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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갑을 잃어비린 것 같다.
덕분에 집안을 뒤지느라, 외투 주머니를 확인하느라,
가방의 포켓마다 열어 보느라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확실하게 지갑을 사용한 것은 어제 1시경이다.
이후에 집으로 왔고, 오후에는 강연을 위한 미팅이 있었다.
잠시 집에 들렀다가 다시 저녁 약속으로 나갈 때 지갑이 없어서
그냥 카드만 들고 나왔다. 약속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 후,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지갑의 부재에
놀라며 집안을 뒤졌다. 그런데, 아쉽게도 없다.
유력한 분실 후보지인 어제 오후 미팅을 했던 곳, 카페 데 베르에 왔다.

"혹시 분실 지갑 들어온 게 없나요? 제가 어제 지갑을 두고 간 것 같거든요."
라고 물어야 할 터인데,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도록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조급함이 사라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근원은 모르겠지만 이런 마음이다.

'이미 일은 벌어졌다.
지갑이 이곳에 있다면 찾게 될 것이고
나도 모르는 곳에 있다면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서두를 게 무어란 말인가!'

아내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내가 이러고 있는 걸 알면, 얼마나 답답할고.
아이고야. 이를 어이할고. 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허탈한 웃음이 아니라, 정말 재밌다.

내가 이리 웃으면,
어떤 분들은 '보보님, 어딘가 믿는 구석이 있겠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갑이 있을 만한 짐작되는 곳이 있겠지, 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지 않다. 나는 정말 믿는 것도, 짐작 되는 곳도 없다.
만약 이곳 카페 데 베르에 없다면, 찾을 희망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집안을 너무 샅샅이 뒤졌고
어제 내가 지갑을 들고 간 곳은 카페 데 베르 밖에 없다.

희망을 남겨 두기 위해 집안을 설렁설렁 찾을 걸 그랬나?
희망을 살려 두기 위해 카페 데 베르에 묻지 말까?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희망 때문에 묻지 않는 게 아니다.
그저, 이런 일에 무덤덤한 자신이 신기해서 이러고 있다.

지갑을 잃은 상황인데도, (안에 돈이 적은 것도 아닌데도)
20분 동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신기하다.
뭘까? 이 덤덤함은.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덤덤함과 진한 아쉬움 사이를 왔다갔다 하겠지.)

문득, 지난 해 유럽 여행에서 잃어버린 배낭이 떠오른다.
하하. 만약 오늘의 초연함이 그 상실 예방주사 덕분이라면,
상실의 경험은 두고두고 삶에 도움이 되겠구만. ^^

※ 이 글을 쓰고 나서 등록하기 직전에 카페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분실 지갑 들어온 게 없냐고. 대답은 기대와는 달리 예상했던 대로였다.
지갑에는 뭐가 들었을까? 각종 신용카드와 현금 그리고 참 아쉬운 일도 하나 생각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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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열차 안에서 졸린 눈을 껌뻑거리며 글을 썼다.
졸렸지만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에 자판을 두드렸다.
신나게 글을 썼고, 저장하기 전에 블록 복사를 해 두었다.
혹여나 저장 시에 글이 날아갈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

저장을 하려는데..
아차, 서명을 빠뜨렸네,

서명을 복사하여 붙인 후에
'저장하기' 버튼을 눌렀다.

가끔씩 세상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가끔씩이 아니라, 종종일 수도 있다.
나는 분명 '저장하기'를 눌렀는데,
글은 저장되지 않았다.

Ctrl + V 를 누르면 된다. 복사해 둔 것이 있으니.
그런데 나타난 것은 80분 동안 쓴 글이 아니라,
직전에 복사해 둔 다음의 서명이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헉!
글은 사라졌다.
긴 글이었지만, 아쉬움은 짧게 가져야지.

좋네. 이번에는 서명을 복사 안 해 와도 되니. ^^ 호호.

또 배운다.
단순한 실수로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면 안 된다든 것을.
동시에 실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배울 수도 없다는 것을.

상실은 인생의 일부이니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법,
일상의 작은 사건들의 결과를 보며 삶을 조금씩 개선하는 법.
나는 그 사이의 균형 있는 지점에서 머무르고 싶다.

인생은 흥미진진한 학교다.
때로는 지루한 수업도 있고,
무서운 선생의 체벌도 있지만 학창 시절은 그리운 추억이다. 
인생의 노년에도 청춘 시절의 실패와 고생들이 그립겠지.. ^^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배OO 선생님
중학교를 졸업한지 16년 여가 지났네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저 희석입니다.
현대영수학원에도 보내주시고, 시집도 선물해 주셨던 그 이희석입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길이 참 행복했습니다.
내 삶에 나를 아껴주고 살펴 주신 은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저를 참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십 수년의 세월을 넘어서까지 제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오도록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참 고우셨던 모습은 여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보여 주신 참 스승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

2008년 스승의 날.
나는 대구 오성중학교의 뒤뜰에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배OO 선생님이셨나!
이제, 잠시 후면 선생님을 뵐 수 있다니! 나의 가슴은 감격으로 떨리기까지 했다.

해마다 배OO 선생님의 소식을 찾곤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번번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삶을 사느라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문득 선생님이 떠올랐다.
올해 스승의 날을 앞두고서는 꼭 뵙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현재 오성중학교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반갑고 놀라울수가!
나는 스승의 날에 대구에 가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고 지금 오성중학교에 온 것이다.

5월 14일엔 창원에서 강연이 있어 마산에서 하룻밤 묵고 스승의 날 오전 9시에 대구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에서 오성중학교에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분명 들떠 있었다.
택시 기사에게 중학교 때 은사님을 만나러 간다며 떠들어 댔다. 이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오성중학교 입구에 내렸다. 내 발로 직접 골목을 걸어 들어가고 싶었던 게다.
입구에서 꽃집에 들러 가징 아름답고 비싼 꽃다발을 하나 샀다.

편지를 쓰고 싶어 뒤뜰 벤치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
칡나무덩쿨로 그늘을 만들어 준 벤치에는 나무 책상도 있어서 쓰기에 편했다.
"단아하게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까지 썼는데 선생님 한 분이 지나가셨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생물을 가르쳤던 최OO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혹시, 최OO 선생님 아니십니까?"
이름을 기억해 주어서 고맙다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근데 너는 누굴 찾아왔노?"
"아,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배OO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최OO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지금 안 계신데..."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 오늘 학교 안 나오셨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대구에 계시면 제가 지금 찾아가면 되지요."
서울에서 왔는데 대구에 계시기야 한다면 상관없었다.
아니 뭐 경북에 계신다면 찾아가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만 있어봐래이."
"네, 근데 전근 가셨나요?"
"아니 잠깐만 있어봐래이." 하고 자리를 떠나셨다.
잠시 후에 김OO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다.
김OO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셨고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성함이 기억났다.

"아 니가 배OO 선생님 찾아왔나?"
"네"
"나한테는 수학 안 배웠나?"
"배우지는 않았지만 선생님 성함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OO 선생님이시죠?"
"아 그래..."

어색한 침묵이 잠깐 흐르고 최OO 선생님과 김OO 선생님은 서로에게 뭔가를 떠미셨다.
"선생님이 말하세요." "아니 선생님이 말하세요."
무슨 중요한 말씀이 있는 듯 했다.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내 궁금증은 사라졌다.
"희석아... 선생님 보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참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됐네.
배OO 선생님은 지금 학교에 안 계신다."
"네? 분명히 계신다고 통화하고 왔는데요."
"그래. 그건 그냥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나보다. 배수경 선생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
"...."
"...."

울먹이다가 곧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눈물을 흘렸다. 김OO 선생님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사실, 더 울고 싶었지만 마냥 울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잠시 후에,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쭈었다.
돌아가신지 1년 6개월 정도 지났다는 얘기, 돌아가실 직전에 서울에 계셨다는 얘기,
두 딸이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 참 여리고 고우셨다는 얘기 등을 들었다.

김OO 선생님은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래도 오는 길이 행복했을 거잖아. 그렇게 좋은 기억 간직하고 살면 되잖아. 그지?"
그랬다. 나는 정말 선생님을 만나 보러 오는 길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정말 행복했다.
실제로 편지에도 그렇게 썼지 않은가! 이 편지를 썼을 때 얼마나 설레였던가!
선생님은 또 나를 보며 얼마나 기뻐하실까, 라는 기대감으로 편지를 썼는데 전해드릴 수가 없다.
배OO 선생님을 대신하여 김OO 선생님께 편지글을 읽어 드릴테니 들어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는 쓰다 만 편지를 읽었다. 또 눈물이 났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겨우 겨우 읽었다.
쓰다만 편지... 결국엔 수취인에게 전해지지도 못한 편지...
김OO 선생님도 울고, 나도 울고.

꽃다발은 살아 계실 때 가장 친하게 지내셨다는 친구 선생님께 대신 전해 드렸다.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머무를 수도 없다.
여러 선생님들께 배OO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더 듣고 싶지만
이렇게 좋은 날 다른 제자들을 만나기에 바쁘실 거란 생각이 들어 참아야 했다.
나를 가르치셨던 몇몇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대부분은 평범했던 나를 잘 기억치 못하셨다. 배OO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학교를 나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 현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가 교실을 한 번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 1학년 교실부터 3층 3학년 교실까지 천천히 걸으며 둘러 보았다.
상욱에게서 전화가 왔다. 참았던 울음이 그 녀석 목소리를 들으니 울컥하고 터져나온다.

학교를 나왔다. 꽃다발을 산 꽃집을 지나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하며 잘 전해드렸냐고 묻는다.
"아뇨. 제가 뵈러 왔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대요."라고 쓸쓸히 답을 건넸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이왕이면 잘 받으셨다고 말할 걸 그랬나?
정말 하늘나라에서 꽃다발을 받으셨을 테니 말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하늘을 쳐다봤다.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선생님, 보고 계시죠? 듣고 계시죠? 이렇게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는데...
왜 벌써 가셨어요? 이제부터 선생님과 연락되면 엄마처럼 누님처럼 참 많이 따르고 싶었는데...
저 참 아껴 주셨잖아요. 아무 것도 잘 하는 것 없는 날 참 예쁘게 봐 주셨잖아요.
공부도 뒷전이던 제가 이렇게 잘 커서 선생님 뵈러 왔는데..."

엉엉 울었다.
하늘을 쳐다 보며 울고.
하늘을 원망하며 울고.
하늘이 그리워서 울고.

지금도 운다. 내가 2년만 일찍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더라면...
그 때엔 미처 모교에 전화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것이 어찌 이리 원망스러운지.
아! 그 때에 전화를 했었더라면. 그 때 연락드려서 만났더라면...
서울에서 지내셨을 때 많이 외로워하셨다는데, 내가 말동무라도 되어 드렸을텐데...
참, 세상에 이렇게 한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선생님께 예쁜 모습 보여 드리려고 안 하던 쇼핑까지 하여 새 셔츠를 입고 새 타이를 맸는데,
직접 보여 드리기 위해 배OO 선생님에 관하여 쓴 책의 원고 일부를 출력하여 갔는데,
힘껏 안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 왔는데,
이 모든 바람과 소원을 이제 가슴 속에 묻어둬야 하다니.
언젠가 선생님의 따님을 만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학교를 떠나왔다.

이제 그 때 못다한 편지를 마무리해야겠다.

*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이 모든 기억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함께 활짝 웃고 싶었는데,
그 소박한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네요.
선생님, 자꾸만 눈물이 나요.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참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으로 잘 자라왔지만
어렸을 적부터 나를 지지해 주고 아껴 주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특별했습니다.
정말, 저는 선생님과 앞으로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었거든요.
저랑 열살 남짓 밖에 차이나지 않으니 친밀한 사제 지간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아!
심호흡을 합니다.
선생님께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 거예요.
항상 저를 지켜봐 주신다고 생각하며 저 역시 선생님처럼 따뜻한 선생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감사합니다는 말 꼭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늘  선생님을 기억하며 살았다는 말도, 자주 생각났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지요.

가을이 되면 선생님 묘소에 찾아가 뵈려고 해요.
가능하다면 두 따님과 함께 가고 싶네요. 중학생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엄마를 먼저 떠나보냈고, 그 때 선생님을 만났지요.
선생님께서 제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셨던 것처럼 저도 두 따님에게 그러고 싶네요.
그리고, "엄마는 내게 최고의 선생님이었단다."라고 말할 거예요. 제 진심이거든요.

천천히 또박또박 제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선합니다.
"나.는. 희.석.이.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손을 만져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제자 이희석 두손모아 하늘로 올려드림

*

나는 2008년 스승의 날,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냈다.
상욱이를 만나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뵙기도 했지만
배OO 선생님에 대한 슬픔이 떠나가지 않았다.

소중한 친구, 상욱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오래 오래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달라고.
괜히 구본형 선생님이 보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아쉽게도 연락이 안 됐다.
잘 됐다. 연결되었더라면 영문도 모르신 채 나의 울음을 받아주셔야 했을 터이니.

지금도 이 글을 쓰며 눈물이 나고 참 슬프다.
하지만! 몇 가지 인생의 조언을 떠올려 본다.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모든 것에는 빛과 어두움이 존재한다.
상실을 경험하고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두움이다.
상실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스쳐가는 일상과
내 곁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은 빛이다.
어두움은 나쁜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의 과정일 뿐이다.
어두우은 빛이 오기 전의 단계이고 반드시 빛이 올 수 밖에 없는 단계이다.
다시 나는 빛이 될 것이다. 이번의 어두움으로 인해 더욱 밝은 빛이 될 것이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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