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NAVER에서 날씨를 검색하던 중이었다. 실시간 검색순위 6위로 '스티븐 코비'가 떴다. 직감적으로 '사망'이란 단어가 떠올라 얼른 클릭했더니, 네이버 인물정보 란의 맨 앞에 큼직막한 검은색 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나는 20대가 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많은 책들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강력하고 영속적인 유익을 누리도록 해 준 책이 있다. 그야말로 행운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책들. 그 목록의 첫번째 책이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다. 


20대의 가장 소중한 학습 경험은 공감적 경청과 주도성이라는 2개의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한 것이다. 대구 남부도서관에서, 공강적 경청 대목(습관 5번)을 읽다가 감격에 겨워 책을 덮고 열람실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원칙 중심의 리더십>을 읽으며 느꼈던 사유의 방대함과 <8번째 습관>에서 느낀 체계적인 이론, 그리고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에서 얻은 시간관리의 원칙들은 스티븐 코비로부터 받은 감격이요, 소중한 선물들이다.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


3.

2005년 11월 11일과 함께 2012년 7월 16일(미국시간)은 내게 잊지 못할 날이 되었다. 피터 드러커와 스티븐 코비가 세상을 떠난 날.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구루들의 사망 소식은 양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소중한 배움을 얻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애틋함 그리고 그 가르침에 걸맞은 삶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현재 모습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 


훌륭하게 살아가는 데에는 수많은 비법을 '알아가는' 게 아니라 명쾌한 통찰을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강점 위에 커리어를 구축하라, 상호 이익을 모색하라,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마라, 비전과 목표를 가져라 등의 교훈을 익히는 것 말이다. 


4.

스티븐 코비는 4월 자전거 추돌사고로 의식을 잃은 후에 건강 상태가 나아지지 못한 채로 지내다가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인생의 은사 한 명이 세상을 떠났다. 언젠가 그의 워크숍에 참석하고 싶다는 소원도 나를 떠났다.


내게 깊은 영향을 준 구루들의 사망 소식은,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선, 언젠가는 나도 그들이 간 길을 따라 갈 거란 사실이 떠오른다. 그들의 생애와 업적을 전하는 기사들을 통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 상념에 잠긴다. 


무엇보다 내게 깊은 영향을 준 사상가들을 충실히 따르지 못한 내가 못마땅하다. 지적 탐구자로서 어느 한 사람에게, 어느 한 사상에 충분히 젖어들지 못한 것 같아 아쉽고 못마땅하다. 정말 친한 친구가 없어서 친구가 결혼할 때의 허전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정말 사랑한 사람이 없어서 맛난 음식을 먹을 때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5. 

5~6년 전, 스티븐 코비의 전작을 읽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생각을 야물찬 다짐으로 이어가지 못했고 그 결과 실천은 흐지부지 되었다. 만약 그 생각을 실천으로 알차게 이어갔더라면, 오늘 내 가슴은 더 허전했으리라. 어쩌면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와의 사별에 가슴이 무너지는 삶을 살고 싶다. 뼛속깊이 배우거나, 가슴깊이 교제하거나, 눈부신 기쁨을 함께하거나, 눈물나도록 용서하거나, 화끈하게 뛰어놀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슬픈 날이다. 수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준 구루와의 이별이 슬프고, 여전히 밋밋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모습과의 만남이 슬프다. 내일부터는 읽던 책을 미뤄두고 스티븐 코비의 책 한 권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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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장에 오신 엄마


#1. 어머니 기일

며칠 전, 4월 2일은 어머니 기일이었다.
올해로 열일곱 번째가 되었다. 세월은 지체함이 없다.

나는 청도 인근의 남성현 고개, 어느 작은 산으로 갔다.
엄마가 잠들어 계시는 곳, 앞에 서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 곳.

망자는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기에 (그래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망자를 그리는 이들은 그의 뼈가 묻힌 곳을 찾는다.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고 있기에 항상 함께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나,
그리움이 절절해지거나 특별한 날이 되면, 발걸음이 그 곳을 향한다. 묘하다.

지난 해, 출간한 책을 엄마 묘 앞에 두고 왔는데 아직까지 있을까?
책은 없었다. 궁금했지만, 의붓아버지가 가져가셨나, 하고 생각했다.
올해 기일에는 외삼촌, 외숙모, 외할머니와 함께 엄마에게 갔다.
'누나에게 나도 한 번 가 보자' 하며 외삼촌이 따라나선 것이다.

넷이서 가기는 처음이었으니
엄마가 더욱 반가워하셨으리라.
당신의 어머니와 아들 뿐 아니라, 남동생과 올케도 함께 왔으니.
그 날, 할머니는 여느 때보다 더 서럽게 우셨다. 많이 많이.
큰 아들과 함께 오시니 큰 딸이 더욱 눈에 선하도록 그리우셨으리라. 가슴이 미어졌다.

외할머니께선 한참을 우시다가 "석이가 저렇게 컸다. 영화야 니 모르제?" 하셨다.
"모르긴 왜 몰라요. 다 보고 있는데..." 외삼촌이 노모를 달래었다.
먼 발치에 앉아 엄마를 지켜보던 나, 삼촌과 할머니의 대화를 듣고 울컥한다.
몰래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의 가슴 아픔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삼촌이 내 곁에 오셔서 앉으셨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엄마와의 추억을 여쭈었더니 몇 장면을 말해 주셨다.
언젠가 삼촌과 단 둘이서 엄마에게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짧았다.

몇 달 전, 할머니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물으며 녹음한 것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고, 모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14년의 시간보다 

엄마가 떠나시고 살아 온 날들이 더 많아질 무렵부터 그랬다.

#2. 봄날의 슬픔

2009년 4월 2일은 봄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1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날도 볕이 좋은 날이었다.
나는 따뜻한 봄 햇살 속에서 가끔씩 슬픔 한 자락을 발견하곤 한다.
이런 것을 두고 슬픔의 원형이라고들 하는가 보다.


#3. 외할머니의 슬픔

"하나님이 데리고 갔다 해도 슬픔이 지워지지 않어.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2000년 7월 19일, 할머니가 하신 말이다.
나는 이 말씀이 지워지지 않는다.


#4. 나의 슬픔

엄마랑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헤어진 것.
이젠 더 이상 엄마 머리칼을 꼬아가며 잠들 수가 없다는 것.
단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만나고 싶은데, 이뤄질 수 없다는 것.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 낼 수 있었던 엄마를
,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 『엄마를 부탁해』中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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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두고 떠올리며 소식 알고픈
단 하나의 사람.
처음부터 많이도 달랐지만 많이도 같았던
차마 잊지 못할 내 소중한 인연이여..."

이정하 시인의 <한 사람>이라는 시 중에서 옮긴 말이다.
나에게도, 소식이 알고팠고, 우연히라도 한 번쯤 만났으면 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를 예상하지 못한 날에, 우연히, 1년 6개월 만에 만났다.

아...
수많은 사람들 속에 우린 한 마디 말도 못했고, 눈 한 번 마주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한 번 마주쳤기에 용기내어 한 마디를 건넸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답은 없었고, 시선은 도망갔다. 쓸쓸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묘하게도 하늘에선 비가 내렸다.

궁금한 게 많았다. 환히 웃는 모습 한 번 보고 싶었다. 목소리 한 번 듣고 싶었다.
그러나 소박한 나의 바람들은 하나같이 이뤄지지 못했다.
소식 하나 얻어듣지 못했고, 무표정한 표정만 가슴에 남았으며, 어색한 침묵의 찰나만 맛보았다.

야위여진 듯한 모습에 이런 저런 걱정을 하는 마음.
올해로 기한이 끝나니 이사는 어떡하나, 하는 궁금함.
직장 생활은 어떠한지, 교회 생활은 어떠한지.. 괜히 소식을 묻고 싶은 심정.

이정하 시인의 또 다른 시가 꼭 내 마음을 그린 것 같다.
<너의 모습>이라는 시의 일부다.

멀리 있어야 산의 모습이 또렷하고
떠나고 나서야 네 모습이 또렷하니
어쩌란 말이야, 이미 지나쳐 온 길인데.
다시 돌아가기엔 너무 먼 길인데.

벗은 줄 알았더니
지금까지 끌고 온 줄이야,
산그늘이 깊듯
네가 남긴 그늘도 깊네.


참 멀리도 떠난 길이지만 그만큼 그늘도 길었나 보다.
이제는 다시는 그녀를 못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먼 훗날, 다시 만나더라도 더 이상 마음 아픈 날이 아닐 것이라는 직감이 든다.

그 때보다 잘 살아가는 나를 볼 때마다
맛난 음식을 먹을 때나, 좋은 구경을 할 때마다
그녀를 떠올렸던 지난 날이 아직은 마음이 짠하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끝이 있듯이
이 아픔도 조만간 끝나리라.

하나 둘, 그녀와의 추억을 가슴에 묻는다.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또 하나의 사랑을 시작하겠다는 다짐으로 추억을 덮는다.
가슴 아팠던 사랑을 떠나보내는 슬픔의 눈물로 더욱 다진다. 
 
추억을 가슴에 묻어, 다짐으로 덮고, 눈물로 다졌다.
머지 않은 날에 사랑의 씨앗 하나를 심을 수 있으리라.

너무 성급히 덮어버리거나,
너무 오랫 동안 음미한 것이 아니라면,
사랑의 상처는 또 다른 사랑의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는 기름진 토양이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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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안재환 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生의 막다른 길에 막혀
답답하고 고통스러우셨겠죠.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것도 아셨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귀의 여행을 떠난
당신의 힘겨움을, 아픔을 느끼고 싶네요.

生을 향한 당신의 열심이 빛을 보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人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아픔으로 남아 마음이 슬픕니다.

당신의 아내가 이 슬픔을 잘 견뎌 내고
다시 밝은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길 기도하겠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마음이기도 하겠지요.
기력을 회복하고, 삶에 대한 기쁨을 되찾기를.

*

나는 사별이 참 슬픕니다.
사별의 소식을 들으면 충격과 슬픔이 몰려 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지 못한 사람이더라도
어딘가 마음이 짠해지고 유족들에 대한 기도의 마음이 듭니다.

내 생에 대한 열심도 이 아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마음일지도 모르지요.
나의 생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생 역시 그렇다는 것.

그렇기에 지금 조금 더 진솔하게 살고,
내 영혼의 기쁨을 위한 일들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아!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에게 여행을 다녀 온다고 떠나는 그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은 떠남으로 시작되어 돌아옴으로 완성되는데,
그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여행은 결국 떠남이었습니다.

저는 마지막이라는 말보다 더욱 슬픈 말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하루 종일 멍하게 있고 싶은 날입니다...

할 수 있는 말은 이 것 밖에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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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계신 곳



"엄마 나 왔어요. 아들이 첫 책 들고 왔어요." 8월의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어느 날, 나는 친구와 함께 엄마 묘 앞에 섰다. 내 손에는 갓 출간된 '이희석'의 책이 들려 있었다. 엄마에게 책의 몇 구절을 읽어 드렸다. 눈물이 났다. 기뻐하시는 엄마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듯 흘러내린 땀과 눈물로 얼굴은 뒤범벅이 됐다. 


참 기쁜 소식인데 엄마에게 전해 드리니 슬픈 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제쯤이면 이곳에 올 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도 기쁜 소식을 들고 올 때 만큼은 눈물 한 방울을 흘리게 될 것 같다. 돌아오기 전, 한 권의 책을 비닐에 싸서 엄마 묘 앞에 고이 두었다. '어머니가 읽어보세요.' 오래 전부터 소망해 왔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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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읽으실 책


올해 초 보았던 <해피선데이-하이파이브>에서의 채연과 그녀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딸의 노래 '둘이서'를 막힘없이 부르셨다. 빠른 박자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따라갔지만 결국 노래의 마지막 부분까지 온전히 부르셨다. 딸 채연은 처음 보는 모습이라며 눈물이 글썽해졌다. 나 역시도 처음 보는 장면이라 눈물이 글썽했다. 아니, 나는 그 때 울었다. 많이 울었다. 딸의 노래라며 얼마나 많이 흥얼거리며 따라부르셨을까. 그 어머니의 사랑이 전해져 눈물이 났던 것이다. 상욱에게 채연 어머니 얘기를 전했더니 공감해 주었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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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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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에서 한 컷


내 어머니도 살아계셨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해 주셨으리라. 책을 수십 번도 더 읽으시며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으리라. 아무도 책을 읽어주지 않더라도, 혹은 모두가 냉랭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어머니만큼은 나의 열렬한 팬이 되어주셨으리라. 망자에 대한 기억은 각색되기 마련이다. 내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분명 아름다운 것들만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어머니에 대한 생각의 균형점을 찾아봐도 어머니는 꽤나 훌륭하신 분이라는 결론을 만나게 된다. 기억으로 도출된 이 결론이 맞는지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 날이 올 테지. ^^ 그 날에 만날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지. 호호.

2008년 8월 5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아름답게 추억할 만한 개인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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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선생님
중학교를 졸업한지 16년 여가 지났네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저 희석입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현대영수학원에도 보내주시고, 제게 시집도 선물해 주셨던 그 이희석입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길이 참 행복했습니다. 내 삶에 나를 아껴주고 살펴 주신 은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저를 참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십 수년의 세월을 넘어서까지 제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오도록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참 고우셨던 모습은 여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보여 주신 참 스승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

2008년 스승의 날.
나는 대구 오성중학교의 뒤뜰에 앉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 배OO 선생님이셨나!
이제, 잠시 후면 선생님을 뵐 수 있다니! 나의 가슴은 감격으로 떨리기까지 했다.

 

삶을 사느라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문득 선생님이 떠올랐다. 해마다 배OO 선생님의 소식을 찾곤 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번번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올해 스승의 날을 앞두고서는 꼭 뵙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현재 오성중학교에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이렇게 반갑고 놀라울수가!
나는 스승의 날에 대구에 가기 위해 일정을 조정했고 오늘 오성중학교에 왔다.

5월 14일, 창원에서의 강연 진행 후, 마산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리고 스승의 날 오전 9시에 대구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에서 오성중학교에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분명 들떠 있었다. 택시 기사에게 중학교 때 은사님을 만나러 간다며 떠들어 댔다. 택시 기사와 이렇게 떠드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오성중학교 입구로 올라기는 길목에서 내렸다. 내 발로 직접 골목을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꽃집에 들러 가장 아름답고 비싼 꽃다발을 샀다.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드디어 학교에 도착! 

 

운동장은 작아졌다. 아니, 내 몸집이 커졌고 세상살이로 인식이 커졌으리라. 운동장의 흙을 밟으며 운동장을 가로지를까, 건물로 돌아가는 인도를 걸을까를 고민했다. 마냥 행복한 고민이었다. 

 

나는 교무실이 아닌 뒤뜰 벤치에 앉았다. 선생님께 드릴 편지를 쓰기 위해서다. 칡나무덩쿨로 그늘이 만들어진 벤치에는 나무 책상도 있어서 쓰기에 편했다. 나는 거기에 앉아서 편지를 썼다. 두근거림과 설렘이 가득한 가슴 한쪽에 약간의 긴장감을 품은 채로.


"단아하게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까지 썼는데 선생님 한 분이 지나가셨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생물을 가르쳤던 최OO 선생님이셨다. 이름까지 정확하게 기억이 났고 우리 반에 들어오셨던 분이셨기에 나는 선생님께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혹시, 최OO 선생님 아니십니까?"
이름을 기억해 주어서 고맙다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근데 너는 누굴 찾아왔노?"
"아, 수학을 가르쳐 주셨던 배수경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최OO 선생님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지금 안 계신데..." 하신다. 그리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셨다. "아, 오늘 학교 안 나오셨나요?"

 

"아니 그게 아니라..."
"대구에 계시면 제가 지금 찾아가면 되지요."

서울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대구에 어디든 못 찾아가랴 싶었다. 아니 뭐 경북에 계신다 해도 찾아뵈면 되지, 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있는데 생물 선생님께서 다급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잠깐만 있어봐래이."
"네, 근데 전근 가셨나요?"
"아니 잠깐만 있어봐래이." 하고 자리를 떠나셨다.


잠시 후에 김OO 선생님을 모시고 나왔다.
김OO 선생님은 수학 선생님이셨고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성함이 기억났다.

"아 니가 배수경 선생님 찾아왔나?"
"네"
"나한테는 수학 안 배웠나?"
"배우지는 않았지만 선생님 성함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OO 선생님이시죠?"
"아 그래..."

대화는 끊어졌고,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생물 선생님과 수학 선생님은 서로에게 뭔가를 떠미셨다. "선생님이 말하세요." "아니 선생님이 말하세요." 무슨 사연이 있는 듯 했다. 분위기는 굉장히 중요한 사연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무척 궁금해졌다.

 

"희석아... 선생님 보고 싶어서 찾아 왔는데 참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됐네.
배수경 선생님은 지금 학교에 안 계신다."
"네? 분명히 계신다고 통화하고 왔는데요."
"그래. 그건 그냥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나보다. 배수경 선생님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
"...."
"...."

울먹이다가 곧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주르륵 주르륵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수학 선생님도 함께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더 울고 싶었지만 마냥 울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두 분께서 마냥 나를 달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쭈었다. 돌아가신지 1년 6개월 정도 지났다는 얘기,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서울에 머무르셨다는 얘기, 두 딸이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 배 선생님은 참 여리고 고우셨다는 얘기 등을 들었다. 그리고 수학 선생님은 나를 위로해 주셨다.


"그래도 오는 길이 행복했을 거잖아. 그렇게 좋은 기억 간직하고 살면 되잖아. 그지?"

그랬다. 나는 정말 선생님을 만나 보러 오는 길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정말 행복했다. 열차 안에서 편지를 쓰며 얼마나 설레였던가! 선생님은 나를 보며 또 얼마나 기뻐하실까, 라는 기대감으로 편지를 썼는데 전해드릴 수가 없다니!


배수경 선생님을 대신하여 수학 선생님께 편지글을 읽어 드릴테니 대신 들어주실 수 있으시냐고 부탁 드렸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는 쓰다 만 편지를 읽었다. 눈물이 났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겨우 읽었다.

쓰다만 편지... 결국엔 수취인에게 전해지지도 못한 편지...
수학 선생님도 울고, 나도 울고.

꽃다발은 살아 계실 때 가장 친하게 지내셨다는 친구 선생님께 대신 전해 드렸다. 이제 더 이상 학교에 머무를 수도 없다. 여러 선생님들께 배수경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더 듣고 싶지만
이렇게 좋은 날 다른 제자들을 만나기에 바쁘실 거란 생각이 들어서 참아야 했다.

 

오랜만에 들렀으니, 나를 가르치셨던 몇몇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렸다. 나는 선생님들의 성함까지 정확히 기억했지만, 선생님들은 나를 기억하시지 못하셨다. 눈에 띄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라 이해했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다만 배수경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졌을 뿐.

학교를 나와야 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학교 현관 앞에서 서 있는데 또 눈물이 났다. 교실을 한 번 둘러보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층 1학년 교실부터 3층 3학년 교실까지 천천히 걸으며 둘러 보았다. 그 때, 친구 상욱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음을 참고 있었는데, 친구 목소리를 들으니 울컥한다. 또 운다. 

학교를 나왔다. 학교를 오르며 꽃다발을 샀던 꽃집을 지나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하며 잘 전해드렸냐고 묻는다. "아뇨. 제가 뵈러 왔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대요."라고 쓸쓸히 답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당황하여 할 말을 찾지 못하셨다. 잘 받으셨다고 말할 걸 그랬나? 배수경 선생님께서는 정말 하늘나라에서 꽃다발을 받으셨을 테니까.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하늘을 쳐다봤다. 선생님께 말을 걸었다.
"선생님, 보고 계시죠? 듣고 계시죠? 희석이가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는데...
왜 벌써 가셨어요? 이제부터 선생님과 연락되면, 엄마처럼 누님처럼 참 많이 따르고 싶었는데... 저 참 아껴 주셨잖아요. 아무 것도 잘 하는 것 없는 날 참 예쁘게 봐 주셨잖아요. 공부도 뒷전이던 제가 이렇게 잘 커서 선생님 뵈러 왔는데..."

엉엉 울었다.
하늘을 쳐다 보며 울고.
하늘을 원망하며 울고.
하늘이 그리워서 울고.


 

지금 나는 또 운다. 내가 2년만 일찍 오성중학교에 전화를 했더라면...
그 때엔 미처 모교에 전화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 이 사실이 어찌 이리 원망스러운지.
아! 그 때에 전화를 했었더라면. 그 때 연락이 닿아서 만났더라면...


서울에서 지내셨을 때 많이 외로워하셨다는데, 내가 자주 찾아뵈어 말동무라도 되어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한스러울 수가 있구나!

선생님께 예쁜 모습 보여 드리려고 쇼핑까지 하여 새 셔츠를 입고 새 타이를 맸는데...
책의 원고 중에 배수경 선생님에 관해 쓴 챕터를 출력해서 왔는데...
선생님을 따스하게 안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 왔는데...
이 모든 바람과 소원을 이제 가슴 속에 묻어둬야 하다니!

언젠가 녀석들이 허락한다면, 선생님의 따님을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학교를 나왔다.
이제 그 때 못다 쓴 편지를 마무리해야겠다.

*

제게 보여 주신 참 스승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던 기억, 단아하게 수학 수업을 가르쳐 주셨던 기억...

이 모든 기억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며 함께 활짝 웃고 싶었는데,
그 소박한 소원을 이루지 못하였네요.
선생님, 자꾸만 눈물이 나요.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많은 분들의 도움과 관심으로 잘 자라왔지만
어렸을 적부터 나를 지지해 주고 아껴 주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특별했습니다.
정말, 저는 선생님과 앞으로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었거든요.
저랑 열살 남짓 밖에 차이나지 않으니 친밀한 사제 지간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아!
심호흡을 합니다. 선생님께 작별 인사는 하지 않을 거예요. 항상 저를 지켜봐 주신다고 생각하며 저 역시 선생님처럼 따뜻한 선생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꼭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을 기억하며 살았다는 말도, 자주 생각났다는 말도 전하고 싶었지요.

가을이 되면 선생님 묘소에 찾아가 뵈려고 해요.
가능하다면 두 따님과 함께 가고 싶네요. 중학생이라고 들었어요.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 엄마를 먼저 떠나보냈고, 그 때 선생님을 만났지요.
선생님께서 제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 주셨던 것처럼 저도 두 따님에게 그러고 싶네요.
그리고, "엄마는 내게 최고의 선생님이었단다."라고 말할 거예요. 제 진심이거든요.

천천히 또박또박 제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선합니다.
"나.는. 희.석.이.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면. 좋.겠.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손을 만져보고 싶습니다.

선생님, 고마웠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제자 이희석 두손모아 하늘로 올려드림

*

나는 2008년 스승의 날을 하루 종일 우울하게 보냈다.
상욱이를 만나 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뵙기도 했지만
배수경 선생님에 대한 슬픔이 떠나가지 않았다.

소중한 친구, 상욱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오래 오래 내 곁에 건강하게 있어달라고.
갑자기 구본형 선생님이 보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아쉽게도 연락이 안 됐다.
잘 됐다. 연결되었더라면 영문도 모르신 채 나의 울음을 받아주셔야 했을 터이니.

지금도 이 글을 쓰며 눈물이 난다. 참으로 슬프다.
하지만! 몇 가지 인생의 조언을 떠올려 본다.

열렬히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이
한번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모든 것에는 빛과 어두움이 존재한다.
상실을 경험하고 슬픔의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두움이다.
상실을 통해 지금 이 순간을 스쳐가는 일상과
내 곁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은 빛이다.
어두움은 나쁜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의 과정일 뿐이다.


어두움 후에는 빛이 오기 마련이다. 

그 빛은 지나간 어두움으로 인해 더욱 밝은 빛이 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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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친구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근 길... 하루를 마감하며 우린 종종 통화하곤 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불쑥 묻는다.


집에 안 가냐?
방금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수원에서 강연이 늦게 끝나서 이제 막 들어왔어.

이번 주에 베트남엔 안 가냐? 장사가 안 된다.
야! 하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와서 전화를 했더니 내가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에는 장사가 참 잘 되었다며 다시 베트남 떠나라고 말했었다. 그 때도 마구 웃었는데 이 녀석이 오늘 나를 또 웃긴다. 슬쩍 덧붙이는 그 녀석의 멘트에 나.. 쓰러진다.

올 여름 휴가는 베트남으로 갔다 오지.

이 녀석, 오늘 하루 종일 장사는 안 하고 개그 연구만 했나 보다. 웃다가 어찌하다보니 얘기가 배수경 선생님 이야기로 흘렀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아 글도 못 쓰고 있다. 전해드지리 못한 편지는 여전히 내 책상위에 놓여 있고, 그것을 보는 순간 살짝 울컥해지려는 찰나, 이 놈의 멘트...

이제 그만 잊어라. 안 그러면 너까지 죽을지도 모르잖아.
너 죽으면 안 된다. 그러면 나까지 죽고...
내가 죽으면 OO(자기 와이프)이도 죽고... 그럼 우리 모두 끝이다.


나 또 미치는 줄 알았다. 웃겼다. 무지 웃었다. 정말 나까지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우리의 감정적 교감과 친밀함이 뜬금없는 유머를 무례함에서 건져 주었고
그 녀석은 나의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주었다. 슬펐지만 행복했다.

우리는 서로의 하루가 마무리되어가는 즈음에 전화로 만나 감정을 나누었고 몇 가지 일상의 일들을 얘기했다. 그리워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고 슬픈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음을 또 한 번 느끼게 된다. 슬픔과 행복을 동시에 느끼지는 않지만 하루라는 시간의 그릇 안을 들여다보면 슬픔과 함께 행복이 있을 수 있다. 슬픔의 크기가 크다면 시간의 그릇도 더욱 커져야 할 테지만 말이다.

친구야... 나 이렇게 산다. 너로 인해 슬픔과 그리움도 이겨내면서 말야.
너에게 음악 한 곡 실어 보낸다. 'Only Love'라는 제목이 내 마음이다. 호호.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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