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7

문득, 다른 삶을 그리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머니의 사랑을 오랫동안 듬뿍 받으며 살고 싶다. 사랑만으로 삶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음은 이번 생을 통해 체험했으니, 내세를 산다면 쪼들르지 않은 정도의 경제 형편이었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날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음료 배달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삶, 주말에 함께 공원에라도 산책할 여유가 있는 삶. 다른 어머니가 아니라 사진 속의 저 어머니 뱃 속에서 태어나고 싶다. 어머니와 함께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어머니와 둘이서 외식한 적도 없으니(근사한 곳이 아니라 시장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라도 함께 먹어본 기억이 전혀 없다), 함께 영화관에 가거나 백화점 나들이 같은 것도 상상도 못했다. 힘겨울 땐 어머니의 손을 잡아도 보고, 기쁠 땐 가장 먼저 전화도 드려보고 싶다. ..

너무 늦기 전에 해야 할 일

사랑은 야속합니다. 어떤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야 자기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하니까요. 젊음 또한 야속합니다. 훌쩍 지나가고 나서야 그것이 참으로 소중했음을 절감하니까요. 내 친구 B는 좋은 사람입니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친한 벗에게 이것 저것 퍼주며 즐거워하는 친구입니다. 그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2년 전 이맘 때입니다. 아버지가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불행은 끝이 아니었죠. 이듬 해 봄, 어머니마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아버지는 건강이 많이 호전되셨습니다. 두 달 전에는 아버님, B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보양식을 먹으러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의 병환은 점점 더 깊어지셨습니다. 석달 전 쯤 뵈었는데, 아들인 내 친구까지도 겨우 알아보실 정도였습니다. ..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바쁘셨다. 학교 어머니회 일원으로서 학교 행사를 돕거나 교회 집사님으로서 결혼식 피로연 준비 등의 교회 행사에 참여하거나 회사에서 긴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와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바쁘셨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가 생활비를 집으로 가져다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고단하셨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200원 짜리 '스콜'이라는 음료를 배달하셨다. 판자촌의 골목엔 비탈길이 있었고, 우리가 살던 허름한 집의 대문은 작았다. 100cc 짜리 오토바이를 대문 밖으로 내었다가 들이는 일은 힘겨웠을 것이다. 지아비는 심리적 안정을 주지 못했고, 생활고는 어머니께 육체적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나는 가난..

웃음과 눈물이 가득한 책 -『마지막 강의』를 읽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나와 함께한 것은 꿈을 이룬 자만이 전할 수 있는 류의 잔잔함 감동과 인생을 사는 방법에 대한 교훈, 그리고 즐거운 유머였다. 저자는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대학교수다. 그는 위인이 아니었다. 젊은 날의 그는 고집이 세고 예절이라고 모르는 독불장군처럼 보였다. 그러나 인생은 그에게 세월과 함께 연륜과 지혜를 가져다주었고 그 연륜과 지혜는 갑작스런 죽음 통보로 인해 더욱 깊어졌다. 저자는 세상과 헤어지기 전, 가족, 동료, 제자들과 작별할 수 있는 수개월의 시간을 아름답고 재.미.있.게. 보냈다. 나는 분명 '아름답고 재미있게' 라는 표현을 썼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저자의 삶을 공감하지 못했노라고 비판하지 말기를. 이 책에는 정말 유머와 아름다움이 있다. 시한부 ..

어머니께 바친 나의 첫번째 책

"엄마 나 왔어요. 아들이 첫 책 들고 왔어요." 8월의 뜨거운 햇살이 쨍쨍 내리쬐던 어느 날, 나는 친구와 함께 엄마 묘 앞에 섰다. 내 손에는 갓 출간된 '이희석'의 책이 들려 있었다. 엄마에게 책의 몇 구절을 읽어 드렸다. 눈물이 났다. 기뻐하시는 엄마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 오듯 흘러내린 땀과 눈물로 얼굴은 뒤범벅이 됐다. 참 기쁜 소식인데 엄마에게 전해 드리니 슬픈 일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언제쯤이면 이곳에 올 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아마도 기쁜 소식을 들고 올 때 만큼은 눈물 한 방울을 흘리게 될 것 같다. 돌아오기 전, 한 권의 책을 비닐에 싸서 엄마 묘 앞에 고이 두었다. '어머니가 읽어보세요.' 오래 전부터 소망해 왔던 장면이다. 올해 초 보..

보보의 몇 가지 일상

몇 가지 나의 일상사를 끄적여 본다. 잔잔하지만 소중한 나의 삶이다. 성찰의 시간은 늘 좋다. #1. 방송국 인터뷰 KBS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모 교양 프로그램의 작가였고,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우리 집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에 망설였는데, 작가는 정중하면서도 친근하게 부탁을 했다. 결국 약간의 망설임 끝에 집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인터뷰 날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집안 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짧은 분량이겠지만 TV 인터뷰라는 것은 약간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런데, 다시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송 내용이 조금 바뀌게 되어 인터뷰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속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집안 정리를 했다. 기쁜 일이다. 몇 지인들에게 인터뷰 건에 대하여 아쉬운 듯 말하였지..

어머니가 차려 준 점심상

해피선데이 를 보았다. 유쾌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5명 여인들의 직업체험 22탄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어머니들에게 20년 전의 젊은 모습을 되찾아 드린다는 목표를 가지고 5명의 여인들이 어머니의 얼굴을 만졌다. 그녀들은 어머니의 깊게 패인 주름을 만지기도 하고 거칠어진 피부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딸의 화장을 받은 어머니들은 무척이나 고우셨다. 아름답고 젊으셨다. 얼마나 행복하셨을까? 이후, 딸들은 모두 어머니 전상서를 써서 그네들의 어머니를 모셔 두고 편지를 읽어 드렸다. 닳아서 내려 앉은 엄마의 잇몸을 보고 병원 구석에서 많이 울었다는 박경림, 딸에게 "우리 잘난 딸 고맙다. 내가 너 힘 입어 열심히 살께"라고 말씀하시는 이해선 여사님.(박경림 어머니) "도전해 봐. 할 수 있어"라고 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