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보가 좋아하는 10개의 단어
Ver. 2002 3月
재즈, 책, 사람들, 꿈, 열정, 도전, MBA, 여행, 성령 충만, 사랑, 리더십, 행복, 건강, 노래, 자연
Ver. 2006 10月
재즈, 책, 사람들, 꿈, 열정, 도전, 여행, 성령 충만, 사랑, 리더십, 행복, 건강
Ver. 2008 11月
행복, 음악, 책, 성령 충만, 와우팀, 여행, 리더십, 건강, 지식(인), 인정
■ 음악
아침에 눈을 뜨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음악을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PC와 함께 일을 할 때엔 언제나 곰오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곧잘 하진 못하지만 기타 치며 발라드 곡 정도는 부를 수 있고, 또 다른 악기 하나 정도를 배우고 싶은 희망사항도 가졌다.
학창 시절에는 돈만 생기면 가요 TAPE를 사들였다. (그 때는 아직 책을 읽지 않을 때였다.) 중학생이었을 때, 김원준, 김건모, 윤상, 신승훈, 서태지 등은 기본 품목이었고, 김승기, 이주원 등의 앨범도 갖고 있었다. 한 번은 레코드샵에 갔더니 새로운 앨범이 없어 <아들과 딸> 테마곡을 담은 앨범을 구입해서 나올 정도였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것이다. 초등학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여전히 80년대 말, 90년대 초의 가요를 노랫말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선희의 <영>, 진시몬의 <낯설은 아쉬움>, 변진섭의 <숙녀에게> 등.
음악 중에서도 특히 재즈를 좋아한다. 존 콜트레인의 <Say it>과 듀크 엘링턴의 <Limbo Jazz>라는 곡을 좋아한다. 클래식은 잠들기 전이나 잠에서 깼을 때에 듣곤 한다. 대학생이었을 때에는 POP을 듣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대중가요 중에서 주로 발라드를 좋아한다. 인기 댄스곡을 흥겨워하며 듣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발라드를 자주 듣는다. 그러니 대중가요의 발라드 장르와 재즈를 좋아한다고 봐야겠다.
이 글은 쓰는 지금(2008년 11월)은 김신우의 <마리야>가 흘러나오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늦어 나는 늘 이렇듯 세월 지난 발라드를 듣곤 한다. 글을 업데이트 하고 있는 지금(2008년 11월)은 김종국의 <제자리 걸음>을 듣는다. 이 정도면 꽤 최신곡이다. ^^ 하하.
■ 지식(인)
강준만, 신영복, 진중권, 홍세화,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
20대 초반부터 지식인들을 동경하고 존경했다. 이들의 이름은 내게 신성한 존재였고, 나의 삶이 정의와 가깝기를 희망했다. <인물과 사상> 잡지를 읽으며, 세상에 아름다운 정의가 넘치기를 희망하며 투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나의 삶도 세상이 보다 아름다운 곳이 되는 데에 작은 도움을 주는 인생이기를 바랬다.
김수영 시인의 지식인의 정의를 좋아한다. "지구의 고민과 문제를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여 고뇌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그들이 지식인이다. 실천하는 지식인까지는 아닐지라도 나는 분명 사회의식과 역사의식 한 조각씩을 지니고 있다. 빈곤의 문제로 관심이 흐르고, 신자유주의의 활개에 화가 난다. 오늘 오전에도 책장을 정리하다 빈곤을 다룬 책을 책상에 가까운 책장으로 옮겨 두었다.
'지식인'이라는 말에 비하여 '지식'은 사회학적 뉘앙스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지만, 이 단어도 좋다. 나는 교양인이 되기를 바라며, 깊이 있는 지식으로 나만의 사상을 갖기를 원한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쓸 만한 실용적인 지식도 좋고, 하나의 학문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도 좋다. 자기다운 삶이나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지식은 나의 관심대상 1호다.
피터 드러커, 니체, 에리히 프롬 등 자기 분야에서 일가견의 학문적 업적을 이룬 지적 거장들을 동경한다. 파커 파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에리히 프롬 등 행복하고 지혜로운 삶의 지혜들을 갈망한다.
■ 여행
몽골, 뉴질랜드 남섬, 중국(계림, 베이징, 상하이, 백두산, 항저우 등), 일본 오사카, 팔라우,
베트남 하노이, 사이판, 우즈베키스탄.
2008년까지 8개국, 11회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나 역시 여행을 좋아하고 즐긴다.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의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편이다. 어떤 여행지에 '다녀왔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나의 두 발로 서서, 나의 눈으로 낯선 풍광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자연과 사람, 그리고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이런 만남을 통해 떠나기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혹은 누군가와 여행의 추억을 공유하며 일상에서의 에너지 한 웅큼을 얻기 위함이다.
처음 가는 곳이라 할지라도 여행 계획은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저 발길 가는 곳으로 몸을 맡긴다. 나의 방향 감각을 믿고 전진한다. 길을 잘못 접어들지라도 돌아올 수 있는 나의 넉넉한 체력을 믿는다. 그렇게 나는 겁도 없이 낯선 곳으로 가서 무언가를 배우고 돌아온다. 그렇다, 나는 종종 겁을 이겨내고 약간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을 즐겼다. 2001년도에 비가 내려 호우주의보가 내렸던 상황에서 홀로 호박소로 향할 때에도, 2008년도에 다산초당에 가는 오솔길에서 문득 홀로 산에 오를 때에도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낯선 곳으로 발을 옮겼다. 나에게 새로운 곳,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나 보다. 약간의 모험 정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을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지만, 그 까닭은 다양할 것이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여유를 누리며 사색하기 위함이다. 방금 언급한 간혹 그렇다는 것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넉넉한 일정으로 여유롭게 산천을 여행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모두 삶에 대해 사색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함이다. 개인주의적 여행자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 건강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건강함을 추구한다.
나는, 체격은 별로지만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즐겼던 지라 체력은 아주 강한 편이다. 지금도 좋은 몸매보다는 건강한 신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없다고 운동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가 요즘엔 삶의 균형을 위해 수영을 하고 있다.
건강함은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중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체력이 좋고, 자존감이 높으며, 하나님과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여성을 원한다. 이것은 모두 나 스스로에게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젊은 나이라 육체적인 건강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분명, 정신적/ 영적 건강을 더 중요시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자존감이 낮아 스스로를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 육체적인 건강을 무시하며 에너지가 무한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나의 배우자는 이런 나의 생각과 잘 맞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개인 생활과 공동체 생활의 균형을 이루고, 건강하면서도 자존감이 높은 여성이 좋다.
■ 책
나는 항상 의미와 배움을 찾는다.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도, 배움을 얻는 수단에서도 책은 최고의 선생이다. 책을 읽으며 인생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질 때, 나는 흥분한다. 책 자체가 좋은 것이 아니라, 인생과 사람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게 만드는 역할 때문에 책을 좋아한다. 그래서 종종 깊지 않은 책에 분노한다.
읽을 책을 고를 때에는 주로 인문, 사회과학 분야의 책들 앞에 선다. 자기 계발 류의 책들 중에는 양서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나는, 읽기 쉬우면서도 깊이를 담은 실용서를 높이 평가한다. 문제를 해결하고 정보를 얻는 독서가 교양과 깊이를 쌓는 독서에 비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양보할 수 없다. 인류의 지적 유산과 시대를 초월하는 지혜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분야의 책에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 말이다. 나는 모든 '책'이 좋은 게 아니라, '훌륭한 책'이 좋다. '모든 저자'가 좋은 게 아니라 좋은 책을 쓴 '소수의 저자'가 좋다.
나는 평생 책을 읽을 것이다. 2009년에는 『순수이성비판 서문』, 『도덕의 계보』, 『신념의 마력』, 『긍정 심리학』 등을 완독할 것이다. 이것은 내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 것이다. 많은 책을 읽지는 못할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은 사람들과 함께할 것이고 와우팀과 함께할 것이기에.
■ 와우팀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에 나는 대체로 부지런하다. 열심히 나의 일을 하고 메일 회신을 하고 와우팀의 과제를 읽거나 강연 준비를 한다. 가끔씩은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는다. 홀로 시간을 보내고 난 후의 느낌은 이럴 때가 많다. '와, 참 열심히 살았네. 뿌듯하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사람들을 만날 때 여유롭게 어울리기 위해서이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바쁘게 보이지 싶지 않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와우팀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정말 그러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와우팀원은 더욱 특별한 사람들이다.
2003년 봄, 1기 와우팀이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와우팀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성장할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모양의 일을 시작했고 몇 명의 지인들과 함께 시작했다. 나는 특별한 학습 모임을 진행하고 싶었던 게다.
2기 와우팀부터는 내가 모르는 분들의 지원으로 와우팀이 시작되었고, 3기 와우팀은 지원과 선발이 섞인 형태로 구성되었다. 4기 와우팀원은 전원 가벼운 테스트로 선발하는 방식을 통과한 분들이다.
이러한 외적인 변화보다 더욱 극적인 것은 커리큘럼이나 진행 방식의 내적인 변화다. 특별한 학습 모임을 진행하고 싶었던 바람은 <STORY>라는 자기 발견 워크숍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고, 그에 따른 필독서와 수업 주제가 체계화 되었다. 지금도 와우팀은 진화하고 있다. 팀장도 성장하고 있고,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그 성장을 민감하게 느끼지는 못하지만, 수 개월이 지나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훌쩍 성장한 간격에 즐거워한다.
내 삶의 가장 큰 영역은 와우팀장으로서의 활동이다. 와우팀은 나의 놀이이고 일이다. 강연이 없는 날에는 와우카페에서 논다. 그들의 과제를 읽으며 그들을 생각한다. 그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와우팀과 함께 구상할 미래에 대해 상상한다. 이런 상상들이 오늘날의 와우팀을 만들어가고 있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달리든 걷든, 앞으로 걷든 뒤로 걷든, 기차에서 뛰어 내리지 않는다면 결국엔 서울에 도착한다. 와우팀장으로 팀원들과 함께 하면서 기쁠 때도 있고 아주 가끔씩은 힘겨울 때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나는 행복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고 있고, 도착하는 곳도 행복일 것이다. 와우팀은 내 영혼이 간절히 원했던 일이고, 나의 방식대로 운영되고 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와우 활동은 내 인생의 목적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 있는 것과 같아서 나는 와우팀 안에서 맘껏 즐긴다.
■ 행복
20대 초반부터 행복을 찾았다. 행복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의 영역에 있음을 알게 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건이나 더 좋은 조건이 필요한 게 아니라 새로운 시각이 필요했다. 나이 서른이면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는 조건들이 내게는 많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그 새로운 시각을 얻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완전함이 아니라, 온전함에서 온다.
나의 과거를 온전히 용서했다. 실패했던 일,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 나의 외모와 성격을 온전히 용서하고 축복했다. 이를 통해 나의 에너지를 과거에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투자할 수 있었다.
나는 현재를 온전히 이해했다. 오늘의 나는, 어떤 환경으로 인해 빚어진 게 아니라 그런 환경에 반응하고 순간마다 스스로 선택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내가 어제까지 선택한 결과의 총합으로 오늘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나는 미래를 온전히 기대한다. 그 누구보다도 더, 나 스스로가 나의 미래를 낙관하고 기대한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선하신 곳으로 이끌 것이고, 나는 순간마다 더 지혜로운 그 분께 내 삶을 의뢰할 것이다. 온전하신 그 분이 나를 빚어 오늘보다 더 아름다운 내일을 만드실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영역에서 온전함을 회복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 나는 오늘만을 즐기고 고통을 회피하는 쾌락주의자가 아니지만, 오늘을 즐긴다. 오늘의 즐거움을 희생하며 미래의 어떤 가치와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성취주의자가 아니지만, 미래의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준비한다. 오늘의 즐거움과 미래의 의미 있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한다. 나는 쾌락주의자와 성취주의자 사이의 건강한 지점에서 삶을 영위하는 행복주의자다.
■ 성령 충만
성령 충만은 의무나 부담감이 아니라, 자발성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나는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려 하지만, 항상 성령 충만하지는 못했다. 입으로는 주님을 추구하면서도 삶이 뒤따르지 못한 것은 성령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하지 않다면 나의 신앙생활은 충분하지 못한 것이다.
스무 살, 학교에서 교회까지는 버스로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골방 기도를 하러 교회에 갔다. 골방 기도는 뜨거웠고, 일주일 내내 사모되었다. 교회로 가는 버스가 교통 체증에 막히자, 나는 내려서 3~4 정거장을 뛰어 갔다.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골방 기도 중에 성령 충만을 경험했다. 성령 충만에 힘입어 나는 공동체를 섬겼고 청년들에게 연락을 했다. 일이 힘들어도 지치지 않았다. 내 안에서 날마다 하늘에서 주는 위로와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성령 충만했던 기간이 있었다. 청년부 회장으로 섬길 때 경험했던 성령 충만, 어느 주일 부대에서 찬양을 부르다가 찾아온 성령 충만, 가만히 성경을 읽다가 내 입술로 주되심을 고백하며 느꼈던 성령 충만.
나는 그 사건들을 잊을 수가 없다. 기쁨으로 오금이 저리고, 얼굴에서 빛이 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사랑으로 섬기게 되는 그 이상한 일들.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인으로 살고 싶지 않다. 은혜가 흘러 넘쳐 풍성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가 되고 싶다. 내 안에 은혜가 없어 바닥을 박박 긁는 소리를 내며 사역하고 싶지 않다. 아! 성령 충만. 내가 갈망하는 단어다.
■ 리더십
21살 때, 나는 소그룹의 리더가 되었다. 비록 교회 공동체의 작은 소모임이었지만 리더의 경험은 리더십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무렵 몇 권의 리더십 서적을 읽었고 나는 리더가 되기를 갈망했다. 리더십은 특정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멋진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기술이었다.
나는 리더로서 일할 때, 즐겁고 신난다. 리더십에 관한 모든 개념(신뢰, 비전, 역량, 영향력)은 나를 사로잡았다. 나를 사로잡은 역사의 명장면 중 하나는 팍스 로마나 시대였다. 로마를 풍요로 이끈 왕들의 리더십은 내가 원하는 인생이었다. 나는 누군가와 함께 보다 풍요로운 곳, 행복한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어딘가로 움직이도록 내가 가진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좋다.
마틴 루터 킹, 백범 김구, 링컨 등 역사를 움직인 리더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자극을 주고, 리더십 관련 문헌들을 나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다. 책을 좋아하지만 책벌레보다는 리더가 되고 싶고,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그들과 함께 어딘가에 머무르기보다는 보다 아름다운 곳으로 함께 나아가고 싶다.
■ 인정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공정한 인정이 좋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평판으로부터 초연한 편이지만 인정받는 것은 내게 중요한 문제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지만, 인정받지 못하면 만회하고 싶다. 다만, 그들의 시선과 평판에 얽매이지 않은 정도의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공정한' 인정이다. 내가 과대 포장되는 것도 싫고, 과소평가 당하는 것도 억울하다. 그저 딱 내가 가진 것, 이룬 것만큼의 공정한 인정을 기대한다. 책 출간 후, 서평이벤트 한 번 하지 않은 것도 책이 가진 그 모양 그대로의 평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비록 내 책일지라도 실제 판매되어야 할 정도만큼만 판매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나는 이유 없는 도약은 싫다. 내가 치른 대가만큼만 자라고 싶은 게다.
책이 나온 후에는 사람들의 인정과 평가에 연연해하는 것이 덧없음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를 아주 잘 파악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역량보다 뛰어나게 포장되는 경우가 많았고 반대의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내 가족이나 주변의 평가가 더욱 중요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이 좋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지는 않는다.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투자할 시간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의 '진솔한 피드백'과 '공정한 인정'이 꽤 괜찮기를 바란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