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10개의 단어


Ver. 2002 3

재즈, 책, 사람들, 꿈, 열정, 도전, MBA, 여행, 성령 충만, 사랑, 리더십, 행복, 건강, 노래, 자연

Ver. 2006 10

재즈, 책, 사람들, 꿈, 열정, 도전, 여행, 성령 충만, 사랑, 리더십, 행복, 건강


Ver. 2008 11

행복, 음악, 책, 성령 충만, 와우팀, 여행, 리더십, 건강, 지식(인), 인정

Ver. 2010 10

행복, 음악, 책, 와우팀, 여행, 리더십, 건강, 지식(인), 목욕, 프로야구

Ver. 2011 8

자유, 여행, 책, 글쓰기, 지식, 재즈, 리더십, 프로야구, 내공, 와우수업


좋아하는 단어를 올해(2010) 다시 업그레이드를 했다. 두 가지 점에서 바뀌었다. 1) 추구하고 싶은 단어를 빼고 그저 나를 즐겁게 하는 단어를 추가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을 빼고 목욕이 들어갔다. 그럴 듯한 이유 같지만, 사실 성령 충만이 부담스러워졌다는 것은 영적 침체 때문일 것이다. 2) 너무 오랫동안 좋아해서 미처 내가 좋아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단어 하나를 추가했다. 18년 전부터 좋아해 왔던 프로야구가 들어간 까닭이다. 목록에서 '인정'이 빠진 것은 누군가로부터 칭찬 받는 것보다 점점 나 스스로의 만족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2010)

올해(2011)는 또 다시 대폭 수정했다. 단어들과 연관된 활동을 하기만 하면, 바로 기쁨과 만족감이 몰려드는 목록으로만 구성했다. 자유, 여행, 독서, 지식(인), 음악, 리더십, 프로야구, 내공, 연인, 와우수업. 보기만 해도 즐겁다. 추구하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내 삶에 들어와 있거나 들어오고 있는 단어들이다. 예전목록에서 빠진 단어는 행복과 건강이다. 행복은 누구나 좋아하는 보편적인 단어이기에 뺐다. 좀 더 나다운 단어, 자유로 대체했다. 자유도 누구나 추구한다고? 그렇게 따져들지 마시길. 사실, 자유가 주어지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구나 추구하는 단어라 할 수 있는 건강도 뺐다. 예전 목록과 지금의 목록 중 무엇이 나를 더 잘 설명하는가? 라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나는 매년 변하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2011)

자유

나는 자유시간을 사랑하고 즐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도 그렇다고. 내가 보기에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시간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멍해지거나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시간을 보내버리는 이들을 말함이다.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견했더라도 화해하지 못하여 오직 시간과 함께 노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의 세계를 가진다는 것, 그것은 오직 자신과 함께 시간을 신바람나게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자유는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어른스러움을 갖춘 이들이 누리는 삶의 기쁨이다. 이것을 능가하는 기쁨은 아마도 사랑 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종종 사랑이 고통과 슬픔을 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자유가 주는 행복의 가치는 절대 사랑에 못지 않다. 오늘은 모처럼 아무런 일정이 없는 날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내 마음대로 보낼 수 있는 자유가 가득한 날이기에.

여행

우즈베키스탄, 중국(계림, 북경, 상해, 백두산, 항주, 서안 등), 팔라우, 일본, 사이판
몽골, 베트남(호치민, 무이네, 냐짱, 하노이), 뉴질랜드 남섬, 브라질, 페루, 인도네시아
캐나다, 태국,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프랑스, 그리스, 터키
2011년까지 21개국, 21회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가장 긴 여행은 54일 유럽 배낭여행, 36일 중국 배낭여행이었고, 가장 짧은 여행은 3박 4일 태국 패키지 여행이었다. 나는 한 곳의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편이다. 어떤 여행지에 '다녀왔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곳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나의 두 발로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두 눈으로 낯선 풍광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여행으로 인해 성장하게 될 나 자신을 기대하며 떠난다.

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자연과 사람, 그리고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이런 만남을 통해 떠나기 전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내 여행의 목적이다. 이런 여행을 위해서는 여유를 누리며 사색하며 여행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넉넉한 일정으로 여유롭게 산천을 여행하는 편이다.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모두 삶에 대해 사색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함이다. 성장을 위해 홀로 떠나는 여행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나는 개인주의적 여행자다. 물론, 누군가와 여행의 추억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 있고, 일상을 살아갈 에너지 한 웅큼을 얻는 것 역시 여행의 유익이다.

처음 가는 곳일지라도 구체적인 여행 계획은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곳으로 나를 이끈 이유가 된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준비하되 꽉 짜인 계획표는 없다. 그저 발길 가는 곳으로 몸을 맡긴다. 나의 직관과 방향 감각을 믿고 전진한다. 길을 잘못 접어들지라도 돌아올 수 있는 나의 넉넉한 체력을 믿는다. 그렇게 겁도 없이 낯선 곳으로 가서 무언가를 배우고 돌아온다. 나는 종종 겁을 이겨내고 약간의 모험을 감행하는 것을 즐겼다. 2001년도에 비가 내려 호우주의보가 내렸던 상황에서 홀로 밀양의 호박소로 향할 때에도, 2008년도에 다산초당에 가는 오솔길에서 문득 홀로 산에 오를 때에도 나는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낯선 곳으로 발을 옮겼다. 나에게 새로운 곳,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나 보다. 새로운 곳으로의 여행! 분명 내가 매우 좋아하는 단어다.



나는 평생 책을 읽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책을 읽지는 못할 것이다. 한 권의 좋은 책은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단순히 문자를 읽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이해는 시간 그리고 경험과 함께 온다. 나는 학습(學習) 애호가다. '배운' 것을 '익히기'를 즐긴다는 의미다. 많은 독서가들이 학(學)에서 그치곤 하지만, 나는 '습(習)'에 중점을 두기에 나의 책읽기는 '달팽이 독서'다. 나는 읽은 만큼 살아내는 사람이고 싶다. (많은 책을 읽지 못할 다른 이유는 더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면 나는 신비로운 기운에 잠긴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듯한 느낌이 들면서 적당한 물과 햇빛을 받은 꽃나무처럼 내가 싱싱해진다. 책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첫 책에서 실천적으로 책을 읽으라고 강조했지만, 그것은 나 역시 책을 읽는 즐거움 자체에 빠져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의미와 배움을 찾는 사람이다.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도, 배움을 얻는 수단에서도 내게 최고의 선생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인생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질 때, 나는 흥분한다. 책 자체로서도 좋고, 책이 인생과 사람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게 만드는 역할을 해 주는 것도 좋다. 그래서 종종 깊지 않은 책에는 분노하기도 한다. 그것은 책이 아니라, 상업을 목적으로 한 물건이니까.

글쓰기

나는 2011년부터 스스로를 '작가'라고 부르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나를 '작가지망생'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소개할 수 있는 공간도 나의 블로그 뿐이다. 나는 자기경영전문가 혹은 기업교육 강사로 소개될 때가 더욱 많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강연을 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시간이 더 많다. 쓴 글이 얼마나 양질인가, 라고 물으면 작가라 하기엔 이르다. 작가란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어느 글쓰기 선생의 말이다. 작가라 부르기자고 생각한 것은 이 말을 실천하려는
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이희석 작가. 대외적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작가로서의 정신과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니 아마도 나의 블로그에서만 그렇게 말할 것이다. 지금의 내게 중요한 것은 세상의 인정과 평가보다는 나를 즐겁게 만드는 내 삶의 실제 구성 요소들이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진작부터 포함되었어야 했다. 천 개에 달하는 블로그의 포스팅과 출간된 책과 (아쉽게 날아갔지만) 아홉 권에 달하는 책의 원고와 기획안을 작성하기 위해 나는 많은 시간을 썼다. 그 시간은 대부분 나다워지는 순간이었고 기쁨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지식인

20대 초반부터 지식인들을 동경하고 존경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인이란, 사르트르가 정의한 지식인이다. 그는 지식전문가와 지식인을 구분했다. 사르트르가 말한 '지식인'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김수영 시인의 말처럼 "지구의 고민과 문제를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여 고뇌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강준만, 신영복, 홍세화, 노암 촘스키, 하워드 진과 같은 인물들.

이들은 내게 감탄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나의 삶이 정의와 가깝기를 희망했다. 대학시절, 자주 월간지 <인물과 사상>을 읽었다. 아름다운 정의가 넘치기를 희망하며 투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격했던 시절이다. 나의 삶도 세상이 보다 아름다운 곳이 되는 데에 작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던 열정적 순수함을 간직했던 날들. 물론 지금도
나는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을 조금씩 갖고 있다. 빈곤의 문제로 관심이 흐르고, 신자유주의의 활개에 화가 난다. 오늘 오전에도 책장을 정리하다 빈곤을 다룬 책을 책상 위에다 옮겨 두었다. 다만, 세상의 변혁에 참여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나의 호기심 때문이긴 하지만.

'지식인'이라는 말에 비하여 '지식'은 사회학적 뉘앙스가 사라진 듯한 느낌이지만, 이 단어도 좋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쓸 만한 실용적인 지식도 좋고, 하나의 학문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도 좋다. 자기다운 삶을 사는데 필요한 '나를 아는 지식'도 항상 나의 관심사이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에도 항상 목마르다. 지식을 구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좀 더 원대하다. 나는 교양인이 되기를 바라며, 깊이 있는 지식을 쌓고 세상을 해석하는 통찰력을 키워 언젠가는 사상가에 가까운 지성을 갖기를 원한다. 나는... 피터 드러커, 파커 파머, 니체, 에리히 프롬, 하워드 진, 유진 피터슨, 알랭 드 보통 전작주의자가 되고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나의 음악감상실은 이렇게 멋지지는 않지만, 충분히 좋은 곳이다.



나의 음악감상실이 좋은 3가지 이유

밤 10시 남짓한 시각, 귀가하는 길.
지하철 역에서 노래 한 곡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겐 영원한 음악적 진원지가 될 8~90년대 발라드들.
그 중 유난히 입에 착 달라 붙고, 마음을 감성으로 적시는 노래가 있었으니.

"보고 싶었던거야 단지 그 마음뿐이었어
헤어졌던 그 이유와 상처는 모두 잊은 채 위~~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게 생각처럼 쉽진 안았어
니가 있던 그 자리엔 누구도 들어올수가 없었던거야
수없이 부서졌던 내마음 기도가 아마도 너를 울렸는가봐
힘겨웠던 지난날을 딛고 서서 다시 한번 시작해 보라고~ 사랑해!"

열창할 때 목에 핏줄이 붉어지는 모습이 그리도 멋있었던 김정민의 <애인>이다.
'오늘은 집에 가서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러야지.'

집에 도착하여 샤워를 끝내자마자 기타부터 잡았다.
노래책을 뒤적였는데 <애인>은 없었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와 김현식의 노래 몇 곡을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애인>의 가사가 나의 마음을 두드렸고,
나를 과거의 추억 속으로, 후회스러운 장면 속으로 데려다 놓곤 했다.
<애인>의 가사 몇 소절은 그대로 나의 마음이었다. 인터넷을 뒤적여 <애인>을 찾았다.

방 안을 음악 감상 모드로 바꾸었다. 특별한 것은 없다.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나를 벌렁 던져 놓으면 된다.
마음 준비는 필요 없다. 자연스레 편안해지고, 점점 감상적이 된다.
볼륨을 좀 높여도 괜찮다. 내 집이고, 이 집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으니. 
지금부터 이 곳은 집이 아니다. 나만의 음악감상실이다.

'아! 좋다.'
이것이 행복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지 좋은 순간임에는 분명하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쉬이 대답할 수 있다.
1) 내가 꿈꾸었던 삶의 한 장면이고, 2) 자유를 누리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3) 나는 음악이 좋기 때문이다.

1) 집에는 언제든지 내가 몸을 누일 수 있는 침대 하나가 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늘 듣고 싶었던 음악을 방 안 가득히 채워 넣는다.
Jazz 곡이면 좋고, 유난히 듣고 싶은 발라드여도 괜찮다.
곡이 시작되면 나는 얼른 불을 끄고, 발랑 드러눕는다.
음악을 한껏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큰 대(大)자로 누웠다가
몇 분 후에 팔배개를 만들어 일자로 눕는 것이 좋다. 나에게는.
이것이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듣고 싶은 곡은 때마다 바뀌지만, 이 꿈은 늘 똑같다.
매일 이러지는 않지만, 자주 이런다. 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2) 어제 연구원 후배분(이지만 나이로는 형)과 함께 저녁 식사를 들었다.
이번 그리스/ 터키 여행을 함께 다녀온 사이다. (이렇게 말하면 서운해 하실 테지)
여행을 함께 다녀 온 사이 그 이상이다. 의형제를 맺기로 했으니. (허허, 이건 또 뭔지... ^^)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에게 적합한 배우자가 어떤 이냐, 라는 주제가 되었다.
"너는 이번 여행에서도 내가 느낀 거지만, '자유'라는 가치가 참 중요한 것 같애.
그것을 존중하고.."
"이해해 주고"
"그래 이해해 주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여자를 만나는 게 중요할 거야."

그래, 나는 자유가 좋다. 자유의 뽕맛을 알아 그런지, 자유롭게 살지 못해 그런지
아니면 남들이 좋다 하고 수많은 피가 자유를 얻기 위해 희생된 것을 지식으로 배워 그런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홀로 자유롭게 천천히 사는 것이 좋다.

"행복을 재는 저울이 있다면 자유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지, 출처가 어디인지도 알지만 그냥 가련다.
그걸 찾아볼 시간이 없다. 지금까지는 시간을 만들어서 찾곤 했다.
인용할 책이 집에 있는 경우에는 확인하기 위해 임시저장을 해 두고
귀가하여 찾는다. 이러면서 글 등록이 늦어지고 때로는 수일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봐야 고작 표현을 바꾸는 것 정도다. 기억력이 좋은가 보다.
열에 아홉은, 표현이 약간 다를 뿐이지 의미를 왜곡하는 일은 없으니.
그럴 줄 알면서도, 열 중 하나의 경우를 대비해서 벌인 일들이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는 거다. 조금은 느슨하게, 조금은 덜 까다롭게.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순 없으니
삶의 어떤 한 영역 만으로도 다른 방식의 삶을 시도해 보는 중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홀로 지내는 것을 잘 즐겼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홀로 지내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지하지만 그것은 보완적인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고
외향적인 사람들이 에너지를 얻는 근원은 누군가와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다.
항상 함께만 있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것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기운과 사라지고 의기소침해 지는 것은 다르다.

40여일 홀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 때에도 나는 한국에 돌아오기 싫었다.
혼자만의 여행은 달콤했고, 나는 함께함 없이도 꽤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즐기었다고 표현하지 않은 것은 이 글은 읽은 누군가가
'아! 보보는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구나'라고 단정할까 봐 겁이 나서다.(^^)
홀로 여행하는 것, 혼자 있음이 좋은 것은 그것에 자유가 깃들기 때문이다.
홀로 있을 때, 더욱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그나마 자기경영 강사로 살갈 수 있는 까닭인가 보다, 하며 감사해하고 있다.

혼자 있지 않으면 자유롭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물론이지"라고 대답해야겠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자유의 문제는 그야말로 상황윤리의 문제가 된다.
때(Time)와 장소(Place), 그리고 상황(Occation)에 따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진다.
무엇 때문인지, 나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 변화를 잘 감지하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다른 이의 호불호에 민감하다여 배려를 잘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배려의 방향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하는 사람은
민감이 아닌 예민으로 빠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카페에서 작업하다가 노트북 콘센트를 꽂을 때, 옆테이블을 확인한다.
옆테이블에 콘센트가 있다면 상관없지만, 만약 없다면
나는 옆테이블에 가까운 콘센트를 남겨 두고 보다 나쪽에 가까운 곳에 꽂는다.
만사가 이렇다. 착하다고 생각하면 나야 고맙지만 그런 문제는 아닌 듯 하다.
(생각한 바가 있지만 다른 주제를 다룰 때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여기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모습이다.
누가 시켜서 그런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글로 쓰니까 몇 줄 씩이나 되지만, 이렇게 사는 데에는 1~2초가 더 소요될 뿐이다.
늘 함께해 왔던 생각이기에, 별도로 생각할 필요 없고,
어찌 되었든 노트북 전원은 꽂아야 할 테니까.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다른 이와 함께 있을 때, 남들을 배려하느라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을 의식하느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시선을 의식하는 편은 아니지만
배려하느라 나를 위한 시간을 지켜내지 못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피해의식은 없다. 수년 동안 이렇게 살아도 우울증이나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 돕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많은 도움을 받아 왔음을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문제라 함은,
자유 외에도 추구해야 할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대표적이다. 자유, 사랑...
참 추상적인 단어이니 사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말이다.

이 즈음에서 원래 글의 흐름으로 돌아가자.
나는 지금 '불끄고 음악 듣는 시간' 의 유익을 말하던 중이었다.
첫째 이유로 꿈의 실현을 들었고, 둘째로 자유롭기 때문이라 했다.
그렇다. 음악을 듣는 시각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난 후다.
대체로 10시 30분~11시경이 된 이 시각에는 휴대폰이 조용한 시간이다.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완벽한 자유 시간이다.
그 시간을 아무 생각없이 TV 시청에 보내거나
인터넷 포털 카페의 유혹적인 기사에 끌려 시간을 보내버리면 흘러가버리는 시간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하루를 잘 살았다는 느낌이 찾아들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완벽하게 컨트롤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좋은 것이다.

사족을 하나 달면,
삶의 작은 영역, 짧은 순간만이라도 스스로를 컨트롤하거나 상황을 이끌어간다면
조금씩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날 것이고 서서히 삶이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말을 붙이고야 말다니, 자기계발 강사라는 직업병인지도 모르겠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지혜롭게 살고 싶다면
스스로 자유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소중한 가치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로움도 좋지만, 함께 어울릴 때 경험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도 좋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나의 자유는 많은 부분 사라질 것이다. 아마도 처음엔 힘들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어 얼마나 잘 헤쳐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각오는 하고 있다.
친구들이 자기 아이랑 떨어지기 싫어 출근하기 싫다는 얘기를 하면, 부럽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힘겨움이 있음을 안다. 아이가 울어 밤새 잠을 뒤척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아내와 다투기도 하고, 아이를 혼자만 봐야 한다며 아내가 우울해졌다는 친구도 있다.
어떤 친구는 아내와 번갈아가며 아이를 재워가며 겨우 겨우 지내는 친구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유 대신 사랑을 선택한 이들이 겪는 삶의 모습이다.
내가 사랑을 추구하겠다는 것은 사랑의 달콤함 뿐만이 아니라,
이렇듯 사랑이 가져온 삶의 모든 것들을 위해 기꺼이 자유를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의미다.
물론, 상황이 닥쳐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그 때, 나의 태도가 돌변한다면
부디 나의 아내가 이 글을 찾아 읽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자유롭게 살기 힘든 까닭이 바로 이런 점이다.
자유 외에도 추구할 가치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물론, 자유롭게 살기 힘든 다른 원인도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말이다.
자기 기준보다 세상이 기준을 따르느라 자기 삶을 살지 못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하리라.

3) 나는 음악이 좋다. 꿈의 실현이기에, 자유롭기에 라는 이유는 나에게서 오는 원인이다.
셋째는 순수하게 음악이 좋기에 나는 혼자만의 음악 감상 시간을 즐기는 게다.
꼬마였을 때부터 늘 음악을 들었고, 카셋트 테이프를 수집하였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 내가 음악에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소질과 관심은 종종 다르기도 한 것이었다.
나는 항상 음악과 함께 작업하고 종종 음악과 함께 잠든다.

블로그 포스팅 치고는 긴 글이었다. 읽어 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이 든다.
뭐 하나라도 드리고 싶은데 별 다른 게 없다. 다음과 같은 제안으로 맺는다.

하루 중 5분이라도 완벽한 자유 시간,
소박한 바람이라도 이뤄가는 시간을 가져 보세요.
좋으실 거세요. 아주 좋으실 거세요.
자유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고, 꿈의 실현은 짜릿한 것이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보보

"선생님, 음악 좋아하시죠?"
"(머뭇거리며) 그런 편이지."
"근데 왜?"
"강연 중간 중간 음악 들으실 때 참 행복해 보여서요."

며칠 전, 대원외고 워크숍을 마치고 학생과 함께 나오면서 나눈 대화다. 한 학생이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나는 처음 듣는 질문에 조금은 당황했었다. 음악 좋아하냐고 궁금하여 묻는 질문을 받아봤을 테지만, 이렇게 음악을 좋아할 것이라는 자신의 확신을 확인하는 질문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바로, 며칠 전 그 때만 해도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젯밤, 연구원과 함께 세종로에 있는 KT 아트홀에서 재즈 공연을 관람했다. 아마츄어들이었고 그들은 탁월한 실력과 쇼맨십 대신 약간의 어색함과 수줍음을 보여주었다. 유명 밴드가 아니었지만 나는 즐거웠다. 재즈 선율과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상욱과 함께 재즈 카페를 찾아다녔던 기억, 재즈가 좋아 홀로 음반을 사고 재즈사를 읽었던 기억 등. 살아가다 여유로움과 함께 음악을 즐긴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감성에 젖게 만들었다.

문득, 내가 음악을 참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 삶에 음악이 깃든 순간이 참 많았다. 중학교 때에는 음악 테잎을 수집했고 수많은 가요를 들으며 지냈다. 지금도 당시의 많은 가요를 가사까지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에도 음악 듣는 것이 좋았고, 이선희, 변진섭, 조정현, 김민우, 이정현, 박성신, 박남정 등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음악부터 방 안에 흘려 놓는다. 카페에서 가만히 음악을 듣는 것을 퍽 좋아한다.

나는 늘 음악과 함께 했고 음악을 들으면 즐거워했다. 그런데 한 번도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노래를 못한다는 것이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하게 여겼던 것 같기도 하고, 내 삶 속에 음악은 너무나 당연하여 그것이 좋아하는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즐거이 여기는 것들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 전부터 가졌던 자연스런 모습인 경우에는 그것이 좋아한다는 것이란 사실을 잊고 산다. 나 역시 음악에 대해서는 그랬던 게다.

생각할수록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러면 이제 행복해지는 한 가지 비결을 발견한 셈이다. 내 삶 속에 음악을 자주 조각하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미니오디오 하나를 갖고 싶었다. 지금은 노트북에 스피커를 연결하여 음악을 듣는데 노트북을 끄고 잘 때에는 음악을 듣기가 곤란했다. 미니오디오는 단지 절약한다는 이유로 구입하지 않았던 것인데, 당장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분명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노트북으로 음악을 듣던 때보다 보다 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더 좋은 음질로, 이퀄라이저의 춤사위와 함께 말이다. ^^

다시 음악이 있는 공간을 찾아 종종 음악이 깃든 여유를 즐겨야겠다. 홍대 쪽 괜찮은 카페 한 두 군데 정도는 가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재즈에 대한 책 한 권을 읽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늘 듣는 재즈의 폭을 좀 더 넓혀보고 싶다. 재즈는 그저 느끼면 그만이지만, 나는 재즈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참 기분이 좋았다. 십여 년 전, 이종학의 『재즈 속으로』를 읽을 때 무척이나 신났었다. 나는 다시 그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

좋아하는 단어에 '음악'이 추가되었다. 아니, 기존에 포함되어 있던 '재즈'를 '음악'으로 대체할까? 이건 살짝 생각해 봐야겠다. 중요한 것은 참으로 당연하게 느꼈었던 음악에 대한 '애정'이 그저 그런 성향이 아니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자원임을 발견했다는 게다. 온전함 삶에 즐거움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자원 말이다.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이 한결 즐거워지게 됐다. ^^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1

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보보

달력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래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