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다움 4

마지막 순간에 마주할 물음

유대계 미국 작가요 인권운동가인 엘리 위젤(1929~)은 어린 시절,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그곳에서 살해당했고, 아버지 역시 모노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부헨발츠 수용소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 그는 훗날, 수용소에서의 참상을 담은 자전적 소설 를 썼고, 인권 활동을 통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위대한 작가는 세상의 평화에 기여하는 한편, 개인들이 각자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며 자기 자신이 되어 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숨을 거두어 신을 만나면, 신은 왜 구세주가 되지 못했느냐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왜 이런저런 병의 치료약을 발명하지 못했느냐고도 묻지 않을 테고요. 그 순간에 우리에게 던져질 질문은 단 한 가지, 왜 너는 네 ..

소원과 의무의 균형 유지하기

소원과 의무의 균형 유지하기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기 ④] 고유성 추구하기에 대한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오직 깨어있음으로 자기 마음의 소원을 따라야 한다"는 문장이 지난 글의 마지막 글귀였습니다. 자기 소원은 분명히 세상에서 고유한 것입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고유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관계 속의 역할까지 힘써 실천해야 고유성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고유성은 자기다움의 본질입니다. 이번 글을 잘 이해하면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손에 잡히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저도 세상 누구와도 다른 '고유한 나'입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있는 나'이기도 합니다. '고유한 나'와 '관계 속의 나'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우리의 본질입니다. '본질'..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기다움

지난 1월에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일상의 일들을 자기경영 혹은 인생살이 등과 연결시켜 사유하는 편인데, 이사를 통해 느낀 바가 있어 몇 마디 나누어 봅니다. 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기다움에 대한 단상들입니다. 하나. 시간에 대하여 1~2년만 살아야지, 하고 들어갔던 집인데, 4년 4개월이나 지났습니다. 훌쩍 지나가버리는 세월의 무심한 속도에 놀라기도 하고(인생도 이렇게 쏜살처럼 지나가 버릴까 봐), 마음 먹은 것을 실천하는 일에 느려터진 제 게으름이 무섭기도 합니다(게으름이 내 소원을 모두 삼켜 버릴까 봐). 당분간은 무서움을 느끼며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하루 이틀이면 타성이 무서움을 집어삼켜 버리니, 타성에 젖어버리는 일이야말로 무서운 일인 듯 합니다..

자기다움이 아름다움이다

2010년 크리스마스 이브. 나는 와우팀원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몇 달 전에 출산하여 산후 조리 중인 그녀였기에 오랜만에 멀리 이동했었다. 그날은 바람이 매우 차가웠다. 매서울 정도였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볼이 시렸으니까. 몹시 추웠지만,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춥긴 했지만, 청냉한 기운이 상쾌한 기분을 들게 했다. '그래, 겨울은 추워야 겨울이지. 그래야 겨울답지.' 자기다운 겨울이 멋져 보였다. 자기다울 때 아름다운가 보다. 자기다움이야말로 멋진 모습이란 사실을 깨닫기란 쉽지 않은가 보다. 자신이 가진 것들은 당연해 보이거나 초라해 보이고, 남이 가진 것들은 특별하거나 멋져 보이니까 말이다. 학창 시절, 조금이라도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애썼던 기억이 난다. 구두를 신어 보..