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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에 해당되는 글 3건


1.
오랫동안 양준혁 선수를 좋아해 왔다. 그가 삼성에서 LG로 이적당할 때 열받았고, 그가 신기록을 세울 때마다 기뻐했다. 새로운 기록을 이어가기를 염원했고 그가 은퇴할 때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가 없는 프로야구가 아쉽다. 그리고 그립다. 야구장에서 빠라빠빠빰 위풍당당, 빠라빠빠빰 양준혁! 을 신나게 외쳐대던 때가.


왠지 양준혁 선수를 만나면 그도 나를 반가워할 것 것만 같다. 물론 그는 나를 모른다. (놀랍게도 그는 내가 다녔던 회사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난 외근 중이었던가 퇴사한 이후였던가 그랬다). 어쩌다 나는 그가 나를 반가워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걸까? 연예인이 마치 지인처럼 느껴지는 이 느낌 말이다. 
 


2.

알랭 드 보통이 쓴 『여행의 기술』, 『불안』,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등을 읽고 그의 팬이 되었다. 글짓는 실력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작가라고 생각했다. 나는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찰스 핸디, 말콤 글래드웰을 아주 좋아한다. 아! 그들처럼 쓰고 싶다. 물론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알랭 드 보통은 프랑스어로 쓰는 작가 아니냐고 질문할 분이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랬다. 그는 영어로 글을 쓴다. 그것도 아주 멋진 문장을 써 낸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는 스위스 취리히 출신이고 지금은 런던에서 거주하는 작가다. 나는 왜 그가 프랑스어로 글을 쓴다고 착각했을까?

3. 
저 훌륭한 작가들과 비슷하게라도 글을 쓰려면, 한 달에 백여 권의 책을 훑는다는 알랭 드 보통처럼 책을 읽거나 말콤 글래드웰처럼 치밀하게 조사하고 탐구하거나 찰스 핸디처럼 나의 삶을 들여다보며 통찰력을 키워내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나는 왜 대가를 치를 생각은 하지 않고 꿈만 꾸는 걸까?


"우리는 어둠 없는 빛을 원하며 겨울의 고난 없이 봄의 영광을 원한다. 그런 파우스트적인 거래는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지 못한다." 파커 파머의 말에 깊이 감동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파우스트처럼 굴고 있다. 왜 나는, 오늘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일이면 왠지 뭔가 이루질 거라고 착각하고 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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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그는 칼로 치듯이 글을 쓴다. 독자의 내면 깊숙한 욕망으로 단박에 다가선다. 욕망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단칼에 베어내면서.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나에게는 순수한 욕망만이 남는다. 나를 둘러싼 허위들은 모두 사라진다. 욕망을 들고, 삶으로 뛰어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삶의 도약을 경험한다."

                                                                        - 스승의 날을 기리 .



 

삶을 바꾸어 놓은 책들이 있다. 그런 중의 하나인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일부를 5 초에 다시 읽었다. 어린이날에 7 Habits 워크숍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븐 코비의 제안은 통합적이었고, 깊었다. 통합적이라 함은, 여러 분야를 아울러 하나의 전체를 이룬 모양을 말한다. 책은 개인의 승리와 대인관계에서의 승리를 균형 있게 다룬 점에서 통합적이다. 깊이가 있다 함은, 책의 내용이 전문성과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와 매우 정확하고 유효함을 말한다. 스티븐 코비의 책이 분명 그렇다.


하지만 책은 어렵다. 대부분의 일반인 독자들이 어려워한다. 나는 스티븐 코비가 지닌 사유의 깊이와 활동을 매우 존경하지만, 글을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의 팬들에게 돌팔매질을 맞을까 염려되어, 그럼 '누가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 한다. 바로 대답할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나는 최고의 '글빨' 작가 명을 꼽아 두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글빨'이란 말은 없다. 국어사전에 '말발'이란 단어는 있다.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말을 따르게 할 수 있는 말의 힘"이란 뜻이다. 미루어 정의해 보자. '글빨' 읽는 이로 하여금 글을 이해하게 하고 따르게 하는 힘이다. '' 이라 것은 닿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뽑은 최고 글빨의 작가.

14 독서 생활을 오면서 내가 읽은 책의 작가 중에서 뽑았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라는 불필요한 말로 뜸을 들이고 싶다. 주관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독자들은 당연히 필자의 주관적 판단임을 감안하고 읽을 터인데, 무어 이리 긴장한단 말인가. 마디만 하자. 사상의 깊이나 넓이로 보면 피터 드러커 혹은 들뢰즈 20세기 최고의 학자들에 견주기는 어렵겠지만, '글빨' 하나만큼은 가히 경지에 오른 분들이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과 설득력이 뛰어난 3+1분을 소개한다. ("에이! 내가 아는 사람들이잖아"하실 것이다. 이름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책을 읽고 핵심 내용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느냐가 중요하다.) , 문학 작가는 제외로 했다. 그들은 정말 글쟁이 분들이니까.


말콤 글래드웰.

그의 책은 완성도가 높고, 내용은 흡입력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나의 주장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가 매우 알기 때문이다. 귀신 같이 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찾아내어 주장에 연결하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은 천재적이다. 그 비결이 궁금하고 탐날 지경이다. 그는 이런 식이다. A 이야기, B 이야기, C 이야기를 한다. 각각의 사례는 자체만으로도 재밌는 읽을거리다. 챕터가 마무리되어 무렵, A B C 하나가 물줄기가 되어 독자에게 시원한 교훈을 던져 준다. 독자는 설득 당하면서도 주장의 명료함에 유쾌해진다. 듣자하니, 말콤 글래드웰은 프리젠테이션 능력도 탁월하다더라. 난 『아웃라이어』를 정말 재밌게 읽었다.


찰스 핸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지혜와 실용적인 교훈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능력을 가졌다. 책 곳곳에서 만날 있는 저자의 이야기는 웃음과 교훈, 감동을 전해 준다. 그것이 책의 내용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의 글은 진솔하기에 편안하게 읽히고, 지혜와 여유를 지녔기에 안정감을 준다. 재치 넘치는 유머가 곁들여져 있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주장이 단정적이지 않고, 주제를 아우르는 사유가 깊고 넓어서 좋다. 이런 장점이 드러난 책은 『포트폴리오 인생』이다. ! 찰스 핸디처럼 살고 싶다. 찰스 핸디처럼 쓰고 싶다.


알랭 드 보통.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다. 꼼꼼하고 정교한 묘사를 가능케 하는 그의 감각은 동물에 가까운 느낌이다. (개의 후각과 청각 능력은 인간의 100 이상이다.) 알랭 보통은 사람과 사물, 주변을 관찰하는 눈을 따로 하나 가진 듯하다. 예비 작가의 기를 죽이는 상상력과 절묘한 표현력에 감탄한 적이 번이 아니다. 이를 테면 『불안』에 나오는, "우리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 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문장이 그랬다. 그의 글쓰기 원천은 인문 고전이다. 탁월한 고전 비평가라 있을 만큼, 그가 읽는 책의 수준은 높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매튜 아놀드의 『교양과 무질서』 등에서 끄집어 내용들로 새로운 책을 창조해 낸다. 오래된 것으로 만들어낸 책인데도, 실용성과 현대적 센스가 가득한 글이라니!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와 『불안』을 적극 추천한다.


그리고 구본형.

나는 구본형의 글을 빨리 읽지 못한다. 장을 읽다가 책장을 덮는다. 가슴이 벅차 올라 삶의 현장으로 뛰어들 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본형의 글에는 읽는 이의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너무나 절실하여, 책을 내려놓고 행동하게 만드는 그런 말이다. 나태함, 무기력, 두려움이 가득하여 가슴이 답답할 , 나는 구본형의 책을 읽는다. 안에 가득했던 것들이 뜨거운 열정, 절실한 욕망, 힘찬 용기로 대체되면서, 가슴이 벅차 오른다. 그는 칼로 치듯이 글을 쓴다. 독자의 내면 깊숙한 욕망으로 단박에 다가선다. 욕망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단칼에 베어내면서.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나에게는 순수한 욕망만이 남는다. 나를 둘러싼 허위들은 모두 사라진다. 욕망을 들고, 삶으로 뛰어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삶의 도약을 경험한다.

Posted by 보보

Y는 파리 여행을 꿈꾼다. 오래 전부터 가졌던 그녀의 꿈이었다. 낭만과 자유를 좋아하는 그녀는 파리의 이미지와 퍽이나 어울렸다. 나는 그녀가 어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날아가기를 바랐다. 파리는 그녀의 로망이었다. 행복할 수 있고, 낭만을 만끽할 수 있는. 허나 수년이 지나도 그녀는 파리 여행을 구체적으로 준비한 적은 없다. 그저 마음속에 동경 하나를 품고 있을 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을 바라보듯 그렇게 자신의 꿈을 바라보고 있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파리지앵으로 살고픈 Y에게 몇 명의 파리지앵이 했던 이야기를 나눈다. 빅토르 위고는 19세기의 파리지앵이었다. 그는 자신의 연작시집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전 그 어느 때보다 동양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동양은 일반인이 깊이 몰두하는 주제가 되었으며, 이 책의 저자는 그 점에 경의를 표해왔다.”

파리는 Y에게 설렘과 흥분을 안겨다 주는 이국적인 나라다. 반면, 파리지앵에게는 동양이 이국적인 나라다. 적어도 19세기에는 그랬다.


“19세기 전반에 이국적이라는 말은 중동(中東)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p.98)


동양을 갈망했던 이는 빅토르 위고만이 아니다. 소설 『보봐리 부인』으로 유명한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자신의 첫 번째 소설에 이렇게 썼다. “타오르는 태양, 파란 하늘, 황금 첨탑…… 모래를 헤치고 가는 대상(隊商)의 동양이여! 동양이여!…… 아시아 여자들의 햇볕에 그을린 올리브빛 피부여!”
플로베르에게 “행복이라는 말은 동양이라는 말과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1849년 10월 말 파리를 떠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던 것은 그에게는 당연한 사건이었다.
파리지앵 플로베르는 파리를 떠났다. 그 곳은 Y가 꿈꾸는 곳이었다.

Y가 파리지앵으로 태어났다면, 그녀는 파리지앵으로 살았을까? 동양으로의 여행을 꿈꾸었을까? 답변은 그녀가 할 일이다. 혹은 21세기를 살아가는 몇 명의 파리지앵의 이야기를 참고할 일이다. 동양을 갈망하는 서양과 서양을 갈망하는 동양, 그 사이에서 낯선 곳으로의 모험을 갈망하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는 이국적인 곳을 갈망한다. 두려워하면서도 그 곳으로의 모험(혹은 여행)을 꿈꾼다. 왜 그러한가? 알랭 드 보통의 두 문장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외국의 요소들이 새롭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이나 신조에 좀 더 충실하게 들어맞기 때문에 귀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외국에서 이국적이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가 고향에서 갈망했으나 얻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p.109


Y의 삶에 잠깐 간섭해 본다. 그녀가 파리에 가야 하는가? 이것은 중요한 문제다. 그녀의 꿈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그 꿈이 자기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느라 지나치게 고민하지 않기를 바란다. 삶으로 실험해 보아야 한다. 선택의 실수를 하더라도 괜찮다. 인류사는 실수로 인해 창조된 위대한 사건이 수두룩하다. 또한, 자기 머리로 판단한 것이라면 그것이 실수라고 해도 배움과 깨달음이 있다.
그리고 “파리에 가야하는가?”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도 있다. “왜 파리에 가고 싶어 하느냐?”는 질문이다. 답변을 찾는 과정 속에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신의 갈망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묻기를 바란다. 이 갈망을 채우기 위한 시도를 이곳에서 해야 하는지, 저곳 파리에서 해야 하는지를.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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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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