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보루빵 2

가난해지는 법

이모할머니는 오래 전에 물난리를 당했던 일을 들려 주신 적이 있다. 홍수가 마을을 삼켜 버렸고 이모할머니네 집엔 무릎 높이 이상으로 물이 찼단다. 참담함은 물이 빠진 후에 드러났다. 모든 가전제품을 내다 버려야 했고, 흙탕물에 뒤덮였던 가재 도구들은 못쓰게 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절망에도 할머니는 꿋꿋이 살아오셨다. 6남매를 키워내시며. 지난 해, 미국의 리먼 브러더스 붕괴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최첨단 금융상품인 줄은 모르고 그저 은행예금인 줄 알고 투자했다가 2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날려 버린 시골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참이나 안타까웠었다. 노후 자금으로 모았던 전재산을 날려 버린 할머니는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 만큼이나 앞으로의 날들이 험난하게 보였다. 문득, 그 분들이 떠오..

볼펜 한 자루와 소보루빵

라는 펜이 있다. 볼펜찌꺼기가 없고 잘 번지지도 않는 좋은 펜이다. 이런 녀석이 저렴하면 참 좋으련만 역시 비싸다. 얼마 전부터 딱 이 펜이 필요할 일이 있어 집을 뒤졌는데도 없다. 오늘 아침, 잠시 사무실을 나왔다. 펜을 사려고. 삼색볼펜도 아닌 놈을 1,600원이나 주고 사야 하지만 필요하니 어쩔 수 없다. 얼마예요? 잔돈을 챙겨갔기에 문구마트 캐시어에게 금액을 물었다. 2,200원이요. 예? 이거 예전엔 1,600원이었는데요, 라고 속으로 되물었다. 사실, 조금 큰 문구마트라 저렴하게 팔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웬걸,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금액보다 600원이나 비쌌다. 녀석의 가치가 37%나 뛰어오른 것이다. 문구점을 나오면서, 녀석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녀석은 그 동안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