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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는 의욕을 가지면서도 그 이유를 모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박학다식한 학교 선생도, 가정교사도 모두 의견이 같다. 그러나 어른도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이 지상을 헤매고 다니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진정한 목적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비스킷이나 과자, 자작나무 회초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아무도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불을 보는 것보다 더 명백한데도 말이다."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은 미각을 상실하여 좋아하는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한 채 씹는 것과 같다. 현재 자신이 세운 모든 목표가 자신이 원하는 만족감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 것이다.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기대했던 정서적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순간이 많은 것이다.

깊은 행복감은 '어떤 목표의 성취'가 아닌 '진정 원했던 목표의 성취'에서 온다. 나는 행복감의 깊이를 더하는 비결 2가지를 첫 책의 출간을 통해서 발견했다.
- 정말 원하는 일인가?
- 몰입하여 최선을 다했는가?

1. 정말 원하는 일인가?

내 책 보다 수 개월 먼저 아는 선배의 책이 출간되었다. 그에게 물었다. "형, 서점에 책이 진열되는 기분이 어때요?" 형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지고 눈이 커지며 흥분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담담하게 "그냥 그래. 생각보다 기쁘지가 않아." 라고 말했다. 왜요, 라는 나의 질문에 형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이 아니었거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큰 일이라 생각하여 축하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다지 기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으시리라. 자신이 정말 원하는 일을 해야 기쁨이 커진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 없더라도 내면에서 만족하는 그 기쁨이란 달콤한 것이다.

2. 몰입하여 최선을 다했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비결은 몰입을 더하는 것이다. 어쩌면 결과의 성공보다 과정에서의 몰입이 더 큰 행복을 안겨다주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스스로가 언제 행복해지는지 실험 중이다. 이것은 팽생 진행되는 실험이다. 최근 몇 가지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 몰입은 분명 행복감과 기쁨을 배가시킨다.
프로야구를 플레이오프를 보기 위해 나는 하루 종일 준비한다. 야구를 시청하는 동안, 방해받지 않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미리 끝마쳐 두고 스포츠 신문을 사서 관련 기사를 탐독한다. 경기 시작 10~20분 전에는 TV를 켜고 선수들의 긴장감을 함께 즐긴다. 이렇게 프로야구에 몰입한다. 경기를 보며 나는 무한 행복해한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날의 일이다. 같은 비중의 경기였다. 물론 상대팀도 같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준비를 하지 못했고, 메일 하나를 보내기 위해 TV를 켜 둔 채로 노트북에 잠깐 한 눈을 팔아야 했다. 경기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면서 흥미도가 떨어지는 묘한 경험을 했다. 그 요상한 감정 변화를 글로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깝지만 난 그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더라도 이 일, 저 일에 한 눈을 팔며 집중하지 못하면 원하던 결과도 얻지 못하고, 기대했던 만족감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지만, 나는 차선보다는 최선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는 이 일, 저 일을 제쳐두고 몰입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핸드폰을 꺼 두고, 프로야구를 위해 일정을 빼 둔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경우라도 한 가지에 집중하려 애쓴다. 효율성보다는 나의 행복을 위해 살고 싶기 때문이다.

진정한 목적이란 뭘까? 공헌하는 삶, 기쁨과 행복을 위한 삶, 자아실현의 삶 등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행복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오늘 나의 두 가지 질문을 고민해 보시길.
-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원하는 일인가? (여기서의 일은 직업적 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그 일에 몰입하여 최선을 다했는가?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것은 결국 소유물의 상실을 의미한다.
반면 존재를 지향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나눔과 소비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나누면서 충족을 체험하며, 자신이 가진 힘을 쓰면서 힘이 더욱 자라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中에서

이번 주는 강연을 제외하고 10번의 약속이 있었다.
주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와우팀원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다.
2번은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이처럼 직업상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글을 통해 알게 되었고, 용기를 내어 만나자고 얘기를 건네 온 사람이다.

나는 꽤 열심히 산다.
누군가를 만날 때에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서는 홀로 있을 때에 성실을 발휘하여야 한다.
3시간의 여유로운 만남을 보내기 위해 이른 오전부터 일을 한다.
부지런히, 메일 회신을 하고 와우팀원들의 글과 과제를 읽는다. 가끔 책을 읽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늘 집안 일이 밀린다. 장도 봐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는데.. ^^

때로는 해야 할 일이 넘칠 때도 싶지만 만나자는 메일에 꽤 흔쾌히 "yes"라고 답한다.
만약 내가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용기와 절절함 때문이기는 하지만 내가 도움이 될 때가 더러 있다.
이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조금씩 실현하는 것이다.
대신 넘치는 일을 끝내기 위해 더욱 열심히 내야 한다.

이렇게 나는 한 사람을 만난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고 누군가를 만나지 않은 적은 없다.
최근 『한국의 글쟁이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가 그들과 똑같이 살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글을 쓰는 것이 소명이었고, 그것을 위해 모든 삶을 재편했다. 글쓰기에 맞도록.
나는 글쟁이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모양으로 태어났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글쟁이가 아니다. 소통하기 좋아하고 나누기를 좋아하다 보니 '글'을 수단으로 선택한 것일 뿐.

나는 만남쟁이다. 만난다고 지치지 않는다.
나는 만남 이후의 별도의 휴식 시간이 필요치 않다.
홀로 있으면 생산적이던 한 시간.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또 다른 시간이 된다.
내 일에 대해서는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와 나,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나는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작은 일 하나는 했다며 주님께 자랑한다.

나는 남들보다 시간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인식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잘 내어준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때로는 밥값까지 내면서 그를 원망않는 순간은 내 영혼이 자라는 순간이다.
이 모든 동기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님은 축복이다.
거절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게 만남이 자연스럽기에 만난다. 이것은 행복하다.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명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물질이든 지식이든 체력이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때에는 탈진이 없다.
가진 것은 퍼 내어도 새롭게 샘솟기 때문이다.
탈진은 많이 주어서가 아니라, 없는 것을 주려다가 만나는 불청객이다.
그 불청객은 우리 삶의 친절한 안내자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라는 조언을 주는 지혜자다.

나누면서도 새롭게 채워지는 충족을 경험하는 비결,
자신이 가진 힘을 쓰면서도 더욱 새로운 힘을 공급받는 비결,
그 비결은 자신의 타고난 빛을 더욱 밝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가진 것을 발견하여 그것을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융의 말처럼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온전함은 무엇인가? 아직은 다 알지 못하지만, 몇 가지 조각을 알고 있다.
홀로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
카페에서 음악을 듣거나 홀로 노래를 흥얼거릴 때 아주 행복해진다는 것,
누군가와의 진솔한 만남을 통해 의미 있는 관계로 맺어질 때 행복해진다는 것,
아! 이 조각이 너무 적다.
나에 대한 이 조각이 조금 더 많이 모아지면 나에 대한 큰 그림 퍼즐을 모두 맞출 수 있을 테지.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선생님, 음악 좋아하시죠?"
"(머뭇거리며) 그런 편이지."
"근데 왜?"
"강연 중간 중간 음악 들으실 때 참 행복해 보여서요."

며칠 전, 대원외고 워크숍을 마치고 학생과 함께 나오면서 나눈 대화다. 한 학생이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나는 처음 듣는 질문에 조금은 당황했었다. 음악 좋아하냐고 궁금하여 묻는 질문을 받아봤을 테지만, 이렇게 음악을 좋아할 것이라는 자신의 확신을 확인하는 질문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바로, 며칠 전 그 때만 해도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젯밤, 연구원과 함께 세종로에 있는 KT 아트홀에서 재즈 공연을 관람했다. 아마츄어들이었고 그들은 탁월한 실력과 쇼맨십 대신 약간의 어색함과 수줍음을 보여주었다. 유명 밴드가 아니었지만 나는 즐거웠다. 재즈 선율과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상욱과 함께 재즈 카페를 찾아다녔던 기억, 재즈가 좋아 홀로 음반을 사고 재즈사를 읽었던 기억 등. 살아가다 여유로움과 함께 음악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감성에 젖게 만들었다.

문득, 내가 음악을 참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삶에 음악이 깃든 순간이 참 많았다. 중학교 때에는 음악 테잎을 수집했고 수많은 가요를 들으며 지냈다. 지금도 당시의 많은 가요를 가사까지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에도 음악 듣는 것이 좋았고, 이선희, 변진섭, 조정현, 김민우, 이정현, 박성신, 박남정 등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음악부터 방 안에 흘려 놓는다. 카페에서 가만히 음악을 듣는 것을 퍽 좋아한다.

나는 늘 음악과 함께 했고 음악을 들으면 즐거워했다. 그런데 한 번도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노래를 못한다는 것이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하게 여겼던 것 같기도 하고, 내 삶 속에 음악은 너무나 당연하여 그것이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이 여기는 것들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 전부터 가졌던 자연스런 모습인 경우에는 그것이 좋아한다는 것이란 사실을 잊고 산다. 나 역시 음악에 대해서는 그랬던 게다.

생각할수록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러면 이제 행복해지는 한 가지 비결을 발견한 셈이다. 내 삶 속에 음악을 자주 조각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미니오디오 하나를 갖고 싶었다. 지금은 노트북에 스피커를 연결하여 음악을 듣는데 노트북을 끄고 잘 때에는 음악을 듣기가 곤란했다. 미니오디오는 단지 절약한다는 이유로 구입하지 않았던 것인데, 당장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분명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노트북으로 음악을 듣던 때보다 보다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좋은 음질로, 이퀄라이저의 춤사위와 함께 말이다. ^^

다시 음악이 있는 공간을 찾아 종종 음악이 깃든 여유를 즐겨야겠다. 홍대 쪽 괜찮은 카페 한 두 군데 정도는 가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재즈에 대한 책 한 권을 읽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늘 듣는 재즈의 폭을 좀 더 넓혀보고 싶다. 재즈는 그저 느끼면 그만이지만, 나는 재즈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참 기분이 좋았다. 십여 년 전, 이종학의 『재즈 속으로』를 읽을 때 무척이나 신났었다. 나는 다시 그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

좋아하는 단어에 '음악'이 추가되었다. 아니, 기존에 포함되어 있던 '재즈'를 '음악'으로 대체할까? 이건 살짝 생각해 봐야겠다. 중요한 것은 참으로 당연하게 느꼈었던 음악에 대한 '애정'이 그저 그런 성향이 아니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자원임을 발견했다는 게다. 온전함 삶에 즐거움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자원 말이다.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이 한결 즐거워지게 됐다. ^^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나는 충만하고 온전한 인생을 살고 싶고, 이를 위해 갖가지 삶의 지혜 중에 어느 것이 나에게 가장 유익한지 직접 실험해야만 했다. 하루를 마감하며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나의 기분을 살폈다. 편안하고 기쁨이 넘치는지, 불편하고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지 돌아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이 느낌에 내가 진솔하게 반응하는지가 무척 중요했다.


실험에서는 나쁜 결과도 성공만큼이나 중요하다. 시도하여 끝까지 해내어 결과를 보았다면 그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하나의 기회를 가진 것이다.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까지 보았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실험이 된 것이다. 나는 몇 개의 실험 결과를 적어 볼 것이다. 사실 의도적으로 삶을 산 것은 아니니 실험이라는 단어가 어색할지 모르겠다. 그저 살아지는 모양대로 하루를 보낸 후에 만족스러웠다면 그 원인을 돌아보고 내일도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1.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술자리에 의무감으로 앉아 있지 말기


새벽 1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인데 다른 날과 달리 하루를 마감하는 기분이 별로였다. 원인은 분명했다. 9시경 1차 모임이 끝났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하지만, 모임의 분위기는 2차를 향했고 결국 한 시간 정도만 진행되길 간절히 바라며 일행에 몸을 섞었다. 일행은 소주를 마셨고 나는 밥 한 공기를 시켜 먹었다. 그리고는 소주 2잔으로 3시간 남짓을 버.텼.다. 나는 너무나도 졸려 누워서 자기도 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친한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괜찮지만 그 이외의 술자리는 피하자는 것.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술 자체를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술잔뿐만 자유로이 생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자리에만 함께하리라. (한 때 내가 술을 잘 마신다고 너스레를 떨거나, 술 못 마시는 것을 수치스러워 했을 때를 생각하면 우습기까지 하다.)


#2. 나만의 강연 일정을 지켜 나가기


나의 올해 강연 회수에 대한 목표는 100회다. 지난 해 130여회를 했으니 30여회를 줄여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100회라고 한 것은 강연은 적게 하고 공부는 많이 하리라는 생각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은 목표였다. 현재 계획된 일정대로 진행하면 8월 초에 100회를 초과하게 된다. 나는 강연은 너무 많이 하고 공부는 너무 적게 하고 있는 것이다.


연초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조금 수정하였다. 월 12회 강연을 하자. 이렇게 정해 두고 웬만하면 지켜내려고 한다. 15회 이상이 되니 와우팀의 원활한 운영에 방해가 되고 개인적인 쉼과 여유를 가지는 균형이 깨지기 때문이다. 사실, '돈'이라는 가치를 우선으로 두면 나는 경제적으로 조금 더 양호해 질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번 주에 정중히 거절한 3번의 강연을 모두 해낸다면 100만원 이상은 더 벌어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난해보다 벌이가 좋아졌다. 지금의 상황에 만족한다면, 더 많이 일할 필요는 없는 게다. 너무 많은 시간을 돈벌이 활동에 투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일(강연)하는 것이 참 즐겁지만, 홀로 혹은 더불어 삶을 누리는 것도 좋다.

이런 생각이 지나치고 낭만적이고 미성숙한 생각이라고 비난당할 만도 하다. 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을 싫어한다.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대비를 하지 않는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해도 집을 나서는 지금 비가 안 오면 우산을 챙기지 않는다. 내가 종신보험을 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지를 설명하려면, 이 블로그의 스크롤바가 한없이 길어져야 할 것이다. 계획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턱없이 부족한 나에게 조언하고픈 마음이 생길 것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낭만주의와 이상주의가 치료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목적을 향하여 걸어가며 삶을 누리기 위해 태어났다. 그 목적에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유는 필요하리라. 허나,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만큼의 여유만 있었으면 좋겠다. 가난이 나쁜 까닭은 가난이 주는 불편함이 아니라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생각들이 모여 내 삶에 종합 처방전을 제시한 것이다. 월 12회 강연! ^^

7월의 어느 날, 회사에 이런 생각을 전했다. 월 12회 강연을 하려고 노력중이라고 말이다. 늘 좋은 기회를 주시려는 담당자에게 미안했지만 정중히 나의 생각을 전했다. 그 분은 기꺼이 나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수락해 주었다. 미안함과 떨림을 안고 말하였지만 흔쾌히 수락해 주어 고맙기도 하고 약간 어안이 벙벙해지도 했다. 전화로 나의 사정(?)을 얘기했고, 통화 후 아래와 같은 감사의 메일을 보냈다.


*

안녕하세요? 이희석입니다.

개인적인 상황까지 잘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면, 대리님은 늘 이렇게 다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셨던 것 같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 달에 12번 정도의 강연만 하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그 이상을 하면 제가 진행하는 독서 모임에 약간의 차질이 생기고

개인적으로도 균형이 무너지는 것 같더라구요.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것보다는 제 삶의 여유와 균형을 더욱 중요히 생각하다보니

조금은 기형적인 삶을 살고 있지요. ^^

자기 관리를 조금 더 잘 하면 더 많이 할 수 있을 터인데 지금은 12번이 최다 수준입니다.
(이하 생략)

*


방학 때는 청소년들의 7H 워크숍이 많아져서 아주 바쁜 기간이니 나도 한 걸음 양보하리라고 마음 먹었던 대로 '월 12회 강연' 원칙에 약간의 융통성을 주었다. 7월은 14번의 강연을 하기로 한 게다. 방학은 모두들 바쁘니 내 개인적인 견해만 고려할 순 없다. 사실, 방학이라는 특수 기간을 고려해 회사의 7H 강연일정을 최우선으로 하여 일정을 잡았었다. 7H 강연일정이 정해진 후로 몇 개의 강연 일정을 컨트롤했다. 이것이 7, 8월에는 7 Habits 워크숍이 많은 까닭이다.


메일을 보내고 나니 기쁨이 찾아왔다. 내 삶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작은 노력'에도 '큰 기쁨'이 찾아올 수 있음을 느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가 내가 이 땅에 태어나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임을 잊지 말자. 내가 강연을 적게 함으로 인해 와우팀에 더 집중하여 그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가족이나 소중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홀로 그리고 자유롭게 나만의 시간에 달콤한 고독의 맛을 즐길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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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완전한 성공을 이루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당신의 사명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 행복은 완전함이 아닌 온전함에서 온다. 온전함이란 무엇인가? 나는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세 가지 태도에서 접근하는 온전함에 대하여 얘기해 본다.
과거를 온전히 용서하고, 현재를 온전히 이해하고, 미래를 온전히 기대하라.


과거의 실수와 자신의 약점들을 온전히 용서하라. 학창시절의 나는 나 자신의 웃는 모습에 대하여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내 눈에는 웃는 모습이 참 못나게 보였기에 웃을 때마다 입을 가리고 웃었다. 과거에 대한 용서를 시도했을 때,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여러 가지 모습도 용서를 했다.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희석아, 너의 웃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게.” 그 이후, 나는 활짝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수년이 지나, 강연 피드백에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얘기에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용서는 치유와 회복을 선물해 준다.

모든 인생에는 능력과 밝은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수와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온전함을 추구하는 것은 완전하지 않은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자신 있고 자랑스러운 면뿐만 아니라 싫어하는 것, 또는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것까지 포용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다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이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된다.


현재의 나 자신의 모습과 살아가는 모양을 온전히 이해하라. 지금의 나는 환경의 산물이기보다는 자신이 과거에 선택한 것들의 총합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해하지 않은 채 미래를 꿈꿀 수는 없다. 찬란한 미래는 오늘의 나를 깊이 이해하고 내가 가진 것을 잘 발휘할 때 찾아오는 것이다. 현재를 온전히 이해할수록 보다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앞으로 펼쳐질 희망찬 나 자신의 미래를 온전히 기대하라. 과거를 용서하고 현재를 이해한 자아는 이제 찬란한 내일을 꿈꿀 수 있다. 가지지도 않은 것을 발휘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기에 이 희망은 날마다 우리에게 가까워질 것이다. 재능이 당신의 삶을 의미로 가득 채울 것을 기대하라.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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