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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18 죽을 때 후회하는 25가지
  2. 2009/04/12 엄마 (14)
  3. 2008/12/01 망연자실 (6)

"선생님은 무언가를 후회한 적이 있나요?"
병실 침대에 누운, 삶이 얼마남지 않은 그가 묻는다.

의사는 답한다. "하지요. 후회..."
"정말요?"

"저도 가슴을 치며 후회합니다."
그의 얼굴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선생님도 후회를 하시는군요."
"물론 후회하고 말고요."

의사에 말에 잠시나마 마음이 평안할 환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라는 책의 프롤로그에 나오는 장면이다.

저자는 1,000명의 죽음을 지켜 본 호스피스 전문의다.
죽음을 앞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모습을 책에 담았다. 
책의 제목대로 25가지의 깊은 회환과 후회를 보여준다.
그 후회들은 삶을 비춰주는 25개의 거울이기도 하다.

저자가 그에게 묻는다. "무엇을 가장 후회하시나요?"
그는 천천히 입을 연다. "저는..."

목차는 곧 그들의 후회 목록이다.

-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저자는 말한다.
"어느 순간 나는 많은 사람들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누구나 느끼는 후회, 인생에서 풀지 못한 숙제에
공통분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후회의 목록은 곧 누구나가 풀어야 할 소중한 인생의 숙제인 셈이다.
목록을 이어 간다. 내가 단번에 목록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잠시 쉬어가며 하나 하나 음미해 보자는 의미다.

-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 고향을 찾아가 보았더라면

한 해의 죽음, 연말을 앞둔 즈음에
목록을 하나 둘 읽어 가며 지난 한 해의 삶을 돌아본다.
덜 후회스러운 내년을 살아가기 위한 지침 몇 가지를 얻는다.

- 결혼을 했더라면
- 자식이 있었더라면
-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책에 간간이 삽입된 흑백 사진이 사색을 돕는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즈음에 어울리는 책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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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 기일

4월 2일은 어머니 기일이었다. 올해로 17년 째 되는.
청도 인근의 남성현 고개, 어느 작은 산으로 갔다.
엄마가 잠들어 계시는 곳. 앞에 서면 눈물 나는 곳.

망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있지 않기에
망자를 그리는 이들은 이렇게 뼈가 묻힌 곳을 찾는다. 
늘 마음 속에 품고 살기에 항상 함께 하지만
그리움이 절절해질 때, 혹은 특별한 날에 그 곳으로 간다.

지난 해, 출간한 책을 엄마 묘 앞에 두고 왔는데 아직 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찾았는데, 책은 없었다.
올해는 외삼촌, 외숙모, 외할머니와 함께 엄마에게 갔다.
이렇게 넷이서 가기는 처음이었다.

엄마가 무척이나 반가워하셨을 게다.
엄마, 남동생, 올케, 그리고 아들이 함께 왔으니.
허나, 할머니는 여느 때보다 더 서럽게 우셨다.
아들과 함께 오시니 큰 딸이 더욱 그리워지셨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우시다가 "석이가 저렇게 컸다. 영화야 니 모르제?" 하신다.
삼촌이 당신의 어머니를 달래며 "모르긴 왜 몰라. 다 보고 있는데..."

먼 발치에 앉아 엄마를 지켜보던 나도 삼촌과 할머니의 대화를 듣고 울컥한다.
몰래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의 가슴 아픔이 느껴졌다. 아..!

삼촌이 내 곁에 오셔서 앉으셨다.
삼촌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엄마와의 추억을 여쭈었더니 몇 장면을 말해 주셨다.
엄마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묻고 싶던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날들보다
엄마가 떠난 후의 살아 온 날들이 더 많아질 무렵부터 
이렇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고 싶었다.

삼촌과 단 둘이서 한엄마에게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2. 봄날의 슬픔

올해 기일은 봄 햇살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1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그 날처럼.
이것이 가끔씩 따뜻한 봄 햇살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의 원형이었다.


#3. 외할머니의 슬픔

"하나님이 데리고 갔다 해도 그게 지워지지 않어.
지워도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 2000년 7월 19일, 할머니가 하신 말.


#4. 나의 슬픔

엄마랑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헤어진 것.
젖가슴을 만지며 잘 수도, 엄마 머리칼을 꼬아가며 잘 수도 없다는 것.

하늘에서 다시 만난다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딱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픈 소원은 이뤄질 수 없다. 슬픔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
하루가 아니라 단 몇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 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 『엄마를 부탁해』中



#5. 사별

선배 형의 친척분이 밤사이 심장마비로 사망했단다. 30대 초반의 젊은 주부가.
친구 교회의 누나 오빠가 역시 밤사이 사망했다. 30대였고, 참 건강했단다.
함께 청년부 생활을 했던 교회 형도 갑자기 사망했다. 모두 올해의 일이다.

사별은 인생의 과정이다.
많은 결혼식에 가서 축하하면 많은 장례식에 가서 울게 된다.

죽음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도 않고 언급하지도 않은 것이 나은가?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 존재 자체를 끝내버리는 무서운 것인가?

두 가지 모두 올바른 반응이 아니다.
죽은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엄연한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 내고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때 삶에 대해 배우기 때문이다.

20대 중반, 첫 책을 기획하면서 하나의 장(章)을 죽음으로 쓰고 싶었다.
어머니와의 사별, 친구와의 사별 등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때 읽었던 죽음에 대한 책을 훑어 보다 이렇게 메모한 구절을 발견했다.

"이희석! 넌 어디서 어떻게 죽고 싶니?"    - 2002.3.16 경상감영공원에서

나의 죽음이 내가 사랑했던 이들, 나를 사랑했던 이들에게 새로운 길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보여 줄 수 있기를.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기를.
이를 위해서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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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지난 주, 문자 메시지 하나가 왔습니다.
고향에 있는 교회 형이 사망했다는 비보였습니다.
문자 확인과 동시에 문자를 보냈던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다그쳤습니다.

자세한 상황은 그도 몰랐지만 형의 죽음은 사실이었습니다.  
그에게 전해 들은 내용은 참으로 기가 막히고 황망했습니다.
아침에 몸이 안 좋아 집에 쉬겠다고 했답니다. 
그렇게 누워 있었고 그 날 오후에 사망한 것입니다.

심장마비라고 합니다. 35살의 아주 건강하고 착한 형인데...
사망하기 불과 30여 분 전에 친동생과 통화를 했고,
사망 추정 시간 불과 10~20분 후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발견했다고 합니다.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미 숨을 거둔 뒤였던 게지요.
뭐라 말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날밤, 대구로 내려갔습니다.
새벽에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비는데 참으로 허망했습니다.
활짝 웃는 영정 사진을 보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형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고, 빈소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웃었습니다.
여느 때와 달리 저는 눈물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허망했습니다.

돌아가신 형의 친동생이 저를 맞아 주었습니다.
그 동생도 제게는 형이 되는 나이입니다. 명복을 빌고 난 내게 그가 말했습니다.
"희석아... 우리 히야 가뿟다."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했습니다.
아! 이렇게 젊은 한 사람이 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허망하게 말입니다.
형의 가시는 길, 길이 길이 기도하지 못한 게 뒤늦게서야 후회가 됩니다.

"형, 정성스럽게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빈소를 찾은 저의 발걸음이 오롯이 형의 가시는 길을 위한 걸음이 아니었음을 용서해 주세요.
형에게 죄송하여, 오늘 아침 잠깐이마나 형의 동생과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눈물이 와락 쏟아지더군요. 형이 나를 지켜 보는 것 같았지요. 고마워요. 따뜻히 웃어 주어서."

이렇게 떠나기도 하고, 저렇게 떠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이것이 부인할 수 있는 인생의 단면이라면 좋겠지만,
이런 일이 종종 있으니, 이런 인생의 모습까지도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묘하게도, 죽음에 대한 생각은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지네요.

형이, 나에게, 열심히 살라고 말씀하는 듯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사랑을 온전히 이루며 살라고 부탁하는 듯 합니다.

아침에 기도하며, 형의 동생에게 전화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생각한 것이니 하나님이 주신 생각 같네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 몇 가지를 실천하며 오늘 하루를 살고 싶습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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