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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기업을 하다 보면, 
회사로 오라는 제안을 받거나 크고 작은 기회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직업적 커리어에 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몰라 적잖이 고민을 하고
때로는 결정을 하지 못해 압박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결정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몇 가지의 기준이 생기긴 했습니다.

1. 그 일은 나를 성장시켜 비전으로 다가서게 하는가?
2. 비전을 이룰 수 있는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일인가?
3. 경제적 독립을 도와주는 일인가? 즉, 돈이 되는가?

(번호는 나에게 중요한 순서임.)

연봉이 높거나 수수료를 많이 주는 곳이면 더욱 좋습니다.
하지만 아직 젊은 내게는 돈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실현할 만한 역량을 키우는 것입니다.
업무 수행의 경험과 이를 통해 얻게 되는 지식은 우리의 역량을 키웁니다.
그러니 20대라면 연봉보다는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을,
30대의 젊은이라면 연봉과 성장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는일을 통해
- 꿈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가?
- 내가 원하는 꿈의 실현을 도와 줄 사람과 함께 하는가?

를 물으세요. 우리 젊은이들에게는 돈도 중요하지만,

성장의 기회를 얻어 힘차게 몰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돈과 점점 멀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돈이 매우 중요하기에 많은 돈을 불러들이는 법을 이야기하는 게지요.

그러니 몸을 사리지 말고 현장으로 뛰어듭시다.
앎은 삶을 바꾸지 못하지만, 이해는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앎과 이해는 다릅니다. 이해는 경험하면서 얻는 것이고, 시간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이해는 경험과 시간과 함께 온다는 말입니다.
생각과 행동을 통합시키는 사람들이 진정한 학습자들입니다.
학습자가 되면, 우리는 항상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2011. 4. 4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Y는 문자 하나를 받았다. "이번 달 마지막 금요일, 기수별 모임 있는 거 아시죠?" 미리 참가 신청하라고 요구하는 문자메시지였다. 참석 인원이 대략적으로라도 정해져야 준비가 수월해진다는 애원성 부탁도 있었지만, Y는 답변을 미뤘다. 하루 저녁을 미리 결정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쩌면 그 날, 동문회보다 더 즐거운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문자를 보낸 이는 Y가 3~4년 전부터 활동해 오던 온/ 오프라인 학습 커뮤니티의 같은 기수 멤버다. Y는 커뮤니티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자기 직업에서는 탁월한 전문가를 꿈꾼다. 두 가지 소원을 이루기에 Y에게는 '헌신'이 부족하다. 그가 선택하는 것은 헌신이 아니라, 더 나은 기회나 대상을 찾는 '탐색'이다. 탐색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그는 어떤 일에도 헌신한 적이 없다.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욕심으로 인해 지금 자신에게 다가온 것들에게 헌신하지 못한다. 헌신 없이 탐색만 하는 것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 혹은 다가올지 모르는 기회가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맹목적인 욕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헌신 없는 탐색으로는 삶의 만족감과 전문성 그 어느 것도 얻을 수가 없다.  

헌신이란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을 뜻한다. 욕심이 헌신을 방해하고, 헌신이 자기경영을 망친다. (우리 문화에서는) 아무리 좋은 이성이라고 해도 두 사람과 결혼할 수는 없다. 하지만 Y는 마치 두 사람과 결혼하기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여 두 개를 안고 비합리적으로 살아간다. 스스로도 비합리적이란 걸 알면서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Y에게 필요한 것은 '헌신'이다. '좀 더' 좋은 것을 탐색하느라 이미 많은 날들을 허비한 그다. 좋은 것이 자기 손 안에 들어와도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욕심 때문에) 자기 손 안의 좋은 점 보다는 좋지 않은 것을 먼저 발견한다. 그러면서 다른 이의 손 안에 있는 것을 아쉬워하거나 부러워한다. 자기 손 안에 쥔 기회와 일에 헌신해야 할 찰나에 Y는 결정을 뒤집거나 새로운 탐색을 시작한다. 

물론, 탐색을 통해 다른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그 때도 Y가 헌신보다는 또 다른 탐색을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비전을 이루는 사람들은 탐색과 헌신의 균형을 아는 사람이다. 특히, 시간적으로는 헌신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는 사람이다. 이들은 선택의 시기에 과감하게 자기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일에 헌신한다. 땀을 흘려야 결승선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얻고 비전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Y는 승리자의 월계관과 명예를 추구하지만, 자신이 직접 땀을 흘리며 달리는 일에는 주저한다.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길을 달려야 하는 일도 힘들고, 더 나은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의 길'을 진득히 달리기도 힘들다. 욕심과 두려움,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혀 헌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모든 생각으로 인해, Y는 탐색과 헌신 사이에서 괴로움을 느낀다. 탐색이 헌신을 낳고, 헌신이 탐색을 완성하기에, 탐색과 헌신은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면서도 독립적이다. 헌신을 하려면 탐색을 멈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헌신을 하려면, 다른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다는 의미다. 자기 결정이 옳는지에 대한 부담감과 삶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명심해야 한다! 목표를 향해 전진한다는 것 자체가 헌신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처음 가는 여행지를 향해 자동차를 몰고 가는 것과 같다.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길로 전진해야 한다. 이것이 헌신이다. 이 길 조금 진입하고, 저 길 조금 진입하는 패턴을 아무리 반복한다고 해도 여행지에 다다를 수도 없고, 그 여행지가 자신이 머물 적합한 곳인지 가늠할 수도 없다.

목표지점으로 향하되 앞만 보고 달리라는 말은 아니다. 이정표가 나오거나 갈림길이 나오면 잠시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지도(자기 비전)도 들여다보고, 길을 먼저 간 이들에게 물어보기도 해야 한다. 이것이 창조적인 탐색이다. 이미 출발지에서 멀리 떠나온 새로운 지점에서의 탐색이기에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이것은 늘 비슷한 지점에서 탐색하는 Y의 모습과는 다르다.

Y의 헌신하지 못함은 욕심에서 기인한다. 본인도 여러 번 인정했다. 문자 회신을 하지 않은 것도 조율하는 상대의 형편보다는 자기만을 생각한 이기적인 행동인 동시에 욕심에 지배당한 모습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그에게 요청한다. 아니 부탁한다. 삶의 태도를 바꾸어 헌신을 선택하라고. 24시간을 헌신적인 태도로 살 순 없지만, 헌신 없이 의미 있는 성공을 이룰 순 없다. 


욕심은 자기경영을 방해한다. 헌신보다는 또 다른 기회를 기웃거리게 한다. 기회의 정체는 대부분 자신의 욕심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준비'가 '기회'를 만나는 것을 두고, 우리는 행운이라 부른다. 준비됨이 없는 데도 어떤 기회가 찾아 왔다면, 그것이 자기 욕심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 하나를 선택하여 집중하지 못하고, 두 세 개의 선택안으로 고민하는 것도 욕심 때문이다. 

욕심과 합리적인 의사 결정의 구분은 의외로 쉽다. 자기 삶에 헌신이 있었나를 묻는 것이다. 물건을 하나 샀다면, 이제 내것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정을 붙이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물건을 구입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건의 단점에 집착하며 선택에서 배제된 물건의 장점을 떠올린다면 이것은 욕심이다. 데이트도, 결혼도 마찬가지다.


Y에게 들려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 문득 생각난 이야기가 있지만, 해결책이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최근에 플래너 대신 스마트폰으로 일정관리를 시작했다. 오랜 만에 만난 Y가 물었다. "플래너를 펼치면 한 눈에 할 일이 쫘악 들어오는데 이건 그런 맛이 없잖아요?" 나는 답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스마트폰은 휴대하기가 편하고 부피가 적지."

대부분의 선택은 선과 악, 좋음과 싫음, 우량과 불량 사이에서의 결정이 아니다. 일장일단이 있는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매우 힘들어진다. 각각의 선택안이 일장일단이 있다면, 하나를 취할 때,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종이 플래너가 주는 장점을 알지만 포기한 것이다. 다 취한다는 욕심을 버린다는 의미다. Y는 이것이 안 되는 것이다. 항상 손 안에 것에서 단점을 먼저 발견하는 부정적인 사고 방식이 한 몫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야기는 Y에게 도움이 될까? 
'아냐, 어딘가에는 두 가지의 장점만을 합친 것이 있을꺼야!' 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탐색을 하고 있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탐색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고 욕심에 끌려 다니는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가끔씩은 대안이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을 추구하며 사는 것은 고달픈 일이다. 탐색이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탐색하느라 헌신할 기회를 흘려보내는 것은 아쉬운 아쉬운 일이다.

실력과 인격, 그리고 진정성은 중요한 순간에 드러나지만, 이런 멋진 가치들이 형성되는 곳은 평범한 일상이다. 헌신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면서 만들어진다. 관계도, 리더십도, 전문성도! Y가 온갖 좋은 것들을 창조해 내는 헌신을 추구해 주기를 바란다. 시간과 애정을 들여 작성한 이 글이 그에게 '욕심종결문'이 되기를! '헌신의 세계'로의 초대장이 되기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youniqu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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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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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
실패의 순간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도전과 시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안다면!

사건의 실패를 인생의 실패로 연결하지 않을 수 있다면,
실패는 생각만큼 두려운 것이 아니다.
실패가 위험한 것은 고난이나 좌절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지
실패 자체는 그리 고약한 것이 아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상실이다.

<상실에 관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
상실은 실패와는 다르다.
실패란 것이 개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어라도,
종종 자신의 어떤 잘못된 행동, 혹은 부주의나 실수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반면, 상실은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음에도 종종 일어난다.
그런데도, 극심한 죄책감이나 자괴감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상실이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을
어린 시절의 한 동안, 나의 잘못이라 여겼다. 
사고 당일 날, 도시락을 안 가져와서 발생한 일이라 생각했으니까.
상실은 자체로도 허망한 일인데, 그 원인을 몰라서 더욱 힘들게 된다.
왜 나는 엄마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하나의 원인을 알게 된 정도였으니.

어린 시절, 부모님을 모두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후,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최악의 조건에서 내가 가진 최상의 것이 빛나는 순간을 보며
나는 절망 가운데 희망을 발견하는 법을 배웠다.
절망이 찾아왔다는 것은, 희망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희망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 절망에서 희망으로 시선을 옮길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상실에 대해 체험하고 있는 일들>
밀줄 친 말들은 내가 체험한 일들이고, 온 몸으로 깨닫고 배운 것들이다.
하지만 절망이 닥쳤을 때, 저 말대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저 말은 오랫동안 휘몰아쳤던 폭풍이 모두 지나가고 해가 난 후,
나의 삶을 회상하며 한 말이기 때문이다.
극심한 상실이 찾아오면 나는 다시 괴로워할 것이다.
힘겨움을 넘어선 괴로움을 안고, 나는 다시 화해하고 싶지 않는 운명을
내 인생 안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것은 결코 희망적인 일이 아니다.
결말은 희망적일지 몰라도 과정에서는 조금도 희망적이지 않다.
내가 희망을 발견했다기보다는 절망 속을 헤매되,
좋은 태도와 강한 의지로 헤매다가 우연히 희망이 발견되는 느낌에 가깝다.

그러니 희망을 발견하는 법을 배웠다는 표현의 정확한 뉘앙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희망찬 여정을 걷는 것과는 정반대일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두려운 숲길을 걷는 것처럼
힘겨운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상황 속을 더듬대며 걷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괴로워하는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비일상적인 것들 역시 인생의 일부분임을 깨달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과정의 어두움에 대한 이해나 절실함이 없다면
그들의 희망 이야기는 상실로 힘겨워하는 영혼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어쩌면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을 겪으며 얻는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능력을 얻자고 상실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없으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장면 #1. 무슨 영화를 보지?

영화 뭘 볼까?
저는 아무거나 봐도 상관없어요.
그래? 그래도 보고 싶은 거 없어?
저는 영화 다 재밌게 봐요.

이렇게 해서 베이징 여행에서 만난 우리 일행은 
그저 시간에 맞는 영화를 선택했다. <뉴욕은 언제나 사랑중>.
젊은 놈이 왜 이다지도 현실적이란 말인가!
로맨틱 코미디의 비약적인 전개에 지루해하며 결국 졸고 만다.
영화 다 재밌게 본다는 말이 무색해지게. 쿨쿨. ^^


장면 #2. 언제쯤이면 나의 이상형이 내게 데이트를 신청할까?

우리는 이틀 동안 아름다운 시간을 보냈다.
작은 동산에 올라 바닷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맛있는 일식집에서 정식을 시켜 분위좋게 식사를 하기도 했다.
버스 여행을 하며 낭만적인 분위기에 빠져 보기도 했고
영화 <어거스트 러쉬>를 관람한 후 감동에 잠기기도 했다.
헤어짐이 아쉬웠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즐겁게 헤어졌다.

편안한 우정보다는 가까운, 허나 연인은 아닌 우리 두 사람.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딱 한 번 만났던 이틀 간의 데이트.
손도 한 번 잡아보지 못했지만 좋은 감정은 있었던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여인이라 생각했고, 데이트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사귀자고 고백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나에게 데이트는 수동적인 것이었다. 누군가가 내게 제안하는...



유난히 결정하기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을 선택하면, 포기하는 저것에 대한 아쉬움이 들고
저것을 선택하면, 혹시 이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고.

결국, 그들은 좋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것보다 더욱 악화된 상황을 맞이한다.
그것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상황을 질질 끄는 것이다.
선택을 미루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발전을 가장 방해한다.

결단력과 우유부단함 사이에서 굳이 나를 가르자면 나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다.
쇼핑을 할 때에도 30분을 돌아본 후에 결정을 못해 '에이, 다음에 사자'고 돌아서곤 했다.
점심을 먹을 때에도 속시원히 "오늘은 순대국밥 먹어요"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데이트를 할 때에는 배운 게 있어 주도를 하는 편이지만,
데이트가 아닌 모든 경우에는 늘 선택을 하기보다는 끌려 다닌다.
사람들이 잘 믿지 않지만, 나는 주장이 분명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볼 때에는 이것이 내게 자연스럽고 편하다. 
문제는 삶의 중요한 사안 앞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는 점이다.
내게 꼭 맞는 이상형이 나를 찾아와서 데이트 신청을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니!

두 차례 세계대전에 모두 참전했던 조지 패튼 장군의 말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결단을 내려라.
이것이야말로 훌륭한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훌륭한 리더는 고사하고 결혼이라도 하기 위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다. ^^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이면 결단을 내리겠다.
나는 늘 올바른 결단을 내리는 능력은 없지만, 잘못된 결단을 고쳐나가려는 태도는 가졌다. 

돈이 아까운 영화 <뉴욕은 언제나 사랑중>은 이미 관람해 버렸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그 여인도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
덕분에 결단을 내리는 능력을 매일같이 연습해야겠다는 동기 부여 하는 제대로 건졌다.

[덧]

행동파들에게는 신중함이 필요한 것처럼
생각파들에게는 결단력이 필요하겠지요.

조합이 잘못되어 생각파들이 신중함까지 갖추면 우유부단해지고,
행동파들이 결단력만 갖게 되면 경솔해지겠지요. ^^

이 글은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위한 글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위로와 공감을 나누고 싶었답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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