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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빵과 커피를 먹었다. 예전 같으면 정말 부적합한 조화라 생각했을 테지만,
요즘 종종 빵과 함께 '우유'가 아니라 커피를 마신다. 놀라운 변화다.
이전에도 빵 우유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워 다시 쓴다.

'빵과 우유'는 오랫동안 내게 아주 최상의 조합으로 이뤄진 군것질 거리였다.
군대에서도 '빵 우유'는 병사들의 주요한 간식으로 마치 관용어처럼 쓰인다. 
군대에서 '빵 우유'는 그렇게 하나의 세트였고, 하나의 상품이었다.

(사실, 또 다른 막강한 간식 '냉동'이 있긴 하다. 허나, 난 '빵 우유'를 더 좋아했다.
빵 우유는 주머니 가난할 때, 냉동은 조금 두둑할 때 먹을 수 있다. 일종의 위화감 조성 식품인 셈이다.^^
'냉동'은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만두, 떡삼겹 등의 이름은 가진 냉동된 음식을 일컫는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빵을 좋아했고, 빵과 함께 마시는 우유를 좋아했다.
이른 아침, 카페에 가고 싶을 때에도 나는 파리바게뜨에서 소보루 빵을 사서 던킨도너츠로 향한다.
던킨에만 우유를 팔기 때문이다. 그렇게 빵과 우유를 마신다.

사실, 우우를 주문하면 폼이 좀 안 나긴 한다.
게다가 가방에 챙겨 온 소보루 빵이라니. ^^ 하하하. 지금 생각하니 웃기지만,
사실 내겐 빵과 우유가 너무 당연한 조합이라 이제서야 내가 웃긴 짓을 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이렇게 살아 왔던 내가,
커피숍에서 주문할 때에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우유를 주문하던 내가
빵에다가 '우유' 대신에 '커피'를 마시고 있다니~! 냉장고에 우유가 버젓이 있음에도 말이다.

이게 뭐가 그리 놀랍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있으리라.
내게는 빵을 해장국에 찍어 먹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빵 우유 대신 빵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고정관념이 깨진 사건이다. 그것도 아주 쉽게.

우리 할머니는 땅콩버터를 빵에 발라 드시는 게 아니라, 밥에 발라 드신다.
"할머니, 그걸 왜 밥에 발라 드세요?" 어느 날 저녁, 식탁에서 그렇게 여쭈었다. (왕십리에 살 때다.)
"하하하. 이거 보기엔 이상해도 억시 맛있다. 너도 먹어 봐라."

헉... 저걸 먹어 보라시다니.
호기심 반, 효도 반의 심정으로 땅콩버터를 한 숟갈 떠서 밥공기의 한 쪽 구석에 넣었다. 그리고 비볐다.
'오잉? 맛있네.' 나는 두 어 숟갈을 더 떠서 밥공기의 가운데에 떠 넣었다. 비벼서 맛나게 먹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우리 일행의 여행을 돕는 사람은 가이드와 운전사, 이렇게 두 명이었다.
'롸핏'이라는 이름의 운전사는 늘 얼굴 크기만한 납작하고 동그란 빵을 들고 다녔다.
그게 그의 간식이었고, 식사 때에는 그걸 함께 먹었다.

한번은 고려족 가정에게 초대를 받은 우리 일행이 밥을 먹었는데,
그날의 메뉴는 시뻘건 국물이 차믕로 시원하게 보였던 보신탕이었다.
롸핏은 식사를 하다가 자신의 빵을 보신탕 국물에 찍어 먹었다.

흰색 빵의 살결이 시뻘건 보신탕 국물이 적셔진 모습을 보고 우리 일행은 놀랐다.
나 역시 저렇게 먹을 수도 있구나, 하는 작은 충격이었고, 따라 먹어 보았다. 괜찮았다.
그 이후로, 종종 나는 음식 간의 이종 기절초풍 조합을 시도하곤 했다.

가장 최근, 아니 요즘 시도하고 있는 조합은 '빵과 커피'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이 조합을 늘 즐겨 왔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단 한 번도 빵과 커피의 조화로움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나는 경악스럽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가?
나는 얼마나 많은 것에 대하여 고정관념을 갖고 살아가는가?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에 내가 가장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빵과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브라질에서 호텔 식당에서 와우팀원이 빵과 커피를 먹길래... (나의 고정관념으로) 이렇게 물었다.
"우유 있던데, 우유 가져다 드릴까요?"

"아뇨. 저는 빵은 커피랑 마셔요. 우유랑 먹으면 느끼하더라구요."
으악! 30년 넘게 최상의 조합이라 생각해 온 빵과 우유에 대하여 느끼하다니!
빵과 우유에 대한 모욕이었고, 나의 생각에 대한 한 바가지의 찬물이었다. ^^

다음 날 아침 깨달았다. 모욕이 아니라, 또 하나의 견해이고 아주 신선한 찬물이었음을.
빵과 커피를 먹어 보았는데, 아... 맛이 아주 좋았다. ^^ 특히 기름기가 있는 빵과 커피는 제격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이렇게 빵과 커피를 더 즐기게 되었다. 커피만 마시고 산다는 사람들도 이해가 되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한 달 동안의 여행을 건강히 마치고 지난 주에 한국에 돌아왔다.
한 달은 짧지 않은 시간인가 보다. 새로운 습관이 생겼고,
오늘로써 6일차에 접어들었음에도 바뀐 밤낮에 이리도 헤매고 있으니. ^^

브라질 여행 후, 몇 가지 일상의 모습들이 달라졌다.
이것은 여행이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었다는 뜻이다.
습관이 생기고 일상이 바뀌었다면... 이건 중요한 일이다.
삶을 살아가다 자신이 원하는 변화를 일궈내기란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면...
그것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무엇이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사람마다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은 조금씩 다르기에)
변화된 모습은 자신이 원했던 것인지, (모든 변화가 긍정적은 것은 아니기에)
이런 변화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삶의 모든 경험에서 배울 수 있기에)
얻은 교훈을 앞으로 어떻게 교훈을 활용할 것인지. (이것이 지식의 궁극적 목적이기에)


1. 커피를 자주 마신다


오전 8시, 바닐라 라떼
오후 1시, 아메리카노
저녁 7시, 브라질 원두커피

오늘 내가 마신 커피다.
오늘은 3잔을 마셨지만, 5~6잔을 마시는 날도 생겼다.
이것은 분명 브라질 여행 후에 생긴 변화다.
이전에는 하루에 한 잔, 많으면 두 잔 정도였다.

내 머릿 속에는 검증되지 않은 '커피는 해롭다'는 막연한 관념이 있었다.
어릴 적, 나에게 커피는 접근 금지 기호식품이었다.
그것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나의 관념이 옳은지 따져 본 적은 없었다.
어쩌다 머릿 속에 들어 온 관념 하나가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이다.

내가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에서 내렸을 때,
와우팀원들과 함께 가장 먼저 한 일은 공항 커피숍에 잠시 앉아 카페징요(커피)를 마신 것이다.
브라질에서는 어린 아이들도 커피를 마시곤 한단다.
와우팀원 중 한 분은 빵과 커피를 마셨다. 빵과 우유의 조합은 느끼하다는 말을 하면서.
내 머릿 속에는 빵하면 우유다. 군대에서도 "빵 우유"는 베스트 간식 중 하나다. ^^

"빵과 우유는 느끼하다"는 그 한 마디는
다음 날 조식 때 새로운 시도를 하게 했다.
나는 커피와 빵을 먹어 보았다. 괜찮았다. 느끼한 맛이 덜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 커피와 친해졌다. 글을 쓰면서 파리바게뜨의 '비스코티 시나몬'을 먹는다.
커피와 먹으면 잘 어울릴 것 같아 어제 저녁에 구입해 둔 간식이다.
이렇게 커피와 어울리는 간식을 사는 내가 신기하다.

오래 전, 아침 식사로 커피 한 잔을 드시는 둘째 외숙모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당시에는 그렇게 지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은근슬쩍 이해되는 순간이다.
브라질을 떠나기 전, 나는 스타벅스에서 아주 큰 머그잔을 샀다.
기념이기도 하고, 이왕 마시는 거.. 그 까이거 크게 먹지 뭐.. 라는 생각으로.
하하. 한 달만에 이렇게 커피를 마시게 될 줄은 몰랐다. 


커피를 홀짝이며...
관념에 갇혀 있던 나의 비합리적 이성과
새로운 관념이 발휘하는 변화의 힘을 동시에 느낀다.

[덧] 커피 애호가 수준은 아니다. 그저 이전에 비하여 많이 늘었다는 게다.


2. 카메라를 들고 외출하곤 한다

서울 르네상스 호텔


여행하듯 삶을 살고 싶어졌다. 공항 리무진에서 내려서 짐을 승강장 한 곳에 옮겨둔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늘 지나다니던 테헤란로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호텔을 올려다 보았다. 상파울로에도 있던 호텔이 내 집 앞에도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현실감없이 느껴졌다.

르네상스 호텔 앞에 서서 선릉역 방면을 바라다 보았다.
빌딩 숲 사이를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반가웠다.
새로 생긴 고급스런 다른 저 건물은 왜 이리도 정겨운지.
내가 사는 곳도 밴쿠버의 다운타운 못지 않은 세련됨이 있구나, 싶었다. 월세를 내며 지내는 형편이지만, 소박한 감사함이 찾아들어 기분이 좋았다. 

3월초 밤공기는 싸늘했다. 청냉한 기운이 온 몸을 감쌌다. 항상 똑같은 건물이지만,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다. 벤쿠버 시내를 돌아다니며 보았던 건물, 교회, 도로는 그들에겐 일상, 나에겐 여행이었다.
익숙한 테헤란로에서 문득,
약간의 낯설음과 신선함이 느껴졌다. 
사진에 담고 싶었다.
여행자의 시선이었던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며칠 동안 외출할 때마다 카메라를 챙긴다.
문득 봄기운이 느껴지는 장면을 담기 위해.
함께한 사람들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기 위해.
호기심 많은 눈길로 쳐다보다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할지도 모르기에.


3.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온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각은 새벽 2시다.
11시에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고 이 난리를 떨고 있다.
요즘 나의 생활은 이렇게 밤과 낮이 뒤엉켜 있다.

어제 출판사와의 오후 미팅에는 벌건 눈으로 참석했다가 저녁부터 잠들기 시작했다.
졸음이 내 온 몸을 설득하려고 난리였다.
버티지 못한 채로, '딱 한 시간'만 자려던 것이 '4시간'으로 이어졌다.
덕분에 저녁에 전화 드리려고 했던 중요한 통화를 하나도 못했다. 밤 11시에 할 수는 없으니.
이런 뒤죽박죽 일상이 6일째 이어지려고 한다. 지금도 이러고 있으니.

낮에 6시간씩 낮잠을 자기도 하니, 밤에 잠이 올리가 있나?
낮잠을 잘 수 있는 태평성대한 나의 삶에 고마워해야 할지,
게으름에 허우적대면서도 바꾸지 않는 나의 고약함에 짜증내야 할지.

이런 생활을 5일 하고 나니, 은근히 느끼게 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 얻기를 원하면서도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차 적응을 원한다. 그렇다면 낮에 낮잠 자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점점 시차 적응이 늦추어질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달콤한 낮잠을 스스로에게 허용하고 만다. 결국 내 탓이다.


4. 자유로운 여행자를 꿈꾸다

브라질 여행을 다녀 오고 나서, 여행이 조금 더 좋아졌다.
관광객보다는 여행자로 자주 여행을 떠나고 싶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새로운 곳에서 배우고 느끼고 성장하고 싶다.
성장한 영혼으로 돌아와, 일상에서도 배우고 느끼고 성장할 수 있는 현자가 되고 싶다.

국내여행을 보다 자주 다니리라.
서울도 아름다운 여행지다. 서울부터 여행하기로 했다.
일상과 여행이 어우러지면 더욱 아름다운 삶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외출 시에는 조금 귀찮고, 많이 부끄럽지만 사진기와 호기심을 챙길 것이다.
나는 서울을 여행하는 여행자니까.

올해 두 번의 해외 여행을 꿈꾼다.
한 번 정도는 와우팀원들과 함께 떠나고 싶다. 
일상에서 웃으며 얘기 나눌 아름다운 추억을 그들과 함께 갖고 싶다.
홀로 떠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면 한 번 정도를 더 가더라도 홀로 떠나고 싶다.

언젠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며 사색하고 또 사색하리라.
지루함과 흥분이 교대로 나를 찾아들 때마다 나의 영혼은 성장할 것이다.
미국의 동서를 자동차로 횡단하고, 라틴아메리카와 중동을 여행하며
세상이 넓다는 것을 나의 두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느끼고 싶다.
이탈리아의 한적한 길을 걷다가 어느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고 싶다. 그냥 그러고 싶다.

캐나다 벤쿠버 공항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 나눈 얘기가 떠오른다.
그들은 캐나다 여행 후에 한국으로 귀국하는 길이었다.
(약간 푸념이 섞인 말투로) "이제 (한국) 들어가면 열달 동안 열심히 알바해야겠네."
"왜?"
"한 오백 벌어야 또 여행을 떠나지."

그들은 여행, 특히 장기간 여행이나 해외 여행을 위해서는 돈다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나의 생각은 다르다.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방식이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하다.
집안에 좋은 물건들을 들여놓는 것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방식,
그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중국 시안 화칭쯔에서

쑤저우 나룻배 위에서



나는 2002년도에 38일 동안의 중국 배낭여행을 다녀왔는데,
하루에 220위안(당시 환율로 33,000원 정도)으로 생활했다.
호텔 대신 싸구려 여인숙에서 잤고, 식당이 아닌 길거리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관광과 다른 도시로의 이동수단까지 모두 그 돈으로 해결했다.
필요한 것은 생존 회화 몇 마디와 헝그리 정신, 그리고 용기 뿐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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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학생 리노의 인생수업 이야기. "삶은 여행이고 실천이 곧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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