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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1/20 이모네 고깃집 (16)
  2. 2009/04/12 엄마 (14)
  3. 2008/02/06 [어머니전상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11)

지난 월요일, 친구와 함께 마포에 있는 이모네 가게로 갔다.
이모는 고깃집을 하는데, 친구와 함께 찾아가기는 처음이다.
2008년 가을, 외출나온 동생(군 복무중)이랑 함께 이모네서 고기를 먹었고,
2009년 겨울, 이모네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것이 최근 일이다.
이리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내가 자주 찾아뵙는 것은 아님을 알리는 게다.
그런데도, 묘하게도 나는 이모가 무척 편하고 좋다. ^^

'이모가 편안하고 좋은 것은 당연하지. 엄마랑 다른 없는 사람이 이모인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엄마의 친자매가 아니라 사촌 여동생이고, 이모와는 오랫동안 서로 떨어져 살았기에
최근에 저렇게 두 번 뵌 것이 이모와 나와의 거의 첫 만남이기 때문이다. 
'거의'라고 한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결혼식 등 가족 잔치 때에 
많은 이모, 삼촌들과 함께 만났던 기억은 있기 때문이다. 

우정은 반에서 같이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는 쌓일 리가 없고,
같이 어울려 다니며 함께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함께 떠들어야 쌓이는 법이다.
이것은 인생사도 마찬가지여서 잔치 때 함께 결혼을 축하는 것보다는
이모와 함께 밥 한 번 먹는 것, 이야기 한 마디 나누는 것에서 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친구와 만나 이모네 가게로 들어가기 전, 지갑을 들여다 보고 친구에게 말했다.
"종준아, 잠깐만! 저기 편의점에 잠깐 다녀오자. 현금을 좀 찾아야겠다.
카드 결재를 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아. 안 받으실 것이 뻔하거든."
나는 모처럼만에 찾아 뵈었으니, 고깃값을 꼭 내고 싶었다.
그래서 현금으로 책에 끼워서 드리든, 이모 주머니에 넣고 달아나든지 할 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모의 입장을 전혀 고려치 못한 그저 내 생각이었다.)

고기는 퍽이나 맛있었다. 목살의 두께는 내가 먹은 고기 중 최고였고, (친구도 동의했다. ^^)
안창살의 부드러운 맛은 캬,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절대, 소주 먹고 난 뒤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모는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사랑을 내놓으셨다.
"어, 석이 왔어? 뭐 먹을래? 일단 쇠고기부터 순서대로 내줄께. 많이 먹어라."
"네. 이모. 그럼 안창살부터 먹을께요."

안창살 뿐 아니라, 곧이어 목살 2인분이 나왔고, 찌개와 계란찜 그리고 공깃밥 두 개가 나왔다.
마지막은 오리구일로 할래?, 다시 이모의 권유에 우리는 오리구이까지 먹었다.
배만 부른 게 아니라, 마음이 어찌나 포근하고 따뜻해는지... 정말 엄마 같았다.

2시간 동안,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사이다와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일어났다.
"이모, 나 이모에게 부탁 하나 해도 돼요? 이모 들어주실거죠?"
당황하실 만한데, "그래. 말해. 이모가 들어줄께" 하신다.
"들어준다 하셨으니까 말할께요. 오늘 고깃값 계산하고 가려구요. 그래야 다음에 또 오지요."

혼만 났다. 그러는 거 아니라고. 이모가 먹이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왜 그러냐고.
그 말을 듣는데, 아차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싶었다. 서운하실 것도 같았다.
입장을 바꿔, 내 누이의 아들이 찾아왔을 때의 반가움을 상상해 보니, 내 생각이 짧았다.
돈은 다시 내 주머니로 집어넣어야 했고, 준비한 두 권의 책을 전해 드리고 나왔다.
이모의 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하하, 사실 내 책이다. 호호. (이거 부끄럽구만.)

다음에는 선물을 하나 드리고 싶다. 내가 이렇게 고마워함을 이모에게 전하고 싶다.
거리만 가깝다면(선릉에서 마포구청역까지는 쬐금 멀다) 자주 갈 텐데 그게 어렵다.
자주 가야 이모도 포기하고(^^) 고깃값을 계산하도록 허락하실 테니 말이다.
친구도, 나도 이모의 사랑에 기분 좋은 식사와 대화 시간을 즐겼다.

생각해 보면 이모의 언니들도 참 그렇게 나를 따뜻히 맞아준다. (그 집안, 뭔가 있나 보다.)
모두 엄마의 사촌 여동생들인데, 이모들은 만나고 나면 엄마가 떠오르곤 한다.
'엄마, 잘 계시죠? 엄마 생각하면 잘 살아야 하는데, 좀 더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부끄럽네요. 그래서, 이렇게 엄마 동생들을 만나게 하시나 봐요.'

플래너를 뒤적여 본다. 또 언제 한 번 갈까, 날짜를 꼽아보기 위해.
선물은 뭐가 좋을까? 일단 손편지 하나는 꼭 써야지, 라는 것으로 정했다.
선물은 자문을 구해야겠다. 근데, 누구에게 구하지? 하하. 어쨌든 기분좋은 고민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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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기일

4월 2일은 어머니 기일이었다. 올해로 17년 째 되는.
청도 인근의 남성현 고개, 어느 작은 산으로 갔다.
엄마가 잠들어 계시는 곳. 앞에 서면 눈물 나는 곳.

망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있지 않기에
망자를 그리는 이들은 이렇게 뼈가 묻힌 곳을 찾는다.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기에 항상 함께 하지만
그리움이 절절해질 때, 혹은 특별한 날에 그 곳으로 간다.

지난 해, 출간한 책을 엄마 묘 앞에 두고 왔는데 아직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찾았는데, 책은 없었다.
올해는 외삼촌, 외숙모, 외할머니와 함께 엄마에게 갔다.
이렇게 넷이서 가기는 처음이었다.

엄마가 무척이나 반가워하셨을 게다.
엄마, 남동생, 올케, 그리고 아들이 함께 왔으니.
허나, 할머니는 여느 때보다 더 서럽게 우셨다.
아들과 함께 오시니 큰 딸이 더욱 그리워지셨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우시다가 "석이가 저렇게 컸다. 영화야 니 모르제?" 하신다.
삼촌이 당신의 어머니를 달래며 "모르긴 왜 몰라. 다 보고 있는데..."

먼 발치에 앉아 엄마를 지켜보던 나도 삼촌과 할머니의 대화를 듣고 울컥한다.
몰래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의 가슴 아픔이 느껴졌다. 아..!

삼촌이 내 곁에 오셔서 앉으셨다.
삼촌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엄마와의 추억을 여쭈었더니 몇 장면을 말해 주셨다.
엄마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묻고 싶던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날들보다
엄마가 떠난 후의 살아 온 날들이 더 많아질 무렵부터 
이렇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고 싶었다.

삼촌과 단 둘이서 한엄마에게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2. 봄날의 슬픔

올해 기일은 봄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1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날처럼.
이것이 가끔씩 따뜻한 봄 햇살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원형이었다.


#3. 외할머니의 슬픔

"하나님이 데리고 갔다 해도 그게 지워지지 않어.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 2000년 7월 19일, 할머니가 하신 말.


#4. 나의 슬픔

엄마랑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헤어진 것.
젖가슴을 만지며 잘 수도, 엄마 머리칼을 꼬아가며 잘 수도 없다는 것.

하늘에서 다시 만난다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픈 소원은 이뤄질 수 없다. 슬픔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 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 『엄마를 부탁해』中



#5. 사별

선배 형의 친척분이 밤사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30대 초반의 젊은 주부가.
친구 교회의 누나 오빠가 역시 밤사이 사망했다. 30대였고, 참 건강했단다.
함께 청년부 생활을 했던 교회 형도 갑자기 사망했다. 모두 올해의 일이다.

사별은 인생의 과정이다.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축하하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

죽음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언급하지도 않은 것이 나은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 존재 자체를 끝내버리는 무서운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올바른 반응이 아니다.
죽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엄연한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 내고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때 삶에 대해 배우기 때문이다.

20대 중반, 첫 책을 기획하면서 하나의 장(章)을 죽음으로 쓰고 싶었다.
어머니와의 사별, 친구와의 사별 등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읽었던 죽음에 대한 책을 훑어 보다 이렇게 메모한 구절을 발견했다.

"이희석! 넌 어디서 어떻게 죽고 싶니?"    - 2002.3.16 경상감영공원에서

나의 죽음이 내가 사랑했던 이들, 나를 사랑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보여 줄 수 있기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기를.
이를 위해서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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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하이파이브> 는 가끔씩 보는 KBS 예능 프로다. 오늘 2월 3일편 하이파이브를 (메가TV로) 보았다. 5명 여걸의 어머니께서 등장하셔서 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딸아 미안하다>라는 코너에서 딸에 대한 솔직한 과거를 털어놓기도 하셨고, 노래방 코너에서는 어머니들께서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셨다.

그분들 중 채연의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노래를 부르신 후에, 딸의 '둘이서'까지 부르셨다. 딸 채연도 어머니가 노래 부르는 것을 처음 본다는데, 어머니는 후렴까지 빠른 박자의 노래를 놓칠 듯 놓칠 듯 하면서도 끝까지 잘 부르셨다. 깜짝 놀라는 채연의 표정 속에 어머니의 애정에 대한 고마움이 서려 있는 듯 하다.

문득,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면 내가 쓰는 모든 글을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읽어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다. 최고의 글이 아니더라도 당신께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니까 말이다. 다음 달이면 출간 될 내 책을 어머니께서 보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에서 가장 기뻐하실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엄마, 고마워요."라고 말씀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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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엄마

사진첩을 꺼낸다. 열흘 전에 보았던 어머니의 사진을 다시 본다.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 축하하기 위해 꽃 한 다발을 들고 계신 어머니.
방 두 칸짜리 집으로 이사하여 도배를 마치고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신 어머니.
주일 날에 일주일의 피곤을 달래며 누워서 쉬고 계신 어머니.
동생 정우를 안고 즐거워하시는 어머니.
많지 않은 어머니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며 엉엉 운다. 그리워서. 그리워서. 그리워서.

책이 출간되면 할머니와 함께 엄마에게 가야겠다. 저 멀리 경상북도 청도의 어느 산 자락에 누워계신 곳 말이다. 엄마에게 프롤로그와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한 챕터를 읽어드리고 싶다. 기뻐하실 어머니의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리고 첫번째 인세는 십일조를 드리고, 동생과 여행을 떠나고 나머지는 모두 삼촌과 숙모에게 드려야겠다. 어머니가 하늘 나라로 가신 이후, 나를 잘 돌봐주셨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사진을 웹에 올려본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블로그에 어머니의 사진이 올라간다는 생각을 하니 사뭇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진다. 어머니 보시기에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

[어머니 전상서] 보고 싶은 엄마...

엄마, 잘 계시죠? 오늘은 엄마가 참 보고 싶은 날이예요. 엄마의 사진을 보니, 무척이나 그리워져요. 이런 날에는 엄마의 품에 안기면 딱인데 말이죠. 내일이 설날이예요. 삼촌과 숙모 그리고 할머니를 뵙는 날이죠. 엄마가 하늘 나라로 가신 이후로 나를 잘 키워주신 건 엄마도 잘 아시죠? 그러니, 우리 집을 잘 지켜 주세요. 삼촌과 숙모를 늘 도와주세요. 엄마가 하나님께 부탁해 주세요.

참 슬픈 건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애정어린 눈빛이 기억이 안 난다는 거예요. 엄마와 함께 살았던 날들보다 엄마와 헤어져 살아 온 날이 더 많은 제게 익숙한 일이겠지만 제게는 슬픔이기도 하네요. 가수 채연의 엄마를 보며 갑자기 엄마가 참 많이 그리워지네요. 살아계신다면, 아마도 제 글을 모두 읽어보시며 기뻐하셨겠지요?

별일이 없으면 다음 달 말이면 제 책이 출간될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책 들고 가장 먼저 할머니에게 갔다가 함께 엄마에게 가려고 해요. 엄마에게 제 책을 읽어드릴께요. 아마 저는 또 울겠죠. 남자가 너무 자주 우는 걸까요? 아니죠... 엄마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건데 뭘.. 그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야하는데, 때로는 엄마 보기에 너무나 부끄러운 일도 많이 했네요. 죄송해요. 엄마... 앞으로는 더욱 착하고 성실한 아들이 될께요. 나 엄마 참 좋아했는데, 너무 빨리 가셨어요. 저는 어머니를 편안히 모실 자신이 있는데... 아마도 엄마가 계셨더라면 제가 조금 더 잘 클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런 말 하면, 엄마도 슬프죠?

아니예요. 저 더욱 열심히 살께요. 삼촌, 숙모도 있고 할머니도 있으니까요. 정우도 요즘 아주 잘 살고 있거든요. 올해에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 노력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보고 싶어요. 엄마. 오늘은 엄마가 정말 보고 싶은 날이예요. 이 글을 쓰는 내내 눈물이 나네요. ^^ 하하하. 엄마와 이별하고 난 후, 그랬기에 알게 된 것도 많지만 그 모든 것을 도로 물리어 어머니를 한 번 만이라도 보고 싶네요. 잘 지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를 사랑하는 아들 드림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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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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