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7

그가 물었다. 사는 게 뭐냐고.

"사는 게 뭐냐?"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사는 게 뭔지 모르겠다며 흐느끼던 형이 내게 물었다. 형은 존경하던 스승의 병문안을 다녀온 터였다. 스승은 위독하셨다고 한다. 그는 스승을 만나온 십수년 동안 성실한 제자였고 스승의 진실한 우정이었다. 그는 스승을 존경했고 스승을 그를 사랑했다. 나는 종종 두 분의 아름다운 사제지간을 부러워하곤 했다. 조금 전, 그는 내게 이런 질문도 했었다. "너네 부모님이 언제 돌아가셨다고 했지?" 나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고 대답했다. 형은 살아오면서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스승이 계신 병원을 나서며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 순간, 한때 나의 소중한 분들이었던 어머니, 배수경 선생님, 친구 재민이가 떠오른다. 형이 말을 이었다. "인..

나이 듦을 받아들이기

나이 듦을 받아들이기 - 영화 감상기 1. 은 상실을 다룬 영화다. 피해자는 세상의 모든 노인들이고, 피의자는 쏜살같이 빠른 세월이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은 젊음이다. 세월은 저만치 흘러갔고, 영화 속 주인공인 4명의 은퇴한 뮤지션들은 이만치 늙어갔다. 씨씨(폴린 콜린스)는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고, 최정상급의 소프라노였던 진(매기 스미스)도 은퇴하여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세월은 한 세대를 풍미한 음악가라도 해도 비켜가지 않았다. 2. “재능이 사라졌어.” “그런 게 인생이야.” 이야기는 은퇴한 음악가들이 모여 사는 비첨하우스에서 진행된다. 진은 비첨하우스로 입주하고서 전 남편 레지를 만났다. “왜 음악을 관두게 됐어?” 레지가 물었다. 진은 비평가들이 두려워졌다고 말했다. 더 이상 예전의..

6일째 편도선염을 달고사는 중

편도선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날이 지날수록 세력이 더해지더니 발병 6일째인 오늘, 목이 따끔하다. 침을 삼킬 때에는 식도 전체가 꿈틀거리고 얼굴이 찌뿌려진다. 참기 어려울 만큼의 따가움은 아니지만 침을 삼킬 때마다 아프다. 하지만 나는, 안일함 혹은 아직은 괜찮다는 어리석은 낙관으로 아직 병원에도 약국에도 가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생각이란 것도 비합리적이기 일쑤다. 몸을 아끼는 나의 보신주의 역시 서로 다른 극단의 모습을 갖고 있다. 나는 음식 선택이나 식사량 조절은 잘 하는 편이다. 입이 아닌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고, 끼니를 거르지 않기 위한 노력한다. 아침:점심:저녁 식사를 2:3:1로 맞추려고도 한다. 몸이 아플 때에는 나의 보신주의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왠만한 ..

인생은 여성같다고 생각한 소년

소년은 많이 울었다. 오늘처럼 운 적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침대에 엎드려 울던 그는 몸을 일으켰다. 집에 있는 게 답답하여 밖으로 나왔다. 가야 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지만 집을 나서고 싶었다. 밖으로 나서자마자,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초봄 오후에 내리는 가랑비였다. 소년의 마음은 가는 빗줄기처럼 약해져 있었다. '내가 이렇게 약해지다니'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소년은 곧 다른 생각을 했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라고. 친한 사람들은 소년을 두고, 속내를 잘 말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친구들을 만날 때 소년은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다.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소년의 외할머니는,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고 힘겨워도 내색하지 않는 소년을 섭섭해 했었다. 소년을 이..

또 하나의 상실

아마도 지갑을 잃어비린 것 같다. 덕분에 집안을 뒤지느라, 외투 주머니를 확인하느라, 가방의 포켓마다 열어 보느라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확실하게 지갑을 사용한 것은 어제 1시경이다. 이후에 집으로 왔고, 오후에는 강연을 위한 미팅이 있었다. 잠시 집에 들렀다가 다시 저녁 약속으로 나갈 때 지갑이 없어서 그냥 카드만 들고 나왔다. 약속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 후,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지갑의 부재에 놀라며 집안을 뒤졌다. 그런데, 아쉽게도 없다. 유력한 분실 후보지인 어제 오후 미팅을 했던 곳, 카페 데 베르에 왔다. "혹시 분실 지갑 들어온 게 없나요? 제가 어제 지갑을 두고 간 것 같거든요." 라고 물어야 할 터인데, 도착한 지 30분이 지나도록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조급..

80분의 상실

열차 안에서 졸린 눈을 껌뻑거리며 글을 썼다. 졸렸지만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에 자판을 두드렸다. 신나게 글을 썼고, 저장하기 전에 블록 복사를 해 두었다. 혹여나 저장 시에 글이 날아갈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 ^^ 저장을 하려는데.. 아차, 서명을 빠뜨렸네, 서명을 복사하여 붙인 후에 '저장하기' 버튼을 눌렀다. 가끔씩 세상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가끔씩이 아니라, 종종일 수도 있다. 나는 분명 '저장하기'를 눌렀는데, 글은 저장되지 않았다. Ctrl + V 를 누르면 된다. 복사해 둔 것이 있으니. 그런데 나타난 것은 80분 동안 쓴 글이 아니라, 직전에 복사해 둔 다음의 서명이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헉! 글은 사라졌다...

내 생애 가장 슬픈 스승의 날

배수경 선생님 중학교를 졸업한지 16년 여가 지났네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저 희석입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현대영수학원에도 보내주시고, 제게 시집도 선물해 주셨던 그 이희석입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길이 참 행복했습니다. 내 삶에 나를 아껴주고 살펴 주신 은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저를 참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십 수년의 세월을 넘어서까지 제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오도록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참 고우셨던 모습은 여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보여 주신 참 스승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