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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해당되는 글 6건


나는 제대로 배워 둔 것이 없습니다. 교육을 업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가르치는 기술에 대해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21세기 초반 기업교육 업계에서는 코칭이 유행이었습니다. 나도500만원에 달하는 코칭 교육 과정에 참여했다가 비싼 교육비에 비하여 내용이 부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도중에 관두었습니다. 컨설팅이나 상담을 배운 적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대학 공부마저 듣고 싶은 과목만 골라 듣는 바람에 졸업학점을 채우지 못했지요.


나의 배움은 독서와 현장 체험의 조화로 이뤄져 왔습니다. 한 가지 배우고 싶은 주제가 생기면 그에 관련한 좋은 책들을 골라 읽습니다. 그러면서 읽은 책의 내용을 삶으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해서 애를 쓰고 정독해나가는 독서의 과정에도 정성을 다합니다. 이것은 모두 아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한 삶의 현장에서의 노력입니다. 이렇듯 나의 배움은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 아니 셀프교육으로 이뤄졌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열심히 배워오긴 했지만, 그간 배워온 것을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설명할 길이 없어 참 애매합니다. 학문적 경계가 뚜렷한 대학 공부와는 다른 방식으로 배워왔으니 심리학을 전공했죠, 경제학을 공부했지요 식으로 말할 수가 없는 겁니다. 10년 가까이 진행해 온 와우스토리연구소를 소개하는 일도 제겐 곤욕입니다. 분명히 독서모임이 아님에도 한동안 독서모임이라고 소개하고 말곤 했습니다. 책을 읽긴 하니까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블로그에서 한 번 즈음은 소개해도 되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잘 설명할 자신이 없었고 설명의 필요성도 못 느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일에 무관심했던 까닭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다가도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때엔 문득 글쓰기를 멈추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한 두 단어로 넘어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겁니다.


제가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와우연구원들입니다. 마냥 함께 어울려 놀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나 고민을 듣고 이런 저런 해답을 모색하는 대화가 더 많습니다. 이런 와우들과의 만남에 대하여 글을 쓸 때, 내가 코칭 교육을 받은 전문 코치라면, “오늘 와우 연구원을 만나 코칭을 진행했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전문 코치가 아닙니다. 상담가도 아니기에 상담을 했다고 표현하는 것도 민망합니다.


대화를 나누었다는 말을 주로 썼지만, 이 표현은 전부가 아닌 일부만을 표현할 뿐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단어가 멘토링입니다. 이 글을 쓰기 된 것도 ‘멘토링’이라는 단어 하나를 쓰기 위함입니다. 누군가를 만나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것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한동안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는 ‘멘토링’이라 부르고, 멘토링의 사전적 정의가 아닌, 내가 하는 일을 멘토링의 의미로 삼기로 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미 있는 피드백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멘토링의 본래 의미처럼 내가 멘토의 수준에 올라서서 통찰이 깃든 지혜를 전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가 알고 있는 최선의 이야기를 들려 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정답을 찾도록 질문 스킬을 발휘하는 코칭도 아니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적 지식과 조언을 주는 상담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세 단어 중에서 멘토링이라는 단어에 끌린 게지요.


나에게 멘토링은 그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돕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가진 재능과 타고난 기질을 발견하도록 내가 느끼고 관찰한 것들을 전해 주는 일입니다. 나는 원래 자신감이라는 주제의 글을 쓰려 했습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와우 연구원을 멘토링할 때의 힘겨운 점이 있습니다.” 자신감에 관한 일화로 와우 연구원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지요.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을 ‘멘토링’이라 표현하고 나니 그것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듯하여 이 글을 쓴 것입니다. 종종 자신이 가는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일은 귀찮은 일이고 때론 어려운 일입니다. 내 삶일 뿐이니 굳이 이해시킬 필요는 없잖아,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하지만 소통은 필요합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니까요. 소통은 좋은 것입니다. 오해를 줄이고 이해를 늘리니까요.


나는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과 잘 소통하고픈 욕심이 있습니다. 그 욕심 때문에 단어 하나에 매달려 긴 글을 썼습니다. 욕심이 과한 걸까요? 필요했던 욕심일까요? 궁금한 일입니다. 허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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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스스로의 삶으로 너를 열광하게 하라.

신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고, 꿈꾸는 대로 살아가라.

해야 하는 일을 완수하여 관계에서의 책임을 다하되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면서 너 자신의 기쁨도 책임져라.


누군가가 행복을 가져다 주기를 기다리지 말라.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 마음껏 실행하라.

아침 식사를 요리하여 가족에게 선사하듯이

스스로 행복을 창조하여 자신에게 선물하라.


세상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버나드 쇼의 말처럼 그것은 이기적인 병이니

행복을 소비하려고만 들지 말고 행복을 생산하라.

자신을 기쁘게 하는데 성공했다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라.


너의 꿈과 삶의 가치들을 소중한 사람들에게 말하라.

그가 이해해 주지 않아서 답답함이 느껴지더라도

'역시, 말이 안 통하는구나' 하고 포기하지 마라.

답답함은 대화 단절의 신호가 아니라, 소통을 위해 더욱 노력하라는 표지다.


지금 너의 삶은, 스스로 노력해 온 날들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많은 영향력과 도움을 받아 온 사람들과의 관계가 준 선물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노력을 치하하고 삶의 쉼표를 찍어 휴식과 여유를 누려라.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라.

그대 스스로의 삶으로 너를 기쁘게 하라.

 


지난 8월의 와우 수업을 준비하여 쓴 글입니다. 와우 연구원들의 상황을 생각하며 쓴 구절도 있고, 그들을 향한 내 바람을 담은 구절도 있습니다. 또한 나에게 던지는 구절도 있습니다. 여러분께 나누고 싶은 대목도 있어 포스팅하였습니다. 여러분, 생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우며 살아갑시다. 오늘 the 행복하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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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마음을 나누고 영혼을 교감했던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여간다.
쌓이고 쌓여 우정이 되고 사랑이 된다.

마음이 닫히고 서로를 공감하지 못했던 시간은
흘러가기라도 해야 할 텐데 고여 썩는다.
쌓이고 쌓여도 가슴이 답답하고 영혼은 외롭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다
공감에서 오는 충만함, 소통에서 오는 기쁨,
표현에서 오는 후련함, 경청에서 오는 배움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가슴 답답한 일이다.
오해에서 오는 실망, 단절에서 오는 절망,
그와의 관계에서 희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연인으로 인해 가슴이 답답할 때,
생애 처음으로 독신을 생각해 보기도 하고,
남자를 (혹은 여자를) 두려워하게 되기도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삶이 슬퍼진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슬픈 일이다.
우리 모두 삶의 파트너에게 슬픔을 안기지 않도록 노력하자.
파트너에게 가슴 벅찬 사람이 되도록 한껏 애쓰자.

파트너가 힘들어하는 나의 어떤 모습을 이겨내고
그(녀)가 바라는 어떤 모습이 되기 위해 힘써 살아가자.
자신과의 이 선한 싸움은 이기지 못하더라도 싸움을 거는 것부터가 멋진 일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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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 성육신 :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성령에 의해 마리아의 태내에서 사람으로 잉태된 일. (네이버 국어사전)

(당신이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는 글입니다.
교양 하나 쌓는다는 생각으로 '성육신'에 대해 알아 두는 것도 좋을 거예요.
저의 이 말에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간혹 소통의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럴 때엔 예수님의 성육신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은 저 높은 곳 하늘 위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친히 인간이 되셨다는 점에서 소통의 비결이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게지요.

신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무력한 어린아이로 오신 예수님.
그렇기에 슬픔과 기쁨, 고통이 있는 그야말로 인간의 삶을 사셨지요.
완전한 신이시면서, 완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

소통은...
'완전한 나'를 추구하면서도
'완전한 그'가 되어보기를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 나는 그의 개성과 고유성을 파악하고 있는가?
- 그것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있는가?
-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나의 개성에 맞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님이 인간의 모든 고통과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제가 다른 이의 삶까지 직접 체험할 순 없지만,
성육신의 본질만큼은 묵상하고 실천하려 노력해 보는 겁니다.

예수님은 신성을 상실하지 않은 채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통해 자기다움과 소통의 원리를 모두 알게 됩니다.

나의 자기다움을 포기하고 다른 이를 섬기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자연스럽지 못하니 오래 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요.
처음에는 어느 한 쪽이 편하고 좋을 순 있지만, 한 사람은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소통은 답답한 것이 아니라, 시원한 것이지요.
가슴이 시원한 청량함과 깃털같은 가벼운 마음이 소통의 표지겠지요.

나의 자기다움을 추구하다가 다른 이의 연약함, 고유함, 기질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온전한 소통을 방해하는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자기다움이 만나 서로를 더욱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 소통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나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나에 대해 알아 주기를 바라고, 그것이 사랑의 표지처럼 보이니까요.
그러나,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주고 이해해 주기란 무척 힘듭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니까요. 참으로 많이 다른 점을 가진 고유한 개별적 존재들이니까요.

종종 나에 대해 말하기보다 먼저 그에 대해 들어야 하는 상황도 있겠지요.
그가 자신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해도, 나와 생각이 달라도 사랑과 오래 참음으로 들어야지요.
그래요. 필요한 것은 사랑이고, 그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입니다.
대화 그 너머의 마음을 느끼려는 노력, 상황 그 너머의 진짜 문제를 이해하려는 노력.

당신은 주도적인 사람을 꿈꾸지 않습니까?
상황이나 다른 이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책임감을 갖고 헤쳐 나가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까? 보보님! ^^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보보 이희석 Dream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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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삼촌 가게에서 삼촌과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전 시간이라 가게 손님은 많지 않았고
집안 일, 군대 전역을 앞둔 동생 이야기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귀한 시간을 보냈다.

대화는 참 좋은 것이다. 
이해를 높이어 상황과 서로를 알게 하고
마음을 나누어 서로에게 힘과 따뜻함을 건넨다.

하지만 대화란 어려운 것이다. <대화 = 진솔한 표현 + 공감적 경청>이다.
나의 생각이 그에게 가고, 그의 생각이 나에게 와야 대화다.
이런 소통을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표현이 있되, 경청이 없으면 이것은 소통이 아니다.
삼촌과 나는 소통하였기에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구체적인 대화 내용을 이야기한다면
지금 내가 얼마 기분 좋은지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 터인데
워낙 우리 집안의 문제인지라.. ^^

분명한 것은 대화 후,
삼촌과 나의 마음을 따뜻해졌다는 것이고 기운을 얻었다는 점이다. 
대화는 이렇게 좋은 것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좋은 걸 잃는 것이다.

*

이야기는 어느 손님의 방문으로 그만두어야 했다.
삼촌을 찾아 오신 손님이고 두 분은 사무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오늘의 할 일을 하려고 저만치 구석에 있는 테이블로 갔다.

잠시 후, 삼촌이 사무실에서 나오셔서 커피를 뽑아 들고 가셨다.
아...! 쫓아왔다. 내가 받아들고 삼촌께는 얼른 들어가 계시라고 했다.
"삼촌, 이런 건 저더러 시키시지요."

삼촌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웃으셨다.
나는 손님께 삼촌의 체면을 세워주고 싶은 마음이셨고,
삼촌은 그런 내 마음을 아셨으리라.

내심 손님이 오신 사무실에 커피 한 잔 갖다 드린다는 생각도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많이 부끄러웠다.
커피를 뽑으시는 삼촌을 보자마자 달려오며 얼굴이 화끈거렸을 정도로.

섬김은 좋은 것이다.
섬기는 리더십은 더욱 좋은 것이다.
삼촌은 가계에서 가장 웃어른이시지만
아직도 직원들의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오늘도 삼촌에게서 그런 모습을 배워간다.
삼촌은 이렇게 잊고 있었던 가치, 기본적이지만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신다.
일전에, 함께 일하는 친구가 삼촌의 모습에서 감동받았다고 한 적이 있다.

삼촌은 당신의 핸드폰 벨이 울리면, 멀리 있을 때에도 아주 열심히 달려오신단다.
친구가 쉰 중반의 삼촌의 그 모습을 보며 감동받았다고 삼촌께 얘기 한 적이 있단다.
삼촌은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나를 찾는 이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 뿐이라고.

아, 삼촌.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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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당신의 비밀댓글에 대한 긴 답변을 작성했습니다.
등록 버튼을 눌렀더니 제가 쓴 글이 그냥 날아가 버렸습니다.
ctrl+z를 눌러도 복구가 안 되었습니다.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다시 작성하였습니다.
작성을 끝내고 다시 등록을 눌렀는데 또 날아갔습니다. 허걱!

이상했습니다. 시험삼아 한 줄을 작성하여 등록해 보니 또 날아가버리더군요.
정말 이상하다 싶어 블로그 전체를 새로고침 하였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만 해도 있던 당신의 댓글이 사라졌습니다.
아하! 그제야 이해했습니다. 저와 같은 시각에 저는 당신의 댓글에 답글을 썼고,
당신은 며칠 전 당신의 댓글을 읽으며 지워버렸던 것이지요. 제가 맞죠?
(제가 무슨 추리소설 쓰는 작가도 아니고, 사건 수사하는 형사도 아닌데... 왜 이럴까요? ^^)

"화가 난 것은 스스로가 상대방을 향한 사랑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읽고 당신은 숨이 멎을 만큼 무언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어떤 사실에 직면하였고, 무언가 결심을 한 듯 하셨지요.

당신의 그 댓글을 읽고 나도 뭔가 생각을 좀 한 후에 댓글을 달아야지, 하였답니다.
오늘 그 댓글을 달았고, 여러 번 지워졌습니다.
두 번 지워졌던 댓글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처음에 썼던 그 글맛은 아니지만, 혹여나 도움될지도 몰라 기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사랑을 거두라고 권면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님은 당신도 아실 테지요.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대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태도와 새로운 파트너십이 필요한 경우가 더욱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한 번도 행하지 못했던
새로운 파트너십을 발휘하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해야겠지요.

하지만, 사랑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힘겨운 날들이 이어진다면 떠나야 할 것입니다.
사랑을 거두고 떠나지는 마세요. 용서하고 축복하며 떠나시는 겁니다.
그러면 슬프면서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분명 기쁨과 함께하는 감정이지만, 슬픔이나 고독과 함께 어울리기도 하더군요.
참 많이 슬플 것입니다. 그 슬픔에 직면하고,새로운 날들에 직면할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어떠한 순간에도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을 향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이 나의 목표이고,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를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줍잖은 말들을 늘어놓았습니다.
혹여나 저의 염려하고 위하는 마음이 왜곡되어 당신에게 폐가 되진 않을지 모르겠군요.
그럴 때에는 부디 저의 순수한 마음만 받아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혹, 당신의 댓글을 읽고 제가 부담스러워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으셨지요?
오히려, 당신의 댓글에 보다 신중히 답변을 달고자 살짝 연기해 둔 것이랍니다.

보보 Dream

[PS] 
알듯 모를듯한 이 글에 대한 해명을 해야 하나, 라고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저의 블로그는 '표현'이 아닌 '소통'을 위한 공간입니다.
물론 일차적으로 저의 생각을 표현하는 곳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고
누군가의 머리와 교류하는 '소통'이 없다면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글은 '소통'이 나에게 중요함을 드러낸 글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네요. ^^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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