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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야속합니다. 어떤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야 자기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하니까요. 젊음 또한 야속합니다. 훌쩍 지나가고 나서야 그것이 참으로 소중했음을 절감하니까요.


내 친구 B는 좋은 사람입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친한 벗에게 이것 저것 퍼주며 즐거워하는 친구입니다. 그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2년 전 이맘 때입니다.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불행은 끝이 아니었죠. 이듬 해 봄, 어머니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는 건강이 많이 호전되셨습니다. 두 달 전에는 아버님, B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보양식을 먹으러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의 병환은 점점 더 깊어지셨습니다. 석달 전 쯤 뵈었는데, 아들인 내 친구까지도 겨우 알아보실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아들도, 남편도 몰라보신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다시 회복이 힘들 것이라 예상하는 듯 합니다. 얼마 전, B를 만나 식사를 했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런 말하면 아버지가 안 좋아하시지만, 나의 10년을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어."

다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내비친 겁니다. 그는 지난 해, 수술 후 잠시 회복하신 어머니께서 집에 계셨을 때, 더 많이 대화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것을 무척이나 후회했습니다.

몇 주 동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시는 엄마를 쳐다보는 B의 심경은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나도 어머니와 갑작스럽게 이별했으니까요. 교통사고로 임종마저 지키지 못한 나의 소원은 단 하루 만이라도 어머니와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B의 말을 들으니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라는 참으로 소중한 사람의 존재를 절감했습니다. 특히나 그 소중함을 깨닫는 시기가 너무 늦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습니다. B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제 어머니를 향한 네 마음을 잘 이해할 것 같아."

우리의 소원은 이것입니다. '지금의 마음으로 다시 어머니와 단 하루만이라도 함께 지낼 수 있다면...' 애석한 일입니다. 만약 B의 어머님이 다시 회복하시지 못한다면, 그도 나도 소원을 이루지 못할 테니까요. 

'어머니께 효를 다하세요"라는 말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말은 전달되겠지만, 우리의 마음까지 전달할 수가 없음은 알고 있습니다. 헤어지고 나서야 혹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느낄 즈음에야 깨달을 테니까요.

제가 효자란 말은 아닙니다. 저와 B 역시나 헤어짐의 경험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니까요. 만약 나의 어머니가 살아계시다면 나도 여전히 효를 다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속절없이 흘러가기도 하고, 쏜살같이 지나가기도 합니다. 시간은 외로워서인지 홀로 가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것들과 동행하기도 합니다. 이미 나의 부모님은 시간과 함께 떠나셨고, 나의 많은 세월들도 시간과 함께 흘러갔습니다.

니체의 가설 '영원회귀'처럼, 우리가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아마도 마틴 루터가 했을 법한 말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요? 아마도 두 가지 생각을 균형있게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일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정성을 기울이고, 관계는 내일 죽을 것처럼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일까요? 어려운 문제지만, 이렇게 말할 순 있습니다. 지금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하는 있는 사람이나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그런 일들은 언젠가 과거지사가 될 것이고, 그 때는 관심을 주기에 너무 늦을 테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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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어머니는 바쁘셨다.
학교 어머니회 일원으로서 학교 행사를 돕거나
교회 집사님으로서 결혼식 피로연 준비 등의 교회 행사에 참여하거나
회사에서 긴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와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바쁘셨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가 생활비를 집으로 가져다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고단하셨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200원 짜리 '스콜'이라는 음료를 배달하셨다.
판자촌의 골목엔 비탈길이 있었고, 우리가 살던 허름한 집의 대문은 작았다.
100cc 짜리 오토바이를 대문 밖으로 내었다가 들이는 일은 힘겨웠을 것이다. 
지아비는 심리적 안정을 주지 못했고, 생활고는 어머니께 육체적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나는 가난이 싫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난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니다.
나는 지금도 가난한 편이다. 주머니는 늘 가볍고 저축액은 전혀 없다. 
자발적 가난이기에 서글프지 않다. 오히려 만족하고 행복하다. 
나는 필요한 만큼 벌고, 번 돈이 조금 있으면 여행을 떠나며 놀거나 일 대신 공부를 한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하면 된다.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하고 있다.

가난이 싫다고 한 것은 가난이 가져오는 상황이 싫다는 의미다. 
어머니에 대한 내 기억이 풍성하지 않은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기에 생활고에 시달렸다. 
생활고는 어머니를 바쁨으로 몰아갔다. 
아침에 나가셔서 저녁에 돌아오셨다. 
그런 매일의 바쁨이 어머니에게 육체적 고단함을 주었으리라.

일요일이 되면, 어머니는 잠시 누워 있곤 하셨다. 피곤을 그렇게 달래셨을 것이다.
참 아쉽게도 나는 어머니와 충분히 대화할 시간을 가지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난이 준 상황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교에서 돌아 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땐 내가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당시가 서글프지도 슬프지도 않다. 
그것은 내 생활이었고, 누구나 자기 삶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다행한 것은, 상황은 인간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만
인간은 항상 상황보다 더 큰 존재라는 사실이다. 

어머니는 그런 상황에서도 나에게 주어야 할 것들을 주셨다. 
아쉽게도, 석아! 사랑한다, 라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지만
퇴근하실 때, 닭발이나 순대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오셨다. 
초등학생 1학년 때였나? 내 생일날, 우유와 100원짜리 런치빵을 사 주셨던 기억도 있다.
소박한 생일선물이었지만 그 런치빵 그리고 순대와 닭발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퇴근하셔서 
저녁을 짓는 어머니께 내 이야기를 들려 드리는 것은 즐거움이었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엄마 피곤해" 라는 말로 이야기를 끊지 않으셨다. 
방과 부엌 사이에 난 작은 문을 통해 나는 종알종알거리며
나는 하루 동안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어머니는 잘 들어 주셨다. 
이렇게 짧은 시간을 통해서도 어머니와의 우정이 생겨난 것은 사랑의 힘일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이 가장 진하게 느껴지는 사건은 내가 '사랑의 꽃다발'이라 부르는 일이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집 근처의 영수 학원에 다녔다.
나는 예쁜 수학 선생님을 좋아했고, 스승의 날에 선물을 해 드리고 싶었다.
어머니께 꽃을 사 달라고 졸랐고, 당신께서는 알겠다고 하셨다.
기억에 의하면, 엄마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 아니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다.
오셔야 할 시각에 오지 못하여 나는 울상을 짓고 학원에 갔다.
엄마는 오토바이를 타고 학원에 오셨다. 꽃다발을 들고서.

기억이 맞다면, 나는 숨어 버렸다. 어머니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걸어 오신 것도 아니고, 일하시던 모습으로. 그것도 오토바이를 타시고 오셨던 것이다.
내가 수학 선생님을 그저 치기어린 수줍음으로 좋아했다면,
어머니의 나를 향한 사랑은 '꽃다발' 처럼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어머니 당신께, 꽃다발 주인공은 수학 선생님이 아니라 나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불운하게도, 어머니와의 우정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던 봄날에 교통사고로 내 곁을 떠나셨다. 
오토바이를 타고 학원에 오셨던 것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하늘로 가셨다.
이것만큼은 애석하고 슬프고 가끔씩은 억울하기도 하다. 
슬플 때 기대어 울 가슴이 없다는 사실이
기쁜 일이 있어도 그 소식을 나눌 분이 계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한 때는 어머니를 어찌할 수 없는 가난 속으로 밀어넣은
아버지의 무책임을 미워하기도 했지만, 원망은 지혜롭지 못한 일임을 깨달았다.
아주 가끔은 어머니가 무척 그리워 보고 싶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는 실현되지 않을 일이다.
어머니의 부재는 내 인생이다. 이것을 거부할 순 없다. 거부하는 순간, 
어두움 하나를 갖게 되는 것이고,
민감한 대화 주제 하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빛이 그렇듯이 어두움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나의 어두움과 관련된 주제를 꺼내면
나는 
내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편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인생이 아니었다. 나는 상황을 뛰어넘고 싶었고, 성숙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두움을 걷어내고,
나의 인생 전부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인생 전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는 동시에 과거를 온전히 수용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나는 상실의 경험까지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의 내 인생을 받아들이기 노력했다.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혹은 받아들인 결과로 몇 가지를 깨달았다. 

- 아무리 슬프고 부정적인 사건도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다. 
- 우리는 자신의 성격, 지니고 있는 질병, 잊고 싶은 과거보다 더 큰 존재이다.
-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이
만들어가야 할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하여 잘 알게 되면, 나도 '상처 받은 치유자'가 될 수 있다.

어머니와의 이별로 인해 나의 인생은 큰 변화를 맞이했고
변화의 크기만큼 나는 인생에서 동년배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보다 내가 낫다고 말할 순 없다. 그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나도 사랑 없이 자란 것은 아니다. 그저 어머니를 둔 이들이 부러울 뿐이다.
어머니가 떠나신 후, 나는 절망과 슬픔에서 적응과 익숙함을 거쳐
지금은 망각과 그리움을 시계추처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
내게는 부담감도 편안함도 느껴지지 않는 참으로 낯선 단어다.
이 말을 들으신 내 어머니는 서운해 하실까? 대견해 하실까? 궁금한 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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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나와 함께한 것은 꿈을 이룬 자만이 전할 수 있는 류의 잔잔함 감동과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한 교훈, 그리고 즐거운 유머였다. 저자는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대학교수다. 그는 위인이 아니었다. 젊은 날의 그는 고집이 세고 예절이라고 모르는 독불장군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생은 그에게 세월과 함께 연륜과 지혜를 가져다주었고 그 연륜과 지혜는 갑작스런 죽음 통보로 인해 더욱 깊어졌다. 저자는 세상과 헤어지기 전, 가족, 동료, 제자들과 작별할 수 있는 수개월의 시간을 아름답고 재.미.있.게. 보냈다. 나는 분명 '아름답고 재미있게' 라는 표현을 썼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저자의 삶을 공감하지 못했노라고 비판하지 말기를. 이 책에는 정말 유머와 아름다움이 있다. 시한부 인생이 아닌 내가 보기엔 참 놀라운 일이다. 어쩌면, 조금 더 긴 '시한부 인생'을 불멸성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내게 의미 있는 독서 여행을 선사했다. 적어도 다섯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저자의 불완전함이다. 이것은 내게 자유를 주었다. 그는 진솔하게 자신의 부족하고 연약한 점을 드러내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용기가 있다면 보다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부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천천히 알아가고 있다. (착각일수도 있다. 전혀 모르고 있는 대목도 있을 테니 ^^) 누군가가 나를 진지하게 비판할 때, 그 비판은 어느 정도 정당하며 그것은 세상에서 나 혼자만 아주 나쁜 놈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훌륭한 점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이 형편없는 부분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절절히 인정할 때 나는 자유를 만끽한다. 저자에게서 자신의 전부를 받아들인 자의 자유를 보았다.

삶의 유쾌함이 그 두 번째다. 이것은 내게 유머를 주었다. 나는 의미도 없고 그다지 웃기지도 않는 유머를 자주 한다. 이런 유머는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웃음을 준다. 나는 나를 웃기려고 유머를 하는 셈이다. 누군가를 웃겨 보려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웃긴 얘기를 찾아본 적은 없었다. 다만 순간마다 떠오르는 유머를 던지며 즐거워한다. 문제는 나만 웃는다는 것이지만, 썰렁함을 즐기는 나를 보며 사람들도 따라 웃어 준다.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웃는... ^^
강의를 하다가도 자주 유머가 떠오르는데, 이 때는 참아야 한다.  대부분은 그것이 나만을 웃기는 유머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씩은 내뱉는다. 나는 즐거워서 웃고, 사람들은 썰렁해서 비명을 지르며 웃는다. 저자는 이런 나보다 재밌는 사람이다. 책은 교훈을 전하며 웃음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웠다. 나는 7년 전 직장 동료가 한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때로는 유쾌함이 진지함을 능가한다." 7년 동안 이 말을 품고 살아보니 조금 수정하게 되었다. "많은 경우, 유쾌함은 진지함을 능가한다."

세 번째는 이 책의 유익이다. 책은 삶과 죽음에 관하여 유익한 조언을 던져 준다. 옮긴이의 말처럼 저자는 죽음을 극복한 영웅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우리들 인생의 교사다. 책에는 지혜롭고 재미있게 사는 교훈들로 풍성하다. 곱씹고 싶은 문장들도 더러 있었다. 나에게 의미가 되어 준 몇 가지 문장을 꼽아본다.


-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다루기 어려운 테크놀로지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가르칠 수 있을까.(p.203)
- "아주 간단해. 언제라도 좋으니까 금요일 밤 열시에 내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봐. 그럼 비결을 말해주지."(p.213)
- 정직함은 도덕적으로만 옳은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기도 한 것이다.(p.223)
- 아버지는 육체노동은 어떤 사람에게도 비천한 일이 아니라고 믿었다.(p.232)
- 만약 당신이 두 문화 사이에서 당신만의 자리를 찾아낸다면, 두 세계의 좋은 점들 전부를 당신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p.234)


넷째는 개인적인 추억이다. 책이 내게 안겨다 준 또 하나의 의미는 사별한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다. 나는 저자가 어떤 측면에서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도 자신이 행운의 주인공임을 인정했다. "행운이란 단어는 지금 나의 상황과는 좀 어울리지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버스에 치여 죽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행운처럼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암은 나에게 만약 내 운명이 심장마비나 교통사고였다면 불가능했을, (아내) 재이와 중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p.273)
아! 어머니는 적어도 죽음의 순간에서는 저자보다 운이 없는 분이셨다. 지독하게도 운이 없으신 분이셨다. 돌아가시는 날 아침에는 아들의 등교 인사도 제대로 받지 못하셨다. 전날 밤에는 아들의 웃는 모습이 아니라 찡그리고 불만으로 입이 튀어나온 모습을 보셔야 했다. 결정적으로 아들에게 한 마디 작별의 인사도 하지 못하신 채 이별하셔야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죽음에 관한 행운이라고는 조금도 누리지 못한 채, 대형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다.

서로에게 안겨 있던 그 순간, 재이가 무언가 내 귀에 속삭였다.
"제발 죽지 말아요."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대사였다. 하지만 그게 그녀가 한 말이었다. 나는 그저 그녀를 더 세게 안을 뿐이었다. (p.278)


저자가 아내와 보낸 이 슬픈 장면이 나는 부러웠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한 번 껴안지 못한 것이 늘 후회로 남아 있기 때문일까. 오래 전부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이 더 이상 어머니를 잊어가기 전에 어머니에 대한 기억들을 전해 듣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에 대한 보다 완성된 그림을 갖고 싶었다. 망자에 대한 추억은 각색되기 마련이다. 흔히 보다 아름다워진다. 나는 어머니를 그렇게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의 어머니에 대해 알고 싶은 게다. 이렇게 하고 싶은 까닭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왠지 내가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었을 때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의 이런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길 재촉해 주어 고마웠다.

책의 마지막 유익은 어릴 적 꿈을 진짜 이뤄낸 스토리를 보여 준 것이다. 구체적인 꿈을 가지기 시작했던 어릴 적의 이야기, 이것은 꿈의 탄생이었다. 어른이 되어 자신의 꿈이 이뤄진 이야기, 이것은 꿈의 실현이었다. 탄생부터 실현까지의 모습과 자신이 어떻게 노력했는지를 보여 주었기에 꿈에 관한 완전한 스토리다. 저자는 말한다. "마침내 나는 꿈에 당도한 것이었다. 나는 이매지너였다."

저자는 2008년도에 사망했다. 그러나 그가 전해 준 교훈과 감동, 웃음과 눈물은 나의 가슴 속에 머물러 있다. 강연 후,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의 목록에 한 권이 추가된 것에 저자에게 감사 드린다.

                                                                                                                - 2008년 7월 25일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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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계신 곳


"엄마 나 왔어요. 엄마 아들이 첫 책 들고 왔어요."
8월의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어느 날, 나는 친구 상욱과 함께 엄마 묘 앞에 섰다. 내 손에는 갓 출간된 '이희석'의 책이 들려 있었다. 엄마에게 책의 몇 구절을 읽어 드렸다. 눈물이 났다. 기뻐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얼굴은 비 오듯 흘러내린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됐다. 뙤약볕 아래서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슬픔과 기쁨이 섞인 소식을 전해 드렸다. 돌아오기 전, 한 권의 책을 비닐에 싸서 엄마 묘 앞에 고이 두었다. 어머니가 읽어보실 게다. 이 모든 것은 오래 전부터 소망해 왔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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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읽으실 책


올해 초 보았던 <해피선데이-하이파이브>에서의 채연과 그녀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딸의 노래 '둘이서'를 막힘없이 부르셨다. 빠른 박자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따라갔지만 결국 노래의 마지막 부분까지 온전히 부르셨다. 딸 채연은 처음 보는 모습이라며 눈물이 글썽해졌다. 나 역시도 처음 보는 장면이라 눈물이 글썽했다. 아니, 나는 그 때 울었다. 많이 울었다. 딸의 노래라며 얼마나 많이 흥얼거리며 따라부르셨을까. 그 어머니의 사랑이 전해져 눈물이 났던 것이다. 상욱에게 채연 어머니 얘기를 전했더니 공감해 주었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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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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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에서 한 컷


내 어머니도 살아계셨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해 주셨으리라. 책을 수십 번도 더 읽으시며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으리라. 아무도 책을 읽어주지 않더라도, 혹은 모두가 냉랭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어머니만큼은 나의 열렬한 팬이 되어주셨으리라. 망자에 대한 기억은 각색되기 마련이다. 내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분명 아름다운 것들만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리 어머니에 대한 생각의 균형점을 찾아봐도 어머니는 꽤나 훌륭하신 분이라는 결론을 만나게 된다. 기억으로 도출된 이 결론이 맞는지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 날이 올 테지. ^^ 그 날에 만날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지. 호호.

2008년 8월 5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아름답게 추억할 만한 개인사의 한 장면이 되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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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나의 일상사를 끄적여 본다. 잔잔하지만 소중한 나의 삶이다. 성찰의 시간은 늘 좋다.

#1. 방송국 인터뷰

KBS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모 교양 프로그램의 작가였고,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우리 집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에 망설였는데, 작가는 정중하면서도 친근하게 부탁을 했다. 결국 약간의 망설임 끝에 집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인터뷰 날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집안 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짧은 분량이겠지만 TV 인터뷰라는 것은 약간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런데, 다시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송 내용이 조금 바뀌게 되어 인터뷰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속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집안 정리를 했다. 기쁜 일이다.
몇 지인들에게 인터뷰 건에 대하여 아쉬운 듯 말하였지만 실제로 아쉬움은 없었다. 그들은 더 나은 프로그램을 위해 고민한 결과였을 터이고, 나로서는 인터뷰를 하면 좋은 일이고 하지 않더라도 여전히 행복한 일상이기 때문이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는 설레임이 있으니 전화 온 것이 고맙기도 하다. ^^

#2. 재능 십일조 특강

충성교회에서 2시간 30분, 4시간 이렇게 두 번의 재능 십일조 특강을 했다. 반응이 무척 좋아서 기뻤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꾼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 좋았다. 거의 하루 종일 강연한 것이지만 몸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부대 문을 나오는데 시원한 바람이 나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어찌나 그리 상쾌하고 유쾌하던지... 돈보다 귀한 의미를 얻었다는 생각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보낸 하루에 내 마음은 들떴고, 머릿 속이 맑아졌다. 참 행복한 날이었다.

#3. 더 나은 리더를 꿈꾸다

3기 와우팀원이랑 커피숍에서 4시간 동안 얘길 나눴다. 그 녀석의 고민과 조바심을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를 했고 서로의 속내를 나누었다. 와우팀의 리더로서 내가 어떤 것을 잘하고 못하는지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그 놈은 나에게 진솔한 의견을 들려 주었다. 리더로서의 나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지에 대해 꽤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참 감사한 것은, 내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그 녀석은 내가 더 나은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던져 주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4. 책 출간,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3월 말이면 출간될 줄 알았던 책이 또 연기되었다. 출판사의 불가피한 사정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4월 2일 어머니 기일에 꼭 어머니께 가서 당신의 아들의 첫 책을 보시라고 인사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음... 아쉽다.
사실 나는 늘 그리움과 함께 산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책의 출간을 세상에서 제일 기뻐해 주실 어머니... 살아계셨다면 아마도 어머니의 두 눈가가 붉어질 것이다. 그 어머니의 기뻐하시는 장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말 못할 사연을 안고 사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치유하였다면 상처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내 삶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고 나를 이루는 실체일 뿐이다. 나는 그리움이라는 감정으로 일상을 그르치지는 않는다. 사건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힌 듯 하다.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것도 나의 삶이다. 내 삶에 일어난 사건은 받아들이고 그 사건으로 인해 일어나는 감정들은 잘 달래주면 된다. 감정을 최소화시키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자주 울었고 울음을 통해 회복으로 나아갔다.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절대 긍정이 아니다. 나는 인정하기 싫은 내 삶의 모든 부분을 받아들였다.
슬픔 속에 잠기는 것과 무시하는 것 사이의 건강한 중간지대를 발견했다. 그 중간지대에서는 슬픔과 함께 춤출 수도 있다. 누구나 가슴 속에 아픔 한 조각, 눈망울 속에 눈물 한 방울씩은 있으리라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실체로 인정할 때 그는 훌쩍 성장할 것이다. 나는 그랬다.

#5. 미친듯이 드라마 <이산>을 보다

16일부터 25일까지 <이산> 5회부터 47회까지 보았다. 한 편을 보고 나면 내 입에서는 "미치겠다"라는 말이 새어 나온다. 딱 한 편만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다음 회를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도록 끝나기 때문이다. 메가 TV는 다음 회를 바로 이어서 보기에 딱 좋다. 그러면서 밤을 꼬박 새워 아침 6시 30분까지 본 적도 이틀이나 된다. 10시 강연을 하러 갔다가 참가자 분이 "요즘 피로하신가 봐요? 눈이 빨깨요"라고 하신다. 강연을 시작하니 몸이 팔팔해져서 다행이었지만 분명 참가자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이산>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누군가를 100% 신뢰한다는 것의 의미를 삶으로 보여 준 이산, 효가 뛰어난 것이 인재의 최고 덕목 중 하나라는 사실, 부하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신뢰하여 자신의 충신으로 만드는 이산의 리더십, 권세 앞에 눈이 멀게 되는 인간의 본성, 중상과 모략에도 숭고함을 잃지 않는 성송연의 성품 등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이산>을 미친듯이 봤다는 얘길 친구에게 했더니 "넌 자주 미치더라. 난 그게 부러워" 그런다. 그래, 나도 의미 있는 일에 미치고 싶다.

#6. 재정관리에 관심을 갖다

재정관리에 취약했다. 사실 관심이 없었다. 그간 총 6개의 보험에 가입했었고 이는 모두 쳬계적인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하나 들라고 부탁하면 '그래... 하나 들자'라는 식으로 가입했다. 이번 달에 두 분의 재무설계사로부터 나의 재정 컨설팅을 받았다. 두 분은 비슷한 진단을 해 주셨고, 나는 그들의 처방에 따랐다. 5개의 보험을 해지해야 하는 쓴 처방이었다. 손실액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과거의 손실은 잊어야 했다. 내일의 유익을 생각하며 꿋꿋이 실행했다. 2개의 보험으로 갈아탔다. 쉽지 않았지만 정리가 필요한 일을 해치우고 나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1년 6개월 전에도 비슷한 진단을 받았지만 그 때에는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들의 말에 공감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지금으로서는 톡톡한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다행이기도 한 반면 그 때 실행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했다. 결국 성과는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 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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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선데이 <하이파이브>를 보았다. 유쾌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5명 여인들의 직업체험 22탄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어머니들에게 20년 전의 젊은 모습을 되찾아 드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5명의 여인들이 어머니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들은 어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을 만지기도 하고 거칠어진 피부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딸의 화장을 받은 어머니들은 무척이나 고우셨다. 아름답고 젊으셨다.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이후, 딸들은 모두 어머니 전상서를 써서 그네들의 어머니를 모셔 두고 편지를 읽어 드렸다.

닳아서 내려 앉은 엄마의 잇몸을 보고 병원 구석에서 많이 울었다는 박경림,
딸에게 "우리 잘난 딸 고맙다. 내가 너 힘 입어 열심히 살께"라고 말씀하시는 이해선 여사님.(박경림 어머니)

"도전해 봐. 할 수 있어"라고 늘 딸에게 용기를 주셨던 박종순 여사님(현영 어머니).
그 어머니는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며 딸에게 슈퍼모델 원서를 내미시고
대회선발전에서 초라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잃은 딸에게
"네가 제일 예쁘다. 아무것도 아냐 재네. 내 느낌엔 네가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아! 어머니~

조혜련씨의 편지글은 짧았다.
방송 컨셉 때문이긴 하지만, 너무 빨리 편지가 끝나서 서운하실 수도 있을 어머니는
"얜 시간이 없어. 어디 한 번 안아나 보자." 하며 딸을 안아 주시는 최복순 여사님(조혜련씨 어머니)
하늘 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영상 편지를 보내는 조혜련씨의 모습을 보면서는 나도 눈물이 났다.

채연과 그의 어머니는 또 한 번의 찡한 장면을 보여 주었다.
현영이 편지 글을 읽을 때, 채연과 장행순 여사님(채연 어머니)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두 사람은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주고 받는 것 같았다. 난 이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서로 아무 생각없이 쳐다보았을 수도 있고,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눈빛으로 주고 받았을 수도 있다. 생각없이 눈이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으며, 눈빛 만으로도 마음을 주고 받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하이하이프>를 보며 점심 식사를 준비했다. 채연의 순서가 왔고 편지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엄마...
새벽이든 몇시든 간에 매일 아침 밥상 두둑이 차려 주신 덕분에 하루 종일 든든하게 일해요.
안 먹겠다고 툴툴거려도 한 숟갈이라도 먹이려는 모습에 억지로라도 꼭 먹고 가요."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오래오래 사시라고, 그래야 왕따시만큼 효도할 수 있다고 말하는 채연과
그 딸의 모습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밥을 차리다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나 역시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서였다. 밥상을 보니 여느 때보다 찬이 없었다.
(사실, 최소한 베이컨과 계란후라이, 김치, 김 정도는 있는 편인데)
계란과 베이컨이 떨어져서 그냥 김치와 김으로 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잘 없다.)

그런데, 문득 이 모습을 보면 엄마가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았다.
엄마가 살아계시다면, 결코 아들의 밥상을 이렇게 차려주시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이라도 자식들의 건강을 위해 식사를 챙겨 주시는 어머니 아닌가!

나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장을 보러 갔다. 어머니라면 아들 희석에게 어떤 반찬을 만들어 주실까, 를 생각하며 음식을 샀다. 여느 때 같으면 간단하게 데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샀을 텐데, 오늘은 아들에게 손수 만들어 주시고 싶은 어머니의 심정으로 골랐다. 그랬더니, 바로 먹을 수 있는 맛밤보다는 직접 삶아야 하는 생밤을 고르게 되고 요리하기가 귀찮아 사지 않던 쇠고기도 사게 되었다. 그저께 생일 때 그냥 넘어던 미역국도 끓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계란도 비싸서 잘 사지 않던 최고급 란으로 고르고, 저녁에 먹을 항정살과 상추도 샀다. 밑반찬도 조금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군고구마를 좋아하던 나에게 고구마를 구워 주고 싶어하실 엄마의 마음으로 고구마도 샀다. 2, 3만원치의 장만 보던 내가 오늘은 5만원 가까이나 지출했다.

집으로 돌아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였다. 쇠고기를 살짝 데쳐 미역국에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맞추려는데 유통기한이 지나 굵은 소금으로 대체했다. (절대 따라하지 마시라. 일명 '마음대로 조리법'이니까.) 쇠고기를 살짝 구워 맛소금과 함께 준비하고 구입한 밑반찬도 곁들였다.
이틀 지났지만 그럴 듯한 생일상이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장을 보았으니 엄마가 차려 준 상이나 다름없다. 평소의 내 생각이라면 생일상이라도 대충 때웠을 터였고 장을 보면서도 주머니를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으로 장을 보니 가장 먼저 나의 건강을 생각하게 되었다. 가슴이 절절한 체험이었다. 고구마를 집어 들며 눈물이 핑 돌던 체험이었으니.

<하이파이브> 덕분에 든든하게 식사하고 이 글을 쓴다. 어머니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내 삶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특별한 깨달음이 드는 체험이었다. 먹었던 것들을 먹지 않고, 안 먹었던 것을 먹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다. 했던 일들을 하지 않고,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게 만드는 삶을 변화시킬 만한 사건이었다.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어머니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돌본다면 훨씬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모든 자녀들이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사랑한다면 훨씬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어머니가 차려 준 점심상... 참, 절절하면서도 애틋한 기분이 드는 휴일날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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