강했단다.
함께 청년부 생활을 했던 교회 형도 갑자기 사망했다. 모두 올해의 일이다.

사별은 인생의 과정이다.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축하하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

죽음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언급하지도 않은 것이 나은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 존재 자체를 끝내버리는 무서운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올바른 반응이 아니다.
죽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엄연한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 내고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때 삶에 대해 배우기 때문이다.

20대 중반, 첫 책을 기획하면서 하나의 장(章)을 죽음으로 쓰고 싶었다.
어머니와의 사별, 친구와의 사별 등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읽었던 죽음에 대한 책을 훑어 보다 이렇게 메모한 구절을 발견했다.

"이희석! 넌 어디서 어떻게 죽고 싶니?"    - 2002.3.16 경상감영공원에서

나의 죽음이 내가 사랑했던 이들, 나를 사랑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보여 줄 수 있기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기를.
이를 위해서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탤런트 안재환 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生의 막다른 길에 막혀
답답하고 고통스러우셨겠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도 아셨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귀의 여행을 떠난
당신의 힘겨움을, 아픔을 느끼고 싶네요.

生을 향한 당신의 열심이 빛을 보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人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아픔으로 남아 마음이 슬픕니다.

당신의 아내가 이 슬픔을 잘 견뎌 내고
다시 밝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기력을 회복하고, 삶에 대한 기쁨을 되찾기를.

*

나는 사별이 참 슬픕니다.
사별의 소식을 들으면 충격과 슬픔이 몰려 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어딘가 마음이 짠해지고 유족들에 대한 기도의 마음이 듭니다.

내 생에 대한 열심도 이 아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마음일지도 모르지요.
나의 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생 역시 그렇다는 것.

그렇기에 지금 조금 더 진솔하게 살고,
내 영혼의 기쁨을 위한 일들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아!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에게 여행을 다녀 온다고 떠나는 그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은 떠남으로 시작되어 돌아옴으로 완성되는데,
그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여행은 결국 떠남이었습니다.

저는 마지막이라는 말보다 더욱 슬픈 말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하루 종일 멍하게 있고 싶은 날입니다...

할 수 있는 말은 이 것 밖에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1

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보보

달력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래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