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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해당되는 글 2건


배OO 선생님
중학교를 졸업한지 16년 여가 지났네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저 희석입니다.
현대영수학원에도 보내주시고, 시집도 선물해 주셨던 그 이희석입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길이 참 행복했습니다.
내 삶에 나를 아껴주고 살펴 주신 은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저를 참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십 수년의 세월을 넘어서까지 제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오도록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참 고우셨던 모습은 여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보여 주신 참 스승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

2008년 스승의 날.
나는 대구 오성중학교의 뒤뜰에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배OO 선생님이셨나!
이제, 잠시 후면 선생님을 뵐 수 있다니! 나의 가슴은 감격으로 떨리기까지 했다.

해마다 배OO 선생님의 소식을 찾곤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번번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삶을 사느라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문득 선생님이 떠올랐다.
올해 스승의 날을 앞두고서는 꼭 뵙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현재 오성중학교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반갑고 놀라울수가!
나는 스승의 날에 대구에 가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고 지금 오성중학교에 온 것이다.

5월 14일엔 창원에서 강연이 있어 마산에서 하룻밤 묵고 스승의 날 오전 9시에 대구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에서 오성중학교에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분명 들떠 있었다.
택시 기사에게 중학교 때 은사님을 만나러 간다며 떠들어 댔다. 이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오성중학교 입구에 내렸다. 내 발로 직접 골목을 걸어 들어가고 싶었던 게다.
입구에서 꽃집에 들러 가징 아름답고 비싼 꽃다발을 하나 샀다.

편지를 쓰고 싶어 뒤뜰 벤치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
칡나무덩쿨로 그늘을 만들어 준 벤치에는 나무 책상도 있어서 쓰기에 편했다.
"단아하게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까지 썼는데 선생님 한 분이 지나가셨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생물을 가르쳤던 최OO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혹시, 최OO 선생님 아니십니까?"
이름을 기억해 주어서 고맙다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근데 너는 누굴 찾아왔노?"
"아,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배OO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최OO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지금 안 계신데..."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 오늘 학교 안 나오셨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대구에 계시면 제가 지금 찾아가면 되지요."
서울에서 왔는데 대구에 계시기야 한다면 상관없었다.
아니 뭐 경북에 계신다면 찾아가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만 있어봐래이."
"네, 근데 전근 가셨나요?"
"아니 잠깐만 있어봐래이." 하고 자리를 떠나셨다.
잠시 후에 김OO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다.
김OO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셨고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성함이 기억났다.

"아 니가 배OO 선생님 찾아왔나?"
"네"
"나한테는 수학 안 배웠나?"
"배우지는 않았지만 선생님 성함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OO 선생님이시죠?"
"아 그래..."

어색한 침묵이 잠깐 흐르고 최OO 선생님과 김OO 선생님은 서로에게 뭔가를 떠미셨다.
"선생님이 말하세요." "아니 선생님이 말하세요."
무슨 중요한 말씀이 있는 듯 했다.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내 궁금증은 사라졌다.
"희석아... 선생님 보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참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됐네.
배OO 선생님은 지금 학교에 안 계신다."
"네? 분명히 계신다고 통화하고 왔는데요."
"그래. 그건 그냥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나보다. 배수경 선생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
"...."
"...."

울먹이다가 곧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눈물을 흘렸다. 김OO 선생님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사실, 더 울고 싶었지만 마냥 울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잠시 후에,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쭈었다.
돌아가신지 1년 6개월 정도 지났다는 얘기, 돌아가실 직전에 서울에 계셨다는 얘기,
두 딸이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 참 여리고 고우셨다는 얘기 등을 들었다.

김OO 선생님은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래도 오는 길이 행복했을 거잖아. 그렇게 좋은 기억 간직하고 살면 되잖아. 그지?"
그랬다. 나는 정말 선생님을 만나 보러 오는 길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정말 행복했다.
실제로 편지에도 그렇게 썼지 않은가! 이 편지를 썼을 때 얼마나 설레였던가!
선생님은 또 나를 보며 얼마나 기뻐하실까, 라는 기대감으로 편지를 썼는데 전해드릴 수가 없다.
배OO 선생님을 대신하여 김OO 선생님께 편지글을 읽어 드릴테니 들어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는 쓰다 만 편지를 읽었다. 또 눈물이 났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겨우 겨우 읽었다.
쓰다만 편지... 결국엔 수취인에게 전해지지도 못한 편지...
김OO 선생님도 울고, 나도 울고.

꽃다발은 살아 계실 때 가장 친하게 지내셨다는 친구 선생님께 대신 전해 드렸다.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머무를 수도 없다.
여러 선생님들께 배OO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더 듣고 싶지만
이렇게 좋은 날 다른 제자들을 만나기에 바쁘실 거란 생각이 들어 참아야 했다.
나를 가르치셨던 몇몇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대부분은 평범했던 나를 잘 기억치 못하셨다. 배OO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학교를 나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 현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가 교실을 한 번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 1학년 교실부터 3층 3학년 교실까지 천천히 걸으며 둘러 보았다.
상욱에게서 전화가 왔다. 참았던 울음이 그 녀석 목소리를 들으니 울컥하고 터져나온다.

학교를 나왔다. 꽃다발을 산 꽃집을 지나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하며 잘 전해드렸냐고 묻는다.
"아뇨. 제가 뵈러 왔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대요."라고 쓸쓸히 답을 건넸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이왕이면 잘 받으셨다고 말할 걸 그랬나?
정말 하늘나라에서 꽃다발을 받으셨을 테니 말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하늘을 쳐다봤다.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선생님, 보고 계시죠? 듣고 계시죠? 이렇게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는데...
왜 벌써 가셨어요? 이제부터 선생님과 연락되면 엄마처럼 누님처럼 참 많이 따르고 싶었는데...
저 참 아껴 주셨잖아요. 아무 것도 잘 하는 것 없는 날 참 예쁘게 봐 주셨잖아요.
공부도 뒷전이던 제가 이렇게 잘 커서 선생님 뵈러 왔는데..."

엉엉 울었다.
하늘을 쳐다 보며 울고.
하늘을 원망하며 울고.
하늘이 그리워서 울고.

지금도 운다. 내가 2년만 일찍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더라면...
그 때엔 미처 모교에 전화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것이 어찌 이리 원망스러운지.
아! 그 때에 전화를 했었더라면. 그 때 연락드려서 만났더라면...
서울에서 지내셨을 때 많이 외로워하셨다는데, 내가 말동무라도 되어 드렸을텐데...
참, 세상에 이렇게 한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선생님께 예쁜 모습 보여 드리려고 안 하던 쇼핑까지 하여 새 셔츠를 입고 새 타이를 맸는데,
직접 보여 드리기 위해 배OO 선생님에 관하여 쓴 책의 원고 일부를 출력하여 갔는데,
힘껏 안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 왔는데,
이 모든 바람과 소원을 이제 가슴 속에 묻어둬야 하다니.
언젠가 선생님의 따님을 만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학교를 떠나왔다.

이제 그 때 못다한 편지를 마무리해야겠다.

*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이 모든 기억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함께 활짝 웃고 싶었는데,
그 소박한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네요.
선생님, 자꾸만 눈물이 나요.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참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으로 잘 자라왔지만
어렸을 적부터 나를 지지해 주고 아껴 주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특별했습니다.
정말, 저는 선생님과 앞으로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었거든요.
저랑 열살 남짓 밖에 차이나지 않으니 친밀한 사제 지간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아!
심호흡을 합니다.
선생님께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 거예요.
항상 저를 지켜봐 주신다고 생각하며 저 역시 선생님처럼 따뜻한 선생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감사합니다는 말 꼭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늘  선생님을 기억하며 살았다는 말도, 자주 생각났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지요.

가을이 되면 선생님 묘소에 찾아가 뵈려고 해요.
가능하다면 두 따님과 함께 가고 싶네요. 중학생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엄마를 먼저 떠나보냈고, 그 때 선생님을 만났지요.
선생님께서 제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셨던 것처럼 저도 두 따님에게 그러고 싶네요.
그리고, "엄마는 내게 최고의 선생님이었단다."라고 말할 거예요. 제 진심이거든요.

천천히 또박또박 제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선합니다.
"나.는. 희.석.이.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손을 만져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제자 이희석 두손모아 하늘로 올려드림

*

나는 2008년 스승의 날,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냈다.
상욱이를 만나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뵙기도 했지만
배OO 선생님에 대한 슬픔이 떠나가지 않았다.

소중한 친구, 상욱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오래 오래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달라고.
괜히 구본형 선생님이 보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아쉽게도 연락이 안 됐다.
잘 됐다. 연결되었더라면 영문도 모르신 채 나의 울음을 받아주셔야 했을 터이니.

지금도 이 글을 쓰며 눈물이 나고 참 슬프다.
하지만! 몇 가지 인생의 조언을 떠올려 본다.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모든 것에는 빛과 어두움이 존재한다.
상실을 경험하고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두움이다.
상실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스쳐가는 일상과
내 곁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은 빛이다.
어두움은 나쁜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의 과정일 뿐이다.
어두우은 빛이 오기 전의 단계이고 반드시 빛이 올 수 밖에 없는 단계이다.
다시 나는 빛이 될 것이다. 이번의 어두움으로 인해 더욱 밝은 빛이 될 것이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아침 7시 52분.

차창 밖으로 봄 햇살을 기대했는데 짙은 안개가 산을 뒤덮고 지면까지 내려와 있다. 마산에서 대구로 향하는 열차 안의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약간의 허기를 느낀다. 간밤에 충분한 잠을 자지 못하여 눈이 조금 따끔거리기도 하고, 이로 인해 기분이 그리 상쾌하지 않다. 생수라도 하나 사 먹고 싶은데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음료카트는 소식이 없다. 봄 햇살이 비치면 안개가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상쾌하지 못한 아침 기분도 햇살 맞은 안개처럼 사라지면 좋겠지만, 아직은 햇살도, 상쾌함도 찾아오지 않는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놀랍게도, 참 신기하게도, 스승의 날임을 인식하고 키보드로 오.늘.은.스.승.의.날.이.다, 라고 두드리는 순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오늘은 참으로 기다렸던 날이 아니던가. 그래! 나는 이 날을 기다렸다. 5월 초였던가, 4월 말이었던가? 올해는 꼭 학창 시절의 은사님을 찾아 뵈어야지, 하고 다짐했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은 중학교 때의 수학 선생님이셨던 배수경 선생님이다. 이후, 고등학교 때의 현정국 선생님, 전광춘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분들도 만나 뵙고 싶었다. 하루 만에 모든 분들을 만나 뵐 수는 없을 게다. 기껏해야 한 두 분일 터이고, 더 많은 분들에게는 전화 연락을 해야 할 것이다.


어렵지 않게 만나 뵐 분들을 결정했다. 고등학교 단짝 친구들과 함께 협성고 전광춘 선생님을 찾아 뵙기로 했다. 친구 상욱, 수범과 함께 가면 좋을 게다. 2학년 때, 우리는 같은 반이었고 그 때의 담임이 전광춘 선생님이다. 수범이는 회사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고, 상욱이와 나는 시간을 맞추었고,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우리는 오늘 11시쯤 만날 것이다. 그 놈과 함께 13년, 14년 전의 추억 속으로 걸어 들어갈테지. 학창시절, 우리는 늘 함께 했다. 함께 밤늦게까지 공부했고, 함께 간식을 사 먹었다. 주말이면 함께 학교 옆에 있던 스파(spa)에 가서 피로를 녹였다. 그런 추억과 더불어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을 찾아볼 수 있다니.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협성고 방문보다 이른 시각에 나는 모교인 오성중학교에 먼저 들를 것이다. 배수경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담임 선생님도 아니셨는데 나를 이런 저런 모양으로 돌봐 주셨던 분이다. 선생님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지금, 갑자기 16년 전의 몇 가지 사건이 겹친 사진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참 고우신 분이셨다. 많은 남학생들이 선생님을 좋아했던 기억, 나의 고등학교 진학 결정을 앞두고 함께 걱정해 주셨던 기억, 학원 선생님이셨던 당신의 친구를 통해 학원에 다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등이 떠오른다. 나에게 한 권의 시집을 선물해 주시기도 하셨다. “선생님은 희석이가 인문계로 진학했으면 좋겠다”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하셨던 장면은 참 생생한 기억이다. 그 목소리는 16년 동안 나의 귓가에 머물러 있었다.


한 시간쯤 후면 배수경 선생님을 만날 것이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선생님께 전화라도 드리려고 인터넷 이곳저곳을 뒤지곤 했다. 어디에서 본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782-XXXX라는 번호가 선생님 댁이었던 것 같아 한두 번 전화를 하기도 했다. 잘못된 번호였던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내 인생에 은사님으로 남아 있는 배수경 선생님.

그 동안 어찌 지내셨을까? 나를 단번에 알아보실까? 인사드리며 내가 누군지 맞히실 때까지 웃고만 있어볼까?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계실테지. 아! 떨린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배수경 선생님을 만나는 것 역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십 수 년의 세월 동안 품어 온 감사함의 마음을 전할 생각을 하니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휴... 한 숨을 내쉰다. 긴장 되나 보다. 에공.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저 가만히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는 어머니를 하늘 나라로 떠나보내 드린 시기니, 그 슬픈 기억이 함께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울지도 모르는데.. ^^


배수경 선생님을 만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완전히 나아졌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 새 햇살이 가득하다. 안개가 몽땅 걷혀졌음은 물론이다. 햇살과 안개가 함께 하지 않듯, 감사한 마음, 보고 싶은 마음도 방금 전의 우중충한 기분과 함께 하지 않나 보다. 지금 나는 두근거림과 설렘, 약간의 긴장감과 떨림을 느끼고 있다. 2007년 초에 옷을 구입한 이후로 줄곧 티셔츠 한 장 구입한 적이 없었는데, 어젯밤에는 셔츠 하나와 넥타이를 샀다.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더 예쁜 모습으로 찾아가고픈 까닭이다. 구김이 전혀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1박 2일용으로 입고 온 쥐색 셔츠가 있었는데, 색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구입한 것이다.


새로 산 넥타이와 셔츠가 예쁘게 보이실까? 아! 책이 출간되었더라면 선생님께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이 될 텐데, 라는 아쉬움이 든다. 허나, 최고의 선물은 16년 전의 제자가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가 인사를 드리며 손을 잡는 순간이리라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은 그저 제자된 자의 소원일 것이다. 스승된 분의 마음은 있는 그대로의 제자 모습도 참 예쁘게 보이시리라. 그렇다면, 누군가가 선생님을 찾아뵙기 위해 망설일 필요가 무어 있단 말인가! 그저 망설이는 자신의 몸을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시간을 내어 찾아뵙기만 하면 될 테니까.


오늘 내가 그 걸음을 하는 날이다. 아! 이제 열차에서 내릴 시각이 되었다. 만날 시각이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다시 한 번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지금의 내 마음처럼.


                                                - 2008. 5月 15日 오전 8:30, 동대구행 무궁화호 안에서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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