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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해당되는 글 6건



#1. 기일

4월 2일은 어머니 기일이었다. 올해로 17년 째 되는.
청도 인근의 남성현 고개, 어느 작은 산으로 갔다.
엄마가 잠들어 계시는 곳. 앞에 서면 눈물 나는 곳.

망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있지 않기에
망자를 그리는 이들은 이렇게 뼈가 묻힌 곳을 찾는다.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기에 항상 함께 하지만
그리움이 절절해질 때, 혹은 특별한 날에 그 곳으로 간다.

지난 해, 출간한 책을 엄마 묘 앞에 두고 왔는데 아직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찾았는데, 책은 없었다.
올해는 외삼촌, 외숙모, 외할머니와 함께 엄마에게 갔다.
이렇게 넷이서 가기는 처음이었다.

엄마가 무척이나 반가워하셨을 게다.
엄마, 남동생, 올케, 그리고 아들이 함께 왔으니.
허나, 할머니는 여느 때보다 더 서럽게 우셨다.
아들과 함께 오시니 큰 딸이 더욱 그리워지셨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우시다가 "석이가 저렇게 컸다. 영화야 니 모르제?" 하신다.
삼촌이 당신의 어머니를 달래며 "모르긴 왜 몰라. 다 보고 있는데..."

먼 발치에 앉아 엄마를 지켜보던 나도 삼촌과 할머니의 대화를 듣고 울컥한다.
몰래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의 가슴 아픔이 느껴졌다. 아..!

삼촌이 내 곁에 오셔서 앉으셨다.
삼촌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엄마와의 추억을 여쭈었더니 몇 장면을 말해 주셨다.
엄마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묻고 싶던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날들보다
엄마가 떠난 후의 살아 온 날들이 더 많아질 무렵부터 
이렇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고 싶었다.

삼촌과 단 둘이서 한엄마에게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2. 봄날의 슬픔

올해 기일은 봄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1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날처럼.
이것이 가끔씩 따뜻한 봄 햇살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원형이었다.


#3. 외할머니의 슬픔

"하나님이 데리고 갔다 해도 그게 지워지지 않어.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 2000년 7월 19일, 할머니가 하신 말.


#4. 나의 슬픔

엄마랑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헤어진 것.
젖가슴을 만지며 잘 수도, 엄마 머리칼을 꼬아가며 잘 수도 없다는 것.

하늘에서 다시 만난다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픈 소원은 이뤄질 수 없다. 슬픔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 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 『엄마를 부탁해』中



#5. 사별

선배 형의 친척분이 밤사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30대 초반의 젊은 주부가.
친구 교회의 누나 오빠가 역시 밤사이 사망했다. 30대였고, 참 건강했단다.
함께 청년부 생활을 했던 교회 형도 갑자기 사망했다. 모두 올해의 일이다.

사별은 인생의 과정이다.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축하하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

죽음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언급하지도 않은 것이 나은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 존재 자체를 끝내버리는 무서운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올바른 반응이 아니다.
죽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엄연한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 내고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때 삶에 대해 배우기 때문이다.

20대 중반, 첫 책을 기획하면서 하나의 장(章)을 죽음으로 쓰고 싶었다.
어머니와의 사별, 친구와의 사별 등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읽었던 죽음에 대한 책을 훑어 보다 이렇게 메모한 구절을 발견했다.

"이희석! 넌 어디서 어떻게 죽고 싶니?"    - 2002.3.16 경상감영공원에서

나의 죽음이 내가 사랑했던 이들, 나를 사랑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보여 줄 수 있기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기를.
이를 위해서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인연이여..."

이정하 시인의 <한 사람>이라는 시 중에서 옮긴 말이다.
나에게도, 소식이 알고팠고, 우연히라도 한 번쯤 만났으면 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를 예상하지 못한 날에, 우연히, 1년 6개월 만에 만났다.

아...
수많은 사람들 속에 우린 한 마디 말도 못했고,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 번 마주쳤기에 용기내어 한 마디를 건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은 없었고, 시선은 도망갔다. 쓸쓸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묘하게도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궁금한 게 많았다. 환히 웃는 모습 한 번 보고 싶었다. 목소리 한 번 듣고 싶었다.
그러나 소박한 나의 바람들은 하나같이 이뤄지지 못했다.
소식 하나 얻어듣지 못했고, 무표정한 표정만 가슴에 남았으며, 어색한 침묵의 찰나만 맛보았다.

야위여진 듯한 모습에 이런 저런 걱정을 하는 마음.
올해로 기한이 끝나니 이사는 어떡하나, 하는 궁금함.
직장 생활은 어떠한지, 교회 생활은 어떠한지.. 괜히 소식을 묻고 싶은 심정.

이정하 시인의 또 다른 시가 꼭 내 마음을 그린 것 같다.
<너의 모습>이라는 시의 일부다.

멀리 있어야 산의 모습이 또렷하고
떠나고 나서야 네 모습이 또렷하니
어쩌란 말이야, 이미 지나쳐 온 길인데.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인데.

벗은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끌고 온 줄이야,
산그늘이 깊듯
네가 남긴 그늘도 깊네.


참 멀리도 떠난 길이지만 그만큼 그늘도 길었나 보다.
이제는 다시는 그녀를 못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먼 훗날, 다시 만나더라도 더 이상 마음 아픈 날이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든다.

그 때보다 잘 살아가는 나를 볼 때마다
맛난 음식을 먹을 때나, 좋은 구경을 할 때마다
그녀를 떠올렸던 지난 날이 아직은 마음이 짠하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끝이 있듯이
이 아픔도 조만간 끝나리라.

하나 둘, 그녀와의 추억을 가슴에 묻는다.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또 하나의 사랑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으로 추억을 덮는다.
가슴 아팠던 사랑을 떠나보내는 슬픔의 눈물로 더욱 다진다. 
 
추억을 가슴에 묻어, 다짐으로 덮고, 눈물로 다졌다.
머지 않은 날에 사랑의 씨앗 하나를 심을 수 있으리라.

너무 성급히 덮어버리거나,
너무 오랫 동안 음미한 것이 아니라면,
사랑의 상처는 또 다른 사랑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탤런트 안재환 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生의 막다른 길에 막혀
답답하고 고통스러우셨겠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도 아셨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귀의 여행을 떠난
당신의 힘겨움을, 아픔을 느끼고 싶네요.

生을 향한 당신의 열심이 빛을 보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人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아픔으로 남아 마음이 슬픕니다.

당신의 아내가 이 슬픔을 잘 견뎌 내고
다시 밝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기력을 회복하고, 삶에 대한 기쁨을 되찾기를.

*

나는 사별이 참 슬픕니다.
사별의 소식을 들으면 충격과 슬픔이 몰려 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어딘가 마음이 짠해지고 유족들에 대한 기도의 마음이 듭니다.

내 생에 대한 열심도 이 아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마음일지도 모르지요.
나의 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생 역시 그렇다는 것.

그렇기에 지금 조금 더 진솔하게 살고,
내 영혼의 기쁨을 위한 일들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아!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에게 여행을 다녀 온다고 떠나는 그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은 떠남으로 시작되어 돌아옴으로 완성되는데,
그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여행은 결국 떠남이었습니다.

저는 마지막이라는 말보다 더욱 슬픈 말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하루 종일 멍하게 있고 싶은 날입니다...

할 수 있는 말은 이 것 밖에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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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계신 곳


"엄마 나 왔어요. 엄마 아들이 첫 책 들고 왔어요."
8월의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어느 날, 나는 친구 상욱과 함께 엄마 묘 앞에 섰다. 내 손에는 갓 출간된 '이희석'의 책이 들려 있었다. 엄마에게 책의 몇 구절을 읽어 드렸다. 눈물이 났다. 기뻐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얼굴은 비 오듯 흘러내린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됐다. 뙤약볕 아래서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슬픔과 기쁨이 섞인 소식을 전해 드렸다. 돌아오기 전, 한 권의 책을 비닐에 싸서 엄마 묘 앞에 고이 두었다. 어머니가 읽어보실 게다. 이 모든 것은 오래 전부터 소망해 왔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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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읽으실 책


올해 초 보았던 <해피선데이-하이파이브>에서의 채연과 그녀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딸의 노래 '둘이서'를 막힘없이 부르셨다. 빠른 박자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따라갔지만 결국 노래의 마지막 부분까지 온전히 부르셨다. 딸 채연은 처음 보는 모습이라며 눈물이 글썽해졌다. 나 역시도 처음 보는 장면이라 눈물이 글썽했다. 아니, 나는 그 때 울었다. 많이 울었다. 딸의 노래라며 얼마나 많이 흥얼거리며 따라부르셨을까. 그 어머니의 사랑이 전해져 눈물이 났던 것이다. 상욱에게 채연 어머니 얘기를 전했더니 공감해 주었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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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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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에서 한 컷


내 어머니도 살아계셨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해 주셨으리라. 책을 수십 번도 더 읽으시며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으리라. 아무도 책을 읽어주지 않더라도, 혹은 모두가 냉랭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어머니만큼은 나의 열렬한 팬이 되어주셨으리라. 망자에 대한 기억은 각색되기 마련이다. 내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분명 아름다운 것들만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어머니에 대한 생각의 균형점을 찾아봐도 어머니는 꽤나 훌륭하신 분이라는 결론을 만나게 된다. 기억으로 도출된 이 결론이 맞는지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 날이 올 테지. ^^ 그 날에 만날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지. 호호.

2008년 8월 5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아름답게 추억할 만한 개인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배OO 선생님
중학교를 졸업한지 16년 여가 지났네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저 희석입니다.
현대영수학원에도 보내주시고, 시집도 선물해 주셨던 그 이희석입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길이 참 행복했습니다.
내 삶에 나를 아껴주고 살펴 주신 은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저를 참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십 수년의 세월을 넘어서까지 제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오도록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참 고우셨던 모습은 여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보여 주신 참 스승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

2008년 스승의 날.
나는 대구 오성중학교의 뒤뜰에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배OO 선생님이셨나!
이제, 잠시 후면 선생님을 뵐 수 있다니! 나의 가슴은 감격으로 떨리기까지 했다.

해마다 배OO 선생님의 소식을 찾곤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번번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삶을 사느라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문득 선생님이 떠올랐다.
올해 스승의 날을 앞두고서는 꼭 뵙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현재 오성중학교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반갑고 놀라울수가!
나는 스승의 날에 대구에 가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고 지금 오성중학교에 온 것이다.

5월 14일엔 창원에서 강연이 있어 마산에서 하룻밤 묵고 스승의 날 오전 9시에 대구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에서 오성중학교에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분명 들떠 있었다.
택시 기사에게 중학교 때 은사님을 만나러 간다며 떠들어 댔다. 이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오성중학교 입구에 내렸다. 내 발로 직접 골목을 걸어 들어가고 싶었던 게다.
입구에서 꽃집에 들러 가징 아름답고 비싼 꽃다발을 하나 샀다.

편지를 쓰고 싶어 뒤뜰 벤치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
칡나무덩쿨로 그늘을 만들어 준 벤치에는 나무 책상도 있어서 쓰기에 편했다.
"단아하게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까지 썼는데 선생님 한 분이 지나가셨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생물을 가르쳤던 최OO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혹시, 최OO 선생님 아니십니까?"
이름을 기억해 주어서 고맙다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근데 너는 누굴 찾아왔노?"
"아,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배OO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최OO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지금 안 계신데..."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 오늘 학교 안 나오셨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대구에 계시면 제가 지금 찾아가면 되지요."
서울에서 왔는데 대구에 계시기야 한다면 상관없었다.
아니 뭐 경북에 계신다면 찾아가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잠깐만 있어봐래이."
"네, 근데 전근 가셨나요?"
"아니 잠깐만 있어봐래이." 하고 자리를 떠나셨다.
잠시 후에 김OO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다.
김OO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셨고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성함이 기억났다.

"아 니가 배OO 선생님 찾아왔나?"
"네"
"나한테는 수학 안 배웠나?"
"배우지는 않았지만 선생님 성함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OO 선생님이시죠?"
"아 그래..."

어색한 침묵이 잠깐 흐르고 최OO 선생님과 김OO 선생님은 서로에게 뭔가를 떠미셨다.
"선생님이 말하세요." "아니 선생님이 말하세요."
무슨 중요한 말씀이 있는 듯 했다.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내 궁금증은 사라졌다.
"희석아... 선생님 보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참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됐네.
배OO 선생님은 지금 학교에 안 계신다."
"네? 분명히 계신다고 통화하고 왔는데요."
"그래. 그건 그냥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나보다. 배수경 선생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
"...."
"...."

울먹이다가 곧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눈물을 흘렸다. 김OO 선생님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사실, 더 울고 싶었지만 마냥 울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잠시 후에,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쭈었다.
돌아가신지 1년 6개월 정도 지났다는 얘기, 돌아가실 직전에 서울에 계셨다는 얘기,
두 딸이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 참 여리고 고우셨다는 얘기 등을 들었다.

김OO 선생님은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래도 오는 길이 행복했을 거잖아. 그렇게 좋은 기억 간직하고 살면 되잖아. 그지?"
그랬다. 나는 정말 선생님을 만나 보러 오는 길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정말 행복했다.
실제로 편지에도 그렇게 썼지 않은가! 이 편지를 썼을 때 얼마나 설레였던가!
선생님은 또 나를 보며 얼마나 기뻐하실까, 라는 기대감으로 편지를 썼는데 전해드릴 수가 없다.
배OO 선생님을 대신하여 김OO 선생님께 편지글을 읽어 드릴테니 들어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는 쓰다 만 편지를 읽었다. 또 눈물이 났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겨우 겨우 읽었다.
쓰다만 편지... 결국엔 수취인에게 전해지지도 못한 편지...
김OO 선생님도 울고, 나도 울고.

꽃다발은 살아 계실 때 가장 친하게 지내셨다는 친구 선생님께 대신 전해 드렸다.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머무를 수도 없다.
여러 선생님들께 배OO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더 듣고 싶지만
이렇게 좋은 날 다른 제자들을 만나기에 바쁘실 거란 생각이 들어 참아야 했다.
나를 가르치셨던 몇몇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대부분은 평범했던 나를 잘 기억치 못하셨다. 배OO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학교를 나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 현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가 교실을 한 번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 1학년 교실부터 3층 3학년 교실까지 천천히 걸으며 둘러 보았다.
상욱에게서 전화가 왔다. 참았던 울음이 그 녀석 목소리를 들으니 울컥하고 터져나온다.

학교를 나왔다. 꽃다발을 산 꽃집을 지나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하며 잘 전해드렸냐고 묻는다.
"아뇨. 제가 뵈러 왔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대요."라고 쓸쓸히 답을 건넸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다. 이왕이면 잘 받으셨다고 말할 걸 그랬나?
정말 하늘나라에서 꽃다발을 받으셨을 테니 말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하늘을 쳐다봤다.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선생님, 보고 계시죠? 듣고 계시죠? 이렇게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는데...
왜 벌써 가셨어요? 이제부터 선생님과 연락되면 엄마처럼 누님처럼 참 많이 따르고 싶었는데...
저 참 아껴 주셨잖아요. 아무 것도 잘 하는 것 없는 날 참 예쁘게 봐 주셨잖아요.
공부도 뒷전이던 제가 이렇게 잘 커서 선생님 뵈러 왔는데..."

엉엉 울었다.
하늘을 쳐다 보며 울고.
하늘을 원망하며 울고.
하늘이 그리워서 울고.

지금도 운다. 내가 2년만 일찍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더라면...
그 때엔 미처 모교에 전화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것이 어찌 이리 원망스러운지.
아! 그 때에 전화를 했었더라면. 그 때 연락드려서 만났더라면...
서울에서 지내셨을 때 많이 외로워하셨다는데, 내가 말동무라도 되어 드렸을텐데...
참, 세상에 이렇게 한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선생님께 예쁜 모습 보여 드리려고 안 하던 쇼핑까지 하여 새 셔츠를 입고 새 타이를 맸는데,
직접 보여 드리기 위해 배OO 선생님에 관하여 쓴 책의 원고 일부를 출력하여 갔는데,
힘껏 안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 왔는데,
이 모든 바람과 소원을 이제 가슴 속에 묻어둬야 하다니.
언젠가 선생님의 따님을 만나겠다는 다짐을 하며 학교를 떠나왔다.

이제 그 때 못다한 편지를 마무리해야겠다.

*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이 모든 기억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함께 활짝 웃고 싶었는데,
그 소박한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네요.
선생님, 자꾸만 눈물이 나요.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참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으로 잘 자라왔지만
어렸을 적부터 나를 지지해 주고 아껴 주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특별했습니다.
정말, 저는 선생님과 앞으로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었거든요.
저랑 열살 남짓 밖에 차이나지 않으니 친밀한 사제 지간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아!
심호흡을 합니다.
선생님께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 거예요.
항상 저를 지켜봐 주신다고 생각하며 저 역시 선생님처럼 따뜻한 선생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감사합니다는 말 꼭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늘  선생님을 기억하며 살았다는 말도, 자주 생각났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지요.

가을이 되면 선생님 묘소에 찾아가 뵈려고 해요.
가능하다면 두 따님과 함께 가고 싶네요. 중학생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엄마를 먼저 떠나보냈고, 그 때 선생님을 만났지요.
선생님께서 제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셨던 것처럼 저도 두 따님에게 그러고 싶네요.
그리고, "엄마는 내게 최고의 선생님이었단다."라고 말할 거예요. 제 진심이거든요.

천천히 또박또박 제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선합니다.
"나.는. 희.석.이.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손을 만져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제자 이희석 두손모아 하늘로 올려드림

*

나는 2008년 스승의 날,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냈다.
상욱이를 만나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뵙기도 했지만
배OO 선생님에 대한 슬픔이 떠나가지 않았다.

소중한 친구, 상욱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오래 오래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달라고.
괜히 구본형 선생님이 보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아쉽게도 연락이 안 됐다.
잘 됐다. 연결되었더라면 영문도 모르신 채 나의 울음을 받아주셔야 했을 터이니.

지금도 이 글을 쓰며 눈물이 나고 참 슬프다.
하지만! 몇 가지 인생의 조언을 떠올려 본다.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모든 것에는 빛과 어두움이 존재한다.
상실을 경험하고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두움이다.
상실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스쳐가는 일상과
내 곁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은 빛이다.
어두움은 나쁜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의 과정일 뿐이다.
어두우은 빛이 오기 전의 단계이고 반드시 빛이 올 수 밖에 없는 단계이다.
다시 나는 빛이 될 것이다. 이번의 어두움으로 인해 더욱 밝은 빛이 될 것이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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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근 길... 하루를 마감하며 우린 종종 통화하곤 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불쑥 묻는다.


집에 안 가냐?
방금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수원에서 강연이 늦게 끝나서 이제 막 들어왔어.

이번 주에 베트남엔 안 가냐? 장사가 안 된다.
야! 하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와서 전화를 했더니 내가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에는 장사가 참 잘 되었다며 다시 베트남 떠나라고 말했었다. 그 때도 마구 웃었는데 이 녀석이 오늘 나를 또 웃긴다. 슬쩍 덧붙이는 그 녀석의 멘트에 나.. 쓰러진다.

올 여름 휴가는 베트남으로 갔다 오지.

이 녀석, 오늘 하루 종일 장사는 안 하고 개그 연구만 했나 보다. 웃다가 어찌하다보니 얘기가 배수경 선생님 이야기로 흘렀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아 글도 못 쓰고 있다. 전해드지리 못한 편지는 여전히 내 책상위에 놓여 있고, 그것을 보는 순간 살짝 울컥해지려는 찰나, 이 놈의 멘트...

이제 그만 잊어라. 안 그러면 너까지 죽을지도 모르잖아.
너 죽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나까지 죽고...
내가 죽으면 OO(자기 와이프)이도 죽고... 그럼 우리 모두 끝이다.


나 또 미치는 줄 알았다. 웃겼다. 무지 웃었다. 정말 나까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우리의 감정적 교감과 친밀함이 뜬금없는 유머를 무례함에서 건져 주었고
그 녀석은 나의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주었다. 슬펐지만 행복했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는 즈음에 전화로 만나 감정을 나누었고 몇 가지 일상의 일들을 얘기했다. 그리워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슬픈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지는 않지만 하루라는 시간의 그릇 안을 들여다보면 슬픔과 함께 행복이 있을 수 있다. 슬픔의 크기가 크다면 시간의 그릇도 더욱 커져야 할 테지만 말이다.

친구야... 나 이렇게 산다. 너로 인해 슬픔과 그리움도 이겨내면서 말야.
너에게 음악 한 곡 실어 보낸다. 'Only Love'라는 제목이 내 마음이다. 호호.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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